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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17장1-15절 승리공식 240922 원주희목사
2024.09.22 일 오후 12:48 ・ 36분 21초
영상에 나왔던 알바트로스라고 하는 새는 바보새라고 그렇게 불려집니다.
알바트로스는 잘 걷지 못하고 그러기 때문에 그런데 이 새는 전 세계에서 가장 멀리 날아갈 수 있는 새입니다.
날아가는 비결은 그 세찬 바람이 몰려올 때 그 바람에 몸을 맡기는 거예요.
맡길 때 가장 먼 거리를 날아갈 수 있는 그러한 새로 그렇게 불려집니다.
한편에서는 바보 새이고 또 한편에서는 가장 멀리 날아가는 새이기도 합니다.
마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 이 두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군대 생활을 할 때 예수 믿는 사람들을 칭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군대 갔다 오신 분들은 혹시 알지 모르겠습니다. 뭐라고 그러는지 압니까?
예술 고문관이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들어봤습니까?
왜 예술 고문관이라고 하냐 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군대 생활하면서 좀 빠릿빠릿하고 그런 친구도 있는데 좀 어리한 친구들도 있어요.
맡은 일을 제대로 못 해내고 그러면서 주일날 되면은 교회 간다고 그러고 하면은 밉상 보잖아요.
그럴 때 예수 믿는 고문관이 되고 교회 고문관이라 고문관이라는 말은 뭘 잘 못한다는 그런 군대 표석입니다.
그런 소연을 표합니다. 여러분 세상 속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중에 우리는 마치 알바트로스 바보 새와 같은 그런 모습을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위기 상황을 만나면 큰 날개를 펴서 바람을 차고 날아오르기 시작하면 전혀 다른 모습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여러분 세상 속에 그리스도인으로서 복되게 살아낼 수 있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두 가지 상황이 나타납니다.
첫 번째 1절부터 해서 한 7절, 8절까지는 르비딤 광야에서 물이 없어 갈급한 중에 그들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모세를 향해 돌을 들어 던지려고 하는 그런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에 사무쳤는지 돌을 들어서 지도자인 모세를 찍어 던지려고 하는데, 니가 왜 우리를 애굽 땅에서 건져내가지고 이 광야에서 말라죽게 하느냐 근데 사실은 오늘 본문에 보면은 3절에 이렇게 말해요.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3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뭐 하게 하느냐 목말라 죽게 하느냐 여기에 지금 목말라 죽는 대상이 어디까지 들어가 있습니까?
가출교 아직 좀 살 만합니까? 안 합니까? 정말 목말라 보세요 가축이 죽어나가는 게 무슨 대수입니까?
우리와 우리 자녀와 가지는 이해가 돼요. 근데 가축이 목말라 재산이 축나는 것에 지금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겁니다.
목말라 죽게 되느냐라고 그들이 모세에게 비난하고 원망하고 돌을 던져 그를 치려고 했습니다.
그게 이스라엘 백성의 한 단면이에요. 또 한 단면은요.
아말렉이 그들에게 바로 이어서 쳐들어왔는데, 아말렉이 쳐들어올 때 그들은 어떻게 압니까?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누구를 택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누구와 싸워라.
아말렉과 싸워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 거할 때 군사 훈련을 받았겠습니까?
아니요.
그냥 군사 훈련 받은 게 아니라 그냥 삽지라는 거 배우고요.
호미지라는 거 배우고요. 양떼를 치는 거 배우고요.
벽돌 만드는 거 배우고요. 그냥 농사꾼이고 노동자였을 뿐입니다.
근데 군사 훈련 받은 아말라의 군대가 쳐들어왔는데 그 군대를 이스라엘 백성이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어요.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는 적을 그들이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다 힘든 것이 뭡니까?
한 번뿐인 인생을 살다 보니까 우리 나이 50대의 인생을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고, 40대를 살아본 적이 없고, 60대를 살아본 각각 자기 나이 때 그때를 그때만 살고 있잖아요.
그래서 다들 인생을 두 번 살지 못하니까 연습이 없어요.
지금 이 머리 가지고 이 경험을 가지고 내가 20대로 돌아갔으면 정말 멋지게 살아낼 텐데 이런 생각이 마음속에 뭉글뭉글합니다.
지금 내가 목회를 이만큼 하면서 한 30년 가까이했네요.
92년도부터 해서 30년 가까이 한 목회의 모든 노하우를 가지고 1992년도로 돌아가면은 내가 기도 생활 이렇게 할 것이고, 성경은 이렇게 연구할 것이고 그래서 내 인생을 저렇게 살았을 텐데 그런 마음이 제 마음에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이 어떻습니까? 누구나 다 그렇지. 그런데 명절에 만나서 자제분들을 만나보니까 어떻습니까?
얘들아 그렇게 살면 안 돼라고 말하니까 여러분들이 뭐라고 합니까?
두 글자로 말하면 정답입니다. 뭔지 압니까? 온데 그 얘기를 지금 하면요.
꼰대 설교 듣기 딱 좋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 광야에 나와서 무리 없는 상황도 처음 경험하고 그리고 아말록에게 쳐들어오는 것도 처음 경험합니다.
그런데 두 사건 안에서 그들이 전혀 다른 반응을 나타냈다는 겁니다.
어떤 반응을 우리 인생에 따라가길 원합니까? 옆 사람 축복합시다.
승리하는 생활 됩시다. 한번 더 따라 합시다. 더 적나라하게 복받는 생활 됩시다.
여러분 성경의 묘한 점은 우리가 승리하는 방법도 있고 복받는 일도 있고 생명을 얻는 일도 있고 다 나와 있다는 거예요.
그것을 우리의 삶으로 오늘 내가 적용해 가는 것은 늘 누구나 처음이에요.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을 살아가는 중에 자기 나름의 믿음 안에서 승리의 공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 공식을 갖추면 세상과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내는 믿음의 사람들이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젊은 애들이 부르는 찬송 중에 이런 찬송이 있습니다.
세상과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교회 이런 거 있어요.
세상과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내고 세상을 정복해내는 그러한 사람들 저와 여러분 되시고 여러분의 가정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 번째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굉장히 감정적인 대응을 합니다.
목마른 거 배고픈 거 그리고 잘 집이 없는 거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감정을 유발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감정적인 상황이 목이 마른 현실 앞에 감정적인 대응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누군가 한마디 했을 겁니다. 그 한마디가 군중 심리가 돼서 눈덩이처럼 불어나가지고 모든 사람들이 모색에 실물을 하고 도전을 하고 돈을 들어서 치료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습니다.
돌로 쳤으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답이 됐겠습니까?
여기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사람은 어떻게 했겠습니까?
모세에게 가서 의논합니다. 이 지금 물이 없는데 어떡할까요?
뭐 이래가지고 지금 나름이 할 수 있는 그 쥐어 짜는 수를 한번 싸아해보는 그런 수도 있습니다.
이성적인 대응도 사실은 큰 답이 되지 못하고 감정적인 대응은 더 큰 답을 듣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때 모세는 한번 따라 합시다. 사는 방법이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인생을 사는 방법이 달랐어요.
그래서 백성들의 원망을 받으면서 모세는 하나님께 두 손을 들어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만약 모세도 이 감정적인 대응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신이 어찌하여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 우리 가족에 목말라 죽게 하느냐 내가 뭐 어쨌느냐 이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감정과 감정이 부딪히면서요 완전 난장판이 되어버리고 말 거예요.
어쩌면 사단이 노리는 것도 그런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근데 모세는 감정적으로 대응하지도 않고 그가 가지고 있는 이 짧은 머리를 가지고 찌어짜지도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4절에 하나님 앞에 상황을 정직하게 말합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더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어요. 백성들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강을 치던 내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호렵산에 있는 그 반석이 거기서 너희 앞에 서 있을 것이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무엇이 나오리라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실 것이다.
여러분 저는 공학을 전공했습니다.
공학을 전공했는데 반석을 친다고 돌덩어리를 친다고 물이 나오는 법은 없어요.
전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근데 어쨌든 모세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니까 믿음의 발걸음을 옮겨서 순종해 나갑니다.
그랬더니 그곳에서 큰 물이 나와서 백성들이 그대로 마시게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이 문제에 대응하겠습니까?
백성들처럼 반응하겠습니까? 모세처럼 반응하겠습니까?
근데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예수 믿는 믿음을 가져보면요.
초신자 예수를 처음 믿는 분들은 처음 믿고 성령의 은혜를 받고 나면 나 같은 인생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들을 경험해요.
그리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면 난 이것도 할 수 있겠네.
저것도 할 수 있겠네라고 하면서 일종의 망상가처럼 나타나기도 합니다.
구름 보실 텐데 박만종 집사님라는 분이 계셨어요.
그분 참 재밌는 분이신데요.
이분 이분이 서울에서 예수를 믿고 이제 친구 따라 낙향을 해서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니까 시골에 귀촌해가지고 그렇게 이제 농사를 지으며 살겠다고 왔습니다.
낙향을 하면서 자기가 프로젝트를 내놨는데 뭘 하려고 했냐 하면은 누에 누에를 키워서 누에 똥이 뭐 약이 된다며요?
누에 똥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땅도 없는데 양잠을 하려고 하니까 누예를 먹일 뽕나무 이파리를 그 뽕잎을 약을 안 친 데를 고른다고 산 저쪽에 가서 배 와서 먹이고 부서 먹이고 누에 똥을 이만치 않은 거예요.
그래서 누에 똥을 모아가지고는 그거 갖고 뭐 하려 합니까?
이걸 가지고 화장품을 만들 수 있고 기능성 뭘 할 수 있고 이것이 당뇨에 좋고 뭐에 좋고 막 한참 설명을 해요.
그래요 전 잘 모르니까 그래요. 그랬어요. 그리고는 자기가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이건 반드시 됩니다 그러는 겁니다.
그리고는 그 누에 똥을 들고서 자기는 이마트에 정용진 회장을 찾아갈 거래요.
그래가지고는 정용진 회장을 찾아가가지고는 누에 떡으로 만든 기능성 화장품을 거기다 납품을 할 거라고 그럽니다.
신앙을 가진 지 얼마 안 돼서 아 저러는가 보다 싶은데 이게 참 난감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자기 안에 하나님 계신 거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맞잖아요. 여러분 안에 계십니까?
안 계십니까? 계시잖아요. 저 안에도 계시잖아요.
그런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저 누엣돈 가지고 기능성 화장품 만들어서 부자가 되겠다고 하는 그의 꿈이 도대체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그분은 계속 그걸 해나가는 거예요.
결론적으로 잘 됐을까요? 안 됐을까요? 그걸 포기하는 데 한 3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러다가 노예 한 마리씩 한 마리씩 없애더니 그다음 닭을 키우다가 그럼 뭐 이제 닭 중에 그거 있지 않습니까?
뭡니까?
토종닭보다 좀 작은 닭 까만 닭 오골계 오골계를 키워서 재기를 해볼 거라고 알고 봤더니 이분이요 사업하다가 IMF때 쫄딱 말아먹고 절에 가서 10몇 년을 지냈어요.
십몇 년을 지내다가 이것도 아닌가 보다 하는데 전도를 당해서 교회를 왔습니다.
그리고 이게 진리구나라고 깨닫고서 예수를 믿는데 10몇 년 동안 허송세월하면서 예수님 바깥에 잃어버린 게 너무 많아 예수를 믿고 난 뒤에 잃어버렸던 그 모든 것들을 예수님한테 다 되찾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되찾고 싶은 그 열망이 너무나 크니까 자기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가 오면은 이것에 하나님이 함께 저것에 하나님 함께해 주세요.
막 그러면서 엄벙덤벙 그렇게 인생을 보내더라고요.
근데 여러분 어떻습니까? 예수를 처음 믿을 때 내 안에 하나님이 와 계시잖아요.
세상을 창조한 그분이 와 계시잖아요.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잖아요.
그것도 사랑이 얼마나 지나친지 아들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시는 것을 경험했지 않습니까?
그분이 우리 와 있잖아요. 그러면 망가진 내 인생도 좀 그분이 이렇게 세워주면 좋겠다라고 하는 열망을 누구나 가질 수 있다 없다 있죠.
인생 대박을 누구나 꿈꿀 수 있지요. 그분은 그렇게 인생 대박을 꿈꾸는데 그것이 안 된다라는 것을 깨닫고 내려놓는 때까지 한 3년의 시간을 이렇게 보냈어요.
그리고는 하나님이 그저 먹고 살 길을 여셔서 밥 먹고 삽니다.
지금도 그분 곁에 계세요. 여러분 신앙생활을 처음 할 때에는 어떤 사람들은 마치 가대망성처럼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이 믿음을 갖는데 마치 과대망상처럼 또 어떤 사람들은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이 그들 중에 함께 계시는데 지금 목말라 죽어가는 처지에서 반석에서 물을 내실 수 있다.
없다 없다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없다라고 생각하시니까 하니까 그들의 감정, 그들의 이성 따라서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마지막에 뭘 들 수 있다 돌을 드는 상황까지 지금 가 있는 겁니다.
네 하나님은 그분에게 인생 대박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주실 수도 있잖아요.
허락치 않으시는 거지 왜요? 왜 안 주시겠어요? 왜 안 주시냐 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안에서 줄 수 있는 것을 주시거든요.
그분에게 그 예수 믿은 지 얼마 안 된 그분에게 그 대박을 주시면 신앙의 왜곡된 삶에서 완전히 이상해지니까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는 것이죠.
한번 따라 합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합니다.
모든 것이 가해요.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주지 않아요.
할렐루야. 그런데 모든 것을 다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경험하면서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너무 작게 보는 눈이 우리에게 형성되기가 쉽습니다.
특히 예수님 안에서 인생의 어려운 고비를 지나온 사람들이요.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그런 모습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에서 무리 없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면 할 수 있다 하는 이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들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보려 하다가 답을 해결책을 찾지 못하니까 돌을 들고 원망 불평하는 사람으로 나타났어요.
그런 중에서도 인생에 살아가는 방법이 다른 분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사람 모세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사람 모세입니다. 그 사람은 기도로 풀어가는 것들이 인생이 어떻게 되는지를 몸으로 경험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적용하기 시작합니다. 무리 없는 그 상황 속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했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지팡이를 들고 반석을 치라고 하니까 쳤습니다.
쳤더니 그 반석에서 물이 콸콸콸콸 흘러나와서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다 그 목마름에서 해갈할 수 있는 은혜를 얻었어요.
그다음 사건입니다. 그다음 사건 또 다른 사건이 펼쳐지는데 이 사건 때는 아말렉이 쳐들어왔습니다.
무리 없는 사건과 아말렉이 쳐들어온 사건은 종류는 다르지만은 위기가 닥친 것은 똑같아요.
그런데 아말렉이 쳐들어왔을 때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한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들을 해나가기 시작합니다.
할렐루야 믿음으로 반응하면서 해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랬더니 모세의 말을 따라서 여호수아와 주의 백성들은 군대를 조직해서 산 밑에서 전투를 치르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위에서 손을 들고서 여호와께 기도하는 것으로 기도의 전쟁과 눈에 보이는 전쟁이 함께 두 가지가 어우러지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 위기 상황을 극복해내기 시작합니다.
종류는 다른 위기예요. 하지만 인생을 사는 법들을 믿음으로 사는 법들을 그들은 이렇게 배워가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 은혜가 풀어지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에요.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서 아들까지 내어주신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그분이 전능하신 분이세요.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세요.
그리고 우리를 해 너무 사랑해서 아들을 내어주셨고, 그 아들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생명보다 더한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셔서 천국 백성 삼아주셨어요.
그런데 천국 백성 된 저와 여러분들은 우리 인생을 좀 긴 인생을 살아갑니다.
예수 믿고 그다음 날 천국 가는 게 아니고 우리의 남은 인생을 좀 긴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 생을 살아가는 중에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달아야 돼요.
한번 따라 합시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하신다. 이거 정말 믿어야 된다.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하신다. 두 번째 따라합시다.
나는 사는 법이 다르다. 인생을 사는 법이 다르다는 겁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님이 친구의 장례식에 가서 조문을 하는데 그 제자들이 여럿 있으니까 제자들이 이 80 몇 세에 돌아가신 어르신 보고 아이고 장수하셨습니다.
이러면서 그러고는 선생님 이상재 선생님에게 묻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몇 살까지 살고 싶습니까라고 물어요.
그랬더니 이상재 선생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들아 자녀들 사는 법을 몰라. 나는 영원히 살 거야.
할렐루야. 우리는 천국 백성이기 때문에 영원히 사는 은혜를 받았어요.
그런데 영원히 사는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이 땅을 살아가는 중에 세상 속에 살지만은 세상과 다른 방법으로 살아내는 자기 나름의 은혜 아래 살아내는 자기 나름의 비법들을 터득해야만 합니다.
그럴 때 그 속에서 승리하는 생활을 살아낼 수 있는 은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홍해를 지났습니다. 놀라운 이적을 경험했습니다.
마라엘과 쓴물이 단물이라는 이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몸으로 배운 이적바킷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그들의 삶을 도우신 하나님의 역사, 이것들을 몸으로 경험한 것들을 적용하지 않으면은 그들은 물이 없는 곳에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아말레가 전쟁이 났을 때도 똑같은 방법으로 대응하면은 우리가 지금 무기가 어디 있냔 말이야.
이 전쟁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면서 막 답을 찾아내는데 답을 찾아내지 못하면 양분돼서 이렇콩저렇콩 하면서 자기들끼리 내곤인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사는 법을 그들이 터득했더니 하나님께서 그 일들 속에서 날마다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되게 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 은혜가 풀어지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돼요. 그게 배워지면요.
배워지면 찬양할까요?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요? 우리 예수 믿는다고 해서 안 믿는 사람하고 다른 일을 만나는 게 아니라 여전히 살아가야 될 삶의 문제는 누구나 다 무거워요.
자식 문제 있고요. 건강 문제 있고요. 그리고 막 불면의 밤을 보낼 수 있고요.
누구나 다 무서운 일을 만나요.
그런데 무슨 일을 만나는데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운 사람들은 그 일들 속에서 믿음 안에서 풀어가는 때로는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기도 하고, 믿음 안에 뚫고 나갈 수 있는 강력한 돌파를 주시기도 하고, 믿음 안에 살아갈 때 하나님의 만남의 축복을 위해서 다른 길을 열어주기도 하고, 그러면서 믿음으로 사는 자는 무엇을 받는다 옆 사람 축복합시다.
하늘 위로 봤습니다. 하늘 위로 봤는데 그 상황에 딱 맞습니다.
여러 이거 배우는 사람이 가정 안에 한 명 있으면 그 가정 다 삽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이 쳐들어봤을 때 다들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근데 그 전장에 형님들이 전투에 참여했으니까 막내 동생이 도시락을 들고서 그 위문 공연 갑니다.
위문 공연 가서 보니까 골리앗이 나와서 나와라 외치는데 다들 쪼그라들어 가지고 돌 굴 속에 숨어 있습니다.
나하고 싸워볼 사람 나와라 이러는데 다들 도망가 숨어 있어요.
근데 인생에 사는 법을 다르게 배운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다윗입니다. 다윗이 그 당시에 물맷돌을 던지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맷돌을 던지는 것은 고대 전투에서 통용되는 전투법이에요.
고무줄 기다가 가죽 줄에다가 돌 걸어가지고 휙 던져가지고 던지는 거는 고대 전투법이 지금 한 가지입니다.
누구나 다 했던 거예요. 물맷돌 던지는 원뚱땡이 같은 사람도 있고 박은희 같은 사람도 있고 뭐 사람도 있고 다 있습니다.
다윗만 물맷돌을 던진 게 아니에요. 다윗은 근데 그 다른 사람과 차이점이 뭐냐 사무엘을 통해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면서 성령님의 능력이 그와 함께하는 것들을 몸으로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그와 함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임지 안에서 그가 그도 돌멩이 들어서 늑대나 영우나 사자가 달려들 때 양대를 지키기 위해서 사용했지 한 번도 전투에는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가 세상과 다른 방법으로 물맷돌 들고 전장에 나갑니다.
근데 놀라운 것은 그 믿음으로 나가는 그 다윗의 발걸음을 하나님이 함께해 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물맷돌을 던져서 휙휙 던져서 던지는데, 그 물맷돌이 적장 골리앗의 이마에 박혀 그 전투에서 승리해 되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현대 사회를 살아갑니다. 수많은 문제들 속에 살아가요.
그리고 고대에는 없던 세계가 하나 더 있는데, 가상 세계, 고대에는 없었던 세계가 또 하나 더 있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아는 땅덩어리 내에서 우리가 보는 세계가 다였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유기적으로 얽혀져 돌아가면서 세상이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 머리로 생각하는 변수와 전혀 다른 변수가 툭 들어닥쳐서 그냥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계에도 여전히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그 하나님과 함께 사는 법을 터득한 사람들은 그 일들 속에서 문제를 적시합니다.
상황을 파악합니다. 현실을 분석합니다. 물론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믿음의 열쇠라고 하는 것들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저와 여러분에게 모두 다 주어졌습니다.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모두가 다 주어져 있습니다.
이것을 내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열리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고 막히기도 하고 풀어지기도 하는 은혜들이 이 길에 있습니다.
이 키를 사용하기 위해서 우리는 몇 가지 해야 됩니다.
첫 번째 해야 될 것은 따라가서 임재를 회복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은혜를 회복해야 된다는 은혜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는 지금 성령님의 임재에 늘 있던 사람이에요.
그래서 원망 불평하는데 그냥 하나님 바로바로 기도하면 돼요.
우리는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리 떼가 묻고 저리 떼가 묻어가지고요.
그래가지고는 앞길이 막막한 사람입니다. 그리고는 길이 막혔습니다.
그런 분들은 뭐부터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는 것부터 해야 됩니다.
은혜를 회복하기 위해서 기도하러 가봅니다.
기도하러 가면 어떤 때는 하나님이 회개하라고 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기도를 좀 더 하라고 할 때도 있고요.
어떤 때는 자신이 살아온 삶들을 이렇게 돌아보기도 합니다.
임재를 이렇게 회복하고 나면 그다음은요. 회복하고 나면 하나님이 그 일에 대해서 말씀하시기 시작해요.
뭐 하기 시작한다고요?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라고 압니다. 음성 듣기는 정말 귀로 듣듯이 듣는 사람도 있고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했는데 가짜 음성을 듣고서 귀신한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듣고서 엉망진창하는 사람도 있어요.
근데요 정말 하나님의 인재를 회복 하면 하나님이 어떤 수를 쓰든지 말씀하십니다.
어떤 수를 써서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성경 한 장 읽다가도 퍽 깨달아지기도 하고요.
때로는 전혀 들을 귀가 없으면 그냥 기도하고 푹 잤는데 자는 중에 꿈으로도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어쨌든 어떤 수를 써서도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 들었을 때 그때부터는 순종하며 나가야 돼요.
순종하며 나가면 하나님이 그 속에서 길을 열어서 나가야 그러면서 우리는 뭐 배우냐 따라 합시다.
믿음으로 사는 법,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웁니다.
그걸 배우는 게 광야 생활이에요. 다 배워지면요.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이런 위기 상황을 주지 않아요.
그들이 농사 짓는 것을 먹고 살고요. 그들이 수고한 것을 거둡니다.
그때는 바르게 살아요. 그때는 어떻게 사느냐? 따라갑시다.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십니다. 그때부터는 내 인생의 가나 일을 주실 때부터는요.
그때부터는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가지고서 인생을 살아가는 법들을 직장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신 은혜 아래서 그 직장생활을 어떻게 극복하고 끌어가는지 이런 거 배웁니다.
세상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들을 터득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일구어 갑니다.
광야에서는요. 찬송 하나 딱 맞습니다. 주만 바라볼지라 의지할 사람 하나도 없고요.
바라볼 사람 하나도 없고 다 끊어놔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누구만 바라보게, 주님만 바라보게 주님만 바라보게 하신 그 정신을 가지고서 내게 일상의 삶을 주셔도 그 속에서 주님 바라보고서 쭉 가는 거예요.
그게 가나안 땅의 삶이에요. 둘 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우리의 남은 인생 살아가는 중에 믿음으로 살아가는 중에 하나님이 늘 함께하시는 은혜가 충만하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 승리하는 법들을, 그리스도 안에 열매를 취하는 법들을,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인생을 살아내는 법들을 깨달아지고 배워지고 알아지고, 그 속에서 복된 열매를 맺어가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모세는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배운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이 믿음 우리가 가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남은 인생을 믿음으로 살아내며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가는 은혜가 있게 축복하여 주옵소서 세상이 녹록지 않다는 것들을 지나간 성을 통해서 많이도 배웠습니다.
그 배운 인생 안에서 낙망하거나 지치거나 원망하지 아니하고 믿음 안에서 살아내는 것들을 터덕해가면서 우리의 남은 인생 복으로 세워가는 열매 맺는 생이 되게 하나님 주장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한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함께해 주시기 원합니다.
지금은 우리 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우리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성령, 하나님의 내주 교통 역사 충만하신 역사가 오늘 믿음으로 이 말씀을 붙들고 우리의 남은 인생을 믿음으로 살아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로 나타나기를 소망하는 우리 내 남자의 모든 성도들 위에, 가정과 삶과 자녀 손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계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출17장 8-16 그리스도인의 승리공식 원주희목사
하나님 말씀 보겠습니다. 초록굽기 17장 8절로 16절까지.
말씀. 그때 아말레에게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람과 홀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멜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고 나에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어른과 홀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소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에게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 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하게 하리라.
모세가 재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이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아멘 6.25 전쟁이 끝나고 이렇게 긴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데요.
아직도 우리 분단 국가, 전 세계 유일하게 분단국가로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빨리 끝나고 한반도에 평화가 오기를 소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이 광야에서 나와서 처음으로 전쟁이라는 것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로비에 이르렀을 때 물이 없었고 물 때문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샘물이 터지게 되었어요.
샘물이 감사한데 금을 많이 마시고 있다 보니까 아말렉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가지고 온 검은 보석을 또 훔치려고 또 그 생물이 탐났는지 모르겠지만은 이스라엘 백성 침공에 들어온 것입니다.
졸지에 전쟁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된통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아말렉 사람들은 저기 봐라 말이에요.
무장도 안 돼 있고, 저 사람들 그냥 식은 죽 먹기도 하고 그렇게 달려든 것입니다.
근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아말렉과 다른 또 다른 무기가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도 다른 무기가 뭡니까? 그건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이 생을 살아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우리 인생을 살아가는 자원들이 있는데, 재능이 있는 사람도 있고 또 힘이 있는 사람도 있고, 젊은 게 힘 있는 사람도 있고요.
공부 많이 한 것 힘있는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자기 힘으로 살아냅니다.
사람마다 사는 법이 다들 다르잖아요. 친구들 만나서 다 왜 저래 사노 그러면 옆에 친구가 그러더라고 놔둬라 가가 사는 방법이다 합시다.
사람마다 자기들대로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고, 자기 수가 다 다른 거지요.
내 식구로 살 필요는 없는 거지요.
근데 좀 그러긴 하더라고. 인생 좀 얍삽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와 저래서 사노. 그러니까 옆에 친구 그러대요. 놔둬라.
지도 지대로 사는 방법이다. 어쨌든 자기들 나름대로 살아남는 방법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대체 살아낼 수 있는 힘이 없는 민족, 군사적으로 아무런 무장이 되어 있지 않는 애굽에서 노예살이 하다가 이제 겨우 나와가지고 광야 생활한 지 몇 달 된 사람들.
그런데 그들이 그들에게 또 다른 무기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능력을 어떻게 끌어낼 수 있느냐 그 능력을 어떻게 덧입을 수 있느냐 그게 이스라엘 백성의 인생의 큰 승부가 되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들도 동일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 땅을 살아가는 데도 동일한 문제가 생깁니다.
세상에 여러 번 부딪혀 보면 뭐 느낍니까? 젊은 날 공부 좀 더 해놨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생각 들지 하다못해 기술이라도 배워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생각 들지요.
사람마다 저마다 그의 인생을 살아내는 방법들이 다들 다른 거지요.
그런데 저와 여러분들에게 동일하게 또 하나의 능력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능력을 그들이 끄집어낼 수 있느냐 끄집어낼 수 없느냐 그 차이는요.
따라서 내 힘으로 싸우느냐 하나님의 능력으로 싸우느냐 여러분 내 힘으로 싸우는 것도 꽤나 힘이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 보면 하나님이 거기 성령을 네 가지 모습으로 나타내 주시거든.
첫 번째 성령은 사람 속에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다가 생기를 확 불어넣으시면서 성령을 주셨어요.
그게 루하흐라고 해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에요.
어디 거하시는 성령은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두 번째 성령은요.
경작할 사람이 없을 때 하나님은 땅에서 안개만 올라왔다 그랬어요.
뭐만 올라왔다고요? 안개 안개도 물은 물입니다.
미약하지만 그 안개에 의탁하여서 살아가는 것들이 있는데 에덴 동산에서는 안개만 올라왔고 그래서 땅에는 이끼들만 있었다 그랬어요.
근데요. 그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생기를 받은 그 사람이 하나님이 간구하기 시작했더니 하늘 위에서부터 그 큰 비가 내려오는 거예요.
할렐루야 위로부터 큰 은혜의 단비가 내려옵니다.
그게 따라합시다. 강력한 성령 강력하게 은혜의 단비가 쏟아지면서 성령이 임하는 그랬더니요.
안개만 올라올 때는 그냥 있기만 있고 그랬는데 그 이기 먹고 사는 짐승들이 조금 뜯어먹고 살겠지만은 큰 도움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은혜의 단비가 쏟아지니까 그 은혜의 단비가 에덴 동산 사면으로 흘러갑니다.
그리고 강들이 만들어지면서 유보라데 강이 만들어지고 히데겔 강이 만들어지고요.
그렇게 큰 강들이 이루어지면서 거기에 따라 역사하는 성령, 역사하는 성령이 에덴 동산 두 가지 모습인데 하나는 안개 또 하나는 큰 강이에요.
저와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서 큰 강 같은 성령의 역사가 함께하는 은혜가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큰 은혜의 강의 역사하면요.
내 재주는 조금밖에 안 드는데도 하나님이 강력하게 밀어주신 은혜 안에서 인생을 열어주는 역사도 나타나고 새로운 민족의 역사도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나와서 군사적으로 무기도 준비도 안 돼 있고, 아무런 훈련도 안 돼 있고, 무기도 없고 훈련도 안 돼 있는 그 사람들에게 아말렉이 닥쳤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어떻게 끌어내야 되는지를 찾아내었고 그것으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분업하시 나누는 겁니다. 모세와 아론과 홀은 산 위에 올라가서 손을 들고서 뭐 하고요?
기도하고 산 밑에 있는 여호수아는요. 싸움을 합니다.
여호수아가 무기가 변별했습니까? 크게 준비되지 않은 무기 그냥 집에 쓰던 낯 들고서 삽들고서 삽 들고서 그래 나가는 겁니다.
그에 비해서 아말렉 군대는 요즘 말로 하면 따발총 들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쟁에서 하나님이 성리케 하시는 은혜를 주셨어요.
할렐루야.
그리고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계속해서 동일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고비고비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인도하시고, 근데 그 능력을 구하지 않으면 그 능력을 더 믿지 않으면 천하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하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시리아에게 멸망을 당해버려요.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해버립니다. 왜요? 하나님의 능력이 떠나가 버리면 그들은 그들의 힘으로 싸워야 되는데, 그들의 힘든 힘으로 부딪힐 때 바벨론은 어떻게 이깁니까?
아스리아 그 초강대국을 어떻게 이깁니까? 감당이 불감당인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멸망의 역사를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비고비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구해서 그 능력을 덧입으면 덧입으면 하나님의 능력은 인생을 새롭게 사는 능력이 되고 전투에 승리하는 힘이 되어지는 은혜가 그렇게 부어졌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안타까운 시기가 몇 가지 있는데 사사기 시대입니다.
사사기 시대를 보면 대혼란이 펼쳐져요. 가나안 땅을 그렇게 정복하고서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와서 그걸로 이겨내고 승리했던 주의 백성들이 주변의 이민족으로부터 계속 침입을 당하거든요.
사사의 대혼란의 때가 왜 혼란스러워지냐? 여러분 가난을 정복해 갈 때는 주의 백성들은 광야를 지나온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따라서 모두가 기도의 사람이고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선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두가 주의 백성들이고 모두가 기도의 사람들이고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선 사람들이었어요.
그랬더니 하나님의 능력이 전적으로 이스라엘을 덮어서 가나의 31개의 성도를 그냥 일시에 정복해버리고 승리를 차지하게 하셨어요.
근데 정착하고 나니까 배에 기름기가 좀 끼고 나니까 자기 땅이 좀 생기고 나니까 기도했던 사람들이 다 어디 갔는지 사라지고 없어요.
어디 갔냐? 밭에 가서 김내야지요.
토마토 밭에도 토마토 따고 장사하고 돈 벌어 먹고 살아야지요.
그래서 다들 사라지고 없는 거예요. 모세가 이걸 예견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레위 지파 12지파 중에서 한 지파를 따로 떼가지고 기도하는 지파를 세웁니다.
제사는 12지파 중에서 레위 지파 중에서 아론의 가문만 딱 맡겨 놨어요.
근데도 아론 가문 외에 나머지 레비 지퍼 전체를 기도하는 지하로 따로 세워놨어요.
그리고 그 레위지파에게는 분기도 주지 않았습니다.
땅도 안 줬어요. 땅도 안 주고 뭐 먹고 사라고요? 남들 다 경작할 땅을 주는데 레위 지파는 땅도 안 줬어요.
뭐 먹고 살려고 권영란 곳을 헌금한 걸로 먹고 살려고 유옥지 장로님 헌금한 걸로 먹고 살려고 12지파가 11조 한 걸 가지고서 한 지파가 먹고 살려고 밥 먹고 살려고 그냥 세워놨습니까?
그 나름의 할 일이 있었겠습니까? 그 나름이 할 일이 있으니까 그렇게 한 지파를 구별한 거예요.
그 지파가 뭐 하는 지하냐 따라서 중보의 군대입니다.
레위 지파를 따로 떼서 중부의 군대를 삼아놓은 거예요.
모두가 다 기도의 사람이고 모두가 다 전투하는 사람이었는데, 정복이 끝나고 난 뒤에는 분노하드에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특별히 중보자로 따로 구분해서 영적인 삶들을 추구해 가고 기도의 용서로 세우는 다른 지파를 뗀 거예요.
근데 사사의 시대를 보면요. 백성은 백성대로 흐트러져 버리고 백성이 흐트러지니까 십일조 생활 했겠다 안 했겠다 거꾸로 왜 10개 중 1개를 떼갖고 잘 줍니까?
권용락 부사 맞지 내도 야 거꾸로 10개 다 묻어도 못 내는 판인데 왜 그걸 떼가지고 레위 지발을 따로 떼주냔 말이야 자기들 뭐 한다꼬 그래 11조 생활이 흐트러지고 레위 지파도 흐트러지니까 땅은 없지 밥은 먹고 살아야 되죠.
그거 뭐 했겠습니까? 레비 지파는요 그러면 상업하는 거예요.
장사하는 거죠. 그런 식으로 레위 지파가 흐트러지고 죄의 백성도 흐트러집니다.
그러면서 사사기 시대에 대혼란이 오기 시작해 왜요?
따라서 영혼과 육체가 균형이 무너졌습니다. 영육간의 균형이 무너져 버리면은 오늘 좋은 것 같은데도 그냥 무너져버려 왜요?
하나님의 백성들의 승리 곡식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서 하나님이 주는 축복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건데,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무너지니까 그냥 그의 삶에서 살림의 자리에서 무너지는 것을 걷잡을 수가 없는 거예요.
만약 저와 여러분이 그런 인생을 산다면 마치 이런 것 같습니다.
밑에 돌 빼서 위에 돌 맞고 위에 돌 빼서 밑에 돌 맞고 언제까지 이 짓해야 되나 그렇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의 승리 공식이 바뀌어지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게 그 혼란의 때를 바꾼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다윗 왕이 등장했을 때입니다.
다윗왕이 등장해서 기도의 사람들을 따로 뺍니다.
레비 지파를 따로 빼서 24개의 반찬을 정해서 24시간 동안 기도하고 간구하는 그 집들을 세우고 장막을 세우고 거기서 간구하고 불철 주여 기도하게 하고, 나머지 주의 백성들은 말씀을 지키며 믿음의 정도를 걷게 그렇게 지도하는 거 그랬더니 다윗의 시대가 이스라엘 백성 역사에서 가장 번성의 때로 주어지게 되었어요.
후대의 임금들이 어려울 때마다 다윗의 때가 오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정작 다윗이 세워놓은 국가 시스템을 따라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왜요?
그러려면 하나님 앞에서는 한 지파를 따로 떼야 되거든 그들을 먹여살릴 문제를 해결해야 되고요.
그렇게 인생을 드리는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야 되는데, 그거는 안 하고 그 열매를 좋아가지고 다윗의 떼를 사모 다윗의 왕이 오기로 하고 다윗의 후손이 오기를 원하는데, 정작 아무도 다윗이 세운 국가 시스템을 따라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북이스라엘이 멸망을 당하고 남유다가 멸망을 당하고 역사는 흘러흘러왔습니다.
우리나라는 1905년에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고서 민족의 역사가 복음과 함께 함께 굴러왔어요.
할렐루야 복음과 함께 굴러왔습니다. 외정치아의 반달이라는 노래는 이렇게 나가지 않습니까?
푸른 하늘, 은하소 하얀 촛 개소나무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도대도 하니 달고 사태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소종하라로 여러분 왜 반달이라는 노래가 왜 정치화에 이 동요가 불려졌냐 하면요.
이 1절 가사가 민족 처지와 똑같았거든 돛대라도 있어야지 어디 갈 거 아닙니까?
살 때라도 있어야지 뭐 저 갈 거 아닙니까? 나라는 빼앗겼고 일제가 얼마나 강했는지 중국과 싸워서 맞장 뜨는데 중국이 계속 밀립니다.
중국 잡아 먹는 나라를 우리가 어떻게 이깁니까? 독립운동하는 사람들이요.
일제가 상하이를 먹어 채울 때 많이 변절했습니다.
왜 더 이상 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우리는 도대도 없었고 사태도 없어요.
근데 저 달은 보니까 반다은 보니까 토대도 없는데 삿대도 없는데 그의 목적지를 향해서 서쪽 하늘을 향해서 가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도 토대 없어도 사떼 없어도 가기를 바란다는 고백으로 이 1절에 가사는 돼 있고 2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 나 라로 구름 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빛이 히는 건 새 별이 등대란다.
귀를 찾아라. 은하수 건너서 구름 나라로 구름 나라 지나서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는 것.
새별 아침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금성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그 샛별이 등대가 되어주니까 그걸 보고서 길을 찾아라는 거.
그 새피는 누구를 말아 간대예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거 세상 어디에도 길을 안내해줄 사람이 없고 그런데 예수님의 길이니까 예수님 안에서 길을 좀 찾았으면 좋겠다라는 염원을 담아서 그렇게 찬양하고 노래했습니다.
그렇게 민족의 굴곡된 역사와 왜정 치하와 6.25 전쟁과 인생의 고비 고비들 속에서 이민족이 해치고 해치고 해치고 오면서 이 민족이 세 가지 큰 축복을 받았어요.
하나는 복음화의 축복입니다. 무슨 축복이요? 이 민족의 교회들 교회들마다 교회가 없는 데가 없어요.
마을마다 구릉포드 13개 교회가 있습니다. 복음화에 큰 축복이 있고요.
산마다 기도원을 세워서 간구하고 기도하며 주의 얼굴을 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일어났을거요.
그렇게 기도했고 그들께 간구하고 민족을 구원하는 일에 앞장섰더니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이 민족 가운데서 산업화의 축복을 줬습니다.
무슨 축복이요? 산업화에 축복을 줬어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줬어.
보리고에 못 넘기는 민족 안에 하나님께서 밥 먹고 사는 은혜를 줬습니다.
여러분 맨날 잔칫탕 먹죠. 이 밥에 고기국만 먹어도 좋았겠다 했던 사람들이요.
그게 능가해서 요즘은요.
소스가 얼마나 많은지 서양 소스부터 해서 베트남 소스, 인도 소스까지 온갖 걸 다 번복을 해가지고 그렇게 먹는 그런 부유한 나라의 축복에 이르게 하셨어요.
그리고 이 산업화의 축복에 하나님 하나 더 해서 민주화의 복도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대한민국의 산업화가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 독재 모델이거든.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 독재 모델을 뺏겨간 나라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 성공한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가 중국입니다.
중국이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모델을 뺏겨 갔습니다.
독재를 해도 국민들 밥 먹고 살게 하니까 정권이 유지되더라.
공산주의 정권이 우리 독재 공산당 1당 독재를 하더라도 백성들 밥 먹고 살게 하면 공산당 독재가 유지될 거다.
그래 해가지고는요. 박정희 대통령 시 개발 독재 모델을 뺏겨가가지고요.
중국이 잘 살게 됐어요. 근데 중국이 못한 거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화가 안 되어 있고 뭐가 안 되어 있고 복음화가 안 돼 있으니까 사람에 대한 인격에 대한 존엄함이 없고요.
복음화가 안 돼 있으니까 가진 돈들을 가지고 나누는 것도 안 돼 있고요.
민주화가 안 되는 거예요. 그게 중국의 문제지요.
이 나라는요. 복음화, 산업화, 민주화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큰 축복 안에 지금 서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또 다른 위기 안에 서 있습니다.
세계 질서가 지금 바뀌고 있어요. 정치 지형이 바뀌고 있습니다.
텔레비에 늘 나오지요. 미국과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게 정치 문제와 외교 문제와 경제 문제가 맞물려가지고 앞으로 시대가 어떻게 굴러갈지 모르는 위기의 상황 안에 서 있습니다.
근데 우리는 지금 돛대도 있고 삿대도 있어요. 도떼 있고 사떼 있습니다.
실탄도 있고요. 돈도 있고 달러도 있고요. 기술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어디로 가야 될지를 모른다는 겁니다.
새빛이 등대가 되어서 기름 비추어줘야 되는데 민족의 교회들이 잠자고 있다고요.
나 같은 목사들이 자고 있다고요. 교회 장로님 그 사람들이 자고 있다고요.
산마다 기도원 세워놓고 눈물로 기도했던 하나님의 사람들이 사라지고 없어요.
기도원 속된 말로 장사로 말한다면 장사되는 기도원이 별로 없습니다.
매물로 내놓은 기도원들이요. 포항에만 해도요.
베델 기도원 나와 있고요. 천재단 기도 나와 있고, 봉사단 기도 3대 기도원 다 매물로 나와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사는데 20억 달라 합니다. 배달 기도
그거 살려는 사람들이요. 사가지고 기도 하려고 안 살려 그래요.
베델 기도원 사서 요양원 지어볼까 해서 살라 합니다.
시대가 너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성공방정식은 늘 동일합니다.
기도의 역사와 현실에서 수고하는 사람이 맞물리면서 산 위에서 기도하는 사람과 산밑에 뛰어드는 사람이 연합해서 하나님의 일들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이 축이 지금 무너져 있는 것. 기도하는 모세와 요 모세와 아덴과 호의 기도와 산 밑에서 싸우는 여호수아가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그 공식이 무너져 있는 거야.
이게 무너져 있습니다. 심지어는 기도하는 사람과 열심히 산 밑에서 수고하는 사람을 사단은 분리시켜 놓습니다.
성광교의 비극이 뭡니까? 주님께 나눠질 때 주님께로 가신 분들은 젊은 분들이시고 여호수와 같은 사람이라면 요 성광교회에 남은 분들은 묵은지기들은 기도의 사람들이 남았잖아요.
열심히 기도해서 세 가지 오이 없게 하고 열매 맺어야 될 그 사람들이 저기 나가버렸어요.
기도로 밀어주니 나가신 분들은 열매 못 맺고 여기 윗뚱치가 잘린 사람들 남아서 그냥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신세가 되어버렸잖아요.
여러분 하나님이 그때도 지금이나 하나님이 일하시는 공식은 동일합니다.
이 공식 안에서 교회가 민족을 짊어지고 갈 수 있느냐 없느냐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소아시아의 복음이 들어와서 소아시아 전체의 에베소를 중심으로 해서 복음의 역사가 풀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복음이 풀어진 소아시아가 지금 다 이슬람의 발꼽 안에 있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축복받은 건 좋은데, 하나님 앞에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된 것은 너무 감사한데, 그 특기 땅에 얼마나 좋은 대리석이 많은지요 그게 하나님이 얼마나 큰 부유함을 주셨는지요?
그렇게 많은 것을 누리게 되면 좋은데 성공 방정식을 잃어버린 거예요.
성공 방정식 잃어버린 거예요. 하나님 앞에 서는 것과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 어우러지면서 인생은 성공하는 겁니다.
민족도 그렇게 되는 것이고 교회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근데 이 밸런스가 무너져 버리면요. 열심히 수고하는 것들이 헛된 수고가 되기 십상입니다.
폭포수와 같은 은혜의 단비가 내려와야 될 때에 안개만 올라와서 그냥 있기만 하는 정도에서 건 건건이 그렇게 살아가는 그런 처지에 떨어지고 말아요.
러시아의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날 때 공산혁명이 일어날 때 러시아의 교회가 얼마나 번성했는지 압니까?
전 국민의 90%가 복음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90%가 그리스도 교회를 다니는데 그 교회가 민족을 짊어지고 가지 못했다고요?
우리도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크게는 민족이고 작게는 여러분의 가정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균형이 무너진 속에서 하나님 앞에 소중한 열매를 기대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겁니다.
여러분의 가정 안에서 기도에 사람이 있습니까? 적어도 한 명 중보자가 있으면 저는 그 과정에 하나님의 새로운 우물을 돕게 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런데요.
그게 무너지면요. 오늘 좋아 보이는 것들이 내일 아무 소용 없는 그런 현실 가운데 전락하기가 십상입니다.
왜요? 역사가 그리 말해 왔으니까 역사가 그래 말해왔으니까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는 사는 방법은 뭡니까?
여러분의 성리 공식은 뭡니까? 재주를 많이 쌓는 겁니까?
돈을 많이 버는 겁니까? 인맥을 많이 닦아놓는 겁니까?
피묻은 십자가 앞에 한 번도 서지 않고서 하나님 앞에 믿음의 길을 걸어가지 않고서 쌓아오는 모든 것들은 사상누각이라 그러지 모래 위에다 집을 지어놓는 것과 비슷해지는 특별히 우리는 지금 중요한 위기에 서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당장 압박이 들어옵니다. 기름값 계속 올라갑니다.
밀가루 값 올라갑니다. 옥수수, 식용유 값 올라갑니다.
좀 있으면 돼지고기값 올라갈 겁니다. 닭고기값 올라갔습니다.
여러분 인도에서 밀수출 금지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팝 팝류 수출 금지했습니다.
전 세계가 지금 요동치고 있어요. 새로운 질서 속에 들어가는 질서 속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될지 요동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서 여러분 경상도는 이렇게 박수 치고 있겠지만은 저는 굉장히 우려스러운 것도 많은 거예요.
왜요? 윤석열 성도는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나 지금까지 정부는요.
국방은 미국하고 경제는 중국하고 이렇게 양다리 걸치기를 했습니다.
양다리 걸치기 했는데 윤석열 성부는 경제와 국방을 몽땅 다 미국하고 같이 하겠다고 중국하고 선 그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에요. 그게요. 국제관계 안에서 이민족이 선택해야 될 선택을 한 겁니다.
그 선택에 대해서 후폭풍이 곧 몰려올 겁니다. 중국이 가만히 있지는 않겠죠.
큰 나라는 미국과 중국은 자기들끼리 이스라에서 합의 보자 하면 합의 볼 수 있어요.
근데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작은 나라는요.
그 선택 하나에 어느 줄에 섰느냐에 따라서 그에 대한 대가 지불을 해야 된다.
그게 심각한 문제입니다.
북한 핵이 문제입니까? 여러분 북한하고 우리하고 자주 국방하면은 그거 토털의 기적이 한 때 1960년대 70년대 80년대였습니다.
여러분 북한하고 맞장뜨면요. 재래식 무기로 따지면 우리가 이겨요.
그런데요. 우리는 지금 더 큰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와 부딪히는 그런 상황 안에서 선택해야 되고 그 선택을 우리는 선택을 했어요.
그 선택에 대해서 대가 지불이 이제 곧 닥쳐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근데 감사한 것은 이 민족의 도떼가 있는 겁니다. 이 사태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기를 비추어지는 샛별의 역할하는 교회가 이루어야 되고 위대한 중보자를 일어서야 되는 문제에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 안에서 돈 있습니까? 축하합니다.
배운 지식인 있습니까? 축하합니다. 도떼도 있고 사태도 있으시군요.
거기에 기도의 역사가 더하여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럴 때 그 두 가지가 어우러지면서 인생을 새롭게 쓰는 은혜의 역사가 풀어지게 돼요.
그 두 가지가 어우러지자면 따로 국밥이 되면요. 이건 이거대로 아무 소용이 없고 저건 저거대로 아무 소용이 없어요.
산 위에서 올라가서 열심히 기도하는 모세에게 돌아왔어요.
돼요. 3일도 열심히 싸우고 있는 여호수아의 싸움이 헛대요.
그래서 사단은 이것을 이 안에 넣기도 해요. 저와 여러분 안에서 여러분의 가정 안에서 이것이 하나가 되어지는 아름다운 역사가 있게 되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서울에 가면 강남에 드크로스터츠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박우정 목사님이 목회하시는데요. 그 교회는 이 중보의 군대가 얼마나 소중한 줄 알아서 교회 안에서 중보자를 세워놓고 교회에서 월급을 줘요.
월급 받는 종보자들은요. 월요일부터 주일까지 토요일까지 매일 와가지고 기본 3시간 4시간 5시간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하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월급까지 줘가면서 아니요.
그만치 중요하다 생각 그리고 그렇게 중보 기도한 사람들이요.
한 주간 내 기도하는 사람들이 주일날이 되면 구역장이 돼서 반사가 돼서 교회를 섬깁니다.
교회 전체에 성령의 의사 확 일어납니다. 개척한 지 10년 됐습니다.
3천 명 모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남은 인생에 위대한 정보자로 서는 결단들이 일어나게 되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민족도 기도가 필요하고 여러분의 가정도 기도가 필요하고 교회도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함께 될 때 기도를 모르는 여러분의 자녀들 인생 안에서 새로운 우이 돋고 새로운 열매 맺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어요.
왜 영적인 균형 분업화되어서 그 축복이 여러분의 가정 안에 여러분의 삶의 자리 안에 함께하게 되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이 민족을 지금까지 이끌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산업화의 축복을 주시고 민주화의 은혜를 주셔서 사람 사는 나라 만들어주신 거 감사합니다.
주님 이 번성에 더해서 다시금 새로운 위기들 속에 잘 헤쳐가는 이민족 될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해 주시고 지도자들에게 특별히 지혜와 능력을 주시기를 소망하며 또한 우리 가정과 우리의 삶의 자리 안에서 복음 안에 승리하는 믿음의 정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하나님 역사해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중보자가 되겠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역사 안에서 우리의 자녀들을 세우고 교회를 세워가는 그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축복하여 주시고 영광 받아주옵소서 주께서 함께해 주시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지금은 우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우리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성령, 하나님의 대중교통 역사 충만하신 역사가 오늘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주님의 얼굴을 구하고, 하나님 앞에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의 균형을 꿈꾸며 그 여정을 걸어가기를 소망하는 성관계.
모든 성도들 위에, 가정과 삶의 모든 자리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계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