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매장
라파엘로
라파엘로(Raffaello, 1483-1520)가 그린 <그리스도의 매장>은 성경을 자유롭게 해석한 작품이다.
이 그림은 마태오복음 27장 57-61절과 마르코복음 15장 42-47절,
루카복음 27장 50-56절과 요한복음 19장 38-42절이 그 배경이다.
그림의 배경에는 십자가가 서 있는 골고타 언덕과 정원이 보인다.
왜 정원이 있을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정원이 있었는데,
그 정원에는 아직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은 빌라도에게 청하여 예수님의 시신을 거기에 모셨다.
그의 이러한 용감한 행위는 하늘을 향한 그의 시선처럼 구원에 대한 동경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예수님의 시신을 아마포로 감싸 니코데모와 함께 옮기고 있다.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과 함께 온 여자들도 뒤따라가는데,
그 중심에는 실신하는 성모님이 계신다.
그리고 다른 여인들은 성모님의 머리와 가슴과 허리를 부축하고 있다.
실신한 성모님이 중심에 있는 것은 아마 이 그림을 주문한
페루자 귀부인의 아들이 살해당한 것과 관련이 있으리라.
핏기 없이 축 늘어진 예수님의 시신이 비통함을 더해 주고,
그분의 다섯 상처에서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다.
슬픔에 가득 찬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애달프게 바라보고,
그녀의 두 손은 그분의 어깨와 손을 받치고 있다.
그녀의 이런 행동은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그녀는 그림의 중심부에서 슬픈 광채를 품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내용과는 달리 이 그림에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도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방관자가 되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
특히 베드로는 두 손 모아 기도라도 하고 있는 요한과는 달리 엉뚱한 곳에 시선을 두고 있다.
베드로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내놓겠다고 고백한 제자였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죽은 스승을 위해 무엇을 하겠는가?
그런데 그가 성난 얼굴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그분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으면
배신자가 된다는 것을 암시하듯이······.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어서도 배신자들까지 당신 곁에 두신다.
그리고 그들이 부활의 목격자가 된다는 게 신기하다.
그림 중앙에 있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고,
이어 베드로와 요한이 부활의 증인이 된다.
그런데 그들의 머리가 부활의 목격자 순서대로 나란히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리스도의 매장은 죽음 뒤에 오는 부활을 예감한다.
신기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