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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쓸모없어진 거니?
(사)한국문협밴쿠버지부회원 동화작가이정순
“끙끙!”
앓는 소리에 눈을 떴다. 사방이 깜깜했다.
“누구세요?”
“엄마야!”
“깜짝이야. 여기가 어디에요?”
“내가 어떻게 알아.”
어둠속에서 짜증이 돌아왔다. 강이 엄마가 누군가에게 쓰임이 있을 거라며 깜깜한 재활용박스에 넣은 것 밖에 나는 기억이 없다. 그리고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던 것이다.
“난 국산보온….”
“치, 재수 없게 하필이면 국산이야? 난 명품이라고!”
그 명품이라는 게 내 말꼬리를 잘랐다. 강이 반에서도 국산이라고 왕따를 당했었는데, 여기까지 와서도 업신여김을 당하다니 화가 치밀었다.
“뭐? 재수 없다고? 이게 그냥!”
나는 그 명품이라고 우쭐대는 소리 나는 쪽을 향해 손을 높이 들었다.
“명품? 무슨 명품인지 모르지만, 콧대 세워봤자 소용없어. 넌 버려 진거니까.”
“흐흑!”
내 말에 그 명품이라는 애가 울음을 터뜨렸다.
“울지 좀 마. 넌 명품이라며? 사람들은 명품이라면 껌뻑 죽잖냐.”
어쩐지 좀 불쌍한 생각이 들어 위로 같은 말을 해주었다. 그 명품이라는 애도 이곳에 들어 와서 좀 당황한 모양이다. 나도 강이를 위해 따뜻한 밥을 담을 거라는 생각에 한껏 부풀어 있었는데 이곳에 오고 보니 당황했다.
“내 주인은 지영이라고 굉장히 예뻤어.”
“어? 지영이라면 강이 반 아이였는데?”
“그래, 난 지영이 명품보온도시락었단 말이야.”
“뭐야? 지영이 도시락이라고? 그 잘 난?”
나는 그때 지영이 보온 도시락한테 왕따 당한 걸 생각하면 꿀밤이라도 한 대 먹이고 싶었다. 교실에서는 플라스틱 투명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점심시간만 되면 명품보온도시락들이 서로 뽐내느라 난리였다. 그때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었다.
‘내가 세계 최고의 명품이라고.’
‘아니야. 내가 최고라고. 내가 보온이 제일 잘 될 걸?’
‘잰 도대체 뭐야? 어디서 굴러왔어?’
그들은 나뿐만 아니라 강이를 왕따 시킨 것이다. 나는 잠깐이었지만, 강이랑 행복했던 시간이 그리웠다.
‘앗 뜨거워. 내 도시락은 국산인데도 굉장히 뜨겁다앙. 내 사랑하는 국산 보온 도시락!’
강이는 성격이 좋아 왕따를 당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런 강이가 나는 참 좋았다.
“쳇! 명품 체면에 이게 뭐야?”
“갇혀있는 주제에 무슨 체면? 국산이 얼마나 성능이 좋은지 굴러 들어온 니들은 모르지?"
“그래 봤자지. 국산인 주제에.”
“나는 국산이라서 좋아. 강이는 점심때마다 밥이 뜨겁다며 후후 불어 먹었거든!”
그 말에 명품은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입이 짧은 지영이 때문에 내겐 늘 밥이 조금 담겼어. 그나마 밥이 따뜻하지 않아 지영이는 잘 먹지 않았고.”
“뭐? 명품이 밥이 따뜻하지 않았다고? 다이어트 하느라 안 먹는 줄 알았는데?”
“읍! 아, 아냐.”
어둠 속 사물이 차츰 보였다.
“어, 보인다. 너 지영이 도시락 맞네. 아, 볼 수 있다는 게 이렇게 감사할 줄이야.”
나는 손차양을 하고 아직도 우쭐대는 지영이 도시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따뜻하지도 않았으면서 나를 왕따 시켰어?”
“그래도 명품이거든.”
나는 한심하다는 생각이들었다. 지영이는 가짜를 가지고 다닌다고 왕따 당할까 봐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명품은 자신의 체면을 지켜준 지영이가 오히려 고마웠다나.
전 세계에 코로나19 팬데믹이 왔다. 아직 덜 확산되었을 때 학교 책상에는 투명 칸막이가 쳐졌고, 학교급식실에도 칸막이가 쳐졌다. 그러다 학교 식당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번졌다는 뉴스가 나오자 급기야 급식을 중단했다. 학교에서 도시락을 싸오라는 지침이 내려졌다. 엄마들은 명품보온도시락을 사기 위해 백화점으로 몰렸다. 명품보온도시락은 불티나게 팔렸다.
“명품은 내가 마지막 한 개가 남아있었어. 거의 문 닫을 시간에 지영이 엄마, 강이엄마가 백화점에 왔었어."
“어머, 지영어머니 아니세요?”
“아, 네! 강이어머니!”
두 사람은 학교 자모회에서 만나 아는 사이였다.
“보온 도시락 사러오셨죠? 명품이 한 개 밖에 남지 않았어요."
그때 매장언니가 말했다.
한 개 남은 명품보온도시락을 지영엄마가 먼저 집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그만 진열대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이걸 어쩌나….”
매장언니가 난색을 표했다.
“제가 떨어뜨렸으니까 제가 살게요.”
‘엄마, 프랑스사 보온도시락 아니면 밥 안 싸 갈 거야.’
하나 남은 그 보온도시락이 지영이가 말하는 프랑스사 제품이었다. 강이 엄마는 국산보온도시락을 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팬데믹이 전 세계에 확산되었다. 학교와 직장까지 폐쇄되었다. 학교는 줌 수업으로 대체되었고, 직장은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당연히 도시락 쌀 일이 없어지니 보온도시락들은 찬장 구석으로 밀려나는 신세가 되었다.
극성을 부리던 팬데믹이 3년 4개월 만에 해제되었다.
“아휴! 이제 살겠다.”
찬장 속에 갇혀있던 보온도시락들은 기지개를 켰다. 따끈한 밥을 담을 기대를 하면서.
어느 날 지영이 엄마가 찬장 문을 열더니 말했단다.
“에고, 이것 사느라 고생했는데.”
지영이 엄마는 명품보온도시락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말했다.
“어? 금이 갔네?”
백화점 진열대에서 떨어질 때 미세하게 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그래서 밥이 따뜻하지 않았다고 했다. 오랫동안 갇혀 있는 바람에 그 틈이 벌어졌고.
“얼마 쓰지도 못했는데 아깝네! 아깝지만 쓸모없어 졌으니 버려야지.”
‘헉! 내가 쓸모없어졌다고?’
지영이 엄마는 금이 간 명품보온도시락을 분리수거함에 휙! 던져 버렸다.
“악!”
명품은 곤두박질쳐 기절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재활용품 박스 속에서 나를 만나게 된 것이라고 했다. 명품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이곳에 오게 된 동기가 생각났다.
“이제 도시락 쌀 일이 없어졌으니 이걸 어떡하지? 찬장만 차지하니,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게야.”
강이 엄마는 나를 분리수거함 박스에 넣었다. 그리고 까무룩 잠이 든 것이다.
“국산아, 우리는 이제 쓸모없어진 거니?”
명품이 힘없이 말했다.
“쓸모없어진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우리가 필요할 거야.”
까마득히 높은 천정 쪽에서 빛이 들어왔다.
“저기 빛이야!”
“빛이면 뭘 해! 우린 나갈 수도 없는데.”
명품이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울먹였다. 나는 강이가 읽던 라푼젤 동화책에 나오는 마법의 성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우리도 머리카락이 길면 여기를 탈출할 수 있을 텐데.’
혼자 중얼거렸다.
“라푼젤은 성에서 머리카락을 밧줄처럼 타고 내려 왔단 말이야. 우린 올라가야하는데. 꿈 깨.”
“버려진 주제에 투정 좀 하지 마.”
“답답해 죽겠단 말이야.”
“좀 참아. 꼭 필요한 사람한테 가게 해 달라고 기도나 해!”
나도 짜증이나 퉁을 주었다.
“알았어….”
명품이 힘없이 말했다.
“넌 명품이니까 나보다 더 빨리 이곳을 나갈 수 있을지 몰라.”
“금이 간 걸 누가 가지고 가. 쓰레기일 뿐인데.”
“삐뚠 생각만 안하면 다시 쓰임 받을 수 있을 거야.”
나는 그렇게 위로를 하긴 했지만 걱정이 되었다.
‘뽀드득뽀드득!’
“쉿! 누가 온다.”
그때 눈을 밟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낼부터 당신 공사장 일가야 하는데, 마법사가 우리한테 보온도시락 하나 보내주면 좋겠어요.”
“하하! 당신 동화책 좋아하더니 상상력이 최곤데.”
‘보온 도시락이 필요한 사람이 왔어.’
“보온 도시락은 아닐지라도 두툼한 재킷 하나 있으면 좋겠소. 당신 춥지 않게.”
“전 괜찮으니 당신 거라도 하나 찾으면 좋겠어요.”
두 사람 대화에 우리는 흐뭇하게 서로 바라보았다. 따뜻한 밥이 담긴 것처럼 마음이 따뜻했다.
‘우리가 저분들에게 따뜻한 점심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치?’
명품이 소망하며 말했다.
“안에 들어가 당신 재킷이 있나 찾아보겠소.”
아저씨가 펄쩍 뛰어 컨테이너 속으로 들어왔다.
‘나 떨려! 우리 헤어지면 어떡해?’
‘조금만 참고 기다려 봐. 저 사람들 눈에 띄기만 하면 우리를 구해 줄 거야. 희망을 갖자.”
명품은 아무 말이 없었다.
“용기를 가져. 넌 명품이잖아.”
“나 명품 안할래. 국산이 더 좋다는 걸 내가 철이없어 몰랐어.”
그때 아저씨 손길이 내 몸에 닿았다.
“멀쩡한 걸 버렸네.”
명품이 불안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저씨가 다른 손으로 명품을 집었다.
“여보! 보온 도시락이 두 개나 있어요. 마법사가 마법을 부렸나 보우. 이 재킷 낡았지만, 당신에게 딱 맞겠는걸.”
아저씨는 낡은 꽃무늬 재킷과 명품과 나를 들고 말했다.
“아유 좋아라.”
여자는 재킷을 이리저리 대보며 좋아했다. 아저씨도 명품보온도시락을 들고 이리저리 살피더니 말했다.
“이건 금이가 보온이 안 되겠는걸.”
‘거 봐! 난 쓸모없잖아. 이제 우린 헤어져야 할 것 같아! 잘 가! 흐흑!’
명품이 실망하며 말했다. 나도 가슴이 먹먹했다.
‘그러니까 명품이라고 까불지 말지. 요즈음은 K라 하면 세계 사람들이 다 알아준단 말이야.’
나도 속이 상해 퉁을 주었다.
‘미안 해.’
“여보, 플라스틱 도시락보다 낫지 않을까요? 예쁘기도 해라.”
“당신 말 듣고 보니 그러네.”
‘국산아, 나도 함께 갈수 있나 봐.’
명품이 기뻐서 말했다.
‘우리는 한 집에 살게 되었어.’
‘미안 해! 그동안 못되게 굴어서.’
‘헤헤, 괜찮아. 넌 쓸모 있는 거야.’
여자는 꽃무늬 재킷과 보온도시락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나는 장애를 가진 가난한 부부가 따뜻한 밥을 먹으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명품이 나를 향해 엄지 척을 하며 해맑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