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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월의 불꽃놀이
전국에서 들고일어난 시위는 더 치열해졌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만 틀면 데모 뉴스가 나왔다. 덕수궁 담벼락에는 아직도 후보들의 사진이 햇빛에 바래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유독 이승만대통령후보와 이기붕부통령후보 사진만이 갈기갈기 찢겨져있었다. 그것은 국민들의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삼촌을 선거 날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밤늦게 들어 왔다가 옷만 갈아입고 새벽에 나가기도 하고, 집에 오지 않는 날이 들어오는 날 보다 더 많았기 때문이다.
“책 보따리 무거운데 호랑이아주머니 댁에 맡기고 갈까?”
우리는 책 보따리를 맡기려 우르르 몰려갔다. 삼촌이 혜숙이 언니 과외를 맡아 하자 아주머니는 구정물세례 이후 항상 우리 편이다. 삼촌 빽을 톡톡히 보는 셈이다.
“이것들아. 거긴 위험해서 안돼야.”
아주머니는 펄쩍 뛰었다. 재열이는 책 보따리를 그대로 어깨에 메고 있었다.
“재열이 넌 책 보따리 안 벗었어?”
“난 안 무거워.”
재열이는 책 보따리를 어깨에 가로 메고 내려놓지 않았다. 혹시 하나 뿐인 책 보따리를 잃어버릴까봐 걱정이 되는 것 같았다. 승한오빠와 호성오빠는 멜빵가방을 메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만들어준 조각보 책 보따리를 허리에 메고 있었다. 우리는 아주머니 댁 대청마루에 책 보따리를 던져두고 나왔다. 나는 책 보따리에서 카메라만 꺼내 목에 걸었다. 카메라는 아빠가 대학생 때 쓰던 것을 생일 선물로 준 것이다. 아빠도 기자가 되길 원했지만, 회사에 다니신다.
“그러고 있으니까 너도 기자 같다.”
승한오빠가 엄지 척을 하며 말했다.
“빨리 가자. ‘무찌르자 오랑캐 몇 백만이냐 나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쳐부수자 공산군 나아간다 나아가 우리 사총사~~!’ ”
재열이가 앞장서며 노래를 불렀다. 모두 골목이 떠나가도록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큰길 쪽으로 달려갔다.
“난 우리 삼촌 보고 싶다. 삼촌은 데모하느라 일주일도 더 못 봤어.”
“요 앞에서도 매일 데모하잖아. 어제는 대학생들이 많이 죽었다고 하던데. 성수삼촌은 괜찮을 거야. 걱정 마, 정혜야!”
“맞아, 승한오빠! 우리 삼촌은 당연히 괜찮을 거야. 그래도 걱정은 돼. 혜숙이 언니 본 지도 꽤 오래 됐어.”
우리 사총사는 서로 떨어지지 않게 손을 꼭 잡고 삼촌과 언니 걱정을 하면서 시위현장 앞쪽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빨리 가보자!”
나는 오빠들 손을 끌며 재촉했다. 반대편에서는 수많은 인파와 데모대가 뒤섞여 시위를 하고 있었다.
“와와! 부정선거 다시하자!”
“와! 잘한다! 부정선거 다시하자!”
내가 손뼉을 치며 따라서 외치자 승한오빠와 호성이 오빠, 재열이도 따라했다.
“사람들 굉장히 많다. 그치? 저 사람들이 다 어디서 왔을까?”
“아마 전국 방방곳곳에서 다 모였을 걸. 부정선거 타도하자고 저러는 거잖아.”
“데모가 더 크게 된 것은 마산에서 김주열이라는 형이 시위에 나왔다가 경찰이 쏜 최루탄이 눈에 박혀 죽었기 때문이래.”
“정말? 무섭다.”
“응, 그걸 경찰이 시신에 돌멩이를 달아 마산앞바다에 던졌는데 그 시신이 물에 떠오르면서 학생, 시민들이 화가 나서 더 크게 번졌대.”
“설마? 으, 끔찍하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완전 짐승이야. 그 오빠 불쌍해서 어떡해!”
“정혜 너가 그 사건 취재 해 보는 게 어때? 학교 신문에 싣게.”
“알았어. 승한오빠! 내가 낱낱이 이 사진기에 담을 거야.”
찰칵찰칵!
나는 연신 카메라 셔트를 눌려댔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도 많이 있었다. 그 속에는 당연히 혜숙이 언니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또래나 오빠들 또래도 보였다. 근우가 몇몇 아이들과 군중 속에 있었다. 효정이도 있었다.
“어? 근우야! 너도 친구들하고 데모하러 나왔네. 효정이 너도?”
내가 근우와 효정이를 먼저 발견하고 아는 체를 했다. 효정이는 근우를 좋아한다. 나는 승한오빠를 좋아한다. 승한오빠는 나를 끔찍이 보살펴준다. 호성오빠도 재열이도. 그래서 우리는 사총사야.
“근우야, 우리 사 총사 멤버야.”
“형들도 데모 나왔네? 재열이 너도?”
“오빠들, 우리 반 근우와 효정이야. 내가 말했지? 급장 선거 때 내 편이었다고.”
“그래. 반갑다.”
승한오빠와 호성오빠가 친구들을 반겼다. 재열이는 근우와 효정이 손바닥을 마주쳤다.
“너희들은 안 무서워?”
“무서워. 하지만 우리도 데모해야 해. 지난번 우리 반 급장 선거 때 봤잖아. 철민이 자식 초콜릿 돌리며 부정 선거하고, 정혜 너한테 지니까 개표 다시 하라며 성질부리는 거. 꼭 국회의원들이 하는 거와 뭐가 달라. 안 그래? 그래서 부정선거는 막아야해. 넌 오빠들 따라 나왔어?”
“아니야. 내가 오빠들더러 가자고 졸랐어. 나는 네 이모처럼 기자가 될 거거든. 이봐. 사진도 뎁다 많이 찍었어.”
나는 카메라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때다. 빨간 완장을 찬 아저씨가 각목을 휘두르고 있었다.
“승한오빠! 저거 봐! 지난번 선거 때 오빠 담임 선생님을 각목으로 때린 그 깡패야.”
나는 얼른 카메라를 그 아저씨 얼굴에 초점을 맞췄다.
“야! 꼬마야! 너 뭘 찍는 거야!”
다행히 각목이 사람을 치지 못하고 공중에서 멈추었다. 그 깡패가 카메라를 뺏으려 했다.
“정혜야, 빨리 도망가!”
사총사 멤버와 근우 효정이 그 친구들까지 깡패를 막아서며 나를 보호했다. 승한오빠가 앞에서 길을 터주어 나는 카메라를 가슴에 안고 군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재열이가 그 깡패 각목을 빼앗았다. 호성이 오빠와 근우와 그 친구들은 바닥에 쓰러진 깡패를 올라타고 있었다.
“이것 놓지 못해! 아이들이라고 봐주려고 했더니… 아악!”
그때 재열이가 그 깡패 엉덩이를 몽둥이로 때렸다.
“아이고 아야!”
“빨리 일로 도망 와!”
근우가 소리쳤다. 우리는 군중 깊숙이 들어갔다. 그 깡패가 안 보일 때까지.
짝짝!
우리는 손바닥을 마주쳤다.
“우리 사총사의 첫 성과다! 재열이 정말 잘했어!”
승한오빠가 재열이를 칭찬했다.
“빨갱이를 잡아라! 공산당을 무찌르자! 독재를 막자!”
사총사도 근우도 시위대들의 구호에 맞춰 소리를 질렀다. 재열이는 아예 책 보따리를 내려놓고 손뼉을 치며 구호를 따라했다.
“승한오빠! 오길 잘했지?”
“응, 오길 잘했어.”
“니들 알아? 오늘 전국 대학생 연합과 고등학생 형 누나들, 일반 시민까지 경무대 쪽과 광화문, 시청 쪽에서 데모 집결한다고 들었어. 어제 고려대 사건 때문이라고 하던데.”
근우가 이모한테 들었다며 말했다.
“우리도 그 쪽으로 가보자. 삼촌을 만날지 모르잖아.”
재열이가 앞장서며 말했다. 군중에 떠밀려 근우와 효정이와 그 친구들과 헤어지고 말았다.
어느새 해가 서쪽하늘에 걸려 있었다. 긴 그림자가 시위대위에 내려 앉아 어둑어둑해졌다.
펑펑펑!
최루탄이 불꽃처럼 튀어 올라 번개같이 하늘이 번쩍번쩍했다. 최루탄 불꽃이 하얀 연기와 함께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매캐한 냄새가 구역질이 나고 눈물콧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에취 에취! 꼭 불꽃놀이 하는 것 같다 그치? 진짜 불꽃놀이면 멋질 텐데.”
나는 재채기를 하면서도 연신 입을 가만두지 않았다.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며 하늘을 덮었다. 사람들이 아우성을 쳤다.
“으아!”
군중들이 놀라 흩어졌다. 바로 옆에서도 불꽃이 튀었다. 사람들이 둘로 갈라졌다. 모세의 길처럼.
“정혜야 빨리 피해! 호성이 재열이도!”
승한오빠가 소리를 질렀다.
“부릉 부릉 부르릉!”
수십 대의 경찰 백차가 데모대를 양쪽으로 갈라놓은 그 사이로 질주했다.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경찰차에 부딪쳐 쓰러지기도 했다. 아수라장이 되었다. 하얀 오토바이를 탄 경찰들이 백차 뒤를 줄지어 지나갔다. 사람들이 다시 앞으로 몰렸다. 우리는 모두 그 광경을 보려고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앞으로 나갔다. 꼭 오토바이가 시가행진을 하는 것 같았다. 그 장면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았다.
나는 일곱 살 땐가 여덟 살 때 엄마 손을 잡고 시청 앞에 시가행진 구경을 갔었다. 그때도 수십 대의 백차들이 천천히 대통령 차를 호의했다. 많은 사람이 도로에 나와 환호성을 질렀다. 어릴 때 기억은 불꽃놀이는 정말 멋있었다. 눈이 따갑지도, 재채기도 나오지 않았었다.
“정혜야, 위험해서 안 되겠다. 그만 집에 가자. 우리 아버지가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싫어, 승한오빠는 겁쟁이야.”
나는 승한오빠 말에 뽀로통해졌다.
“집에 가는 게 좋겠다.”
호성오빠도 집에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안 돼! 나는 삼촌 만날 거야! 우리는 사 총사잖아. 죽어도 함께, 살아도 함께 하자고 약속했잖아.”
“이 많은 사람 속에서 어떻게 삼촌을 찾아? 모래에서 바늘 찾기지.”
승한오빠는 마지못해 따라오며 말했다. 나는 삼촌이 걱정이 되었다.
“혹시 우리 삼촌이 앞에서 데모하다 총탄에 맞은 건 아닐까?”
“재수 없게 그런 소릴 하고 그래.”
재열이가 옆에서 듣고 한 소릴 했다.
“난 걱정 되어 죽겠단 말이야.”
나는 오빠들이 잡고 있는 손을 뿌리치고 군중 속을 향해 더 비집고 들어갔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사람 넘어지면 도미노처럼 다 넘어질 것 같았다. 최루탄 냄새와 먼지와 사람들의 열기로 제대로 숨도 쉴 수조차 없었다.
“밀지 마세요. 밀면 위험해요!”
대학생 교복을 입은 한 무리가 군중을 향해 다가오며 확성기로 외쳤다.
“어? 저기 삼촌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소리쳤다.
“성수 삼촌!”
우리는 손나발을 하고 불렀지만, 군중의 구호 소리에 그 소리는 묻히고 말았다. 삼촌은 커다란 확성기를 들고 밀지 말라며 사람들에게 질서를 지켜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구호를 외쳤다.
“구속된 동지를 풀어라!”
“우리가 흘린 피의 대가를 치룰 것이다.”
삼촌이 이끄는 시위대가 바로 앞에까지 왔다.
“삼촌!”
나는 달려가 삼촌 앞에서 두 팔을 높이 들어 막아섰다. 삼촌이 깜짝 놀랐다.
“정혜야? 아니, 너희들! 위험한데 여기는 왜 왔니?”
“우리도 데모 할 거예요. 삼촌 보니까 힘이나요.”
“안 된대도. 위험해!”
“삼촌은 위험한데 왜 해요?”
“삼촌은 대학생이니까 하는 거지. 부정 선거를 인정 할 수 없는 거니까.”
“대학생이면 목숨이 두갠가 뭐? 목숨은 삼촌도 한 개, 나도 한 개야. 나도 부정선거는 싫단 말이야. 아악!”
최루탄이 바로 옆에 떨어졌다. 하마터면 최루탄에 맞을 뻔 했다.
“콜록콜록! 에, 에취!”
나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재채기 소리가 났다. 삼촌은 시위대를 지휘하느라 초죽음이 되어있었다. 삼촌을 투표 날 보고 처음 보았다.
내가 고집을 부리자 확성기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나를 군중 밖으로 끌고 나갔다.
“녀석들, 큰일 나겠네. 너희들의 마음은 알겠는데, 이만하면 됐으니 이제 집에 가거라.”
“싫어. 사진 찍어야 한단 말이야.”
나는 삼촌에게 잡힌 손을 빼서 카메라 셔트를 계속 눌렀다.
찰칵 찰칵!
펑펑펑!
최루탄 불꽃이 4월의 하늘에 팝콘처럼 튀었다. 나와 호성이 오빠는 삼촌 손에 이끌려 호랑이 아주머니 집 대문 앞에 멈추었다.
“헉헉!”
삼촌이 나와 호성오빠를 대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승한오빠와 재열이가 군중에 휩싸여 헤어지고 말았다. 삼촌은 승한오빠와 재열이를 찾아온다며 다시 덕수궁 쪽으로 이미 사라졌다.30.4매
6. 자유의 횃불을 들다
나는 승한오빠와 재열이가 걱정이 되면서도 텔레비전에 눈길이 갔다. 텔레비전에는 교복을 입은 대학생들이 화면에 크게 나왔다. 호성오빠가 텔레비전을 보며 말했다.
“대학생들이 엄청 많이 모여 있다.”
“응, 진짜 많다!”
텔레비전 화면이 사람으로 꽉 찼다. 꼭 개미떼가 바글거리는 것 같았다.
“너들 저녁도 안 먹었갓지. 배고프지라. 이거 먹어라. 장사하고 남은기라. 호성이는 입맛에 안 맞겠지만 배고프면 뭐든 맛있지 안갓어. 싸게 먹고 싸게 집에 가 봐라. 어머니 아버지야 아직 장사에서 안 왔겠지마는 할머니는 걱정하갓어야.”
호랑이 아주머니가 김밥하고 어묵국물을 가져다주며 말했다. 승한오빠와 재열이가 걱정이 되었지만, 나는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났다.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오빠는 배 안 고파?”
“배 고프긴 한데, 형하고 재열이 걱정이 돼서 못 먹을 것 같아.”
그때 텔레비전에서 아나운서 멘트가 나왔다.
서울대 학도호국단이 주축이 되어 문리대를 중심으로 천여 명의 학생들이 의기투합하여 부정투표 규탄 회의에 돌입했다고 했다. 서울의 각 대학들과 연계하여 대규모 부정선거 항의 데모를 벌이기로 하고, 자유당 정권의 작태로 보아 장기전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호성 오빠! 삼촌 학교다. 저기 삼촌도 있겠네. 참, 삼촌은 승한오빠와 재열이 찾으러갔지.”
“저건 아침에 했던 것을 찍어 두었다가 방송국에서 자꾸 하는 거야. 그러니까 삼촌이 저기 있을 수 있어.”
“어떻게 그래? 지금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잖아.”
“글쎄! 나도 잘 모르긴 해.”
“그나저나 삼촌하고 왜 여태 안 와. 아직 못 찾았으면 어떡해? 걱정 돼 죽겠어,”
나는 김밥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오빠도 하나 먹어. 되게 맛있어.”
“그, 그래!”
호성오빠도 김밥을 입이 넣었다. 나는 점심도 먹지 않아 배가 고파 승한오빠와 재열이 걱정을 잠시 잊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데 이 젊음과 목숨까지 바친다! 한 번 길을 들어섰다면 그 길이 완성 될 때까지 간다. 각오되었나?’
텔레비전에서 학생회장 같은 사람이 나와서 주먹을 높이 들고 외쳤다.
“바칩니다! 각오되었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이 소리를 따라 학생들을 비추었다.
“어, 삼촌이다.”
“어데고? 삼촌이 아이들 데리고 왔나?”
아주머니가 부엌에서 나오며 말했다.
“아니고, 텔레비전에 삼촌이 나왔어요. 삼촌이 더 나오면 좋겠는데. 근데 왜 여태 삼촌이 안 오지?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호성오빠!”
‘1960년 4월 19일 문리과대 결의문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아나운서가 말했다. 곧이어 선언문이 낭독되었다.
하나, 저들을 보라! 비굴하게도 위하와 폭력으로써 우리들을 대하려 한다. 우리는 백보를 양보하고라도 인간적으로 부르짖어야 할 학생의 양심을 느낀다.
둘, 보라! 우리는 기쁨에 넘쳐 자유의 횃불을 올린다.
셋, 보라! 일제의 철퇴 하에 미칠 듯 자유를 환호한 나의 아버지 형제들과 같이 양심은 부끄럽지 않다. 영원한 민주주의 사수파는 영광스럽기만 하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생일동, 「선언문」(필사본 일부), 1960
“동지여러분, 우리 문리대 캠퍼스에서는 한명의 낙오자도 없다. 다 같이 한마음 한 몸으로 우리는 혁명대열에 참여한다. 우리는 희생된 시민과 학우들에게 묵념한다.”
학생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묵념했다.
“민주주의를 똑바로 세우자! 독재를 막는 데는 이번이 절호의 기회임을 천명한다.
김주열의 죽음을 밝히고 주모자를 색출하자! 평화행진에 깡패를 동원하고 총을 난사한 그 살인자들을 우리는 규탄한다.”
“정혜야! 진짜 성수삼촌이다. 성수삼촌 잘한다.”
“맞다. 우리 삼촌이다!”
“아이고 선생님, 너무 잘하시오. 내도 데모 해야갓어. 내 딸이 하는데 나도 거들어야제. 빨갱이들을 쫓아 내야제. 안 그러냐 호성아, 정혜야!”
“네, 맞아요. 아주머니. 참, 호성오빠! 삼촌이 지금 말한 김주열 죽음 말이다. 근우도 말한 그 사건이잖아. 맞지?”
“맞아! 나도 뉴스에서 봤어. 너무 끔찍해서 두 눈 뜨고 차마 못 보겠더라. 그래서 대학생들이 더 분노한 거라고 봐.”
호성오빠가 설명했다.
삼촌은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다. 학생들이 따라 외쳤다. 삼촌이 사진 몇 장을 꺼내들었다. 카메라가 그 사진을 비추었다. 사진은 정말 끔찍했다. 나는 텔레비전 앞으로 바짝 다가가 앉았다.
“이 사진은 어린 김주열 학생의 사진이다. 경찰의 최루탄이 눈에 박혀 죽었다. 살인을 은폐하려고 시신에 돌을 묶어 바다에 빠뜨렸다. 잔인한 살인마를 색출해야한다.”
삼촌은 말을 마치고 울음을 참는지 고개를 숙이고 주먹으로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나와 호성이 오빠, 아주머니도 눈물을 찍어내며 훌쩍거렸다. 카메라는 시위현장을 따라다녔다.
“나도 저 현장에 있어야하는데….”
평화행진을 하는 학생들이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예지동 백화점 앞에서 대한반공청년단 폭력배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나왔다. 백여 명의 폭력배들이 벽돌과 부삽, 몽둥이, 쇠망치, 갈고리들을 들고 선두학생들을 마구 난타했다. 학생들이 현장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여기자도 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나왔다.
“저 기자 근우 이모다! 어떡해. 머리에서 피나!”
방송국 카메라 기자가 뒤에서 그 장면을 찍고 있었다. 그때 몽둥이로 그 기자 머리를 때리고 어깨에 맨 커다란 카메라를 반공청년단이 빼앗으려했다. 그 기자는 안간힘을 다해 카메라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썼다. 쓰러지면서도 카메라를 가슴으로 감쌌다. 근우 이모가 겨우 기어가 그 사람들을 떼어냈다.
“와! 잘 한다!”
나는 젓가락을 쥔 주먹을 펴 힘차게 손뼉을 쳤다.
“기자정신 대단해. 근우한테 알려야하는 거 아니야?”
나는 김밥을 더 먹을 수가 없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낮에 깡패한테 카메라를 빼앗길 뻔한 생각이 났다. 카메라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가슴에 안았었다. 나도 기자가 되면 근우이모나 카메라기자처럼 기자정신이 투철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니들 배 안 고픈 갑다. 하기사 세상이 요지경인데 니들이라고 밥맛이 나갓어?”
거리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머리와 가슴에 피를 흘리는 학생들은 고통에 울부짖었다. 죽어가는 끔찍한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나는 죽는다.”
처참한 울부짖음은 맹수가 포효하는 소리 같았다. 그것을 본 학생들은 격양되어 악에 받칠 대로 받쳐 소리를 질렀다.
“저 놈들을 죽여라.”
“저놈들은 살인마다.”
시민들도 흥분하여 여자들은 치마에 돌을 싸서 날라 학생들에게 주었다.
“자유당은 깡패까지 동원했다. 저들은 살인자다! 독재를 타도하자!”
“구속학생들 석방하라!”
“탕탕탕!”
경찰과 군인들은 무차별 총기 난사를 했다. 빗나간 총탄은 길거리 건물에 맞아 벌집처럼 총구멍이 숭숭났다.
“다다따따!”
다발총 소리가 귀청이 찢어질 듯이 하늘을 울렸다. 많은 사람이 총에 맞았고, 학생들이 연행되었다. 경찰이 곤봉으로 학생들을 내리쳤다. 몇몇 학생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것이 텔레비전에 그대로 나왔다. 나는 화가 나서 치가 떨렸다. 아주머니도 “저것들 봐라. 사람 죽이네!” 라며 텔레비전을 향해 소리쳤다. 곤봉이 한 대학생을 향해 내리쳤다.
“삼촌! 얼른 피해!”
나는 그 대학생이 꼭 삼촌 일 것만 같았다. 저 사람이 옆에 있기라도 하듯이 소리쳤다.
우당탕!
그때 대문이 거세게 열리면서 삼촌이 들어왔다.
“삼촌!”
나와 호성오빠가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아이고 선생님, 왜 이제 오시오? 아들은 어짜고 혼자 왔시오?”
“아이들을 못 찾았어요.”
“아이들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우리 모두 아연실색해서 마당에 주저앉았다. 삼촌머리는 폭탄을 맞은 것 같았다. 교복은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고, 명문대 모자도 제구실을 못하는 것 같았다. 삼촌의 그 몰골을 보고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삼촌, 승한오빠와 재열이 어떡해요?”
“호성아, 니는 내캉 승한이집하고 재열이집에 가보자. 혹시 아이들이 집에 왔는지.”
“제가 가보겠습니다.”
“선생님은 좀 쉬시라요. 그러다 선생님이 죽갓시오.”
아주머니는 삼촌 대답도 듣기전이 신발을 끌고 대문을 나섰다. 호성오빠도 걱정스런 눈으로 뒤돌아보고 아주머니를 따라나섰다.
텔레비전에서 세종로와 태평로일대로 진출한 평화행진을 따라가며 비추었다. 행진도중 반공청년단폭력배로부터 학생들이 피습되었다. 그 사건으로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더 거세졌다. 확성기를 들고 앞장서서 구호를 외치는 삼촌 얼굴이 화면에 클로즈업되었다. 삼촌이다.
“데모가 이적이냐, 폭정이 이적이다!”
시위대도 따라 외쳤다.
“3.15 부정선거 다시 하라!”
“1인 독재 물러가라!”
“민주주의를 바로 잡아 공산주의 타도하자!”
삼촌은 멍하니 텔레비전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혼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대통령은 왜 독재를 해서 국민들을 못살게 하는지 모르겠다.
“삼촌!”
나는 삼촌 팔을 잡고 흔들었다. 삼촌은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졌다.
“삼촌, 삼촌!”
“어, 어엉!”
삼촌은 데모 앞장서느라 거의 한달 째 잠도 못자 눈을 뜬 상태로 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나는 대청마루 구석에 있는 목침을 가지고 와서 삼촌머리 밑에 넣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삼촌은 그대로 잠이들었다.
텔레비전에서는 계속 시위 장면이 나왔다. 불붙은 시위대의 구호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독재정권 퇴진과 민주수호를 요구하는 혁명적인 규탄은 무정부상태에 빠진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했다. 전국이 유혈사태로 번졌다.
그 사태로 더 많은 부상자와 희생자를 냈다. 경무대 앞에는 대학생 2만 여명과 엄청난 군중이 모였다. 동대문 경찰서 앞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하지만 시민 학생들의 붉게 물든 핏빛 함성에도 반공청년단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 날뛰었다. 경찰들은 물대포까지 동원해서 쏘아댔다. 그들이 힘이 쌔 질수록 자유의 횃불은 더 높이 더 강해졌다. 그 불꽃은 활활 타 올라 꺼질 줄을 몰랐다. 뉴스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삼촌의 코고는 소리도 계속 이어졌다.
나는 텔레비전이 칼라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저 끔찍한 난장판이 더 선명하게 보일 테니까. 28.8매
7. 짓밟힌 민주주의
계속 텔레비전에서는 데모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삼촌이 눈을 떴다.
“삼촌, 엄청 피곤한가봐! 코를 어떻게나 골던지.”
“삼촌이? 나 자지 않았어. 생각 좀 하느라 눈만 감고 있었지.”
“어? 삼촌도 거짓말 할 줄 알아?”
“그나저나 아주머니는 오셨어? 승한이와 재열이는?”
삼촌은 대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말했다.
“아니, 아직 안 오셨어.”
“어찌 된 거야? 내가 가 봐야겠다.”
“삼촌 쓰러지겠어. 아주머니 오실 때까지라도 좀 쉬어. 나도 걱정 돼 죽겠어. 참, 아까 텔레비전에 삼촌 나왔었어. 내가 빨리 도망가라고 했는데…. 안 잡혔어?”
“아, 그거? 그들은 나를 못 잡아. 경찰이 곤봉을 내려 치길래 무조건 뛰었어. 그들은 나를 체포하는 것이 목적인 듯 악착같이 쫒아오더라. 무작정 뛰다 보니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지 뭐야. 정말 잡히면 죽는 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내가 텔레비전에 몇 번 나오다 보니 그들이 삼촌 얼굴을 기억하는거야. 쥐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잖아. 근데 혼자가 된 삼촌에게는 고양이를 물 수 있는 작은 이빨도 없었어. 우리는 뭉쳐야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 삼촌이 무모한 행동을 했던 거지. 군중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혼자 떨어지고 말았지 뭐야.”
“어떡해? 그래도 안 잡혔어?”
삼촌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안 잡혔으니까 삼촌이 여기 있지.”
“휴, 다행이다.”
‘이성수! 넌 독 안에 든 쥐다. 항복하지 않고 도망치다 잡히면 죽는다!’
“두 명의 경찰이 따라 붙어 소리를 지르더라. 정말 잡히면 그 자리에서 맞아 죽을 판이었어. 삼촌은 죽을힘을 다해 몸을 날려 그 높은 축대를 뛰어 넘었지.”
“저 새끼 귀신 아니야?”
“뒤쫓던 경찰들이 닭 쫓던 개처럼 담장을 올려다보며 소리 지르더라. 몇 발의 총알이 하늘을 향해 날아왔었어.”
“안 무서웠어? 안 맞았어?”
“삼촌 멀쩡하잖아. 경찰들은 포기 한 모양인지 되돌아가더라. 그래서 무사히 데모대에 복귀할 수 있었단다.”
삼촌은 말을 하면서도 계속 대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삼촌 최고다! 근데 걱정돼 죽겠는데 아주머니는 왜 여태 안 오셔?”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아주머니가 급하게 대문을 들어섰다.
“선생님! 아이들이 집에 안 왓시오.”
“예? 정말입니까?”
삼촌은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섰다. 호성오빠도 뒤따라 들어왔다.
“저 다시 나가보고 오겠습니다.”
삼촌은 벌써 대문을 나서고 있었다.
“삼촌, 우리도 따라가요.”
호성오빠가 따라나섰다.
“삼촌! 나도 같이 가요.”
“벌써 어두워 졌는데 이 많은 사람 속에서 어떻게 찾지? 승한오빠와 재열이에게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나는 뛰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오빠와 재열이를 지켜주세요. 제발!’
이럴 줄 알았으면 엄마 따라 성당에 자주 갈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재열이는 학년은 같아도 꼭 동생 같다. 몸도 빼빼마르고 키도 작아서 그런 것 같았다.
‘제발, 승한오빠, 재열아! 미안해. 내가 데모가지고 해서 그래.’
나는 자꾸만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구름떼처럼 데모대 대학생과 일반시민들이 덕수궁 쪽으로 건너왔다. 그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군인들이 데모대를 차도로 나오지 못하게 탱크로 막고 있었다. 만약의 소요사태에 대비하는 것 같았다. 사방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도 터져 나왔다. 길바닥에는 책가방이랑 신발, 책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있었다. 최루탄 냄새가 더 심했다.
“콜록콜록!”
모두 심하게 기침을 했다.
“니들 손으로 눈을 비비지마라. 그리고 절대 손 놓으면 안 된다.”
“부정 선거 타도하자!”
앞에서 카메라 후레쉬가 터졌다. 반공청년단이 소리쳤다.
“기자다. 저놈을 잡아라. 카메라도 빼앗아라!”
“아악!”
각목으로 기자머리를 내리쳤다. 머리에서 피가 흘러 땅바닥이 흥건했다.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과 똑같았다. 나는 온몸이 덜덜 떨렸다. 학생들이 달려와서 반공청년단 앞을 가로 막아섰다. 그 기자는 기자정신으로 쓰러지면서도 반공청년단을 향해 카메라 셔트를 눌러 사진을 찍었다. 나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그 기자 뒤에서 괴한이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어서 피해요!”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기자가 잽싸게 뒤돌아서서 사진을 찍었다.
“살인정치를 멈추어라!”
시위대에서 구호를 외치자 구경 나온 사람들도 모두 따라 외쳤다.
“승한아! 재열아!”
삼촌이 승한오빠와 재열이를 부르며 앞으로 나갔다. 우리도 삼촌을 따라 뛰었다.
각목과 갈고리를 든 불량깡패들이 사람들을 향해 휘둘렀다. 우리는 일행의 군중에 떠밀리다시피 밀려갔다.
“헉헉! 삼촌!”
사람이 너무 많아 도저히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총소리가 바로 앞에서도 났다.
“엎드려!”
삼촌이 우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호성오빠와 나는 바닥에 엎드렸다. 잠시 조용해 졌다.
“삼촌, 덕수궁 맨 끝 골목으로 가 봐요. 우리가 학교 갔다 오다 맨날 만나는 제2 아지트에요. 형과 재열이가 거기서 기다릴지 몰라요.”
호성오빠가 말했다. 맞다. 왜 진장 그 생각을 못했지.
삼촌과 우리는 덕수궁 끝 골목을 향해 뛰었다. 달려가는 우리의 등 뒤에서 총소리가 계속 났다.
담벼락 앞에 희미하게 그림자가 보였다. 재열이다.
“삼촌, 재열이예요.”
호성오빠의 목소리가 돌담을 끼고 돌았다.
“형아야! 정혜야! 엉엉!”
우리는 달려가서 재열이를 와락 안았다. 재열이는 달달 떨고 있었다. 꼭 사랑하는 동생을 찾은 것 같았다. 우리는 잠깐 그대로 안고 있었다.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오로지 재열이를 찾았다는 기쁜 마음뿐이었다.
“승한이형은?”
어느 정도 진정되자 삼촌이 물었다.
“엉엉! 형이, 형이….”
재열이는 말을 잊지 못했다.
“얼른 말해 봐! 승한오빠는?”
“구급차, 구급차에 실려 갔어. 총 총 맞았어.”
그 말을 하고 재열이가 막 일어서는데 총알이 날아왔다.
“엎드려!”
피웅피웅!
“악!”
“재 재열아!”
삼촌 앞에서 일어서려든 재열이가 픽 쓰러졌다.
“재열아!”
삼촌은 재열이를 안고 소리를 질렀다.
“안 돼. 재열아!”
삼촌이 재열이를 부르는 소리는 비명처럼 들렸다.
온몸에 피 범벅이 된 재열이를 삼촌이 안아 올렸다.
“재열아, 안 돼! 죽으면 안 돼!”
“재열아!”
호성오빠도 나도 삼촌 팔에 안긴 재열이를 잡고 흔들었다.
재열이는 늘 호주머니에 시계를 넣고 다녔다. 할머니는 그 시계가 멈추지 않게 밥을 잘 주라고 했단다.
‘할머니 시계가 밥을 먹어?’
‘그 밥이 아니고 여기를 돌리면 돼야. 테엽을 감는 거야. 니도 밥을 많이 묵으면 배가 터지듯이 야도 밥을 너무 많이 주면 배가 터지니께 적당히 주어야 혀.’
재열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할머니가 회중시계를 주며 말했다고 해서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다. 재열이의 시계는 정말 정확했다. 한 번도 멈추거나 틀린 적이 없었다. 할머니는 아직도 재열이 아버지가 살아서 돌아 올 거라고 믿고 있었단다. 시계가 멈추면 아버지가 죽는다고 했단다. 그래서 자신은 밥을 굶어도 시계가 밥을 굶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딱딱 시간 맞춰 밥을 주었다. 하루에 세 번씩.
아버지가 국군으로 가면서 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가 준 선물이라고, 시계처럼 정직하게 살아라고 했다는 말도 할머니는 빼 놓지 않았다고 했다.
재열이는 그 시계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4월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아 하늘에는 별이 총총했다.
학교 갈 때 꼭 시계를 몇 번씩 보며 ‘오늘은 늦었네. 오늘은 너무 일찍이네.’ 하며 해 맑게 웃던 재열이의 모습이 공중에 붕붕 떠 다녔다. 콧등이 시큰했다.
까까머리 재열이는 늘 웃는 모습이었다.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불평한 적도 없었다.
삼촌도 호성오빠도 엉엉 소리를 내고 울었다. 나는 슬픔을 견디다 못해 땅에 주저 않았다.
급장 선거 때가 생각났다. 철민이 공약에 재열이가 처음으로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보았다.
‘우리 집이 가난한건 전쟁 때문이라고 할머니가 그랬단 말이야!’
삼촌은 재열이를 안고 뛰어가며 소리쳤다.
“비켜요, 비켜! 아이가 다쳤어요. 아이가 총에 맞았다고요.”
삼촌은 재열이를 안고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우리도 뒤따라 뛰었다.
“그만 쏴! 이 살인마들아! 아이가 총에 맞았단 말이야!”
삼촌은 재열이를 안고 뛰면서 그들을 향해 소리소리 질렀다.
“아!”
재열이 입에서 가는 신음소리가 났다.
“재열아! 눈 떠 봐!”
“너희들, 얼른 구급차를 불러 와! 빨리!”
“아, 알았어! 삼촌! 재열아, 제발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호성오빠가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정신 차려! 눈을 떠! 눈을 떠야 해!”
삼촌은 재열이의 가슴에서 솟아오르는 피를 손으로 막았다. 아스팔트 바닥에 피가 흥건했다.
“눈떠 봐! 얼른 눈뜨란 말이야! 으앙! 내가 잘 못했어. 내가 데모가자고 해서 이리됐어.”
군중들은 물밀 듯이 밀려 왔다. 탱크를 탄 군인들이 군중들을 향해 대사포를 쐈다.
“애애애앵!”
삼촌은 재열이를 안고 구급차를 향해 뛰었다. 재열이 두 팔이 아래로 축 쳐졌다.
삼촌 앞에 구급차가 멈춰 섰다.
“아, 아이가 다쳤어요. 어서 빨리요!”
구급대원이 재열이에게 인공호흡을 했다. 출혈이 너무 심해 재열이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재열이가 잠깐 눈을 떴다가 감았다.
“하 할머니…. 나 아버지한테 갈 거야. 아버지 보고 싶다.”
“재열아. 정신 차려!”
재열이는 잠깐 눈을 떠서 우리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 인공호흡을 하던 구급대원이 손을 멈추었다. 삼촌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재열이는 한 번 뜬 눈을 감지 않았다.
“흐흑! 삼촌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삼촌이 꼭 너희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게. 미안 해! 정말 미안해!”
성수 삼촌은 한참을 재열이를 안고 울부짖다가 손으로 눈을 감겨 주었다. 맑던 하늘이 갑자기 별도 달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최루탄 불꽃만이 하늘에서 번쩍거렸다.
삼촌은 재열이와 함께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며 말했다.
“할머니한테 알려. 사랑병원으로 오시라고 해! 그리고 승한이 어머니한테도.”
구급차는 나와 호성오빠 그리고 군중들을 뒤로 남겨 두고 애애앵 사이렌소리를 내며 부리나케 달려갔다. 우리는 멍하니 사라져 가는 구급차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길바닥에 재열이 책보따리가 뒹굴고 있었다. 나는 책 보따리를 가슴에 안았다. 발길에 또 무언가 밟혔다. 명문대 로고가 박힌 삼촌 모자였다. 민주주의가 짓밟힌 것처럼 모자가 밟혀있었다.
“아, 승한오빠! 승한오빠는?” 30.1매
‘니들 그거 알아? 펜은 칼보다 말보다 강하다는 것 말이야.’
‘에이, 어째 펜이 칼보다 강해요. 칼은 사람도 죽일 수 있는데.’
재열이 말이 귀에 생생했다.
‘그래, 내가 펜이 총칼보다 강하다는 걸 보여 줄 거야. 꼭….’
내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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