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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서 강의
주교재 ♠ 성경
♠ 성경주석 사무엘 열왕기 역대기, 박윤선, 영음사
♠ 성경주석 열왕기(상,하), 카일 델리취, 기독교문화사
♠ 히브리王들의 年代期, Edwin R. Thiele, 한정건역, 기독교문서선교회
참고도서 ♠ 구약 이스라엘사, 김희보, 총신대학출판사
♠ 이스라엘 王政 열왕기서
滅亡史, 이병렬, 페트라성경연구원
♠ 이스라엘의 歷史, Leon Wood, 김의원역, 기독교문서선교회
♠ 이스라엘 왕들의 이야기, 임태수, 대한기독교서회
♠ 아가페 聖書地圖, Yohanan Aharoni, Michael Avi-Yonah共著, 아가페출 판사
♠ 구약의 메시야 사상, 게라르드 반 그로닝겐, 유재원 류호준역, 기독교문
서선교회
♠ 요단에서 바벨론 물가까지, 김지찬, 생명의 말씀사
♠ 年代期聖經, 두란노
평가방법
1) 본문을 많이 읽으라 ( 열왕기서를 얼마나 읽는가? )
2) 상기 소개한 교재 중에서 1권을 읽고 요약 레포트를 제출할 것
(A4용지 30장 내외) 필수 → 종강일까지
3) 채점기준
레포트 : 30점
기말시험 : 50점
일반서적을 많이 읽고 독후감을 제출할 것 (아무 때나, A4용지 1장 정도로)
출석 및 독후감 참조
1. 서론
나는 이 강의안을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로 고민했다. 열왕기서의 강의를 위촉받고 강의 준비를 하기 위해서 서점엘 들렀었는데 사실 교재로 택할 만한 책이 없었다. 대부분의 열왕기에 관련된 서적들은 주석류에 불과했고, 또 그것들은 방대한 양으로 한 학기에 다 소화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 가지 책들을 참고해서 직접 강의안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래서 이 강의안을 만들게 되었다. 시간이 촉박해서 성의껏 만들지 못했음도 솔직히 시인한다. 그러나 우리 1학년 학우들이 열왕기서를 쉽게 이해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쉽게 그리고 간단하게 정리하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본 강의안은 학적인 목적보다는 열왕기서가 성경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구속사적인 흐름, 그리고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정리했다.
특히 우리는 열왕들의 역사에 대해 상당히 어렵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학기에 그런 선입견을 깨고, 남북 왕들의 역사적인 흐름과 그들이 성경에서 교훈하는 의미들을 깨달으면 만족하리라는 마음으로 이 교재를 정리했다. 아무쪼록 이 강의안이 구약에서의 열왕들의 역사적 위치와 의미를 이해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1. 舊約聖經의 분류
1. 히브리식 분류
律法書 ꠏꠏꠏꠏꠏꠏꠏꠏ 모세五經 (5) --토라(Torah) 유대인들은 토라를 보관할 때 토라 의 케이스를 만들고, 그 토라 위에 망또를 입히고, 왕관을 씌운 다음 방패를 채워서 궤에 넣는다. 회당에서는 주로 토라만 낭송한다.
豫言書 ꠏꠏꠏꠇꠏꠏꠏꠏ 前期豫言書 ꠏꠏꠏꠏꠏ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 (4)
ꠌꠏꠏꠏꠏ 後期豫言書 ꠏꠏꠏꠏꠏ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소예언서 12 (15)
저술 ꠏꠏꠏꠏꠇꠏꠏꠏꠏ 시가서 ꠏꠏꠏꠏꠏ 시편, 잠언, 욥기 (3)
ꠉꠏꠏꠏꠏ 오축 ꠏꠏꠏꠏꠏ 아가, 룻기, 애가, 에스더, 전도서 (5권)
ꠌꠏꠏꠏꠏ 歷史書 ꠏꠏꠏꠏꠏ 다니엘, 에스라, 느헤미야, 역대기 (4권)
2. 基督敎式 분류
율법서 : 모세오경 (5권)
역사서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에스라, 느 헤미야, 에스더 (12)
시가서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5)
선지서 ꠆ꠏꠏꠏꠏꠏ 대선지서 : 이시야, 예레미야, 애가, 다니엘, 에스겔 (5)
ꠌꠏꠏꠏꠏꠏ 소선지서 : 호세아-말라기 (12)
2. 聖經을 보는 눈 (구속사를 중심으로)
우리가 성경을 보는 일에 있어서 그 흐름을 보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즉 우리가 구약의 역사를 이해하는 일이 왜 필요한가? 이스라엘의 역사가 우리의 신앙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단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공부해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는 구역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즉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통해서 메시야를 보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아야 하고, 그들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구약 예수 그리스도 신약
ꠐ 오실 예수님 ꠐ 오신 예수님 ꠐ
창 족 출 가 사 통 분 암 그 교 신
조 장 애 나 사 일 열 흑 리 회 천
굽 안 왕 왕 기 스 신
국 국 도 지
ꠐ ( 구 약 ) ꠐ ( 신 약 ) ꠐ
율 법 ꠏꠈ
ꠐ ꠐ
ꠐ ꠐ
모세오경 율법의 완성
ꠐ ꠐ (완성)
ꠐ ꠐ
십계명 ꠐ
( 출 20장 ) ꠏꠎ
## 마 22:37-40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3. 이스라엘 역사의 시대 구분
광야시기
국가형성시기
왕국시기
포로시기
660년
360년
460년
160년
모세오경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2. 열왕기서
열왕기상, 하는 원래 히브리성경에는 1권의 책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본서는 사무엘 상, 하와 함께 <왕국기>라고 칭하며, 본서 즉, 열왕기 상, 하는 왕국기 3, 4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사무엘 상, 하는 왕국기 1, 2권이며, 열왕기 상, 하는 왕국기 3, 4권에 해당된다. 그래서 사무엘 상, 하와 열왕기 상, 하는 왕국기 1-4권으로 연속적인 역사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은 역사를 다루고 있다.
-사무엘 상 : 인간의 선택 - 사울
-사무엘 하 : 하나님의 선택 - 다윗
-열왕기 상 : 솔로몬과 이스라엘
-열왕기 하 : 이스라엘의 제왕들
-역대상 : 솔로몬과 성전
-역대하 : 제왕들과 성전
사무엘서는 사무엘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하여 다윗 왕 통치 말년까지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룬다. 그리고 뒤를 이어 나오는 열왕기서는 다윗 왕의 임종과 솔로몬의 즉위(B.C 970년경)로 그 막이 열리면서 솔로몬 死後 남북왕국의 분열을 거친 뒤 북 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의 함락(주전 722)과 남 왕국 유다의 예루살렘 함락(주전 586)까지의 약 4세기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열왕기서에 나타난 역사상의 사실은 당시의 여러 국민에 관한 것이 아니라, 다만 여호와와 관계 있는 국민의 역사라는 사실이다. 곧 국민이 언약을 지키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는 면에서 기록한 역사라는 사실이다.(왕하 7:12-16, 왕상 11:32-37, 12:20, 왕하 25:27-30)
북조 이스라엘에는 약 250년에 걸쳐 19명의 왕이 즉위하여 우상숭배로 타락하고 다시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원전 721년에 앗수르 왕국으로부터 포로가 되었다.(사 8:7)
남조 유다의 왕국은 다윗의 왕통에 속하는 20인의 왕이 일어났다. 그리고 북조 이스라엘보다 더 오랜 기간을 존속할 수가 있었다. 그 이유는 물론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이기는 하지만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그래도 남조 유다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왕들이 더 많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남 유다도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이스라엘과 운명을 같이 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징계하시기는 하셨으나, 당신의 구원계획을 포기하신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그 후손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건지시는 놀라운 사역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인 흐름을 이해하면서 열왕기서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3대 왕인 솔로몬으로부터 시작해서 남북 분열왕국의 여러 왕들의 역사를 공부하게 될 것이다.
1. 저자의 문제
우리는 성경의 저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을 찾아보는 일에 상당한 비중을 두어야 한다. 즉 원저자는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적인 면에서 누가 그 책을 썼는가 하는 문제는 그 성경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저자를 찾는 방법에는 대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성경의 내증으로 찾는 것이요, 또 하나는 외증으로 찾는 것이다.
열왕기서도 본서 자체에서는 저자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누가 썼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대개 다음의 견해들이 있다.
1) 예레미야라는 견해
물론 본서 자체는 저자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저자라는 견해는 다음의 외증들을 통해서 조심히 이야기되고 있다.
1) 유대교의 탈무드경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예레미야는 그 자신의 책(예레미야서)과 열왕기 및 애가를 기록하였다.>
2) 헤버닉과 스타인 뮐러는 예레미야와 열왕기서를 상호 비교하면서 양서의 공통점을 지적하고 있다. (문체, 용어, 논조, 사상 등이 매우 비슷하고 공통점이 많다는 것이다.)
3) 열왕기서에는 예레미야의 이름이나 행적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는 점이다.
2) 여러 사람의 저작을 예레미야가 편집했을 것이라는 견해
선지자 나단, 아히야, 잇도가 솔로몬의 시대역사를 기록했고(대하 9:29), 스마야와 잇도는 르호보암 시대의 역사를 썼고(대하 12:15, 13:22), 예후는 여호사밧의 사적을 기록하고(대하 20:34), 이사야는 웃시야 때로부터 히스기야 때까지의 역사를 썼다(대하 26:22, 32:32, 왕하 18:13, 20:19)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들을 합하여 정리한 사람이 예레미야일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3) 예레미야의 감화를 받은 익명의 저작이라는 견해도 있다.
1) 본서의 저작 장소가 바벨론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열왕기하 25장의 경우 바벨론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으나, 당시 예레미야는 애굽에 있었다. (렘 43:6,7 : 곧 남자와 여자와 유아와 왕의 딸들과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넘겨 둔 모든 사람과 선지자 예레미야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영솔하고 애굽 땅에 들어가 다바네스에 이르렀으니 그들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이러하였더라.)
2) 예레미야의 나이가 너무 많다는 주장에 근거한다.
그래서 신학자 Edward J. Young은 이렇게 결론짓는다.
<열왕기서는 고등비평가들의 주장처럼 소위 신명기 학파가 편집한 것이 아니고, 열왕기서 저자(예레미야나 또는 동시대의 익명의 선지자)가 솔로몬의 행장(왕상 11:41),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14:19), 유대왕 역대 지략(14:29) 등의 기존 선지적 문서들을 자료로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감으로 말미암아 본서를 기록한 것이다.>
참고 : 왕상 11:41, 솔로몬의 남은 사적과 무릇 저의 행한 일과 그 지혜는 솔로몬의 행장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왕상 14:19, 여로보암의 그 남은 행적 곧 저가 어떻게 싸운 것과 어떻게 다스린 것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왕상 14:29, 르호보암의 남은 사적과 무릇 그 행한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 수신자
특별한 언급이 없다.
3. 연대
본서는 다윗의 후대(주전 970년경)에서부터 여호야긴이 바벨론에 끌려간 지 37년이 되는 해까지(주전 561년경)의 약 400년 동안의 역사를 다룬다. 즉 통일왕국의 마지막 왕인 솔로몬에서부터 왕국이 분열되어 멸망하기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기록 연대는 대략 B.C 562/561-537/536년경으로 추정한다.
4. 목적
쿡크(Charles C. Cook)는 열왕기서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했다. <열왕기서는 그 나라가 흥하고 번영을 누리게 됨은 하나님에 대한 경건과 신실함의 결과이며, 반면에 그 나라가 쇠퇴하고 망하게 되는 것은 여러 왕들과 그 백성들이 범죄하고 우상을 숭배한 결과임을 말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하여 단순히 세속적인 관심거리에 관한 것은 많이 생략했거나 요약해서 말하고 있으며, 반면에 특히 하나님의 목적과 관계되는 사건과 통치자나 백성들의 도덕적 종교적 상황에 관한 것에 대해서는 장황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옳은 말이다. 따라서 신명기 5장에 기록되어 있는 십계명의 1, 2계명이 본서의 基調라고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만을 참 하나님으로 예배할 것을 권면하고, 우상숭배를 경계하는 것이 본서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는 그 죄를 자손 3,4대까지 미치게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수천 대까지 이르게 하시겠다고 말하고(신 5:9-10),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므로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모든 명하신 길을 걸으면 생명을 얻고 복을 받아 약속의 땅에서 오래 살리라는 약속을 깨닫게 하기 위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서의 저작 목적을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1) 예언자적 목적에서 볼 때 이스라엘의 흥망성쇠의 여부는 그들의 정치력이나, 군사력이나, 어떤 세상적인 힘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섭리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이스라엘의 복과 저주가 좌우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을 따르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 본서가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다.
2) 구속사적 측면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다윗의 계보가 어떻게 이어져 나오는가를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즉 사무엘하 7:12-16절에서 주어진 <다윗 언약>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어지고 이루어지는가를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철저히 추적하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만세 전에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의해서 예언되어진 우리의 메시야가 되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본서를 통하여서 메시야 왕국의 성취과정을 이해하고, 그리스도 나라의 도래를 바라보는 구속사적인 측면에서 본서를 대하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5. 열왕기서의 구속사적 이해
열왕기서를 읽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느끼는 감정일 것이지만 왕들의 이름과 그들의 사적만을 기록하고 있는 열왕기서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열왕기서는 통일왕국으로 시작한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되고 끝내는 망하고 마는 여러 왕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많은 왕들이 일어나고 죽고 물러나곤 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 한 눈을 팔다보면 잊기 쉬운 일이 있는데, 그것은 곧 영원히 변치 않는 하늘 보좌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사야 6:1절에 의하면 이시야는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보았다. 즉 지상의 왕권은 수없이 바뀌어도 하나님의 보좌는 흔들리지 않는다. 따라서 지상의 보좌가 하늘의 보좌의 통치를 받는 때는 나라가 흥왕하고 번영을 누렸으나, 지상의 보좌가 하늘의 보좌를 다스리려 할 때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징계가 따랐다. 이것이 열왕기서의 역사이다.
원래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 바로의 종으로부터 구원하여 내신 목적은 그들로 자기 백성을 삼으시기 위해서였다(출 6:6-7). 그래서 모세를 통하여 바로에게 일관되게 하신 하나님의 선언은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8:1)>는 것이었다.
내 백성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얼마나 충성스럽게 잘 섬기느냐 하는 문제에 따라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사기 2:10절에 보면 불행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사사시대 이전에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믿음의 삶을 살았으나, 이제는 하나님 섬기기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그런 역사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열왕기서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구속사의 관점에서 볼 때 열왕기서는 인간이 이토록 패역하고 부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왕위를 폐하시거나 빼앗지 아니하시고 어떻게 계승시켜 내려 오셨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하신 것은 다윗과 세운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하면 다윗의 위에 오를 메시야를 탄생시키려는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열왕기서의 핵심 단어는 <왕위(王位)>이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한 유언 중에 <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이 그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2:4)>는 말씀이 있다.
또 솔로몬은 성전 봉헌 기도를 통해<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자기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 것같이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네게로 좇아나서 이스라엘 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8:25)>라고 기도하고 있고, 이러한 기도에 대해 하나님은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허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너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9:5)>라고 응답하신다.
이상에서 본 대로 왕위를 계승시켜 나가겠다는 것이 열왕기서의 주제이다. 따라서 우리는 열왕기서를 공부하면서 메시야의 왕통을 이어가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를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끊임없이 간섭하시고 함께 하셨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의 여러 왕들의 역사를 통해서 변치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을 깨닫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6. 열왕기서 연대의 이해
B.C 1050 사울왕 즉위
1010 다윗왕 즉위
970 다윗의 죽음
솔로몬 즉위
966 성전 기공
959 성전 완공
벱궤 안치
궁전 기공
946 궁전 완공
930 솔로몬 죽음
남북왕국분열
926 애굽왕 시삭의 침입
910 유다왕 아사의 통치 (-869)
875 엘리야의 사역 (-848)
874 이스라엘왕 아합의 통치 (-853)
872 여호사밧의 통치 (-847)
853 아하시야의 통치 (-852)
848 엘리사의 사역 (-797)
841 예후의 통치 (-814)
835 요아스의 통치 (-796)
793 여로보암 2세의 통치 (-753)
740 이사야의 사역 (-681)
728 히스기야의 통치 (-687)
722 사마리아의 함락, 북 이스라엘 멸망
697 므낫세의 통치 (-642)
640 요시아의 통치 (-609)
627 예레미야의 사역 (-580)
605 다니엘의 사역 (-530)
598 여호야긴의 통치
597 시드기야의 통치 (-586)
593 에스겔의 사역 (-570)
586 예루살렘 함락, 남 유다의 멸망
562 여호야긴의 출옥
7. 열왕기서의 역사적 배경
열왕기서는 제목 그대로 왕들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즉 솔로몬의 등극(주전 970년경)과 그로 말미암은 통일왕국 이스라엘의 번영과 부귀로부터 출발하여, 솔로몬 사후 왕국의 남북분열(주전 930년경)을 거쳐, 북 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주전 722년경)과 남 왕국 유다의 멸망(주전 586년경)으로 그 막을 내리고 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통일왕국은 사울(40년)-다윗(40년)-솔로몬(40년)의 120년이요, 분열왕국 이후로 복 왕국 이스라엘은 대략 208년이며, 남 왕국 유다는 대략 344년의 역사가 된다.
열왕기서는 솔로몬의 통일왕국(주전 930년경)에서 남 왕국 유다의 멸망(주전 586년경)까지 대략 4세기 동안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이해하고 본문의 배경을 이해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1. 앗수르의 강성과 북 왕국 이스라엘의 멸망
솔로몬의 시대에 있어, 이스라엘의 주변에는 위협이 될만한 강대국은 없었다. 앗수르는 아직 세력이 규합되지 않은 보잘 것 없는 나라였고, 애굽 역시 람세스 3세 이후로 그 세력이 급격히 쇠퇴하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앗수르는 디글랏-빌레셀 3세(주전 745-727년경)때에 이르러 세력이 크게 회복되어 이스라엘을 위협하였다.
마침내 앗수르는 살만에셀 5세를 거쳐 사르곤 2세(주전 722-705년경)때에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함락시켰다(주전 722년경). 그리고 산헤립(주전 705-681년경)때에는 남왕국 유다까지 침공하여 많은 성읍들을 탈취하였다. 뒤이어 앗수르의 에살핫돈(주전 680-669년경)과 앗술바니팔(주전 669-626년경)때에는 앗수르의 세력이 애굽에까지 뼡쳐나갔다.
2. 바벨론의 등장과 남 왕국 유다의 멸망
하지만 앗수르의 후미에서는 강력한 신흥세력이 나타나 그 세력을 팔레스틴까지 확장해 오고 있었다. 新바벨론이 그들이었다. 이에 큰 위협을 느낀 앗수르는 애굽과 연합하여 중근동의 패권을 놓고 일대 격전을 벌렸다. 그 전투가 유명한 갈그미스전투(주전 605년)이다.
여기서 앗수르와 애굽의 동맹군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크게 패했다. 이후로 앗수르는 몰락의 길을 걸었고, 애굽은 그 세력이 현저하게 약화되었다.
한편, 갈그미스 전투의 승리로 고대 중근동의 패권을 거머쥔 바벨론은 그 세력을 팔레스틴까지 확장시켜 3차례에 걸쳐 유다를 침공했다. 그 결과, 남 왕국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은 마침내 주전 586년경에 바벨론에 의해 함락되었고, 유다의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다. 이것이 바벨론에서의 70년간의 포수(浦囚)생활의 시작이었다.
8. 솔로몬
<평화> 혹은 <평화로운>이란 뜻이다. 다윗의 열 번째 아들로서 밧세바의 두 번째 자식으로 태어났으며, 이스라엘의 제 3대 왕으로서 40년간을 통치하였다. (삼하 5:14, 12:24) 솔로몬의 이름은 <주의 사랑받는 자>란 의미를 가진 <여디디야>라고도 불리워졌다.
그는 완전하였지만 실패했던 자이다.
솔로몬의 어린 시절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여디디야라는 그의 이름은 나단에 의해 주어진 것이지만 다윗이 하나님의 호의를 되찾게 되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그것 자체의 거룩한 성격 때문에 반복해서는 불려지지 않았다.(삼하 12:25)
주님의 사랑 받는 자가 의미하는 바는 특별한 선물이 주어졌다는 것이다(삼하 12:24,25). 젊은 시절의 솔로몬에게는 그의 모친과 나단이 매우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짐작을 한다. (왕상 1:11-12...나단이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고하여 가로되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됨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이제 나로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아들 솔로몬의 생명 구원할 계교 베풀기를 허락하소서.)
솔로몬의 인격과 통치에 관해서라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알렉산더 휘테의 말에 동의하지 아니할 수 없다. <솔로몬의 실패는 확실히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것임에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예표를 찾는다면 그는 바로 솔로몬이 될 것이지만 솔로몬은 매일 매일의 음탕한 생활로 인하여 결국 실패자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살펴보면 솔로몬은 히브리역사에서 기대에 어긋나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얼마나 유리한 조건으로 시작했는가? 그는 다윗으로부터 확실한 왕위를 물려받았으며, 거대한 부를 소유할 수 있었고,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재능을 부여받았으며, 백성들의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지니고 시작했다.
솔로몬의 시작이란 마치 구름 한 점 없는 여름날 새벽과 같았으며, 그의 생애 동안도 아름다운 날들이 계속되었으나 그의 말년은 먹구름이 끼고 말았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께서 금하셨던 길을 이리 저리 방황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의 시작은 거창했으나 끝은 비참하였다. 수천 가지의 지혜로운 사실들을 쓰고, 설교했던 바로 그 사람이 그 가르쳤던 지혜를 실천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솔로몬이 행한 업적은 그의 부친이 물려준 왕국을 더욱 견고하게 다지는 것이었으며, 그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놀랄만한 성과를 이룩했다. 동양적 전제군주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므로 솔로몬은 이스라엘 역사상 유례없는 영향과 명성과 광채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대체로 솔로몬은 백성들의 번영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기 자신의 강화를 위해서 애썼던 것 같다.
솔로몬이 이룩한 예술적이고 문학적인 업적은 백성들에게 많은 이익을 남겨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솔로몬의 영광은 또한 백성들에게 눈물과 신음소리를 가져왔던 것이다.
다윗이 성전건축을 위해서 남겨 주었던 막대한 재산은 솔로몬의 사치스러운 소비성으로 인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고, 백성들은 무거운 과세를 부담해야 했으며, 솔로몬의 엄청난 변덕으로 인해 가난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들에 핀 백합화가 솔로몬의 빛나는 옷이나 영광보다도 더욱 더 아름답다고 말씀하셨다.
솔로몬이 그의 생애 초기에 가졌던 소원은 가장 칭찬할 만한 것이었다. 그의 꿈도 이러한 그의 소원을 자연스럽게 들어낸 것이었으며,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지혜는 이것에 대한 확증이 된다.(왕상3장) 그리고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드렸던 제사는 그가 종교에 있어서 모든 외적인 것들이 장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을 암시한다. 또한 솔로몬이 드렸던 괄목할만한 기도도 참된 경건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그가 하나님을 깊이 인식하며 기쁘게 살아가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솔로몬은 그의 말년에 이르러 그의 명성과 경건성에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1,005편의 시편들과 3,000편의 잠언을 기록했고,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 이 세상 최초의 위대한 자연주의자는 애굽의 여인을 왕비로 맞아들임으로써 그의 생애가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다윗보다도 높은 존재였던 바로의 딸은 이스라엘의 선민사상에 충격과 슬픔을 안겨 주었음에 틀림없다. 이 이방인 여인은 그녀의 이방 신들을 함께 가지고 들어 왔던 것이다.
그리고 난 후 솔로몬에게 죄를 짓게 했던 이방 여인들이 후궁으로 들어왔다(느 13:26). 솔로몬의 사랑을 나눠 받았던 700명의 부인들과 300명의 첩들은 솔로몬을 우상숭배자로 만들어 버렸다(왕상 11:1-8). 그러한 거대한 일부다처제나 그의 부인들에게 자신들의 이방 신들을 숭배하도록 허락해 준 사실만으로도 나쁜 것은 사실이지만 솔로몬 자신이 건립한 성전에서 그러한 신성모독적인 의식을 거행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으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방탕과 탐욕은 솔로몬의 타락을 초래하게 되었다. 솔로몬이 썼던 전도서에서 그는 확실히 그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던 곳으로 나타난다. 모든 강은 솔로몬의 바다로 흘렀다. 즉 지혜와 지식, 술과 여자, 부와 명성, 음악과 노래의 모든 것이 솔로몬에게서 나왔다. 그는 그 모든 것들을 시도했으나 모든 것은 헛된 것이며 영혼의 고통이 될 뿐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로 인하여서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아니 하나님이 떠나셨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실제적인 죽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는 단지 60세의 노인으로만 언급되어 있다. 솔로몬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 왔는지의 여부에 관해서는 초대 교부들 사이에 격렬한 논란이 있었다. 그의 회개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없다. 그는 결코 그의 부친 다윗과 같은 참회의 시편을 쓴 적이 없다(참조 시편 51편).
우리는 솔로몬이 피를 마시는 것보다도 더 쓰게 자신을 후회하며 혐오하는 모습은 보지만, 그가 자신의 죄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용서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은 발견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전개된 그러한 비극적인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솔로몬의 지혜가 그 자신을 통제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하겠으며, 그가 남긴 유일한 유산은 어리석고 이해심이 부족한 아들 하나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솔로몬
그는 '다윗'왕의 아들이요, '밧세바'의 소생이다. 출생 전에 여호와께서 이 이름을 주시고, 출생 후에는 '나단'을 보내사 달리 '여디디야'라 불렀는데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사랑하심이다.>라는 뜻이다. 그런 것을 '다윗'은 '솔로몬'이란 이름으로 통용케 하였다(대상 22:9, 삼하 12:24,25, 마 1:6).
약 12세 때에 그 형 '압살롬'의 난을 피하여 부친을 따라 "마하나임"에 가 있다가 평정한 후에 다시 환궁하였다(삼하 15:, 18:9, 20:3).
그는 어릴 때에는 선지자 '나단'에게서 교육을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한편 저의 모친은 한갓 미모일 뿐 아니라 기지가 있어 대신들을 손아귀에 넣고 농락하는 재능이 있었다. 밧세바는 먼저 '다윗'이 죽기 전에 자기 소생자인 '솔로몬'으로 하여금 성전을 건축하는 일과 왕위를 계승하는 일을 적극 추진하였다. 그러나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은 '아도니야'를 왕위에 앉히려고 하였다. 이것을 탐지한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은 '밧세다'에게 보고하고 '밧세다'는 '다윗'왕을 재촉하여 '솔로몬'에게 선위할 것을 선언케 하였다. 그러자 다윗 왕은 군신을 모아 놓고 그 뜻을 발표하였으며, 제사장 사독과 선지 나단이 기혼에서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았다. 그 때 백성의 환호성이 성중을 진동하였다(왕상 1:5-6, 28-40)고 했다.
이런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제 3대 왕이다(주전 970-930년 재위). 솔로몬이 왕위에 올라 첫 번째 한 일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무엇이든지 구하면 허락하겠다고 말씀하시니 솔로몬은 지혜를 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가상히 여기사 부귀를 겸하여 주셨다(왕상 3:3-15).
이 때에 창기 두 사람이 함께 와서 송사하였는데, 곧 이 두 사람은 한 집에 사는 중 동시에 해산을 하였다. 한 사람이 자기가 그 아이를 깔아 죽이고 다른 여자의 아이와 바꾸어 가버렸다. 아침에 다른 여자가 자세히 살펴보니 죽은 아이가 자기 아들이 아니라 상대방의 산 아이가 자기의 아들인 것을 알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다투다가 솔로몬 왕에게 온 것이다. 왕은 칼을 가져 오라 하여 산 아이를 둘로 나눠 반씩 주겠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산 아이의 어머니가 애걸하면서 <그 산 아이를 죽이지 말고 차라리 저에게 주소서.>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한 여자는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였다. 그러자 솔로몬은 <그 아이를 죽이지 말라>고 한 여자에게 아들을 주라고 판결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가 그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왕상 3:15-28).
솔로몬은 정부를 조직할 때 중앙에는 제사장에 '사독' '아비아달' '아사랴' 서기관에 '엘리호렙', '아히야'요 사관에 '여호사밧'이요, 군대장관에 '브나야'요, 관리장에 '아사랴'요, 대신에 '사붓'이요, 궁내 대신에 '아히살'이요, 간역관에 '아도니함'이요, 그 외에 왕실의 식물을 위하여 열두관장을 두어 한달씩 교대하게 하였고, 지방에는 적재적소로 배치하니 그 판도는 "유브라데스"강까지이므로 인구는 해변의 모래같이 많아지고 그 지경의 모든 나라는 공을 바치니 솔로몬의 일일분 식물은 맥분이 90석이요 소가 30두요, 양이 100두이고, 그 외에 노루, 사슴, 조류들이 무성하였으며(왕상 4:1-23), 백성은 태평연월을 부르며 안일한 생활을 하였고(왕상 4:25), '솔로몬'은 동양인과 "애굽"인에 뛰어난 지혜로서 3천 잠언과 1005의 노래를 짓고, 또 초목과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의 금수어별을 논하였으니(왕상 4:30-34) 곧 성경 중의 잠언, 전도, 아가, 시편 중 5편이다.
사방에 대적이 없고 재앙도 없이 태평을 누리게 되므로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로 작정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두로"왕 히람과 약속하고 "두로"의 백향목과 잣나무를 가져 올 것과 건축공을 데려오기로 하고 그 외에 석공을 고용하기로 하여 모든 준비를 완전히 마쳤다. 그 때 일했던 역군이 3만이요, 짐군이 7만이요, 석공이 8만이요 간역관이 3300이요, 감독관은 '아도니람'이었다(왕상 5:).
성전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지 480년, 곧 주전 1011년에 착공하여 동 1004년에 필역하니 그 동안에 전 내에서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왕상 6:). 계속 하여 자기 궁을 13년 동안 건축하고 또 성전의 모든 기구를 만들었다(왕상 7:).
그리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신축한 성전에 옮긴 후 '솔로몬'왕이 장로와 족장과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소 2만 2천과 양 12만을 드려 화목제를 드리고 겸하여 성전의 낙성식을 거행하였다(왕상 8:).
솔로몬이 성전과 궁전을 건축함에 "두로"왕 '히람'이 백향목과 잣나무와 금과 또 목, 석공 많은 인부를 공급하였으므로 매년 밀 2만석과 맑은 기름 20석을 준 외에 "갈릴리"의 20성읍을 주니 '히람'은 또 금 540달란트를 '솔로몬'에게 가져 왔으며(왕상 5:11, 9:11,14,28), "스바"여왕이 솔로몬을 데리고 많은 향품과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싣고 와서 '솔로몬'의 모든 정치제도를 보고 지혜를 들은 후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물으니 낱낱이 대답하매 당신의 지혜를 내 나라에서 들은 것은 와서 목도한 것의 반분도 못된다고 경탄하였다(왕상 10:1-10).
이 외에도 원근의 모든 나라 왕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금, 은 기명과 향품과 말 등을 무수히 가져오니 은은 돌같이 흔하고 백향목은 뽕나무같이 많았다(왕상 10:23-27). 그리고 "두고", "베니게", "애굽", "다시스", "아라비아"와 멀리 "인도"까지 통상하니 당시에 부강함이 천하에 돋보였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주신 특출한 지혜와 풍만한 은혜로 이와 같이 국태민안하게 된 것을 망각하고 "애굽" '바로'의 왕녀를 비롯한 여러 이방여자를 비빈으로 1천을 모아들일 뿐 아니라 이방신 곧 "시돈"의 여신 아스다롯, "암몬"의 밀곰과 몰록 "모압"의 그모스 등을 끌어 들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그 아들의 대에 나라를 분열하겠다 하시고 복속하였던 "에돔"인 '하닷'과 "수리아"왕 '르손'등이 이반케 하셨다(왕상 11:1-25).
솔로몬은 21세에 즉위하여 40년간 재위하고 60세에 별세하니 그 아들 르호보암이 계위하였다(대하 9:30,31).
--참고
본문 : 삼하 12:13-35
제목 : 여디디야
본문 25절에 보니 ‘여디디야’란 말의 뜻은 ‘여호와께서 사랑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셨다는 의미이고 다윗의 믿음을 사랑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우리가 인간적인 면에서 살펴 볼 때에는 본문의 여건 속에서 다윗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조금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을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보여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의 사건을 통해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대해 말씀을 나누면서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윗과 밧세바의 사건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성군이라 일컫는 다윗도 그의 일생에서 지울 수 없는 큰 죄를 두 가지 저질렀습니다. 하나는 인구 조사를 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불신한 행위요, 또 하나가 본문 바로 직전에 언급되어지는 밧세바와의 간통 사건입니다.
바로 앞장인 사무엘하 11장에 보면 다윗과 밧세바와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암몬 족속과의 전쟁을 위해 많은 군사를 파견했습니다. 그런데 전쟁에 나간 장군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여인을 데려다가 동침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징계하심인지 마침 임신을 하게 되었고 생각다 못한 다윗은 그의 남편인 우리아를 불러 들여 특별 휴가를 주어 밧세바와 동침케 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아는 전쟁 중에 평안히 지낼 수 없다고 하여 부하들과 같이 진중에서 잠을 자고 전쟁터로 나가 버렸습니다. 고민하던 다윗은 우리아 편에 서신을 보내어 군대 장관으로 하여금 우리아를 최전선에 보내어 죽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밧세바를 데려다가 아내로 삼았던 것입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렸으나 다윗의 이런 죄악은 이중적인 죄가 되고 말았습니다. 즉 간음죄와 살인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그때 밧세바와 간음하여 임신했던 아이를 낳았습니다. 결국 그 아이는 병이 나서 7일 만에 죽었고 다윗이 다시 밧세바와 동침하여 솔로몬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여디디야’ 라고 했다고 했으며 이것은 여호와께서 다윗을 사랑했음이라고 본문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문의 사건을 이해하면서 본문이 주는 교훈을 깨닫고, 궁극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귀한 시간이 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우리의 범한 죄는 반드시 그에 따른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본문 15절에 보니 “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았다”고 했고, 18절에 보면 결국 이래만에 그 아이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밧세바를 우리아의 처(妻)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의 상황은 밧세바가 다윗의 처가 되어야 합니다.
11장 27절에 보면 다윗이 밧세바를 데려오니 다윗의 처가 되어 아들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다윗의 부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본문 15절에서는 우리아의 처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밧세바가 임신하던 때가 분명히 우리아의 처이었을 때이고, 다윗과는 간통의 죄를 지은 결과 생긴 아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 아이는 밧세바가 분명히 우리아의 처로 있을 때 다윗과 간음하여 생긴 아이였기에 어쩜 죄악의 씨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따라서 본문에선 ‘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죄는 용서하여 주셨지만 그 죄의 값은 치러야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죄를 쉽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는 그 값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우리의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은 무조건 용서해 주신다는 생각이 앞서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죄의 값은 분명히 치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죄의 값은 본문의 다윗처럼 즉시 임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우리의 죄값을 자손들에게 거두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언젠가는 우리의 죄에 대한 값을 치루어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에 무조건 용서해 줘 버리면 또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자식이 잘못 했을 때에 가끔 따끔하게 때려 주고 깨닫게 해주면 다시는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불평만 하지 말고, 지난날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일이 없는가 깊이 생각하고 회개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합시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더 사랑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징계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 낼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의 길을 걸어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 째로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또 한가지 사실은 지은 죄에 대하여 통분이 여기고 회개하는 자를 하나님은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보면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라고 했고, 20절에도 보면 아이가 죽은 것을 알고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해 봅시다. 설령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해도 아들이 죽어 버렸는데 하나님께 경배한다고 하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는데, 금식하며 밤새도록 위해서 기도하던 그 아이가 죽었는데 하나님께 경배하기가 쉬운 일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욕하고 저주했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하며 넋을 잃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에 묵묵히 순종하며, 오히려 하나님께 회개하였더니 하나님께 은혜를 베푸시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삶이 이러한 극한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며 회개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의 삶이 되어지길 바랍니다.
아마도 다윗은 이런 생각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나의 죄값이니 하나님의 뜻에 묵묵히 순종하겠나이다. 주여! 나를 용서하옵소서.’ 그랬기에 다윗은 몸은 씻고 옷을 갈아입고 기름을 바르고 하나님께 경배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상한 영혼을 위로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시편 34:18절에 보면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나약한 우리 인생이기에 비록 나의 죄값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삶 속에서 형언하기 힘든 고통과 시련이 있을 때에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통회하는 심령으로 주의 음성을 갈망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위로의 음성을 들려주실 것입니다. 환난 날에 주님을 부르면 주님이 건져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괴로움과 고통의 시간들이 위로와 축복의 시간으로, 감사의 시간으로 바꿔지게 합시다. 다윗의 이러한 아름다운 삶이 솔로몬을 얻게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삶에 참기 어려운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 오기도 합니다. 때로는 물질로 인한 고통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자녀와 남편으로 인한 시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당하는 시련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발견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 하나님은 더 큰 것으로 채워 주시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Harry Bollbackdml의 찬양 ‘주님의 얼굴을 보라’는 바로 이러한 고통에서 처한 뭇 성도에게 주는 찬양입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을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괴로우시면 주님을 보십시오.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위로부터 내리는 은혜를 사모하며 더욱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보내십시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더욱 더 사랑해 주실 것입니다. 더 큰 축복을 소망하며 오히려 믿음으로 연단 받고 회개의 기회를 삼는 귀한 생활이 되시길 바랍니다.
끝까지 참고 인내하면서 하나님을 구하는 심령에게는 하나님이 더 큰복으로 채워 주신다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를 본문은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은 하나님의 징계로 낳은 지 7일만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식적인 부부 관계에서 밧세바와 동침하니 솔로몬을 낳았다고 했고, 또 24절, 2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 하사 선지자 나단을 보내사 그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심을 인함이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자식을 잃고도 회개하는 심령으로 하나님께 경배 드리며 찬양한 다윗에게, 하나님은 솔로몬이라고 하는 큰 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솔로몬이 어떤 사람입니까? 잘 아시는 대로 솔로몬은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다스린 왕으로서 통일 왕국의 최고의 왕이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정을 베풀었던 의로운 왕이었습니다. 물론 그에게도 허물은 있었지만, 그래도 그런 통치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하심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은 아들이었기에 하나님이 그의 평생을 책임져 주신 것입니다. 평생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한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복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 하나의 구원을 위해 독생자 예수님마저도 버리시는 사랑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하여도 오히려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진대 하나님은 우리의 앞길을 형통하게 열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는데 누가 감히 우리를 넘볼 수 있겠습니까? 다윗에게 함께 한 하나님의 사랑은 오늘 이 시간에도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사실 다윗이 그의 생애에 있어서 용서받지 못할 굵직굵직한 죄를 지었으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상실치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한 마디로 그의 회개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단의 책망을 받은 다윗은 본문 13절에서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다윗의 눈물어린 이 고백은 그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고백은 자신을 하나님의 저주의 자리에서 축복의 자리로 옮기는 고백이었고, 잃어버릴 뻔했던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한 고백이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의 심령 속에 이런 고백이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이러한 고백이 계속 되어져서, 회개한 다윗에게 ‘여디디야’의 축복으로 채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생애 속에도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9. 신학적 메시지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은 587년에 남북이 모두 멸망하고 말며, 더군다나 포로의 삶이 또 시작된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도우시지 않았는가? 예루살렘의 멸망은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간섭하시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멸망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두셨는가?
1) 언약의 저주에 근거하여 그 백성을 포로로 끌려가게 했다는 것이다.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은 후에 언약을 어길 경우에 임할 저주에 대해서 경고한 적이 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그 저주들이 나온다. 그 저주들은 질병, 기근, 인육을 먹는 것, 포로됨이다.
ㄱ.질병 : 신 28:21-22 <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이 들게 하사 네가 들어가 얻을 땅에서 필경 너를 멸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페병과 열병과 상한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케 할 것이라.> 이것이 사무엘하 24장에서 성취되었다.
ㄴ.기근 : 신 28:23-24절의 성취는 왕상 17-18장에서 이루어진다.
ㄷ.인육을 먹는 사건 : 신 22:53-57절의 성취는 왕하 6:24-30에서 이루어진다.
ㄹ.포로됨 : 신 28:49-52절의 성취는 왕하 17:24-32, 25:18-24절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열왕기서의 기자는 유다의 멸망은 갑자기 온 것이 아니고, 언약에 근거하여 온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것은 솔로몬이 죽을 때, 이미 권고했고 징계했다. 그리고 오래 참다 기근을 보내서 경고했고, 인육을 먹음으로 경고했고, 선지자들을 보내 경고했다. 요시야를 통해서도 경고했지만 결국 그들이 돌아서지 않자 끝내 하나님은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것이다.
유다 왕조는 380년 동안 지속된 것이다. 하나님은 참다못해 결국 이스라엘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어긴 이스라엘에게 임한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였다.
2) 여호와는 역사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으로서 계속 배반하는 그의 백성들을 정결케 하고, 그의 목적에 맞도록 재성결케 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을 보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암울해 보이지만 그 기저에 오래 참고 그의 백성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에 매우 낙관적이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의 통치 수단이라는 것을 잘 보여 준다. 562년에 여호야김왕이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고, 562년 고레스 왕이 등장하는데, 그는 페르시아의 왕이었다. 그는 메대를 공격했을 때, 메대 왕이 상당히 나약했으므로 메대 군들이 자기들의 왕을 고레스에게 넘겨줌으로 메대가 파사에 합병된다. 결국 그들이 바벨론을 공격함으로 바벨론의 80여년의 역사가 종말을 고한다. 이것이 538년의 역사이다.
520년 스룹바벨이 돌아온다. 그리고 515년 성전재건을 하고, 458년 에스라가 율법을 세우고, 445년에는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한다. 결국 겉으로 볼 때는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작은 나라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도 힘이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성경 기자는 성전재건이나 율법, 성벽재건의 칙령이 황제에게 내려지는 것을 보면서, 솔로몬 성전에 비하지는 못하지만 살아있는 공동체로 다시 회복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황제들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그 뒤에 있는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성경기자는 강조하고 있다. 때문에 이것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도 바벨론 황제에 의해서 세우고 있다. 그러므로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이루시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 한국이 강대국 사이에 있지만, 그들이 세상을 주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을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는 역사의 주인이라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만을 섬기라는 것이다.
3) 열왕기 기자는 회개하라는 것을 강조한다.
과거의 죄를 기억하고 모든 소망을 포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에스겔 33:11에서 하나님의 편벽되고 곧지 못한 성품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라, 수없이 경고하고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면 살려 주시겠다는 약속의 메시지가 들어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왕상8:46-50의 솔로몬의 성전 건축 기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솔로몬의 기도는 열왕기 기자의 의도를 잘 보여 준다.
-왕상 8:46-50 <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저희가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저희에게 진노하사 저희를 적국에게 붙이시매 적국이 저희를 사로잡아 원근을 물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 저희가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패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 열조에게 주신 땅 곧 주의 빼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저희의 일을 돌아보옵시며 주께 범죄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주께 범한 그 모든 허물을 사하시고 저희를 사로잡아 간 자의 앞에서 저희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하사 그 사람들로 저희를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
10. 열왕기 연대의 해결 아더 쿤덜(ARTHUR CUNDALL)
얼핏보면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에 관한 자료만 가지고도 정확한 연대표를 충분히 작성할 것 같은 생각이 들 것이다.
각 왕의 통치기간이 분명히 제시되어 있다. (사울왕의 경우는 제외된다. 삼상13:1은 불확실하다 :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
또 이스라엘과 유다의 분열이후의 기간 동안에는 각 왕의 등극이 상대 왕국 왕의 통치와 관련되어 있다.
또한 예후가 한날에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를 죽인 경우(왕하 9:21-28)와 같이 한 사거건이 두 왕국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 곳에는 "확실한 표시들"을 해두고 있다. 열왕기 저작자는 두 왕국의 연대기를 조심스럽게 통합시킨다. 그는 한 왕의 통치기간을 그의 등극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으로 다루고 난 다음 이 기간 중에 통치를 시작한 상대 왕국 왕들을 다룸으로써 두 왕국의 역사들을 서로 병행시키고 있다.
다만 유일하게 예외가 열왕기하 8-9장에 나오는데 그곳에 보면 예후가 요람과 아히시야를 죽인 사건이 열왕기 저작자로 하여금 유다 왕 여호람과 아하시야를 언급할 필요를 느끼게 만들어 주고 있다(왕하 8:16-29). 정상적으로 다루어졌다면 그 왕들은 이스라엘 왕 요람이 죽고 난 뒤에 가서 언급되었을 것이다.
1)문제들
하지만 자세히 검토하게 되면 심각한 문제들이 일어난다. 예를 들면, 유다 왕국에 있어서 르호보암에서 아하시야의 죽음에 이르는 전기간이 95년인데 반하여 이스라엘 왕국에 있어서는 그와 동일한 기간인 여로보암에서 요람의 죽음까지 98년이나 된다.
그보다 더 큰 모순점이 예후의 거사에서 사마리아의 함락에 이르는 기간에서 나타난다. 이 기간 중 유다 왕들의 통치기간을 모두 합하면 165년인데 반하여 이스라엘 왕들의 통치기간을 모두 합하면 144년밖에 안된다. 그 이상의 사소한 문제 하나는 곧 섭정을 한 여왕 아달랴가 6년간을 통치하였다는 언급(왕하 11:3)을 우리가 대하고 있음에도 일반연대의 계산에는 이 여왕의 통치기간이 포함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외견상 이스라엘 왕 여호람의 등극 연대에 대한 기록들 (왕하 1:17과 3:1)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서 또 하나의 두통거리를 안고 있다. 솔로몬의 죽음이 B.C. 930년 이전이었을 리는 없다는 것이 사리에 맞는 결론일 것이다. 이것은 솔로몬의 죽음과 B.C. 587년의 예루살렘 함락 사이의 기간을 대략 343년으로 추정하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의 연대적인 숫자들을 가장 낮게 계산하더라도 이 기간은 대략 372년에 달하게 된다.
2)해결의 실마리
그러나 다음 세 가지 요인들이 그 기간의 연대에서 발생하는 외견상의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크게 증진시켜 주는 동시에 그 문제들을 완전히 해결하는 일을 상당히 진척시켜 주고 있다.
@ 고대 근동에서는 왕들의 통치기간을 계산함에 있어서 두 가지 서로 다른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 하나는 "양입계산법"이고 다른 하나는 '단입계산법'이었다.
양입계산법에 있어서는 한 왕이 죽고 다른 왕이 그 위를 계승하면 그 해는 이중으로 계산이 되었다. 이는 죽은 왕이 그해를 다 채우지 못하였어도 완전한 1년으로 계산하였고 또 그의 뒤를 이은 왕이 그 해의 나머지 기간 곧 1년의 일부를 통치하였어도 그것을 완전한 1년으로 계산하였기 때문이다. 이 계산을 정확한 연대계산으로 환원하기 위해서는 각 왕의 통치기간에서 1년씩 삭감해야 한다.
단입계산법에서는 한 왕의 전 통치기간에 등극한 해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완전한 한 해가 못 되는 그의 첫 해는 그의 등극의 해로 간주되었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정확한 연대계산이 나왔다.
왕국 분열의 초기에 이스라엘은 양입계산법을 사용하고 유다는 단입계산법을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 두 왕국 사이의 전 통치기간에서 발견되는 모순은 이 기간에 있어서 이스라엘 왕들의 숫자가 더 많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 어떤 통치기간들은 섭정으로 인하여 서로 중복되어 있다.
이에 대한 선례는 다윗과 솔로몬은 경우에서 발견되는데 그 섭정은 아도니야가 실권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왕상 1장). 또 하나의 분명한 예는 요담의 경우로서 그는 그의 부친 웃시야가 문둥병에 걸렸을 때 섭정자로서 행동하였다(대하 26:21). 유다 왕국에만 국한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이 관습은 분명히 다윗 왕조를 견고하게 해주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아사와 여호사밧, 여호사밧과 여호람, 아마샤와 웃시야, 요담과 아하스, 아하스와 히스기야, 그리고 히스기야와 므낫세 사이의 섭정기간을 인정하고 있다. 어떤 경우들에 있어서는 나아가 더 적은 자(예를 들면, 히스기야)가 그의 부친(아하스)보다 뛰어났는데 이것이 실제의 왕이라기 보다는 섭정자를 가리키는 언급을 통해서 사건의 연대를 추정하게 만들었다(예를 들면 왕하 18:9-10).
이 관습을 안다는 것은 곧 유다 왕들의 전 통치기간을 감축시킨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사실은 또한 우리가 성경의 숫자들이 지닌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유다 왕 므낫세는 B.C. 687년에서 642년까지 통치하였다. 열왕기하 21:1은 그가 55년간을 통치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로 697년부터 687년까지의 섭정 기간을 추정하게 해준다. 이 섭정의 가능성은 히스기야의 심각한 병으로 인하여 더욱 짙어지고 있다(왕하 20:1)
@ 어떤 통치기간들은 서로 동시에 진행된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은 필시 북방 이스라엘 왕국에서 여로보암 II세가 죽고 난 후 마지막 몇 십년의 요란한 기간 중에 있었던 일일 것이다. 이 시대의 여섯 왕들의 혼합된 통치기간은 41년 7개월이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그 기간은 31년을 채 넘지 못하였을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기간이 실제로는 24년 정도밖에 안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정부상태에 가까운 기간 중에는 경쟁적인 왕들이 그 왕국의 서로 다른 지역들을 동시에 "지배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왕국의 연대기적인 문제의 해결에 실마리를 두기보다는 성경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11. 분열왕국시대의 선지자들
열왕기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는가에 따른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열왕들을 평가할 때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했느냐 하는 문제가 평가기준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열왕들을 평가할 때 그들의 정치력이나 군사, 경제력이 어떠했느냐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떠했느냐 하는 점에 기준을 맞추고 있다. 이것이 세상 왕들과 다른 판단기준이다. 그렇기에 열왕기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왕들은 <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했더라.> 아니면 < 하나님 보시기에 선을 행했드라.>하는 식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그 시대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들어 쓰시고 그들을 들어서 왕을 견제하셨다. 즉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어 나가시기 위해 왕들이 잘못행할 때마다 선지자들을 들어 책망하시고 경고하신 것이다.
따라서 이사야 이후의 대,소선지서들은 대부분 분열왕국 시대에 하나님이 들어 쓰신 선지자들의 활동상이요, 저술이라 할 수 있다.
口述 선지자와 著述 선지자(記述)
다음 면에 열거한 선지자들 외에도 또 다른 선지자들을 많이 이야기할 수 있겠으나 위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볼 때 구술선지자란 기록한 성경의 책이 없이 그 때에 사역했던 선지자들을 말하고, 기술선지자란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기록을 남긴 선지자들을 일컽는다.
(도표는 다음 면에)
12. 내용개관 (Arend Remmers의 구약개관에서)
A. 왕상 1-11장 솔로몬 왕국
솔로몬의 즉위와 다윗의 죽음 1-2장
솔로몬이 지혜를 구함 3장
솔로몬의 통치 4장
성전건축준비 5장
성전건축과 성전기명 6-7장
성전봉헌과 솔로몬의 기도 8장
솔로몬의 위대함 9장
스바의 여왕 10장
솔로몬의 배역과 죽음 11장
선지자
활동시기와장소
관련왕들
주요활동,메세지
성구
아히야
934-909,이스라엘
여로보암
왕국의 분열과 여로보암의 등장을 예언함
왕상 11:29-39
엘리야
875-848,이스라엘
아합
아합의 죄를 견책,
갈멜산의 기적
왕상 17:1-왕하 2장
미가야
865-853,이스라엘
아합
아합이 아람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전사할 것임
왕상 22장
대하 18장
오바댜
855-840(?),유다
여호람
선민을 조롱하는 에돔을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임
오바댜
엘리사
848-797,이스라엘
여호아하스,예후,여호아스
엘리야의 후계자로 많은 이적과 기사를 베품
왕하 2-8장
13:10-21
요엘
835-796(?),유다
요아스
메뚜기 떼 재앙으로 경고,
더 큰 징계전에 회개할 것
요엘
요나
793-753,이스라엘
여로보암2세
니느웨를 향한 심판의 경고 및 회개의 촉구
요나
아모스
760-750,이스라엘
여로보암2세
부와 사치에 젖어 하나님을 망각하고, 가난한 자를 압제하는 권세자들에 대한 경고
아모스
호세아
753-715,이스라엘
므나헴,브가히야,배가,호세야
마치 남편을 버린 창부처럼 우상숭배에 빠진 백성을 향한 회개와 경고 촉구
호세아
미가
742-687,유다
요담,아하스,히스기야
남북왕국의 멸망을 예언하면서, 그것은 하나님의 채찍과 연단임을 선포
미가
이사야
740-681,유다
아하스,히스기야,므낫세
이방국가의 침입을 예언,
회개의 촉구
이사야
나훔
663-654,유다
므낫세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한 앗수르는 조만간 망할 것을 경고
나훔
스바냐
640-621,유다
요시야
하나님이 열방을 심판할 날이 곧 올 것을 경고,
스바냐
예레미야
627-586,유다
요시야,여호아하스,여호야김,시드기야
오직 회개만이 닦아오는 바벨론의 침략을 방지할 수 있음
예레미야
하박국
612-589,유다
여호야김,여호야긴,시드기야
비록 악인이 창궐하나 심판의 때는 오직 의인만이 믿음을 살 것임
하박국
다니엘
605-536,바벨론
느부갓네살,다리오,고레스
하나님의 주권 강조,
미래의 사건 예언
다니엘
에스겔
593-571,바벨론
느부갓네살
오직 회개만이 조국을 찾는 길임을 경고함
에스겔
B. 왕상 12장-왕하 17장 분열왕국
르호보암과 여로보암과의 왕국분열 12장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과 베델의 예언자 13장
여로보암과 르호보암의 통치 14장
유다왕 아비얌과 아사의 통치와 이스라엘왕 나답과 바아사의 통치 15장
이스라엘왕 엘라, 시므리, 오므리, 아합의 통치 16장
그릿시냇가와 사르밧과부에게 있었던 엘리야 17장
갈멜산 위의 엘리야 18장
호렙의 엘리야 19장
아합의 시리아와의 싸움 20장
아합과 나봇의 포도원 21장
아합의 시리아와의 최후 결전과 그의 죽음 22장
엘리야와 아하시야 왕하1장
엘리야의 승천 2장
여호람왕의 모압과의 싸움 3장
엘리사의 4가지 기적 4장
나아만의 병을 고침 5장
시리아가 이스라엘과 싸움 6-7장
엘리사와 하사엘 8장
예후의 통치 9-10장
유다에서의 아달랴의 통치 11장
유다왕 요아스의 통치 12장
이스라엘왕 여호아하스와 요아스의 통치 13장
유다왕 아마샤의 통치와 이스라엘왕 여로보암 2세의 통치 14장
유다왕 아사랴(웃시야)와 요담의 통치와 이스라엘왕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의 통치 15장
유다왕 아하스의 통치 16장
호세아의 통치와 북왕국의 멸망 17장
C. 왕하 18-25장 바벨론 유배까지의 유다 왕국
히스기야의 통치와 앗수르의 포위공격 18-19장
히스기야의 병과 그의 죽음 20장
므낫세와 아몬의 통치 21장
요시야의 통치와 성전에서 율법 책의 발견 22장
요시야가 우상숭배로 더러워진 땅을 정결케 함 23장
바벨론에 의해 버림받은 유다의 마지막 왕들 24장
예루살렘 파괴 25장
要 約 講 解
열왕기 상의 전반부의 장들에는 택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권세나 번영이나 세력이 절정에 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윗 왕이 여러 전쟁들을 성공적으로 끝냄으로써 국경은 크게 확장되었고, 또 모압과 암몬과 에돔같은 변경 국가들의 영토의 많은 부분이 이스라엘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국경 수비대를 멀리 다메섹까지 배치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이루어진 세력은 솔로몬 통치 기간 동안에는 계속 유지되었다. 솔로몬은 전쟁을 치룬 경험은 없지만 그의 통치는 내적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그는 외국과의 통상을 확대시켰고, 큰 건물을 세웠으며, 부를 증가 시켰으며, 또한 국가의 문화를 발전시켰다. 솔로몬의 통치 기간 동안 웅장하고 영화로운 그의 왕실은 이웃 열방들로부터 경탄과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12장부터는 이스라엘 국가가 차츰 기울기 시작하여 열왕기 하에 가서 완전히 기울어져, 한 때 번창하고 강력했던 민족이 이제는 가난하고 힘없는 국가가 되어 경멸당하다 못해 결국에는 포로 신세까지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저지른 죄악 때문이었다.
솔로몬에게는 만물을 관찰할 수 있는 뛰어난 지혜가 있었으나,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고 우상 숭배를 허용하는 우둔한 면도 있었다. 더욱이 그는 세금을 지나치게 거두어들임으로써 백성들로부터 불평 불만을 사게 되어 그가 죽자 곧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가운데 열 지파가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의 권위에 도전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북쪽 땅에 또 하나의 왕국을 세웠으니 그 후로 그 왕국을 이스라엘이라 했다. 솔로몬의 아들과 함께 남은 두 지파를 유다 나라라 했다. 이것이 분열왕국의 시작이다.
열 지파로 구성된 이스라엘 왕국은 우상 숭배를 토대로 하여 세워졌기 때문에(왕상 12:25-33) 모든 것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열왕기상이 끝나기 전 아합의 악한 왕비 이세벨은 바알을 섬겨 숭배하는 것을 이스라엘의 공인된 종교로 삼았고, 또 이세벨의 악한 딸 아달랴가 유다 나라의 여왕으로 앉게 되자 바알 숭배로 말미암아 이 나라의 영적 생활도 파괴되기 시작했다. 이 민족에게 남은 것은 분명한 파멸뿐이니, 이는 모두 그들이 하나님을 그들의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또 그 분에게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켐벨 몰간(G, Campbell Morgan)은 열왕기서를 소개하면서 <열왕기서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풍요와 번영의 시대에서 빈핍과 침체의 시대로 가는 한 민족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이것이 열왕기상의 전체적인 내용이라 할 것이다.
A. 왕상 1-11장 솔로몬의 왕국
# 솔로몬의 즉위와 다윗의 죽음 1-2장
1장
1. 아비삭이 늙은 다윗을 봉양
5. 아도니아가 왕위를 노림
11. 솔로몬 추대를 위한 나단의 계획
15. 다윗과 밧세바의 면담
22. 나단의 계책과 다윗의 결단
32. 솔로몬 즉위식을 명령
38. 기름 부음을 받은 솔로몬
41. 아도니아의 음모 실패와 솔로몬의 관용
- 열왕기상 1장에는 솔로몬 왕의 즉위와 그 전후의 사정들이 기록되어 있다. 본서의 저자는 분명히 이스라엘의 3대 왕 솔로몬에서부터 기록을 시작하는 것이 합당한 줄로 알고 있었으며, 다윗왕의 병환과 죽음에 관해 기록하고 있는 까닭은 솔로몬의 등극이 앞당겨져서 급히 이루어진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고, 솔로몬의 통치의 시초에 다윗 왕의 죽음이 미친 영향의 중요성을 보이기 위해 기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일이 순리대로 되었다면 솔로몬은 부왕의 죽음 후에라야만 왕위에 오를 수 있었으나, 아도니야가 국권을 찬탈하려 하므로 솔로몬은 급히 즉위해야만 했고, 이렇게 된 동기가 다윗의 극도에 이른 노쇠 때문이었으므로, 저자는 다윗의 노환과 죽음에서부터 그의 저술을 시작하고 있다.
또 저자가 이 부분의 기록의 자료로 쓴 것은 의심없이 <선지자 나단의 책(대상 29:29, 대하 9:29)>이었을 것이며, 이 사건의 시기는 주전 1015년경이다.
@ 아도니야
본문 5절 이하에 보면 왕위를 탐하는 아도니야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도니야는 <여호와는 주>라는 뜻이다. 아도니야는 헤브론에서 태어난 암논, 길르암, 압살롬, 아도니야, 스바댜, 이드르암 등 다윗의 여섯 아들 중 넷째 아들로 그의 어머니는 학깃이다. 아도니야는 순수한 사람이요, 미남이었다. 이런 면에서 압살롬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다윗이 저를 사랑하여 꾸지람을 피할 만큼 귀여워했다.>는 말이 있다. 아도니야는 암논과 압살롬이 죽자 자연히 왕위를 계승할 사람으로 여겨졌다. 더욱이 군대장관 요압과 아비아달 제사장이 아도니야를 지원하였으므로 왕위 계승을 솔로몬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하나의 작전을 짰다.
다윗이 늙어 기력이 쇠해지고 거동이 불편할 때에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돌곁에서 짐승을 잡고 모든 동생과 다윗왕의 신복들과 요압과 아비아달 등 많은 유다인을 청하여 왕위 계승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켰다.
그런데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당시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고 했던 동기는 다음과 같다.
(1) 왕자 중 아도니야의 연장자였던 암논은 다말 사건으로 인하여 피살되었고(삼하 13:29), 압살롬은 자기 아버지 다윗을 반역했을 때 군대 장관 요압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며(18:24), 길르압(다니엘)은 어렸을 때 죽은 것으로 보인다(대상 3:1). 따라서 아도니야는 당시 생존한 왕자들 중 최연장자였으므로 순서대로라면 왕위 계승 서열 1위였다. 따라서 왕위를 기대할 만 했다.
(2) 또한 아도니야는 용모가 준수한 자로 다윗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6절).
(3) 그리고 아도니야는 주위의 인물들, 특히 군대 장관 요압이나 대제사장 아비아달과 같은 사람들을 포섭할 만한 정치력이 있었고, 또한 그 같은 사람들에 의해 사주(使嗾)를 받았다(7절).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아도니야는 교만해져서 왕이 되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도니야는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뜻과 다윗 왕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역사의 모든 사건은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자는 결국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다(시 107:10, 11)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 때에 나단이 밧세바와 협력하여 하나님의 예언을 성취하는 계획을 진행한다. 결국 밧세바와 나단이 차례로 다윗왕에게 나아가 솔로몬을 왕으로 추천하여 사독과 나단과 근위대장 브나야로 기혼에서 솔로몬에게 기름을 붓고 왕을 삼았다. 그후 아도니야는 아비삭의 일로 죽게 된다.
- 기억할 말씀 : 왕상 1:37 또 여호와께서 내 주 왕과 함께 계심같이 솔로몬과 함께 계셔서 그 위를 내 주 다윗 왕의 위보다 더 크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2장
1. 다윗의 유언
10. 다윗의 죽음
13. 아도니아의 요구와 최후
26. 제사장 아비아달을 파면
28. 요압을 처형
36. 시므이를 처형
46 다윗의 죽음과 솔로몬 왕권확립
- 열왕기상 2장은 솔로몬의 왕권이 견고하게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3장 이후부터는 솔로몬의 본격적인 통치내용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본 장은 이스라엘의 최전성기요, 황금기라 할 수 있는 솔로몬의 통치시기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대한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솔로몬 왕국은 하나님의 나라를 예표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솔로몬 왕국이 여러 발전 단계를 거쳐 이상적인 형태로 완성되었듯이 하나님의 나라도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 세상에 임하여서 계속 성숙되어지고, 확장되어지다가 결국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하여 완성되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솔로몬은 매정하리만큼 그의 왕권에 도전하는 자들을 처벌해 나간다. 아도니야가 그렇고, 아비아달이 그랬으며, 요압과 시므이가 처형되었다. 이것은 어쩌면 다윗의 유언을 따른 것이며, 왕권의 강화를 위한 것이었다. 즉 솔로몬은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다윗의 유언을 철저히 지켰으며, 반대자들을 냉정하게 제거해 나갔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이런 영적인 나라를 방해하는 훼방자들을 과감히 처리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성이 있는가?
- 1-3절은 우리가 잘 아는대로 그 유명한 다윗의 유언의 말씀이다. 다윗은 죽으면서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겼다. 그 유언의 내용을 살펴보자.
1)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그 모든 율법을 준행하는 것이 행복의 비결임을 당부했다(3절). 즉 백성의 수나 강력한 군사력, 많은 무기,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솔로몬의 왕국 통치나 개인적인 삶의 비결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법도와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그 비결임을 강조한다(신 17:16-20 참조).
2) 다윗은 자기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자기 손으로 시행하지 못한 <하나님의 공의>를 솔로몬이 대행해 줄 것을 분부하며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1) 요압이 아브넬(삼하 3:27-30)과 아마사(삼하 20:9-10)를 제 멋대로 죽여 무고한 피를 흘리게 한 사실을 상고하면서 요압으로 하여금 그 대가를 치르도록 하라고 유언했다.
(2)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하여 피난하던 다윗 자신을 선대하고 호의를 베푼 바실래의 아들들에게 마땅히 보상해 줄 것을 유언했다(삼하 17:27-29, 19:31-39 참조).
(3) 역시 압살롬의 반란을 피하여 마하나임으로 가던 다윗 자신에게 지독한 욕으로 저주했던 시므이(삼하 16:5-14)를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라고 유언했다.
결국 이것은 악에 대한 보응과 선에 대한 보상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 단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 기억할 말씀 : 왕상 2: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 솔로몬이 지혜를 구함 3장
1. 솔로몬이 바로의 딸과 결혼
2. 솔로몬 통치 초기의 종교적 상황
4.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번제
9.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
16. 솔로몬의 지혜로운 재판
- 2장에서는 솔로몬이 자신의 정적을 처벌함으로 왕권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2:46). 그리고 여기 3장에서부터는 솔로몬의 통치 초기 시절을 기록하고 있다. 본 장에서는 솔로몬 왕국이 대외적으로 열강의 위치에 올라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고, 그러한 번영 뒤에는 타락의 요소도 있었음(1-3절)을 알 수 있다.
그런데 3장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일천번제이다.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린다(4절).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일천이라는 숫자의 문제이다. 그 일천이라는 숫자가 횟수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양(量)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일천 번제를 드린다고 새벽마다 천 날을 계산해서 3년이나 되는 긴 시간을 기도하는 경우를 보았다. 그들은 일천 날로 계산을 한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대하 1:6절 참조.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단에 이르러 그 위에 일천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
어찌되었든 분명치는 않으나 어느 쪽이라 하더라도 엄청난 규모임에는 틀림없다. 무슨 말인가? 솔로몬은 백성들에 대한 통치를 시작하기 전에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정립하기를 원했다. 따라서 솔로몬은 신하들과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모두 이끌고 기브온 산당으로 올라가 자신과 백성들을 하나님께 전적 헌신하는 하나의 신앙 고백으로서 '일천 번제'를 드린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과 이스라엘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간구한 것이다. 한편, '번제'는 희생제물을 통째로 제단 위에서 불사르는 제사로서,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 정립을 원할 때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기를 원할 때, 누구든지 자발적으로 드릴 수 있는 자원제였다(레 1:3).
그러므로 솔로몬도 이러한 목적으로 그의 통치 초기에 왕 개인과 이스라엘 공동체의 헌신을 위하여 이처럼 기브온 산당에서 이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특기할만한 사실은 무엇보다도 그 규모 면에서 '일천 번제'라는 전무후무성인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전적헌신의 징표일 뿐 아니라, 즉위 초 솔로몬의 강렬한 헌신과 순종에의 열의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혹자는 이 제사 제물들을 힘껏 드린다 할지라도 최소한 7일, 또는 8일이 소요된다고 보았다(J. Hammond). 여하튼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은 신하가 군주에게 예물을 바치는 것처럼 충성과 헌신의 표시로 생각되었다(IDB;시 68:18).
그러므로 일천 번제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으로 믿고 모시는 솔로몬과 백성들의 신앙 고백 행위인 것이다.
- 기억할 말씀 : 왕상 3: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 솔로몬의 통치 4장
1 .솔로몬의 신하들
7. 왕실의 식량을 공급하는 관리들
20. 솔로몬 왕국의 번영
29. 솔로몬의 지혜와 총명
- 솔로몬의 혼인과 그의 종교적, 사법적 기능을 기록한 저자는 자연스럽게 솔로몬의 국정의 개관과 그의 신하들의 명단을 열거하고 끝으로 솔로몬의 무한한 지혜를 이야기한다. 마치 솔로몬의 국정보고서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한편 이러한 본 장이 솔로몬 시대라는 이스라엘 최고의 황금기를 소개하면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그 같은 번영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약속의 엄정한 성취라는 점이다. 또한 그 같은 번영은 하나님의 율법을 성심껏 지켜 행했던 솔로몬과 그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이었다는 점이다(2:3, 신 29:9).
왕상 2: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신 29:9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 난해구절이해
4:2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는 제사장이요>
본 절은 여러 가지 해석의 어려움을 안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은 다음과 같다. 즉
(1) 성경 여러 곳에서 사독의 아들은 '아히마아스'인 것만으로 나오고 있고(삼하 15:27; 18:27; 대상 6:8)
(2) 제사장 아사랴(아사리아)는 아히마아스의 아들이지 사독의 아들이 아니며(대상 6:9)
(3) 본 절 외에 4절에서 제사장들의 이름이 구태여 한번 더 등장하고 있다는 점등이다.
우선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가 누구냐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성경 용례상 종종 나타나듯 여기서도 '아들'을 가리키는 '벤'이 '후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2:8; 창29:5; 31:28등) 아사리아는 사독의 후손으로, 곧 그의 손자일 것으로 보는 견해(Hammond).
그런데 이 견해의 난점은 시간 간격상 사독의 손자가 당시 대제사장의 직위에 오를 나이가 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점이다.
(2) 아사리아는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형제일 것이라는 견해(Thenius).
그러나 이 견해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고, 더구나 제사장 가문의 족보를 알리는 역대상 6장에 위배된다.
(3) 본문 2절을 '제사장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로 고쳐 읽은 다음 3절과 연결시켜 아사리아를 시사의 아들 엘리호렙과 아히야와 같이 서기관으로 보는 견해(the Vulgate, Luther).
그러나 이러한 본문 수정은 무엇보다 문법상 액센트문제, 연계사 와우(*)탈락 문제 등으로 인해 지지받기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난점에도 불구하고 (1)의 견해를 가장 타당한 견해로 채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난점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면 해결될 수도 있다.
첫째, 아사리아의 부친 아히마아스는 일찍 죽었거나 아니면 어떤 이유로 대제사장직 수행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아사리아가 보다 유명한 조부 사독의 이름 하에 나올 수 있었다.
둘째, 솔로몬 시대에 아비아달과 사독이 대제사장직으로 있기는 하였으나, 아비아달은 곧 파멸되었고 사독은 고령이었기 때문에, 가장 오래도록 대제사장직을 수행한 아사리아가 이들과 같이 그리고 이들에 앞서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당시 사독은 매우 고령이었을 뿐만 아니라 솔로몬의 통치 기간은 길었기 때문에, 사독의 손자가 대제사장의 직위에 오를 수 있는 나이는 계산상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Pulpit Commentary).
한편 다음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아사리아의 직위인 '제사장'이 어떤 직위이냐 하는 문제이다. 이에 대하여 카일(Keil)과 베르(Bahr)는 여기 '제사장'의 '하코헨'은 '총리 대신'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그들은 '코헨'은 삼하 8:18절에서 '대신'(大臣)의 뜻으로 사용되었고, 또한 솔로몬 왕국의 관료 서열 중 맨 처음에 등장하는 위치를 들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즉 성경용례상 '코헨'이란 용어는 거의 대부분 순수히 '제사장'이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또한 일반적으로 '대제사장'을 가리키는 용어이다(de Vaux). 그리고 솔로몬 왕국의 가장 큰 업적은 성전 건축 사업에 있는 것인 만큼, 모든 관료들 중 대제사장이 가장 먼저 언급되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즉 아사리아(Azariah)는 사독의 손자로서(대상 6:8,9), 사독이 고령으로 맡은 바 대제사장직을 수행치 못하게 되었을 때 부친 아히마아스 대신 그 직을 승계하여 대제사장으로서 솔로몬 왕국에 봉사한 인물이다.
- 기억할 말씀 : 왕상 4:29-30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 성전건축 준비 5장
1. 솔로몬이 두로 왕 히람에게 교역을 제의
7. 두로 왕과 솔로몬의 교역 약조
13. 성전을 지을 솔로몬의 役軍들
- 5장에서 8장까지는 솔로몬의 가장 위대한 사역이라 할 수 있는 성전 건축에 대한 기사이다. 우리가 아는대로 다윗은 성전을 건축하고 싶었으나 피를 많이 흘린 관계로 이루지 못하고 솔로몬이 그 사역을 감당하게 된다. 사실 성전의 건축은 솔로몬의 가장 위대한 사역이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히브리 역사상 위대한 영광이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본 장은 먼저 두로 왕 히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왜인가?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 필요한 대부분의 자재와 인력을 거의 두로 왕의 조력에 의지했기 때문에 솔로몬의 히람과의 동맹기사로 본 장을 시작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
히람은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의 건축 사업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즉 히람은 솔로몬에게 성전건축에 필요한 백향목과 잣나무(10절)는 물론 숙련된 일꾼들까지도 기꺼이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5:6, 7:13, 대하 2:7-8, 13-14).
따라서 엄밀히 볼 때 솔로몬의 성전은 이스라엘인과 이방인들이 합작해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무슨 말인가?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중요한 복음적 진리(롬 3:29)를 예시해 준다.
-롬 3:29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 기억할 말씀 : 왕상 5:4 이제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의 태평을 주시매 대적도 없고 재앙도 없도다.
# 성전건축과 성전기명 6-7장
6장 : 성전 건축
1. 성전의 외부 건축
11. 솔로몬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
14. 성전 내부의 장식
23. 내소에 그룹을 만듦
29. 문설주와 문짝을 만듦
37. 성전을 건축한 기간
- 6장은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전 장을 할애하고 있다. 따라서 6장에서는 성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성전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구약의 역사를 이어 가는 가운데에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성전은 크게 셋으로 구분하였다. 첫째가 솔로몬 성전이요, 둘째가 스룹바벨 성전이며, 셋째가 헤롯 성전이다.
여기서는 솔로몬 성전과 스룹바벨 성전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기로 한다.
A. 솔로몬 성전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구원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과 통치를 따르는 그의 언약 백성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계약의 징표가 주어졌는데, 그것이 곧 율법과 성막이었다. 이때로부터 하나님의 법궤가 안치된 성막은 하나님의 지상 임재의 상징이요, 그의 통치보좌의 상징적 좌소로서 이스라엘 가운데 거주하게 되었다.
이후 聖幕은 광야 40년의 유랑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입성한 이래, 길갈, 실로, 놉등으로 전전하게 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성막 안의 법궤는 실로의 성막에서 에밴에셀의 전쟁터로, 불레셋의 여러 도시를 거쳐, 다시 이스라엘 땅의 벧세메스 성읍, 기럇여아림, 오벧에돔의 집, 예루살렘성으로 이동하였다. 이처럼 성막이 일정한 거처없이 엘리 대제사장 시대 이후로, 법궤와 성막이 분리되어 서로 전전하는 사이에 백성들은 각자 소견에 좋은 대로 제사를 드렸다.
따라서 다윗과 솔로몬시대까지의 이방 우상 숭배자들의 본을 좇아 山堂제사가 보편화되었고, 또한 허용되다시피 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단일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채, 각 지파 별로 분산되고 갈등이 심화되었다.
다윗은 이 폐단을 실감하였고, 따라서 중앙 단일 성전을 건축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그 일을 성사하기를 원하셨다(삼하 7:12-13). 다윗은 숫한 전쟁을 치르면서 피를 많이 뿌린 전쟁의 인물이었기에, 평화와 화목을 상징하는 성전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신 다윗은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성전 건축에 필요한 비용과 재료를 비축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다윗을 이어 솔로몬이 왕위에 올랐을 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전 건축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곧 성전 건축은 솔로몬 재위 4년째의 시브월 (대략 주전 966년 4,5월 경으로 봄)에 시작하여 솔로몬 11년째의 불월(대략 주전 959년 10,11월경)까지 7년 6개월의 공사 끝에 그 완공을 보게 되었다.
이른 바 제 1성전으로 불리워지는 솔로몬 성전은 당대로서 최선의 노력과 최대의 물량을 투입한 참으로 아름답고 화려한 건축물이었다. 이 성전은 모리아산 정상에 세워졌으며, 그 규모도 엄청난 것이었다. 길이가 27미터요, 넓이가 9미터에 높이가 13.5미터였으며, 전체 길이의 3분의 2는 성소이며, 3분의 1은 지성소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훗날 이 성전은 바벨론의 예루살렘 침공시 파괴되고, 그 내부의 기물들은 탈취되고 말았다.(주전 586년경)
규모, 설계, 기구 그리고 부속 건물 등 성전의 현저한 특징을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1) 성전의 건축은 주전 966년 즉 솔로몬의 즉위 제 4년에 시작되었으니, 이 때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구출되어 나온지 480년이 되는 해이다. 성전을 완공하는 데는 7년이 걸렸다. 이러한 시간은 그 웅장한 면을 고려할 때 비교적 짧은 기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클리프 성경주석은 솔로몬 성전에 대해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a) 미리 준비한 것이 많았다.
b) 대단히 화려하게 꾸미기는 했으나, 건물이 비교적 작았다.
c) 작업에 막대한 인력이 동원되었다.
2) 이 건물의 양식에 대해서는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일러 주셨으며(대상 28:19), 또 다윗은 다시 솔로몬에게 일러 주셨다(대상 28:11-12, 대하 3:3).
3) 그 성전은 전반적인 설계에 있어서 회막과 흡사했다. 그 성전이나 회막은 공히 두 가지 면에서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성소와 지성소가 있다는 점이다.(왕상 6:17, 20, 대하 3:5, 8 참조)
4) 성전은 돌로 지어 백향목 서까래와 널판을 덮었고, 금으로 입혔다. 성전의 내부는 아름다운 조각과 보물들로 장식되어 극히 화려했다.
5) 두 기둥을 전의 낭실 앞에 세워 하나는 야긴(저가 세우리라)이라 하고, 다른 하나는 보아스(그에게 능력이 있다)라고 했다.(렘 27:19-22, 왕하 25:13-17 참조)
6) 모든 비품 혹은 <여호와의 전의 모든 기구(왕상 7:48)>는 회막에서 사용된 것들과 비슷했다. 그러나 그 크기와 수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7) 솔로몬이 성전을 위하여 놋으로 단과 촛대와 상과 물두멍과 솥과 부삽과 고기 갈고리를 새로 만들었으나, 언약궤는 새로 만들지 않았다. 성전으로 옮겨 온 언약궤는 시내산에서 만든 것이었다.
B. 스룹바벨 성전
다윗에 의해 준비되고 솔로몬에 의해 건축된 솔로몬 성전은, 주전 586년에 바벨론의 공격으로 말미암아 파괴되었다.
이후 바벨론을 점령한 바사의 고레스 왕에 의해 이스라엘은 다시금 고국 땅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또한 성전 건축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스룹바벨 인솔하의 제 1차 포로 귀환자들은 무엇보다 성전의 재건축을 추진하였는데, 그때는 주전 536년경의 일로, 그것은 솔로몬 성전의 파괴 이후 50년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성전의 재건축은 쉽지 않았다. 많은 대적들의 격렬한 반대로 14년 동안이나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선지자 학개, 스가랴 등의 독려와 권고로 이스라엘은 성전건축을 재개하였고, 그리하여 마침내 기공 20년째인 주전 516년경에 제 2성전이라고 불리우는 스룹바벨 성전이 세워졌다(스 6:13-15). 비록 스룹바벨 성전은 이전의 솔로몬 성전에 비할 수 없을만큼 초라했지만(스 3:12), 그것은 고국땅의 유대인은 물론이요,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에게 민족과 종교의 구심점으로서 소망의 빛이었다.
이후 스룹바벨 성전은 수리아의 안티우크스 에피파네스 4세의 유린(주전 169년경), 로마의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약탈(주전 63/62년경)을 거치는 수난의 역사 끝에, 마침내 주전 20년경 이후 헤롯성전에 의해 대체되었다.
-성경연대(출애굽)의 문제
본문 1절에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 팔십 년이요.>라고 했다. 그런데 보통 출애굽 연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주장이 있다. 하나는 B.C. 1,440년경으로 보는 주장이고('전기 연대설' 또는 '15세기설'), 다른 하나는 B.C. 1,200년경으로 보는 주장이다('후기 연대설' 또는 '13세기설').
한편, 틸레(Thiele)의 계산을 따라 성전 건축을 시작한 솔로몬 4년 시브웰(유대 종교력 2월;오늘날 태양력 4, 5월)을 B.C. 966년경으로 볼 때, 본문대로라면 출애굽 연대는 B.C. 1446년경이 될 것이다. 그런데 본 절의 '사백 팔십 년'은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즉 많은 학자들은 나름대로의 근거 하에서 480년이란 이 연대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곧
(1) 70인역(LXX)은 480년 대신 440으로 보았다.
(2) 요세푸스(Josephus)는 480년 대신 592년으로 잡는다.
(3) 혹자들은 본문의 480년을 일종의 상징적인 세대수(世代數)로 본다.
즉 벌도우(Bertheau), 뵈쳐(Bottcher) 같은 학자들은 여기 480년을 '40년X12세대=480년'으로 보고, 실제적인 12세대는 250년-280년 가량이므로, 약 200년 가량 단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복잡한 계산과 수고에도 불구하고 그들 대부분의 주장은 입증할만한 뚜렷한 근거없이 추측의 선에서 머물고 만다.
반면 카일(Keil)과 메튜헨리(Matthew Henry) 같은 주석가들 및 우드(L. Wood)와 아쳐(G. A. Archer) 같은 보수주의 구약 학자들은 본문 그대로 480년의 정확성을 뚜렷이 주장한다. 사실 본 절이 왕의 통치 년, 월까지 상세히 알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의 신빙성은 높다. 그리고 이 480년은 부분적인 이견(異見)이 있긴 하지만, 대략...
(1) 광야 생활 40년
(2) 가나안 정복기 및 평정기 32년
(3) 사사 시대 331년
(4) 사울의 통치기 33년
(5) 다윗의 통치기 40년
(6) 솔로몬의 즉위 후 4년 등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한편, 본서 저자가 성전 건축 시기를 특별히 출애굽을 기준으로 해서 기술한 까닭은, 성전 건축은 곧 약속의 땅에 대한 그 때까지의 임시적 상태에 종지부를 찍고 항구적 소유를 표징(表徵)하는 신기원(新紀元)으로서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라고 보았다(Keil).
기억할 말씀 : 왕상 6:12-13 네가 이제 이 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나의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
7장 : 성전기명
1. 솔로몬의 왕궁 건축
13. 놋점장 두로의 히람을 고용
15. 낭실의 두 놋기둥
23. 놋바다
27. 놋 물두멍과 받침들
40. 놋 기구들
48. 금기구들
-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의 처소인 성전 건축(6장)을 완결했던 솔로몬은 이제 7장에서 그 성전에 소요될 각종 기구들을 제작하게 되며, 또한 자신의 거처인 아름다운 왕궁을 건축하게 된다. 7장에 나오는 성전 건축의 완공과 왕궁 건축의 사실들에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1) 성전 우선주의였다. 왕궁보다는 성전을 먼저 건축했다.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이다.
2) 왕궁을 건축하는 일에 13년이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록은 불과 12절(1-12절)만을 할애하고 있다. 그리고 성전 건축은 7년이 걸렸으나, 왕궁의 건축은 성전의 건축 사이에 기록하고 있다. 왕궁도 성전의 연속이라는 교훈을 얻는다.
솔로몬이 만든 여호와의 전의 기구들은 어떤 것들이었는가?
1) 금단
2) 진설병의 금상
3) 지성소 앞에 좌우로 다섯 개씩 세울 정금 등대
4) 금 꽃
5) 등잔
6) 불집게
7) 정금 대법
8) 주발
9) 숟가락
10) 불을 옮기는 그릇
11) 지성소와 성소의 문을 다는 금돌쩌귀
- 기억할 말씀 : 왕상 7:51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드는 모든 것을 마친지라 이에 솔로몬이 그 부친 다윗의 드린 물건 곧 은과 금과 기구들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전 곳간에 두었더라.
# 성전 봉헌과 솔로몬의 기도 8장
1.언약궤를 성전에 옮김
10. 성전에 임한 하나님의 영광
12. 솔로몬의 성전봉헌
22. 솔로몬의 기도
54. 솔로몬이 백성들을 축복함
62. 화목제 희생물을 드림
- 8장은 성전 봉헌식 장면이다. 성전 건축에 이어 성전에 소용될 각종 기구들을 제작하고, 또 자신이 거할 아름다운 왕궁을 건축했던(7장) 솔로몬은 이제 8장에서 하나님께 공식적으로 성전을 봉헌하게 된다. 실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거룩한 법궤가 성전에 안치됨으로 이스라엘은 명실상부한 하나님이 왕이 되신 신정국가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셨던 언약(삼하 7:11-16)의 성취라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솔로몬과 온 백성이 성전을 하나님께 봉헌하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카펜터(H.J.Carpenter)는 이런 말을 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 중에 거함으로써 스스로를 드러내신 신정 국가의 본보기를 보이신 것은 모든 족속 가운데 이스라엘뿐이다. 이스라엘 민족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외관상의 징표는 시온산 높이 서 있는 여호와의 전이라고 할 수 있다.>
(삼하 7:11-16 :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이제 솔로몬은 성전을 봉헌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으며, 백성들을 축복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제물을 드린다. 성전이 축복의 장소이다.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은 임한다.
- 12-21절에 보면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백성들에게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솔로몬은 성전 건축의 과정과 배경을 설명하는데...
1) 솔로몬은 지성소를 향하여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으나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거하실 처소로소이다.(12, 13절)>고 기뻐한다. 이것은 솔로몬의 성전에 임한 구름이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상징임을 확인하며, 시편 18:11, 97:2절과 같은 의미를 적용시키는 표현이다.
2) 솔로몬은 얼굴을 온 회중에게로 돌이키고 그들을 위하여 축복한다.
3) 솔로몬은 자신이 성전을 건축하게 된 배경을 하나님께서 그 부친 다윗에게 주신 언약(삼하 7:11-16)의 성취라고 밝히며, 모든 영광을 신실하신 하나님께 돌린다(20절).
- 특히 22-26절은 솔로몬의 기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1) 겸손하게 전심으로 기도함(22절, 대하 6:13 참조).
2)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유일하신 참 신이라 함(23절).
3) 주님의 약속이 또 다시 성취되기를 원함(24-26절).
- 성전 낙성식(왕상 8:1-66)
솔로몬의 성전 낙성식이 본 장의 주요 주제를 이룬다. 건물의 내외소에서부터 사소한 기물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완공되자 솔로몬은 역사적인 성전 낙성식을 거행하였던 것이다. 이 낙성식은 이스라엘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성전이 완공되고 낙성식을 치름으로써 이스라엘은 명실상부한 신정 국가로서의 면모를 지니게 되었으며, 그 행사 일체가 종교적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제사장이 아닌 왕이 대표하여 행사 전체를 집례한 사실은 바야흐로 펼쳐지는 신정 국가의 특성을 잘 드러내 준다.
1. 언약궤의 안치(1-9)
히람의 노력으로 성막 기구들을 다 마련한 솔로몬은 성전 낙성식을 거룩하게 진행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였다. 다윗이 드린 물건들도 가져다가 성전 곳간에 두었다. 그리고 다윗 성에 있는 언약궤를 성전으로 모셔들이는 예식을 거행하였다.
1) 엄숙한 예식을 통하여 성전에 안치되었다(5-6)
언약궤는 이스라엘 장로들과 족장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제사장들에 의해서 "내전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에 모셔졌다. 이 엄숙한 예식은 다윗이 오벧에돔의 집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옮길 때의 방법과 동일하였다. 특히 법궤를 은밀한 내전에 안치했다는 것은 지성소를 가리키는 곳인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만나 주시겠다는 약속이 있는 곳이었다. 이 내전은 오늘 신약 시대에는 성도들의 마음 안에 이루어지는 성전과도 같다. 왜냐하면 성도는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서 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수많은 양과 소로 제사드려졌다(5)
이것은 한없는 간구의 소리와 찬양이 있었다는 의미이다. 이 솔로몬의 제사는 개인의 제사가 아니라, 온 이스라엘 회중의 제사였다. 마찬가지로 십자가의 제사는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제사였다. 믿는 자는 그 제사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죄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3) 법궤 안에는 오직 두 돌판 뿐이었다(9)
하나님의 성전에 제일 중요한 것은 법궤이며, 그 안에는 십계명의 두 돌판이 보존되어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대리자로 주신 것이다. 그래서 이 계명이 이스라엘의 구심점이 되었고 영적 구심점이 되었던 것이다.
2. 하나님의 임재(10-11)
하나님의 임재는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나타났으며, 모세가 완성한 성막에는 구름과 함께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하였다(출40:34) 마찬가지로 본문에 솔로몬의 성전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계심을 보여 주셨다.
제사장이 모든 제사를 드리고 언약궤를 지성소에 안치시키고 나올 때,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매" 영광으로 임재하였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임재의 상징으로 성령으로 충만히 임하고 계신다.
3. 내 이름으로 둘 집(12-21)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기까지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1) 다윗을 통하여 약속하신 집이다(15-18)
본래 다윗은 성전을 건축하려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다. 다만 그 거룩한 성전을 모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치만 하도록 하셨다. 그런데 계시를 주셔서 그 아들이 성전을 건축할 것을 말해 주셨다. 그래서 성전을 지을 재료들을 준비하였다.
2) 솔로몬에게 허락하셨던 집이다(19)
솔로몬 왕은 성전을 건축했다. 그러나 그것은 부친에게 주셨던 약속의 성취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변치 않으신다. 성전 건축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다.
3)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진 집이다(20)
20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이루시도다!"고 하였다. 성전 건축은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이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성취된다.
4. 솔로몬의 기도(22-26)
성전 완공을 하고 나서 솔로몬은 성전 앞에서 기도를 드렸다.
1) 겸손한 기도(22)
솔로몬은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기도하였다. 손을 펴서 드는 것은 전적으로 의지하는 겸손의 기도행위이다. 바울 사도도 (딤전2:8)"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라고 하였다.
2)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23-24)
솔로몬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를 하였다. "상천하지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하나님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기도이다. 그리고 다윗에게 약속하신 성전을 건축하도록 해 주신 것을 감사드리고 있다. "오늘날과 같으니이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함께 해 주신 역사를 들어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을 나타낸다.
3)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드린 기도(25,16)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신 바를 의심하지 않고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신하였다. (롬4:20-21)"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이것이 참된 믿음이요 응답받는 기도이다.
5. 성전을 향한 기도(27-32)
솔로몬은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여 드린 이후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서 아무리 훌륭한 성전이라도 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하늘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이까"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약속의 성전을 통해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다. 얼마나 큰 믿음인가?
1) 주의 눈이 성전을 향하여 주야로 보시기를 기도함(29)
솔로몬은 하나님이 인간의 땅에 거하실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눈동자는 결코 성전에서 떠나지 말 것을 간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고 약속하셨던 곳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몸을 성전 삼으시고 눈동자처럼 보호하고 계심을 확신하자.
2)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 응답해 주시기를 기도함(30)
성전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방법이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예표이다. 솔로몬은 이 믿음을 가지고 백성들이 성전을 향해 기도할 때 죄를 사하시고 기도하는 자를 들어주실 것을 간구한다.
3) 성전에서 의로운 심판을 해 주시기를 기도함(31-32)
성전은 악한 자와 의로운 자를 판단하여 그 행위대로 갚는 곳이다. 주님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믿지 않는 자에게는 멸망으로 심판할 것이다.
6. 이방인을 위한 기도(41-45)
솔로몬은 이스라엘에게만 국한해서 기도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에 속하여 함께 사는 이방인에 대한 기도도 잊지 않았다. 곧 도량이 넓은 신앙인의 모습이다. 신앙은 결코 협소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국한되는 분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시다.
6. 구별된 백성(46-53)
이스라엘 백성이 혹시 멀리 외국으로 사로잡혀 가서 그곳에서 부르짖으면 거기에도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기도하는 솔로몬의 기도 내용이다.
1) 구별된 백성은 회개하는 백성이다.(47-48)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죄악이 하나님과 백성을 분리시켜 놓고 말았다. 그러므로 회개함으로 마음이 돌아와야 한다.
2) 구별된 백성은 용서받은 백성이다(50).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먼 곳에서 회개기도 하면 하나님께서 용서를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용서와 사죄와 축복의 은혜를 주신다.
7. 복된 백성(54-61)
솔로몬이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축복하는 기도를 드린다. 그러면 복받을 자의 조건이 무엇인가?
1) 약속을 이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61)
약속은 쌍방간의 계약관계에서 성립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대로 다 이루어 주셨다(56).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며, 그 법도와 계명을 주시고 그것을 우리가 지킬 때에 복주시는 분이시다.
2) 참 복된 백성은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57,59)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와 교제하여 그와 늘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게될 때 복을 얻게 된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 주셔야 하며(57), 다음으로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여 그의 모든 길로 행하여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기억된 바 될 것이며 그는 우리의 권리를 보장해 주실 것이다.
3) 참 복은 선민된 책임을 다 하는데 있다(60)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만민을 구원코자 하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백성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참 신이시며, 절대적인 신이심을 만방에 전하는 것이 선민의 책임이요, 이 책임을 잘 감당함으로써 복을 받게 된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맺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응답받을 수 있다.
8. 진정한 기쁨(62-66)
1) 드림에서 오는 기쁨이 있었다(62-64)
성전을 건축하여 드림에서 오는 기쁨이 있었다. 하나님께 희생과 감사 제사를 드림으로서 오는 기쁨이 있었다.
2) 받는데서 오는 기쁨도 있었다(66)
백성들이 솔로몬 왕으로부터 받는 은혜가 있었다(54-61). 그리고 하나님께 직접 받는 은혜가 있었다.
- 기억할 말씀 : 왕상 8:29-30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 솔로몬의 위대함 9장
1.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기도 응답으로 다윗 언약을 재확인
10. 솔로몬과 히람의 교역
15. 솔로몬의 역군과 건축 사업들
25. 솔로몬의 제사
26. 솔로몬의 해상무역
- 본 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솔로몬과 그 나라를 위해 다윗에게 약속하셨던 언약을 재차 확인하시고 또 그의 나라를 크게 번영토록 후원해 주신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즉 솔로몬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바 있던 언약을 다시금 확인하신 사실, 솔로몬이 두로 왕 히랍에게 20개 성읍을 주고 금 120달란트를 받은 사실, 취약한 이스라엘 변방 지역에 성읍들을 건설한 사실, 조선 사업의 육성으로 무역이 활기를 띤 사실들을 소개하고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 다윗 언약을 재언급하신 것은 솔로몬과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변치 아니하심을 보이는 동시에 만약 물질적 풍요가 주어지는 상황에서 혹 발생할지도 모르는 우상 숭배와 각종 불신앙에 대해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 기억할 말씀 : 왕상 9:3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 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 스바의 여왕 10장
1. 솔로몬을 방문한 스바 여왕
14. 솔로몬의 부귀영화
23. 솔로몬이 받은 예물
26. 솔로몬의 풍부한 소유
- 10장은 절정기에 오른 솔로몬 왕조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솔로몬의 명성은 세계에 날렸다. 그래서 스바의 여왕은 솔로몬을 친히 찾아와 솔로몬에게 배우기를 원했다. 그런데 솔로몬의 주요 치세는 건축과 무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부강의 결과로 이스라엘은 주변의 여타 국가들에 비해서 우월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본 장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영화와 부귀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14-29절에 보면 솔로몬이 누렸던 부귀와 영화를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10장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사실은 솔로몬과 그의 왕국이 서서히 세속화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 솔로몬은 부강해지는 나라의 축복을 개인의 노력의 결과로 돌리며, 더욱 더 그러한 노력을 통해 나라를 번성케 하리라는 야망을 가진다. 스바 여왕이 방문했을 때의 솔로몬의 태도에서 그러한 사실들을 읽을 수가 있다.
특히 신명기 17:16절을 보라. <왕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말을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라고 했다. 그런데도 솔로몬은 병거 1,400과 마병 12,000을 병거성과 예루살렘에 두고 있었으며, 특히 병거 1승에 은 600세겔(약 6.8kg)씩, 말 한 마리에 은 150세겔(약 1.7kg)씩을 주고 애굽에서 사 왔다.
또 신명기 17:17절을 보면 왕의 자질을 설명하면서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고 했다. 그런데 11:1-8절을 보면 어찌했는가? 솔로몬은 후비가 700인요, 빈장이 300인이라 했다. 공식적으로 1,000명의 여인을 거느렸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외에도 얼마나 더 했겠는가?
이제 솔로몬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교만한 사람으로 타락해 가고 있는 것이다. 강할 때일수록 하나님을 의지하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 기억할 말씀 : 왕상 10:9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기뻐하사 이스라엘 위에 올리셨고 여호와께서 영영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왕을 삼아 공과 의를 행하게 하셨도다 하고...
# 솔로몬의 배역과 죽음 11장
1. 솔로몬의 우상숭배
9. 하나님의 진노
14. 하닷의 반역
23. 르손의 반역
26. 아히야의 예언과 여로보암의 반란
41. 솔로몬의 죽음
- 10장에서 솔로몬의 타락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제 11장에서는 타락한 솔로몬과 그의 말로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솔로몬을 처음 대할 때는 그의 영광이 영원할 것 같았는데, 그의 인생도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것은 왜인가? 하나님을 멀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 장에서는 우상을 숭배하고, 많은 여인들을 거느리며 세상 쾌락에 빠진 솔로몬을 보게 되는 것이다.
먼저 그의 타락의 모습을 보자. 1절은 그가 바로의 딸과 이방 여인을 사랑했다고 기록한다. 그러한 죄악의 실제적인 모습이 2-3절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일찌기 이 여러 국민에게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와 서로 통하지 말며 저희도 너희와 서로 통하게 말라. 저희가 정녕코 너희의 마음을 돌이켜 저희의 신들을 좇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저희를 연애하였더라. 왕은 후비가 칠백 인이요 빈장이 삼백 인이라.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
그런데 여기 처첩(妻妾)의 숫자가 이렇게 많은 것은 단순히 솔로몬의 호색때문만은 아니다. 즉 고대왕들에게 있어 처첩들의 숫자가 많다는 것은 부와 권세롤 과시하는 것이었다(Dentan). 그러므로 태평 성대를 누리고 있는 강대국의 왕 솔로몬은 주변 국가들의 왕들에 비해 처첩들의 수에 있어서도 우월하려고 했던 것이다(Hammond).
그러나 이런 점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솔로몬이 많은 여인들로 둘러싸이게 된 데에는 안목의 정욕, 정치. 외교적 목적, 그리고 부와 권세의 과시라는 복합적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자기를 내세우려고 했던 것이 오히려 자기를 망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한편, 아가서 6:8절에 의하면 왕후가 60인이요, 첩이 80인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아 6:8, 9). 아마도 열왕기서의 기록은 솔로몬의 전 통치기간을 통해 취해진 모든 처첩들의 수효를 가리키는 것 같고(Keil), 아가서에 언급된 수효는 솔로몬이 젊은 시절에 거느렸던 아내들의 총 수효였다고 짐작된다(Hammond). 다시 말해 솔로몬의 부와 영예가 더해감에 따라 그의 아내들의 수효 또한 늘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본 절의 수효는 혹자(Thenius)가 의심하듯 믿을수 없을 정도의 터무니 없는 기록은 결코 아니다. 예컨대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코도마누스(Darius Codomanus, B.C. 399-330)는 300명의 아내들을 거느리고 알렉산더 원정에 나섰으며, A.D. 10세기 전후 터어키 왕들의 부인은 대게 1300명에 달했다고 한다(B hr).
아무튼 우리는 전장(10장)에서 솔로몬이 말(馬)을 많이 둔 사실(10:26)과 은금 보화를 많이 쌓은 사실(10:16, 17)을 이미 보았다. 그런데 본 절에서 우리는 솔로몬이 또한 처첩을 많이 둔 사실을 발견한다. 요컨대,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일찍이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왕 될 자에게 권면하고 경고하신 바 왕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지 말라(신 17:16, 17)는 세 가지 명령을 모두 범한 자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키고, 왕으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솔로몬이 많은 이방 여인들을 왕비로 맞아들인 결과, 그 여인들은 각자 자기 민족의 신(우상)들을 가지고 와서 숭배했다. 분명 왕비들은 갖은 방법으로 솔로몬을 회유했을 것이고, 이에 솔로몬은 그러한 신들의 숭배를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이방 신들을 위해 산당까지 지었던 것이다(7, 8절).
솔로몬의 이러한 종교적 혼합주의(混合主義,Suncretism)는 이방 국가들의 호의를 얻어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이방의 우상 숭배를 거듭거듭 경고하고 엄히 금하신 율법의 말씀을 어긴 것으로,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솔로몬의 말년부터 이스라엘 내에 자리잡게 된 이방 우상의 산당들은 이후 분열 왕국 시대동안에도 줄곧 심판의 대상이 되었고, 마침내 남북 왕국 멸망의 주된 원인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솔로몬은 불행하게 그의 생을 마감한다.
이러한 솔로몬의 타락상에 대해 카펜터(H.J.Carpenter)는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초기에 누렸던 존경과 사랑은 사라지고 수많은 여자들의 꼭두각시가 된 대왕의 가엾은 모습이다. 영적으로 악화되어 하나님을 배반하게 되는 단계를 영감의 기록으로 나타내고 있다. 우선 그는 거짓 신들을 좇았고, 여호와를 온전히 좇지 아니하였다. 그 다음에 그는 거짓 신들을 위한 전을 세워 자기 부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신을 섬겨 향을 피우고 제사를 지내도록 허락했다. 마침내 그의 마음은 그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돌아서게 되었다. 그리고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그가 하나님의 전을 더럽힌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 가운데 선구자가 되었으며, 나아가서 좋은 땅을 그들에게 유업으로 주신 여호와께 온전히 예배드리지 않고 마음을 딴 곳으로 돌리게 되었다.>
특히 33-3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나누시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1) 열 지파가 솔로몬의 아들을 떠나는 사실에 있어서 솔로몬의 죄가 그 원인이라는 것(33절).
2) 솔로몬의 생전에는 그 나라가 분열되지 않을 사실에 있어서 다윗의 경건이 그 원인이 된다는 점(34절).
3) 한 지파를 솔로몬 자손에게 머물러 있게 하시고 성전을 예루살렘에 보존시키려는 것(36절).
- 기억할 말씀 : 왕상 11:38 네가 만일 내가 명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의 행함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왕상 12장 - 왕하 17장 분열왕국
#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의 왕국 분열 12장
1. 압제정치를 선언하는 어리석은 르호보암
16. 왕국의 분열
21. 하나님이 두 왕국의 전쟁을 막으심
25. 여로보암의 왕국 수립을 위한 종교정책
- 11장까지는 솔로몬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12장부터 열왕기하 17장까지에서는 분열왕국의 슬픈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이 역사는 역사적인 기록이기에 앞서 구속사적인 측면에서 기록된 것이기에 연대의 차이도 있을 수 있고, 또 역대기서에서도 반복적으로 기록한 곳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읽을 수 있어야 할 것이며, 또 우리는 그런 측면으로 연구를 할 것이다.
본 장은 이스라엘 역사와 관련해서 가장 슬픈 기록의 역사이다. 태평성대를 누리며 절정의 부와 영화를 누렸던 이스라엘은 이제 솔로몬의 죄악의 결과와 이스라엘의 죄악의 결과로 슬픈 분열을 맞게 된다. 남과 북이 나뉘어지고, 멸망의 역사로 치닫는 서막이 오른 것이다.
그래서 본 장은 여로보암의 주도로 이스라엘이 두 조각으로 분열되는 뼈아픈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즉 본 장에서는 솔로몬이 죽은 후에 통일 이스라엘의 제 4대 왕으로 등극한 르호보암이 원조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계속적인 학정을 선언하여 백성들을 괴롭히게 된다. 이에 르호보암을 싫어하는 백성들이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세력을 집결하게 된다. 그리고 여로보암은 북 이스라엘 왕국을 정식으로 수립하게 된다.
실로 이러한 분열의 역사는 현실적으로 볼 때 인간적인 의지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솔로몬의 죄악을 징벌하시고 이스라엘을 당신의 의지대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간섭의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열왕기상 12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본 서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다음 도표를 새겨볼 만 하다.
평온한 상태의 왕국 ꠐ 왕국의 분열 ꠐ 혼란한 상태의 왕국
(12장)
하나님은 한 왕을 세워 ꠐ ꠐ 하나님은 한 선지자를 세워
자기 백성을 다스린다. ꠐ ꠐ 자기 백성에게 말한다.
(솔로몬) ꠐ ꠐ (엘리야)
@ 여로보암
에브라임 족속인 스레다사람 느밧의 아들이다. 모친은 스루아이다.(왕상11:26) 솔로몬이 밀로를 건축할 때에 역사 감독이었다. 그 때 그는 솔로몬의 가혹한 정치를 보았고, 나올 때에 선지자 아히야를 만났다. 그리고 그는 <네가 장차 이스라엘 10지파의 왕이 되리라.>는 예언을 듣는다.
솔로몬이 그것을 알고 여로보암을 죽이려하자 애굽으로 도망하여 시삭 왕에게 의탁하고 있다가(왕상11:27-40) 솔로몬이 죽은 소식을 듣고 돌아와서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기회를 타서 북방의 10지파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왕상12:20).
그러나 저는 항상 남방 유대국을 적대시하였다. 자기 백성들이 여호와를 섬기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는 것이 장래에 자기를 배반할 염려가 있다고 생각하여 금송아지 두개를 만들어 하나는 북방 단에 두고 하나는 남방 벧엘에 두고 백성으로 그것을 섬기게 하며,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여 국가의 분립에 따라 종교까지 분립하게 했다.
이것은 자신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가 될 뿐 아니라 백성을 죄에 빠뜨리는 행동이 되었다.(왕상12:25-33) 여호와께서 그 죄악의 보응으로 그 집을 치사 그 아들 아비아를 죽이셨다. 여로보암은 재위 22년에 죽고, 그 아들 나답이 계승하였으나 재위 2년에 죽는 동시에 그 왕조는 아히야 선지의 예언대로 망하고 말았다(왕상14:17-20, 15:25-28).
- 특별히 우리는 여로보암과 관련해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즉 여로보암의 죄는 이스라엘 왕들의 평가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했느냐, 악했느냐 하는 문제의 답을 얻기 위해서는 그들이 여로보암의 지은 죄를 따라 지었느냐 않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하는 사실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의 죄를 따랐는가의 문제이고, 남 유다는 다윗의 길을 따랐는가의 문제로 그들을 평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전체 20명의 왕들은 한결같이 선하다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 물론 그 중에 예후는 그래도 나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예후도 결국은 여로보암의 죄를 따름으로 책망을 듣는다.
그래서 열왕기하 10:29-31절에 보면 예후에 대해 이런 평을 내린다.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 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 대를 지나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의 죄의 기준이다. 여로보암이 지은 죄를 다른 왕들도 따르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한 예를 더 든다면 열왕기하 13:11절에 보면 요하스 왕에 대해 평가하면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좇아 행하였더라.>라고 말씀한다.
모든 왕들이 다 여로보암의 죄를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만큼 여로보암은 북 이스라엘을 죄악의 길로 이끌어 간 장본인이며, 후대의 왕들은 거의 모두가 다 그 선왕의 죄를 답습함으로 하나님께 범죄하였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여로보암의 죄가 무엇인가?
그 답은 본 장 28-33절에 나온다.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숭배함이더라. 저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팔월 곧 그 달 십오일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 지은 산당의 제사장은 벧엘에서 세웠더라. 저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팔월 십오일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본문에 의하면 여로보암의 죄란 이렇게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1) 예루살렘 성전 대신에 벧엘과 단에 두 금송아지를 만듦(왕하 10:29, 17:16, 대하 11:15, 13:8, 호 8:5-6, 10:5, 13:2).
2) 산당을 짓고 레위 자손이 아닌 제사장을 세움(13:33, 왕하 17:32, 대하 11:14-15, 13:9).
3)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7월 15일 초막절) 대신에 자기 마음대로 8월 15일을 절기로 정함
한 마디로 우상 숭배의 죄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종교적인 타락의 원인이 되었으며 후손 대대로 하나님께 범죄하며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멸망의 징조들이 되었던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자.
그는 두 금송아지를 만들었다(28절).
이처럼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든 의도는 물론 북 왕국 백성들을 차단하여 예루살렘 성전 순례를 막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유만으로 단순히 본 절의 금송아지를 이방의 우상 숭배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사실 성전 순례를 원하는 백성들은 그야말로 여호와 신앙에 투철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만일 여로보암이 우상 숭배를 강요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자멸의 길이다. 이렇게 볼 때 금송아지는 적어도 시초에는 오히려 전통적인 여호와 신앙과 관련된 그 무엇이었던 것 같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이는 여호와의 발등상으로서의 상징을 지녔던 것으로 추측된다(Gray).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이러한 판단에 도움을 줄 것이다.
1) 소의 형상은 여호와의 힘과 능력을 나타내는 전통적 상징이었다는 점(Dentan).
2) 비록 중심적인 지위는 갖지 못했어도 솔로몬의 성전에서도 소의 형상은 발견된다는 점(7:25).
3) 예후, 엘리야 등이 바알제의를 공격할 때에도 금송아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점(Cobern).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송아지 형상은 과거 모세 당시처럼 우상으로 사용될 위험성을 충분히 안고 있었다(출20:4-6).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역사상 금송아지 형상은 상징으로 머물지 않고 우상화된 적이 종종 있었다(호8:5이하, 12:11, 13:2).
따라서 본 절에서의 여로보암의 행위 역시 결과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전 제사를 어지럽히는 이방 종교와의 혼합을 낳았다. 더구나 본문에 의하면, 여로보암은 참된 제사의 동기를 갖지 않고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을 범죄케 한' 인물로 낙인찍히고 만 것이다(15:30, 34, 16:2, 19, 26).
그리고는 그 두 금송아지를 일컬어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고 유혹했다. 이는 출애굽기 32:4절에서 언급된 말로서, 여기에는 하나님과의 언약 자체를 거부케 하려는 의도가 은연중에 표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과거 시내 산 아래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겼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자로서의 모세를 인정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세를 통하여 나타내신 여호와의 언약도 거부하였다(출32!1-6).
그런데도 본 절에서 여로보암은 모세 당시의 패역했던 상황을 의도적으로 상기시킴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을 거부하도록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솔로몬 말기의 부패상과 르호보암의 폭정 등을 경험하였던 백성들 중 대다수에게, 하나님의 언약이 더 이상 쓸모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 여로보암의 궤사(詭詐)한 말이 그럴듯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목전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마저 팔아버리는 행위에 대한 형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여로보암은 예배의 처소를 벧엘과 단, 두 곳에 두었다(29절).
이처럼 여로보암이 북 왕국의 예배 중심지로서 특별히 벧엘(Beth-el)과 단(Dan)을 택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1) 이 두 장소는 전통적으로 신성한 곳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즉 벧엘은 과거 아브라함과 야곱이 단을 쌓은 곳이며(창 12:8, 13:3, 4, 28:11-19, 31:13, 35:1), 사사 시대에는 언약궤가 오랫동안 이곳에 있었다(삿 20:26). 그리고 단은 그 자체의 신당과 제사장을 소유했던 곳으로서 그 제사장직이 모세의 후손들에 의해 계속 이어졌었다(삿 18:30- 31).
2) 벧엘은 북 이스라엘의 남방 경계 지역에(수 18:13), 단은 북방 경계지역에 위치하였는 바(수 19:47), 북 이스라엘의 전 백성들에게 거리상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사실은 실로(Shiloh)대신 단이 선정된 데서도 잘 나타난다. 즉 실로는 여러 면에서 단보다 더 예배 중심지로 적합하였으나(수 18:1, 삿 21:19, 삼상 1:11) 벧엘과 마찬가지로 남방 지역에 위치했기 때문에 피택되지 않은 것이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이다(창 12:8).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20km 가량 떨어진, 현재의 베이틴(Beitin)이다. 본래 지명은 루스(Luz)로서(창 28:19) 베냐민과 에브라임의 경계선상이면서 동시에 남북 왕국의 경계선상이기도 한 능선에 위치하였다. 이곳에는 좋은 샘이 많이 있어 일찍부터(B.C 3500년경?) 성읍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오랜 예배 중심지이기도 했다(Jamieson).
단은 '심판하신다'는 뜻이다. 팔레스틴 최북단의 도시로서 두로와 다메섹을 잇는 무역로를 굽어보며 서 있다. 이러한 단이 벧엘과 더불어 제2의 성소로 선정된 이유는 북왕국에서도 북쪽에 거주하는 백성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Hammond). 그런데 바알 숭배의 본산지인 두로와 잦은 교류를 하는 단에 세워진 금송아지 형상은 아무래도 위험했다(White).
그런 일들이 여로보암에게 죄가 되었다(30절).
여기 이 일은 여로로암이 금송아지 형상을 벧엘과 단에 둔 일이다(29절). 그런데 이 일이 죄로 판단되는 까닭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1) 이는 십계명을 어긴 행위이기 때문이다(출 20:4).
2) 이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성소(예루살렘)를 무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신 12:5).
3) 그 결과 이스라엘에 우상 숭배가 만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Pulpit Commentary).
여로보암의 또 다른 죄는 산당을 지은 것이다(31절).
이는 예루살렘 성전이 갖는 신앙의 구심점 역할을 훼방하기 위해 여로보암이 취한 조처 중 하나이다. 즉 과거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기 전까지는 백성들이 주로 산당에서 예배하였는바(3:2, 삼상 9:12) 이제 여로보암은 다시금 백성들로 하여금 그같은 산당에서 예배하도록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산당들은 성전과 달리 언약의 법궤도 임재의 보증도 없는 곳이다(Keil). 이러한 산당에는 가나안 종교의 우상 숭배 의식과 결합할 가능성 및 유혹이 늘상 있어 왔다.
또 여로보암은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았다(31절).
모세의 율법에는 레위인들만이 제사장직을 수행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출 28:1-4). 그런데도 여로보암이 레위 사람들 대신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은 결과 레위인들은 신앙의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 대거 남 왕국으로 남하하고 말았다(대하 11:13-17).
이러한 사실이 암시하는 바는 이스라엘 전역에 퍼져 율법과 하나님 섬기는 법을 가르치는 레위인들의 고유 사명이 여로보암에 의해 훼손되었다는 점이다(Hanke). 따라서 이는 여로보암의 불법성을 두드러지게 증거해 준다.
32절은 또 다른 여로보암의 죄를 말한다. 그것은 8월 15일을 절기로 정한 것이다(32절)
여로보암은 팔 월 곧 그 달 십오일로 절기를 정하였다. 그런데 솔로몬 성전의 절기는 7월15일(유대력)이었다(왕상 8:2).
이 절기는 장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로서 한 해의 추수를 기념하는 축제의 절기였다(왕상 8:2, 65, 9:25). 그런데 여로보암이 이 절기의 날짜를 8월 15일로 잡은 것은 자의(恣意)대로 한 것이 아니고, 북쪽 전통의 복원(復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북쪽은 원래 남쪽에 비해 수확이 한달 가량 늦어졌던 것이다(Bahr, Keil). 그러나 여로보암의 진정한 목적은 절기의 자연성을 회복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는 백성들이 7월의 장막절에 예루살렘을 방문치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즉 여로보암은 이로써 체제경쟁에 있어서 나름대로의 종교적 정통성을 구색(具色) 갖추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절기를 7월로 통일되게 지키도록 한 율법과 상반되는 것이다(레 23:34). 따라서 이 역시 죄악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이와 같은 절기의 분열은 곧 통일 왕국의 정치적 분열에 이어 종교적 분열도 완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여로보암의 죄가 북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에게도 있었다는 사실을 열왕기 기자는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죄의 결과는 죽음과 파멸뿐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참고로 그들이 주로 섬겼던 바알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 가나안 원주민들로부터 농사짓는 방법을 배웠고 씨뿌리는 법과 수확하는 법을 배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를 배우도록 도전받았다. 물론 이스라엘은 여호와가 주인임을 알고 이러한 도전에 대처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곳곳에서 가나안의 제의적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가나안의 신을 중심으로 한 제의적 풍습이 이스라엘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이러한 입장에서 가나안의 대표적인 신중에 하나인 바알을 연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1. 우가릿에 나타난 바알 신
우가릿의 종교는 가나안의 종교와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 실제로 가나안의 종교구조에 관해서는 성경의 간접적인 언급과 또 우가릿 문서에 의존하게 된다. 가나안의 종교는 자연적인 다신교이고 모스카티가 지적한 것처럼 신들의 특성과 개성이 유동적이며, 그들의 이름이 일반 보통명사로 된 것이며, 인간제사나 성창제도등 잔인성과 야만성을 띠고 있다.
바알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바알은 우가릿 뿐만 아니라 가나안 일대에서 널리 숭배받은 신이다. 바알은 '주인' 이라는 보통명사이며, 우가릿 문서에서는 "왕자", "땅의 주인", 즉, "세블(Zebul, prince)", "전능자 바알", 알리얀 바알(Aliyan Baal), "구름을 타시는 자" 등으로 태풍의 신으로 번개와 천둥을 동반하며 비와 눈을 땅에 보낸다.
어떤 문서에는 바알을 엘의 아들로 부른 곳도 있다. 또한 바알은 안개와 이슬 두 딸을 거느리며, 그의 아버지는 곡식의 신인 다곤이다. 바알은 적수 얌(바다)을 물리치고 궁전을 얻는다. 그리고 바알의 거처는 높은 산인 자폰인데, 우가릿에서는 커다란 바알신전이 발굴되었다.
또한 바알신의 유래에 대해서 학자들은 아모리족의 이주민들은 B.C. 2천년 초기 서쪽으로 대이주를 하면서 그들과 더불어 자기들의 신들을 가져왔을 것이고, 그들이 가나안에 정착할 때 하닷이라는 이름이 바알로 바뀌었으리라는 가능성을 띤다고 주장한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바알은 그 지역의 주된 신이 되었다. 몇몇 학자들은 바알이 이 지역의 주된 신이 되는 과정의 일부가 우가릿 문서에서 추적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 바알 서사시 - 바알과 아낫
7개 토판으로 된 바알 서사시는 바알과 아낫의 이야기를 실은 것이다. 좀 떨어져 나갔으나 윤곽을 잡을 수 있다. 바알 서사시의 전개 주제는 통치권을 요구하는 신의 집을 구하는 것인데 이런 것이 성경에는 희미하다.
바알과 아낫에 대한 해석은 구구하다. 일반적으로 바알은 계절에 따라 땅의 채소와 곡식이 자라고 또 시들고 하는 것은 나타내기 위한,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신들의 이야기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고오든(Gordon)은 이것을 극구 부인한다. 바알이 풍요와 관련되어 그의 죽음이 땅에 가뭄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7년이 걸렸으며 매년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개스터(Gaster)는 바알이 근본적으로 비의 신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바알과 아낫" 시 중에 언급된 "구름을 타시는 자", "구름을 열고 비를 내리시는 자"등의 표현은 물론 개스터는 어원학적으로 아랍어의 "바알"(Ba'l)이 "비로 적셔진 땅"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알과 아낫의 이야기의 촛점도 얌 - 나하르와 바알, 그리고 이스달의 대결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의 얌 - 나하르는 바다와 강의 신이시고 아스달은 샘과 우물의 신이다.
즉 이 세 경쟁자가 최고의 신 엘을 대신하는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는 것이다. 바닷물은 쉽게 땅을 뒤엎고, 또 강은 때로는 말라버릴 적도 있다. 그러나 얌 - 나하르는 궁전을 짓고, 자기가 왕이라고 주장한다. 바알은 얌 - 나하르를 패배시키고 자기 궁전을 지은 뒤 온 땅을 다스리게 한다. 그러나 죽음의 신 모트가 바알을 도전하자 바알은 그를 찾아 지하 세계로 내려간다.
그가 왕의 자라를 비운 다음, 비가 그쳐 땅의 샘물은 말라버리게 된다. 엘은 바알이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그 대신 그 자리에 아스달을 임명한다. 그레이(Gray)는 아스달을 인공적인 관계로 본다.
즉, 자연적인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인위적으로 샘물을 파서 논과 밭에 물을 댄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서도 보여주듯이 아스달은 왕위에 올랐으나 키가 작기 때문에(아직 미성년이기 때문에) 그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다. 이것은 곧 인위적인 관개사업이 충족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바알은 다시 소생하여 아스달을 물리치고, 또 모트도 패배시킨 다음에 왕권을 다시금 차지하게 된다. 바알은 부인을 취하여 자녀를 생산하고, 왕으로 군림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바알과 아낫" 이야기는 비의 신 바알이 온 땅의 주인이시며, 다른 신들위에 으뜸가는 왕으로서 주권을 행사하게 되는 과정으로 그린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비가 모든 자연의 생존에 절대적인 요소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3. 이스라엘 종교와 바알 종교
바알과 다른 가나안 신들이 애굽에서 예배되었다는 증거가 있다. 그러나 애굽의 토착적인 종교에 심각한 타격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이스라엘에서는 제설 혼합주의의 과정을 통하여 야훼예배는 심각하게 영향을 받았고, 바알 제의라는 이질적 요소에 의해 위협을 받았다. 이러한 영향은 2개의 중요한 요소에서 기인된다.
첫째,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낸 것이 아니고 그들과 교혼을 했다. 그래서 야훼와 바알이라는 상호관계라는 문제가 일어났다.
두 번째, 야훼는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사람들에 대해 상당한 승리를 거두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그 우위성은 의심할 바 없었다. 또한 일반 이스라엘인은 야훼를 그들 자신의 생애의 대부분을 보냈던 광야와 더불어 연상하였다. 그러나 가나안에서 그들은 땅의 비옥함에 의지하였고, 이 비옥함은 대중적인 사상에 의하면 바알 신들에게 의해 지배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바알 신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경향은 가나안 제의가 지니는 감각적인 매력에 의해서 가속된 것 같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의 야훼 예배는 가나안화 되었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야훼는 예배되었지만, 바알의 특성들과 심지어 그 이름까지도 야훼에게 덧붙이게 되었다. 이러한 제설혼합주의적 경향들은 사사기에 있는 편집적 주와 실례에서 설명되고 있다(2:1-5, 11-13, 17, 19, 3:5-7, 6:25, 26).
4. 성경에 나타난 바알
성경에서는 앞에서 서술한 바알의 이름이 변형된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땅의 주" 즉 "세블"(Zebul, prince)을 의도적으로 바알 세붑(Baal Zebub) 즉 "파리들의 신"(the god of Ekron)으로 만들어 버렸다. 신약의 바리새인들은 베엘세붑 혹은 베엘세불로 "마귀들의 왕"으로 불리웠다. 희랍어 네슬(Nestle)신도 "베엘세불"로 읽는다. 이방의 신들이 마귀로 불려지기 때문에 "제후격인 바알"이 마귀들의 제후인 사탄으로 명명된다.
알리얀 바알은 가끔 모트(Mot)와 대결하는 다산신으로 바알을 표시하는 서사시에 나온다. 모트는 죽음의 신이다. 바알의 머리가 일곱인 로타(Lotan)란 괴물과 만난다. 구약의 리워야단은 로탄의 변형이다. 구약에서 리워야단은 악의 상징이고 야웨에 의해 추방된다. 이밖에도 아낫의 아들 삼갈 예레미아의 집이 있었던 아나돗도 바알의 영향이 구약에 들어온 증거들이다.
이제는 바알 서사시를 통해 나타난 바알과 성경을 비교해 보자.
성경에는 태풍의 신, 바알의 이미지가 이스라엘의 신 야훼에게도 적용된 것이 있다(시 104:3-4). 바알이 얌(바다)을 정복한 것처럼 야훼도 바다를 이겼다(욥 26:12-13). 바알은 승리를 거둔 뒤에 궁전을 짓는데 이것은 왕권을 행세하는 궁전인 동시에 신을 모신 신전이다. 솔로몬이 지은 이스라엘의 성전 역시 가나안의 신학을 반영한 것이다(왕상 8:36).
위의 세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구약성경 곳곳에서 바알 종교의 영향을 받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알 신과 바알종교의 올바른 이해는 구약성경의 고대근동적 배경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5. 결론
지금까지 우가릿에 나타난 바알 신의 모습과 유래, 바알서사시인 바알과 아낫, 이스라엘 종교와 바알 종교의 관계성, 그리고 성경에 나타난 바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성경의 역사적 종교적 배경을 보다 정확하고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세계, 즉 반월형 옥토지대 및 그 인접한 여러 국가, 이른바 고대 근동의 종교와 역사를 이해해야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나안의 신인 바알 신은 이스라엘 종교에,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고 이러한 증거는 비록 미약하지만 성경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알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지역의 여러 신들과 그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이 이해를 성경에 적용시켜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구약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인류학, 사회학적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이를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성경의 권위를 격하시킨다고 하겠지만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한다면 성경이 전승되고 씌여지던 당시의 역사적, 종교적, 사회적 배경을 성경에 제한된 범위를 넘어서 보다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대 근동지방의 신들의 연구를 통해 구약성경에 접근하는 방법 역시 양면성을 띠지만 긍정적인 면을 중심으로 고찰된다면 보다 더 정확하게 깊은 성경 이해를 가져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방 신들을 연구하는 가치를 가져야 할 것이다.
@ 르호보암
'솔로몬'왕의 왕비 "모압"여인 '나아마'의 소생으로 부친 '솔로몬'이 죽은 후 "세겜"에서 왕으로 즉위하였다. (때는 주전 975년이요 나이는 41세였다.) 때에 온 "이스라엘"과 '여로보암'이 왕에게 와서 선왕때보다도 고역을 경감하여 주기를 청원하였으나 노신들은 그것을 허락하라고 하고, 연소자들은 허락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르호보암은 노신의 말을 버리고 연소자의 말을 따라 그 청원을 듣지 않았다. 이에 그 10지파는 르호보암을 배반하고 돌아가서 따로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고 "애굽"에 망명하여 있던 '여로보암'을 맞이하여 초대 왕으로 추대하였다. 그리하여 르호보암은 남부에 있는 유다와 베냐민의 두 지파만을 통치하게 되니 이것이 곧 유다왕국이다(왕상12:1-24).
재위 5년에 "애굽"왕 '시삭'이 침입하여 성전과 왕궁에 있는 보물을 전부 빼앗아 갔다. 그는 17년간 왕위에 있었는데 '여로보암'과의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었다. 그가 죽자 그 아들 '아비얌'이 왕위를 계승하였다(왕상14:25-31).
- 기억할 말씀 : 왕상 12:24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저희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좇아 돌아갔더라.
#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과 베델의 예언자 13장
1. 여로보암의 우상숭배에 대해 하나님의 사람을 통한 징계와 경고
11. 늙은 선지자에게 유혹받은 하나님의 사람
20. 하나님의 사람의 죽음
33. 여로보암의 계속적인 타락과 악행
- 본 장은 타락한 여로보암에 대한 내용을 주제로 담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 33-34절은 여로보암을 이렇게 소개한다.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보통 백성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았으므로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지면에서 끊어져 멸망케 되니라.>
그러한 단적인 예로 저자는 벧엘 금송아지에 얽힌 사건을 다룬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함부로 제사를 주관했다. 그래서 벧엘에서 제사를 드리던 여러보암에게 하나님의 사람이 찾아와서 그 단이 멸망할 것임을 선언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여로보암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던 하나님의 사람은 한 늙은 선지자의 미혹을 받아 마침내 비참히 죽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그 분의 말씀을 등한히 하는 것은 바로 멸망의 첩경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 기억할 말씀 : 왕상 13:6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여 가로되 청컨대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으로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니 왕의 손이 다시 성하여 전과 같이 되니라.
# 여로보암과 르호보암의 통치 14장
1. 아히야가 여로보암에게 심판을 예언
17. 여로보암 아들의 죽음
19. 여로보암의 죽음과 후계자 나답
21. 유다왕 르호보암의 통치와 죄악
25. 애굽왕 시삭의 예루살렘 약탈
29. 르호보암의 죽음과 후계자 아비얌
- 본 장은 남북왕조의 초대 왕인 여로보암과 르호보암의 최후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즉 1-20절은 여로보암의 멸망을, 그리고 21-31절은 르호보암의 멸망을 다룬다. 이 두 왕은 공히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의 죄악에 몰입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여로보암은 13장에서 우상을 숭배했다. 그리고 본 장에서는 아히야 선지자의 경고를 듣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의 촉구를 무시한 여로보암은 가정에 큰 우환을 당한다. 아들 아비야가 죽을 병에 걸린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 아들은 질병으로 인해 죽음을 당한다(17절). 그것이 원인이 되어 여로보암도 죽음을 맞이한다.
후반부에 나오는 르호보암은 통치 초기 3년 동안은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겼다. 그러던 그가 나라가 부강해 가면서 점점 하나님보다는 우상을, 하나님의 능력보다는 인간의 수단을 의지하게 되었고, 따라서 본문은 이런 르호보암의 불신앙적인 행태를 징계하시면서 애굽왕 시삭을 이용하신다.
이방의 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징계의 도구로 들어서 우리를 때리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기억할 말씀 :왕상 14:1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쳐서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같이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그 열조에게 주신 이 좋은 땅에서 뽑아 저희를 하수 밖으로 흩으시리니 저희가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여호와를 진노케 하였음이니라.
# 유다왕 아비얌과 아사의 통치와 이스라엘왕 나답과 바아사의 통치 15장
1. 유다왕 아비얌의 통치
9. 유다 왕 아사의 통치
23. 아사의 후계자 여호사밧
25. 이스라엘 왕 나답의 악한 통치와 하나님의 징계
33. 이스라엘 왕 바아사의 통치
- 본 장에는 남북의 두 왕씩을 설명하고 있다. 남 왕국의 2,3대 왕인 이비얌(아비야)과 아사 그리고 북왕국의 2,3대 왕인 나답과 바아사가 그들이다. 대부분의 왕들이 악한 통치를 일삼았다. 특히 북 이스라엘은 모든 왕이 다 악했으며, 남 유다에서만 그래도 선한 왕이 있었다.
아비얌은 아비 르호보암의 뒤를 이어 유다의 제 2대 왕으로 등극한 인물이다. 그런데 역대하 11:21, 22절에 의하면 아비얌은 원래 장자(長子)가 아닌, 단지 르호보암이 장자로 '삼은'(후계자 지명을 의미) 아들로 나타난다.
이는 아비얌의 모친 마아가(Maachah,2절)가 르호보암이 총애하는 왕비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르호보암의 행위는 조부 다윗의 행위와 흡사하다. 왜냐하면 과거 다윗도 장자를 제쳐놓고 총애하는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으로 후계자를 삼았기 때문이다(1:5-40).
그러나 다윗의 경우와 달리 르호보암은 일찌감치 아비얌을 왕위 계승자로 선포함으로써 사전에 왕비를 둘러싼 경쟁 가능성을 봉쇄하였다는 차이가 있다.
유다의 3대 왕인 아사는 이름의 뜻이 '치료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Gesenius). 그러나 분명치는 않다. 한편 아사(Asa)는 종교 개혁을 단행한 업적(11-15절; 대하 14:1-5) 때문에 열왕기가 높이 평가하는 왕 중 한 명이다. 그래서 부친 아비얌이 불과 3년밖에 재위하지 못한 사실을 그보다 훌륭한 아들 아사의 길을 빨리 열어 놓으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섭리로 보는 이도 있다(Mattew Henry).
25절에 보면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은 2년을 다스렸다고 했다. 따라서 여로보암 왕조의 북 왕국 통치는 여로보암 통치 22년(14:20), 그리고 그 아들 나답 통치 2년, 도합 2대로 약 23년간에 그쳤다(B.C. 930-909). 그런데 남 왕국 유다가 다윗 왕조 통치하에 내적 안정을 이루었던 데 비해, 여로보암 왕조의 이 같은 단명(短命)은 분명코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결과라는 것이 열왕기의 시각이다(14:6-16).
북왕국 이스라엘의 3대 왕은 바아사이다. 바아사란 이름은 '바알이 듣는다'는 말의 단축형이다(MacLean) 그런데 그가 여로보암 가문을 멸하고 정권을 잡지만 그의 이름이 암시하듯 바아사 또한 우상 숭배에 몰두한 여로보암의 아류(亞流)일 따름이었다. 그러기에 그 역시 훗날 여로보암과 똑같은 징벌을 받아 아들대 제 2년에 가서 멸족을 당하게 된다(16:8,9).
한편 잇사갈 출신 바아사가 이처럼 에브라임 출신 여로보암 왕조를 친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 의미를 지닌다.
(1) 이로써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점(14:10,11)
(2) 당시 북 왕국 내의 지파간 결속이 확고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 기억할 말씀 : 왕상 15:4-5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저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 아들을 세워 후사가 되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케 하셨으니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 이스라엘 왕 엘라, 시므리, 오므리, 아합의 통치 16장
1. 하나님이 바아사에 대한 심판을 예후를 통해 예고
8. 시므리의 반란으로 바아사의 아들 엘라 왕과 그 가문의 멸망
15. 시므리의 악행과 죽음
21. 오므리의 죄악
29. 아합의 죄악
- 본 장은 패역한 북 이스라엘의 여러 왕들을 다룬다. 즉 북 이스라엘의 3대 왕 바아사의 몰락과 그 뒤를 이은 엘라의 패역, 7일 천하로 끝난 시므리의 통치,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오므리의 죄악을 소개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북 왕국 이스라엘 가운데 가장 악했던 왕인 아합의 패역상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북 이스라엘의 4-7대의 왕들이다. 한결같이 악을 행하였고,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었다. 결국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단명의 통치와 가문의 몰락뿐이었다.
엘라는 아사 제 27년째에 자신의 군대 장관 시므리에게 살해당하고 만다(9,10). 따라서 엘라는 만 2년도 채 통치하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앞서 나답이 당한 것과 똑같은 재난이라 할 수 있다(15:28).
그런데 15절의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이때는 북 왕국의 군대가 깁브돈에 출정하여 공략 중에 있었던 때이다. 그런데 그러한 시점에 왕이 대신의 집에서 연회(宴會)를 열고 있었다는 것은 뭔가 방탕한 인상을 준다. 더구나 당시 신하의 향응(響應)를 받았다는 품위에 어긋난 행위라는 지적도 있다.(Rawlinson). 따라서 이 모든 것은 엘라의 인품상 어떤 결점을 암시하는 듯이 보인다. 신복 시므리의 역심(逆心)도 어느 정도 어린 면에서 기인했을 수 있다. 즉 그는 내심 엘라를 왕으로서는 모자라는 인물로 비웃었을 수 있다.
그래서 신복 시므리가 왕을 모반하였다. 그런데 성경에서 시므리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이름도 출신 지파도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제 9절 본 절에 의하면 그는 오므리(Omri)와 함께 군부 내의 실력자인 점을 알 수 있다. 즉 이제 시므리는 북 왕국 병거대의 절반을 이끄는 군대 장관인 것이다. 그런데 본서 기자가 이러한 시므리를 언급함에 있어 굳이 “심복”이란 단어를 덧붙이고 있는 의도는 다음과 같이 추정된다.
즉 솔로몬의 신복이던 여로보암이 반역해 세운 북 이스라엘 왕국이 줄곧 신복의 하극상으로 인해 오욕(汚辱)의 역사를 되풀이하였음을 지적하려는 것이다(Hammond). 한편 시므리는 또 한 사람의 군대 장관인 오므리가 깁브돈 출정 중에 있을 때 왕궁 수비를 맡고 있었던 것 같다(15-17절). 그리고 그때 왕이 술에 취하자 정권 탈취라는 야심적 기회를 포착하였을 것이다.
그런 시므리가 1주일 동안이라도 재위(在位)할 수 있었던 것은 기실 깁브돈 출정군이 디르사로 회군(回軍)하는 데 1주일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회군한 군대는 마침내 시므리의 왕 행세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러한 시므리의 7일 천하는 3일 천하로 끝난 과거 우리 나라의 갑신정변(1884년)을 생각게 해준다. 그런데 시므리가 엘라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이처럼 단명(短命)한 것은 백성들이 그의 반란에 동조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16-18절).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시므리가 백성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음을 알 수 있는데 아마도 그 까닭은 시므리가 매우 잔인한 성품의 소유자였기 때문일 것이다(11절).
22절에 보면 오므리가 왕이 된다. 그런데 본 22절이 강조하는 바는 이제 북 왕국이 약육강식의 무대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즉 이제 누구든지 힘만 있으면 왕이 되는 판국인 것이다. 다시 말해 신정 정치의 이상으로써 왕권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제사장적 승인, 국민의 동의(1:38,39) 등이 일절 무시되고 대신에 무력에 의한 힘 제일주의가 횡행하게 된 것이다.
과거 여로보암이 형식적이긴 해도 자신의 왕권을 여호와 종교와 접목시키려 한 것(12:25-33)에 비하면, 이러한 현상은 불법의 노골화로써 일종의 위헌(違憲)적 현상이다.
29절 이하에는 악명높은 아합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합”이란 이름은 “아버지의 형”이라는 뜻으로 추정된다(Maclean). 그런데 혹자는 이 이름의 뜻을 “아버지의 형제”로 풀어 아합은 부친 오므리와 마찬가지로 불경한 인물임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Hammond). 만일 이 이름이 부친에 대한 존경 때문에 부친과의 관련성을 강조하는 이름이라면, 오므리가 거둔 성공적 업적을 본받고자 한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아합도 부친 못지 않게 군사, 외교면에서 유능한 통치자였던 점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열왕기의 종교적 관점으로 볼 때 아합은 부친 오므리보다 더 심각한 반신앙적인 인물이었을 따름이다(30절).
아합의 재위 기간은 B.C 874-853경이다. 이 무렵 북 왕국 주변 정세는 오므리 당시의 기본 구도와 큰 차이가 없었다. 즉 아람(Aram)의 위협에 대해서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 시돈(베니게)과 동맹하여 대립하는 한편, 유브라데 동편의 앗수르의 증가하는 압력에 대해서는 일단 대립을 지양하고 관망하는 양상을 띤다. 따라서 이러한 일시적 안정 정세의 추이(推移)는 북 왕국의 종교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곧 아합 이하 모든 백성들이 영적으로 나태하여 쉽게 우상 숭배 죄에 물들고 만 것이다(31-33절, 18:21).
특히 30절에 보면 아합은 이전의 열왕보다 더한 극도의 혹평을 받는다. 그 이유는 이전의 왕들이 우상 숭배를 사사로이 행했을지라도 아합처럼 공식 제사에 이방 종교를 끌어들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합이 타락하게 된 데에는 시돈 왕녀 이세벨과의 결혼이 큰 원인으로 작용하였다(31-33절).
- 기억할 말씀 : 왕상 16:34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 그릿 시냇가와 사르밧 과부에게 있었던 엘리야 17장
1. 엘리야의 가뭄 예고
8. 엘리야를 공궤한 사르밧 과부
17.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엘리야
- 열왕들의 역사를 기록해 나가던 저자는 이제 대 선지자 엘리야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엘리야의 이야기는 열왕기하 2장에까지 이른다. 무려 8장을 엘리야의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절망의 심연으로 빠져가던 북 이스라엘을 돌보시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본 장은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엘리야
먼저 엘리야에 대해 살펴본다. 엘리야란 이름은 <내 신은 여호와>란 뜻이다. 그는 이스라엘 왕 아합 때에 유명한 선지자였으며, 디셉 사람이다. 아합 왕에게 고하되 <내 말이 없으면 수년동안 우로가 내리지 않으리라.> 하고 그릿 시냇가에 숨어 있으매 여호와께서 까마귀로 조석으로 식물을 공궤케하고(왕상 17:1-7), 사르밧 과부 집에 유숙하는 중 한줌의 맥분과 적은 기름으로 여러 날 먹었어도 없어지지 않게 하고, 그 과부의 아들이 죽은 것을 다시 살려주었다(왕상 18:8-24, 눅 4:26).
아합 왕 때에 왕과 백성이 바알 우상과 아세라 목상을 숭배함므로 견책하고, 아합 왕으로 더불어 참신과 거짓 신을 분별하자 하고 바알의 선지자 400인을 데리고 갈멜산에 올라가 송아지로 제물을 삼고 기도하여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신이라고 약속한 후 바알의 선지자로 먼저 기도하라 하여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하였으나 아무 응답이 없는고로 엘리야가 자기 제단에 나아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내려 제물은 물론 나무와 돌과 흙까지 태우고 또 도랑의 물도 핧은 듯이 말리웠다. 이 때에 엘리야는 관중을 명하여 바알의 선지자를 하나도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잡아 가지고 기손 시내에 가서 죽였다.(왕상 18:19-40)
왕후 이세벨이 이 소식을 듣고 엘리야를 죽이려 하니 도망하여 로뎀 나무 아래 있을 때 천사가 어루만지고 식물을 주고 호렙산 굴에 유할 때는 여호와께서는 강한 바람과 지진과 작은 소리의 세 가지로 보이시고 명령하시기를 하시멜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네 대신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셨다.(왕상 19:1-6)
농부 엘리사가 경작하고 있는 것을 만나 자기 겉옷을 던져 따라오게 하고(왕상 19:19-21), 아합이 나봇을 돌로 쳐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은 것을 책망하여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는 곳에서 네 피를 핥으리라 하였고(왕상 21:17-19),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가 사자 50인씩 두번 보내어 오라 하는 것을 천화로 태우게 하고 세번째에 가서 왕이 죽을 것을 예언하고(왕하 1:9-16) 승천하게 되매 엘리사에게 세 번이나 작별하자 하였으나 맹세코 떠나지 않으므로 무엇을 구하느냐 물으니 당신의 영감은 배나 원한다하니 내가 승천하는 것을 보면 성취하리라 하고 겉옷을 떨어뜨리고 홀연히 불 수레와 불 말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승천하였다(왕하 2:1-11).
그의 심정과 재능이 세례 요한과 근사하다 하였고 (눅 1:17) 예수께서 변화하실 때에 모세와 함께 나타나서 주님과 말씀하였고(마 17:3), 야고보는 간절히 기도하면 응답하여 주신다고 엘리야를 들어 권면하였다.(스 5:17)
-중요한 것은 엘리야에 대한 선지자적 이해라기보다는 그의 인격과 사역에서 메시야 사상을 찾아보아야 한다는 것이 구속사적인 이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엘리야의 사역을 이해해 보려고 한다.
1. 엘리야의 인격
엘리야는 디셉 사람으로 소개된다(왕상 17:1). 그가 요단 동쪽 지역의 길르앗 본토민이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요단강 서쪽에서 온 임시 거주자, 정착민, 또는 추방당한 사람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엘리야가 북쪽 이스라엘 왕국 출신이며 요단강 서쪽 지역 출신이었다고 보는 것은, 그의 사역이 주로 이 지역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가능하다.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스스로를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으로 소개했다. 따라서 엘리야는 아합에게 자신은 무엇보다도 여호와의 종이며, 여호와의 종으로서 왕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엘리야의 인격에 대한 성경의 언급들은 다양하다. 엘리야를 여호와께 순종적이고, 그 앞에서 겸손하며,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왕상 17:3-6, 9). 아합을 만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는 용감했다. 그는 바알의 선지자들과 대결해야만 했을 때에도 단호했다(왕상 21:17-24).
그는 과부에게 동정을 베풀었다(왕상 17:13-24). 그는 엘리사를 부를 때도 태도가 분명했다(왕상 19:19-21). 그는 화난 이세벨이 두려워 호렙으로 도망하였으며 여호와께 그의 생명을 거두워 달라고 했다(왕상 19:1-6).
엘리야의 이러한 행동 때문에, 많은 저자들은 엘리야를 일컬어 <불신앙의 겁쟁이>, <자기밖에 모르는 전혀 용기없는 사람> 등과 같은 말로 공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인간이었으며, 하나님의 선지자였다. 그에게는 여호와의 언약 백성들의 영적 복지를 위한 타오르는 열망이 있었으며, 따라서 그는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 선지자로 섬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2. 엘리야의 사역
엘리야의 사역은 편의상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1) 기적들
2) 반 바알주의
3) 왕과 맞섬
1) 기적들
사람들이 쓰는 말로 하자면, 엘리야는 기적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는 일련의 기적들을 행했다. 그리고 그 기적들은 몇몇 학자들로 하여금 성경기사의 역사적 신빙성을 의심하며, 심지어 몇몇 경우들에서는 엘리야에 대한 성경 기록들을 대부분 의심하게 만들었다.
엘리야가 처음부터 기적을 행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아합을 만났을 때(왕상 17:1-2), 엘리야는 아합에게 선지자인 자신이 구하지 않으면 더 이상 이슬이나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 여호와께서는 엘이야를 요단강 동쪽 산골짜기로 인도하셨으며, 까마귀를 통하여 그를 먹이셨다(3-6절).
사르밧 과부에게 엘리야를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8절). 그리고 그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달라는 엘리야의 외침을 들으신 이도 여호와이셨다(19-24절).
기적들은 선지적 마술이나 다른 어떤 종류의 마술에 의해서 행해진 것이 아니었다. 기적들은 일련의 자연현상들과 관계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 기적들은 일상 생활 과정에서 경험되는 것으로, 식량, 불, 비, 물, 죽음, 생명, 바람, 육체적 힘에 대한 특별한 과시들과 같은 것들이었다.
여호와께서는 엘리야를 대신하여 이러한 기적들을 직접 행하실 대도 있으셨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행하셨다. 그리고 그러한 기적들은 네 가지 이유들에 의해서 행하여졌다.
1) 기적들은 아주 적대적인 상황에서 일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엘리야에게 확신과 용기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2) 기적들은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며, 자연과 인간의 생명과 신적인 경배의 주권적인 주인임을 보여주었다.
3) 기적들은, 그들의 언약의 여호와께 대한 충성과 <아무 것도 아닌 신들>을 위한 의식들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전심으로 자신에게 충성할 것을 당연히 요구하셨다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어야 했다.
4) 기적들은, 엘리야가 참으로 여호와의 선지자의 종이며, 그의 말은 여호와 바로 그분의 말로 받아들여져야 하며, 이스라엘이 사랑과 순종과 헌신된 섬김에서 여호와께로 돌아갈 길을 엘리야가 준비하고 있다는 상징이자 증거였다.
2) 반 바알주의
이스라엘에 바알주의가 횡횡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역시 아합의 아내인 이세벨이었다. 즉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 이세벨과 그녀의 바알 선지자들의 죄가 더해졌다(왕상 16:30-33). 가나안 사람들과 페니키아(뵈니게) 사람들이 섬겼던 신 바알은 태양, 불, 물, 그리고 특히 생명을 낳는 자연적인 힘의 위대한 주인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바알 숭배자는 생명의 창조주요, 지탱자요, 통제자이신 여호와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었다. 바알 숭배는 여호와께서 족장들과 모세와 한 나라인 이스라엘과 세우신 언약 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었다.
따라서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과 대결할 때 여호와,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기도로서 호소했다(왕상 18:36-37). 엘리야는 불을 내려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은 응답하셨고, 그것은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라.(왕상 18:39)>는 증거를 보이신 것이다.
한 마디로 엘리야는 우상숭배의 자리에 빠진 모든 백성들과 왕들에게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선포한 사람이었다.
3) 왕과 맞섬
엘리야의 반 바알 사역은 많은 왕들로부터 대립과 갈등을 빚게 된다. 따라서 바알을 섬기는 자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그 바알을 섬기는 권력자들과의 싸움이 불가피했다는 말이다. 특히 엘리야는 바알 숭배자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아합과의 싸움을 지속해야 했다.
첫 번째 대결 : 왕상 17:1
두 번째 대결 : 왕상 18:16-46
세 번째 대결 : 왕상 21:7-16
3. 엘리야의 메시야적 중요성
1) 예수 그리스도는 탁월한 선지자이며, 엘리야는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2) 엘리야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모습을 예언적으로 보여준다.
a) 둘은 모두 백성들의 필요를 섬겼다.
b) 둘은 기적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c) 둘은 모두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말하며, 인간 마음의 거짓됨을 폭로했다.
d) 둘은 모두 여호와께서 의도하신 섬김의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통치권에 도전했다.
e) 엘리야는 심판의 선지자였다(왕상 18:16-38).
- 기억할 말씀 : 왕상 17: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 갈멜산 위의 엘리야 18장
1. 사마리아의 극심한 기근으로 인한 아합과 오바댜
7. 엘리야와 오바댜의 만남
16. 아합 앞에 선 엘리야
20. 갈멜산의 대결
41. 엘리야의 기도로 큰 비가 내림
- 본 장은 엘리야의 가장 유명한 사역이라 할 수 있는 갈멜산에서의 바알 숭배자들과의 전투를 다루고 있다. 하나님의 지시로 다시 아합에게 나간 엘리야와 아합 궁내에서 온전한 신앙을 유지하고 있었던 오바댜의 행적을 기록하고, 갈멜산에서의 바알 선지 450명과의 싸움을 기록하고 있다.
엘리야는 그의 사역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를 광야로 보내셨던 하나님은 이제 우상숭배의 소굴로 들여보내시며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케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두 가지 방법으로 당신의 뜻을 나타내셨다.
1) 내적인 충동으로
2) 젊은 오바댜를 만나게 함으로
그런데 엘리야는 어디서 이런 능력을 얻을 수 있었는가?
1) 그의 담대하고 꿋꿋한 용기이다.
2) 그가 내뿜는 말마다 승리의 확신에 차 있었다.
3) 엘리야의 빼놓을 수 없는 무기는 기도이다.
왕상 18: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 궁내 대신 오바댜는 '여호와를 섬기다'는 뜻이다. 특히 이 이름 속에 담긴 동사 '아바드'는 '노예처럼, 종처럼 섬기다'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사실상 이름 그대로 오바댜(Obadiah)는 지극한 열심으로 여호와를 섬긴 사람이다. 즉 당시 바알 숭배의 심장부라 할 아합 궁중의 고위직에 있었던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호와의 선지자 일백 인을 숨겨 주었다는 사실(4절)은 가히 그 신앙의 열성과 순수함을 짐작케 해준다.
- 기억할 말씀 : 왕상 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 호렙의 엘리야 19장
1. 엘리야의 도피와 천사의 인도
9. 호렙산의 엘리야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15. 하사엘, 예후, 엘리사에게 기름 붓도록 명하심
19. 후계자로 엘리사를 선택
- 여기서 우리는 나약한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본다. 그처럼 의기양양하게 바알 선지자 450명을 불로 물리쳐 이긴 엘리야는 그 아름답던 믿음의 용기를 다 잃어버린 체 낙심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아합의 아내 이세벨의 거센 저항으로 인해 호렙산으로 피신을 하게 된 것이 동기가 되었으나, 그곳에서 인간적인 나약함을 보이며 하나님께 죽여주기를 간구한다. (왕상 19:4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그러던 엘리야는 다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힘을 얻게 되지만 너무나도 약한 모습에 우리는 시선을 멈추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낙심한 엘리야에게 찾아오셔서 엘리야를 위로해 주시고, 돌보시며, 승리의 비젼을 보여 주셨다.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의 한계라고 볼 수 있고, 또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결코 그 어떤 이유로라도 끊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 이세벨
이세벨은 어떤 사람인가?
이세벨이란 이름은 <고상하다>는 뜻이다. 이세벨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로 이스라엘의 일곱번째 왕인 아합의 아내였다. 엣바알은 시돈 왕이면서 아스다롯의 이방 제사장을 겸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바알 종교의 대표적인 가문에서 자라났다. 왕위와 제사장직을 겸한 그의 아버지 엣바알이 우상숭배와 이방제사에 대해 자기 취향대로 화려하고도 풍요롭게 제사하는 관습을 이세벨은 어려서부터 익힌 셈이다.
이세벨이 아합왕의 아내가 되자 북조 이스라엘에도 시돈과 같이 왕실과 바알 제사와 관련지어 이방종교의 제주가 되다시피 궁중을 우상 화시켰다. 북조 이스라엘 전역에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세웠으며 사마리아에는 바알 전각을 짓고 단을 쌓아 큰 제사를 지냈다. 또한 이세벨의 상에서 함께 식사하는 바알의 선지자 4백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백명을 거느릴 정도로 왕실이 온통 이방신을 섬기는 분위기와 이방 선지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무차별 살해했고 하나님 신앙을 짓밟게 되었다.
아합은 극렬한 우상숭배자요, 독부요, 북조 이스라엘을 타락시킨 죄인이었다. 특기할 사실은 나봇에게 누명을 씌워 비류를 통해 위증을 시켰고 억울하게 돌로 쳐죽였으며 그 포도원을 강제로 빼앗은 일이다. 그 결과 예후의 예언과 같이 이세벨이 죽을 때 피가 담과 말에 튀었고, 두개골과 발과 손바닥만 찾게 되었다.
어떤 교훈을 얻는가?
1) 잘못된 부모의 타락된 신앙을 분별없이 수용한 이세벨의 불행을 본다. 잘못된 부모는 경계해야 된다.
2) 이세벨은 자기 행위대로 보응을 받은 자이다. 의를 심어 의를 거두어야 한다.
- 기억할 말씀 : 왕상 19:14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 아합의 시리아와의 싸움 20장
1. 아람왕 벤하닷의 사마리아 포위와 무례한 요구
13. 벤하닷을 물리친 아합
22. 아합이 다시 아람 군대를 물리침
31. 아합이 벤하닷에게 어리석은 자비를 베품
35. 선지자에게 심히 책망받는 아합
- 17장에서부터 계속되던 엘리야의 이야기가 잠시 중단되고 본 장에서는 아합 시대에 아람과 치루어야 했던 이스라엘의 전쟁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아합은 북 이스라엘의 7대 왕이다. 이 전쟁에서 하나님은 아합이 비록 범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벤하닷의 오만 방자함과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를 징계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에 승리를 안겨 주신다. 즉 본문은 택한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보호와 섭리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말씀이다.
사실 아합의 죄악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합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는 적은 숫자로 연합대군인 아람 군대를 맞이하여 두 차례에 걸쳐 큰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렇다면 아합 군대가 승리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1) 아람 왕 벤하닷의 교만함 때문이다.
2)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상숭배자들을 용서하지 않으신다. 벤하닷의 교만함을 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아합에게 승리를 주셨지만, 그러나 결국 아합도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35절 이하에서는 아합에게 임하는 심판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 기억할 말씀 :왕상 20:28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붙이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 나봇의 포도원 21장
1.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는 아합
5. 이세벨의 음모
11.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탈취
17. 엘리야가 아합과 이세벨의 멸망을 예고
27. 아합의 일시적인 회개
- 우리가 잘 아는 나봇의 포도원 사건이다. 아합의 악행은 이제 최고조에 달했다. 저항할만한 아무런 힘도 없는 농부인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어 그를 살해하고 그 포도원을 차지하게 된다.
그런 후에 그는 엘리야를 만나 죄에 대한 고발을 듣게 되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자 하나님은 심판을 유예하신다. 그러나 그의 회개의 고백은 형식이었을 뿐 22장에서는 심판의 죽음을 당하게 된다.
@ 나봇의 포도원 사건이 주는 교훈
나봇의 살인과 강탈은 아합의 생애 중에서 가장 어두운 일화들 중의 하나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는 우상숭배와 박해만이 이세벨이 그로 하여금 짓게 한 유일한 죄악이 아님을 보게 된다. 사실상 그러한 죄악은 한 가지만 저질러질 수는 없다. 그 죄들은 당연히 수많은 다른 죄들의 모체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악한 생애 동안에 그와 같은 잔인한 죄악의 행동들을 많이 범했을 것이다. 이것은 그가 얼마나 철저히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는지를(20절)> 보여 주는 것이다.
1. 그의 죄
1) 허욕 : 그의 왕실은 영토가 크고 부요하였음에도 나봇의 작은 포도원을 갖고 싶어했다.
2) 압제 : 그것은 권력의 악한 남용이었다. 그에게는 힘이 정의였다.
3) 불경건 : 아합은 자기가 나봇으로 하여금 명백히 하나님의 명령(민 36:7)을 어기도록 유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 민 36:7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이 다 각기 조상 지파의 기업을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니...)
4) 천박한 도덕적 연약성 : 본 장 4절이 그 답을 준다.
(왕상 21:4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업을 왕께 줄 수 없다 함을 인하여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궁으로 돌아와서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이키고 식사를 아니하니...)
5) 야비한 외식 : 손상을 입은 나봇을 거짓 법정에 나서게 함으로 그의 야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2. 그의 심판
1) 심판의 확실성 : 민 32:23 <너희가 만일 그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니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
2) 범죄에 대한 보응 : 본문 19절에 보면 <너는 저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하셨다 하고 또 저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셨다 하라.>라고 하셨다. 여기에 내포된 원리는 흔히 하나님의 징벌의 현저한 면모가 되어왔다.
3) 심판의 연기 : 하나님의 심판은 연기될 수도 있다. 본 장에서도 하나님의 심판은 즉각적이지 않고 연기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3. 그의 회한
본문 27절은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행보도 천천히 한지라.>라고 했다. 아합이 회개한 것처럼 보인다. 회개의 모습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었다. 피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해 돌연한 경종에서 나온 것이지 회개가 아니다. 왜인가? 그는 그 이후 더 악해졌기 때문이다. 회개는 열매를 보아 안다. 지속적이어야 하고, 변함이 없어야 한다. 아합은 그것이 없었다. 현실을 피해보려는 안일한 생각의 결과였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 기억할 말씀 :왕상 21:27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행보도 천천히 한지라.
# 아합의 시리아와의 최후 결전과 그의 죽음 22장
1. 아합과 유다왕 여호사밧의 동맹
5. 길르앗라못 침공에 대한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
13. 참 선지자 미가야의 예언
29. 아합의 전사
41. 유다왕 여호사밧의 통치
51. 이스라엘왕 아하시야의 통치
- 본 장은 세 왕을 다룬다. 아합의 비참한 종말이 그 첫 번째이고, 남 왕조 유다의 4대 왕 여호사밧과 북 왕조 이스라엘의 8대 왕 아하시야가 그 인물들이다. 그리고 아하시야는 열왕기하 1장에까지 계속된다.
40절까지는 아합의 종말에 대한 기록이다. 즉 여러 차례에 걸친 심판의 예언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취되는가를 아합의 종말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아합의 악행은 사악한 이세벨의 간교한 술책에 숨어 백성들에게 가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은 마침내 아합에게 비극적인 최후를 안겨 주었다.
41-53절은 남 유다 왕 여호사밧과 북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의 통치에 대한 기록이다. 두 왕은 분열왕국의 한 시대를 통치한 왕이지만 서로 대조적인 통치를 하였다. 즉 여호사밧은 신실한 하나님 중심의 통치를, 그리고 아하시야는 패역한 우상숭배를 그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본문에는 유다의 3대 현왕 중 한 사람으로 불리우는 여호사밧의 실책을 기록하고 있다. 즉 아합과의 연혼, 아합과의 군사동맹, 산당을 남겨두는 철저하지 못한 종교 숙청, 그리고 아하시야와 상업적인 동맹을 맺은 사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열왕기 기자의 독특한 역사관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호사밧(예호솨파트)은 '여호와께서 심판하시다'라는 뜻이다. 그의 치적에 대해서는 역대기가 상세한 정보를 전해 준다. 그 중에서도 그의 3대 업적을 들자면...
(1) 신앙 부흥 운동 (대하17:7-9)
(2) 군사적 업적 (대하17:12-19)
(3) 재판 제도의 체계화 (대하 19:4-11)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보아 여호사밧은 매우 유능한 통치자였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열왕기는 이 가운데서도 오직 주된 관심사 한 가지, 곧 여호사밧이 올바른 신앙을 가졌다는 점만을 지적할 뿐이다(43a절). 그리고 그 외에는 도리어 아합과의 군사 동맹(1-36절과 산당을 남겨둔 일(43b절)등 부정적 요소들만을 들추어 내고있을 뿐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열왕기 기자의 독특한 사관(史觀)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곧 열왕들의 모든 행적을 '여호와 앞에서'(Coram Deo)라는 잣대로 평가한다는 점이다.
또 이것이 우리의 신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 기억할 말씀 : 왕상 22:17 저가 가로되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가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그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 엘리야와 아하시야 왕하 1장
1. 이스라엘의 왕 아하시야가 난간에서 떨어져 병을 얻음
5. 아하시야의 죽음을 예고하는 엘리야
9. 102명을 불태운 하나님의 불
15. 아하시야에게 직접 죽음을 예고
17. 아하시야의 죽음과 여호람의 즉위
- 본 장은 북 이스라엘 8대 왕 아하시야와 엘리야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데 아하시야는 동명이인이다. 즉 남 유다의 6대 왕도 그 이름이 아하시야이다. 여기서는 북 이스라엘의 아하시야를 다룬다.
솔로몬 이후 세대부터 분열 왕국을 이루게 된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제 열왕기하를 들어서면서 점차 멸망의 기로를 걷게 된다. 그 중에서 본문은 북 이스라엘 왕조의 역사 가운데 가장 번창했던 오므리 왕조(B.C 885-841)가 아하시야 대(B.C 853-852)에서 쇠퇴해 가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다. (참고로 오므리 왕조는 북 이스라엘의 3대 왕 바아사에서부터 9대 왕 여호람까지를 말함)
이러한 슬픈 역사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죄악과 부패를 고발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등 맡은 바 사명을 다하였다. 실로 어두움이 짙으면 짙을수록 빛은 더욱 그리운 법이다.
@ 아하시야
아하시야는 <여호와께서 소유한 자>라는 뜻이다. 아하시야는 북조 이스라엘의 7대왕 아합의 아들로 아합의 뒤를 이어 사마리아에서 왕위에 오른 자이다. 아하시야는 그의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하나님을 거스른 자요, 그 어머니 이세벨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자였다. 그러므로 바알을 섬겨 숭배하였고, 하나님 앞에 영적으로 범죄와 악을 도모하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다.
불과 2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나라와 백성을 더욱 불안케 만든 사람이다. 한마디로 말할 때 정치력이나 사람 관리에 있어서 아버지에게도 훨씬 못 미치는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아합 왕이 세상을 떠나자 조공을 바치던 모압왕이 배반하고 나섰다. 이와 같이 정치적으로 불안한 때인데도 금을 얻기 위해 다시스에 배를 오빌로 보낸 것은 무리한 욕심이었다. 결국 배가 파선되어 실패했으며 이때에 여동생의 시부가 되는 여호사밧에게 협력을 구했으나 동조하지 않아 그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또한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었을 때에 엘리야를 제쳐놓고 에그론의 신 바알세불에게 생사를 확인했다가 심판을 받아 죽음이 선고되었다. 아하시야는 꼭 해야할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탈선된 생활로 일관하여 버림받은 사람이다. 더욱이 엘리야를 잡아오도록 세번이나 오십부장과 오십인을 파송함으로 죄에 죄를 가중시킨 사람이다. 이와 같이 자만함으로 아하시야는 멸망을 받았다.
특히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죽은 아하시야의 슬픈 역사를 보면서 우리는 이런 사실들을 깨달을 수 있다.
1)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멸망한다.
2)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는 멸망한다.
그리고 17절 이하에서는 아하시야의 뒤를 이어 시므리 왕조의 마지막 왕이자 북 이스라엘의 9대 왕인 여호람이 즉위하는 내용이 나온다.
- 기억할 말씀 :왕하 1:16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사자를 보내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 하니 이스라엘에 그 말을 물을 만한 하나님이 없음이냐 그러므로 네가 그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니라.
# 엘리야의 승천 2장
1. 엘리야를 따르는 엘리사
7. 요단을 가르는 엘리야
9. 갑절의 영감을구한 엘리사
11. 엘리야의 승천
12. 요단강을 가른 엘리사
15. 승천을 의심하는 여리고 선지 생도들
19. 물을 고친 엘리사
23. 엘리사를 조롱하다 죽은 42명의 아이들
- 열왕들의 부패한 정치를 소개하던 열왕기 기자는 이제 본 장에서 시선을 돌려 엘리야의 승천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아합에서 아하시야 시대까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이스라엘의 가증스런 우상 숭배 행위를 고발하고 각종 죄악을 꾸짖음으로써 영적 무기력감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우쳐왔던 엘리야(B.C 875-848) 선지자가 마침내 그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승천하는 장면이다. 실로 영광스러운 장면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엘리사를 준비해 주셨다.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받은 우리들은 어떤가? 이 패역한 시대에 엘리야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기를 원하는가? 또 그런 능력받기를 원하는가? 노력하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특히 본문 11절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 수레와 불 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 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장면인가? 그러나 일부 신신학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의 사역을 부인하고, 그 역사성 자체를 부인하는 무리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다.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원문의 문자적인 뜻은 '이에 그들이 걷기를 계속하면서 계속해서 말했다'란 의미로 이것은 두 사람이 요단 강을 건너 걸어가고 있을 때(Wycliffe) 하늘로부터의 징조를 기다리면서 한참동안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을 가리킨다. 이처럼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엘리사에게 무슨 증거를 보이시도록 기도하였을 것이며, 또한 엘리사는 스승의 최후를 맞이하면서 엘리야가 남긴 교훈을 하나라도 더 듣기를 원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과 유사한 예로서 누가복음 24:50,51절에는 예수께서 하늘로 올리우시기 전에 제자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서 축복해 주시는 장면이 나온다.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이 구절은 1장에서 말한 '하늘에서 내려온 불'과 연관됨이 분명하다(1:9-16). 엄밀하게 말하면 실제로 '불수레와 불말'에 관한 언급은 엘리야의 생애 중에서 불의 역사로 말미암은 그의 승리를 연상시켜 준다(왕상 18:24-38; 왕하 1:10-12).
실제로 구약에서 말과 병거는 군대의 전쟁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며(출 14:7; 삿 4:3;욜 2:5;나 3:2), 불이 하나님의 현현을 상징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출 3:2;24:17;신 33:2;합 3:3-5)이 '불수레와 불말'이 하나님의 권능과 의지를 나타내는 구름을 의미(Lange)한다기 보다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와 초자연적인 권능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Pulpit Commentary, Wycliffe).
-회리바람을 타고-
원문의 문자적인 뜻은 '회리바람 안에' 또는 '회리바람 가운데'이다. '회리바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세아라'로서 검은 구름과 번갯불을 동반한(Wycliffe) '태풍' 상태를 의미한 말로 하나님의 임재, 또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여기서 회리 바람은 자연법칙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으로 일어난 현상이었다(욥 38:1;행 2:2). 그리고 원문을 보면 엘리야가 불수레와 불말을 타고 승천했는지 분명치가 않다. 단지 갑자기 불수레와 불말이 나타나자 엘리야와 엘리사가 태풍가운데 사라진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엘리야가 불병거를 타고 올라간 것이 아니라(말 4:5,6; 마 11:14) 폭풍 중에, 즉 주께서 임재하시는 가운데 승천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Wycliffe).
그래서 17절에서 오십인을 보내어 엘리야를 찾아오게 한 것도 이와 같이 그의 사라짐이 묘연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엘리야가 에녹(창 5:22-24), 예수(눅 24:50-53)와 같이 죽지 않고 하늘에 올라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모든 신자들이 경험하게 될 일에 대한 예표이기도 하다(고전 15:51; 살전 4:17). 한편 후대의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시지 직전에 먼저 엘리야가 나타나리라(말 4:5)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유대 문헌 가운데 기록하고 있는 바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유월절에 엘리야가 갑자기 들어올 것을 예상하고 문을 잠그지 않았다고 하며, 개들이 즐겁게 짖으면 그것이 엘리야가 오는 소식이라하여 가슴을 두근거렸다는 것이다(Bahr).
-승천하더라-
여기서 히브리 원문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는 '알라'인데 이 것은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질문할 때(3,5절) 사용한 단어 '라카흐'와 다른 뜻이다. 즉 '라카흐'는 하나님이 그를 데리고 가심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알라'는 그 원형인 '번제'라는 뜻의 '올라'에서 보듯이 완전히 태워져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사라지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확실히 에녹이 승천한 경우와 연관되는데(창 5:24) 창세기의 기록에서는 세상에 "있지 아니 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을 해석할 때 엘리야의 승천 방법을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하여 그의 모습을 사라지게 하심으로써 에녹과 모세와 동일하게 취하셨음을 인정할 수 있다. 한편 하나님의 기적과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인하는 자유주의적인 신학자들의 일부는 본 엘리야의 승천 기사를 하나의 전설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The Interpreter's Bible). 그러나 그 현장을 목격한 당시의 선지 학교 학생들과 엘리사의 증언에 의해 또는 승천 전에 언급된 사실(3,5절)을 미루어 볼 때, 그리고 변화 산상에서 모세와 같이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엘리야의 기사를 살펴볼 때, 그 사건의 역사적 진실성과 객관적 사실성은 충분히 입증 되었다고 할 수 있다(마 17:3,4; 눅 9:30).
이러한 엘리야 선지자의 승천 사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곳에 대한 확실성 뿐만 아니라 인간의 불멸성에 대해 어렴풋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불멸성은 성도의 몸이 입게 될 영광이고, 이러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가 승천하신 것에 대한 한 상징인 것이다(Matthew Henry Commintary).
- 기억할 말씀 : 왕하 2: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 여호람과 모압과의 싸움 3장
1. 이스라엘 왕 여호람의 통치
4. 모압왕 메사의 배반과 여호람-여호사밧의 동맹
9. 동맹군의 왕들이 갈증으로 엘리사를 찾다
13. 물과 승리를 예언해 주는 엘리사
21. 모압을 이긴 이스라엘
26. 모압왕이 자신의 아들을 번제드리는 만행
본 장에 등장하는 중요한 인물은 4사람이다. 1장에서 언급한 북 이스라엘의 9대 왕 여호람, 남 유다의 4대 왕 여호사밧, 이들이 정복한 모압의 왕 메사, 그리고 선지자 엘리사가 그 사람들이다. 그런데 8:15절까지는 주로 여호람의 치적을 소개하고 있다.
그 중 본 장은 선악을 동시에 행한 여호람의 치적을 먼저 소개하면서(1-3절), 아합이 죽은 후에 북 이스라엘의 쇠퇴기를 틈타 모압이 반란을 일으키자 여호람이 유다왕 여호사밧과 동맹을 맺고 모압으로 원정을 나가는 사실을 기록한다. 그런 와중에 엘리사는 여호람에게 모압 정벌에 대한 예언을 하고, 여호람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정복을 통해 승리를 거두게 된다.
@ 엘리사
엘리사는 <하나님은 구원>이라는 뜻이다. 엘리사는 사밧의 아들로서 요단 강변의 아벨므훌라 사람이었다. 엘리야 선지자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북조 이스라엘에서 헌신한 하나님의 큰 종이었다. 엘리사가 밭을 갈고 있을 때 엘리야가 겉옷을 그에게 던져 소명을 표하자 엘리사는 급히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 달려가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였고,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가 밭을 갈 때 사용한 기구를 불사르며, 그 고기를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함으로써 큰잔치를 베풀었다. 이는 엘리사가 하나님의 부름에 대해 얼마나 만족스럽게 여겼는가를 알 수 있고 또한 그의 헌신의 출발 모습을 보게 된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승천하기 직전 갑절의 영감을 구하여 엘리야를 하나님이 취하시는 것을 보는 조건으로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을 약속 받았다. 그러므로 길갈, 벧엘, 여리고, 요단까지 결사적으로 맹세를 앞세워 추종하고 불수레와 불말이 두 사람 사이를 떼어놓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는 것을 지켜봄으로써 갑절의 영감을 받게 되었다. 그 후 북조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신과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가기 위해 최선의 사명을 다하였다.
또한 선지자 생도의 아내가 큰 빚을 졌을 때 한 병의 기름으로 많은 기름을 생산하여 빚을 갚고도 남게 하였다. 그리고 수넴 여자의 후한 대접과 숙소를 제공받고 그 가정에 아들을 내려주고 축복받게 하였다.
- 엘리사를 통한 교훈
1) 하나님께 대한 헌신은 하나님의 소명에 의해 이루어진다. 또한 이 소명에는 반드시 본인의 응답이 있어야 한다.
2) 하나님의 소명에 감사하는 사람만 충성된 헌신이 가능하다.
@ 메사
메사는 <큰 고통>이라는 뜻이다. 메사는 모압왕으로 영웅심이 강하고 대담하였으나 자기 행위를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모압은 이스라엘에 새끼 양과 수양 10만마리의 털을 조공으로 바쳤다. 그러나 아합 왕이 죽자 이 조공을 거부하고 이스라엘과 적대관계를 갖게 된 것이다. 메사는 이스라엘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으며 계속 긴장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스라엘 아합 왕의 아들 여호람은 모압의 배반으로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그는 국왕의 권위를 걸고 모압과 싸우기 위해 전쟁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결국 여호람은 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에돔 나라의 연합군을 요청, 세 나라의 동맹군으로 모압을 공격하게 된다. 그러나 진군 도중 광야에서 물이 없어 위기를 겪게 되었다. 여호사밧이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람을 찾자 여호람의 심복 중 한사람이 엘리사를 소개하였다.
엘리사는 바로 <여호사밧을 위해 응하리니 거문고 타는 사람을 불러오라.>고 하였다. 이때 하나님의 영감이 임하여 골짜기에 많은 개천을 파도록 하였고 엘리야가 예언한대로 물이 가득하였다. 아침 햇살과 함께 그 물이 피로 보여 모압 왕은 크게 패주했고 그 아들을 그모스에게 바치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다.
@ 여호람
여호람은 아합의 아들로서 이스라엘의 9대 왕이었다. 결국 아합의 뒤를 이어 아하시야와 여호람 두 형제가 왕위를 계승했으나 하나님의 뜻에 미치지 못했고 오므리의 왕조는 여호람을 마지막으로 4대만에 끝을 맺고 만다. 하나같이 우상숭배와 타락으로 불행한 가문이 되었다.
여호람은 가장 수치스럽던 바알의 주상을 제거하였으나 여로보암이 만든 송아지는 남겨두어 숭배하여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하였다. 부왕이 세상을 뜨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반역하고 일어나므로 남조 유다와 에돔의 지원군을 얻어 시내를 파고 물을 가두어 저수된 물이 피로 보이게 하므로 전쟁에 큰 승리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람군대의 끊임없는 침범으로 여호람의 통치는 위협을 받고 있었다.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하나님의 기적으로 문둥병을 고침으로 일시적으로는 우호관계가 이루어지는 듯 했지만 계속 아람나라가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있었다.
국가적으로는 두렵지 않으나 엘리사 선지자 때문에 이스라엘을 정복하지 못한 아람나라는 군대를 풀어 엘리사를 생포하려 했다. 그러나 아람군대의 수보다 불병거와 불말로 무장한 하나님의 군대가 더 많아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포로로 삼았다가 다시 돌려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호람이 길르앗 라못 전쟁에서 아람군대에게 부상을 입고 요양 중 예후의 공격을 받아 세상을 떠났다.
- 기억할 말씀 : 왕하 3:17-18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육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이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오히려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붙이시리니...
# 엘리사의 4가지 기적 4장
1. 엘리사가 기름으로 과부를 구함
8. 엘리사를 대접하는 수넴 여인
11. 수넴 여인에게 아들을 갖도록 축복함
18.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음
21. 엘리사를 찾는 수넴 여인
28.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림
38. 길갈에서 독국을 해독
42. 엘리사가 보리떡 20개로 100명을 먹임
- 본 장에는 엘리사가 행한 4가지 기적을 기록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5가지 기적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기적들은 모두 자비의 기적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적들을 엘리사를 통해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이다.
여기 엘리사가 행한 기적을 사역의 성격에 따라 분류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을 것이다.
@ 개인을 상대로 한 이적 : 물질 공급을 통한 축복 (1-7)
아들의 출생과 소생을 통한 축복 (8-37)
이 둘은 공히 가정 구원을 목표로 한 사역이었다.
@ 대중을 상대로 한 이적 : 식물의 해독 (38-41)
보리떡 20개로 100명을 먹임 (42-44)
이상의 모든 기적은 다 우리의 생존에 관련된 기적들이다.
- 이런 기적의 특징을 살펴보면...
1) 본 장에서는 등장하는 인물들의 정확한 소개가 없다. 평범한 대중들이다.
2) 본 장에서는 엘리사를 한 번도 선지자로 부르지 않는다. 단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리운다.
이것은 분명 44절에서 말하는 <여호와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함이 분명하다 하겠다.
3) 본 장에서 다루는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과 흡사한 곳이 많다.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린 기적과 예수님의 나사로를 살린 기적, 보리떡 20개로 100명을 먹인 기적과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
진정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 기억할 말씀 : 왕하 4:43-44 그 사환이 가로되 어찜이니이까 이것을 일백 명에게 베풀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저가 드디어 무리 앞에 베풀었더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다 먹고 남았더라.
# 나아만의 병을 고침 5장
1. 문둥병자 나아만
2. 선지자를 소개하는 하녀
5. 이스라엘 왕에게 전해 온 아람 왕의 친서
8. 엘리사가 나아만을 초청
9. 엘리사가 나아만을 치유
15. 사례하는 나아만
20. 재물을 탐내는 게하시
25. 문둥병자가 된 게하시
- 엘리사의 사역은 계속된다. 즉 본 장에서는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의 병을 치료해 주는 엘리사의 사역이 기록되어 있다. 즉 나아만이 아람 왕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에 자신의 치료를 의뢰하였으며, 엘리사의 명령에 순종한 나아만이 요단 강에서 일곱 번 목욕한 후 깨끗함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나아만은 여호와 신앙으로 귀의하였으며,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사례를 하려고 했다.
하나님은 이런 이적을 통해서 당신은 단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모든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사실을 증거해 준다. 또 하나님은 만인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증거해 주고 있다.
문둥병을 치료받은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그 은혜에 감사해서 예물을 드렸으나, 그 치료의 주역이 자신이 아닌 하나님임을 밝힘으로 예물을 받기를 거절한다. 그런 와중에서 물질에 눈이 어두워진 엘리사의 종 게하시의 범죄와 그 징벌로 문둥병자가 된 사실 등을 소개하고 있다.
- 특히 아랍의 군대 장관 나아만의 병을 고친 이 사건은 영혼 구원에 대한 영적인 진리를 보여 주는 모범적인 실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영적인 진리들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 인간의 타락한 상태
2) 복음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증인들
3) 구원을 얻기 위한 인간의 헛된 추구
4)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초청
5) 구원에의 장애물
6) 구원을 얻기 위한 올바른 방법
7) 구원의 결과
이러한 사실들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본문에서 구원의 분명한 길을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단순한 병자를 고치시는 엘리사의 이야기가 아닌 영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위의 내용들을 생각해 보면서 아래의 말씀들을 묵상해 보자.
1) 하나님 앞에 오기 전의 인간(1절)
2) 하나님의 복음의 사신들(2-3절)
3) 구원을 찾을 수 없는 곳(4-7절)
4) 구하는 자에게 열린 문(8절)
5) 구원의 단순성(10절)
6) 자만심은 십자가 밑에 설자리가 없음(9, 11-12절)
7) 개인적인 사역자가 하는 설득의 가치(13절)
8) 믿음으로 순종하면 즉시 이루어지는 구원(14절)
9) 감사-구원받은 자의 첫 열매(15-17절)
10)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자세(18-19절)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약 1:15).
@ 나아만
나아만은 <즐겁다>라는 뜻이다. 나아만은 아람나라의 군대장관으로 유력한 사람이었다. 아람나라의 국운을 좌우할만한 인물이었으므로 위로는 국왕 벤하닷의 총애를 받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사랑을 받는 위인이었다. 이렇게 세상의 영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가 문둥병자였다. 이는 그가 누리는 세상의 영화만큼이나 치명적인 상처였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 사로잡아온 한 소녀가 나아만 아내의 몸종으로 있었다. 그 소녀는 나아만에게 이스라엘에는 문둥병까지 고칠 수 있는 선지자가 있다고 알려 주었다.
나아만은 백방으로 자기 병을 치료해도 고칠 수 없음을 깨닫고 어린 소녀의 권고에 따라 문둥병을 고치기 위해 이스라엘을 방문하게 된다. 이때 이스라엘의 여호람왕은 또 다른 선전포고로 생각해 크게 충격을 받고 당황하지만 엘리사의 요청에 따라 나아만을 엘리사에게로 보냈다. 엘리사는 인간의 의술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됨을 보여주기 위해 나아만에게 요단강에 가서 7번 씻으라고 명령했다. 나아만은 자기를 푸대접한 것으로 오해하고 돌아가려 했으나 신하들의 만류로 요단강에 들어가 7번 씻자 문둥병이 깨끗해졌다. 나아만은 사례로 은 10달란트와 금 6천개와 옷 10벌을 엘리사에게 내놓았으나 이를 모두 거절하자 가나안 흙 2바리를 기념으로 싣고 돌아갔다.
@ 게하시
게하시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선지자 엘리사의 종으로 엘리사를 수종드는 사람이었다. 엘리사는 선지자 중의 선지자로 하나님이 큰 사역을 맡기셨는데 그 선지자의 모든 행적과 처신을 보살핀 것을 보면 게하시도 그의 인격이나 영적 자질이나 신앙이 상당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게하시가 나아만 장군이 가져왔던 선물의 일부를 탐냄으로 범죄한 사건 외에는 게하시가 엘리사를 돕는 봉사나 엘리사가 게하시를 통해 영적 사역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이것은 게하시의 자기 신분에 맞는 개인의 능력을 말해주고 있다. 게하시는 판단력이나 관찰력도 예민하여 엘리사에게 큰 호의를 베풀고 후대한 수넴에 살고 있는 귀부인의 마음을 읽고 아들을 주시도록 제안한 일이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게하시가 인정도 많았고 자상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문둥병을 고치러 올때 많은 예물을 앞세우자 그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문둥병이 나을 때 나아만이 많은 예물을 희사하므로 엘리사가 한점도 받지 않고 돌려 보내자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권위와 나라의 체면을 세우게 된다. 이 광경을 지켜본 게하시가 나아만의 뒤를 따라가 에브라임 산지에서 온 두 생도를 빙자하여 은 두 달란트와 옷 두벌을 속여 받은 범죄로 문둥병자가 되었다.
- 기억할 말씀 : 왕하 5:13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 시리아가 이스라엘과 싸움 6-7장
6장
1. 도끼를 물위에 떠오르게 한 엘리사
8. 엘리사가 아람 왕의 작전을 미리 알아 냄
14. 엘리사가 자기 사환의 눈을 열다
18. 장님이 된 아람군
24. 사마리아의 고립과 기근의 참상
30. 기근의 책임을 엘리사에게 돌리는 여호람
32. 자객의 옴을 미리 말하는 엘리사
- 본 장에서는 아람이 거듭 이스라엘을 침공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선지자 엘리사가 각종 이적을 통해 (6:1-7절은 엘리사가 도끼를 물 위로 떠오르게 하는 이적을 행한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해 보여 주었는데, 이제 8절 이하에서는 제 1차로 북 이스라엘을 침공한 아람 군대를 엘리사가 초월한 능력으로 물리치는 사실을 소개한다. 당시 아람 왕은 단지 인간 엘리사를 제거하려고만 했지 엘리사를 후원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몰랐기에 그같은 참패를 당하게 된다.
엘리사를 제거하기 위한 아람 군대의 1차 침공이 수포로 돌아가자 이어서 24절 이하에서는 제 2차 침공으로 사마리아 성내에 임한 비극적인 참상을 소개하고 있다. 아람의 1차 침공 때는 힘써 도우셨던 하나님은 2차 침공 때는 침묵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가중시키셨다. 왜 그랬는가? 범죄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려는 하나님의 심판 행위요 동시에 그들로 회개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조처였다.
- 기억할 말씀 : 왕하 6: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7장
1. 엘리사의 예언
3. 네 문둥이가 아람 진영이 비어 있음을 발견
5. 아람 군대의 혼돈과 도주
9. 네 문둥이가 아람 군대의 도주를 왕궁에 보고
12. 보고의 진위를 알기 위해 정탐꾼을 파견
16. 엘리사의 예언을 믿지 않던 장관의 변사
- 본 장은 6장에 이은 계속되는 이야기로 기근과 전쟁으로 처참한 지경에 이른 사마리아를 하나님이 도우셔서 아람 군대를 물리치시고 사마리아 성을 구원하시는 모습을 담고 있다. 사마리아 성을 애워쌌던 벤하닷의 아람 군대는 하나님의 이적적인 능력으로 모든 것을 버려 두고 도망을 치게 된다. 이것은 엘리사가 이미 1절에서 예언하고 있는 일이며, 정녕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의 요새시요, 방패란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받을 수 있다.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하신 구원의 약속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창 9:16, 사 54:10).
2) 하나님께서 취하시는 구원의 방법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이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누구도 자신들이 아람 군대가 놓고 간 양식으로 자신들의 배를 채우게 되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택한 백성들에게 아무 조건없이 긍휼과 자비를 거저 주신다는 사실이다.
- 창 9: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사 54:10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 기억할 말씀 : 왕하 7:9 문둥이가 서로 말하되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하고...
# 엘리사와 하사엘 8장
1. 기업을 회복한 수넴 여인
7. 하사엘이 아람 왕이 될 것을 예언하는 엘리사
14. 하사엘이 벤하닷을 죽이고 왕 위에 오름
16. 유다왕 여호람의 통치
20. 에돔이 유다에 반기
23. 여호람의 죽음
25. 유다왕 아하시야의 통치
28. 아하시야가 이스라엘의 여호람을 돕다
- 본 장에서도 엘리사의 사역은 계속된다. 즉 본 장에는 엘리사의 권고로 7년 기근을 피해 불레셋땅으로 피신했다가 다시 돌아온 수넴 여인이 자신의 땅을 도로 찾는 장면으로 시작한다(1-6절). 그런데 이 사건은 아마도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린 이후(4:37), 나아만의 사건으로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문둥병자가 되기 이전(5:1)의 기간에 되어진 일로 추정한다. 그래서 6절은 수넴 여인의 땅의 회복을 이렇게 기록한다.
<왕이 그 여인에게 물으매 여인이 고한지라 왕이 저를 위하여 한 관리를 임명하여 가로되 무릇 이 여인에게 속한 것과 이 땅에서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 밭의 소출을 다 돌려 주라 하였더라.>
한편 벤하닷의 뒤를 이어 아람 왕이 된 하사엘과 왕 왕국 유다의 두 왕 여호람과 아하시야에 대한 기록을 본문은 담고 있다(7-29절).
@ 아하시야
아하시야는 <여호와께서 소유한 자>라는 뜻이다. 아하시야는 여호람의 아들이요, 그 어머니는 아달랴였고 그 외할아버지가 아합 왕이었다. 아하시야는 남조 유다의 6번째 왕으로 아합의 딸인 어머니 아달랴의 영향을 받아 이방신과 우상을 섬기므로 패역한 왕이 되었다. 아하시야가 왕이 된 것은 아라비아 군대가 유다 진영을 급습했을 때 그의 형들이 다 살해되었으므로 말째인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다. 아하시야는 42세에 즉위하여 1년간 치리한 단명의 왕이었다.
아하시야의 영성이 이렇게 흐려 종교적으로 타락하자 그의 통치력이 하나님에 의해 박탈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하시야가 길르앗 라못의 전쟁에서 그의 외삼촌 요람이 부상을 입게 되어 치료하고 있을 때 북조 이스라엘로 병문을 가게 된다. 이때는 예후가 아합 가문을 징벌하는 때이므로 남조의 아하시야까지 추격을 받았고, 사마리아로 피신했으나 사로잡혀 예후에게 끌려나가 죽게 된다.
아하시야는 40이 넘어 왕이 되었으면서도 줏대없는 사람이었고 자기 주견을 내세워보지 못한 치마폭에 싸인 사람이었다. 결국 그 어머니 아달랴는 아합왕의 딸답게 자기 아들 아하시야를 꼭두각시 왕으로 삼아 자기 수중에 넣는데 성공했다. 이와 같이 아하시야는 그 어머니의 뜻을 좇아 북조 이스라엘의 아합 가문에 동조하여 친교와 전쟁까지 동맹하다가 희생된 왕이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바른 판단력이다. 판단력이 흐려진 아하시야의 종말은 불행했다. 또한 범죄로 인해 심판의 대상이 된 가문을 가까이 하다가 자기도 심판을 받았다. 친교의 대상을 삼가야 한다.
@ 하사엘
하사엘은 <하나님이 보신다>는 뜻이다. 하사엘은 다메섹 사람으로 아람왕 벤하닷 2세의 신하였다. 이스라엘 왕들이 타락하여 죄를 거듭하게 되자 엘리야를 통해 하사엘이 선민을 잔인하게 살해할 것을 예언하였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거둔 큰 승리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 4백 50명을 살해하자 이세벨의 위협적인 박해를 만나게 되었고, 광야로 도피하다가 한 굴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 즉시 다메섹에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왕이 되게 하였다. 하사엘은 자기는 부족한 것처럼 사양하는듯 하였지만 속마음은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그러므로 중병에 걸린 자기 왕 벤하닷의 치유 가능성을 엘리사에게 묻자 선지자의 지시대로 나을 것이란 예언이 나오자 다음날 벤하닷의 병실에 들어가 물에 적신 이불을 덮어 왕을 죽였다.
이렇게 왕권을 취한 하사엘은 이스라엘 성을 불사르고 장정을 칼로 죽이며 어린 아이를 메어치며 아이밴 여인을 칼로 가를 것이란 예언이 나오며, 엘리사가 이 일을 내다보고 크게 울었다(왕하 8:12). 이것이 누적된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하나님은 선민의 범죄를 징계할 도구로 사용할 사악한 왕 하사엘에게 하나님의 종 선지자로 하여금 기름붓게 하신 것은 역사를 섭리하고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명확히 보여준 사건이다.
그렇다. 악인도 악한 날을 위해 쓰임받는 경위를 본다. 이런 경우 악인의 일시적인 승리를 보게 되나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전제한다. 또 하사엘은 왕위를 기다리지 못한 조급한 사람이다. 우리는 매사에 순리를 따르는 인내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 기억할 말씀 : 왕하 8:19 여호와께서 그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 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저와 그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허하셨음이더라.
# 예후의 통치 9-10장
9장
1. 예후에게 기름 부을 것을 엘리사가 선지 생도에게 명령
4. 기름부음 받은예후
11. 왕으로 추대된 예후의 반란
17. 요람이 예후에게 파숫군을 보냄
21. 요람이 나봇의 밭에서 피살
27. 아하시야의 죽음
30. 이세벨의 죽음
- 본 장은 북 이스라엘의 10대 왕인 예후를 다루고 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예후가 반란을 통하여 북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즉 전 왕은 오므리 왕조의 마지막 왕인 아하시야였는데,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에 따라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하신다. 이제 예후 왕조가 시작되는 것이다.
전 왕인 여호람의 학정과 우상숭배를 부정하고 반란을 일으킨 예후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왕위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악한 통치를 일삼았던 전 왕 여호람과 8대 왕 아하시야의 죽음이 기록되고(21-29절), 또 이스라엘의 타락을 선도했던 이세벨 또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30-37).
우리는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와 엄중한 심판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한다.
구속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는 계속되지만 범죄하며, 우상을 숭배하는 왕들은 왕조를 바꾸시면서까지라도 엄중하게 심판을 물으신다는 사실이다.
참고로 이스라엘을 다스린 네 왕가에 대해서 살펴본다(9:9).
이스라엘을 다스린 네 왕가는
(1) 여로보암 왕가 (B.C. 930-909 )
(2) 바아사 왕가 (B.C. 909-885)
(3) 오므리 왕가 (B.C. 885-841)
(4) 예후 왕가 (B.C. 841-752)이다.
그런데 여로보암 왕가는 여호와의 노를 격동시킨 일로 인하여(왕상 15:30) 바아사에 의해 멸망을 당했고(왕상 15:29), 바아사 왕가는 7일 동안 왕노릇한 시므리에 의해서(왕상 16:15) 아합과 같이 그 일족이 몰살됨으로 멸망을 당했다(왕상 16:11, 12).
그리고 시므리도 바아사와 동일하게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범죄함으로(왕상 16:19) 왕궁에 불을 놓고 그속에서 타죽었다(왕상 16:18). 그와 더불어 아합의 왕가 또는 오므리 왕가는 예후에 의해서 멸절하게 된다.
한편 이들의 공통점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점이다. 특히 본 장에 언급된 앞의 세 왕조는 금송아지 우상과 바알 및 여러 우상들을 섬겨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우상 숭배 죄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로 통칭되었다(왕상 12:28; 15:26; 16:2, 19, 26, 31; 22:52).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상 숭배죄를 어느 왕조보다도 많이 범한 아합 왕조에 대해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시키겠다'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벌은 자신의 배만 위하는 탐욕의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 왜냐하면 탐욕은 우상 숭배이기 때문이다(엡 5:5). 그 대표적인 예로 아간과(수 7:1-26) 그리스도를 팔아 넘긴 유다가 있다(행 1:18). 그러므로 재물과 명예, 그리고 방탕한 일에 욕심을 내는 모든 사람도 본 장에 기록된 아합 왕가가 받은 심판 뿐 아니라 아간과 가룟 유다가 받은 심판에서 제외되어 있지 않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여 그 길을 돌이켜야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다(겔 39:9, 11, 18, 19).
- 기억할 말씀 : 왕하 9:22 요람이 예후를 보고 가로되 예후야 평안이냐 대답하되 네 어미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10장
1. 예후가 사마리아의 방백들에게 편지함
6. 아합 자손 70명을 숙청
12. 유다 왕자들을 학살
15. 예후가 아합의 남은 자들을 학살
18. 바알 숭배자들을 몰살
25. 바알 신상들을 불태움
28. 예후의 통치
30. 예후의 죽음
- 본 장은 예후의 통치에 대한 계속되는 언급이다. 9장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름부음을 받은 예후가 선왕인 여호람을 살해하고 북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 10장에서는 권력을 잡은 예후가 이스라엘 내에 존재하는 아합 세력과 바알 숭배자 등을 숙청함으로 나라의 기반을 다지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아합과 이세벨이 주축이 된 아합 왕가는 우상 숭배의 왕가로 유명한 패역한 길을 가고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미 아합 왕가에 대한 철저한 심판을 예언한 바가 있었다. (왕상 21:21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본문은 그러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 예후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그리고 철저히 임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본 장의 전반부(1-17절)는 아합 왕가에 대한 철저한 심판을 다루고 있는 것이며, 후반부(18-36절)는 아합 시대에 창궐했던 바알 숭배자들을 몰살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바알 숭배자들을 몰살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처럼 바알 숭배자들을 척결하는 일에 앞장섰던 예후의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으로 본 장을 마무리하고 있다.
@ 예후
님시의 손자요, 여호사밧의 아들로 엘리사의 보낸 선지학도에게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그 후 이스라엘 왕 여호람을 죽여 나봇의 밭에 던지고, 유대왕 아합의 아들 70인과 그들에게 속한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죽였다. 종교적으로는 자기는 <아합보다 바알을 많이 섬기기 위하여 큰 제사를 드릴 터이니 바알의 선지자는 하나도 빠짐없이 모이라.>하니 그대로 모였다. 이 때에 팔십인의 무사로 일시에 엄습하여 도륙하였다. 여호와께서 이것을 가상히 여기시고 그 왕위가 자손 대까지 계승하겠다고 예고하였다. 그러나 백성들이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 섬기는 것은 금하지 않고, 자신도 진심으로 여호와의 율법을 준행치 않았다.
저가 재위 28년만에 죽으니 그의 아들 여호하스가 계위하였다(왕하 9, 10). 저의 성격은 그 행동을 통하여 알 수 있으니 비밀을 잘 지키고 행동이 민속하고 잔인성을 가졌다.
- 기억할 말씀 : 왕하 10:10 그런즉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종 엘리야로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하니라.
# 유다에서의 아달랴의 통치 11장
1. 아달랴의 학살과 통치
4. 여호야다의 거사 계획
9. 거사를 통한 요아스의 즉위
13. 아달랴의 죽음
17. 하나님과의 언약 갱신
- 본 장은 남 왕국 유다의 두 왕 아달랴(7대)와 요아스(8대)에 대한 기록이다. 즉 아합의 딸이자 여호람의 왕비이며 아하시야의 모친인 아달랴(B.C 841-835)의 섭정에 항거하여 제사장 여호야다가 용의주도하게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일명 여호아스 B.C 835-796)를 남 유다의 왕으로 즉위시키는 장면을 담고 있다.
아하시야가 죽은 후에 그의 모친 아달랴가 왕권을 잡기 위해 왕손을 멸하는 과정에서 이에 대항한 여호야다가 가가스로 화를 모면한 왕자 요아스를 왕위에 앉히는 거사를 일으키게 된다.
@ 아달랴
아달랴는 <여호와는 크시다>라는 뜻이다. 아달랴는 북조 이스라엘 아합과 이세벨의 자녀로 남조 유다의 5대 왕 여호람의 아내이기도 하다. 아달랴는 어머니 이세벨의 영향을 많이 받아 정치에 깊이 관여하였고 야심이 강한 여자였다. 아달랴는 남편 여호람 때에도 정치, 종교, 치세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남편을 우상종교로 끌어들여 남조 유다의 영적 타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여자였다. 남조 유다의 훌륭한 신앙의 전통을 우상종교로 뒤바꿔 놓은 사람이 바로 아달랴였다.
남편이 불치의 병으로 죽고 아들 아하시야가 왕위에 오르자 아들을 손안에 넣고 자신과 태후의 권력과 권세를 강화하였다. 또한 아들이 예후에게 살해되자 왕권을 탈취하여 스스로 왕위에 올랐고 왕의 혈통을 모조리 살해하는 잔인한 여왕이 되었다.
결국 남조 유다에서는 유일한 여왕이었다. 그러나 그 폭력 속에서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 여호세바의 노력으로 왕자 요아스를 구출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는 다윗 왕조와 메시야 혈통을 계승하는데 큰 공헌을 한 것이다. 여호야다는 요아스가 성장하기를 기다렸다가 애국 공신들과 군대의 지지를 받아 요아스를 왕으로 즉위시켰다. 이로써 아달랴는 피살되고 바알의 신당과 우상들은 파괴되어 남조 유다는 재건되었다.
- 기억할 말씀 : 왕하 11:17 여호야다가 왕과 백성으로 여호와와 언약을 세워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고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하매...
# 유다왕 요아스의 통치 12장
1. 요아스에 대한 여호야다의 섭정
4. 요아스가 성전 수리를 명령
9. 성전을 수리함
17. 아람 왕 하사엘의 침입
19. 요아스가 신복에게 피살됨
- 본 장은 7세에 남 왕국 유다의 8대 왕으로 즉위하여 40년간을 통치한 요아스에 대한 기록이다. 즉 아달랴의 불법적인 권좌를 깨트리고 유다의 8대 왕으로 즉위한 요아스의 사적에 대한 내용인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그것은 곧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을 동안(2절)>의 전반기와 받지 않을 동안의 후반기가 그것이다.
그리고 요아스는 그의 삶에 있어서 선정과 실정이 뚜렷이 구별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사실 요아스는 꺼져가던 다윗 등불의 마지막 보루였다. 집권욕에 눈이 먼 아달랴의 사악한 술수로 다윗의 왕통이 멸절될 뻔한 상황(11:1)에서 구사 일생으로 살아남아 다윗 왕조의 왕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일은 제사장 여호야다의 치밀한 사전 준비와 결정적인 거사 성공으로 가능할 수 있었다(11:4-21).
따라서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을 동안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 바른 길잡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는 어떠했는가? 요아스는 방향을 잃고 실정을 하고 만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본문 17-18절에 나오는 아람 왕 하사엘의 예루살렘 침공시 성전의 성물과 패물을 이방의 왕에게 조공으로 가져다 바친 일이다.
우리는 여기서 지도자의 중요상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할 것이다.
@ 요하스
남 유다의 8대 왕이다. 주전 835-796년경 재위했다. 아하시야왕의 아들인데 조모 아달랴의 행한 살육에서 건짐을 받은 유일한 왕자이다. 저는 고모 여흐사브앗에게 숨겨 양육을 받고 제7년에 고모부인 제사장 여호야다의 옹립으로 즉위하고(대하 22:10-24:1), 여호야다의 섭정으로 선정을 베푸는 한편 바알의 신당을 훼파하고 여호와의 성전을 수복하였다.
그러나 여호야다의 사후에는 타락하여 여호와를 버리고 아세라의 목상 등의 우상을 섬기므로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간하였으나 듣지 않고 도리어 성전 뜰에서 돌로 쳐죽였다. 저가 이와 같이 여호야다의 은혜를 생각지 않고 그의 아들을 무자비하게 죽인 것으로 역사에 큰 오점을 찍었다(대하24:20-22). 수리아의 침략을 받아 패하고 고가의 배상으로 겨우 적군을 돌려보내었으나 신하에게 피살되니 그 시체는 열왕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윗 성에 장사하였다(왕하 12:1-21, 대하 24:23-25).
- 기억할 말씀 : 왕하 12:4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무릇 여호와의 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은 곧 사람의 통용하는 은이나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이나 자원하여 여호와의 전에 드리는 모든 은을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들여서 전의 어느 곳이든지 퇴락한 것을 보거든 그것으로 수리하라 하였더니...
#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와 요아스의 통치 13장
1. 여호아하스의 통치와 죽음
10.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통치와 죽음
14. 엘리사와 요아스
20. 엘리사의 죽음과 기적
22. 여호아하스와 아람왕 하사엘
24. 요아스와 아람 왕 벤하닷
- 본 장은 이제 시선이 북 왕국 이스라엘로 돌려진다. 북조의 11대 왕인 여호아하스, 12대 왕인 요아스(남 왕국 유다의 8대 왕과 동명이인임)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그리고 두 명의 아람 왕이 이들과 관련을 맺는다. 그들의 이름은 하사엘과 벤하닷이다.
이 왕들의 개략을 통해 이해를 돕고자 한다.
@ 여호아하스(여호하스)
<여호와가 치셨다>는 뜻이다. 예후의 아들로 이스라엘의 11대 왕이었다. 여호아하스는 여로보암의 우상숭배를 좇아 금송아지를 섬기고 우상종교에 심취한 사람이었다. 그 부친 예후의 종교개혁이 이어지지 못하고 옛 선왕들의 탈선된 신앙의 전철을 그는 밟게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람왕 하사엘과 그 아들 벤하닷을 통해 이스라엘을 징계하였으나 회개하지 아니했다. 여호아하스의 부왕 예후의 통치시대에는 북조 이스라엘이 체면을 유지했었다. 그러나 그 아들 여호아하스 때에 와서는 철저한 불신앙과 함께 나라의 권위가 말이 아니었다.
아람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하여 타작마당의 티끌 같이 되게 하고, 마병 오십과 병거 십승과 보병 1만 외에는 남겨두지 않을 만큼 모욕적인 패전을 겪게 되었다. 하나님을 등지고 불신앙과 우상숭배에 빠진 여호아하스의 비참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경우에 나라의 명맥만이라도 하나님이 살려 두신 것은 그들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인내였다. 이 때에 여호아하스가 하나님께 간구하므로 하나님은 여호아하스의 기도를 들으시고 북조 이스라엘을 아람나라의 지배에서 해방시켰다.
이스라엘 백성은 전과같이 평온을 되찾았으나 여로보암의 우상숭배와 불신앙을 회개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은혜를 모르는 백성이었다.
@ 요하스
요아스는 <여호와는 강하시다>라는 뜻이다. 요아스는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로 북 이스라엘의 12대 왕이다. 비교적 순탄하게 16년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 다른 왕들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하나님께도 쓰임받은 왕이었다. 그러나 요아스는 신앙의 인물은 못되었다. 하나님을 믿는데 있어서도 순수한 신앙인이 아니었고 벧엘과 단에 있던 금송아지를 여전히 예배하였다.
요아스가 엘리사의 임종을 앞두고 엘리사를 방문했을 때에 엘리사의 얼굴에 눈물을 떨어뜨리며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호칭한 것을 보면 종교심도 있었지만 분명한 신앙적 결단이나 의지가 없었던 것 같다(왕하13:14).
엘리사는 요아스에게 마지막 축복의 기회를 선택할 수 있도록 활과 살을 취하여 쏘게 하였고, 다시 살을 취하여 땅을 치게 하였다. 그러나 요아스는 세번만 쳤고 엘리사는 이것에 노하여 요아스를 책망하였다.
만일 다섯번 내지 여섯번을 쳤더라면 아람을 진멸할 것인데 세 번만 쳤으므로 엘리사는 세번만 이길 것을 예언하였다. 그후 유다와 아마샤가 10만의 지원병 문제로 불씨가 되어 전쟁을 일으키자 요아스가 대전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이 경우에도 성전의 금은 기명을 탈취한 것을 보면 영적으로 미숙하였다.
- 기억할 말씀 : 왕하 13:5 여호와께서 이에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전과 같이 자기 장막에 거하였으나...
# 유다왕 아마샤의 통치와 이스라엘왕 여로보암 2세의 통치 14장
1.유다 왕 아마샤의 통치
8. 아마샤가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패배
15. 요아스의 죽음
17. 아마샤가 모반으로 죽음
23.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가 영토를 회복
28. 여로보암의 죽음
- 본 장은 남 왕국 유다의 9대 왕인 아마샤와 북 왕국 이스라엘의 13대 왕 여로보암 2세를 다루고 있다. 1-22절은 아마샤의 행적을 크게 셋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15-16절은 요아스의 죽음을 담은 부분이다.)
1) 아마샤의 장점 : 여호와 보시기에 선함 (1-7절)
2) 아마샤의 단점 : 막강한 전력 증강으로 교만해져 북 이스라엘 침략을 꾀함 (8-14절)
3) 아마샤의 최후 : (17-22절)
@ 아마샤
<여호와께서 강하게 하신다>라는 뜻이다. 아마샤는 부왕 요아스와 여호앗단 사이에서 태어난 유다의 9대왕이었다. 아마샤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편에 속했으나 다윗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며 신당을 제거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 그는 백성들을 우상숭배의 죄에서 건져내지 못했다. 아마샤가 25세에 왕위에 올라 29년간 유다를 통치하였으므로 국왕의 권익을 충분히 누린 사람이었지만 유다 왕으로서 나라의 번영을 위해 한 일이 없었다.
아마샤는 할아버지 아하시야와 아버지 요아스를 거치는 동안 국력이 쇠약해진 것에 대해 관심이 없고, 나라의 부강책을 간구하지 않은 무책임한 왕이었다. 왕으로서 국력을 키우는 데는 뜻이 없고 부왕의 복수에만 집착했던 소인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 용병을 구했다가 오히려 책망을 듣고 그 용병들이 내란을 일으키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에돔을 쳐서 1만명을 죽이고 셀라를 취해 나라의 체면을 세운 일도 있었다. 아마샤는 이 일로 인해 자만하여 이스라엘왕 요아스에게 대면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요아스는 이를 선전포고로 여기고 거절한 후 오히려 역습을 하여 아마샤를 생포하고 예루살렘성을 파괴시켰으며, 왕궁의 금과 모든 기명들을 취하여 갔다.
결국 아마샤는 예루살렘에서 폭력이 일어나자 라기스로 도망가다 살해되었다.
23-29절은 여로보암 2세에 대한 기록이다. 여로보암 2세는 이스라엘의 최장수 통치자요, 또한 이스라엘의 최고 번영기를 누렸던 지도자였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그 행적이 결코 선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본 장 24절은 여로보암 2세의 행적을 이렇게 평가한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여로보암 2세와 함께 하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까닭은 무엇인가?
1) 외국 침략군들에 의해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기사 구원하시기 위해(26절)
2) 범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여전히 택한 백성이었기에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27절)
3) 궁극적으로는 죄악 가운데 사로잡힌 이스라엘의 심판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에
여기서 우리는 이런 교훈을 받는다.
1) 하나님은 할 수만 있으면 심판보다는 구원 베풀기를 더 원하시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다.
2) 하나님은 심판을 베풀기 전에 반드시 회개의 기회를 주신다.
3) 주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자들은 심판이 있을 뿐이다.
- 기억할 말씀 : 왕하 14:6 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인하여 아비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비로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 유다왕 아사랴(웃시야)와 요담의 통치와 이스라엘왕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의 통치 15장
1. 유다 왕 아사랴(웃시야)의 통치와 문둥병
8. 이스라엘 왕 스가랴의 통치와 피살
13. 이스라엘 왕 살룸의 통치와 피살
17. 이스라엘 왕 므나헴의 통치
23. 이스라엘 왕 브가히야의 통치와 피살
27. 이스라엘 왕 베가의 통치와 피살
32. 유다 왕 요담의 치세
- 본 장은 크게 일곱 왕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남 유다의 10대 왕 아사랴(웃시야)와 11대 왕 요담, 북 이스라엘의 14-18대 왕인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그리고 베가가 그 인물들이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은 피비린내 나는 왕권 탈의 역사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1-7절은 아사랴의 이야기다. 그런데 아사랴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는 집권 기간 중반에 이르기까지 내내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한 결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큰 업적과 위업을 이룩한 왕이다.
물론 본문에는 아사랴의 구체적인 업적이 언급되고 있지는 않지만, 같은 역사를 담고 있는 역대하 26장에 보면 아사랴의 위대한 업적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업적이 유다 왕국의 국제적 위상을 대외에 널리 과시한 것이다. 즉 그는 뛰어난 정치력과 군사력을 동원하여 불레셋과 애굽을 굴복시켰다.(대하 26:6-9)
그리고 백성들의 경제적 부흥에도 힘을 썼다.(대하 26:10) 그러나 그는 이러한 부흥의 결과 교만해지게 되었고, 그 결과 온 몸에 문둥병이 걸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병이 원인이 되어 그 좋은 영화를 다 뒤로하고 별궁에 격리되어 쓸쓸한 최후를 맞는다.
그런데 역대기 기자는 역대하 26:16절에서 이런 그의 비참한 최후를 교만함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8-31절은 패망으로 치닫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다섯 왕을 소개하는데 이들의 내력을 살펴보자.
@ 스가랴
스가랴는 <여호와는 기억하신다>는 뜻이다. 스가랴는 여로보암 2세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14대 왕이다. 그러나 그의 불신앙과 극한에 이른 우상 숭배와 범죄로 인해 그의 치세는 6개월로 끝났다. 스가랴는 북조의 다른 왕들보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좇는 그의 열성이 더 강조된 걸 보면 그가 얼마나 극성스럽게 우상숭배와 이방신을 섬기는데 열중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그의 아버지 여로보암 2세도 우상숭배자였지만 41년을 통치 한 것에 비해 그는 1년도 채우지 못한 부끄러운 왕이었다. 결국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스가랴를 모반하고 백성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그를 살해하고 왕권을 장악했다.
이 같은 사실을 비추어 볼 때 이미 백성들의 마음이 스가랴의 통치와 그 자신에게서 떠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왕은 백성을 잃으면 그 생명이 끝난 것과 같다. 왕의 통치기간이 길고 짧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역사의 분위기에 따라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 그보다는 그 왕에 대한 통치력이나 존경심, 백성의 신뢰도가 더 중요한 것이다.
이같이 스가랴는 단명의 왕이요 불명예스러운 왕이었다. 이 스가랴로 예후의 왕조가 끝을 맺는다. 예후 왕조는 아합 왕가를 정리하기 위해 쓰임받은 왕조였는데 그 시작과 끝이 밝고 선하고 의로운 왕조가 못되고 살육과 불신앙과 우상숭배와 부끄러운 왕조로 끝맺었다.
@ 살룸
살룸은 <보응>이라는 뜻이다. 야베스의 아들로서 북 왕국의 15대 왕이다. 살룸은 에스드렐론 평원의 이블르암 출신으로 다혈적인 사람이었다. 어떤 일에 대해 사리를 생각하기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었다. 북조 이스라엘의 예후 왕조가 스가랴 왕에 이르러 그 타락상으로 인해 민심을 잃고 술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자 백성이 보는 앞에서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사람이 바로 살룸이다. 살룸은 스가랴 밑에서 한 지역을 책임진 군대장관으로 스가랴의 신하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발적인 충동으로 모반을 일으킨 살룸은 스가랴를 단숨에 처치하고 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렇게 왕위에 오른 살룸은 자신의 전철을 밟은 정적 므나헴에 의해 살해되고 그의 통치는 한달만에 막을 내렸다.
이와 같이 불륜과 불법은 또 다른 배신과 살육으로 이어져 자신과 남을 불행하게 만든다. 이 시대에 아모스와 호세아 두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범죄와 타락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하며 회개를 촉구했으나 끝내 듣지 않아 북조 이스라엘의 국운은 점점 기울어져 갔다. 하나님을 등지고 신앙을 떠난 정치의 말로는 피살과 정변과 배신의 연속으로 살룸과 므나헴 때에 와서 극에 달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말이 살룸에게 적중한 것 같다.
@ 므나헴
므나헴은 <위로자>라는 뜻이다. 므나헴은 이스라엘의 초기 수도였던 디르사에 주둔한 군대장관이었으며 가디의 아들이었다. 스가랴왕이 타락하자 살룸이 백성 앞에서 반역하여 그를 살해하고 왕이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므나헴이 살롬의 무모함을 보고 사마리아로 올라가 살룸을 살해하고 대신 왕이 되었다. 살룸과 므나헴은 서로 경쟁자였으므로 이러한 살상이 쉽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므나헴이 집권한 이후 딥사 주민이 므나헴을 적극적으로 환영하지 않았으며 즉시 성문을 열지 않았다. 그리하여 딥사를 습격했고 그 지역 사람을 도륙하였다. 그뿐 아니라 므라헴의 잔인함은 아이 밴 여자의 배를 가를 정도였다. 이는 단순한 분풀이가 아니라 정치적인 보복이었다. 딥사의 주민들은 살룸을 지지했기 때문에 므나헴의 이러한 만행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한 나라의 집권자로 집권초기의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이와 같이 북조 이스라엘이 국가적으로도 무력한 시대였고, 훌륭한 통치자도 희귀한 시대여서 므나헴같이 무능한 사람이 나라를 맡게 된 것이다. 결국 주변 국가의 공격과 침략의 대상이 되기에 알맞았다.
앗수르왕 불3세(디글랏 레셀)가 공격해 오자 은 1천달란트를 백성으로부터 토색하여 적국에 바치고 왕위를 부지할 정도였다. 므나헴은 10년동안 왕위에 있었으나 그의 왕권은 측은할 정도였다.
@ 브가히야
<여호와께서 눈을 여셨다>는 뜻이다. 브가히야는 부왕이 므나헴이고 이스라엘의 17대 왕이었다. 브가히야는 자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보여준 불안한 정치 생활은 아들까지 이어졌다. 그는 아버지 므나헴과 같이 앗수르 나라에 의뢰하여 왕권을 유지할 만큼 약소국가요 실권이 없는 왕이었다. 게다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못하고 우상숭배와 타락된 종교생활로 일관해 북조 이스라엘은 나라가 안팎으로 위험을 더해가고 있었다.
브가히야는 정권만 이어받은 사람이지 국가에 대한 정책수립을 할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왕위자체가 불안했다. 또한 이스라엘 나라에는 친 앗수르파와 반 앗수르파가 있어 정치적으로도 나라가 대립 상태에 있었다. 브가히야는 앗수르 나라에 매인 친 앗수르파였기 때문에 반 앗수르파에 의해 비난의 대상이 됐고 끊임없이 공격을 받았다. 결국 브가히야는 2년간이라는 짧은 왕정으로 끝을 맺게 됐다. 그 신하 르말랴의 아들 군대장관 베가에 의해 살해되었다. 베가는 브가히야뿐 아니라 아르곱과 아리에 등 브가히야의 측근까지도 살해하였다. 이 베가의 모반에 길르앗 사람 50명이 협력하였고, 브가히야가 살해된 장소가 왕궁 호위소였다는 점으로 보아 브가히야는 누구에 의해서도 왕위가 뒤바뀔 형편에 놓여 있었다. 브가히야는 부끄러운 왕 중의 하나였다.
@ 베가
베가는 <눈을 뜬다>는 뜻이다. 베가는 브가히야를 살해하는 혁명으로 정권을 장악한 이스라엘의 18대 왕이었다. 그의 부친은 르말랴이고 길르앗 출신이다. 북조 이스라엘이 브가히야 때 앗수르를 추종하는 브가히야 일파와 수리아(다메섹)의 르신을 추종하는 베가 사이에서 베가가 득세하여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된 것이다. 베가는 계속 주변의 여러 나라 아르왓가사 아스글론 암몬 모압 에돔(아랍의 샴셔)과 동맹하여 앗수르에 대항하였다.
당시 앗수르의 국력으로 보나 한 제국의 왕으로 군림한 디글랏 빌레셀의 당당한 위세에도 불구하고 연합군을 조성하여 앗수르에 대항했다. 이것은 베가가 어떠한 인물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베가는 유능한 사람이요 능력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베가의 결정적인 결함은 무모한 그의 용기가 아니라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 점이다.
아무리 유능해도 하나님의 지원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이때 유다왕 아하스는 앗수르와 동맹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베가의 연합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자 아하스의 요청을 받고 앗수르가 가담하여 두 연합군의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이 전쟁에서 베가는 12만명을 살해하고 20만명을 생포하였으나 반대로 앗수르에 의해 국토가 황폐화되고 많은 이스라엘 사람이 포로가 됐다. 그후 호세아에 의해 베가가 살해되고 만다.
32-38절은 남 왕국 유다의 11대 왕인 요담의 치적을 기록하고 있다.
북 이스라엘이 여로보암 2세 이후 수없이 계속되는 유혈 쿠데타와 왕국 말기적 현상을 겪는 동안 남 유다의 통치자가 된 사람이 요담이다.
물론 요담의 치적을 본문은 자세히 말하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병행구절인 역대하 27장을 근거해서 요담왕의 치적을 셋으로 분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 종교정책이다.(35절, 대하 27:3)
2) 국방정책이다.(대하 27:3-4)
3) 정복사업이다.(대하 27:5)
이러한 요담의 성공적인 치적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정도를 행하였기> 때문이었다(대하 27:6). (요담이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정도를 행하였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
그런데 여기 특기할 문제는 역대기 기자가 북 왕국 이스라엘의 피비린내 나는 왕권 찬탈사를 기록한 후에 이 요담의 선정을 기록하면서 비교하고 있다는 점이다.
- 기억할 말씀 : 왕하 15:34-35 요담이 그 부친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요담이 여호와의 전의 윗 문을 건축하니라.
# 유다왕 아하스의 통치 16장
1. 유다 왕 아하스의 우상숭배
5.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 동맹군의 유다 침공
7. 아하스가 앗수르에 도움 요청
10. 아하스가 앗수르의 다메섹 우상 제단을 도입하고 제사함
17. 성전 기구를 옮김
19. 아하스의 죽음
- 본 장은 남 유다의 12대 왕인 아하스를 다룬다. 그래도 부왕인 요담은 선정을 베풀려고 노력을 하였으나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아하스는 폭정을 일삼는 왕이 되었다. 이 아하스는 요담의 아들이요, 히스기야의 부친이다.(대상27:8,9, 28:27, 마1:9) 나이 20세에 남 유대의 제 12대 왕으로 즉위하였으나 이방인의 가증한 것을 본받아 자기 자녀를 불 가운데 지나게 하고, 산당과 산 위와 나무 아래서 제사를 지냈다.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니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와서 치매 앗수르 왕에게 성전과 왕궁에 있는 금은을 보내면서 구원을 청하였으나 유익이 없었다. 이때에도 회개치 않고 도리어 성전의 기구를 훼파하고 전문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마다 단을 쌓고 성읍에는 산당을 세우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여 여호와의 노를 격발케 하였다. 16년간 왕노릇하고 죽으니 열왕의 묘실에 장사하지 않았다(대하28:).
특히 1-4절은 아하스의 단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4절은 이하스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했다고 했다. 이와 유사한 평을 받은 유다 왕은 여호람이다(8:18). 여기서 아하스가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였다는 말이다. 특히 역대하 28:2절을 보면 그가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라고 되어 있어 이러한 사실을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낸다. 그 뿐만 아니라 역대기에서는 '부어 만들고'라는 표현을 첨가시킴으로 인해 그들이 숭배한 우상이 금송아지인 듯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혹자는 이 우상이 바로 그들이 고안해 만든 '송아지 우상'이라고 밝힌다(Keil & Delitzsch). 그러나 혹자는 이를 송아지 숭배로 받아들이지 않고 단순히 아하스가 아합과 아하시야와 같은 악한 행위를 했을 뿐이며 베니게인들의 우상을 재도입했다고 주장한다(Rawlinson, Bahi).
또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았다고 말한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역대 왕들 가운데서 이와 같이 이방 종교와 섞인 혼합주의(syncretism)를 처음으로 제창한 왕은 아합이었다(왕상 16:30-33). 그런데 아하스도 동일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과 이방의 우상 숭배법을 혼합하는 죄를 범한 것이다(14, 18절).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아하스가 행한 우상 숭배는 금송아지를 우상화한 것뿐만 아니라 이방 종교를 영입한 듯하다. 한편 본 절에 나타난 우상 숭배 행위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이전에 그곳에서 유행했던 풍습인 듯하다(M. Cogan).
그런데 본문에는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것이 아하스의 죄악된 모습이다. 본 절은 분명히 아하스가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한 것 중에서 그 한 예를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서도 이스라엘의 열왕이 이방인의 이런 풍습을 따랐다는 기록은 없다. 한편 요세푸스(Josephus)는 아하스가 예루살렘에 세워진 제단 위에서 자기 자식을 희생 번제물로 바쳤다고 기술하고 있어 당시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한편 성경에서는 몰록에게 자식을 바치는 일을 경고한 곳(레 18:21; 20:1-5)이 있는데 이것은 인신제사가 우상 숭배의 행위에서 벌어지는 예식의 일부분일 뿐만 아니라 풍조이기 때문에 엄정하게 경고하신 것이다. 그리고 신 18:10에서 또 한번 이를 경고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취해야 할 자세를 엄하게 강조한다.
그런데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한다"는 표현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 있어 예식이 벌어지는 당시의 상황을 좀 더 알 수 있게 한다.
(1) 이것은 신명기적 입장에서 본 왕의 배교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라는 견해가 있다(Hobbs).
그러나 미 6:7; 렘 7:31; 19:5; 32:35 등에서는 분명히 아들을 불 속에서 태우는 것을 언급하고 있어 그것이 단지 상징적이라는 견해는 타당치 못한 것 같다. 더욱이 미가 선지자(B.C. 735-716)를 전후로 한 시기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므로 그들의 말은 당시에 이런 행위가 직접적으로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후의 예레미야 선지자(B.C. 627-580)나 이스라엘 선지자(B.C. 593-570)도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해서 증언한 것이다(겔 16:21).
(2) 이것은 직접 아이를 죽여 불로 태웠음을 의미한다는 견해가 있다(Keil, Bahr, Eusebius, Wycliffe).
이 견해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긍정하는 것으로 오늘까지도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므로 단지 불로만 통과케 하고 죽이지는 않는다는 의식적인 해석은 부정케 된다. 왜냐하면 의식적인 측면에서 이 사실을 보는 견해는 이 행위가 정결케 하는 불세례를 의미한다고 보기 때문에 본 절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한편 이러한 인신 제사는 아하스 뿐만 아니라 므낫세(21:6)도 범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4절은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했다>고 했다. 이런 표현은 신명기서와 본 서 뿐만 아니라(신 12:2; 왕상 14:23) 예레미야서(렘 2:20; 3:6)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이렇게 근동의 우상 숭배자들은 그들의 예배 대상인 우상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 산에서 종교 의식을 거행했다. 또한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의식에 엄숙함과 신비함을 부여하기 위해서 무성한 나무 숲 아래서 제사를 드렸다(신 12:2). 아하스는 이러한 산당에서의 종교적 행위를 허용(왕상 3:2; 14:23; 15:14 등)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왕들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그 행위를 장려했다. 그래서 그는 통치 말기에 이르러서는 급기야 예루살렘 성전을 폐쇄하기까지 했던 것이다(대하 28:24). 호세아 4:13절에서는 이런 장소에서 행음(行淫)이 이루어졌다고 밝혀 당시의 사회상과 타락상을 고발하고 있다.
- 기억할 말씀 : 왕하 16:2 아하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을 치리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
# 호세아의 통치와 북왕국의 멸망 17장
1.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의 통치
3.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
7. 멸망의 원인, 우상숭배와 말씀의 불순종
19. 여로보암의 죄의 길을 따랐음
24. 이방인의 사마리아 이주와 사자 사건
27. 앗수르 왕이 제사장을 두어 백성을 가르치나 여호와 경외와 각종 우상숭배가 공존
34. 하나님의 언약과 우상숭배의 논평
-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사역을 이루어 가시기 위해서 약속된 메시야를 우리에게 보내시겠다고 창세 전에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한 방편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다윗의 후손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즉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의 두 왕조 - 북 유다와 남 이스라엘 - 중에서 진정 메시야를 우리에게 보내시기로 하신 왕국은 다윗 왕국이고, 그 왕국은 남 유다의 왕국이다.
다라서 남 유다가 정통성을 인정받는 약속의 계보였으며, 구원의 계보였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그 정통성을 이어가시는 와중에서도 남 유다를 생각하시는 것이다.
본 장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을 담고 있다. 즉 여호와 종교를 버리고 각종 우상과 죄악의 노예로 전락해 버린 북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 기사를 싣고 있다. 여로보암으로부터 시작된 북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의 침공으로 인해 약 210년간의 짧은 역사(B.C 931-722)를 끝으로 그 종말을 고하는 일련의 사태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본 장은 북 이스라엘의 19대 왕으로 마지막 왕이 되고 만 호세아를 설명하고 있다.
@ 호세아
호세아는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다. 호세아는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의 지원 아래 이스라엘 왕 베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사람이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19대 왕으로 그의 아버지는 엘라였다. 앗수르 왕의 정치적인 보호 아래 있었기 때문에 디글랏빌레셀의 포로가 될 정도였고, 그가 왕위를 임명했다는 비문이 남겨져 있기도 하다. 9년동안 왕위에 있었으며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었다.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이 죽고 그 아들 살만에셀이 왕이 되자 남쪽의 강국 애굽의 지원을 약속받고 호세아가 앗수르를 배반하게 된다. 정세를 바로 판단하지 못한 줏대없는 호세아의 배반은 나라를 패망으로 이끌게 됐다.
앗수르의 살만에셀은 B. C 722년에 사마리아를 함락하여 북조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다. 역사적인 기록에 의하면 이스라엘을 정복한 앗수르의 사르곤은 2만7천여명의 지도자들을 포로로 끌어다가 앗수르의 할라와 고산 하볼강가와 메데 여러 고을에 분산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의 재기를 불가능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멸망은 첫째, 여로보암때부터 하나님을 거스르고 신당을 짓고 아셀라와 바알을 섬기며 송아지 형상으로 하나님을 대신 하는데 있었다. 또한 몰록신과 복술과 사술에 자기를 팔아 하나님의 큰 진노를 사게 된 것이다.
둘째, 역대왕들이 계속되는 하나님의 징계에도 불구하고 호세아까지 회개치 않은데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등질 때 평강을 기대할 수 없다.
7-23절은 이스라엘의 패망의 원인을 한마디로 설명해 주고 있다.
이스라엘이 망한 원인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과 우상숭배의 결과였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의 과정을 거치면서 영원한 멸망의 구덩이로 치닫게 된 것이다.
1) 이방 사람들의 규례와 하나님께 패역한 여러 왕들의 율례를 좇음 (7-8)
2) 하나님이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은밀히 불의를 자행함 (9 가만히 불의를 )
3) 대대적이고 공개적으로 불법을 자행함 (10-12)
4)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함 (13-15)
5) 하나님의 심판의 채찍을 맞으면서도 끝가지 악행함 (16-23)
북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점령한 앗수르 왕의 사마리아 식민정책을 24-41절은 소개하고 있다.
1) 이주 및 인종 혼합정책 (24-33)
2) 종교 혼합정책 (34-41)
-기억할 말씀 : 왕하 17:37-40 또 여호와가 너희를 위하여 기록한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너희가 지켜 영원히 행하고 다른 신들을 경외치 말며 또 내가 너희와 세운 언약을 잊지 말며 다른 신들을 경외치 말고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하셨으나 그러나 저희가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전 풍속대로 행하였느니라.
왕하 18-25장 바벨론 유배까지의 유다 왕국
# 히스기야의 통치와 앗수르의 포위 공격 18-19장
18장
1. 히스기야의 통치와 형통
9.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
13. 앗수르의 산헤립이 유다를 침략
18. 산헤립의 말을 전언하는 랍사게
26. 랍사게의 모독
36. 사신이 랍사게의 말을 히스기야에게 전언
- 북 왕국 이스라엘은 멸망했다. 그리고 이제 18장부터 마지막 25장까지는 남 왕국 유다의 왕들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왕들은 13대부터 20대 마지막 왕까지인 히스기야, 므낫세, 아몬, 요시야, 여호아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그리고 시드기야이다.
본 장에서는 히스기야라는 남 유다의 위대한 왕을 소개하고 있다. 북 이스라엘은 멸망하는데, 남 유다는 히스기야같은 성군이 통치를 하고 있다는 것은 우연으로 보기엔 너무나도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 히스기야
히스기야는 <여호와께서는 강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아하스의 아들로 유다의 13대 왕이다. 히스기야는 종교와 정치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크게 개혁시킨 축복 받은 왕이다. 히스기야는 25세에 왕이 되어 29년간 왕위에 있었는데 그의 통치기간에 비해 그가 이룩한 사역이 너무 많아 힘에 겹도록 일한 왕으로 소개되고 있다. 히스기야는 왕이 되자 먼저 성전 문을 열고 파괴된 성전을 수리하였으며, 레위인을 통해 제사의식을 회복하였다. 또 나라 안의 주상이나 목상을 제거하고 산당을 헐었으며, 모세가 만든 놋뱀을 섬기므로 그 놋뱀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하였는데 이는 놋조각이라는 뜻이다. 또한 유월절 절기를 회복하였는데 남조 유다의 가장 큰 모임이 되어 브라가 골짜기라는 호칭이 나오게 되었다. 이것은 큰 송축이라는 뜻이다.
정치적으로도 남조 유다가 대를 이어 앗수르에 예속되어 왔기 때문에 앗수르의 산헤립왕이 즉위하자 이에 반기를 들고 독립적인 입장을 취하여 반앗수르 동맹에 가담하게 되었다. 산헤립이 파견한 랍사게의 연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후 앗수르가 연속적으로 유다를 공격해 왔으나 극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구출을 받게 된다.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가 응답되어 하룻밤 사이에 18만5천명을 여호와의 사자가 쓸어버린 승리를 경험하기도 하였다(왕하19:35). 히스기야는 특수한 신앙의 인물이었다.
히스기야는 역대의 뛰어난 선왕이었다. 그의 모든 축복이 신앙에 근거한다. 하나님 편에서 서서 개혁할 때 하나님이 도우신다.
@ 산헤립
산헤립은 <자기들의 신이 형제들을 대신한다>는 뜻이다. 산헤립은 사르곤2세의 아들이요 에살핫돈의 아버지로 앗수르의 왕이었다. 산헤립은 비교적 내전이나 반란을 거치지 아니한 그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자연스럽게 왕위에 오른 사람이다. 당시 앗수르 제국은 바벨론까지 통합한 대국이었으므로 정치적인 능력이 탁월해야 했으나 산헤립은 그 아버지 사르곤2세만 못하였다.
아버지가 군사와 정치력을 구비한 사람인데 비해 산헤립은 군출신의 정치인일 뿐이었다. 그러나 산헤립이 세운 공력은 바벨론을 완전히 정복하였고, 유다의 북방과 남방의 애굽 변경까지 여러 지역을 정복하는데 성공하였다.
또한 산헤립이 남조 유다 여러 지역을 탈취하여 히스기야왕에게는 참으로 위협적인 존재였다. 산헤립이 라기스에 진을 치고 유다를 공격하려하자 사신을 라기스에 보내어 화친을 요청하였다. 산헤립이 은 3백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요구하자 성전과 왕궁의 곳간에 있는 모든 금과 은을 조공으로 바쳐도 오히려 부족하여 성전 기둥과 문에 입힌 금까지 벗겨 그 수를 채우기까지 하였다.
이는 참으로 굴욕적인 수치였다. 산헤립은 군인 출신답게 국방력을 키워 국토를 넓히는데 성공하여 20년동안 앗수르를 통치하는 왕이 되었다. 그러나 과격한 성격과 가족에 대한 편애로 그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에 의해 살해되었다.
- 한편 본문 9-12절은 북 이스라엘의 완전한 멸망을 언급하고 있다. 특히 12절은 그들의 멸망의 원인을 적고 있다. <이는 저희가 그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치 아니하고 그 언약을 배반하고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모든 명한 것을 거스려 듣지도 아니하며 행치도 아니하였음이더라.>
본 절은 17:7-23에 기록된 사마리아 성의 함락 원인을 몇 마디 말로 지적해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요약해 놓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목은...
(1)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
(2)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림
(3) 모세의 율법에 대한 거역, 이 세 가지이다.
-기억할 말씀 : 왕하 18:5-6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19장 히스기야의 기도
1. 이사야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히스기야
6. 이사야의 예언
8. 앗수르 왕이 사신을 통해 히스기야 앞에서 하나님을 모독함
14. 히스기야의 기도
20. 이사야를 통한 하나님의 응답
35. 천사가 앗수르 군대를 진멸
36. 산헤립의 피살
- 본 장은 18장에 이어 히스기야의 사적을 기록하고 있는 내용인데 유다 왕 히스기야는 매우 경건한 왕으로(18:3) 아세라 목상과 놋뱀, 그리고 주상 등을 파괴하는 종교개혁을 시행하였을 뿐 아니라(18:3-6)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앗수르에 대해서 자주 정책을 선언하였다(18:7-8). 그러나 이로 인해 남 유다는 앗수르 왕인 산헤립의 침입을 받아 매우 절박한 위기를 맞게 되었다. 게다가 18장에 언급된 앗수르의 장군인 랍사게의 회유책은 남 유다에 대해 상당히 설득력을 갖춘 고대 전쟁 심리전의 훌륭한 본보기로서 남 유다는 심리적으로도 꽤 위축되어 있었을 것이다(18:17-37).
이러한 상황에 처한 히스기야가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앗수르의 군대를 물리쳤는지에 대해 그 때의 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본 장은 히스기야 통치 기간 중 최대의 위기와 치욕의 사건을 담고 있는 장임과 동시에 최고의 승리와 구원의 사건을 담고 있는 장이기도 하다.
즉 1-7절은 18장 후반부의 앗수르의 2차 침공과 관련된 기사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여기에는 앗수르 장군 랍사게의 심리 전술에 동요되어 위기에 직면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여호와 이사야에게 해결책을 간구하는 히스기야의 신앙적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8-19절은 산헤립이 히스기야를 협박하는 모습과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히스기야의 아름다운 모습을 불 수 있다.
20-37절은 예루살렘 정복에 실패하고 퇴각하는 산헤립의 초라한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도우신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했던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도우심으로 위기때마다 승리를 얻게 되었으며, 선한 왕으로 유다를 통치하였다.
전체적으로 볼 때 본 장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히스기야의 지혜와 자신을 의지하는 산헤립의 어리석음을 대비시킴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그를 의지하는 자의 축복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서로 다른 모습들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된 자의 자세를 깨달을 수 있다.
1. 히스기야의 모습
1) 하나님의 영예에 대한 열심
2)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자각
(왕하 19:3 저희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곤란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가 임산하였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3)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에 대한 의지
4) 기도의 능력에 대한 신뢰
(왕하 19:15 그 앞에서 기도하여 가로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2. 산헤립의 모습
1) 하나님을 미워하고 욕하는 자
(왕하 19:10 너희는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너의 의뢰하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 붙이지 않겠다 하는 말에 속지 말라.)
2) 자기 능력에 대한 절대적 신뢰
(왕하 18:33 열국의 신들 중에 그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3) 하나님께 조력을 구할 것은 염두에도 두지 않는 미래에 대한 자기 확신
-기억할 말씀 : 왕하 19:19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우리를 그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는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 히스기야의 병과 그의 죽음 20장
1. 기도로 병 고침을 받은 히스기야
8. 해 그림자가 십도 물러간 이적
12. 바벨론의 부로닥 발라단에게 모든 것을 다 보여 준 히스기야의 실수
16. 실수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20. 히스기야의 죽음과 므낫세의 즉위
- 열왕기 기자는 히스기야의 병환과 회복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의 통치 중반인, 아마도 B.C 713년경에 일어났을 것이다. 그것에는 기적이라고 말할 수 없을런지는 몰라도 기이한 일이 뒤따른다. 히스기야가 병이 났는데 기도로 그 병을 고친 사건이다. 병들어 죽게 된 히스기야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결과 생명이 15년이나 연장받는 축복을 얻었다.
히스기야가 회복한 뒤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에게서 축하 사절단이 왔다. 그런데 그 일이 히스기야로 하여금 어리석은 행위를 저지르게 하였고, 이사야의 경책을 듣게 되었다.(12-19절)
따라서 본 장은 히스기야의 위대한 업적 몇 가지와 그의 사망 이야기를 다룸으로 끝을 맺는다.
-기억할 말씀 : 왕하 20:2-3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 므낫세와 아몬의 통치 21장
1. 므낫세와 백성들의 우상숭배
10. 므낫세의 죄악으로 인해 예루살렘과 유다의 멸망이 선고됨
16. 므낫세의 악정과 죽음
19. 아몬의 악정과 비참한 최후
- 본 장은 남 왕국 유다의 14대 왕 므낫세와 15대 왕 아몬에 대한 기록이다. 물론 둘 다 악한 통치를 했던 왕들이며 결국은 비참을 최후를 맞는다. 그리고 그들의 이러한 악한 통치는 결국 유다의 멸망을 재촉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
그래서 여기서는 이 두 왕의 내력을 살펴보면서 이해를 돕고자 한다.
@ 므낫세
므낫세는 <잊어버림>이라는 뜻을 지닌다. 므낫세는 남조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이며, 그 어머니는 헵시바였다. 므낫세는 그 아버지 히스기야의 뒤를 이어 왕이 됐고, 남북조를 통틀어 가장 오랜 재위기간인 55년간이나 통치한 왕이었다. 므낫세는 12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군신들의 권유와 자문으로 국정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므낫세는 불행하게도 친 앗수르파의 영향을 받아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앗수르의 문화를 받아들이게 됐다. 훌륭한 아버지의 신앙을 이어받지 못하고 잘못된 신하들의 보이지 않는 압력에 의해 이방신과 우상숭배에 빠지게 됐다. 그러므로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이나 제단을 다시 세웠고, 바알과 아세라의 제단과 신상을 만들어 우상숭배의 탈선을 범하고 말았다. 심지어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되 그 아들을 제물을 삼기도 했다.
이는 종교적인 혼합주의요, 하나님께 대해서는 극도의 배교행위였다. 그 뿐 아니라 므낫세의 강포한 행위는 예루살렘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무죄한 자의 피로 물들인 잔인한 통치를 낳았다. 결국 예언자들의 예고와 같이 므낫세가 바벨론에 끌려가 사슬에 묶여 옥고를 치르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저가 말년에 하나님께 회개함으로 인해 그토록 탈선한 왕인데도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입게 됐고 왕위가 지속되는 은혜를 받았다.
@ 아몬
아몬은 히브리말로 <신용할 수 있다, 혹은 신실하다>는 뜻을 지닌다. 그는 남조 왕 므낫세의 아들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유다의 15대 왕이 됐다. 그는 22세에 왕위에 올라 2년간 통치한 단명의 왕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욧바의 하루스의 므술레멧이었고 욧바는 갈릴리 지역에 속하였다. 아몬의 모계를 보면 므낫세가 북쪽 여인과 결혼하여 남북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연유로 인해 아몬이 백성들로부터 전적인 지지를 받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뿐 아니라 므낫세의 패역한 정치를 본받았고 이방신과 우상숭배로 일관했으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결국 므낫세의 죄와 아몬의 죄가 누적되어 아몬은 하나님께 심판의 대상이 되었고, 백성들에게도 버림받은 왕이 됐다. 아몬은 하나님도 잃고 백성들의 인심도 잃어 2년간의 통치 후에는 그 주변 사람에게 사살되어 24세로 세상을 떠났다.
아몬을 거세한 사람들은 바로 그의 심복들이어서 성경은 궁중 모반으로 기록하고 있다. 물론 아몬의 실수나 실정과 행적이 그의 종말을 가져왔지만 이 같은 종말은 순리는 아니었다. 크나큰 하극상의 반란이요, 국가에 대한 모반이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일어나 반정을 일으킨 무리를 보복하여 다 살해했고 아몬의 아들 요시야를 왕으로 세워 국권을 회복했다. 결국 피는 피를 부른 보복의 사건이었다.
-기억할 말씀 : 왕하 21:8 만일 이스라엘이 나의 모든 명령과 나의 종 모세의 명한 모든 율법을 지켜 행하면 내가 그들의 발로 다시는 그 열조에게 준 땅에서 떠나 유리하지 않게 하리라 하셨으나...
# 요시야의 통치와 성전에서 율법 책의 발견 22장
1. 요시야의 통치
3. 요시야의 성전 수리
8. 힐기야가 율법 책을 발견
14.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훌다의 예언
- 본 장은 8세에 왕위에 올라 31년간(B.C 640-609) 남 유다를 통치했던 16대 왕인 요시아의 선정을 기록하고 있다. 즉 악한 왕들의 악한 통치로 유다의 장래에 먹구름이 보였던 상황 속에서 서광이 비치는 요시야의 선정의 모습들이 그려지고 있다. 즉 하나님의 성전을 수리하고, 그 와중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여 진정한 종교개혁의 기틀을 마련했다.
@ 요시야
요시야는 <여호와여 주소서>, 또는 <여호와가 그를 지지하신다>는 뜻이다. 요시야는 유다왕 아몬의 아들이며, 그 어머니는 아디다였다. 요시야의 아버지 아몬이 살해당하자 백성들은 요시야를 왕으로 추대했다.
그는 8세에 왕위에 올라 31년 동안을 치리하고 39세에 전쟁에 나갔다가 전사했다. 그는 어린 왕이었으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각별했으며, 그를 자문하던 신하들도 신앙의 사람들이어서 자신의 연령보다는 훨씬 성숙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재위 12년에는 우상을 파하고, 이방예배를 금지시켰으며, 그의 재위 18년 이후에는 여호와의 성전 수리를 진행함으로써 놀라운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이렇게 성전을 수리하던 중 대제사장 힐기야가 율법책을 발견하여 남조 유다에 큰 신앙부흥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요시야왕도 서기관 사반을 통해 율법책을 듣던 중 영적 감동을 받아 국민적인 회개운동을 일으키게 되었다. 요시야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성전에 올라가 율법과 언약을 지키기로 서약하였다. 또한 이방 제사장들을 폐하고 산당과 우상에게 분향하는 일을 폐했으며, 성전에서 이방신상을 끌어내어 기드론에서 불태웠고 특히 아세라 상은 태우고 남은 것을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묘지에 뿌리기까지 했다. 박수와 신접한 자도 폐하였고 유월절을 회복시켰다. 요시야는 그 전이나 후에도 없는 선한 왕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그런데 본 장에서 특기할 만한 구절은 17절이다.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 손의 모든 소위로 나의 노를 격발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나의 이 곳을 향하여 발한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홀다 선지자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다. 요시아는 선정으로 나라를 부흥케 하고 있는데, 선지자 홀다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포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일부요, 구속사적인 측면에서 이해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17절은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케 한 원인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유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케 된 원인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을 버림
이처럼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불순종했다는 뜻이다. 이는 곧 모든 죄악의 첫발걸음이자 죄악의 근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서는 어떠한 의도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샘에서 단 물과 쓴 물이 함께 나올 수 없는 이치와 같다(약 3:11). 그래서 율법서의 상당 부분(신 12:19; 29:25-28)과 역사서의 많은 부분(삿 10:13; 삼상 8:8; 렘 1:16 등)이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에 관해서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2) 우상 숭배에 빠짐
즉, 유다 백성들은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꾼 것"(롬 1:23)이다. 한편 하나님께서 떠난 자는 이처럼 자연히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고 하나님 안에서 살든지, 하나님을 떠나 다른 무엇을 섬기든지 무엇을 꼭 의존해야만 하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마 6:24; 눅 16:13).
3) 적극적인 범죄
유다 백성처럼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 없고 다른 것으로 채워 있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기 마련이다(창 4:7,8; 삼상 18:10등). 왜냐하면 악인은 항상 독을 머금고 있으면서 (잠 10:6,11) 악을 더듬어 찾음으로 더욱더 사악한 길로 스스로를 재촉하기 때문이다(잠 11:27).
사실 유다에 대한 심판이 연기되기 시작한 것은 8:19절에서부터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심판을 연기하신 것은 당신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과 오래 참으심에서였다(겔 33:11; 벧후 3:9). 우리는 이러한 경우를 요나에 의해 니느웨에 경고와 회개의 메시지가 선포된 사건에서 볼 수 있다(욘 3:1-10). 그러나 그 같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들은 계속 죄악 가운데서 행하였으니(21:1-9)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하게 된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어떠한 회개에 의해서라도 만회(挽回)할 수 없게 된 것이다(대하 36:16).
-기억할 말씀 : 왕하 22:11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 옷을 찢으니라.
# 요시야가 우상숭배로 더러워진 땅을 정결케 함 23장
1. 율법책 낭독과 언약 갱신
4. 요시야의 우상숭배 근절 운동
21. 유월절 회복
24. 가증한 것들을 제거
26. 므낫세의 죄악으로 인한 예루살렘 멸망이 재 확언
28. 요시야의 전사
31. 여호아하스의 악정과 죽음
35. 여호야김의 즉위와 악정
- 본 장에서는 22장에 이어 계속되는 요시야의 종교개혁의 내용을 먼저 소개하고(1-25), 그의 죽음을 이야기하며(26-30), 31-37절에서는 그 뒤를 이은 남 유다의 17, 18대의 두 왕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크게 세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1) 언약갱신
온 백성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성전 개건시 발견한 율법책을 낭독함으로써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맺어진 시내산 언약을 갱신하고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기로 다짐하였다.
2) 우상척결
3) 유월절 준수
이는 요시야 종교개혁의 절정이었다.
- 본서에 따르면 정치적인 일에 있어서 유다 '국민' 의 역할은 매우 두드러졌는데 특히 다윗 계통의 유다 왕을 선택하여 세우는 일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였음을 알 수 있다(11:12; 21:24). 한편 여호아하스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붙드신다>라는 뜻으로서 렘 22:10-12절에서는 살룸(Shallum)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우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이 무슨 근거로 그의 형 엘리아김(34절)을 두고 그를 왕위에 추대했는지는 알 수 없다.
혹자는 백성들이 동생 여호아하스를 더 유능한 자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하고(Keil), 또 다른 사람은 형 엘리아김이 요시야를 따라 므깃도로 나갔다가 느고에 의해 포로로 잡혔기 때문이라고도 하나(Rawlinson) 분명한 근거가 없다. 어찌되었든 여호아하스는 애굽에 의해 3개월만에 폐위되고 만다.
@ 여호야김
여호야김은 <여호와께서 세우셨다>는 뜻이다. 요시야왕이 죽자 백성들은 그 아들 여호야김(옛이름 엘리야김)과 여호아하스 가운데 애굽에 대해 굴욕적인 외교를 반대하는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세웠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애굽왕 바로느고는 즉시 예루살렘에 쳐들어가 여호아하스를 사로잡아 애굽에서 죽게 하였다. 그후 바로느고는 엘리야김을 유다 왕으로 세우고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꾸었다. 이때 여호야김은 25세였고 11년동안 통치한 유다의 18대왕이 된다. 이렇게 여호야김은 바로느고에 의해 왕위에 올랐으므로 애굽에 조공을 바치고 신하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3년후 바벨론이 애굽을 지배하게 되자 여호야김도 자연히 느부갓네살의 종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여호야김은 정치적인 여건이 불행하였고 시대적으로도 어려운 때에 왕이 되었다. 여호야김은 강포하여 심한 노동으로 백성을 괴롭혔고 아주 이기적이며 사치스러운 왕이었다. 또한 종교적으로도 우상숭배에 빠져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의 권고를 두루마리에 적어 전달하였으나 이를 불에 던져 태우고 말았다(렘36장). 하나님께 무서운 불경죄를 범한 사람이었다.
예레미야 22장19절에 보면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밖에 던지우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고 예언하였다. 이 예언과 같이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킴으로 그 종말이 알려지지 않은 채 왕으로서 수치스럽게 죽었다.
-기억할 말씀 : 왕하 23:3 왕이 대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좇기로 하니라.
# 바벨론에 의해 버림받은 유다의 마지막 왕들 24장
1. 여호야김 통치시 바벨론의 침입과 하나님의 심판
8. 여호야긴의 악정
10. 여호야긴 통치시 바벨론의 침략으로 예루살렘 함락과 약탈
18. 시드기야의 악정
- 몰락해 가는 남 유다의 마지막 두 왕(19,20대)인 여호야김과 시드기야에 대한 기록이다. 물론 악한 통치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
@ 여호야긴
여호야긴은 <야웨께서 성취하신다>는 뜻이다. 또 다른 의미로는 <여호와께서 보호하신다>는 뜻도 있다. 여호야긴은 남조 유다의 여호야김의 아들로 그 어머니는 느후스다였다. 18세에 왕위에 올라 3개월 10일동안 통치한 단명의 왕이었다. 애굽과 바벨론의 틈바구니에서 남조 유다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때였다. 결국 바벨론이 애굽 전역을 강점하는 바람에 애굽은 바벨론에 통합됐다.
유다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예속됐고 친 애굽정책을 폈다는 죄로 성은 무너지고 도성은 불타고 말았다. 이때에 여호야긴이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고, 왕족과 귀인과 기술자와 공인들이 다 포로가 됐다. 여호야긴은 바벨론에 압송되어 옥살이를 시작했다. 여호야긴의 불행한 운명은 역사적인 남조 유다의 타락상이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큰 잘못은 여호야긴 자신이 영적으로 타락하고 조상들의 탈선을 좇았으며 악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여호야긴은 조상들의 죄와 본인의 불의가 결합한 결과 포로의 신세가 돼 37년간이나 옥중생활을 하게 됐다. 바벨론 제국은 여호야긴을 제거하고 그를 대신하여 그의 숙부 맛다니야를 유다 왕으로 세우고 그 이름도 시드기야로 바꾸었다. 이는 나라를 빼앗기고 주권을 잃었을 때에 겪는 나라의 큰 수치였다. 하나님의 선민이면서도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할 때 수난의 역사는 끝없이 이어졌다.
@ 시드기야
시드기야는 여호야긴이 바벨론의 2차 침공시 포로가 된 이후 유다의 20대 왕이 되었다. 그는 본래 요시야의 넷째 아들 맛다니냐였으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이름까지 시드기야로 개명되었다. 그만큼 당시 유다 왕은 실권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나라, 유다의 왕이 된 자들은 백성들을 수탈해서라도 그 지위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시드기야 또한 다를 바 없는 유다의 힘없는 왕이었다. 더구나 시드기야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충고를 무시하고 이미 세력을 잃은 애굽을 의지하는 친 애굽정책을 쓰다가 바벨른의 미움을 샀다.
그리하여 결국 시드기야는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B.C 586년 유다 멸망이라는 비극을 맞는 유다의 마지막 왕이 되었다. 실로 시드기야는 하나님보다 세상 풍조를 따라 백성들에겐 악정을, 대적에게는 아첨을 한 통치자였다. 급기야 시드기야는 하나님을 버리고 애굽을 의지하다가 멸망의 주역이 되고 말았다.
@ 바벨론 제국
1. 신 바벨론의 기원과 신흥(B.C 612-605)
신 바벨론은 시리아의 사막으로부터 문명지대인 하부 메소포타미아로 이주해 온 셈족의 한 부류를 이루는 아람인이 먼저 이곳에 정주하고 있던 같은 셈족 계통의 아모리인에 흡수되어 혼합과 혼혈된 주민이 세운 나라로 그 아람인의 한 부족인 칼투족에서 처음 왕조가 나왔기 때문에 갈대아 왕국이라하며, 고대 바벧론의 함무라비왕 이후 역사의 중심지인 바벨론의 옛 도시를 부흥시켜 이곳에 수도를 정하였기 때문에 신바벨론이라고도 부른다.
때는 앗수르의 쇠퇴기로 아슈르바니팔이 죽던 해 (B.C 627) 칼투족의 출신으로 앗수르의 남부지역에 있는 군대를 지휘하던 나보폴라살 장군이 그의 임지인 바벨론에서 정권을 장악하여 새로운 왕조를 시작하였다.
처음의 지배력은 바벨론시에 국한되었으나 점차 남부의 바벨론 지역을 장악하였고 B.C 614 년경에는 동방에 있는 메대 왕 시악사레스와 동맹을 맺어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함학시켰고(B.C 612), 2년 뒤에는 최후의 보루인 하란을 점령하고 이집트의 도움으로 탈환을 시도한 앗수르의 마지막왕 아슈루발릿 2세의 공격을 격파하여 신바벨론은 앗수르의 영토를 거의 차지하였다.
2. 바벨론의 왕성 (B.C 605-562)
초대 왕 나보폴라살의 뒤를 이어 왕이 된 그 아들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은 다니엘이 예언한 금머리처럼(단 2:36-38) 그의 43년간의 통치기간은 황금시기를 이루어 외국정벌에서 이집트의 세력을 시리아와 팔레스틴에서 일소해 버리고 오리엔트 상업의 이권을 차지하였다.
이 때의 유다도 이집트의 영향하에 있다가 바벨론으로 넘어가 마침내 느부갓네살에게 멸망하여 많은 백성들이 세 차례에 걸쳐 유배를 당했다. 이에 이집트는 두로, 시돈등 유다 주위의 여러 나라를 원조하여 동맹을 맺게 하고 바벨론에 대항케 했으나 바벨론으로 하여금 이집트의 국경선까지 세력을 확장시켜 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대항한 여러 약소국들은 점령되어 엄벌을 받았으며 지형적으로 견딜 수 있었던 두로만이 포위 13년만에 종주권을 인정받았을 뿐 이집트조차도 나일강까지 휘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1세기도 채 안된 바벨론을 당시 세계 제일의 강대국으로 성장시킨 느부갓네살은 군소국가의 정복과 상업독점으로부터 들어오는 막강한 재정으로 제국을 일대 번영으로 이끌었다.
당시 느부갓네살은 수도인 바벨론에 수많은 신전과 제단을 세웠는데 특히 신들의 주신인 말둑신을 위해 말둑신전을 55곳, 다른 대신의 대신전을 53곳, 땅의 신들인 소신전을 300곳, 하늘의 신을 위해 역시 600곳, 신들의 여왕인 이시타르를 위한 제단을 180곳에다 세웠으며 고대의 7대 불가사의 하나인 공중정원(옥상정원:메대에서 데려온 왕후를 위해 만든 정원)을 세우기도 했다.
3. 바벨론의 몰락(B.C 562-539)
느브갓네살이 죽은 후(B.C 562) 왕권은 그의 아들 Evil-Merodach(에윌므로닥, 왕하 25:17 헬라어는 Amel-Aarduk B.C 562-560)에게 계승되었으나 2년 후인 B.C 560년에 반역으로 살해되고 그의 처남인 Nergal-Sharezer(네르갈사레셀, 렘39:3 헬라어는 네리그리살 B.C 620-556)이 4년간 통치하고, 그후 그 아들 Labash-Marduk(라바시 말둑 혹은 라보소알동 B.C 556?)이 왕위에 올랐으나, 9개월만에 음모단에 의해 살해되고 음모단의 Nabonidus(나보니더스 혹은 Nabonaid B.C 556-539)라는 귀족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는 파사만과 애굽의 중간지점인 Tema를 제2수도라 하여 11년간 정주하였고, 그 아들 벧사살이 부왕으로서 바벨론궁에서 나누어 나라를 다스렸다. (단 5:1-2 의 느브갓네살이 부친이라 한 것은 할아버지를 그렇게 부른 것)
그후 나보니더스는 아라비아 별장에서 죽고, 벨사살 왕은 매데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에게 죽임을 당하였고, 바벨론은 다리오의 통치하에 있다가 B.C 539년에 일어난 파사의 고레스에게 완전 멸망했다. 이때 파사는 메대를 이겼으나 부친의 궁중정략결혼을 생각해서 속국으로 하지 않고 연합국의 성격을 띠었으며 그후 서아시아 전토를 지배하고 관대한 정책으로 포로들에게 귀환을 허락했다.(스 1:1-4:24)
-기억할 말씀 : 왕하 24:3-4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명하신 바로 저희를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로 인함이며 또 저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 피로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
# 예루살렘 파괴 25장
1. 예루살렘의 함락과 파괴
13. 성전 기구들의 약탈
18. 유다 백성들의 살육
22. 유다 총독 그달랴의 취임과 암살
27. 유다 왕 여호야긴이 석방됨
- 본 장은 남 유다 왕국의 멸망과 남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가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바벨론의 3차 침공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마침내 유다 왕국이 멸망(B.C586)한다.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는 반 바벨론 정책을 쓰며 애굽을 의지하여 1년 6개월 동안 항전했으나, 결국 예루살렘 성을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27-30절은 바벨론 2차 침공시 포로로 끌려간 여호야긴이 석방되는 내용을 적고 있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이다. 남 유다는 멸망했고, 백성들은 포로가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버렸으며, 우상을 섬긴 죄악의 결과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후손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코자 하시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셨다. 따라서 백성들의 죄는 징벌하시되 그들을 영원히 멸망시키거나 영원히 버리신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후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게 하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셨다.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사역은 변치 아니하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이다.
따라서 열왕기서의 결론은 어두운 이야기를 향한 밝은 아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확히 포로 생활 70년 중간에(포로 생활 한 밤중에) 그들의 왕으로 포로가 된 여호야긴에게 친절이 베풀어졌다(25:27-30). 그것은 하나님께서 70년의 포로 생활 후에 구원하신다는 그이 약속을 믿도록 그들의 믿음을 강화시키는 표시였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있었다.
우리는 이제 이스라엘의 역사의 중요한 시기에 대해 공부를 마치게 된다. 열왕기에 나오는 많은 역사적 사건들을 공부하며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복된 특권을 얻었다. 그 동안 배운 점들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바른 크리스챤인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열방과 같이> 되고 싶어서 인간 왕들에게 다스리기를 고집했다(삼상 8:4-6). 하나님께서 그들의 의롭지 못한 요구를 허락하셨으므로 이어지는 세대들은 말할 수 없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많은 손해를 입었다.
특히 열왕기하는 희망의 말로 시작하였는데 처음 일곱 장은 경건한 두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들의 영적인 치료법을 거절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만회할 수 없는> 날이 이르게 되었다(대하 36:16).
하나님은 자비하셨고, 오래 참으셨으나, 항상 은혜를 거절하는 죄를 심판해야 하는 심판의 날이 온 것이다. 그래서 열왕기하 마지막 아홉 장에서는 앗수르와 바벨론이 이스라엘과 유다를 점령한 것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 흩어져 버린 것들을 기록하고 있다. 아무런 처방이 없었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오직 죽음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한 왕을 포함하여 그 많은 왕들 중 영원한 평화를 가져다 줄 왕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또 그러한 비극적인 역사를 계속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인가? 왕 중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영원한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오신다는 역사적 진리를 열왕기서는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으며, 또 그 왕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으로 우리에게 오셨다는 사실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유명한 시인 아이작 왓츠는 이렇게 노래 했다.
예수는 태양이 달리는 곳
어디나 다스리신다
달들이 가득차고 또 더 이상
작아질 수 없을 때가지
그의 왕국은 이 해변에서
저 해변가지 뻗어간다
모든 피조물들아
일어나 우리 왕께 경배하자
천사들은 노래하며 다시 오고
땅은 큰 소리로 아멘 하리라
이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그를 이루어 가시는 사랑과 섭리에 감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기억할 말씀 : 왕하 25:8-9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십구년 오월 칠일에 바벨론 왕의 신하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참고 : 열왕기서의 요약
다윗이 나이가 많아지자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될 후계자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 때 다윗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 군대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여 잔치를 베풀고 왕이 되고자 하였다. 그러자 선지자 나단이 이 사실을 다윗에게 알리고, 다윗은 솔로몬으로 후계자를 삼고 제사장 사독과 다윗의 용사들이 호위하여 새 왕으로 세우도록 하였다(1:38-39).
다윗은 임종이 가까움을 알자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이 그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알게 하시리라.>(2:2-4)고 유언을 한다.
그리고 군대장관 요압과 다윗에게 수치를 입혔던 시므이를 처단할 것을 말한다. 언뜻보면 하나님의 율법대로 사는 것에 대한 것은 납득이 가나 요압과 시므이를 처단할 것에 대해서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러나 시므이는 사울 왕과 한 지파 사람으로서 베냐민 지파 중에서 유력자였다. 그래서 호시탐탐 사울의 왕위를 다시 세우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윗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서슴없이 행하였기에 그는 하나님의 대적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요압은 군대를 장악한 실력자로서 다윗 왕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기 나름대로 행할 때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평화시에 의로운 사람의 피를 흘렸고, 다윗의 만년에 그의 왕권에 대한 도전이 있었다. 여기에 대한 심판을 다윗은 솔로몬에게 맡긴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자 불편한 세력들을 처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정당했어야 하기 때문에 솔로몬은 지혜롭게 이 일들을 행하였다. 먼저 아도니야에게서 일이 시작되었다.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되고자 시도했던 아도니야는 솔로몬의 모친인 밧세바에게 가서 다윗의 만년에 얻었던 후궁인 수넴 여자 아비삭을 아내로 삼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솔로몬은 아도니야를 참수하고 만다. 왜냐하면 다윗의 아내인 아비삭을 요구하는 것은 아도니야가 진정한 다윗의 후계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곧 아도니야가 다윗의 후궁을 취하게 되면 그것이 다윗의 왕권을 취하게 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는 것이다. 아도니야는 왕권을 포기하는 척 하면서 교활하게도 그의 야심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후 아도니야의 편에 섰던 제사장 아비아달을 파면한다. 이럼으로써 엘리 제사장 가문은 끝이 나고 사독 제사장 가문이 그 뒤를 잇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본 군대장관 요압은 두려워서 성전의 제단 뿔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간청을 한다. 그러나 무구한 피를 흘린 그를 그냥 둘 수 없었다. 마침내 막강한 힘을 소유하고 있던 요압마저도 참수되고 만다. 그리고 시므이 마저도 참수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윗의 왕권을 노리던 모든 적대 세력들 즉, 하나님께 도전하던 모든 세력들은 제거되었다.
국가의 기강이 튼튼해지자 솔로몬은 기브온에 가서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린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심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튼튼히 세워나가도록 해주신다. 솔로몬의 지혜는 그 유명한 어린 아이 재판 사건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참된 지혜로운 왕의 통치로 이 땅에 공의를 세워나가는 모습을 볼 때, 비로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의로운 나라가 이 땅에 완성되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비로소 하나님은 그 땅 위에 참된 평화와 안식이 깃들 수 있음을 선언하시기 위해 솔로몬에게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신다. 그리고 솔로몬은 다윗의 뒤를 이어 마침내 하나님께서 안식하실 수 있도록 성전을 건축하기에 이르른다.
성전을 건축하는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이제 이 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나의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6:12-13).>고 다윗의 언약을 확인하신다. 곧 사무엘 하 7:13절에서 다윗의 뒤를 이을 왕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건축하게 될 것과 이스라엘의 왕권을 그 후손들에게 대대손손 이어 주실 것을 언약하신 것처럼, 이제 그 약속이 솔로몬에게 와서 성취되었음을 보여주시고 있는 것이다. 특히 솔로몬과의 약속에서 하나님은 친히 이스라엘 자손, 곧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항상 함께 하시며 그들을 인도하실 것을 약속해 주시는데 바로 이것을 상징하는 것이 곧 성전이다. 따라서 성전이 예루살렘성에 있다고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계신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조건이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따라 계명을 행하는 것이다. 이 조건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모든 시대의 모든 성도들에게 아주 기본적이 되는 하나님의 요구 조건이기도 하다. 아담이 받은 언약 역시 이와 똑같은 차원의 것이었고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의무조건이었던 것이다. 이 조건이 성문화 된 것이 곧 모세의 율법이었으며 그 기본 정신은 같다. 지금의 성도들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단에게서 시험을 받으실 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란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한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복 있는 사람은......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2).>라고 노래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이란 그 자체 안에 신비한 능력이 있어서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지키는 신전은 아니다. 오히려 솔로몬 자신이 온 이스라엘의 대표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 때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을 지켜주시는 것이다. 이러한 근본 도리는 예나 지금이나 결코 변함이 없다. 성전이 웅장하게 건축되었기 때문에 그 나라가 잘 되고 평안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온 백성들이 얼마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가에 따라 참된 안식과 평강이 넘치게 되는 것이다.
솔로몬 성전은 세상에서 가장 웅장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졌다.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8:10-11).>는 기록은 그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웅장한가를 보여주고 남음이 있다. 그리고 그 성전이 어떤 능력과 권세가 있는가는 낙성식 때 솔로몬의 기도에서 잘 나타난다(왕상 8:12-53 참고).
그 의미는 하나님의 임재와 백성과의 교제, 그리고 하나님의 치유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기도를 마친 후 솔로몬은 온 이스라엘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서 나의 간구한 이 말씀을 주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있게 하옵시고 또 주의 종의 일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일들을 날마나 당하는대로 돌아 보사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런즉 너희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화합하여 완전케 하여 오늘날과 같이 그 법도를 행하며 그 계명을 지킬지어다(8:60-61).>라고 선포한다. 참으로 그 성전이 더욱 성전다워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며 그의 말씀을 따라 사는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전에 대하여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씀한다.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대로 너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의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의 나의 준 땅에서 끊어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족속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이 전이 높을지라도 무릇 그리로 자나가는 자가 놀라며 비웃어 가로되 이같이 여호와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대답하기를 저희가 자기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복종하여 그를 숭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저희에게 내리심이라 하니라(9:3-9)>
곧 성전이 아무리 아름답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은 그들이 과연 하나님만을 섬기고 순종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솔로몬과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순종할 때, 비로소 그 나라 온 지경에 하나님의 평화가 이루어졌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에 따라 다윗이 국가를 건설하고 마침내 모든 적대 세력이 무너진 후 솔로몬에 의해 참 평화의 나라가 건설된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평화의 나라가 건설되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나라이며 하나님만을 왕으로 섬기는 나라였다. 솔로몬이 비록 왕좌에 앉아 이스라엘을 다스린다고는 하지만 이스라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솔로몬은 그 나라를 다스리도록 하나님께서 세우신 대리자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영화와 존귀를 허락해 주셨다. 그래서 작금 이래로 솔로몬보다 더 지혜롭거나 영화를 누려본 왕은 없었다. 그래서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보고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기뻐하사 이스라엘 위에 올리셨고 여호와께서 영영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왕을 삼아 공과 의를 행하게 하셨도다(10:9)>라고 칭송하였다. 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나라들도 솔로몬의 영광을 보고 존경과 감탄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이다(10:23-25).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만 있다면 이 나라야말로 세상 모든 나라들로부터 칭송과 존귀를 받고도 남을 것이다. 그리고 이 나라야말로 참 평화의 나라일 것이다.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천하 열왕보다 큰지라 천하가 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며 그 얼굴을 보기 원하여 각기 예물을 가지고 왔으니 곧 은그릇과 금그릇과 의복과 갑옷과 향품과 말과 노새라 정한 수가 있었더라(10:23-25).>는 말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치세를 함으로 얻은 영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 나라는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대로 살 때, 흥왕할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나라들로부터 존귀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솔로몬이 강대하고 그의 지혜가 온 땅에 퍼지므로 모든 열왕들이 솔로몬을 사랑하고 흠모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각국 나라들의 공주를 솔로몬의 후궁으로 보내며 서로 화친을 맺고 친교를 나누기를 바랐다. 특히 당시에 애굽은 대단히 큰 나라였다. 따라서 바로의 권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로가 자기의 딸을 후궁으로 줄 정도였다면 솔로몬을 얼마나 높이 평가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당시에는 국가간의 화친을 확인하기 위해서 서로 혼인관계를 맺음으로써 조약을 유지하여 나갔다. 그러므로 후궁이란 실상은 인질의 성격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일단 왕의 아내로 들어와 있기 때문에 항시 국빈의 대우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자기네들의 풍습에 따라 의, 식, 주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는 특권도 있었으며, 자기네들이 섬기던 종교까지도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국가는 솔로몬의 이상과 정치 이념에 따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따라서 인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려 나가는 일은 처음부터 있어서는 안되었다. 사실 솔로몬이 그와 같은 명성을 얻게 된 것도 자신의 수완으로 얻은 것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다스렸기 때문에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거꾸로 명성을 얻은 후 솔로몬은 세상 열왕들과 같은 방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방 족속들에 대해서는 절대로 통혼을 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금하셨다. 왜냐하면 순수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변질되거나 오염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솔로몬은 1천 여명의 후궁을 둘 정도였고, 저들이 각기 자기들의 신들을 섬길 뿐만 아니라 솔로몬이 나이 들어 늙어지자 함께 예전에도 참석할 것을 종용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 결과 솔로몬은 이방의 우상들을 위한 산당을 짓기도 하고 제사를 드리기도 하였다. 이처럼 패역해지자 하나님은 솔로몬을 책하시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가증한 우상숭배를 자행하고 하나님의 언약과 법도를 어기었으므로 이스라엘 나라를 나누시겠다고 경고하셨다(11:9-13). 그 뿐만 아니라 다윗 이후부터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었던 주변 국가들이 반란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반역하는 무리들이 점차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는 에브라임 족속인 여로보암이 정면으로 솔로몬을 대적하기에 이르른다.
여로보암은 선지자 아히야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고 솔로몬에게서 10지파를 빼내어 새 왕조를 세울 수 있도록 세움을 받았다. 이에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죽이려 하매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살아 있는 동안 애굽으로 피신하게 되었다. 얼마 후 솔로몬이 죽자 그 아들 르호보암이 솔로몬의 뒤를 이어 왕으로 세움을 받게 된다. 그러자 여로보암이 애굽에서 돌아와 르호보암을 대적하기에 이르렀다.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종용하여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러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12:4).>라고 르호보암에게 일렀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자기가 친하게 여기는 젊은 이들의 가르침을 따라 오히려 채찍으로 백성들을 다스릴 것이라고 답하자 여로보암을 위시한 백성들이 반기를 들게 된다(12:6-15 참고).
그 결과 유다와 베냐민의 2지파만 남고 10지파는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고 북쪽 세겜성을 도읍지로 정하고 북 이스라엘왕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을 중심한 남 유다 왕국과 북 이스라엘 두 왕국으로 분열되고 말았다.
한편 북 왕국을 건설한 여로보암은 매년 절기 때마다 남쪽 예루살렘 성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려가 제사를 드리다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바뀌어 자기를 살해하고, 남 왕국과 연합하게 될 것을 우려하여 벧엘과 단 두 곳에 각기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곳에서 분향하며 제사를 드리도록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북 이스라엘 사람들이 남 유다 지경으로 가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나 본래 하나님께서 솔로몬과 르호보암의 손에서 10지파를 떼어 내 여로보암에게 준 것은 솔로몬과 르호보암이 우상숭배에 빠졌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나누어 여로보암의 손에 맡기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의당히 순결하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상에 빠짐으로 스스로 더럽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로보암에게 이르기를 <내가 너를 취하리니 너는 무릇 네 마음에 원하는대로 다스려 이스라엘 위에 왕이 되되 네가 만일 내가 명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의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11:37-38).>고 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여로보암이 이 말씀과 같이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북 이스라엘왕국을 다스린다면 하나님은 이 나라를 아주 귀하게 여기시고 다윗의 왕국과 같이 여기실 것이었다. 이처럼 원래 하나님이 북 이스라엘왕국을 여로보암을 통해 건설하실 때는 성별되고 공의로운 나라를 바라셨던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은 자신의 정치적인 지위와 수명에 위협을 느끼고 자기 마음대로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설치해 놓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데서 기인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세워 왕으로 삼으시고 모든 권세를 주셨건만 여로보암은 벌써부터 자기 의지대로 그 나라를 유지해 나가고 다스리려고 했다. 여기에서의 금송아지란 하나님을 부인하고 금송아지를 섬기기 위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되 하나님의 형상을 금송아지로 바꾸어 놓은 것으로 제 2계명을 어긴 것이다. 이런 사상은 혼합주의(syncretism)에서 나온 것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피조물의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것과, 피조물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떠받드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일정한 절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나름대로 절기를 만들어 제사를 드리는 행위는 북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남 유다와의 완전한 단절을 유도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돈독히 하고자 하려는 시도였으나, 이러한 사상이 결국은 하나님 보다는 자기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인본주의(Humanism)의 가장 원시적인 모습에 불과하다. 매사를 이런 식으로 할 것 같으면 과연 어느 부분에서 하나님을 참으로 하나님답게 여기면서 섬길 수 있겠는가? 결코 아무데서도 찾아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 제사할 때는 특별하게 선택된 제사장에 의하여 거행되어야 하는데 여로보암은 레위인이 아닌 보통 백성을 제사장으로 삼아 정통적인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에서 완전히 이탈해 버리고 말았다. 이와 같이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자기 마음대로 피조물의 형상으로 바꾸었는가 하면 절기도 바꾸고, 제사장을 세우는 규례까지도 무시해 버림으로써 남 유다 왕국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종교를 창시해 버린 결과를 초래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명칭은 하나님를 섬긴다고 하면서도 어느 것 하나에서도 하나님이 세우신 규례대로 하지 아니하고 자기 나름대로 규정해 놓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모습은 지금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실상은 자신의 권위나 이상이나 체면을 더 많이 앞세우는 행위들이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그리고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여전히 남아 있다면 결코 하나님을 올바로 섬긴다 말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여로보암의 사악한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은 먼저 경고를 하신다. 곧 여로보암이 벧엘에서 분향을 하고 있을 때 선지자가 나타나 이처럼 가증한 산당과 여로보암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말하고, 그 제단이 깨어질 것을 선언하신다(13:1-3). 그러자 여로보암이 손을 들어 그를 붙잡으라고 소리치자 그의 손이 말라버렸다. 그리고 선지자의 말과 같이 그 제단이 갈라지고 말았다. 비록 선지자의 기도로 여로보암의 손이 원상태로 회복이 되었기는 했지만 여로보암은 끝내 그 마음을 돌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더 심해지기만 했다(13:32-34). 이러한 여로보암에 대해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백성 중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고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내어 네게 주었거늘 너는 내 종 다윗이 나의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좇으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 너의 이전 사람들보다도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 만들어 나의 노를 격발하고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14:709).> 그러면서 여로보암의 가문을 철저하게 멸망시키실 것과 다시는 이스라엘을 돌아보지 않으시겠다고 선언하신다.
여로보암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나답 역시 자기 부친의 죄악에서 떠나질 못했다.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아비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한지라(15:26).>함과 같이 여전히 우상숭배에 빠지자 하나님은 여로보암에게 저주하셨던 말씀대로 바아사를 세워 철저하게 심판하심으로 여로보암의 모든 집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셨던 것이다(15:27-32).
그러나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된 바아사 역시 여로보암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한다(15:33-34). 하나님은 선지자 예후를 보내셔서 그러한 악행을 꾸짖으셨으나 끝내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정책을 버리지 못함으로 하나님은 바아사 집안까지도 심판하신다. 그 뒤를 이어 오므리가 강력한 군주로서 세력을 키워 가고 사마리아에 도읍을 정하고 주변 국가들을 정복해 나감으로써 전례없는 부강한 나라를 이루어 나갔다. 그러나 오므리 역시 여로보암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성경은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여 그 헛된 것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케 하였더라(16:25-26).>고 말하고 있다.
결국 솔로몬의 대외 전략 정책의 실패가 하나님의 지상 왕국을 분열시켰고, 여로보암의 혼합주의 정책이 이스라엘을 멸망으로 인도하고 있음을 볼 때에 이 지상 왕국은 불완전 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되고 영원한 새 왕국을 바라보아야 함을 우리에게 교훈으로 주고 있다.
이스라엘은 특별한 나라였다. 곧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점에서 아주 특이하다. 따라서 이스라엘 국가 자체가 하나님을 위한 종교기관이다. 곧 종교와 국가가 분리될 수 없는 혼연일체의 나라인 것이다. 이러한 요소는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오늘날의 국가는 종교와 국가와는 서로 다른 위치와 이념이 있다. 그래서 서로 돕는다든지, 적대관계가 되든지 하는 관계가 형성될 수 밖에 없다. 자유국가들에게서는 종교를 인정하고 서로 독립한 가운데서 돕고 있다. 반면에 공산국가에서는 적대시하고 탄압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철두철미하게 종교가 곧 국가요 국가가 곧 종교였다. 그래서 왕으로부터 제사장 그리고 모든 백성들에게 이르기까지 오직 하나님만을 위하고 섬기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국가 유지를 위한 헌법이란게 따로 독립되어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신 율법이 곧 국가의 헌법이다. 그리고 왕의 위치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다스리시기 위한 대리자였으며, 제사장은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달해 주는 중보자였다.
선지자는 혹 왕이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방종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기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파숫군이었다. 따라서 왕이 올바른 통치를 하지 못한다든지,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이 자기 직무를 다하지 못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방자해져서 부패해지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참된 모습들도 상실해 버리게 된다. 이런 점들을 볼 때 백성들을 위하여 세워진 직분자들의 위치는 아주 막중하다고 볼 수 있다. 그들 하나가 잘못될 때 파급되는 악이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솔로몬이 지혜를 얻어 당시에 유력한 통치자로 세인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정략적으로 이웃 나라들과 맺은 정략결혼으로 말미암아 이방신들이 이스라엘 안으로 들어오게 되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백성들이 이방신들의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기도 하며, 하나님만을 섬기는데 있어서 등한시하게 되었고 우상숭배나 하나님 숭배나 별반 다른 게 없다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세워진 이스라엘 국가 자체의 설립 의도가 무너지게 되며 이스라엘이라는 독특한 존재 이유마저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왕 한 사람의 실수가 나라 전체를 무의미하게 타락시킬 수가 있었기에 모세는 신명기에서 왕 제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았으며, 사무엘 역시 경고를 했던 바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울>이라는 왕을 택하셔서 왕 제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불합리한 모습의 실례를 보여주시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이 종교적으로 타락하게 되어 이스라엘의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릴 것을 우려하신 하나님은 여로보암을 택하시어 10지파를 갈라 북 이스라엘왕국을 세워주셨다. 그리고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견고한 집을 세워주실 것을 약속하셨다(왕상 11:30). 그러나 여로보암은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금송아지로 바꾸어 섬길 뿐만 아니라 전 백성들도 그와 함께 경배하도록 종용하였고 따라서 하나님은 그를 폐하고 말았다. 그 뒤를 이은 이스라엘의 왕들도 역시 여로보암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에 계속된 찬탈과 반목의 역사가 지속되었다.
이런 참혹한 상태에서 강력하게 왕권을 쥔 사람이 오므리였다. 오므리는 국방을 튼튼히 하고 자신의 왕권을 강력하게 세워나갔으므로 당시 주변 국가들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초강대국가였던 앗시리아에까지도 오므리의 명성이 들릴 정도였다. 이처럼 오므리는 외적으로 아주 강력한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했다. 그러나 그는 여로보암의 정책과 별반 다른 점이 없었으며 특히 북방의 두로와 시돈과 화친정책을 썼다. 그 이유는 당시에는 아람이 이스라엘에 대한 가장 위협적인 세력이었는데 아람 배후에 있는 두로와 시돈과 화친을 맺음으로 아람이 쉽게 이스라엘을 침공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화친정책으로 오므리는 아들 아합을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시켰다.
그리고 아합은 오므리를 이어 북 이스라엘왕국의 왕이 되었다. 이 아합에 대해 성경은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산당 속에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 저는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16:30-33)
.>고 기록한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앞날이 결정적인 변화를 갖게 된다. 곧 이전의 왕들은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의 형상을 바꾸어 섬겼다. 그러나 아합시대에 와서는 아예 여호와에 대한 어떤 종교 행사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철저하게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을 제거하고, 오히려 바알과 아세라를 위한 제사장을 세우며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를 떠나 바알과 아세라에게 경배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배도의 시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성경은 그 전 모든 왕보다 아합이 악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당시의 상황은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버리게 되고 말았다. 그 당시의 영적 상태를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기록이 곧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16:34).>는 말씀이다
. 여리고성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최초로 하나님의 권능으로 점령했던 곳이다. 그때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다시 건축하는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었다(수 6:26). 그런데도 불구하고 히엘이 여리고성을 재건하던 중 그 아들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리고성을 쌓고 있음을 볼 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시대가 여호와의 말씀을 떠나 깊은 어둠에 빠지게 된 것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에 깊이 빠진 결과였으며 바로 이러한 일이 아합과 이세벨에 의해 자행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로 세움을 받은 이스라엘이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을 떠나 버리고 배역해버린 상태에서 하나님을 대변하는 선지자로 세움을 받은 이가 곧 엘리야였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엘리야는 아합을 찾아가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17:1).>고 선포한다. 이미 하나님을 떠나고 바알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에게 기근이 선포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근이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다. 약속의 땅에서의 전쟁이나 기근은 곧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레위기 26장 참조). 그후 과연 3년 6개월간 이스라엘 지방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극심한 기근에 시달렸다. 그러자 속이 탄 아합이 엘리야를 찾아 나선다. 엘리야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선지자들을 이세벨의 박해 가운데서도 보살펴 준 군대장관 오바댜를 통해 아합을 만난다.
엘리야를 본 아합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18:17).>고 하자 엘리야는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18:18).>고 지적하면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모아 갈멜산에서 누가 진정한 하나님인가를 드러내도록 대결을 하자고 선언한다.
그러자 모든 백성들과 선지자들이 갈멜산에 모이게 되었다. 그곳에서 엘리야는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18:21).>라고 신앙의 촉구를 한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을 떠나 바알과 아세라에 길들여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자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대결을 벌인다. 먼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준비해 놓은 제물을 태우도록 하였지만 저녁이 다 되도록 아무런 응답도 얻을 수 없었다. 엘리야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18:36-37).>라고 기도한다.
그러자 하늘로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을 태우고 모든 백성이 엎드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18:39).>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잡아 기손강에서 처단한다. 이 대결의 목적은 누가 진정한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의 통치자이신 것을 밝히고 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신앙하자는 것이었다. 그런 후 비가 내려 그간의 기근이 종식된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이세벨은 아직도 의기양양해서 오히려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고 한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러자 엘리야는 혈혈단신으로 40일간의 광야길을 걸어 시내산으로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 앞에선 엘리야는 하늘로서 불이 내리는 증거를 목도한 이스라엘이 아직도 신앙으로 바로 서지 못하고 여전히 이세벨의 눈치를 보는 연약하고 패역한 모습을 심판해 주실 것을 기도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크고 강한 권능이 개입하셔서 과연 하나님이야말로 온 우주의 왕이시며 이스라엘의 진정한 주인이신 것을 나타내 주시기를 바랬다. 그러나 하나님은 크고 강한 바람과 지진 가운데서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세미한 소리 가운데 앨리야에게 응답하신다.
먼저 다메섹에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으로 삼고, 이스라엘의 왕으로는 예후를 기름붓고, 선지자로서는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하신다. 그리고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19:17).>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을 배도한 이스라엘 위에 커다란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신다. 그런 후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19:18).>고 하시면서 특별히 주를 위해 남은 자를 남기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결코 어느 시대나 그의 백성들을 버리시지 않으신다. 모두가 다 바알 앞에 무릎을 꿇을지라도 하나님의 백성들만은 특별한 섭리와 보호 아래 그들의 신앙을 지켜 나갈 수 있도록 돌보아 주시는 법이다. 믿음을 지키기가 힘이 들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그러한 상황이나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그리고 끝까지 자기들의 신앙을 지켜나간다. 비록 생명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박해가 심하고 믿음을 지키기가 고달프다해서 배신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세상을 더 불쌍히 여기고 위하여 기도하며 연약한 성도들이 신앙을 잃지 않도록 위해 기도하며 힘쓴다. 엘리야 시대에도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떠난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도 순전한 7천 명의 성도들을 남겨 놓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떤 이유에서라도 믿음을 저버리는 것은 하나의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라도 정당화시킬 수 없다. 성도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법이다.
그 당시 상황이 얼마나 악했느냐 하는 것은 나봇의 포도원을 이세벨이 탈취하는 사건에서도 잘 나타난다(21장). 나봇의 포도원은 기업으로 주어진 땅이다. 한 번 기업으로 주어진 땅은 결코 팔 수도 없었으며, 다른 이에게 어떤 이유에서라도 명의 변경이 되질 않는 법이다. 왜냐하면 그 땅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된 이스라엘에게 값없이 기업으로 주신 땅이기 때문에 사거나 팔 수 없었다. 혹시 팔았다 하더라도 희년까지의 남은 햇수를 계산하여 값을 치루되 희년이 되면 원 소유자에게 돌려주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합은 나봇이 기업으로 받은 땅을 차지하려고 했고, 이세벨은 악한 수법으로 나봇을 죽이고 차지하고야 말았다. 하나님은 이처럼 하나님의 계율을 어긴 아합에게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21:19).>고 하시면서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21:19).>고 저주하셨다.
참으로 그 시대는 불법이 난무하는 시대요 공의가 잠자는 암흑의 시대였다. 과연 이러한 나라를 하나님은 어떻게 처리하실까?
아합이 그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되어 온 이스라엘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바알과 아세라에게로 돌이키게 하였음을 인하여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 회개하도록 권고하셨다. 그러나 이세벨의 독한 정책 앞에서 아합 뿐만 아니라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서지 못하고 주눅이 들어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하나님은 서서히 심판의 칼을 들기 시작하셨다.
당시 남 유다왕국은 여호사밧이 다스리고 있었다. 여호사밧은 아합의 딸과 자기 아들 여호람과 결혼을 시킬 정도로 아합과 가깝게 지냈다. 그처럼 가깝기 때문에 둘은 연합하여 아람을 쳐서 길르앗 라못을 빼앗자고 군사를 일으킨다. 하나님은 이 일에 대하여 아합을 충동시켜 싸움터에 나가 죽게 하시겠다는 계획임을 미가야 선지자를 통해 알려 주셨다(왕상22:19-23). 그러나 아합은 오히려 미가야를 옥에 가두고 출전을 한다. 전쟁터에서 아합은 왕의 옷을 벗고 변장하여 군중들 틈에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화살에 맞아 죽고 만다(왕상 22:29-36). 아합은 변장하는 방법으로 죽음을 면하려 했지만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셨다 하라(왕상 21:19).>는 저주와 같이 아합의 피를 사마리아 못에 씻을 때 개들이 그 피를 핥았다고 한다(왕상 22:37-38). 이와 같이 하나님의 권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망해버린 아합을 볼 때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아무도 벗어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합의 죽음은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전조에 지나지 않았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그 역시 아합의 뒤를 따라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데 주력했다. 심지어 그가 다락 난간에서 낙상하여 병이 들었음에도 바알세붑에게 신하를 보내 병이 낫겠는가를 물어 볼 정도였다. 그러자 엘리야가 나타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사자를 보내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하니 이스라엘에 그 말을 물을 만한 하나님이 없음이냐 그러므로 네가 그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왕하 1:16).> 책망 하셨다. 그 말씀대로 아하시야는 그가 누웠던 침상에서 다시 내려오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아하시야의 뒤를 이어 여호람(요람이라고도 함)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런 후 하나님은 엘리야를 부르시고 엘리사가 대신 하나님의 심판을 전달하는 사역을 맡게 된다. 그런데 새로 왕이 된 여로함은 아합이 만든 바알의 주상을 제거하며 새로운 정책을 펴기는 했지만 본래 이스라엘이 빠져있던 여로보암의 혼합주의적인 종교정책에서 떠나질 못했다. 그때 모압이 배반하였기에 여호람은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연합하여 모압을 침공한다. 하나님은 여호사밧을 생각하사(왕하 3:14) 모압을 치게 하셨으나 완전히 정복은 하지 못한다.
이처럼 본래 다윗시대에 정복되었던 주변 국가들이 하나씩 이스라엘을 떠나 독립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는 증표이기도 했다. 그런 후 이스라엘은 오히려 주변 국가들로부터 위협과 침략을 당하게 된다. 하나님의 통치를 떠난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엘리사에 의하여 하사엘이 아람 왕으로 세움을 받게 된다(왕하 8:12-15).
한편 여호사밧이 늙으매 그 아들 여호람이 유다의 왕으로 추대된다. 여호람은 아합의 사위였고, 오히려 아합의 뒤를 따라 유다를 다스릴 정도로 하나님을 떠나 있었다. 그때 에돔이 유다의 통치에서 벗어나자 여호람이 에돔을 징벌하려고 했지만 결국은 여호람만 죽고 만다. 그 뒤를 이어 아하시야가 유다의 왕이 된다. 그러나 아하시야 역시 아합과 같이 여호와 앞에서 사악하게 행하였다(왕하 8:27). 한편 이스라엘의 여호람(또는 요람)은 새로이 아람의 왕이 된 하사엘과 싸우다가 크게 상처를 입고 이스라엘이 수도인 이스르엘로 돌아와 있었다.
하나님의 심판의 손은 아직도 멈추지 않았다. 하나님은 엘리사를 시켜 예후에게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도록 하셨다(왕하 9:11-13). 때에 유다 왕 아하시야는 여호람을 병문하고자 이스르엘에 와 있었다. 반역을 한 예후가 이스르엘로 쳐들어간 때는 이때였다. 예후는 요람을 맞아 <네 어미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왕하 9:22).>고 하면서 화살을 쏘아 죽인다(왕하 9:24). 그리고 아하시야도 살해한다(왕하 9:27-28). 이렇게 됨으로써 아합의 혈손들(아하시야의 모친은 아합의 딸이었음)이 모두 예후의 칼에 죽고 만다. 예후는 하나님의 심판의 칼을 거두질 않고 마침내 이세벨에게까지 심판을 행하였다. 예후는 내시를 시켜 이세벨을 창 밖으로 던져
죽이도록 한다. 이세벨의 시체는 개들이 뜯어 먹어버림으로써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야로 말씀하신 바라.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 개들이 이세벨의 고기를 먹을지라(왕하 9:26).>는 말씀과 같이 되었다. 이처럼 이세벨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한편 아합의 후손들 70여명이 사마리아성에 살고 있었다. 예후는 그들을 가르치는 자들에게 그들을 처단하도록 명령을 한다(왕하 10:1-7). 그들이 70명의 목을 잘라 예후에게 바침으로써 아합의 가문은 완전하게 멸족이 되고 만다. <예후가 무릇 아합의 집에 속한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자를 다 죽이고 또 그 존귀한 자와 가까운 친구와 제사장들을 죽이되 저에게 속한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왕하 9:11).>는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이 철저하게 아합을 치셨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예후는 계속해서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모아놓고 모두 살해한다(10:25-27). 그리고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산당을 훼파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세벨에 의하여 이스라엘에 도입되어 하나님을 떠나게 했던 모든 일들이 심판을 받고, 이스라엘에서 온전히 바알의 그림자까지도 제하여지고 말았다. 그러나 막상 예후는 하나님의 대리 심판자로서 그 일을 완수했지만 그 자신은 여전히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단과 벧엘의 금송아지를 섬기고 말았다(왕하 10:29).
하나님은 예후에게 <네가 나 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나리라(10:30).>고 하셨다. 그러나 예후는 여호와의 율법을 전심으로 지켜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은 아람 왕 하사엘을 통하여 이스라엘 곳곳을 침공하게 함으로 예후가 살아있는 동안에 평안이 이스라엘에 있지를 못했다.
지금까지의 하나님께서 행하신 심판을 보면 시내산에서 엘리야에게 하신 말씀대로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이스라엘과 아람의 하사엘과의 싸움에서 이스라엘이 크게 패하고 계속 시달림을 받는다. 그러다가 예후에 의하여 아합의 가문이 멸족을 당한다. 그런데 예후가 한 일을 보면
1) 나봇의 포도원에서 요람을 살해하고(왕하 9:21-26),
2) 유다 왕 아하시야를 살해했고(왕하 9:27-28),
3) 이세벨을 죽였으며(왕하 9:30-37),
4) 아합의 후손 70명을 살해하고(왕하 10:1-11),
5) 아하시야 형제들 42명을 죽였으며(왕하 10:12-14),
6) 바알 추종자들을 모두 살해했다(왕하 10:18-29).
이제 남아 있는 것은 아직도 여로보암의 뒤를 떠나지 못하는 이스라엘이 엘리사에 의하여 철저하게 심판을 받을 것과,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의로운 7천인을 남겨두심과 같이 남은 자를 남기시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가시는 일이다.
이처럼 그의 나라를 이끌어 나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때 다시 한 번 우리의 마음가짐을 정립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곧 이스라엘이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했던 것은 저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 이르러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신분에 대한 바른 인식이 있어야만 했다.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일이 가장 우선적인 일이었다(신 6:4-5).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으로 매 안식일마다, 그리고 절기마다 하나님 중심적인 의식을 지켜야 했고, 그 삶은 성전을 중심으로 한 삶의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데 여로보암이 북 이스라엘을 건설하고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섬기도록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되더니만 급기야 아합시대에 와서는 바알과 아세라에 완전히 빠지게 되고 말았다.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예배가 우상숭배로 바뀌었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 마저도 버린 것과 같다. 인격체인 인간이 비인격체인 돌이나 나무를 신이라고 경배한다는 일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 수 없다. 그들에 대한 엘리야의 열심은 참으로 대단했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왕상 18:21).>라는 피 토하는 음성이 지금도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 하다.
여호와가 과연 우리의 하나님이실진대 우리는 아직도 또 다른 무엇을 하나님으로 섬기려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그런 자들이게 주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권념하시어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도록 권면하셨지만 이스라엘은 끝내 돌아서지 않았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로 하셨고, 심판의 방법으로 세 사람의 인물을 선정하셨다. 먼저는 예후를 세워 아합 왕의 가문을 철저하게 심판하는 일이며 다음은 아람 왕 하사엘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거역하는 이스라엘을 치도록 하는 일이었다. 끝으로 엘리사를 세워 하나님의 심판을 진행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섬기는 의로운 남은 자들만을 남기시도록 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이 진행됨에 따라 아합 왕가는 예후의 칼날에 멸족이 되었다. 그리고 아합 왕가와 친분을 맺은 유다의 아하시야 왕도 죽임을 당하고 만다.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이 예후의 손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 남 유다왕국에서는 아합의 딸 아달랴가 왕권을 찬탈하고 있었다. 아달랴는 아하시야 왕의 모친이었는데 아하시야가 예후의 손에 죽자 다윗의 모든 씨를 죽이고 자기가 견고한 유다의 통치자로서 지위를 갖고자 하였던 것이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언약 곧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6).>는 말씀이 끊어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다윗의 혈통 가운데서 메시야를 세우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겠다던 계획(삼하 7:13)도 깨뜨려지고 만다. 그러므로 아합의 딸 아달랴가 아하시야의 씨를 멸절시키려 했던 것은 단순히 다윗의 혈통을 끊어버린다든지 유다왕국의 왕권을 손에 쥐기 위한 찬탈행위로 끝나지 않는다. 이 행위는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고자 하는 영원한 하나님의 계획을 무산시키고자 하는 사단의 계략이기도 한 것이다.
독사와 같은 이세벨이 아합을 유혹하여 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도록 하더니만 이제 와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의 건설까지도 방해하고 있는 사건이 바로 아달랴의 찬탈사건이다. 이러한 상황에 하나님은 아하시야의 아들 가운데 요아스를 숨겨 대제사장 여호야다 밑에서 보호하여 자라도록 하셨다. 참으로 일촉즉발과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요아스를 구원해 내셨던 것이다. 이 구원의 행위는 다윗의 왕위를 계속해서 세우시겠다는 약속의 신실한 이행이기도 하며 온 인류를 구속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언약의 성취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아달랴는 자기가 완벽하게 유다왕국의 실권을 장악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결코 아달랴의 패역에 대하여 눈감아주시는 분이 아니셨다. 요아스가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가르침을 받고 자란지 6년이 지나자 여호야다는 모든 군대장관과 백부장을 불러모아 요아스를 왕위로 등극하도록 한다. 이에 그들은 여호야다의 명에 따라 요아스를 유다의 왕으로 세운다.
<여호야다가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 면류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매 무리가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왕하 11:12).> 하나님의 나라를 자기 마음대로 치리하고자 했던 그녀는 이세벨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던 것이다.
<여호야다가 왕과 백성으로 여호와와 언약을 세워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하고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하매 온 국민이 바알의 당으로 가서 그 당을 훼파하고 그 단들과 우상을 깨드리고 그 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니라(왕하 11:17-18).>
이렇게 함으로 잠시 어둠 속에 있던 하나님의 나라가 새롭게 광명을 찾게 되었다. 이 점을 보아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결코 인간의 계획과 능력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은 그의 신실하신 언약에 따라 이행하실 따름이다. 아담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에게 약속하신 그의 나라는 이처럼 하나님의 크고 오묘하신 은혜와 역사하심으로 유지되어 왔고, 건설되어 왔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메시야에 의해 완성되고야 말 것이다. 이 메시야 역시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실 것이고 하나님이 친히 그 역할을 감당하실 것이다.
그러나 여호야다 제사장이 죽고 나자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겠다고 약속했던 요아스 왕과 그의 백성들이 언약을 깨뜨리고 또 다시 우상에 빠지고 만다(대하 24:15-19).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의 말을 듣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긴고로 이 죄로 인하여 진노가 유다와 에루살렘에 임하니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저에게 보내사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저에게 경계하나 듣지 아니하니라(대하 24:17-19).>는 말씀 속에서 인간의 부패된 심성과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함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그들이 패역하고 부패해지자 아람 왕 하사엘이 침공하여 심판을 한다(왕하 12:17-18). 그리고 요아스는 이 전투에서 크게 상처를 입었으며 마침내 그 신복들에 의하여 그의 침상에서 모살을 당하고 만다(대하 24:24-25). 결국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로 왕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도록 세움을 입었던 그가 하나님의 율법을 떠나버리자 이처럼 처참하게 죽고 말았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경륜과 계획대로 다스려지는 법이다.
한편 이스라엘을 평정했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왕하 10:31)하였던 일>로 인하여 아람 왕 하사엘에 의해 죽고, 그 아들 여호아하스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여호아하스 역시 그 아버지의 뒤를 이은고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아람 왕 하사엘에 의해 역시 죽임을 당하고 만다(왕하 13:1-9). 그러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만 역시 그 아버지의 전철을 따라 죽고 여로보암(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여로보암과 구별하기 위해 여로보암 2세라고 구분함)이 왕이 된다(왕하 13:13). 그리고 여로보암 2세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 14:24).>는 말씀과 같이 벧엘과 단의 금송아지를 섬겼으며, 그러한 여로보암 2세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만다.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네 자손이 이스라엘 위를 이어 사대까지 이르리라 하신 그 말씀대로 과연 그렇게 되니라(왕하 15:12).>는 말씀처럼 여로보암 2세를 제거하시고 스가랴를 대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다. 그러나 계속된 찬탈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혼란의 와중으로 깊숙히 떨어지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앗수르 왕 불을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다(15:18-20). 그래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서지 않았다. 하나님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을 세워 최후 통첩을 했지만 역시 이스라엘은 돌아서지 않았다(왕하 15:29). 그리고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 역시 여로보암의 뒤를 따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이스라엘을 다스리려고 했으므로, 마침내 하나님은 앗수르 왕 살만에셀을 세워 이스라엘을 B.C. 722년에 멸망시키고야 만다(왕하 17:6). 이처럼 북 이스라엘왕국이 멸망한 것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기록해주고 있다.
<이 일은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신 그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또 다른 신들을 경외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규례와 이스라엘 열왕의 세운 율례를 행하였음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가만히 불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를 배역하여 모든 성읍의 망대로부터 견고한 성에 이르도록 산당을 세우고 모든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목상과 아세라상을 세우고 또 여호와께서 저희 앞에서 물리치신 이방 사람같이 그곳 모든 산당에서 분향하며 또 악을 행하여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으며 또 우상을 섬겼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지 말라 명하신 일이라. 여호와께서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로 이스라엘과 유다를 경계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되 내가 너희 열조에게 명하고 또 나의 종 선지자들로 너의에게 전한 모든 율법대로 행하라 하였으나 저희가 듣지 아니하고 그 목을 굳게 하기를 그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던 저희 열조의 목같이 하여 여호와의 율례와 여호와께서 그 열조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과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허무한 것을 좇아 허망하며 또 여호와께서 명하사 본받지 말라 하신 사면 이방 사람을 본받아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버리고 자기를 위하여 두 송아지 형상을 부어만들고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하며 또 바알을 섬기고 또 자기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복술과 사술을 행하여 그 노를 격발케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심히 노하사 그 앞에서 제하시니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왕하17:7-18).>
하나님께서 특별한 의도가 있어서 이 땅 위에 세워두셨던 북 이스라엘왕국은 끝내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 서질 못하고 멸망하고 말았다. 이 즈음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교훈이 무엇인가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유다로부터 따로 세워 여로보암을 통해 건설하신 것은 솔로몬이 우상을 섬기는 일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구분하시어 따로 세워두시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북 이스라엘왕국을 다스리면 성별되고 공의로운 나라로 든든히 서가도록 해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자기의 정치적인 수완과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려 했고 그 방법으로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경배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북 왕국은 여로보암의 죄에서 계속 떠나지 못하고 마침내는 이세벨에 의하여 여호와까지도 잊어버리고 바알과 아세라에 무릎을 꿇게되고 만다. 그래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깨닫고 돌아설 것을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권고하셨지만 끝내 돌아서질 않았다. 결국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에 빠져 하나님 나라의 의미가 무엇이며, 그 나라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망각해 버리고 만다. 따라서 더 이상 이 지상 위에 존재해야 할 명분이 없어지고 마침내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만 것이다.
현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 곧 모든 성도들 역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볼 때, 이 교훈은 우리의 삶의 방향과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은 아담 이후로 부패된 인간성의 최후의 모습은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을 자꾸만 떠나버리고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건설될 것이라는 기대는 어느 구석에서라도 이루어 질 수 없다. 온전히 하나님께 의뢰하고 인도되어지는 삶만이 의미가 있을 따름이다.
북 왕국(이스라엘)이 멸망한 때 남 왕국(유다)의 통치자는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 왕이었다(왕하 18:1-2). 아하스 왕은 다윗의 뒤를 따라 선정을 행하지 않고 이스라엘 왕들과 같이 바알을 섬기며 힌놈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자기 아들을 불사르는 인신제사를 서슴치 않을 정도로 우상을 섬겼다(대하 28:1-4). 그뿐 아니라 에돔이 침공했을 때 아하스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조공을 드리며 에돔을 물리쳐 달라고 원군을 청했다. 그러나 오히려 디글랏 빌레셀은 에돔보다는 유다를 괴롭혔다. 아하스는 성전과 왕궁과 방백들의 집에서 재물을 취하여 디글랏 빌레셀에게 주었으나 별 효험이 없었다.
아하스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 더 범죄하여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며 도와 달라고 했다. 더 나아가 아하스는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마다 단을 쌓고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죽고 만다(대하24:16-27).
그 뒤를 이어 히스기야가 유다의 왕으로 등극되었다. 당시 선지자로서는 유명한 이사야와 미가 선지자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아하스 시대를 가리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 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사 1:2-6).>
이처럼 횡포한 시대에 히스기야가 왕이 되자 그는 즉시 산당과 아세라 목상을 부수었다. 그리고 모든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을 의지하였는데 성경은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왕하 17:5-7).>고 기록하고 있다. 히스기야는 즉시 앗수르의 세력을 타파하고 나아가 블레셋까지도 타파함으로써 정치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안정과 번영을 가져왔다.
이러한 상황에 북 이스라엘왕국이 앗수르에 의해 완전히 멸망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북 이스라엘왕국을 멸망시키신 것은 이 지상의 나라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으며 하나님을 제일로 여기지 않는다면 더 이상 존속할 수 없음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유다의 경우 역시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일지라도 하나님만 바라며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에 따라 살아야만 한다.
바로 이 즈음에 앗수르는 히스기야를 침공하고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거역하고 앗수르의 통치를 받으라고 위협을 했다. 히스기야는 이 소리를 듣고 굵은 베옷을 입으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에게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능욕하는 말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한 영을 저의 속에 두어 저로 풍문을 듣고 그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 본국에서 저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왕하 19:6-7).>고 말한다. 그리고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진에 이르러 십팔만오천을 침으로 아침에 일어나 보니 송장으로 변해 있었다(왕하 19:35). 그리고 앗수르 왕 산헤립은 본국에서 칼에 맞아 죽고 만다.
이 사건이 시사해 주는 것은 어느 위태로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친히 인도하시며 그 나라를 지켜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죽고 그의 아들 므낫세가 왕이 되자 유다왕국은 급격히 변모되고 말았다. 그러자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 <내가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보던 추로 예루살렘에 베풀고 또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과 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 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를 버려 그 대적의 손에 붙인즉 저희가 모든 대적에게 노략과 겁탈이 되리니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 열조 때부터 오늘까지 나의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노를 격발하였음이라(21:13-15).>고 하시면서 유다 역시 이스라엘처럼 멸망시키시겠다고 하신다.
므낫세가 죽고 요아스가 왕이 되어 모든 산당을 부수고 바알과 아세라를 찍어 불에 태워 종교개혁운동을 일으킴으로 잠시 유다는 종교부흥이 일어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지나가고 그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자 그는 그 동안의 모든 왕들보다도 악하게 우상숭배를 행하였다. 그 결과 애굽 왕에 의해 구금되고(왕하 23:31-33), 그 동생 여호야김이 왕으로 세움을 받았다. 그러나 그 역시 하나님 앞에서 범죄를 행하였고, B.C. 603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포로로 잡아 가버렸다(대하 36:5-8). 그리고 그 아들 여호야긴이 잠시 유다의 왕으로 세움을 입었으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또 다시 포로로 잡혀가고 만다(왕하 24:8-13). 그리고 시드기야가 마지막 왕으로 세움을 받는다(왕하 24:17).
이처럼 유다의 운명이 극한 상황으로 치달아 내려갈 때는 왕으로 세움을 받는 일까지도 하나님에 의하지 않고 이방인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이것은 곧 이미 하나님께서 므낫세에게 경고하신 심판의 말씀이 이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시드기야 역시 바벨론을 거역하면 멸망할 것이므로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충고를 무시하고 마침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만다. 이때가 B.C. 586년으로서 다윗에 의해 세워진지 약 520년만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그 동안 하나님은 이 나라를 세우셔서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성취하시고자 하셨다.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다윗 왕국을 세우실 것을 말씀하셨고, 마침내 하나님의 율법으로 다스려지는 의로운 나라를 건설했으나 인간들은 스스로 그 율법을 파기하고 하나님을 떠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 결과 지상에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의 한 모형인 유다가 마침내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유다의 말기에 이르러서 하나님은 나훔, 스바냐, 하박국, 예레미야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하나님께서 결코 그의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회복하실 것을 예언해 주셨다. 그리고 그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의 백성들을 권념해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 그 증표가 되는 사건이 열왕기하 25:27-30절에 기록되어 있다.
곧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에서 자유의 몸이 되고 왕의 상에서 음식을 먹을 만큼 지위가 회복되었다는 점이다. 유다의 왕은 단순히 한 개인의 위치로만 성경에서 언급하질 않는다. 그는 전 국가를 언제나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야긴이 자유로운 위치로 회복이 되었다는 것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들도 자유로운 지위를 회복하게 되었음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곳에서 70년간의 안식기를 갖게 하신 후 마침내 그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도록 하셨다(스 1:1-4). 그리고 예루살렘에 새로이 성전을 건축하도록 하셨다. 성전이 새롭게 건축되었다는 것은 놀랍고 깊은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있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왜냐하면 성전은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기약한 기간이 지난 후 하나님이 다시 약속의 자녀들의 왕이 되어주셨다. 그리고 그 의로운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 친히 임재하신 것이다. 그리고 지상왕국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마침내 건설하신다. 우리는 모두 이 일을 소망하는 백성들이다.
참고. 남북조 39열왕 개관
왕위 왕명 국가 왕조 관련성구
-북왕국 이스라엘
1 여로보암 이스라엘 여로보암 왕상11:26-14:20,대하11:13-17
2 나답 이스라엘 여로보암 왕상14:20,15:25-31
3 바아사 이스라엘 바아사 왕상15:16-16:7,대하16:1-6
4 엘라 이스라엘 바아사 왕상16:8-14
5 시므리 이스라엘 시므리 왕상16:8-20
6 오므리 이스라엘 오므리 왕상16:15-28
7 아합 이스라엘 오므리 왕상16:29-22:40,대하18:1-34
8 아하시야 이스라엘 오므리 왕상22:51-53,왕하1:1-18
9 여호람 이스라엘 오므리 왕하1:17,3:1-9:37
10 예후 이스라엘 예후 왕상19:16,17 왕하9:1-10:36
11 여호하스 이스라엘 예후 왕하 13:1-9,22-23
12 요하스 이스라엘 예후 왕하13:10-14:16
13 여로보암 이스라엘 예후 왕하14:23-29 암7:7-13
14 스가랴 이스라엘 예후 왕하15:8-12
15 살룸 이스라엘 살룸 왕하15:13-15
16 므나헴 이스라엘 므나헴 왕하15:16-20
17 브가히야 이스라엘 므나헴 왕하15:23-26
18 베가 이스라엘 베가 왕하15:27-31
19 호세아 이스라엘 호세아 왕하17:1-41
-남왕국 유다
1 르호보암 유다 다윗 왕상12:1-24
2 아버야 유다 다윗 왕상14:31-15:8,대하13:1-14:1
3 아사 유다 다윗 왕상15:9-24.대하14:1-16:14
4 여호사밧 유다 다윗 대하17:1-21:1,왕상22:1-50
5 여호람 유다 다윗 왕하8:16-24,대하21:1-20
6 아하시야 유다 다윗 왕하3:25-29,대하22:1-9
7 아달랴 유다 다윗 왕하11:1-20 대하22:10-23:21
8 요아스 유다 다윗 왕하11:-12:21대하22:10-24:27
9 아마샤 유다 다윗 왕하14:1-22 대하25:1-28
10 웃시야 유다 다윗 왕하15:1-7,대하26:1-23
11 요담 유다 다윗 왕하15:32-38 대하27:1-9
12 아하스 유다 다윗 왕하16:1-20 대하28:1-27
13 히스기야 유다 다윗 왕하18:1-20:21대하29:1-32:33
14 므낫세 유다 다윗 왕하21:1-18,대하33:1-20
15 아몬 유다 다윗 왕하21:19-26,대하33:21-25
16 요시야 유다 다윗 왕하22:1-23:30대하34:1-35:27
17 여호아스 유다 다윗 왕하23:31-34,대하36:1-5
18 여호야김 유다 다윗 왕하23:34-24:7,대하36:5-8
19 여호야긴 유다 다윗 왕하24:8-16,대하36:9-10
20 시드기야 유다 다윗 왕하24:17-25:30대하36:11-23
북 왕국 이스라엘
왕 위 : 1
왕 명 : 여로보암
국 가 : 이스라엘
왕 조 : 여로보암
말 씀 : 왕상 11:26-14:20, 대하 11:13-17
1.통치기간:BC 약933-911. 22년간
2.가족관계:에브라임 족속인 스레다 사람.
부-느밧(솔로몬의 신복), 모-스루아(과부)
3.이름의뜻:백성이 번성한다
4.선 지 자:실로 사람 아히야, 하나님의 사람(미명), 벧엘의 한 늙은 선지자(미명)
5.왕의내력:
솔로몬 왕에게 쫓겨 애굽으로 피신하였다가 귀환 후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됨(선지자 아히야에 의해 열 지파의 지도자로 지명됨) (왕상11:26-12:24)
우상숭배(벧엘과 단의 두 금송아지), 레위인의 제사장직을 폐하고 산당제사장을 임명함(왕상12:25-33)
하나님의 사람으로부터 멸망의 예언 받음(왕상13:1-10).
왕은 병든 아들 때문에 아내를 선지자 아히야에게 보냈으나, 아내는 선지자로부터 흉한 소식을 받음(왕상14:1-20)
1)특 징:이스라엘의 악의 상징이며 본보기임
2)외 교:유다의 르호보암, 아비야와 전쟁함(왕상15:6,7/대하13장)
3)평 가:"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저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도 범죄케 하였음이니라"(왕상14:16)
4)종 말:여호와의 치심을 받아 죽음(대하13:20)
왕 위 : 2
왕 명 : 나답
국 가 : 이스라엘
왕 조 : 여로보암
말 씀 : 왕상14:20, 15:25-31
1.통치기간:BC 약911-910. 2년간
2.가족관계:여로보암의 아들
3.이름의뜻:"관대하다, 고상하다"
4.선 지 자:기록 없음
5.왕의내력:
유다왕 아사 제2년에 왕이 되어 2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림(15:25)
죄악가운데 행함(15:26)
바아사가 왕을 모반하여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됨(15:27,28)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성취-여로보암의 온 집이 진멸됨(15:29,30)
1)특 징:온 집이 진멸됨
2)외 교:유다왕 아사와 전쟁
3)평 가:"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아비의 길로 행하여 그가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중에 행한지라" (왕상15:26)
4)종 말:유다 왕 아사 3년에 바아사에게 살해됨 (15:28)
왕 위 : 3
왕 명 : 바아사
국 가 : 이스라엘
왕 조 : 바아사
말 씀 : 왕상15:16-16:7, 대하16:1-6
1.통치기간:BC 약910-887. 24년간
2.가족관계:잇사갈 족속 아히야의 아들
3.이름의뜻:"바알은 태양이시다"
4.선 지 자:예후(하나니의 아들)
5.왕의내력:
나답왕을 죽이고 권력잡음
아히야의 예언성취-여로보암의 가족을 진멸함 (왕상15:25-30)
예후의 예언-바아사도 여로보암처럼 범죄 하였으므로 그의 집이 진멸될 것임(왕상16:1-4)
라마건축-아람 왕 벤하닷과 유다 왕 아사의 협공을 받아 라마건축이 중단됨(왕상15:16-22)
1)특 징:하나님의 대리 역할을 하였으나 똑같은 죄에 빠져 심판받음
2)외 교:일생동안 아사와 전쟁함. 아람과 유다의 협공을 받음
3)평 가:"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중에 행하였더라"(왕상15:34)
4)종 말:자연사(왕상16:6)
왕 위 : 4
왕 명 : 엘라
국 가 : 이스라엘
왕 조 : 바아사
말 씀 : 왕상16:8-14
1.통치기간:BC 약887-886. 2년간
2.가족관계:선왕 바아사의 아들
3.이름의뜻:"상수리 나무"
4.선 지 자:기록 없음
5.왕의내력:
유다왕 아사 26년에 디르사에서 왕이 됨 (16:8)
시므리의 모반왕이 궁내 대신 아르사의 집에서 마시고 취할 때에 그 신복 시므리가 모반하여 왕을 살해하고 대신 왕이 됨(16:9-10)
선지자 예후의 예언성취-온 집이 파멸됨(16:11-13)
1)특 징:온 집이 심판 받음
2)평 가:"..저희가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여 그 헛된 것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동하였더라."(8:13)
3)외 교:유다의 아사왕과 분쟁
4)종 말:살해당함(왕상16:10)
왕 위 : 5
왕 명 : 시므리
국 가 : 이스라엘
왕 조 : 시므리
말 씀 : 왕상16:8-20
1.통치기간:BC 약886. 7일간
2.가족관계:시므리는 엘라의 신복인 병거 장관임
3.이름의뜻:"음악의, 노래로 찬양하는"
4.선 지 자:기록 없음
5.왕의내력:
시므리는 유다왕 아사 27년에 디르사에서 엘라를 살해하고 7일 동안 왕이 됨(16:9-10)
이때에 이스라엘의 무리가 진에서 군대장관 오므리로 이스라엘 왕을 삼고 깁브돈에서부터 디르사로 올라와 성을 함락시킴(16:15-18)
시므리 왕은 왕궁에 불을 놓고 그 가운데서 죽음 (16:18,19)
1)특 징:배척당한 찬탈자
2)외 교:블레셋과 전쟁. 유다왕 아사와 분쟁
3)평 가:"이는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범죄함을 인함이라 저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게 한 그 죄중에 행하였더라" (왕상16:19)
4)종 말:왕궁에 불을 놓고 그 가운데서 죽음(왕상16:18)
왕 위 : 6
왕 명 : 오므리
국 가 : 이스라엘
왕 조 : 오므리
말 씀 : 왕상16:15-28
1.통치기간:BC 약886-775. 12년간
2.가족관계:기록 없음
3.이름의뜻:"여호와를 숭배하는 자"
4.선 지 자:기록 없음
5.왕의내력: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이었으나 백성의 신임을 얻어 왕이 됨(16:16)
시므리를 물리쳐 이김(16:17-18)
이스라엘 백성이 둘로 나뉨 -디브니(기남의아들)와 오므리 -오므리가 승리하여 유다왕 아사 31년에 왕이 됨(16:21-23)
사마리아 성 건축(16:24)
이전 모든 왕보다 더욱 악하게 행함(16:25-26)
1)특 징:사마리아 성 건축
2)외 교:유대왕 아사와 분쟁
3)평 가:"오므리가..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그 헛된 것으로 여호와의 노를 격발케 하였더라" (16:25-26)
4)종 말:자연사(왕상18:28)
왕 위 : 7
왕 명 : 아합
국 가 : 이스라엘
왕 조 : 오므리
말 씀 : 왕상16:29-22:40,대하18:1-34
1.통치기간:BC 약875-854. 22년간
2.가족관계:오므리의 아들. 시돈왕의 딸 이세벨과 결혼
3.이름의뜻:"아버지의 형제"
4.선 지 자:엘리야, 미가야
5.왕의내력:
유다왕 아사 38년에 즉위(16:29)
이세벨과 결혼하고 바알숭배함(16:31-33)
엘리야의 가뭄예언(17:1)
갈멜산의 결투와 비(18:17)
아람왕 벤하닷과 싸워 대승함(20:1-43)
나봇의 포도원 사건(21:1-16)
파멸의 심판이 예고됨(21:17-29)
유다와 연합하여 길르앗 라못과 전쟁하나 패하여 즉음(22:1-40)
예후에 의해 70명의 아들이 살해됨(왕하(10:1-11)
1)특 징:악처 이세벨의 간교함
2)외 교:아람과 전쟁. 유다와 동맹하여 길르앗 라못과 전쟁함
3)평 가:"아합이 그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16:30-33)
4)종 말:전사(22:34-38)-엘리야의 예언이 성취됨
왕 위 : 8
왕 명 : 아하시야
국 가 : 이스라엘
왕 조 : 오므리
말 씀 : 왕상22:51-53,왕하1:1-18
1.통치기간:BC 약855-854. 2년간
2.가족관계:아합과 이세벨의 아들(왕상22:40,51)
3.이름의뜻:"여호와가 보살피는 자" "여호와의 소유"
4.선 지 자:엘리야
5.왕의내력:
유다왕 여호사밧 17년에 사마리아에서 왕이 됨.(왕상22:51)
바알숭배(왕상22:52,53)
유다왕 여호사밧과 관계하려 했으나 안됨(왕상22:48,49)
다락난간에서 떨어져 병들자 바알세붑에게 치유를 물어봄(왕하1:2)
병든 아하시야는 엘리야를 부름-세번에 걸친 오십부장과 오십인(왕하1:3-16)
엘리야의 예언대로 죽음(왕하1:17,18)
1)특 징:유다왕 여호사밧과의 관계 실패
2)외 교:모압이 배반하여 일어남(왕하1:1) 유다와 평화
3)평 가:"저가..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바알을 숨겨 숭배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동하기에 그 아비의 온갖 행위같이 하였더라" (왕상22:52-53)
4)종말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어 죽음(왕하1:17)
왕 위 : 9
왕 명 : 여호람
국 가 : 이스라엘
왕 조 : 오므리
말 씀 : 왕하1:17,3:1-9:37
1.통치기간:BC 약854-843. 12년간
2.가족관계:아합의 아들 선왕 아하시야의 동생
3.이름의뜻:"여호와께서 일으키신다" 요람으로도 불리워 짐(8:16,25,28)
4.선 지 자:엘리사
5.왕의내력:
유다왕 여호사밧 18년(유다왕 여로람2년)에 왕이 됨(3:1)
악을 행하였으나 바알의 주상을 제거함(3:2-3)
모압왕의 배반-유다왕 여호사밧과 에돔왕과 동맹하여 전쟁에서 승리함(3:1-27)
엘리사-과부, 수넴여인, 식사기적, 나아만의 문둥병, 도끼기적, 아람군대의 비밀을 아는 엘리사, 아람군대에 포위된 사마리아에 대한 예언, 딸을 돌려 받은 수넴여인, 아람왕이 된 하사엘(4:1-8:15)
유다왕 아하시야와 동맹하여 아람왕 하사엘과 전쟁 - 부상(8:28,29)
엘리야의 예언성취-왕과 그 온집이 파멸됨(9:1-37)
1)특 징:유다왕과 동맹하여 전쟁함. 엘리사의 활약
2)외 교:유다와 동맹. 모압,아람과 전쟁
3)평 가:"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3:2-3)
4)종 말:예후의 활에 맞아 죽음(9:24-26)
왕 위 : 10
왕 명 : 예후
국 가 : 이스라엘
왕 조 : 예후
말 씀 : 왕상19:16,17 왕하9:1-10:36
1.통치기간:BC 약843-816. 28년간
2.가족관계: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3.이름의뜻:"여호와는 그분이시다"
4.선 지 자:엘리사
5.왕의내력: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음(왕상19:16-17,왕하9:1-10)
예후의 혁명-이스라엘왕 요람, 유다왕 아하시야, 이세벨의 죽음(왕하9:11-37)
아합의 집을 진멸함(왕하10:1-12,17)
유다왕 아하시야의 형제42명 몰살시킴(왕하10:12-14)
바알 숭배자들을 진멸함(왕하10:18-28)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함(왕하10:29-31)
1)특 징:이스라엘과 유다를 정화하는 심판의 칼날
2)외 교:유다와 평화. 말기에 아람왕 하사엘의 침입
3)평 가:"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10:29-31)
4)종말 :자연사(왕하10:35)
왕 위 : 11
왕 명 : 여호아하스
국 가 : 이스라엘
왕 조 : 예후
말 씀 : 왕하 13:1-9,22-23
1.통치기간:BC 약820-804. 17년간
2.가족관계:예후의 아들
3.이름의뜻:"여호와가 치신다"
4.선 지 자:엘리사
5.왕의내력:
유다왕 요아스 23년에 사마리아에서 왕이됨(13:1)
왕의 범죄로 인한 여호와의 진노(13:2-3)
아람왕의 학대(13:3-7)
왕의 남은 사적(3:8)
1)특 징:아람왕의 학대를 받고 여호와께 간구함 (13:4)
2)외 교:유다왕 요아스와 평화. 아람과 전쟁
3)평 가:"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여로보암의 죄를 좇고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13:2-3)
4)종말 :자연사(13:9)
왕 위 : 12
왕 명 : 요하스
국 가 : 이스라엘
왕 조 : 예후
말 씀 : 왕하13:10-14:16
1.통치기간:BC 약806-790.16년간
2.가족관계:선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3.이름의뜻:"여호와는 강하시다"
4.선 지 자:엘리사
5.왕의내력:
유다왕 요아스 37년에 사마리아에서 즉위(13:10)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왕임(13:11)
엘리사의 마지막 예언과 죽음(13:14-21)
아람왕 벤하닷을 세번쳐서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함 (13:24,25)
유다왕 아마샤와 대결하여 승리함(14:8-16)
1)특 징:아람,유다와의 전쟁에서 각각 승리함
2)외 교:"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좇아 행하였더라"(13:11)
4)종 말:"요아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이스라엘왕들과 함께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13:13)
왕 위 : 13
왕 명 : 여로보암
국 가 : 이스라엘
왕 조 : 예후
말 씀 : 왕하14:23-29 암7:7-13
1.통치기간:BC 약790-749. 41년간
2.가족관계:선왕 요아스의 아들
3.이름의뜻:"백성이 번성한다"
4.선 지 자:요나(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아모스(호세아)
5.왕의내력:
유다왕 아마샤 15년에 왕이 됨(14:23)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함(14:24)
이스라엘 지경 회복 :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14:25-28)
선지자 아모스의 책망을 받음(암7:7-13)
1)특 징:이스라엘 지경 회복
2)외 교:이스라엘과 평화
3)평 가:"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14:24)
4)종 말:자연사(14:29)
왕 위 : 14
왕 명 : 스가랴
국 가 : 이스라엘
왕 조 : 예후
말 씀 : 왕하15:8-12
1.통치기간:BC 약748. 6개월
2.가족관계:여로보암II의 아들
3.이름의뜻:"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
4.선 지 자:기록 없음
5.왕의내력:
유다왕 아사랴 38년에 즉위(15:8)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함(15:9)
모반-살룸이 백성 앞에서 그를 쳐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됨(15:10)
하나님 말씀이 성취됨(15:11-12)
1)특 징:예후 왕조의 마지막 왕
2)외 교:이스라엘과 평화
3)평 가:"그 열조의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15:9)
4)종말 :백성 앞에서 살해됨(15:10)
왕 위 : 15
왕 명 : 살룸
국 가 : 이스라엘
왕 조 : 살룸
말 씀 : 왕하15:13-15
1.통치기간:BC 약748. 1개월
2.가족관계:야베스의 아들
3.이름의뜻:"보상"
4.선 지 자:호세아
5.왕의내력:
선왕 스가랴를 모반하여 죽이고 대신 왕이 된자(15:10)
유다 웃시야왕 39년에 왕이 됨(15:13)
모반:므나헴이 디르사에서부터 사마리아로 올라와 살룸을 쳐죽임(15:14-16)
1)특 징:선왕을 모반 살해하여 왕이 되었다가 후에 모반되고 살해당함
2)외 교:이스라엘과 평화
3)평 가:특별한 기록은 없으나 선왕을 모반 살해한 자임
4)종 말:므나헴에게 살해됨(15:14)
왕 위 : 16
왕 명 : 므나헴
국 가 : 이스라엘
왕 조 : 므나헴
말 씀 : 왕하15:16-20
1.통치기간:BC 약748-738. 10년간
2.가족관계:가디의 아들
3.이름의뜻:"안위자, 위로자"
4.선 지 자:호세아
5.왕의내력:
유다왕 웃시야 39년에 왕이 됨(15:17)
선왕살룸을 사마리아에서 죽이고 왕이 됨(15:14,16)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아니함(15:18)
앗수르 왕 불의 위협-은 일천 달란트 바침(15:19,20)
1)특 징:앗수르의 이스라엘 공략이 시작됨
2)외 교:이스라엘과 평화, 앗수르의 위협
3)평 가:"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아니하였더라"(15:18)
4)종 말:자연사(15:22)
왕 위 : 17
왕 명 : 브가히야
국 가 : 이스라엘
왕 조 : 므나헴
말 씀 : 왕하15:23-26
1.통치기간:BC 약738-736. 2년간
2.가족관계:선왕 므나헴의 아들
3.이름의뜻:"여호와께서 감찰하신다"
4.선 지 자:호세아
5.왕의내력:
유다왕 웃시야 50년에 사마리아에서 왕이 됨(15:23)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함(15:24)
반역-베가가 사마리아 왕궁 호위소에서 왕을 살해함(15:25)
1)특 징:여로보암의 죄 가운데 행함
2)외 교:이스라엘과 평화
3)평 가:"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15:24)
4)종 말:베가의 반역으로 살해됨(15:25)
왕 위 : 18
왕 명 : 베가
국 가 : 이스라엘
왕 조 : 베가
말 씀 : 왕하15:27-31
1.통치기간:BC 약748-730. 20년간
2.가족관계:르말랴의 아들로 이스라엘의 장관임
3.이름의뜻:"눈을 뜸"
4.선 지 자:호세아
5.왕의내력:
유다왕 웃시야 52년에 왕이 됨(15:27)
베가는 아람왕 르신과 동맹을 맺어 유다를 침공하였으나, 유다는 앗수르의 도움으로 물리침(왕하15:5-9, 사7:1-9)
앗수르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정복당함-1차 포로(15:29)
호세아가 반역하여 왕을 살해함(15:30)
1)특 징:앗수르와의 전쟁에서 1차 패배함
2)외 교:아람과 동맹하여 유다를 침공. 앗수르에게 침략 당함
3)평 가:"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15:28)
4)종 말:호세아에게 살해당함(15:30)
왕 위 : 19
왕 명 : 호세아
국 가 : 이스라엘
왕 조 : 호세아
말 씀 : 왕하17:1-41
1.통치기간:BC 약730-721. 9년간
2.가족관계:엘라의 아들
3.이름의뜻:"구원자"
4.선 지 자:기록 없음
5.왕의내력:
유다왕 아하스 12년에 왕이 됨(17:1)
선왕 베가를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15:30)
앗수르 왕 살만에셀의 침공과 이스라엘의 멸망-호세아 9년에 사마리아를 빼앗기고 백성들은 앗수르의 여러 방면으로 잡혀감(17:4-6)
멸망의 원인들(17:7-23)
타민족들이 사마리아에 거주함(17:24-41)
1)특 징: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2)외 교:앗수르와의 2차 전쟁
3)평 가:"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전 이스라엘 여러 왕들과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더라" (17:2)
4)종 말:옥에 가둠(17:4)
남 왕국 유다
왕 위 : 1
왕 명 : 르호보암
국 가 : 유다
왕 조 : 다윗
말 씀 : 왕상12:1-24
1.통치기간:BC 약933-916. 17년간
2.가족관계:솔로몬과 암몬여자 나아마 사이의 아들
아내18명, 첩60명, 아들18명, 딸60명.
3.이름의뜻:"백성이 더해지다"
4.선 지 자:하나님의 사람 스마야
5.왕의내력:
41세에 세겜에서 왕위오름
노인들의 현명한 진언인 개혁 건의안을 무시하므로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유다,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열 지파가 반역함 (왕상12:1-24)
일시적번영-군비강화, 예배강화 3년간(대하11:5-23)
우상숭배 - 산당, 우상, 아세라목상, 남색, 가증한 일 (왕상14:21-24)
1)특 징:다윗 왕조에서 열 지파가 떨어져 나감.
2)외 교: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 전쟁(왕상14:30)
애굽의 침략-성전과 왕궁을 약탈함(왕상14:25-28, 대하12:1-12)
3)평 가:"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열조의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하여 그 범한 죄로 여호와의 노를 격발(왕상14:22-24)
4)종 말:자연사(왕상14:31)
왕 위 : 2
왕 명 : 아버야
국 가 : 유다
왕 조 : 다윗
말 씀 : 왕상14:31-15:8,대하13:1-14:1
1.통치기간:BC 약915-913.3년간
2.가족관계:부-선왕 르호보암 모-마아가(압살롬의 딸)
아내14명, 아들 22명, 딸16명
3.이름의뜻:아비야"나의 아버지는 여호와이시다"
아비얌"바다의 아버지"
4.선 지 자:기록없음
5.왕의내력:
이스라엘왕 여로보암 18년에 왕이 됨 (왕상15:1)
아비의 죄를 좇음(왕상 15:3,4)
이스라엘 여로보암과 전쟁(왕상15:6,7)
왕의 사적과 행한 일이 역대지략에 남아 있음.
1)특 징: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함
2)외 교:여로보암과 전쟁하여 이스라엘 군 50만 죽임
3)평 가:"아비얌이 그부친의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왕상15:3)
4)종 말:자연사(왕상15:8)
왕 위 : 3
왕 명 : 아사
국 가 : 유다
왕 조 : 다윗
말 씀 : 왕상15:9-24.대하14:1-16:14
1.통치기간:BC 약912-872 41년간
2.가족관계:부친-아비얌.모친-마아가(압살롬의 딸)
3.이름의뜻:"치료"
4.선 지 자:아사랴(오뎃의 아들) 하나니(예후의 부친)
5.왕의내력:
여로보암 20년에 즉위하여 10년을 평안히 다스림(대하14:1)
우상과 종교적 부도덕 배제함(대하14:2-5)
견고한 성읍을 건축함,구스의 100만 대군을 격퇴시킴(대하14:9-15)
국가적 신앙부흥을 일으킴(대하15:1-15)
태후의 위를 폐함(왕상15:13)
이스라엘왕을 치도록 아람왕에게 뇌물을 줌(대하16:1-6)
선견자 하나니로부터 책망받음(대하16:7-10)
병들었을 때 하나님보다 의원을 구함(대하16:12)
1)특 징:여호와에 대한 열심있는 예배자
2)평 가:아사가 그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그 열조의 지은 모든 우상을 없이하고(왕상15:11-12)
3)외 교:구스의 백만 대군을 격퇴함, 이스라엘의 바아사아 분쟁함. 이외는 대체로 평화로움
4)종 말:자연사(대하16:13,14)
왕 위 : 4
왕 명 : 여호사밧
국 가 : 유다
왕 조 : 다윗
말 씀 : 대하17:1-21:1,왕상22:1-50
1.통치기간:BC 약874-850.25년간
2.가족관계:부-아사왕.모-아수바(실히의 딸)
3.이름의뜻:"여호와께서 판단하신다"
4.선 지 자:예후(하나니의 아들)엘리에셀(마레사 사람)
5.왕의내력:
이스라엘왕 아합4년에 35세 나이로 왕이됨 (왕상22:41)
국방강화(17:1-2), 신앙대신(17:3-6), 선생을 세워 백성을 가르침(대하17:7-9)
나라의 부강(대하17:10-19)
이스라엘의 아합과 동맹(대하18:1-34,왕상22:1-40)
선견자 예후에게 책망 받음(대하19:1-3)
각 성읍에 재판관 세움(대하19:4-11)
하나님께 속한 전쟁-모압, 암몬, 세일산 거민 연합침략(20:1-30)
앨리에셀의 예언-아들들에게 선물을 줌(대하21:2,3)
1)특 징:신앙을 쇄신함
2)외 교:이스라엘과 동맹 길르앗라못,모압과전쟁
3)평 가: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20:32,33)
4)종 말:자연사(21:1)
왕 위 : 5
왕 명 : 여호람
국 가 : 유다
왕 조 : 다윗
말 씀 : 왕하8:16-24,대하21:1-20
1.통치기간:BC 약850-843.8년간
2.가족관계:선왕 여호사밧의 아들
3.이름의뜻:여호와께서 일으키신다(요람)
4.선 지 자:엘리야
5.왕의내력:
이스라엘왕 여호람 5년에 선왕 여호사밧이 위에 있을때에 32세로 즉위함(왕하8:16,17)
이세벨의 딸 아달랴와 결혼-악을 행함 (대하21:6-7)
6형제와 방백들을 살해함(대하21:2-4:13)
에돔과 립나의 배반(21:8-10)
엘리야가 왕의 비참한 죽음을 예고함(21:12-15)
블레셋인과 아라비아인들의 침략(대하21:16-17)
여호와께서 치심으로 죽음(대하21:18-20)
1)특 징:비참한 죽음
2)외 교:이스라에가 평화, 에돔과 집나의 배반 블레셋인과 아라비안인들의 침략
3)평 가:"저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대하21:6)
4)종 말:여호와의 징계로 창자에 중풍이 걸려죽음 (대하18-20)
왕 위 : 6
왕 명 : 아하시야
국 가 : 유다
왕 조 : 다윗
말 씀 : 왕하3:25-29,대하22:1-9
1.통치기간:BC 약843. 1년간
2.가족관계:선왕 여호람의 막내아들, 모-아달랴(오므리왕의 손녀)
3.이름의뜻:"여호와가 보살피는 자, 여호와의 소유"
여호아하스(대하21:17), 아사랴(대하22:6)라고도 불리움
4.선 지 자:기록 없음
5.왕의내력:
이스라엘 왕 여호람12년에 22세 나이로 왕이됨(왕하8:25-26)
예루살렘 거민에 의해 왕으로 옹립됨(대하22:1,2)
모친으로부터 악을 배워 아합의 악한 길을 좇음(대하22:2-4)
아람을 대항하기 위해 요람과 연합함(대하22:5)
부상한 이스라엘 왕 요람을 문병 갔다가 예후(여호사밧의 아들)에게 살해됨(대하22:6-9)
1)특 징:이스라엘 왕 요람과 연합
2)외 교:이스라엘 왕 요람과 연합하여 아람을대항함
3)평 가:"..저가 패망케하는 아합의 집 교도를 좇아 여호와 보시기에 아합의 집같이 악을 행하였더라"(대하22:3,4)
4)종 말:문병갔다가 살해됨
왕 위 : 7
왕 명 : 아달랴
국 가 : 유다
왕 조 : 다윗
말 씀 : 왕하11:1-20 대하22:10-23:21
1.통치기간:BC841-835. 6년간
2.가족관계:아합과 이세벨의 딸, 유다왕 여호람의 미망인이며 아하시야 왕의 어머니
3.이름의뜻:"여호와는 위대하시다"
4.선 지 자:기록 없음
5.왕의내력:
왕권쟁취-요아스외의 모든 왕자들이 살해당함(대하22:10-12)
혁명-제사장 여호야다의 주도하에 요아스가 즉위하고 다윗 혈통의 계승이 유지됨(대하23:1-11)
아달랴 여왕은 왕궁에서 살해됨(대하23:12-15,왕하11:20)
언약을 세우고 여호와의 백성이 됨-바알 우상훼파 바알 선지자 죽임(대하13:16-18)
왕의 좌정(대하23:19-21)
1)특 징:왕위 찬탈자(대하22:10-12)
2)외 교:이스라엘왕 예후와 평화
3)평 가:우상숭배(대하23:17), 악한 여인(대하24:17)
4)종 말:제사장들의 궐기로 왕궁에서 칼에 맞아 죽음(왕하11:13-16,20)
왕 위 : 8
왕 명 : 요아스
국 가 : 유다
왕 조 : 다윗
말 씀 : 왕하11:-12:21대하22:10-24:27
1.통치기간:BC 약835-796. 40년간
2.가족관계:선왕 아달랴의 손자이며, 아하시야왕의 아들 모친-시비아(브엘세바 사람)
3.이름의뜻:"여호와는 주신다"
4.선 지 자:스가랴(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5.왕의내력:
고모 여호세바가 요아스를 죽음에서 구출하여 양육함(대하22:10-12)
제사장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기름부음(대하23:11)
이스라엘왕 예후7년 예루살렘에서 7세에 왕이됨(대하24:1,왕하12:1)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아 여호와 앞에 정직히 행함(대하24:2,3 왕하12:2,3)
성전 보수사업 적극추진(대하24:4-14)
여호야다 사후의 우상숭배, 스가랴의 책망과 죽음(대하24:17-22)
여호와의 징벌-아람군대의 침략, 모반(대하24:23-26)
1)특 징:성전을 잘 보수하여 이전모양대로 견고케함
2)외 교:이스라엘과 평화, 아람과 전쟁
3)평 가:"..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고로(왕하12:2,3 대하24:17-21)
4)종 말:"요아스가 크게 상하매 적군이 버리고간 후 ..다윗성에 장사하였으나..(대하24:25)
왕 위 : 9
왕 명 : 아마샤
국 가 : 유다
왕 조 : 다윗
말 씀 : 왕하14:1-22 대하25:1-28
1.통치기간:BC 약803-775. 29년간
2.가족관계:부-선왕 요아스, 모-여호앗단(예루살렘 사람)
3.이름의뜻:"여호와께서 강하게 하신다"
4.선 지 자:하나님의 사람(불명), 선지자(불명)
5.왕의내력:
이스라엘왕 요아스2년에 25세의 나이로 왕이 됨(대하25:1 왕하14:1)
부왕의 살해자를 죽임(대하25:3,4 신24:16)
에돔과의 대전쟁(대하25:5-16)-승리
이스라엘왕 요아스에게 도전(대하25:17-24)-패배
모반(대하25:27-28)
1)특 징:전쟁을 좌우하시는 하나님(대하25:8)
2)외 교:에돔,이스라엘과 전쟁
3)평 가:"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하였으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결정.." (25:2,16)
4)종 말:"무지가 저를 모반한 고로 저가 라기소로 도망하였더니... 저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대하25:27,28 왕하14:19,20)
왕 위 : 10
왕 명 : 웃시야
국 가 : 유다
왕 조 : 다윗
말 씀 : 왕하15:1-7,대하26:1-23
1.통치기간:BC 약787-735. 52년간
2.가족관계:부-선왕 아마샤, 모-여골리아(예루살렘사람)
3.이름의뜻:"여호와의 능력"
4.선 지 자:스가랴, 이사야 (요엘, 호세아)
5.왕의내력:
이스라엘왕 여로보암II세 27년에 16세의 나이로 왕이 됨
열왕기에서는 아사랴라고 불리워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제하지 아니함(대하26:4,5 왕하15:3,4)
웃시야의 강성함(대하26:6-15)
말년..문둥병자가 됨(대하26:16-23)
기타..지진발생(암1:1),왕이 죽던 해에 일어난 이사야의 체험(사6:1)
1)특 징:하나님의 기이한 도움을 얻어 강성하여짐
2)외 교:이스라엘과 평화
3)평 가:"..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은.. 저가 강성하여지매 교만하고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 범죄하되.."(대하26:4,5,16왕하15:3,4)
4)종 말:"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었고"(대하26:21-23)
왕 위 : 11
왕 명 : 요담
국 가 : 유다
왕 조 : 다윗
말 씀 : 왕하15:32-38 대하27:1-9
1.통치기간:BC 약749-743. 16년간
2.가족관계:부-선왕 웃시야, 모-여루사(사독의 딸)
3.이름의뜻:"여호와는 완전하시다"
4.선 지 자:동시대 사람-이사야(1:1) 호세아(1:1) 미가(1:1)
5.왕의내력:
이스라엘 왕 베가 2년에 25세 나이로 왕이 됨(대하27:1)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을 제하지 않음(대하27:2,6 왕하15:34,35)
성전 윗문과 성읍을 건축함(27:3,4)
암몬과 싸워 이김(27:5-9)
여호와께서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왕 베가를 보내어 유다를 치게 하심(왕하15:37)
1)특 징:여호와 앞에서 정도를 걸음
2)외 교:전쟁-암몬, 아람, 이스라엘
3)평 가:"요담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요담이 여호와 앞에서 정도를 행하였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대하27:2,6 왕하15:34,35)
4)종 말:자연사(대하27:9 왕하15:38)
왕 위 : 12
왕 명 : 아하스
국 가 : 유다
왕 조 : 다윗
말 씀 : 왕하16:1-20 대하28:1-27
1.통치기간:BC 약741-726. 16년간
2.가족관계:선왕 요담의 아들
3.이름의뜻:"소유자, 여호와는 사로잡으신다"
4.선 지 자:미가, 호세아, 이사야, 오닷(이스라엘)
5.왕의내력:
이스라엘왕 베가 17년에 20세의 나이로 왕이 됨(대하28:1 왕하16:1,2)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함과 그 심판(대하28:22-26)
아람, 이스라엘의 침략과 살육 : 에돔, 블레셋의 침공 : 유다를 도우러 온 앗수르가 오히려 공격함
곤고한 아하스왕이 더욱 범죄하므로 여호와의 노를 격발케 함(대하28:22-26)
*참고..아람과 이스라엘의 침략
다메색의 단(왕하16:5-18)
1)특 징:범죄와 여호와의 심판
2)외 교:이스라엘, 아람과 전쟁. 앗수르와 동맹
3)평 가:"..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여 바알의 우상들을 부어만들고..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므로.."(대하28:1-4,19)
4)종말 :자연사(대하28:27)
왕 위 : 13
왕 명 : 히스기야
국 가 : 유다
왕 조 : 다윗
말 씀 : 왕하18:1-20:21대하29:1-32:33
1.통치기간:BC 약726-697 29년간
2.가족관계:부-선왕 아하스, 모-아비야(스가랴의 딸)
3.이름의뜻:"여호와는 강하게 하심"
4.선 지 자:(미가, 이사야, 호세아)
5.왕의내력:
이스라엘 왕 호세아 3년에 25세 나이로 왕이 됨(대하29:1,왕하18:1,2)
왕은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의 계명을 지킴으로 형통함(왕하18:3-8)
성전을 중심으로 한 개혁-성전 성결, 제사, 유월절 거행, 우상 파괴, 종교 의식(대하19:3-31:21)
앗수르왕 산헤립의 침입과 패퇴-산헤립, 랍사게, 히스기야, 이사야의 언급(대하321-23,왕하18:9-19:37)
히스기야의 병과회복(대하32:24-26,왕하20:12-19)
히스기야의 실수(대하32:27-31,왕하20:12-19)
죽음(대하32:32,33)
1)특 징:대대적인 종교 개혁자
2)외 교:블레셋, 앗스르와의 전쟁에서 각각 승리함
3)평 가:"히스기아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왕하18:3-8)
4)종 말:자연사(대하32:33)
왕 위 : 14
왕 명 : 므낫세
국 가 : 유다
왕 조 : 다윗
말 씀 : 왕하21:1-18,대하33:1-20
1.통치기간:BC 약697-642. 55년간
2.가족관계:부-선왕 히스기야, 모-헵시바더
3.이름의뜻:"잊게하는, 잊어버림"
4.선 지 자:기록없음
5.왕의내력:
12살의 나이로 왕이 됨(대하33:1)
가증스럽고 악독한 일 행함(대하33:1-9,왕하21:1-16)
심판과 회개-앗수르 침공시 포로가 됨. 회개하여 왕위에 다시 오름(대하33:12,13)
우상과 단들을 훼파함(대하33:14-17)
1)특 징:악독한 왕
2)외 교:앗수르의 침략을 받음
3)평 가:"므낫세가 이 가증항 일과 가을 행함이 그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왕하21:11)
4)종 말:자연사(33:20)
왕 위 : 15
왕 명 : 아몬
국 가 : 유다
왕 조 : 다윗
말 씀 : 왕하21:19-26,대하33:21-25
1.통치기간:BC 약641-640. 2년간
2.가족관계:부-선왕 므낫세, 모-모슬레벳(욧바하루스딸)
3.이름의뜻:"공교한, 노동자공인"
4.선 지 자:기록 없음
5.왕의내력:
22세의 나이로 왕이 됨(왕하21:18,19)
악한 길로 행하고 우상을 섬김(왕하21:21,22)
신복들의 반역으로 죽음(왕하21:23,24)
국민이 반역자들을 죽이고 그 아들 요시야를 왕으로 세움(왕하21:24)
1)특 징:부친을 따라 악한 길로 행함
2)외 교:기록 없음
3)"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부친이 행한 모든 길로 행하여 그 부친이 섬기던 우상을 섬겨 경배하고" (왕하21:20-22)
4)종 말:신복들에게 공중에서 살해당함(왕하21:23)
왕 위 : 16
왕 명 : 요시야
국 가 : 유다
왕 조 : 다윗
말 씀 : 왕하22:1-23:30대하34:1-35:27
1.통치기간:BC 약639-608. 31년간
2.가족관계:부-선왕 아몬, 모 -여디다(보스갓 아다야의의 아들),
네아들-요하난, 여호야김, 시드기야, 살룸
3.이름의뜻:여호와가 지지한다
4.선 지 자:훌다(여선지), 예레미야, 스바냐
5.왕의내력:
8세에 왕이 됨(왕하22:1)
탄생전에 이름이 에언되어 있음(왕상13:1,2)
성전을 중심으로 한 개혁과 율법책 발견(대하34:3-21)
훌다의 예언(대하34:22-28)
왕과 백성이 여호와께 언약함(대하34:29-33)
모든 우상을 제하고 유월절을 지키며 모든 율법을 준행함(왕하 23:4-25,대하35:1-19)
애굽왕과의 전투에서 전사함(대하35:20-25)
1)특 징:성전청결과 율법책 발견
2)외 교:갈그미스를 치러 올라가는 애굽과 전쟁
3)평 가:"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대하34:2)
4)종 말:전사(대하35:20-25)
왕 위 : 17
왕 명 : 여호아스
국 가 : 유다
왕 조 : 다윗
말 씀 : 왕하23:31-34,대하36:1-5
1.통치기간:BC 약608. 3개월간
2.가족관계:부-선왕 요시야, 모-하무달(립나 예레미야의 딸)
3.이름의뜻:"여호와께서 붙드신다"
4.선 지 자:예레미야
5.왕의내력:
23세에 예루살렘에서 백성이 왕으로 세움(대하36:1-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함(왕하23:32)
"살룸"으로도 불리워짐(대상3:15,렘22:11)
애굽왕 바로느고에게 패하여 포로로 붙잡혀가서 죽음(왕하23:34)
1)특 징:애굽의 포로가 된 왕
2)외 교:애굽과 전쟁
3)평 가:"여호와하스가 그 열조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 (왕하23:32)
4)종 말:애굽의 포로가 되어 애굽에서 죽음(왕하23:34)
왕 위 : 18
왕 명 : 여호야김
국 가 : 유다
왕 조 : 다윗
말 씀 : 왕하23:34-24:7,대하36:5-8
1.통치기간:BC 약608-597. 11년간
2.가족관계:부-유다왕 요시야, 모-스비다(루마 브다야딸)
3.이름의뜻:"여호와가 일으키신다" (엘리야김)
4.선 지 자:예레미야, 하박국
5.왕의내력:
애굽왕 바로느고가 엘리야김(25세)을 왕으로 세움(왕하23:34-36)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음(왕하23:37)
3년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겼으나, 즉위 7년에 배반함(왕하24:1)
므낫세의 죄로 인해 멸망의 심판이 이루어질 것임(왕하24:2-4)
예레미야를 모욕적으로 대우함(렘36:11-32)
왕과 그 자손과 신하들에게 저주가 예언됨(렘36:30)
1)특 징:애굽에 이어 바벨론을 섬기다 배반함
2)외 교:바벨론의 침략
3)평 가:"여호와김이 그 열조의 모든 행한 일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왕하23:37)
4)종 말:포로(대하36:6)-바렐론 침략시 죽어 시체가 예루살렘 문밖에 던져짐(렘36:30,22:19)
왕 위 : 19
왕 명 : 여호야긴
국 가 : 유다
왕 조 : 다윗
말 씀 : 왕하24:8-16,대하36:9-10
1.통치기간:BC 약597. 3개월간
2.가족관계:부-선왕 여호야김, 모-느후스다(엘라단의딸)
3.이름의뜻:"여호와께서 세우신다"
4.선 지 자:예레미야, 에스겔
5.왕의내력:
18세에 예루살렘에서 왕이 됨(왕하24:8)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음(왕하24:9)
예루살렘에서 빈천한 자 외에는 모두 포로로 붙잡혀 감(왕하24:8-16)
성전이 훼파됨(왕하24:13)
바벨론 포로 생활이 후에는 편안해 짐(왕하25:27)
1)특 징:왕과 백성들이 포로로 붙잡혀 감
2)외 교:"바벨론과 전쟁"
3)평 가:"여호야긴이 그 부친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왕하24:9)
4)종 말:바벨론과 전쟁하여 포로로 붙잡혀 감(왕하24:12,25:27)
왕 위 : 20
왕 명 : 시드기야
국 가 : 유다
왕 조 : 다윗
말 씀 : 왕하24:17-25:30대하36:11-23
1.통치기간:BC 약597-586.11년간
2.가족관계:부-유다왕 요시야, 모-하무달(립나 예레미야의 딸)
3.이름의뜻:"여호와는 의로우시다"
4.선 지 자:예레미야
5.왕의내력:
예루살렘에서 바벨론 왕이 맛다니야(21세)를 즉위시킴(왕하24:17)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음(왕하24:19)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을 배반함(왕하24:20)
예루살렘의 멸망(왕하25:1-21)
1)특 징:유다의 마지막 왕
2)외 교:바벨론과 전쟁
3)평 가:"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왕하24:19)
4)종 말:포로가 되어 두 눈이 뽑힘(왕하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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