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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설교
주제: 족보의 의미
성경: 역대상1:1-23
성경에는 여러 곳에 족보가 기록된 것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0장과 역대기의 족보, 그리고 신약성경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족보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구속의 도리를 가르쳐 주는 영적인 책인 동시에 또한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책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속사를 이끌어 오시면서 인물들을 통하여 역사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 사실을 보게됩니다. 그럼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족보의 의미가 무어인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로: 오늘 본문에는 가인의 족보가 보이지 않습니다
인류의 시조가 아담이고 아담의 첫 번째 아들이 가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족보를 보면 가인의 이름이 빠지고 아벨의 후손인 셋으로 족보가 이어진 것을 보게됩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돌로 쳐죽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가인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이 당시뿐만이 아니라 영원토록 화가 되었고 후세에 족보가 기록될 때는 그의 이름이 누락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복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가인은 자신의 힘을 동원해서 동생을 죽였습니다. 자신이 무엇인가 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속사의 족보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형에 의해 아무런 힘도 없이 죽임을 당해야만 했던 아벨의 뒤를 이어 셋이 나오고 셋은 하나님의 축복의 후손으로 역사를 이어간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야 축복의 후손이 되어질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시는 진리입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도록 하자.
둘째로: 노아의 후손이 세상을 다스린 것을 봅니다
노아 당시 하나님의 아들들 곧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자들이 사람의 딸들 곧 불신자들과 결혼하여 육체가 됨으로 하나님의 신이 떠낫다고 했습니다. 음란하고 방탕한 시대에 노아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의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심판이 있어 세상은 흔적 없이 망했습니다. 그러나 의인의 삶을 살았던 노아의 후손은 구원을 받았고 세상을 뒤덮었던 것입니다. 바로 노아의 후손인 셈과 함과 야벳이 세계의 조상이 되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교훈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돌보시며 또 의인을 통해서 세상을 이끌어 가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의인의 삶을 살아야 하겠는데, 의인이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자들이 의인입니다. 오늘 우리는 의인의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으며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을 선도해 나가는 복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사랑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의인의 삶을 살아감으로 축복의 후손으로 살게 하시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게 하시며 부패하고 타락해 가는 이 세상을 선도해 나가는 복된 삶이 되어지는 은혜를 베풀어주옵소서.
주제: 아브라함의 자손들
성경: 역대상 1:24-34
우리는 아브라함 하면 믿음의 조상이라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가장 근본적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들에 대한 족보를 보게됩니다. 대개 족보는 누가 누구를 낳고 라는 말로 끝이 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 와서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낳은 것과 또 그 첩들이 아들을 낳은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34절에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다는 것을 재차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보는 것은 아브라함이 다른 족보보다 두드러지게 자세하게 기록되어졌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기록된 이유는 분명합니다. 역대기를 기록한 기록자는 아브라함을 나타내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아브라함의 자손들의 족보를 통해 역사의 어둠 속에서 아브라함이 빛과 같이 빛난 이유가 무엇이었던 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아브라함은 순종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으로 와서 순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조상 대대로 살던 곳을 버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한 평의 땅도 없는 가나안으로 이주해 왔던 것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은 아내가 죽었을 때 아내를 묻을 땅이 없어서 막벨라 굴을 샀습니다. 또한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서 번제로 바치라고 하실 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 그리고 순종의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첩을 얻어 실수로 낳은 아들 이스마엘까지 기록되고 또 첩 그두라까지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아브라함이 이토록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던 것은 그가 순종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순종의 사람은 이토록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이 되고 혹 실수를 해도 그 실수가 가리워 집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의 족보를 통해 분명하게 가르쳐 주시는 진리는 순종이 너무나도 귀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순종의 사람이 되어질 때 이런 놀라우신 복을 하나님께 받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순종의 사람들이 되어지기를 축원 드립니다.
둘째로: 아브라함이 그리스도와 연관이 되어있기에 역사의 어둠속에서 빛과 같이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서 그리스도의 족보를 쓸 때 제일 먼저 아브라함이 나오고 있습니다. 누누이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은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삶은 소망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아브라함이 중심 인물이 된 것입니다.
한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을 맺고 그리스도와 밀접한 삶을 살 때 그에게 비로소 소망이 있게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없는 곳에는 어두움과 절망과 죽음만 있을 뿐입니다. 아브라함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이 되었기 때문에 어두운 역사 속에서 빛과 같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연관을 맺어 어두움을 다 물리치고 큰 소망을 가지며 또 소망을 나누어주는 삶이 되어지기를 축원 드립니다.
하나님 순종의 사람이 되어지게 하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많이 받아 누리게 하옵소서.
또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연관을 맺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삶이 되어지게 하옵소서. 그렇게 하므로 어두움에 빛을 절망가운데 소망을 주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제: 에서의 실수
성경: 역대상 1:35-54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에서의 자손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이삭의 맏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의 아들 이삭이요 아삭의 맏아들 에서니 에서는 축복의 후손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엄청난 복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서가 받을 복은 동생 야곱이 받았고 그는 하나님이 미움을 받는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에서가 하나님의 미움을 받는 민족의 조상이 되었을 까요?
첫째로: 그는 하나님의 복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아버지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할복을 동생 야곱에게 팔아 넘겼던 것입니다. 즉 그는 장자권을 동생에게 팥죽 한 그릇을 얻어먹고 팔아버렸던 것입니다. 이것은 에서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얼마나 소홀히 여긴 것인가를 보여준 것입니다. 아마도 에서는 자신에게는 먹을 것이 있으니 하나님의 복을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복을 준비하지 않으면 사모하지 않으면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받을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에서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에서에게 믿음이 없는 결과로 하나님의 복이 야곱에게 임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야곱은 나중에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 에서는 들러리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후회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들은 에서와 같은 결과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결정 난 후에는 아무리 후회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복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12절에서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하셨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복을 마음껏 취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에서는 영원한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었습니다.
에서의 후손들은 아말렉이요, 이 아말렉은 하나님의 영원한 대적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미워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초대 왕 사울에게 아말렉을 쳐서 진멸하라 명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에서의 후손이 영원한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었던 것은 하나님의 복을 소홀히 여긴 결과였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복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하나님의 복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모하고 야곱과 같이 간절히 찾는 자들이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할 수만 있으면 입을 크게 벌려 하나님께 우리의 소원을 아뢰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에서의 실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에서는 하나님의 복을 거절했고,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에서의 후손이 영원히 하나님의 대적자들이 되어졌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는 열정을 주옵소서. 야곱과 같이 간절히 찾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소홀히 여기지 않게 하옵소서. 오늘도 준비되어진 그릇에 입을 크게 벌리는 그곳에 넘치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제: 쓰임 받는 유다
성경: 역대상 2:1-8
본문은 야곱의 후손이 족보에 기록되어있는 것으로 그 중에 유다가 중심인 것을 보게됩니다. 야곱의 맏아들은 르우벤입니다. 관례상 맏아들인 르우벤이 중심이 되어야 할텐데 유다가 중심이 되고 유다의 후손에게서 그리스도가 탄생하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왜 유다가 이와 같은 놀라운 복을 받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깨끗한 사람만 쓰시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뜻이 있으셨기에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또 막무가내 부르짖기만 한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유다를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쁘신 뜻대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바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속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기도를 합니다만 우리가 기도하는 것들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기도가 내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도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유다는 축복 받는 사람입니다.
유다가 족보의 중심이 된 것은 야곱의 축복에 있습니다. 창세기49:9-10에서 야곱은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않을 것을 예언했고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 하리라고 축복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의 축복은 위대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어제 새벽시간에 살펴보았듯이 에서는 하나님의 복을 소홀히 하다가 망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종들이 사람보기에는 시시하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을 하나님께서 세우셨고 그들에게 대권을 위임하셨습니다. 마치 만물을 다스리는 치리권을 우리 인간에게 위임하신 것과 같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도 인간인지라 죄악의 시험을 받을 수도 있고 그 시험에 넘어져 조롱 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권속들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은혜가 임하도록 기도해 드려야 합니다.
또 야곱이 유다에게 축복을 한 것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하나님의 종들의 祝福역시 위대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종이면서 아버지인 야곱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기에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놀라우신 복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종들의 축복을 귀하게 여기게 하옵소서.
주제: 왕의 족보
성경: 역대 상2:9-20
이스라엘 벡성들은 족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혈통적 순수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겠지만 하나님께 대한 소속 관념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 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족보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가문의 족보가 아니라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족보로서, 우리의 이름이 거기에 기록되어 있는지의 여부는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여러 족보들 가운데서도 중심이라 할만한 중요한 족보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곧 유다의 족보요, 다윗 왕의 족보며, 메시아의 족보입니다. 그러면 이 족보들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로: 유다 지파 헤스론의 자손들입니다.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가질만한 유다 지파의 족보는 헤스론의 족보요, 그 중에서도 람의 족보입니다. 람은 다윗왕의 조상이며, 따라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그 계보에 속하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가문의 번창과 융성은 자손들의 중함에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위대하고 걸출한 인물들의 배출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가문에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위대한 인물들이 나올 수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둘째로: 가장 모범적인 다윗 왕
이스라엘 전체를 통 털어서 가장 모범적인 왕, 가장 위대한 왕으로 꼽히는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는 가문이나 배경이 특별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 믿음과 성실성을 인정받아 이스라엘과 유다 모든 열왕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모두가 이와 같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믿음과 성실함을 갖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아무 것도 별스런 일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영원하신 만 왕의 왕 메시아의 계보
우리 주님은 바로 이 계보를 통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위대한 사람, 위대한 가문은 주님을 모신 사람, 주님이 쓰시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많은 것을 소유하고 많은 명예와 큰 권력을 가진 사람보다도 주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훨씬 위대합니다. 우리 모두 영적으로 영원하신 만 왕의 왕 메시아의 계보에 속한 자 곧 주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는 백성들과 가정들이 되어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주제: 끊임없는 확장
성경: 역대상 2:21-24
생명이 있는 것은 성장하게 되어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하나님의 사역도 늘 번창하게 되어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증거가 발견되며 그 삶이 발전되게 되어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유다 자손의 번창을 기록한 것으로 교회와 개인과 가정에 큰 소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에서 전개되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확장되어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에는 5천만 명 이상의 기독 신자들이 있고, 또 러시아아에 7천만 명 이상의 기독교 신자들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 세계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의 자녀들은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 증가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요 몇 년 사이 기독교인의 수가 감소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감소란 심각한 신앙적인 문제를 표출하는 것으로 이것은 곧 타락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이 변질될 때는 감소 현상이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교회들이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자꾸만 신본주의가 아닌 인본주의로 흘러 가다보니 참된 기독교 신자들이 줄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확장되는 것이 성경 적인데 줄어든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 생각됩니다. 개인부터 우리 가정부터 그리고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부터 이제는 더 신본주의 신앙을 갖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더 확장되어 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갑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수만 늘어가는 것이 아니라 영토도 확장되어가야 하고 또 확장되어 가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 나라의 영토라고 하는 개념은 일반 영토의 개념과는 다른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간다는 말은 사회 각 분야에서 기독교적 영향력이 증대되는 것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기독교인들의 수가 증대되어도 그 영향력이 심히 미미하다면 이것은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든지 기독교인들은 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끼쳐야만 합니다. 오늘도 우리 개인이 그리고 가정이 더 나아가서 교회들이 이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우리의 책임은 막중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저와 여러분이 그리고 우리의 가정들이 선하게 동참할 수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제: 겸손히 섬기는 자 347, 431, 490
성경: 역대상 2:50-55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하는 가장 합당한 인격적 자세는 겸손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그분께서 주신 것을 아는 사람은 여하한 경우라도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게 될 수가 없습니다. 고린도 전서4장 7절의 말씀을 보니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 것을 봅니다.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가 교만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교만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훌의 자손들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훌은 바로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겸손히 섬기는 자의 본을 모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훌을 통해 몇 가지로 교훈을 얻고자 한다.
첫째로: 훌은 아론과 함께 모세를 도왔던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싸울 때,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아론과 함께 모세의 팔을 들어 올렸고, 모세가 시내산에 40일을 머무는 동안 아론과 함께 모세를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훌에 관한 기록이 성경에 나타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자기를 나타내지 않고 겸손히 섬기는 자의 모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자기를 나타내려고 힘쓰는 사람이 아니라 훌처럼 겸손하게 숨어서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훌과 같은 신앙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 앞에서 섬기는 자가 큰 자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마태복음 20장 26,27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섬김을 받는 자자 섬기는 자보다 큰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섬기는 자가 더 큰 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섬김의 본을 보이셨음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언제든지 봉사의 중요성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섬기는 자리에 서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만 나타내야 합니다
자기를 나타내고 그리스도를 나타내지 않는 사람은 좋은 성도, 좋은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를 감추고 그리스도만 나타내는 사람이 좋은 성도요 그리스도의 좋은 제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말과 같이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만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지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훌과 같이 겸손하고 섬기는 자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또한 그리스도만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만을 나타내는 좋은 제자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제: 다윗의 아들들
성경: 역대 상3:1-9
성경은 사람이 많은 자녀들을 두게 되는 것을 축복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편 127편3절에서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는 자식이 많다는 것은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은 것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다윗의 통치기간에 낳은 자손들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윗의 자손들은 어떤 아들들이었고 또 다윗의 통치는 어땠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다윗의 자손들은 고통을 안겨준 아들들이었습니다.
다윗은 여러 명의 아들들을 두었는데 그들이 모두 아비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다윗으로 하여금 고통을 당하게 하고, 심지어는 그를 심히 곤경에 처하도록 한 아들들도 있었습니다. 암논은 이스라엘 여인 아히노암의 아들로서 근친 상간으로 인해 압살롬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또 압살롬과 아도니야는 각기 다윗 왕을 모반함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또 많은 처첩들을 두었던 다윗은 그들의 소생들로 인해서 적지 않은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아들들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는 것은 결혼의 정통성과 순수성에 관하여 중요한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어떤 경우라도 부정한 결혼을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다윗의 통치 기간을 생각해 봅니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7년 6개월, 예루살렘에서 33년 등 도합 40여 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는데 다윗의 통치는 가장 모범적이고 역대 왕들이 귀감으로 삼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통치 시대 방백들 곧 지방장관들과 제사장들도 모두가 하나님의 마음에 가장 합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일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들도 그렇게 살려고 힘쓰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더욱 더 하나님께 인정을 받도록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기를 축원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을 이어 솔로몬이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제 3대 왕위에 오른 사람은 부정한 방법으로 아내가 된 밧세바에게서 난 솔로몬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일은 인간의 간섭을 불허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보여준 일로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생각으로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일까지도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행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아멘으로 받고 그 뜻을 행해야 할 줄을 맙니다. 그것이 바로 복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주제: 솔로몬의 후대들
성경: 역대상 3:10-24
오늘본문은 다윗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3대왕이었던 솔로몬의 후대들에 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치적에 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는 지혜가 출중한 인물이었고, 하나님의 전을 건축했으며, 전무후무한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치세는 이스라엘 역사가운데서 보기 드문 태평성세였습니다. 세금을 비롯해서 국고로 들어오는 세금이 엄청났고, 은을 돌같이 흔하게 쓸 정도로 국력이 막강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솔로몬의 명성 또한 천하 사방에 자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방여인들을 가까이 한 까닭에 인생의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합당치 못한 "가증스러운 죄악"에 빠져 들어갔던 것입니다. 본문은 바로 이런 솔로몬의 후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로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첫째로: 솔로몬의 후손이 17대에 걸쳐서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왕위 쟁탈전이 극심했음에도 남 유다 왕국은 솔로몬의 후대들로 왕통이 이어졌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영원하신 왕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윗의 왕권은 영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의 후대가 계속해서 왕통을 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행했던 다윗에게 그의 등불이 꺼지지 않을 것을 약속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으로 특별히 당신의 마음에 합한 백성들에게 은혜 위에 은혜를 베푸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백성들이 되어짐으로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더욱 풍성하게 받아 누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은 시드기야 였습니다.
시드기야는 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으로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열왕기하24장 19절에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했습니다. 시드기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했는데 그의 악행이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역대하 36장12절에서16절에 그 악행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여 여호와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아니하였으며, 하나님의 전을 더럽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악을 행했던 시드기야는 결국 예루살렘의 멸망과 함께 두 눈이 뽑힌 가운데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개인이나 나라는 망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스룹바벨은 포로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이 다윗 가의 파멸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까지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셨고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오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때 그들을 이끈 지도자가 바로 다윗 가의 스룹바벨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과 부르심에는 결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택하셨고 솔로몬을 택하셨으며 그 후손을 끝까지 선하게 이끌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선하게 이끄시고 또 우리의 후손들을 끝까지 선하게 이끄시기를 기뻐하시는 줄을 믿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제: 야베스의 기도 212, 218, 482
성경: 역대상 4:1-10
4장의 말씀은 유다 지파의 족보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특별히 주목하여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훌의 후손들 중에 서기관 족속이었던 야베스의 기도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9절에 보니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하여 낳았다 함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기록하고 있는 대로 "야베스"라는 이름은 "수고하여 낳았다"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출생부터 슬픔과 괴로움의 존재입니다. 어머니가 수고하여 낳았던 야베스는 누구보다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통해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야베스의 기도 내용을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로: 야베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10절을 보니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그 백성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그 말씀을 지키시는 언약의 하나님께 기도했음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당신의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약속의 말씀을 지키시는 나의 하나님께 기도함이 중요합니다.
둘째로: 주께서 복에 복을 더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10절을 다시 보니 "원컨데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主는 우주만물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곧 야베스는 우주 만물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더해 달라 기도한 것은 충만한 복 넘치는 복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 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기도 할 때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정에 가족들에게 교회에 주시려 거든 충만하여 넘치도록 주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할 줄 압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6장 38절에서 말씀하시기를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주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런 놀라우신 복을 날마다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세 번째로: 야베스는 나의 지경을 넓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10절 다시 보니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지경은 땅을 말합니다. 곧 야베스는 나에게 많은 땅을 달라고 기도 한 것입니다. 땅이 넓혀진다는 것은 성공을 의미합니다. 성공의 길은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성공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는데 특별히 자녀들의 성공을 위해 기도해야 할 줄 압니다. 자녀들의 앞길을 위해 많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야베스는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야베스의 이 기도는 사람은 악과 근심 속에서 헤어날 수 없는 죄인들로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으면 구원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의 근심도 환난도 없는 평강의 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야베스는 하나님께 이렇게 여러 가지로 구함으로 하나님께서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과 응답은 야베스의 기도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우리 성도님들께도 야베스의 기도응답과 같은 응답이 있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제: 쓰임 받은 사람들
성경: 역대상 4:11-23
사람의 가치는 그가 쓰임을 받되 누구에게 쓰임을 받느냐가 중요하고 또 누구에 의해 쓰임을 받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리 귀한 능력과 지식을 소유했다고 할지라도 쓰임을 받지 못한다거나 또 악한 일에 쓰임이 된다면 그 가치는 떨어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사람의 보기에는 미미할지라도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사람들은 그 능력이나 지식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유다의 아들 중에 레가와 또 그나스의 자손들과 여분네의 아들 가렙의 자손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들 중에는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누가 어떻게 쓰임을 받았습니까?
첫째로: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쓰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 사사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사라고 하면 [왕직, 제사장직, 선지자직]을 겸하여 일한 사람을 말하는데, 이스라엘의 첫 번째 사사가 바로 옷니엘 이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사사들의 위치는 특별한 것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즉 그들 위에 여호와의 신이 임하셨기 때문에 신적인 능력이 부여되었고, 그들은 대적하는 자들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실 때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신적인 능력을 더 강하게 부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할 수 만 있다면 귀하게 쓰임을 받도록 준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어지시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습니다.
갈렙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사람입니다. 바로 그는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두 명의 정탐들을 선택하여 가나안에 보냈던 정탐들 중의 한사람으로 여호수아와 함께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기업을 분배받았던 유일한 1세대였습니다.
갈렙이 어떻게 해서 이런 귀한 복을 받게 되었습니까?
그는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똑 같이 출발했지만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꿈을 가지고 전진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불신하는 가운데 그들의 꿈을 저버렸던 것입니다. 그 결과 갈렙만이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셨던 가나안땅을 들러가는 복을 받았고 또 기업을 분배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무궁무진합니다. 약속을 굳게 믿고 나갈 때 귀하게 쓰임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기업에 들어가는 놀라우신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중시하는 것은 그 사람의 중심입니다.
본문 17,18절에 언급된 사람들은 순수한 이스라엘 형통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계보에 들어간 것을 보게됩니다. 여기 18절의 메렛이 취한 바로의 딸이란 비디아는 분명 애굽여인이며, 바로 왕의 딸입니다. 또 19절의 [가미]는 기생 라합의 생질입니다. 이렇게 볼 때 17,18절에 언급된 사람들은 분명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이스라엘의 계보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중시하시는 것은 혈통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태도임을 가르쳐 줍니다. 아무라도 그분을 믿고 따르기만 한다면 그 이름이 생명 책에 기록됩니다. 우리 중심을 바르게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제: 시므온의 자손들
성경: 역대상 4:24-43
오늘 본문은 시므온의 자손들에 관해서 일부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므온은 레아가 낳은 야곱의 둘째 아들이며, 성품이 잔인하여 요셉을 다른 형제보다 더 미워했었습니다.
그는 또 누이 디나의 치욕을 씻으려고 세겜인을 과도히 학살하고 부친 야곱의 책망과 저주를 받았던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럼 그 후손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자손들이 유다처럼 번성하지 못했습니다
시므온의 자손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는 59,300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는 그 절반도 못되는 22,000명이었습니다. 유다 지파와는 대조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祝福은 번성입니다. 축소나 약화는 결코 하나님의 福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터나 가정이나 교회나 모든 것이 약화되는 것은 결코 축복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맡겨주셨든지 번성하기를 힘쓰고 노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욱 더 번성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로: 시므온의 자손들은 그돌 지경의 아름다운 목장을 빼앗아 차지했습니다.
38-40절에...했습니다.
힘으로 다른 사람의 소유를 강제 점령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가나안 일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땅의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빼앗는 것은 그들의 의무였기 때문에 그 땅을 빼앗는다 해도 죄악시 할 필요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마땅한 일이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차지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옳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혹 우리는 우리의 지경 안에서 아름다운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마귀나 죄악의 세력을 모두 쫓아내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마땅히 해야할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입니다.
마지막으로: 세일 산으로 가서 피하여 남아 있는 아말렉 사람을 치고 거기에도 거했습니다.
42-43절을 보자.
아말렉 사람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길을 막던 자들로서 하나님께서 이미 사울 왕에게 그들을 완전히 진멸하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그 유명한 "순종이 제사보다 났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고 사울은 불순종의 죄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남아 있던 아말렉 사람들을 시므온의 자손들이 치고 거기 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성도들은 단호히 끊어버려야 합니다. 동정하거나 묵과하는 일은 합당치 않은 일로 하나님께서는 그런 신앙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고 또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하나님을 바르게 따르는 삶이 되어지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제: 르우벤 자손들
성경: 역대상5:1-10
사람이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유혹과 괴로운 시련들을 절제와 인내로서 극복해야만 이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피나는 싸움이 없이는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이탈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처럼 부단히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혈투가 없이는 마귀의 유혹에 걸려 넘어지고 말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레아가 낳은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 자손들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럼 르우벤과 그 후손들을 통해 교훈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르우벤이 장자권을 상실했습니다.
르우벤은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맏아들이었음에도 그 서모 빌하와 간통했던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그 명분이 요셉에게로 돌아갔고, 족보에만 르우벤의 이름이 올랐을 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르우벤이 정욕을 절제하고 자기 자리를 지켰다면 그 후손이 번창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함으로 명분을 잃게 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명분은 잃기는 쉬워도 회복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 자리를 잘 지키기 위해서 바른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르우벤 가문에서는 뛰어난 가문이나 사람이 나타나지 못 했습니다
르우벤 자손들은 넓은 영토를 거주지로 차지하고 살았으나 그 지파 가운데서 주목할만한 특별한 인물을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자들에게 자손들의 복을 말씀하셨는데 그분의 약속가운데는 뛰어난 인물,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도 포함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이 잘되고 뛰어난 인물 하나님의 큰 일꾼이 나오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철두철미하게 하나님께 순종하여 우리의 자리를 잘 지키도록 최선의 힘을 기울려야 하겠습니다. 오늘 시간도 우리 자신보다 우리 후손의 형통을 생각하면서 소망가운데 기도하시고 하나님께 더 바른 순종의 삶을 살기 위해 기도하는 복된 시간이 되어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제: 갓의 자손들
성경: 역대상5:11-17
오늘 본문의 말씀은 갓 자손들에 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는 대로 갓 자손의 계보는 몇 사람의 족장들에 관해서만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음을 봅니다. 갓은 야곱의 일곱째 아들로 실바의 소생으로 그들은 요단 동편에서 기업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이 계보는 유다 왕 요담과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때 기록된 것으로 그 당시 갓 자손의 영토가 확장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럼 갓 자손의 계보를 통해 몇 가지로 교훈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갓 자손은 바산 땅에 거하였습니다.
저들이 거주했던 바산 땅은 비옥하여 목축에 알맞은 곳이었습니다. 또 백향목이 우거진 지대였고 중심 곡창지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기업을 주시되, 황폐하여 거할 수 없는 곳들을 주시지 않고 살기 좋은 비옥한 땅을 주십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갓 자손들에게 살기에 참으로 좋은 비옥한 땅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미 우리들은 이처럼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잘 관리하여 풍성한 열매들을 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열매를 내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비옥한 땅도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지 못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나와 가정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잘 활용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갓의 자손들은 용맹한자의 후손이었습니다
갓은 군대의 반격을 받았지만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는 용맹한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49장 19절에 "갓은 군대의 반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갓은 참으로 용맹스런 사람이었습니다.
갓처럼 그 후손들 역시 그랬습니다. 그들은 다 용사요 싸움에 익숙하여 방패와 창을 능히 쓰는 자였습니다. 또 그 얼굴은 사자 같고 빠르기는 산의 사슴과도 같았다고 역대상 12장 8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용맹스러웠던 갓의 후손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으로 이스라엘의 변방을 차지하도록 섭리 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든지 용기 있게 행동해야 할 것을 가르쳐 줍니다. 수많은 대적들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나아간다면 반드시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담대하게 살아감으로 범사에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제: 요단 동편의 연합군 278, 400, 402
성경: 역대 상5:18-22
적은 힘이라도 모으면 강하게 됩니다. 전도서 4장12절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요단 동편에 있는 지파들이 외세의 대처하기 위해 연합군을 결성한 것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과 개인 그리고 가정은 연합의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막강한 힘도 분산되면 아무 쓸모가 없게 되듯이 교회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고 가정들이 나뉘어 다투고 싸우게 된다면 마귀에게 기회를 주게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연합의 필요성을 다시 배우고자 합니다.
첫째로: 요단 동편에 있는 지파들이 연합군을 결성하여 전쟁에 나갔습니다.
요단 동편에는 자리잡은 지파들은 르우벤 자손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전쟁을 위해 연합군을 결성했는데 전쟁에 능숙한 사람들, 즉 전투를 위해 훈련을 발 받은 사람들로 결성했습니다. 훈련이 잘 된 사람이라야 전투에서 제 몫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훈련을 잘 받아야만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어 승리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부단히 훈련에 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받아야 할 훈련은 기도와 말씀과 봉사와 전도의 훈련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런 훈련을 잘 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져서 하나님의 군사로 더 귀하게 사용되어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둘째로: 연합군은 하나님께 의지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저들 연합군은 전쟁에 나가 놀라운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승리는 저들의 능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저들의 승리는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한 승리였던 것입니다.
그들 연합군이 하나님을 의뢰하고 부르짖음으로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들이 이길 수 있는 도움을 주셨던 것입니다. 19,20절에 " 저희가 하갈 사람과 여두르와 나비스와 노답과 싸우는 중에 도우심을 입었으므로 하갈 사람과 그 함께 한 자들이 다 저희 손에 패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싸울 때에 하나님께 의뢰하고 부르짖음을 하나님이 들으셨음이라"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마음에 잘 새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청하는 것은 모든 싸움에서 승리가 보장된 확실한 전략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연함군은 엄청난 전리품을 차지했습니다.
연합군이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은 노예 10만 명, 가축이 30만2천 그리고 그들이 거주하던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우리가 연합하여 기도로 싸우게 된다면 우리들도 엄청난 것을 풍성하게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합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시고 어렵고 힘들 때 더욱 연합하여 기도로 무장하고 나가시므로 풍성한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주제: 요단 동편의 지파들 492, 498.
성경: 역대상 5:23-26
요단 동편에 거한 지파들은 므낫세 반 지파를 비롯하여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였습니다. 지역이 신앙 및 생활에 특별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성전에서 멀어지고, 동일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의 교제로부터 격리된다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한 결과들을 초래하기에 충분합니다. 본문은 요단 동편에 거한 지파들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데 저들은 어제 아침에 살펴보았듯이 연합군을 결성하여 대적을 물리치고 엄청난 전리품을 얻었습니다. 그럼 그들의 그 후의 삶이 어땠는지 우리에게 주시는 진리를 다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그들의 기업은 자신들이 청구하여 얻은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에서의 기업분배는 갈렙을 제외하고는 심지 뽑기에 의해서 행해졌습니다. 그러나 요단동편의 기업은 그곳에 거했던 므낫세 반지파와 르우벤지파 그리고 갓 지파가 모세에게 청구하여 받은 것이었습니다.
저들의 행동은 결코 옳지 않은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업은 자신들이 받고 싶다고 받고 받기 싫다고 받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주든지 어디를 주든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면 감사함으로 받으면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을 위해 무슨 봉사의 일을 맡든지, 무슨 직임을 받게 되든지, 혹은 무슨 은사를 받게 될지라도 스스로 원하는 것을 청구하는 태도는 결코 옳지 않은 것입니다.
또 오늘 교회에서 어떤 직원을 임직하여 세울 때 금품이 오가는 일들이 있음도 봅니다. 어떤 임직자는 얼마를 또는 무엇을 해 놓아야 된다는 단서가 붙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억지나 강요가 있어서는 결코 안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직임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직임은 감사함으로 받아서 신실하게 감당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니까 오늘 교회들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직임을 가볍게 여기고 때로는 그 직임을 인간의 욕심을 위해 악용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은 분명 하나님께서 주실 기업을 자신들이 요구하여 받음으로 옳지 안았습니다.
둘째로: 저들은 하나님께 범죄 했습니다.
저들이 하나님께 범죄 했던 내용은 그 땅 백성의 신들을 간음하듯이 섬긴 것이었습니다. 25절에 "저희가 그 열조의 하나님께 범죄 하여 하나님이 저희 앞에서 멸하신 그 땅 백성의 신들을 간음하듯 섬긴지라"고 했습니다. 즉 저들은 가나안 땅의 우상들을 숭배하는 죄에 빠지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저들이 이런 유혹을 받고 영적인 간음죄를 범했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것은 저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지요.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과의 교제에서 멀어지게 된다면 이렇게 영적인 간음죄를 범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 만 있다면 늘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도록 힘써야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저들을 앗수르 왕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반역에 대한 심판은 즉각적으로 왔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그들을 앗수르 왕의 손에 붙이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역사의 궁극적인 주관자가 되심을 알 수 있으며, 고의적인 반역과 불순종은 이처럼 두려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기억 하 고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는데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제: 하나님의 기업
성경: 역대 상6:1-15
이스라엘 자손들이 약속의 땅에서 기업을 분배받을 때에 여기서 제외된 지파가 하나있었습니다. 바로 그 지파는 레위지파였습니다. 그들은 다른 지파와 같이 기업을 분배받지 못하는 대신에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기업이 되셨습니다. 그들은 매우 특별한 기업을 분배받은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렇게 특별한 기업을 분배받은 레위 지파에 대해 소상히 기록해 주고 있는데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레위 지파는 제사장 직임을 맡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을 만국 중에서 제사장 나라를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대 제사장 아론의 가계 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재하는 귀한 역할을 감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바로 이런 일을 감당해야 할 사람들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베드로 전서 2장 9절의 말씀을 보니 우리 성도님들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잘 전함으로 하나님과 인류 사회에서 중재하는 역할, 다리를 놓는 역할에 충실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신의 직무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직임은 하나님과 죄를 지은 사람들을 연결하는 제사장의 귀한 직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 이번 주간도 기도하면서 힘쓰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모세가 레위 지파에 속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서 가장 위대했던 사람, 하나님의 온 집에 사환으로 충성했던 사람,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만나 시고 대하셨던 사람 모세가 레위 지파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가 이렇게 위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조상들이 하나님께 충성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늘 생각해 보는 말씀입니다만 하나님께 충성하면 우리의 후대가 잘 되는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반드시 자손들이 복을 받습니다. 성경은 그 자손들이 걸인이 되는 법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한 주간동안에도 우리 개인에게 주어진 일들을 잘 감당하는 하나님께 충성하는 하루하루가 되어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제: 레위의 아들들
성경: 역대상 6:16-30
오늘 본문에서는 레위인 전체의 족보를 개략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사회 전반에 걸쳐서 대 동맥과도 같은 위치를 담당했는데, 그들에게 물질적 분깃을 허락지 않으신 것은 그들이 맡은 직임의 중요성을 감안, 이에 충실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목회자들이 이중 직을 취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해답을 줍니다. 하나님의 양 무리를 책임 맡은 목자는 다른 업종에 종사하는 것을 금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부지런히 말씀을 연구하고 하나님의 양 무리를 돌보는 것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이요, 본래적인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오늘 레위의 아들들을 통해서 주시는 진리를 붙들려고 합니다.
첫째로: 저들은 대 제사장의 계열에 들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대 제사장의 계열에는 아론의 자손들만 포함되었으므로 다른 레위인들은 성전에서 제사장을 보좌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문지기도 그들의 직무였고, 유사나 재판관도 그들의 몫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의 역할은 참으로 귀한 것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과 백성사이에 섰으나, 레위인들의 가교 역할이 없었다면 제사장들이 직무를 수행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레위인들은 봉사의 직무, 도와주는 직무를 잘 감당한 사람들로 성전에서 참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교회에도 위인들과 같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일꾼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 역할을 잘 감당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어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위한 봉사에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역할의 중요성이 계급적으로 이해되는 것은 교회라는 공동체의 구조 및 특성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참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 신자라면 이러한 생각들을 철두철미하게 버려야 합니다.
지체는 다 귀합니다. 모든 지체는 동일한 중요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특성에 따라서 우열을 가리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르지 못한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가 귀하듯이, 교회 정원에서 잡초 한 포기라도 뽑는 평신도 그 일을 감당하는 것 역시 귀한 일입니다. 교회에서 주어지는 직임은 분량의 차이일 뿐 결코 계급은 아니라는 이 진리를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충성입니다.
나에게 맡겨진 일에 나에게 맡겨준 직임에 얼마나 충성했느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봉사에는 높고 낮음이 없다는 이 사실을 다시 기억하면서 언제나 최선을 다해 맡겨진 일에 충성하여 하나님의 칭찬과 더불어 더 귀한 일들을 맡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어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제: 봉사자의 태도
성경: 역대상6:31-48
수고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일한다는 의미입니다. 남보다 앞서있으며 많이 일하려면 봉사에 대한 합당한 이해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봉사자의 태도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일꾼을 부르는 시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할 평안한 곳을 얻은 후에, 일꾼들을 세워 하나님의 집에서 찬송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이스라엘은 어수선하고 불안정한 시대를 지나 안정된 시대를 맞이한 것입니다. 새로운 왕의 통치가 시작되었고 멀리 있던 하나님의 법궤도 나타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모든 백성은 무거운 짐을 벗고 평안한 안식을 누리려고 할 때 하나님은 당신의 성전을 위하여 일할 봉사자들을 불러 세우셨던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일꾼을 불러 세우실 때 모든 것들이 평안할 때 일꾼을 불러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일꾼의 태도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부름을 받은 자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이 건축 될 때까지 성막에서 반열대로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들은 장차 성전에서 일할 때를 위하여 직무와 순서를 엄밀히 준행 하는 훈련을 받았던 것입니다.
32절에 "솔로몬이 예루살렘에서 여호와의 전을 세울 때까지 저희가 회막 앞에서 찬송하는 일을 행하되 그 반열대로 직무를 수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질서를 지키는 것은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태도인 동시에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귀한 자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늘 질서를 지키고 남을 인정할 수 있는 태도를 늘 배우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일의 종류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레위 족속 중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신선한 찬양만 하고 살며 다른 이들은 성막에서 물과 연료를 준비하고 제물을 죽이고 가죽을 벗기고 삶는 일을 했습니다.
성막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고운 음성을 갖지 못하여 노래를 부르기에는 합당치 못했지만 그들에게는 관리자의 은사가 주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동료에 대한 사랑과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일꾼들이 서로를 위해 훈련될 때 봉사의 결과는 극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을 위해 쓰임 받을 하나님의 일꾼들임을 기억하고 무슨 일이 주어지던지 질서를 지키고 기쁨으로 서로 협조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하겠습니다.
주제: 용사가 되자
성경: 역대상 7:1-12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데는 제사장과 같이 내부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용사같이 외부에서 봉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일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하나님의 나라는 강하게 건설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후자 곧 외부에서 일하는 용사에 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 신앙에 바른 적용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첫째로: 잇사갈 지파와 베냐민 지파에는 각 집안에 용사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한 제사장직은 레위지파에게 국한되었지만 용사들은 잇사갈 지파나 베냐민 지파등 레위 지파를 제외한 어느 지파에서나 이스라엘의 용사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바른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백성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일은 어느 지파, 어느 집안에서도 할 수 있도록 개방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보호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더욱 잘 믿도록 하기 위한 또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용사들이 되어지도록 힘써야 할 줄 압니다. 가깝게는 우리 가족을 위해 좀더 넓은 범위에서는 동료신자들을 위해 그리고 친족들을 위해 용사들이 되어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둘째로: 잇사갈 대대로 용사가 있었습니다
잇사갈 지파의 아들들은 용맹스러운 용사였고 족장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작업과 사무에 잘 훈련되어있어서 유사시에 나라를 위하여 크게 일할 재질이 있었으며 특히 그 집안에서는 대대로 용사들을 배출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에게 봉사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은총을 입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영예로운 삶을 잇사갈 지파의 아들들이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들도 이런 영예로운 삶을 살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잇사갈 지파의 베냐민 지파의 용사들은 전쟁을 위한 용사였습니다.
잇사갈 지파의 용사인 1450,00명과 베냐민 지파의 60,000명의 용사들은 다같이 싸움에 나갈만한 사람들로 불려졌습니다. 그들이 가진 용사로서의 재질이나, 그들이 하나님께 바친 용맹은 이스라엘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봉사의 일에 사용되었습니다. 이들의 봉사는 용맹을 무기 삼아 자신의 영화를 추구하는 세상의 용사들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기 위한 용사가 되어지도록 힘쓰는 삶이 되어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제: 계속되는 은혜
성경: 역대상7:13-19
아브라함과 언약하신 하나님은 그의 후손들의 생애에서도 신실하게 역사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기억하셨으며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복을 받기에 합당하도록 인도하셨음을 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약속의 후예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있습니다. 후손들이 나오면 언제나 "누구의 아들"이라고 표현하며 그 계보를 따라 올라가서는 약속의 조상을 언급합니다. 이것은 고대 사회에서 서로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표현했던 방법이지만, 성경에서의 "누구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에게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내고자 할 때 사용했던 표현입니다. 오늘 13절에 "납달리의 아들들은..."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14절에서는 "므낫세의 아들들..."이라고 기록한 것을 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하셨던 그 후예들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들에게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기로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약속의 후손인 므낫세 지파의 지위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므낫세 지파는 요단강을 경계로 서로 반반씩 나뉘어져 살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요단강을 건넌 후손에 대해서 기록함은 물론이고 요단강을 건너지 않은 동편의 후손에 대해서도 빠뜨리지 않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는 그들이 지형적으로 떨어져 살고 있었고 약간의 다른 문화를 형성하였지만 조상들과의 언약 속에서 그들을 택하셨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기억하고 계셨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백성을 잊어버리는 법이 없으십니다.
어디에 있든지 또 어떻게 살든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기업의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 백성들을 잊지 않으시고 언제나 챙기신다는 진리를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로 불러 주셨고 또 당신의 기업을 이을 자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어디에 있든지 또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든든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주제: 약속의 시간
성경: 역대상 7:20-27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시오,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와 약속하신 것 중에 즉시 성취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시간을 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약속이 즉시 이루어지지 않고 시간을 요하는 경우에는 약속이 이루어지는 그 시간까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시고 인내하도록 도우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요셉의 차자 에브라임 지파에 관한 기록으로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약속과 시간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두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에브라임지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48장19절을 보면 야곱은 요셉이 애굽에서 낳은 아들들 중에 두 번째 손자인 에브라임을 축복할 때 장자 므낫세보다 큰 자가 되고 그가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祝福했습니다.
야곱의 축복은 이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많은 아들들을 낳은 것입니다. 그러나 에브라임의 자손들 중 일부는 가드 토인의 짐승을 빼앗으려다가 비참한 죽임을 당했습니다. 21절에 "그 아들은 사밧이요 그 아들은 수델라며 저가 또 에셀과 엘르앗을 낳았더니 저희가 가드 토인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내려가서 가드 사람의 짐승을 빼앗고자 하였음이라"했습니다.
이렇게 에브라임의 아들 중 일부는 가드 토인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 에브라임에게는 새로운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때 에브라임은 그 아들의 이름을 [브리아라]고 지어 자신이 재앙을 받은 것을 여러 사람이 기억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에브라임의 아들들이 죽임을 당했고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이 이방인 손에 아들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을 때 그를 위로하시고 다른 아들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는 고난을 당하여 흔들리는 에브라임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는 변함이 없음을 알려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에게 환난이 올 때 그 환난은 인내를 낳게 하고, 인내는 연단을 통과하게 하며,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약속을 받은 것이 있습니까? 또 약속을 바라보면서 나가는 우리 삶에 환난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인내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연단을 통과하고 연단을 통과함으로 주어지는 큰복을 꼭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에브람임이 슬픔을 겪은 후 그의 후손은 계속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후에 이스라엘의 신실한 지도자가 될 여호수아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에브라임은 그의 출생을 보고도 장래 일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많은 사람이 몰랐던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내심으로 당신의 약속을 이루시려는 빛을 비추기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약속이 실현되기 위하여 먼저 빛을 비추시는 하나님은 그 빛이 정오의 해와 같이 빛날 때 약속의 열매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 빛을 본 사람은 영광가운데 인내하는 것입니다. 혹 성도님들의 가정에 약속하신 일들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께서 비추시는 빛을 보시고 영광가운데 좀더 인내하면서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주제: 약속의 성취
성경: 역대상7:28-40 358, 508
하나님의 약속은 그 시대에 성취되기도 하고 다음 세대에 성취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약속을 주셨는지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에브라임이 받은 기업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그 지파에서는 아들이 끊기고 많은 재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시려고 다른 지파와는 달리 에브라임이 받은 분깃을 오늘 본문에는 분명하게 명시해 놓고 있는 것입니다. 28절을 보면 "에브라임 자손의 산업과 거처는..."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이 받은 기업을 말합니다. 또 29절에서도 그들이 받은 기업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때 에브라임이 많은 민족을 거느릴 것을 말씀하셨고 큰 자가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 자손들에게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그 약속은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성도가 때로는 고난을 당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잠시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은 반드시 성취되고야 맙니다.
둘째로: 조상들이 빌었던 축복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30절 말씀부터는 야곱의 여덟 번째 아들 아셀의 아들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셀은 실바의 소생으로 창세기 49장 20절을 보면 아버지 야곱은 "아셀의 농산물은 풍성하여 그가 왕의 음식물을 제공할 것이라"고 축복했음을 봅니다. 또 신명기 33장24절을 보면 모세는 "그가 풍성한 복을 받으며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 발이 기름에 잠길것이라"고 예언했고 축복한 것을 봅니다.
이러한 조상들의 축복은 아셀에게 이루어지기까지 큰 용기가 되었고 소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상들이 아셀을 위해 하나님께 복을 빌었던 축복은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호수아 19장24절에서부터 31절까지의 말씀을 보니 아셀은 지중해 연안 가장 기름진 땅을 얻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을 위한 우리의 축복은 이토록 귀한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 축복한다면 그 축복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과 확신가운데 자녀들을 위해 많이 축복하는 부모님이 되셔야 하겠습니다.
우리 생이 다 하는 그날까지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또 그 자녀들을 위해 마음껏 축복하는 삶을 살으심으로 자녀들이 형통케 되는 영화를 보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제: 위대한 신앙의 계승
성경: 역대상 8:1-28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기 때문에 신앙의 계승자를 세우셔서 역사가 바뀔 때마다 위대한 신앙의 계승자를 통해 일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본문에서 위대한 신앙의 계승자 3인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에훗이 있습니다.
에훗은 베냐민 지파의 사사로서 이스라엘의 두 번째 사사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압왕 에글론의 억압에서 구해낸 왼손잡이 사사였습니다. 그는 또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지도력을 발휘하였고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사상이 강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나라가 혼란하고 약할 때에 강력한 지도자가 요청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신앙이 좋은 귀한 일꾼들이 배출되어져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그런 인물들로 성장하도록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둘째로: 후심이 있었습니다
이는 여자였으나 그 후손들이 크게 번성하였고 소외되고 약한 여인으로서 여호와 신앙을 계속 유지하고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반성케 하는데 기여했던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소외되고 약한 사람을 보호하시고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도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번성하기를 바라시며 소외되고 눌린 사람의 편에 서서 보호하시고 위로하심을 믿고 더욱 용기를 얻어 살아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로함이 있었습니다.
여로함의 아들들은 다 족장이 되어 이스라엘 소수 민족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대표권을 주시고 민족을 이끌게 하셔서 풍전 등화와 같은 이스라엘의 신앙의 유산과 국가의 존립을 위임하셨습니다.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시기에 맞는 인물을 세우셔서 지도자로 삼으시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펴시며 위대하신 뜻을 구체화하심을 우리는 믿고 우리도 위대한 신앙의 계승자가 되기 위한 그릇을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제: 성공과 실패
성경: 역대상 8:29-40
하나님은 거룩하신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민족을 이끌 지도자를 직접 세우시고 감독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과 같이 하나님의 분부를 거역했을 때 하나님은 영원하신 계획을 위하여 다른 왕인 다윗을 세우시고 사울을 버리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기브온의 조상 여이엘과 그 후손에 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여이엘의 후손 중에 사울과 그 아들을 요나단입니다. 이 두 사람은 우리가 잘 아는 인물로 그들의 신앙 행적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 두 사람의 신앙 행적을 통해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첫째로: 사울은 선택을 받았으나 실패한 인물이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이 혼란한 그 시대에 하나님으로부터 선택함을 받아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사사 시대 때 사사가 내리던 지파 소집령을 발동하고 제사장들의 소관인 제사를 자신이 직접 집행하고 선지자들과 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이런 사울은 드디어 백성들의 신임을 상실하게 되었고, 제사장들을 학살하는 죄악을 범했는가 하면, 자신의 임의대로 제사를 드림으로 사무엘 선지의 분노를 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울은 하나님의 분노를 사게되었고 결국은 파멸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은 변함이 없었지만 사울의 악행과 교만으로 그는 파멸의 길을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았고 사명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겸손히 그리고 바르게 순종하지 못함으로 끝내 파멸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택하심을 받고 사명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명을 겸손히 그리고 성실하게 순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요나단은 약조를 지켜 성공했습니다
사울이 불순종으로 파멸을 자초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요나단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친구와의 약조를 잘 지킴으로 성공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사울이 원수와 같이 여기던 다윗의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윗을 배척한 일이 없었고 시기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는 왕자로서 왕이 되지는 못했을 지라도 그 우정과 인간관계는 너무나 신실했던 것입니다.
요나단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바른 신앙을 소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요나단은 인격적이고 남자다운 우정을 지킨 인간 승리의 사람되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를 복 주셔서 후손이 번성하도록 친구 다윗을 통하여 배려 하셨던 것입니다.
주제: 징계와 회복
성경: 역대상9:1-9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 하여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다가 하나님의 긍휼 하심을 입고 회복되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귀환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가나안 땅의 분배 때에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 외에도 에브라임, 므낫세 지파와 함께 거주하면서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심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징계와 회복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징계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 숭배와 반역의 죄로 하나님을 분노케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결국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고 7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고난과 절망 속에서 죄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저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범죄 할 때 징계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시기 위한 도구로 징계를 사용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도구로 사용하셨지만 저들이 완전히 멸망하기 전에 돌아오도록 하기 위하여 감당할 시험을 허락하셨고 회개를 촉구하시는 징계를 내리셨던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죄 할 때 하나님은 징계를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죄를 깨달아 자복하고 돌아올 만큼만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될 때 빨리 깨우치고 하나님께 바르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돌아올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증오와 분노의 징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기회를 주신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또 이렇게 돌아오게 하신 다음에는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긍휼로 그들의 아픔을 싸매 주셨고 다시 예전과 같이 자손을 번성케 하시고 예루살렘에 거하게 하셔서 성전을 재건케 하시고 과거의 축복을 회복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시고 모든 것을 원상대로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을 늘 바라보아야 합니다. 당신의 백성들이 잘못할 때는 징계를 하시지만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께 다시 돌아올 때는 모든 것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큰 기쁨과 소망을 잃지 말고 승리하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제: 포로 귀환자들
성경: 역대상 9:10-16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벨론 포로 70년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선민 일부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민을 단련시키시고 은총을 베푸심은 광야 40년의 역사와 포로 귀환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럼 포로 귀환 자들이 누구였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바베론에서 제일 먼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은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제일 먼저 돌아온 데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종교적인 차원에서 손상된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과의 교제 회복이 첫 과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먼저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어질 때 다른 모든 일들이 잘 풀려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이 진리를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바르게 이루어지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바벨론에서 돌아온 자들 중에는 성전 일을 수종들 자들이 귀환했습니다.
제 1차 포로 귀환 때에 함께 온 자 중에 하나님의 전을 위해 수종들 재능이 있는 자는 1,76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모두가 겸손한 마음으로 남들을 돕는 자였으며, 성전 업무를 충분히 도울 수 있을 만큼 재능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도 주어진 직분을 가지고 충성 되이 헌신해야 합니다. 금 그릇, 은 그릇, 놋그릇, 혹은 질 그릇 중 어느 것에 속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헌신해야 합니다. 그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레위 사람들이 귀환했습니다.
레위 사람들이 제 1차 포로 귀환 때 함께 돌아왔던 이유는 제사장을 도와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일에 동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이 예전에는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의식을 등한시 했고 규례대로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경계를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깨달은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귀중하게 생각하며 큰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을 일차 귀환에 포함시키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는 일이 중요한데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기 위한 일차적인 자격은 잘못을 빨리 깨닫고 회복의 은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늘 우리가 잘한 일은 속히 잊도록 해야 할 것이고, 잘못한 것들은 속히 돌이켜서 새로운 삶을 추구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귀하게 또 많이 사용해 주실 것이고 그에 따른 상급이 더 많이 쌓여지게 될 것입니다.
주제: 영광스런 문지기
성경: 역대 상9:17-27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에 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문지기라고 하면 경비원으로 사회적 지위와 신분에서 낮게 평가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 성전의 문지기는 임무도 막중할 뿐만 아니라 영광스런 직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시편 84편 10절에서 기록하기를 "주의 궁전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 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일이요, 존귀한 일입니다. 그러니 성전의 문지기도 그렇다는 말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백성이 만나는 구별된 장소에 거룩성과 질서를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고귀하고 중대한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가 과연 어떤 직분인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는 하나님이 택하셨습니다.
22절에 "택함을 입어 문지기 된 자가..."라고 했습니다. 성전을 지키는 문지기의 수는 시대에 따라 달랐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레위인에게 주어졌던 특권이요 임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여 거룩한 성전을 보존하고 보존키 위해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아무리 그 직분이 힘들고 비천한 일이라도 성령의 은사를 따라 선택하시고 강하게 하셔서 사용하심을 믿고 순종할 때 거룩한 일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직분을 받아도 하나님께서 선택 하셨음을 믿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해 충성해야 합니다.
둘째로: 기쁨과 감사함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23절을 보면 "저희와 그 자손이 그 반열을 쫓아 여호와의 전 곧 성막 문을 지켰는데"라고 했습니다. 자신들은 물론이고 자손들이 반열을 쫓아 성전 문지기의 일을 감당했다는 저들에게 기쁨과 감사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자부심이 있었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기쁨과 감사로 수행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욱 기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어떤 일이든지 감사함으로 기쁜 마음으로 행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는 영광스런 직분이었습니다.
26절을 보니 "이는 문지기의 두목 된 레위 사람 넷이 긴요한 직분을 맡아..."라고 했습니다. 여기 긴요하다는 말은 귀중한 일이라는 말입니다. 레위인들은 성전에 가까이 거주하면서 칠일에 한번씩 올라와 성전 일에 봉사했습니다. 성전은 만인이 기도하는 집으로 문지기도 성전의 문을 열고 닫는 중요한 일을 맡은 영광스런 직분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자신과 이웃을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충성된 문지기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할 때 하나님의 놀라우신 복을 누리는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영적인 성전문지기로 선하게 사용되어지길 축복합니다.
주제: 예배의 생활화
성경: 역대상 9:28-44
인간의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표현이 바로 예배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의 장이요 예배를 통해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고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시며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예배는 어느 지정된 장소나 시간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전 생애가 예배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즉 전 생애를 통해서 예배의 삶으로 이어질 때 하나님의 구속과 복을 더욱 더 많이 누리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이 되어 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전 생애동안 예배의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첫째로: 떡을 먹고살아야 합니다.
32절에 " 또 그 형제 그핫 자손 중에 어떤 자는 진설 하는 떡을 맡아 안식일 마다 준비하였더라"했습니다. 여기서 떡은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자신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에수님은 요한 복음 6장 51절에서부터 53절의 말씀을 통해 당신을 참 생명의 떡으로 비유하시면서 스스로 인간을 위한 제물임을 나타내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당신을 생명의 떡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고 말씀함으로서 떡은 곧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말씀 가운데 거하는 삶이 예배의 삶임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곧 우리는 날마다 말씀을 먹고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둘째로: 찬송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우리가 전 생애 동안 예배의 삶을 살기 원한다면 찬송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윗 시대에는 찬양의 직무를 맡은 성가대가 24반열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 찬양으로 예배를 드리는 행위였습니다.
성도의 마음과 입에서 찬양이 흘러나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제사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도 찬양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하시든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콧노래를 부르시면서 그 일을 행하셨습니다. 죽은지 4일이 된 나사로를 살리실 때도 오병 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실 때도 주님은 아버지를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제사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마땅히 찬양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속과 축복에 대해 감사의 제사를 드림이 우리 성도의 임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의 삶입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33절을 보면 "저희가 골방에 거하여 주야로 자기 직분에 골몰했다..."고 했습니다. 골방은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나눌 수 있는 만남의 장소입니다. 곧 기도하는 방이라고 마태복음 6장 6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만나며 죄도 용서받고 확신도 얻게 됩니다.
호흡이 지속되어야 생명이 유지되는 것처럼 기도는 성도의 호흡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로 나가야 풍성한 삶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전 생애동안 말씀을 먹으며 찬양을 드리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복을 늘 충만하게 받아 누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주제: 버림받은 자의 최후
성경: 역대상 10:1-6
이 세상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역사를 손아귀에 넣고 움직이려 하지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저 위대한 역사의 주관자가 계심을 망각하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의 죽음과 그 아들들의 죽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택을 받은 자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죄로 왕권이 다윗에게 넘어가게 되었고 그의 최후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그의 최후가 비참한 죽음으로 매듭짓게 됨을 통해 몇 가지로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첫째로: 악은 증가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과 불순종하는 것은 개인의 결단과 선택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그 본인이 감당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크면 클수록 그 불순종한 사람의 징벌은 크게 마련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저버림으로 그 말로가 비참하게 끝을 맺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을 받을 때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그 말씀에 더욱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로: 사울은 자존심과 명예를 하나님의 뜻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4절을 보니 사울은 불레셋군의 추격을 받고 활 쏘는 자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었을 즈음에 자기의 병기 가진 자에게 말하기를 "너는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저 할례 없는 자가 와서 나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노라..."했습니다.
여기 보면 사울은 자신의 자존심과 명예를 매우 중시한 것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큰이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의 명예나 자존심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세우시고 높여주시는 것이지 자신이 아무리 힘쓰고 노력해도 명예도 자존심도 세울 수 없습니다.
성경은 가르쳐 주시기를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은 낮아지게 되고 작아지게 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순종하는 길이 자존심과 명예를 높이는 길입니다. 사울이 할례 받지 않은 자의 손에 죽지 않겠다고 하는 자존심은 비참한 자존심으로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무가치한 자존심이었습니다. 혹 우리도 이런 무가치한 자존심을 갖지 않도록 삼가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서 자존심이 그리고 명예가 유지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울로 말미암아 그 가족이 다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사울 한사람의 불순종의 죄로 말미암아 그 온 집안이 함께 멸망하고 만 것입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우정과 민족을 더 소중하게 생각했던 참 귀한 신앙의 소유자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신앙인 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사울의 불순종과 바르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신앙을 적극적으로 잡아 주지 못함으로 함께 죽임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깨우치게 되는 것은 구원은 일대일의 관계지만 잘못에 대한 연대 책임과 복은 단체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가정이 또는 교회가 복을 받는 길은 모두가 함께 잘 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주제: 사울의 죽음
성경: 역대상 10:7-14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울과 그 아들들의 죽음에 관해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온 인류의 생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결정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죽음은 사명을 완수한 자에게 주시는 안식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계속하여 가리우는 자에게 행하시는 책망일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울의 죽음은 어떤 종류의 죽음이었는지 생각해 보고, 사울의 죽음에 대한 당시 백성들의 태도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사울이 죽임을 당한 이유입니다
사울이 죽임을 당한 근본적인 원인은 여호와께 범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보시는 영광스런 안식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의 죽음은 여호와를 배반했기 때문에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울은 여호와를 어떻게 배반했습니까?
첫째는)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안았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다시 세우려 하셨던 것입니다.
둘째는) 사울은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므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곧 블레셋 사람과의 전쟁에서 사울은 두려운 나머지 신접한 여인을 찾았던 것입니다.
세 번째는) 사울은 여호와께 묻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던 그는 여호와를 따르지도 않았다.
이렇게 함으로 사울은 더 이상 하나님의 편이 아니었고 하나님께서도 더 이상 사울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보시는 죽음이 아니라 여호와를 배반했기 때문에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던 것입니다.
둘째로: 사울의 죽음에 대한 당시 백성들의 태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사울의 죽음에 대한 당시 백성들의 태도는 세 부류로 나타난 것을 봅니다.
첫째는) 사울을 버리고 도망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봅니다.
사울의 신하, 군대, 백성들은 사울이 죽자 다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나약한 제자들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이것은 바로 능력 받지 못한 신자들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둘째는) 사울의 죽음당시 머리를 자른 블레셋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대적하는 불신자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세 번째는) 사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장사지낸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전에 암몬의 침략을 받았을 때 사울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태도는 바로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하기 위해 생명까지 내놓아 헌신하는 신실한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성도들이 꼭 필요합니다. 이런 신자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이런 신자들이 되어지도록 힘쓰고 노력하는 신앙으로 만들어가야 하겠습니다.
주제: 다윗의 왕국
성경: 역대상 11:1-9
성경에서 말하는 "나라"는 장소보다는 통치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왕국은 다윗이 다스리는 나라로서, 그 반열을 통해서 만 왕의 왕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 왕국은 곧 하나님 나라의 예표입니다.
첫째로: 다윗 왕국은 "하나님의 언약"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다윗은 세 번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곧 사무엘에게, 또 헤브론에서 장로들에게, 그리고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중 사무엘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이 하나님의 언약을 파괴하기 위해서 갖은 방법으로 다윗을 죽이려 했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실현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방해가 있어도 꼭 이루어집니다.
둘째로: 다윗 왕국은 "백성들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 졌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위해서 계획하거나 애쓰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누구에게도 그것을 자랑하거나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울 왕이 죽은 후에도 자신이 왕이 되고자 음모를 꾸미지도 않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도 그 나라가 임하기를 사모하는 백성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백성들에 의해 하나님의 나라는 아름답게 세워지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일익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세 번째로: 다윗 왕국은 "여부스를 쳐부수고"이루어 졌습니다.
여부스 민족은 일찍부터 정복해야 할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요새에 거하고 있었으므로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여부스를 쳐부수니 시온 산성이 다윗성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처럼 내 속에 있는 여부스가 정복당할 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의 나라를 더 든든하게 세우기 위해 내 마음속에 있는 여부스를 정복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윗 왕국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강성해 졌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강성해 집니다.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강성해 지기를 바란다면 하나님의 통치가 더욱 강해지도록 늘 힘쓰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주제: 다윗의 용사들
성경: 역대상 11:10-19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고 백성들의 지지를 입어 왕국을 건설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왕국을 이루심에 있어서 여러 충성스런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충성스런 왕 밑에는 충성스런 신하가 있는 법인데 오늘 말씀을 통해 다윗의 용사들을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용사들의 위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용맹 있는 용사 야소브암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는 삼십인의 두목으로서, 창을 들어 한때 삼 백 인이나 죽였습니다. 그는 군사들 앞에서 진두 지휘하면서 용감히 싸워 사기를 높여 승리로 이끈 자였습니다.
다음은 산업을 아끼는 용사 엘르아살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 와중에는 보리밭 가운데 서서 그 밭을 보호하기 위해 싸울 정도로 산업을 아꼈던 용사였습니다.
세 번째는 왕에게 충성을 다한 세 용사들이었습니다.
세 용사 중 한사람은 기록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세 용사는 오직 왕에게 드릴 우물 물 한 그릇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적진에 뛰어 들었습니다. 큰일을 위해 용감히 죽기는 쉬워도 , 물 한 그릇을 위한 모험은 진정으로 충성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이런 신자들이 되어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성도를 하나님께서는 귀히 여기시고 많은 것으로 맡기실 뿐만 아니라 큰 상급으로 예비하신다는 진리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다윗의 용사들의 업적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들이 큰 용사가 된 것은 용감히 싸웠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의 아름다운 자세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온 이스라엘로 하여금 다윗을 돕도록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다윗으로 나라를 얻도록 힘을 모았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다윗을 왕으로 세웠던 것입니다.
다윗은 분명 용감한 장수였습니다. 그러나 자기 혼자의 힘으로 나라를 세울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세 용사의 힘이 합해졌을 때 다윗은 나라를 세울 수 있었고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바로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사람이 힘을 합할 때 큰 일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든든히 서게 됩니다. 이 진리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가족이 하나가 되어 힘을 합할 때 큰 일을 해 낼 수 있고 크게 승리하는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힘을 합하여 큰일을 감당하는 날이 되어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주제: 다윗의 용사들
성경: 역대상11:20-25
다윗의 왕국을 굳게 세우는데 가장 큰공을 세운 첫 삼 인이 있었습니다. 곧 그들은 야소브암, 엘르아살, 삼마였습니다. 그러나 이 첫 삼인보다는 부족하지만 뛰어난 용사인 둘째 삼인을 오늘 본문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진 능력은 비록 첫 삼인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마치 두달란트 받은자와 같이 또 비라델비아 교회와 같이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충성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을 통해 몇 가지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로: 이들 용사들의 위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둘째 삼인 중에 가장 존귀한 용사 아비새가 있었습니다(20,21).
그는 요압의 아우로서 혼자 창으로 300인을 죽일 만큼 용감하였으며 다윗의 왕업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효용한 일을 행한 용사 브나야가 있었습니다(22).
여기 효용한 일이란 훌륭하고 뛰어난 일을 말합니다.
그는 여호야다의 아들로서 다윗의 근위 대장이었습니다. 그는 구덩이에 빠진 獅子를 죽이고, 키가 크고 힘센 애굽인들을 죽인 일들은 그의 담대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무명의 용사가 있었습니다.
이 둘째 삼인 중 또 한 명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왕국의 수립에 공이 많으나 실록에 녹명 되지 못할 만큼의 큰 실수를 범한 자인 것으로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에 경솔히 판단치 말고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아무튼 다윗의 용사들은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둘째로: 그들이 받은 상급입니다.
다윗의 용사들은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들이 이처럼 용감히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여호수아 23:10절의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여 크게 명성을 얻었던 것처럼 이들도 큰 명성을 얻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의 용사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명성을 얻는 상급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명성을 얻는 일은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실 때 가능하고 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위해서는 우리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는 삶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기억하고 그 말씀을 잘 순종하여 살아감으로 명성을 얻는 복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제: 다윗의 용사들
성경: 역대상 11: 26-47
바울은 디모데 후서2장 20절에서 "큰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만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다윗의 왕국을 건설하는 데는 유명한 용사들이 있었는가 하면 수많은 무명의 용사들이 있었습니다. 유명한 용사 못지 않게 무명한 용사들의 힘이 있었기에 다윗 왕국이 굳게 세워졌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과연 누구였는지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로: 이들은 오직 다윗을 위해 이름 없이 헌신했습니다
이들은 자신을 내세울만한 특기할 만한 점은 없었지만 공이 큰 자들로서 이름이 열거 되어있습니다. 다윗은 그들의 노력과 공적을 결코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의 국가나 사회가 세워지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나 장관같이 뛰어난 지도자가 필요하지만 작은 일을 소중하게 여기고 행하는 다수의 백성이 있어야 합니다.
위대한 독창 자 한사람보다 서로 음의 조화를 이루는 합창대가 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여호수아"는 한 사람이면 족합니다. 그러나 갈렙은 수없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수아가 되기도 해야 하겠지만 여호수아를 도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이룰 수 있는 갈렙과 같은 사람이 되도록 힘쓰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다윗을 위한 무명의 용사들 중에는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율법에는 이들이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스라엘 위하여 충성을 다 하였기에 마치 모압여인 룻과 같이 기꺼이 들어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실로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 누구도 차별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누구나 다 한 형제요 자매라는 의식으로 누구라도 차별이 없이 대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처럼 다윗은 수많은 용사를 얻었습니다.
14,5년 전에 다윗은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거인 골리앗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혼자가 아닙니다. 다윗의 신앙과 용기에 뜻을 같이하는 수많은 용사를 얻은 것입니다.
한 사람의 전파력은 이렇게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 왕국이 번영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부하 용사들의 공훈이라 할 것입니다. 사람을 잘 만나는 것 참으로 중요합니다. 내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번영할 수 도 있고 어려움을 만날 수도 있다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과 가정이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늘 기도함으로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주제: 다윗을 찾아온 용사들
성경: 역대상 12:1-7
다윗이 외로이 골리앗과 싸워 승리한 후 사울왕의 미움을 받아 피신하여 다닐 때에 다윗의 주위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곧 아둘람 굴에 있을 때 400명이던 사람들이 시글락으로 갔을 때는 60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소개된 사람들은 다윗이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 찾아온 용사들로 이들은 마치 주님께서 외로이 천국 복음을 전파하실 때 주님을 따랐던 12제자나 70인의 제자 그리고 수많은 무리와도 비교될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다윗을 찾아온 용사들을 통해 몇 가지로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첫째로: 이들은 다윗이 역경 중에 찾아온 용사들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형통할 때는 찾아옵니다. 그러나 역경을 만나게 되면 디모데후서 4장 10절에 나오는 데마처럼 하나둘씩 떠나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인간들의 본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시글락에 있을 때는 사울의 위험을 피하여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에게 보호받는 정치적 망명기였습니다. 그때 이들 용사들이 다윗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니 저들의 충성심이 참된 충성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충성된 신하는 고난 때에 찾아볼 수 있고, 현처는 가난할 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충성된 종들이 될 수 있도록 주님의 일이 어려울 때 또 그리스도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이 어려울 때 그들을 찾아보는 아름다운 신앙을 소유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이들은 육체적 혈통보다 신의을 따라 찾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다윗이 속한 유다 지파인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오히려 다윗을 죽이려 하는 사울의 동족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악정을 베푸는 동족 사울보다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다윗을 택한 것입니다. 나비가 꽃을 찾듯이 사람은 덕을 찾아 모이게 되었습니다. 다윗을 따랐던 용사들은 다윗이 쌓은 덕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좋은 사람들이 많이 따를 수 있도록 덕을 쌓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용사의 재능을 좀더 값지게 쓰고자 찾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을 찾은 자들은 모두가 재주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활을 잘 쏘고 물매 던지는 일에 잘 훈련되었으며 양손을 다 쓰는 슬기롭고 용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과 함께 있을 때에는 무력한 자가 되어 블레셋에 정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 다윗에게 찾아와 가진 재능을 보람있게 쓰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능을 최대한 잘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참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재능을 잘 활용할 수 있으려면 우리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르게 만난다면 주님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제: 찾아온 용사들
성경: 역대상 12:8-18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 다닐 때에 그를 찾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상한 자, 그리고 노병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그의 수하에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실 때에 가난한자, 병든 자, 귀신들린 자 뿐만 아니라, 용감한 베드로, 학식 있는 누가나 바울을 쓰신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면 다윗을 찾아온 용사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갓 지파에서 찾아온 용사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용사였고 날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들은 사납기는 사자 같았고, 빠르기는 사슴 같았습니다. 또 방패와 창을 잘 다루는 훈련받은 용사였으며 작게는 100명, 크게는 1000명을 다스릴 수 있는 지휘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차고 넘치는 요단 강물을 무서워하지 않고 건너가 싸워 적들을 동서로 도망가게 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참으로 훌륭한 용사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잘 훈련된 좋은 군사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군사의 자격은 어떻습니까?
민수기 1장3절에 말하는 대로 소속감이 분명해야 하고, 너무 어리지 않아야 하며, 용감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세상일에 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 나라의 이런 좋은 군사가 되도록 힘쓰고 노력해야 할 줄 압니다.
둘째로: 베냐민과 유다 자손 중에서 찾아온 용사들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들을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16,17절).
왜냐하면 그는 이제껏 수없이 속임을 당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신에 감동한 사람들이었습니다(18절).
이렇게 하나님의 신에 감동을 받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큰복입니다. 바로 다윗이 복 있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충성과 헌신을 맹세한 사람들이었으며 평강을 소망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18하 반절).
비록 그들은 군인들이었지만 죽이고 피 흘리기보다는 평화가 오기를 소망하면서 평화의 나라를 세우기에 힘을 합해 돕기로 한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자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지켜야할 합당한 자세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군사로 늘 이런 마음자세로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워 가는 삶이 되어지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제: 하나님의 방법
성경: 역대상 12:19-22 347, 381, 448
우리는 종종 우리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지 않아 하나님께 거절 당하는 경우를 봅니다. 우리는 이러할 때에는 하나님의 큰 뜻을 이해하고 순복 하기보다는 실망하거나 불평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바로 오늘 말씀은 그 진리를 다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통해 그 진리를 붙들려고 합니다.
첫째로: 사람의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왕 아기스에게 청하여 사울을 물리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블레셋 방백들의 반대로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진리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은 결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들의 손을 빌려서 건설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아무리 자신의 생각과 방법대로 사울을 물리치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결코 허락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므낫세의 몇몇 용사들을 다윗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들은 사울과 함께 블레셋을 치러왔었으나 블레셋을 칠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 천부장들로서 큰 용사요 군대장관들이었습니다.
다윗은 그들과 합세하여 적군 아말렉을 섬멸하여 사울 왕에게 지시했던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켰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큰 군대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곧 하나님은 날마다 용사들을 다윗에게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다윗의 힘은 필요에 따라 날마다 강성해 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군대는 바로 하나님의 군대였다는 사실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친히 모집하셨고 지휘하시는 군대였으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싸우는 군대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세워지고 약속이 주어지면 그것에 필요한 모든 힘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십니다.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그 나라를 견고하게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행사를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을 믿습니다.
주제: 하나님의 군대
성경: 역대상12:23-37
잠언 16장1절을 보면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방법대로 수많은 군대를 날마다 다윗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온 이스라엘을 통치 할 수 있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보내셨던 군대는 누구였는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사울의 나라를 다윗에게 돌리고자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왕국의 정통성은 혈통 즉 계보에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사울의 집이 왕권을 계승하기보다는 다윗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원했습니다. 즉 사울의 나라를 다윗에게 돌리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23절을 보면 "싸움을 예비한 군대장관들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로 나아와서 여호와의 말씀대로 사울의 나라를 저에게 돌리고자 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다윗을 돕는 군대가 사울의 나라를 다윗에게 돌리고자 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6장 1절에서 3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사울을 버렸노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에 합한 자를 세울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이 실현될 것을 믿고 기다렸으며 백성들도 이 말씀을 굳게 믿고 그 말씀의 성취를 위해 투쟁하고자 모인 것이었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모든 지파에서 찾아왔습니다.
다윗을 찾아온 사람들은 유다 자손뿐만 아니라 제사장들까지도 찾아왔고, 심지어 사울의 동족인 베냐민 자손까지도 다윗을 찾아왔습니다. 특히 멀리 북쪽에 있는 스불론, 납달리, 단, 아셀지파가 많은 용사를 보냈고, 강건너 르우벤, 갓 지파와 므낫세 반지파도 12만 명이나 보냈습니다. 이처럼 신앙의 사람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지지를 받았던 것입니다.
세 번째로: 다윗을 찾아온 사람들은 두 마음을 품지 않았습니다.
다윗을 찾아온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울의 백성으로서, 사울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윗에게로 도라온 후 그 마음은 두 마음을 품지 않았던 것입니다. 33절에 "스불론 중에서 모든 군기를 가지고 항오를 정제히 하고 두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능히 진에 나아가서 싸움을 잘 하는 자가 오만 명이요"라고 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사울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다윗에게 왔을 때는 온전히 다윗만을 위해서 충성하려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과 우상을, 그리고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두 주인을 섬기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습니다. 오직 우리는 하나님만을 섬기는 하나님께만 충성을 다하는 온전한 하나님의 종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제: 이스라엘의 기쁨
성경: 역대상12:38-40
사울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40년간 이스라엘 벡성들은 갖은 고생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백성이 다윗에게 찾아온 지금 이스라엘에는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마치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사람이 주님 품으로 찾아왔을 때 갖게 되는 기쁨과 같았습니다. 그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그렇게 기뻤는지 세 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다윗이 통치하니 기뻤습니다.
다윗 왕국은 다윗이 통치하는 왕국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표상이었습니다. 사탄이 통치하는 나라에는 죄악과 고통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에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습니다. 사울이 통치할 때 고난을 참고 견뎌왔던 백성들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고 다윗이 통치하는 의와 나라가 실현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뻤던 것입니다.
둘째로: 마음이 하나가 되니 이스라엘은 기뻤습니다.
다윗 왕국에 이스라엘의 몇몇 지파만이 합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다윗 왕국에 함세 했던 것입니다. 곧 가까이 있는 지파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지파까지 그리고 레위지파와 사울의 동족까지도 다윗 왕국에 합세하였습니다.
저들은 성심으로 헤브론에 모였고, 일심으로 다윗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성심이라는 말은, 흐트러지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또 일심이란, 나누어지지 않은 하나된 마음을 가리킵니다. 바로 다윗에게 모인 모든 사람들은 초대교회가 합심하여 모이고 기도했던 것처럼 그렇게 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하나가 되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가 될 때 어떤 일을 만나도 능히 해쳐 나갈 수 있고 그곳에는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하나가 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음식이 풍성하니 이스라엘은 기뻤습니다
도합 34만 명이라는 숫자가 모였으나 그들이 사흘을 지내며 먹고 마실 충분한 식량이 예비 되어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가까이서 또 멀리서 수많은 식물을 실어 날랐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가 기쁨으로 상부상조한 것처럼 그들은 기쁨으로 자원하여 식물을 싣고 온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의 기쁨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도 서로 나누면서 기쁨을 함께 누려야 하겠습니다.
주제: 다윗의 법궤 운반법
성경: 역대상 13:1-8
법궤는 언약궤, 여호와의 궤, 하나님의 증거궤 주의 능력의 궤등으로 불려졌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려진 법궤는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하늘나라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법궤의 뚜껑은 정금으로 만들어져 있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두 그룹이 조각되어 있었습니다. 이 법궤는 하나님의 율법과 거룩하심을 상징하며, 하나님께서 제사장과 만나는 장소로서 하나님의 뜻을 알리셨던 곳입니다. 본문은 이런 귀중한 법궤를 이제 다윗이 기럇여아림에서 다윗 성으로 옮겨오는 일부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윗이 법궤를 어떻게 운반했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실어 운반하도록 했습니다.
7절에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라고 했습니다. 이런한 운반법은 옛날 블레셋 사람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율법에 어긋나는 방법이었습니다. 다윗은 온당치 못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려 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잘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일은 잘 하는 일이 될 수 없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운반해 오는 일을 잘하는 일이었지만 그 방법에서 잘못한 것입니다.
둘째로: 다윗은 율법이 명한 방식대로 운반하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성소의 모든 기구를 운반하고 보관하는 책임은 레위지파의 고핫 자손에게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법을 모르고 지은 것도 죄이지만 하나님의 법을 이미 알면서도 범한 죄는 더욱 큰 범죄가 됩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지만 바르게 행하는 것은 더욱 큰 힘입니다. 모르고 짓는 죄는 회개하기가 쉬우나 알고 짓는 죄는 습관이 되어 양심의 마비와 무감각에 빠져 회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법에 순응하여 진리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앞에는 하나님의 법과 인간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상상을 깨뜨리기도 하시고 차원높이 섭리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옳은 방법 같을 지라도 우리의 법이 아닌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여 살려고 힘쓰는 삶이 되어져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이루어 드리게 될 것이고 우리에게는 복이 되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제: 중단된 기쁨
성경: 역대상 13:9-14
맑은 날 갑작스런 소나기와 같이 백성들이, 찾아 모이고 다윗이 왕으로 세움 받는 갖가지 기쁨과 축제의 날들 속에 생각지 않은 사건이 모든 기쁨을 중단시키고 말았습니다. 바로 기쁨을 빼앗아간 사건은 다윗이 법궤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기쁨을 빼앗길 정도의 그 사건은 연속되는 기쁨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긴장을 풀게 하고 경솔하게 행동했던 결과로 온 것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기쁨을 중단시켰던 원인을 두 사람을 통해 생각해 보고 기쁨을 중단시켰던 것과는 반대로 기쁨을 가지게 된 한 사람을 생각해 보면서 우리 신앙에 접목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기쁨을 중단시킨 두 사람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다윗입니다.
다윗은 말씀에 대한 무지로 말미암아 기쁨을 빼앗겼던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새 수레에 싣고 왔습니다. 이것은 우상을 섬기는 블레셋 사람들의 방법이었지 결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방법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레위 족속 중에서도 고핫 자손들이 성소에서 봉사하는데 쓰는 모든 기명을 취하여 청색보자기에 싸서 해달의 가죽으로 덮어 메는 틀 위에 두어 그것을 메어 운반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런 방법을 취하지 않고 이방인들이 하는 방법대로 법궤를 운반하려 했던 것입니다.
다윗이 그렇게 행동했던 것은 아마도 법궤를 찾아온다는 일에 마음이 들뜬 나머지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웃사를 치셨을 때도 왜 하나님께서 웃사를 치셨는지를 생각지 못하고 오히려 분히 여겼던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하게되면 이렇게 성도가 누리던 기쁨까지도 누리지 못하고 빼앗기게 된다는 것을 다윗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과 바르게 기억하고 바르게 적용함이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기쁨을 중단시킨 사람
둘째는) 웃사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웃사의 경우 하나님께 대한 경솔함이 기쁨을 중단시켰습니다.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는 약 70년간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불을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분향했을 때 레위기10장 3절에서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함을 얻겠고"라고 말씀하셨던 그 말씀을 기억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궤를 오랫동안 모셨던 웃사는 너무나 경솔한 행동을 취했던 것입니다. 곧 하나님과 너무나 친밀하다는 생각에 궤를 만지는 경솔한 행동을 취함으로 하나님께서는 웃사를 충돌하셨던 것입니다. 여기 11절의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웃사의 행한 일을 보고 화를 내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화를 내시므로 웃사는 하나님 앞에서 즉사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 웃사를 통해 분명하게 교훈 받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잘 섬길수록 더욱더 하나님을 거룩하게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때 더욱 경건하게 더욱 거룩하게 섬기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기쁨을 가져온 오벧에돔이 있었습니다.
오벧에돔이 기쁨을 가져온 것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즉 웃사의 죽음을 목격한 다윗은 법궤를 다윗 성에 옮겨감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 누가 두려운 법궤가 자기 집에 들어오기를 기뻐했겠습니까? 그러나 오벧에돔은 두려움으로 법궤를 자기 집에 모셔 들였던 것입니다.
법궤가 그의 집에 있는 석달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교훈을 얻게 되는 것은 복음이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을 가져오지만 그것을 기쁨과 두려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생명을 더해주며 다른 사람이 누리지 못하는 큰 기쁨과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복음을 바르게 받고 바르게 적용하여 기쁨이 영원해야겠고 많은 복을 받아 누려야 하겠습니다.
주제: 두 가지 반응
성경: 역대상 14:1-12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고 보호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그 나라가 강성해 질 때 주변국가에서는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즉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히람과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던 블레셋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도, 또한 예수님께서 왕권을 가지고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도 같은 반응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럼 오늘 말씀을 통해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나타났던 두 나라의 반응을 살펴보면서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첫째로: 호의적 반을을 보였던 두로 왕 히람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는 두로 왕국은 다윗 왕국에 비해 보잘 것 없는 나라였지만 궁궐을 지을 수 있도록 재료와 기술자들을 보내주었습니다. 이것은 작은 나라로서 다윗 왕에게 베풀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였습니다. 사실 다윗은 왕이 되고 그 나라가 강성해 지고 있었지만 아직 궁궐을 건축할 생각도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두로 왕처럼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을 위하여 적은 힘이지만 할 수 있는 힘과 재능을 다해 봉사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두로의 히람은 후에 솔로몬 성전건축을 위해서도 이렇게 헌신했던 것을 역대하 2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이라면 작은 힘일지라도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해 봉사할 수 있도록 힘써야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적대적 반응을 보였던 블레셋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그가 왕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 졌을 때에 그들은 다윗 왕국이 자리잡기 전에 이스라엘을 없애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만 왕의 왕으로 이 땅에 태어나셨을 때도 사탄은 그가 장성하기 전에 그를 없애려 했던 것을 마태복음 2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지금도 성도들의 믿음이 장성하기 전에, 또 하나님의 교회가 든든하게 서기전에 쓰러뜨리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블레셋은 다윗 왕국이 든든히 서기전에 이스라엘을 무너뜨리려 온갖 수단을 다 썼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전술이나 군대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물었으며, 하나님은 이런 다윗의 손을 이용하셔서 대적들을 흩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며 당신의 백성들과 나라를 방해하는 일들이 있을 때 그들을 흩으시되 물처럼 흩어버림을 믿고 하나님을 더욱 굳게 의지하여 살아가는 삶이 되어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주제: 승리의 비결
성경: 역대상 14:13-17
바로 얼마 전 다윗에게 대패한 브레셋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대 도전해 왔습니다. 아마도 사울 왕 때에 사울을 이겼기 때문에 다윗도 능히 이길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사탄의 무리가 이처럼 끈질긴데 비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쉽게 낙심하고 포기하는지 모릅니다. 그런 다윗은 이와 같은 도전을 어떻게 이겼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다윗은 다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13,14절에 "블레셋 사람이 다시 골짜기를 침범한지라. 다윗이 또 하나님께 묻자온대..."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같은 기도를 지루하게 반복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여리고를 기도로 공략했던 여호수아가 아이성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또 같은 기도를 하느냐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먼저 물었을 때와는 달리 응답해 주셨습니다. 먼저는 "올라가라 저희를 네 손에 붙이시리라"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주 올라가지 말고 저희 뒤로 돌아 뽕나무 수풀 맞은 편에서 저희를 엄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나가서 싸우라 하나님이 네 앞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의 군대와 싸우리라"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환경에 따라서 적절한 응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을 만날 때마다 하는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다윗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했습니다.
어떻게 할 것을 묻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마주 올라가지 말고 뒤로 돌아 뽕나무 수풀 맞은 편에 숨어 있다가 뽕 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나가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지난번의 전투에서 물을 흩음같이 쉽게 이긴 것에 비하면 얼마나 무의미한 전략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여"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쳐 이겼습니다. 여기서 뽕나무 위에서 걸음 걷는 소리는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시고 다윗의 편에 계신다는 신호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신호를 기다리고 그대로 행하기만 하면 승리함을 믿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승리자에게 명성이 주어졌습니다.
블레셋과 두 번의 전투에서이긴 것은 다윗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명성을 열국에 퍼지게 하셨고 열국이 그를 두려워하게 하셨습니다. 기도하고 기다리며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고 또 이렇게 높여주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늘 묻고 명령을 따라 살아가도록 더욱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제: 두 번 실수하지 않은 다윗
성경: 역대상15:1-15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듭합니다. 이것은 신앙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말씀 속에서 분명한 길을 가르쳐 주셨지만 말씀에 대한 무지가 실수를 가져오게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오려고 처음 시도했을 때도 이런 시행 착오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는 처음 실수를 통해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다시 옮기기 위해서 어떻게 했는지 함께 생각해 보고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궤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였습니다.
다윗은 지난번 하나님의 법궤를 운반해 오려고 할 때는 법궤를 모셔올 생각만 앞섰지 장소도 준비해 놓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 성으로 모셔오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그것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바로 다윗은 이번에는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했던 것입니다. 1절 중반 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또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고 위하여 장막을 치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운반해 오기 위해서 철저한 준비를 했음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교훈은 성도가 은혜를 사모하고 복을 간구 하기 이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모실만한 자리를 예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하나님을 모실 자리를 준비하고 간구 한다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복은 분명하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다윗은 하나님의 방법을 바르게 깨달아 알았습니다.
지난번 웃사가 손을 펴서 떨어지려고 하는 법궤를 손으로 붙잡으려했다가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므로 웃사가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 다윗은 분개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신앙의 사람답게 자기의 분을 가라앉히고 이제 두 번째 하나님의 법궤를 옮겨오려고 할 때는 지난번의 그 일을 생각했고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찾기에 이른 것입니다. 즉 웃사가 왜 죽음을 당했는지 다윗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방법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곧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운반할 수 있는 사람은 레위 사람들만이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2절). 이것을 안 다윗은 이제 레위인들에게 말하기를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벌하신 것은 여러분이 궤를 메지 않고 우리가 함부로 취급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음을 13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르지 못한 것을 깨닫고 고백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그리고 깨달은 바를 다시 고백하고 실천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다시 주어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궤를 운반했습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방법을 발견한 다윗은 이제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온 무리를 모으고 그 중에서 족장들을 지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몸을 성결케 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로 하나님의 궤를 어깨에 메도록 했습니다. 수레에 싣는 것보다는 힘든 일이었지만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궤를 무사히 다윗 성까지 운반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가르쳐 주시는 진리는 오늘 우리들이 편의주의를 따르면 실패하지만 좀 힘들어도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살면 은혜를 입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좀 더디고 힘들다고 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산다면 반드시 큰 은혜를 덧입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이런 삶이 우리모두에게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제: 삶 전체로 노래
성경: 역대상 15:16-24
다윗는 하나님의 법궤가 다윗 성에 안치되는 것을 인생의 최고의 기쁨과 영광으로 삼고 백성들과 함께 찬양과 감사를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다윗은 주변의 사람, 악기, 재능을 총 동원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백성들과 함께 감격과 감사의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럼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윗이 하나님께 드렸던 찬양이 어떤 찬양이었는지 살펴보면서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첫째로: 감격의 찬양이었습니다.
다윗은 백성을 명하여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소리를 내면서 즐겁게 노래하라고 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상징하는 법궤의 거룩성과 고귀성을 익히 인식하고 최고의 감격과 찬양을 드리게 된 것입니다. 다윗의 이런 행위는 영감에 의한 것이고 다른 인간적인 수단과 잔꾀가 섞일 여지가 없는 순수하고 고결한 찬양의 제사 그 자체였으므로 하나님께서도 기뻐 열납 하셨습니다. 영감에 의한 하나님의 실존 앞에서 우러나오는 감격과 환희의 예배가 오늘도 요청됩니다.
둘째로: 다윗이 하나님께 드렸던 찬양은 조직적인 찬양이었습니다.
다윗의 찬양대는 당대의 모든 악대를 동원한 찬양대였습니다. 개인적인 악기 사용은 고대로부터 있어 왔으나 조직적으로 찬양대를 조직하여 찬양한 것은 다윗 때에 처음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아름다운 노래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드렸던 찬양은 조직적인 찬양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가 아닌 영감이 넘치는 속에서 나온 찬양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이 드린 찬양은 삶 전체의 찬양이었습니다.
모든 백성은 속으로 노래를 부르고, 찬양대는 악기와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양하자 모든 만물이 어울려 창조주 하나님께 지극히 거룩한 찬양을 드린 것입니다. 인간이 몸과 마음과, 물질, 악기, 재능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런 삶을 살아가는 복된 날이 되어지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제: 다윗의 제사
성경: 역대상 16:1-3
이스라엘 역사가운데 다윗의 위치는 확고하고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는 몇 번의 죄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충실한 일꾼으로 남아 있었으며, 이스라엘 열왕들의 모델로 제시되었습니다. 주를 사랑하고 온전히 주를 의뢰하는 사람들은 연약함과 허물들이 있을 지라도 귀한 일에 쓰임을 받는 법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았던 다윗의 제사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어떤 제사를 드렸는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다윗은 하나님을 중심에 모셨습니다.
다윗은 오벳 에돔의 집에 있는 언약궤를 운반하여 자기를 위해서 친 장막의 가운데 두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합니다.
하나는] 다윗이 하나님을 사모했다는 사실입니다.
다음은] 그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는 사람이 경건한 사람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둘째로: 다윗은 하나님과의 평화를 추구했습니다.
다윗이 드린 제사는 하나님과의 평화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제사를 통해서만 이일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인류와 세계가 추구해야할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과제가 바로 하나님과 평화하는 일이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평화해야 우리의 모든 삶이 형통 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는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다윗의 제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제사였습니다.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측량할 수 없는 은혜 주셨음을 이 새벽 시간에 다시 기억하고 다윗과 같이 항상 감사하는 복된 삶이 되어지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제: 주께 감사하라
성경: 역대상 16:7-15
성도로서의 모본, 사역자로서의 모본을 가장 완벽하게 보여준 사람은 사도바울 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모든 일에 감사하기를 힘썼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비록 생활이 어렵고 원치 않는 곤경에 처하게 될지라도 불평하는 대신 감사하게 마련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권면하는 내용으로 다윗이 말하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행사를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8절). 많은 은혜를 받았음에도 입을 다물고 잠잠히 있는 사람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의 사실들, 즉 복음을 전파하도록 위임을 받았기 때문에 힘써 이일을 해야 합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이에 대해 증거 할 책임이 따르는 것인데, 이 책임에 대한 성실성 여부가 감사의 분량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해야 합니다.(10절)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합니다. 좋은 일에서만 아니라 어려운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요,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사람입니다. 일이 잘 될 때는 누구나 즐거워 할 수 있지만 일이 막히고 어려움이 극심한 환경 속에서는 즐거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에 구애받음이 없이 즐거워하는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지켜야 하겠습니다. (15절)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지킵니다. 신앙의 연륜이나 교회에서의 직분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세상을 쫓거나 불의와 타협하는 사람들은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지켜 행하는 삶을 살수 있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주제: 다윗의 갸륵한 믿음
성경: 역대상 17:1-2
하나님께서는 사방의 모든 대적을 다 멸하게 하시고 다윗 왕으로 하여금 백향목으로 지은 아름다운 궁에 거하면서 평안한 삶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때에 다윗은 휘장 안에 초라하게 있는 하나님의 궤를 생각하며 괴로워하면서 하나님의 궤를 모실 성전을 자기 손으로 지어 드리려는 갸륵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 본문에서 발견하는 다윗의 신앙 모습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다윗은 누리고 있는 백향목 궁궐의 평안함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았습니다
사무엘 하 7장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 여호와의 궤를 모실 성전 짓기를 생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다윗은 자기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백향목으로 지은 호화롭고 아름다운 왕궁에 평안히 거하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자기 사방의 대적들을 파하게 하심으로 누리는 축복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우리도 현재 누리고 있는 삶이 하나님의 은혜 때문임을 실감하면서 살아가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다윗은 백향목 궁에서 법궤를 모실 성전을 생각했습니다.
누가복음12장 16절 이하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는 풍성한 소출을 창고에 가득 쌓아놓고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했습니다. 사람은 백향목 궁궐에서 잘 먹고 잘 지내면 자기를 생각하기 쉽고 교만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호화로운 백향목 궁에 거하면서 호의 호식하고 있을 때 자기에게 주어진 축복의 기회를 자기를 위해 살 생각보다 복을 내려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단 선지자에게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여호와의 언약궤는 휘장 밑에 거하도다"라고 말한 것을 봅니다. 이렇게 말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실 성전을 아름답고 귀하게 지어 모시고 싶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모든 것은 이웃과 하나님을 위한 것임을 알고 평안하고 은혜를 누리면서 살 때일수록 하나님을 더욱 깊게 생각하는 삶이 되어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제: 다윗의 믿음과 祝福
성경: 역대상 17:3-15 419, 458, 530
자신이 오늘날 누리는 모든 축복이 하나님의 은혜 때문임을 고백한 다윗은 하나님께서 거할 전을 건축할 계획을 세우고 나단 선지자와 의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거부하셨습니다. 이에 반응한 다윗의 신앙적인 자세와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다윗은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고 하는 마음은 지난날 자기와 자기 백성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에서 울어 나왔습니다. 그는 억지가 아닌 기쁜 마음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성전 건축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있던 터에 하나님께서는 이를 허락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다윗은 무척이나 섭섭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불평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때에 자기의 뜻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뜻이 아무리 좋았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실 때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랐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이 참된 믿음이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믿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둘째로: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도록 살았습니다.
다윗은 백향목 궁에 거하면서 교만치 않고 주어진 祝福의 기회를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일을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생각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겠다는 생각으로 굳어졌던 것입니다. 다윗의 이런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생각이었는데 이것이 하나님 마음에 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마음에 들도록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오늘 본문 7절에서10절까지의 말씀을 보니 하나님께서 들에서 양을 치는 목동 다윗을 취하여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시고 어디든지 함께 동행하시고 모든 대적을 멸해주시고 존귀한 이름을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신약성경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가이사랴의 고넬료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도록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욥바에 있던 베드로를 그의 집에 보내어 그와 온 가족 친지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힘입는 복을 주셨던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도록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늘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도록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주제: 은혜에 대한 감사
성경: 역대상 17:16-22 230, 538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성전건축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을 알게된 다윗은 곧 하나님의 장막에 들어가 자신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에 대해서 깊이 감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다윗을 통해 몇 가지로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첫째로: 다윗의 겸손을 볼 수 있습니다.
16절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 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다윗은 지금 이스라엘 왕이라는 당당한 자리에 있지만, 지난 날 미천하고 보잘 것 없는 한 목동에 불과 했음을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누리고 있는 자신의 영광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임을 인정하고 왕의 자리에서도 오히려 겸손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17,18절에 다윗의 감사내용인데 18절을 보니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존귀에 대하여 다윗이 다시 무슨 말씀을 하오리까?"라고 고백하는 것을 봅니다. 이 고백은 이미 자기에게 이루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 감격하고 또 앞으로 베풀어주실 은혜에 대해서 믿고 감사하는 다윗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고 감사 할 줄 아는 다윗이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바르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은 더욱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은혜를 감사한 다윗은 이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20절에서 22절이 다윗이 하나님을 높인 부분으로 다윗은 자기와 자기 민족가운데서 이루신 역사를 볼 때 하나님이야말로 참 신이시고,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애굽에서 구속하시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신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이스라엘을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 사랑과 은혜를 알고 자신의 위치에서 교만치 않고 겸손하여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려드리는 아름다운 신앙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이런 아름다운 신앙을 배워 하나님을 더욱 잘 섬겨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풍성히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주제: 다윗의 확신과 간구 474, 513
성경: 역대상17:23-27
다윗은 본문에서 이미 자기와 자기 민족에게 이루신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기와 자기 백성에게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믿음 안에서 확신하면서 다음과 같이 간구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다윗의 간구 내용입니다
다윗은 종과 종의 집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견고케 하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여서 다윗이 죽은 후 그 아들 중에서 또 왕을 세워 나라를 견고케 하시겠다는 약속이 성취되길 간구하고 있습니다. [23절]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집을 세울 것이며 자기의 아비가 되어 아들로 삼아주어 자비를 얻게 하시며 견고하게 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간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것을 확실히 믿고 간구 한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이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히 믿고 간구 한 것은 다윗의 아름다운 믿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둘째로: 다윗의 소망을 살펴보자
다윗은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히 주의 이름을 높여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해달라고 간구하며, 다윗의 집이 주님 약속하신 대로 흔들리지 않고 주 앞에서 견고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간구의 내용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이기에 다윗과 이스라엘을 위함도 되거니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의 의탁입니다
다윗은 27절에서 "여호와여 주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이 福 곧 약속해 주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영원히 누리리이다"라고 겸손히, 그러나 신실하신 주님을 믿음으로 의탁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다윗과 같은 믿음과 간구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성취되는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제: 승리의 하나님 94, 394, 528
성경: 역대상 18:1-8
본문은 다윗이 블레셋, 모압, 다메섹 그리고 아람을 쳐서 정복하고 그 영토를 유블데 강까지 확장시켜 그 세를 과시하던 때의 전쟁기록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렇듯 가는데 마다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 것은 다윗 자신의 위대함도 있었지만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다윗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로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다윗은 싸움터에 서야만 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된 이후 주변의 이방 민족과 끊임없는 전쟁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블레셋 민족, 모압족속, 소바 왕 하디에셀의 도전, 그리고 다메섹 아람 족 등에 의해서 도전을 받았고, 다윗은 이들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원하건 원치 않건 항상 어두움의 세력과 싸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점을 적절히 잘 경고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전서 5:8,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 하라"했습니다. 어두움의 세력과의 싸움은 영적인 싸움입니다. 그러기에 이 싸움에서 성도는 반드시 이겨야만 합니다. 마귀와의 싸움에서 패함은 영원한 파경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다윗으로 이기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위에 언급한 대로 무수한 이방 세력과 싸움에 직면했는데 본문 6절에 보면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본문의 말씀이 확실하게 증거 해 주는 대로 다윗의 전쟁에서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의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은 작은 물맷돌과 그 물맷돌을 사용하는 다윗의 기술 때문이 아니었고 다윗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었습니다. 악의 세력과의 싸움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나 홀로 싸우면 우리는 패 할 수밖에 업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싸움은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싸움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싸움에서도 반드시 승리합니다. 오늘도 이런 믿음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갈 때 범사에 승리하는 복된 날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주제: 삶의 아름다운 지혜
성경: 역대상 18:9-17 353, 512
다윗의 세력이 점점 강해지자 이웃에 있는 하맛왕은 자기 아들을 보내어 다윗과 화친하기를 청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윗 왕은 자신이 강해지고 왕국이 강해갈수록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백성을 잘 다스린 고로 나라가 더 흥왕 해 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삶을 아름답게 살았던 다윗의 지혜를 생각해 보게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다윗을 봅니다.
다윗은 하맛 왕 도우가 그 아들 하도람을 보내 화친할 목적으로 은 금과 놋그릇과 그리고 이방민족과의 싸움에서이기고 전리품으로 가져온 은 금도 자기를 위해 쓰지 않고 모두 여호와의 전에 드렸습니다. 그가 이렇게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림은 바울이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모든 싸움에서의 승리와 얻어진 은 금 그리고 영광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임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 한가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신 것이 없습니다.
둘째로: 다윗은 후환을 대비하는 지혜를 가졌습니다.
13절을 보면 다윗은 에돔을 점령한 후 그곳에 수비대를 두었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한 것은 후일에 에돔으로 인한 후환을 미리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지혜입니다. 점령한 이방 땅과 그 거민들을 효과적으로 능률적으로 다스리고 관련하려는 정치인으로서의 다윗의 지혜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우리도 이런 지혜를 배운다면 더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백성을 공과 의로 다스렸습니다.
14절을 보면 다윗은 자기에게 맡겨진 백성을 공과 의로 다스렸다고 말합니다. 절대 권력을 가지고 통치하는 왕이 될 때 그 주어진 권세를 가지고 잘못 남용하여 범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백성들을 위한 왕이 되었고 자기에게 권세를 주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통치자가 된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백성들에게 신뢰받는 왕, 하나님의 사랑 받는 왕으로서 자기의 권좌를 더욱 튼튼히 다지는 결과를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역시 다윗은 지혜로웠습니다. 이런 지혜를 꼭 배워야 하겠습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도록 도우시옵소서. 또 다윗과 같은 지혜로운 삶을 살게 하셔서 훗날을 준비하는 지혜를 가지게 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신뢰받고 하나님께 사랑 받는 권속들이 되어질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해 주옵소서.
주제: 은혜를 아는 다윗
성경: 역대상 19:1-5 353,512
암몬 왕 나하스가 죽고 그 아들 하눈이 아버지를 이어 왕위에 오르자 다윗은 지난날 나하스를 통해 받은 은혜를 기억하면서 조문 사신을 보내어 애도의 뜻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본뜻을 오해한 하눈과 신하들은 다윗이 보낸 사신들의 수염을 깎고 의복을 중동 볼기까지 자르고 돌려보냈던 것입니다. 이 사건 속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신앙적인 진리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을 줄 아는 다윗이었습니다
2절. 다윗은 나하스에 의해서 한때는 은혜를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하스가 죽었을 때, 그 아들 하눈에게 조문 사절을 보내 그 은혜를 감사하려 했던 것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기억하고 감사 할줄 아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둘째로: 다윗은 분을 억제 할 줄 알았습니다.(4,5절)
다윗은 진심으로 은혜를 갚기 위해서 조문 사절을 보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한 하눈은 도리어 사절들의 수염을 깎고 중동 볼기가 나오도록 옷을 찢어 일국의 사절의 권위를 짓밟고 수치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하눈의 몰상식한 행동에 대해서 다윗은 충분히 격분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다윗은 잘 참아 분을 자제하였습니다. 잠언 16장 32절을 보면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성품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5절)
다윗은 자기의 신하들이 크나큰 수치와 모욕을 당하고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서 그들의 수염이 다 자라기까지 여리고에 머물러 있게 했습니다. 이와 같은 다윗의 사려 깊은 태도는 다정하고 자상하며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그의 아름다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윗과 같은 이런 아름다운 성품이 너무나 좋다. 배우도록 하자.
주제: 하눈의 오판과 파멸
성경: 역대상 19:6-15 388, 395
[도둑이 제발 저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눈은 자신이 다윗의 사신들에게 행한 일로 인해 다윗이 분노를 산 줄로 알고 만반의 준비를 다하여 이웃 아람으로부터 병거와 군사를 삯 내어 선제 공격을 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공격해 온 암몬의 하눈을 향해서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를 내세워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암몬과 아람 연합군은 부끄럽게도 참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눈의 오판과 파멸을 통해 몇 가지로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첫째로: 어리석은 판단이 비참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다윗의 선의를 그릇 판단하여 정탐행위로 착각하여 다윗의 사신들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한 것이 결국 다윗에 대해서 불안한 마음을 갖게 했던 것입니다.
하눈은 막대한 전투비를 들여 외국 군인까지 삯을 내었으나 전쟁에서 참패하게 되어 스스로 파멸의 웅덩이를 판 어리석은 왕이 되었습니다.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뱀과 같은 지혜를 가지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얼마나 귀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라합의 지혜와 그의 정확한 상황 판단은 전시에 자기와 자기 가족을 구원할 수 있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악인의 길은 패망의 길입니다
암몬과 아람의 연하군은 외견상 마병과 병거로 무장한 막강한 군사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을 대적하는 악의 집단이기에 선과의 싸움에서 패망했던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1편 6절에서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잘 훈련되고 조직된 애굽 바로의 군사가 오합지졸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과 싸움에서 홍해에 순식간에 수장되고 만 결과를 생각해 보십시오. 악인의 길은 반드시 패망한다는 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형통을 결코 부러워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다윗 편에서 싸우셨습니다.
요압과 그 아우 아비새는 전쟁에 임할 때에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연합군과 싸웠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아람사람들이 도망가게 하셨고 또 암몬 자손들이 도망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은 우리 편이 되어주시고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승리케 하십니다. 이런 믿음으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의편이 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수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제: 이길 수 없는 전쟁
성경: 역대상 19:16-19 387, 519
이스라엘 군에 패한 아람군대는 재차 주변 군사들과 연합하여 하닷 에셀의 군대장관 소박을 앞장세워 다시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싸우러 왔습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은 다윗 왕을 위시해서 온 이스라엘 백성이 다 함께 일어나 그들과 싸워 전쟁을 다시 승리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아람군대의 2차 도전의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첫째로: 하닷 에셀의 어리석음을 봅니다(16절).
1차 전쟁에서 참패를 통해서 하닷에셀은 다윗의 군대와는 싸워서 이길 수 없음을 깨달아 알아야 했습니다. 다윗 군대는 전쟁을 이기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기에 다윗과 싸우는 전쟁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하닷 에셀은 처음에는 암몬의 요청을 받고 나가 싸웠으나 전쟁에서 패한 후 자기 자신과 국민의 자존심 때문에 자기에게 조공을 바치는 강 건너편에 있는 맹방들을 동원해서 전쟁에 임했다가 참패를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어떤 악의 세력도 무너지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로: 하닷에셀의 신복의 지혜를 봅니다(19절)
질 수 없다고 생각한 다윗의 군대와 싸워서 참패한 하닷 에셀의 하닷에셀의 신복은 다윗의 군대와는 어떤 연합군도 싸워서 능히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다윗으로 더불어 화친하여 그와 그 나라를 섬기기로 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인지 모릅니다. 이길 수 없는 상대인 다윗의 군대와 더 이상 싸운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패망의 길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이런 지혜를 얻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닷 에셀처럼 어리석은 삶을 살지 말고 그 신복처럼 지혜로운 삶을 살아드려 하나님의 은혜를더욱 풍성히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주제: 승전의 비결 377, 506
성경: 역대상 20:1-8
고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전쟁의 승패는 그들의 영적 및 도덕적 상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평화 할 때는 대부분의 전쟁에서 승리했으나 그들이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반역 할 때는 대부분의 전쟁에서 참패했습니다. 본문은 다윗 왕 때에 암몬과 블레셋을 격파한 전쟁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평화 했던 다윗은 일생동안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었으므로 그 명성과 위엄을 주변 여러 나라들에 떨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했던 다윗이 어떻게 했는지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다윗은 암몬을 정복하고 전리품을 얻었습니다.
암몬 자손을 치러갈 때 다윗은 그 지휘권을 요압에게 맡기고 예루살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사건은 바로 이 시기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성도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기 자리를 이탈하면 죄의 유혹에 빠지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든지 자기 자리를 바로 알고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에 다윗이 암몬 자손을 치러갈 때에 지휘권을 직접 행사했더라면 옥에 티라 할 '밧세바의 간통 사건이 기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튼 다윗의 군대는 암몬 족속을 쳐서 파하고 백성을 끌어내어 노예를 삼으며, 무수한 전리품을 노획하게 되었습니다.
힘이 없고, 방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모든 것을 빼앗기고 노예가 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마귀에게 조롱 당하지 않으려면 그리스도의 권능을 가져야 하고 성령의 검인 말씀으로 방비를 잘 해야만 합니다.
둘째로: 다윗은 블레셋을 쳐서 항복을 받아 냈습니다.
블레셋은 키가 크고 몸짓이 좋은 장대한 자의 소생들이 있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군대 앞에서는 이들도 전혀 힘을 쓰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군대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가장 강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깨우치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는 강한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할 때 우리는 강한 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어떤 블레셋도 능히 이기고 말 것입니다.
주제: 경계해야 할 죄
성경: 역대 상21:1-8 141, 403, 410
존재하는 모든 것들 가운데서 아마도 가장 끈질기고 생명력과 전염성이 강한 것을 들라면 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죄의 유혹은 도무지 포기라든가 단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죄의 유혹을 경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탄이 다윗을 격동하여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지 않는 것처럼 의심을 갖게 하여 다윗으로 죄를 범하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경계해야 할 죄를 다시 잘 마음에 새기려고 합니다.
첫째로: 사탄이 이스라엘을 대적했습니다.
1절을 보니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라고 했습니다. 원래 [사단]은, '공격하다, 고발하다, 대항하다'라는 뜻으로 선에 대한 대적자의 두목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사탄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것이 그가 하는 주요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단은 이스라엘로 죄를 짓도록 대적했던 것입니다. 사탄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하나님께 죄를 짓도록 했던 것처럼 오늘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 된 우리를 대적하여 죄에 빠뜨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깊이 자각하여 깨어 있음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근신하여 깨어 있지 못할 때는 사탄을 대적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다윗이 인구 조사를 명령했습니다.
1절을 다시 보니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 하게 하니라"했습니다. [계수]라는 말은 [수를 센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요압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인구 조사 명령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금하신 일을 행하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명령을 모를리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이렇게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잠시 한눈을 떼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잠시라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눈을 떼게 되면 예기치 않았던 불행을 초래하기가 쉽습니다. 성도의 길은 언제나 그 나라를 향한 순례의 길임을 잊지 말고 결코 느슨해 져서는 안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셨습니다.
다윗의 범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즉각적으로 치신 것을 봅니다. 7절에 "하나님이 이 일을 괘씸히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다윗의 범죄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보응 하신 것입니다. 죄란 이처럼 무서운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은 언제나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려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진리를 다시 기억하면서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를 꼭 붙들어 달라고 기도하시고 승리하는 하루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죄를 미워하시고 선을 기뻐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아침은 이스라엘과 다윗이 사탄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하나님의 징치를 받았던 것을 상고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가운데 죄라고 하는 것이 가장 끈질기고 전염성이 강한 줄을 압니다. 죄의 유혹은 포기도 단념도 모르게 합니다. 또 죄에 빠지게 되면 큰 불행을 가져오게 되는 것을 압니다.
주제: 하나님의 형벌!
성경: 역대상 21:9-17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로부터 기대하시고 바라시는 유일한 기쁨은 당신께 대한 신뢰와 순종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얼마든지 쓰임 받는 일이 많아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 특별히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불신한 죄의 무서운 결과에 대해서 교훈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선견자 갓을 통해 하나님의 형벌이 선고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친히 선택하여 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추천을 필요로 하지도 않으시며, 이력서나 신상명세서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을 찾으셔서 당신의 일을 맡기십니다. 다윗이 범죄 했을 때 곧 하나님께서 금하신 인구조사를 했을 때 그 범죄에 대한 재앙의 선포는 선지자 갓을 통해 주셨던 것입니다.
평화에 대한 선포는 누구나 환영하는 일이므로 이를 선포하는 사람도 즐겁지만, 재앙의 메시지는 결코 유쾌한 일이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들은 메시지의 내용에 관계없이 받은 그대로를 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 갓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다윗을 찾아가 하나님께서 내리실 다윗 스스로 결정하여 말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맡겨진다면 그대로 순종하는 신앙을 갖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온역을 내리셨습니다.
인구조사에 대한 형벌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온역으로 이스라엘 중에서 죽은 사람이 자그마치 칠만이나 되었습니다. 14절에 "이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온역을 내리시매 이스라엘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이었더라"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임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받았던 다윗이었지만 죄에 대해서는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죄에는 결코 성역이 없음을 분명하게 교훈 해 주고 있습니다. 죄는 그만큼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곧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방해물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무리 조금한 죄라 할지라도 철저하게 보응 하셔서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의 참회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망령된 행위로 인하여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게 되자 다윗은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참회했던 것입니다. 16절과17절에 "다윗이 눈을 들어보매 여호와의 사자가 천지사이에 섰고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 편을 가리켰는 지라 다윗이 장로들로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아뢰되 명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자는 곧 내니이다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을 봅니다.
백성들이 당하는 재앙을 보고 견딜 수 없었던 다윗은 이 양 무리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시고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이 다윗의 위대한 점입니다.
참된 지도자의 자세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된 지도자는 양 무리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보다 보다 더 아프게 여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잘못으로 온 아픔이라면 철저하게 그 책임을 질 수 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세우실 때 양 무리의 본이 되는 삶이 되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주제: 상당한 값으로 재앙을 멈추게 한 다윗
성경: 역대상 21:18-30
모든 물건에는 값이 있게 마련입니다. 적건 많건 차이는 있을 지라도 값이 없는 것은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물건을 사려고 하면은 반드시 상당한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또 무엇이든지 얻으려고 한다면 대소간에 대가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범죄 한 후 하나님의 사자의 지시에 따라서 상당한 값으로 하나님의 재앙이 멈추도록 제사를 드린 것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시는 교훈을 얻도록 합니다
첫째로: 다윗은 주의 사자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사람이 직면하게 되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마찬가지지만 특별히 하나님과 관련된 문제들에 있어서 그 정확한 처방은 주의 지시를 따르는 것뿐입니다. 다른 길, 다른 처방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자기 자신의 불 신앙으로 이스라엘 가운데 내려진 하나님의 재앙을 완전히 멈추도록 하는 방법에 관하여 선견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처방을 따랐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행동은 참으로 지혜로운 처신이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신앙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무슨 문제들에 직면하게 될 때 사람의 도움이 아니라 그분을 의뢰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부터 6일 동안의 삶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고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처방을 따라 살수 있기를 祝福합니다.
둘째로: 다윗은 상당한 값을 지불하고 제물을 드렸습니다.
법궤를 다시 찾아오기 위해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 필요한 제물을 값을 지불하고 사서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이든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구제든지 값을 지불하지 않는 것은 그 가치가 그만큼 경감되는 법입니다.
내게 있는 것,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나누는 것이 참된 구제요, 내가 필요로 하는 것 가운데서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 값진 헌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사자에게 명하신 칼을 거두셨습니다.
하나님과의 평화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으로만 가능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지시를 따를 때 재앙이 멎었고 평화가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에 따르지 않는 어떤 것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늘 여러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살아드려 아무쪼록 이번 6일 동안 하루하루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주제: 준비하는 인생 217, 246
성경: 역대상 22:1-16
무슨 일이든지 빈틈없이 제대로 하려면 준비를 잘 해야 합니다. 준비가 없으면 규모가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헛점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인생은 끊임없는 준비의 연속이요, 신앙 역시도 그렇습니다. 준비하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준비합니다. 준비를 잘 한 사람은 훌륭한 인생을 살고 훌륭한 신앙의 열매를 내게 되는 반면, 그렇지가 못한 사람들은 인생도, 신앙도 실패하게 되는 법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준비를 잘 함으로 인생이나 신앙에 시행 착오가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전 건축을 위한 다윗의 준비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몇 가지로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첫째로: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1절에서부터 5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셨기 때문에 비록 자기 손으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수는 없었지만, 그분을 향한 열심이 특심 했기 때문에 자기 생전에 성전 건축을 위해 필요한 많은 것들을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자가 그분을 위해 열심을 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이는 하나님의 일에 결코 헌신적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답게 하나님을 위한 일을 늘 준비하는 우리의 삶이 되어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둘째로: 다윗은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위임했습니다.
6절에서 10절을 보면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자신이 그렇게 건축하기를 바랐던 하나님의 전 건축을 위임하는 것을 봅니다.
다윗의 신앙, 다윗의 경건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바램이 간절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금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위임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신앙과 경건은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좇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뜻을 철저히 배제하고 하나님의 뜻에 충실한 사람이 그 신앙과 경건을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게 됩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솔로몬을 훈계하고 격려했습니다.
이제 11절에서부터 16절을 보면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잘 교훈하며 격려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유약한 아들 솔로몬이 하나님의 뜻과 말씀가운데 바로 서고, 거룩한 전 역사를 잘 할 수 있도록 훈계하고 격려했던 것입니다. 훌륭한 부모님은 그 자녀들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도록 잘 가르칩니다. 오늘 어버이 날을 맞이한 우리 성도님들께서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아 오셨지만 사랑하는 자녀들을 더욱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도록 잘 양육할 것을 결단하시고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아침이 되어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제: 형통의 비결을 가르쳐 준 다윗 434, 446
성경: 역대상 22:11-16
부모가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많은 것을 물려줄 수 있지만 그중 에서도 가장기한 것은 주안에서 형통케 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많은 재산을 물려주는 것 보다 형통의 비결을 전수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고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솔로몬에게 이것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바로 형통의 길을 가르쳐 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형통의 길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주의 뜻을 좇아서 행해야 합니다.
형통케 되는 첩경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행하는 것입니다. 다윗 자신이 그랬듯이 이제 다윗은 아들의 형통을 소망하면서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할 것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11절 하반 절에 "여호와께서 네게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며"라고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13절에 "네가 만일 여호와께서 모세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든 율례와 규례를 삼가 행하면 형통하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행하면 형통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개인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순종하기를 힘써야 됨은 물론이고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의 뜻을 좇아 살 것을 늘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함에 있어서 가져야 하는 마음 가짐은 "강함과 담대함입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할 것을 말한 다음 이제 [강하고 담대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13절을 다시보니 "여호와께서 모세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든 율례와 규례를 삼가 행하면 형통하리니 강하고 담대하여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지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할 방해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 많은 장애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죽으면 죽으리라는 순교자적 정신을 가지고 주의 뜻을 좇는 자가 형통하게 되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여호수아가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그렇게 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형통했고 승리했음을 꼭 기억하고 나 자신이 그렇게 살며 또한 자녀들이 그렇게 살도록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 합니다.
형통케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만 합니다. 여건이나 환경의 불합리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모든 일들이 잘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솔로몬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분명 범사가 형통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계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불합리한 환경을 늘 극복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성도들에게는 결코 절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이런 소망을 그리고 믿음을 가지도록 더욱 격려하고 힘을 실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주제: 솔로몬을 도우라
성경: 역대상 22:17-19 379, 246
하나님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여 돕는 배필을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에게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 것을 창세기 2장 18절과 24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또 로마서 8장 28절 말씀을 보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동참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분이며 하나님의 뜻이며 복음을 든 자의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다윗은 모든 백성들에게 솔로몬을 도우라고 했습니다. 왜 솔로몬을 도우라고 했는지 또 어떻게 도우라고 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다윗은 왜 솔로몬을 도우라고 했습니까?
성전 건축은 여호와를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19절에 보면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이라고 했습니다. 성전건축은 왕 개인의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성전 건축은 하나님을 위한 거국적인 사업이었던 것입니다.
성전 건축은 신앙 고백 위에 즉, 복을 받은 자들이 할 수 있는 거룩한 사업이 되기 때문입니다. 18절을 보면 다윗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여 주셨고, 평강을 주셨으며, 거민들, 곧 가나안에 사는 백성들로 복종케 하시는 복을 주셨으니 솔로몬을 도와주라고 다윗은 백성들에게 명령했습니다.
둘째로: 다윗은 솔로몬을 어떻게 도우라고 했습니까?
19절에 "이제 너희는 마음과 정신을 진정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고 일어나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소를 건축하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보는 대로 다윗은 백성들에게 솔로몬을 돕데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즉 인격을 다하고 자신을 포기하고 동참하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거룩한 기구를 가져다가 드림으로 동참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돕고 또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는 전 인격을 다하여 그리고 내 자신을 희생할 때 온전해 질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를 중심으로 감사하면서 전 인격으로 하나님의 영광 위해 힘쓰는 복된 날이 되어지시기를 祝福합니다.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셨던 아버지! 하나님의 백성들이 연합하여 아버지의 일을 감당하게 하시고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주심을 감사합니다. 다윗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로 도울 것을 명했던 것을 보았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 도울 것을 명했던 것은 은혜 베풀어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아버지께서 함께 하시고 사면으로 평강을 주시며 가나안의 거민을 그 백성에게 붙이시고 복종케 하시는 복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윗은 솔로몬을 돕데 전인격으로 자신을 희생하며 동참할 것을 명했습니다.
주제: 레위 자손의 임무
성경: 역대상 23:1-6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에게 부여된 독특한 사명과 책임이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달란트라든가 은사는 모두가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자기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져야 하며, 이 분량에 충실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성도가 지체의 원리를 망각하게 되면 교회의 질서와 조화가 깨어짐은 물론이고 제 구실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다윗은 나이 많아 늙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 모든 방백과 제사장과 레위사람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레위 자손들에게 임무를 맡기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로 교훈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레위자손 중에서 계수에 포함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특별한 일은 아무나 원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계수 해 주신자만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도 보면 레위자손 중에도 30세 이상으로 계수 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레위자손 중에서도 특별히 뽑힌 자들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일을 맡아서 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 곧 영적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다시 뽑힘을 받아 귀한 사명들이 맡겨졌습니다.
따라서 특별히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나의 직분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직분은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내게 직분이 맡겨진 것은 나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으로 그 직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규모가 작든 크든 나의 직분에 대한 자부심도 가져야만 합니다.
둘째로: 계수 함을 받은 자들은 각자의 임무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30세 이상의 남자가 계수 함을 받았는데 그 수는 삼만 팔 천 이었고 저들에게는 각각 해야할 일들이 맡겨진 것을 4절과 5절에 잘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 일이든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몫으로 분담된 일을 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진리는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똑같이 적용이 되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꼭 필요한 대로 직분을 맡기시고 그 일을 감당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충성할 때 칭찬이 따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는 사람에게 언제나 요구되는 것은 충성이라는 것을 성경은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충성한 그를 주인이 되신 하나님께서는 인정해 주신 것을 봅니다. 그 충성의 대가로 또한 칭찬과 상급이 주어지는 것도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맡든지 충성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일의 분량이 문제가 아니라 충성여부에 따라서 칭찬과 책망이 주어짐을 다시 기억하고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또한 가정과 일터에서 최선을 다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많이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주제: 구별된 사람들 213, 354
성경: 역대상 23:7-20
사람이라고 모두가 같을 수 없습니다. 착하고 바르게 살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이라고 모두가 같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는 일들도 있는 법입니다. 본문 13절의 말씀을 보면 특별히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했던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3절을 중심해서 구별된 사람들에 관해 다시 한번 상고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별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레위 자손들에게는 하나님의 전에서 일하는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다시금 특별히 구별하여 세운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아므람의 아들들이라 했습니다. 아므람의 아들들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역을 위해 선택하신 일꾼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쳐 주시는 진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꾼들을 친히 선택하여 쓰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스스로 원하거나 추천에 의해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는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슨 직분을 맡든지 하나님께서 나를 특별히 부르셨다는 철저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함이 마땅하다는 것을 다시 마음에 새겨야 할 줄 압니다.
둘째로: 선택하신 사람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에 쓰시기 위해 택하신 사람들을 친히 성결케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직무를 감당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에서 부름을 받았던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은 직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격과 권위를 부여해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혹 과거의 부끄러운 전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연연하지 말고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봉사의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13절 하반 절을 보면 "여호와 앞에 분향하며 섬기며 영원토록 그 이름을 받들어 축복하게 되었으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봉사의 직무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봉사의 직무가 있게 마련입니다.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제사직을 맡기셨듯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봉사의 직무를 맡기셨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에 충실할 때 칭찬이 있고 또한 상급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어떤 일이 내가 원치 않는 일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맡기셨다는 것을 알고 최선을 다해야 마땅합니다. 지금껏 그랬듯이 오늘도 그렇게 사는 하루가 되어지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제: 거룩한 직임
성경: 역대상 23:21-32
거룩하다는 말은 그리스도밖에 있는 사람들도 종종 사용하는 단어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근원적인 의미에서는 전혀 다릅니다. 거룩하신 분은 하나님뿐이시므로 참된 의미의 거룩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파악되어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소외한 그 어떤 것들도 거룩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레위 자손들에게 부여해 주신 거룩한 직임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직임을 맡은 레위 자손들이 어떻게 어떤 일들을 했는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레위 자손들은 하나님의 전에서 섬겼습니다.
그들의 직임은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24절에 "이는 다 레위 자손이니 그 종가를 따라 계수함을 입어 이름이 기록되고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는 일을 하는 이 십세 이상 된 족장들이라"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일 얼마나 귀한 일이며 영광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서 특별히 레위 자손들만이 주의 전에서 섬기는 직임을 맡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상당수가 하나님의 전에서 봉사하는 일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이것은 시대의 신앙을 말해주는 척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늘 하나님의 전을 가까이 하게 마련이고, 하나님의 일에 봉사하기를 그 어떤 일보다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하늘에 소망을 두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전에서의 봉사를 게을리 하는 법입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면서 기쁨을 누리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둘째로: 레위인들은 감사로 찬송하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레위인들은 성전 안에서 찬송하는 직무, 곧 성가대의 일도 담당했습니다. 30절에 "새벽마다 저녁마다 서서 여호와께 축사하며 찬송하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축사는 곧 감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레위인들이 새벽마다 저녁마다 여호와께 축사하며 찬송했다는 말은 [감사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너무나 귀한 일이요, 중요한 일입니다. 이일은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이라야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본 교회는 찬양대가 없지만 앞으로 찬양대가 세워지고 찬양대원으로 일을 하게 된다면 감사함으로 그 일을 담당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법을 따라 봉사했습니다.
레위인들은 자신들의 직임을 행함에 있어서 철두철미 하나님의 규례를 좇아 행했습니다. 31절에 "또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에 모든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 명하신 규례의 정하신 수효대로 항상 여호와 앞에 드리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좇아 봉사하는 일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아무리 봉사를 잘 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규례대로 하지 못하면 칭찬을 받지 못합니다. 경기장에서 달음질 하는 사람이 규칙대로 해야 상을 받는 것처럼 하나님앞에서 봉사하는 일도 꼭 같은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아 행함으로 헛수고를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주제: 반차(차례, 반열)를 따라 섬김
성경: 역대상 24:1-5
아론 자손들은 제사직을 수행함에 있어서 차례를 정해 두고 질서 정연하게 봉사에 임했습니다. 공동체가 제 기능을 다하려면 질서와 조화의 유지가 무엇보다도 요구됩니다. 질서와 조화가 깨어진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이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든지 간에 구실을 다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본문은 아론 자손들이 차례를 따라 하나님을 섬긴 것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로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첫째로: 아론 자손들에게는 섬김의 직무가 분담되었습니다.
아론 자손들에게 분담된 직무는 계급이 아니라 섬김의 직무였습니다. 아론 자손들은 효과적인 사역과 섬김을 위해서 직무를 분담했던 것입니다. 3절 종반 절에 "저희를 나누어 각각 그 섬기는 직무를 맡겼는데"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의 직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를 비롯해서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한 지체를 분담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직임을 계급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다만 봉사의 위치와 분량의 차이뿐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는 더 귀하고 덜 귀한 것은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차등 없이 공평하게 나누었습니다.
아론 자손들이 제사직을 수행함에 있어서 차례를 정할 때 사용된 방법은 제비를 뽑는 것이었습니다. 5절에 "이에 제비뽑아 피차에 차등이 없이 나누었으니..."라고 했습니다. 제사직을 수행함에 있어 제비를 뽑은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제비를 뽑았다는 것은 첫째는] 공평을 기하는 것이요 둘째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적인 관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교훈을 받게 되는 것은 교회의 인사관리를 할 때 유의할 점은 인위적인 것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공평을 기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론 자손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겼습니다.
아론의 자손들은 자기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의 뜻을 좇아야만 했습니다. 자신들의 소견이라든가 백성들의 의사는 그들이 직무를 행하는데 특별한 영향을 미칠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섬겼던 것입니다.
오늘날교회 안에서의 직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법 아래서 모든 일을 행해야 올바르고 참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렇게 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하여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법 아래서 모든 일들을 행해야 하겠습니다.
주제: 다윗의 성가대
성경: 역대상 25:1-7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여러 가지 은사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병법에 익숙한 군인이었고, 시를 잘 쓰는 시인이었으며,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음악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오늘 우리들에게 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럼 다윗의 성가대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렸는지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다윗은 구별된 사람들로 오케스트라를 구성한 것을 봅니다.
다윗은 구별된 사람들로 오케스트라를 구성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1절에 "다윗이 군대장관들로 더불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 하되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보는 대로 소리를 낼 수 있는 모든 악기는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사용되어짐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호흡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데 사용되어 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재능이 인간적인 재능이든지 영적인 은사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다윗의 성가대는 찬양으로 감사하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성가대는 찬양으로 감사하는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3절 종반절을 보니 "신령한 노래를 하며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하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찬송의 중요성과 그 능력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찬양은 세상 노래가 아니며 잘 부르든 못 부르든 찬양은 하나님을 향한 노래입니다.
그래서 찬양은 참된 감사가 있을 때 불려지게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불려질 때 그 노래는 하나님을 위한 노래가 되어집니다. 찬양을 들릴 때 이런 마음자세로 부르도록 힘써야 할 줄 압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의 성가대는 부지런히 훈련하여 익숙한 솜씨로 찬양을 드렸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마찬가지지만 특별히 하모니를 생명으로 하는 성가대는 많은 훈련이 요구됩니다. 훈련의 땀이 밑거름이 되지 않는 다면 좋은 열매는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든 신앙 생활도 그렇습니다. 좋은 열매를 기대한다면 언제나 훈련이 필요하다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경건의 훈련은 우리에게 큰 유익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언제나 부지런히 훈련하시는 모든 성도님들과 가정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가 임하시기를 祝福합니다. 아멘
주제: 문지기들
성경: 역대상 26:1-11 359, 444, 457
아무리 귀한 것일지라도 관리를 소홀히 한다면 그 가치가 떨어지거나 도적을 맞게 되는 법입니다. 따라서 귀하고 값이 많이 나가는 것일수록 그 만큼 관리의 중요성도 증대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성전의 문을 지키는 사람들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성전의 관리를 맡은 사람들로서 일종의 수비대인 셈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봉사를 했는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반차를 따라서 봉사의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1절에 "문지기의 반차가 이러하니라..."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효과적으로 잘 하려면 질서가 있어야하고 짜임새가 있어야만 합니다. 훌륭한 재목들이 많고 또 열심히 있다고 할지라도 질서와 짜임새가 없다면 효과의 극대화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이 두 가지 곧 질서와 조직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일은 더 효과적으로 더 많이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밤낮으로 문을 지켰습니다.
문지기의 역할은 성전 입구만 지키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 전체의 경비를 담당하는 일종의 수비대와도 같았기 때문에 용사들을 필요로 했습니다. 거룩한 처소가 더럽혀지거나 성전의 물건들이 도적 맞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밤낮으로 문을 지켜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 부분을 영적으로 적용한다면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전인 자기 자신을 마귀와 세상의 오염으로부터 잘 지키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는 교회를 지키는 진리의 파수꾼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목회자를 비롯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지키는 진리의 파수꾼입니다. 그러므로 도적이 구멍을 뚫지 못하도록 잘 지켜야 합니다. 신앙적으로 신학적으로 혼탁하여 어지러운 시대일수록 문지기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잘 파수하는 진리의 문지기로 저와 여러분이 올바르게 잘 사용되어지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제: 성전의 문지기 355, 372, 519
성경: 역대상 26: 12-19
오늘 아침 다시 성전문지기를 상고합니다. 어제도 말씀을 드렸듯이 문지기란, 문을 지키는 사람, 즉 수문장을 말합니다. 그들은 출입하는 사람들을 체크하며 건물 및 기물을 보호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바로 그런 문지기들 특별히 성전 문지기들에 관해서 다시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 문을 지킨다는 것은 실제적으로도 중요하지만 영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곧 성전 문지기들은 이방인들을 비롯하여 합당치 못한 사람들이 출입하는 것을 통제해야 했고, 성전 안에 있는 중요한 기물들이 도적 맞지 않도록 잘 지켜야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나 교회에도 이 같은 문지기가 반드시 있어야만 합니다. 즉 비 복음적인 요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문지기, 복음적인 요소들을 도적질하지 못하도록 하는 지키는 문지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면 성전의 문지기들에 관해 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저들은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는 직임을 가졌습니다.
12절에 "이상은 다 문지기의 반장으로서 그 형제처럼 직임을 얻어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는 자라"했습니다. 성전의 문지기는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는 직임이었던 것입니다. 경건한 사람들은 악인의 장막에 거하는 것보다 주의 전의 문지기로 있게 되기를 소망했던 것을 시편 84편10절에서 보게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시는 직임은 무엇이든지 귀합니다. 제사장직만 귀한 것이 아니라 문지기 직도 동일하게 귀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직분이 우열의 관계가 없이 귀한 것입니다. 단지 기능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성도님들이 그 귀중 성을 알지 못하고 잘 감당하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둘째로: 문지기직은 제비를 뽑아 담당구역을 나누었습니다.
13절에 "각 문을 지키기 위하여 그 종족을 따라 무론 대소하고 다 제비 뽑혔으니"라고 했고 14절부터는 제비 뽑힌 사람들이 그 직임을 감당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언제나 제비를 뽑은 것을 보게됩니다. 이렇게 제비를 뽑은 것은 몇 칠 전에도 말씀을 드린 대로 인위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을 온전히 신앙하는 자세요, 공평을 기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이것이 꼭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절대 신앙하는 믿음과 공평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 인위적인 방법을 쓸 때 늘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재림의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문지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서 주인을 기다리는 문지기와도 같습니다. 깨어 지키는 자 기다리는 그 사람이 주님께서 오실 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오늘도 우리는 깨어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충직한 문지기가 되어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주제: 성물의 관리직
성경: 역대상 26:20-28 370, 374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성물을 관리했던 사람들에 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물이란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므로 그것을 관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이직임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셔서 당신께 속하게 하신 레위 지파의 사람들에게 맡겨졌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에서는 성물이 잘 관리되어져야만 합니다. 그럼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물 관리직이 무엇을 관리했는지 또 어떻게 일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성물이 드려졌는지 상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성물 관리직임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전 곳간과 성물 곳간을 관리했습니다.
20절에 "레위 사람 중에 아히야는 하나님의 전 곳간과 성물 곳간을 맡았으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전 곳간은 백성들이 여호와께 드린 헌물과 성전의 기구들을 보관하는 곳이었고, 성물 곳간은 전쟁에서 탈취한 전리품들을 보관하는 곳이었습니다. 즉 그 곳간들 안에 있는 기구들은 사람이 임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성물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관리 업무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아간이 여리고 성애서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 중 얼마를 훔친 범죄로 말미암아 약속의 땅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고 그 가족을 비롯한 모든 소유와 함께 아골 골짝에서 괴로움 가운데 죽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물이 이처럼 거룩하게 구별된 것이기 때문에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쳐진 성물을 임으로 합당치 못하게 사용하는 것은 큰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성물 관리직임을 맡은 사람들은 역할을 분담했습니다.
성전에서의 모든 직무는 각기 역할이 분담되었습니다. 성물을 관리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분담하여 일하는 것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교회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는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성도님들이 분담하여 일을 하게 된다면 효과는 크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소수를 중심 하여 모든 일을 하게 된다면 효과의 극대화를 기대하기란 어렵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나누어 하도록 하고 또 맡겨질 때는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구별하여 드려진 성물이 있었습니다.
26절 이하에서 구별하여 드려진 성물을 말해주고 있는데, 다윗 왕과 방백들이 드린 성물을 비롯하여 전리품 중에서 구별하여 드린 성물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헌물은 우리의 신앙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떠나게 되면 사람들은 하나님께 헌물을 드리지 못하는 법입니다. 우리는 늘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더욱 힘써야 되겠습니다.
주제: 정교의 일치 337, 387, 518
성경: 역대상 26:29-32
현대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말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정교의 일치라는 말은 생소하게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정치와 종교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일상 생활 전반에 관련된 업무, 즉 성전 직무 외에도 행정, 치안, 재판 등에 걸쳐서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이스라엘의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생각해 보고 교훈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각 처에서 자기 직무를 충실하게 행했습니다.
레위인들은 각자의 임무와 영역이 주어졌으며, 그들은 거기서 자신들의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했던 것입니다. 자기의 직무를 충실하게 행하는 것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자기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힘써야 마땅합니다.
우리 몸에 여러 지체가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교회에도 여러 지체들을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지체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따라 자기 직무를 충실할 때 하나님의 교회는 더욱 성장하게 될 것이며 세상에서 교회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정치와 종교의 일치를 보여 줍니다.
30절에 "여호와의 모든 일과 왕을 섬기는 직임을 맡았으며"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와 종교의 일치 문제를 오늘 우리의 현실 속에서 새롭게 이해하도록 해야 합니다. 신앙과 생활의 불일치라는 모순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그 본래적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음을 우리는 부인하지 못합니다. 정교의 분리의 개념이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쳐 신앙과 생활의 분리라는 기형적 현상을 초래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정치와 교회는 별개라 하더라도 신앙과 생활은 일치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숫적 증가와 함께 신앙적 영향력은 사회 각계 각층에 파급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사회는 더욱 밝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자신부터 신앙과 삶이 일치를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주제: 군대의 조직
성경: 역대상 27:1-15
군대란 군사적 목적을 위해서 조직된 무리를 일컫는 말이지요. 다윗에게는 이십 팔만 팔천 이라는 대군이 있었습니다. 군대의 임무는 적과 싸우는 것이므로 평화시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평화시나 전시를 무론 하고 군대의 역할을 중요합니다. 즉 적이 언제 공격을 할지 모르는 데다가 평화시라도 군대를 해산하게 되면 조직적인 훈련과 비상시의 소집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군대를 항상 유지시켜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다윗의 군대 조직을 말하고 있는 데 여기서 몇 가지로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첫째로: 다윗의 군대는 각 대별로 나누었습니다.
다윗의 군대는 열두 반으로 조직되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2절에 정월 첫 반부터 15절의 십이월 열 둘째 반까지 곧 12반으로 조직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조직은 매우 필요한 조직이었습니다. 곧 효과적인 군대를 통솔하고 작전 명령을 수행하려면 조직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도 조직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리스도의 군대로서 조직이 잘 되어야만 사령관이신 그리스도의 명령이 일사불란하게 수행되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다윗의 군대는 매월 번갈아 가면서 근무했습니다.
다윗의 군대는 매월 각 반별로 근무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곧 봉사의 기회를 동등하게 부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에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일이 중요하고 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는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자신의 달란트를 최대한 활용하고 하나님을 더욱 영화롭게 하도록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기회가 주어질 때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발휘 할 수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적인 군사입니다. 그리스도의 군사 된 그리스도인들은 좋은 군사가 되도록 항상 훈련을 힘쓰고 군사로서 본분을 잊지 말도록 해야 합니다. 평화시라고 해서 결코 게을러서는 안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적 마귀는 항상 기회를 엿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는 특별히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임을 알고 그리스도 때문이라면 어떤 고난도 잘 받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제: 여호와를 위한 열심 253, 319
성경: 역대상28:1-8
누구에게 있어서나 열심히 산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문제는 그 열심이 누구 혹은 무엇을 위한 열심이냐 하는데 있습니다. 좋은 일에 열심을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좋지 못한 일에 열심을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열심을 내되 좋은 일, 칭찬 받는 일에 열심을 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와를 위한 다윗의 열심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위한 다윗의 열심을 통해 몇 가지로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첫째로: 다윗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원하여 재료들을 준비했습니다.
다윗은 항상 자신을 왕으로 세우시고 여러 환난 가운데서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하려고 힘썼던 것입니다.
다윗이 성전 건축을 위해 필요한 재료들을 준비하고 자기 생전에 이 역사를 이루기 원했던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했던 사람,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말씀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힘썼던 사람, 누구보다도 여호와를 위해 열심을 냈던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의 이런 모습은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훌륭한 신앙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주를 위해 열심을 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다윗처럼 하나님을 향해 뜨겁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전 건축을 아들 솔로몬에게 위임했습니다.
다윗은 자기 생전에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큰 역사를 자기 손으로 이루기를 원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만류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아들 솔로몬에게 그 일을 위임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한 열심을 품을 지라도 하나님의 따르는 일보다 귀한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는 일이 무엇보다 귀함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좇아 행할 수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순종하여 영원히 복을 누리도록 권고했습니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나라나 백성은 영원히 견고하게됩니다. 과학을 발달시키고, 경제를 성장시키며, 문화의 창달을 꽤하는 것 보다 우선 되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일을 우리의 자녀들에게는 물론이고, 우리와 함께 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잘 알려주어 그들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복을 받아 누리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그 일을 잘 하기 위해 아버지께 기도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제: 철저하고 빈틈없는 삶
성경: 역대상 28:9-19 413, 483
무슨 일을 하든지 철저하고 빈틈이 없도록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은 아무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실하게 모든 일에 임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합니다. 철저하고도 빈틈이 없다는 말은 완벽하다는 것보다는 성실하게 자기 직무를 수행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성경은 맡은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 '성실함'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모든 일에 성실했던 보기 드문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삶의 자세가 요구됩니다. 능력이나 수완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는 것이 성실이며, 우리는 우리의 직책에 대한 평가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이 성실을 인정받도록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실이라는 사실을 다시 기억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다시 상고하며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첫째로: 다윗은 솔로몬을 훈계했습니다.
9,10절을 보자. 다윗은 사랑하는 아들 솔로몬에게 영혼의 모든 비밀을 아시며, 심장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숨길 수가 없음을 알아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기도록 훈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적 역량이나 국력을 키우는 인간적인 모든 수단들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을 좇는 왕이 되도록 한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참으로 훌륭한 가르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알아야 자신의 사명의 고귀함을 알게 되고 그 일에 매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할 줄 알아야 하겠고 또 자녀들에게 그리고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하는 믿음의 가족들에게 하나님을 잘 경외할 것을 먼저 가르쳐 줄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다윗은 성전의 식양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11-13절을 보자.
다윗은 성전의 식양 곧 설계도를 자세하게 솔로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은 반드시 그 식양대로 건축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성전건축의 식양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던 성전의 식양을 솔로몬에게 잘 전수 해 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모든 것들을 할 것을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아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내가 바르게 깨닫고 또 하나님께서 명하신 바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일을 잘 감당 할 수 있는 우리의 신앙이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주제: 강하고 담대 하라
성경: 역대상 28:20-21 444, 494, 497
아들 솔로몬에게 철저하고 빈틈없이 모든 것을 잘 전수했던 다윗은 이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데 강하고 담대하게 이 일을 행하고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고 다시 격려하고 있음을 봅니다. 분명 강하고 용기 있게 사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고 위대한 발자취를 남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왜 솔로몬에게 강하고 담대 하라고 격려했는지 그 이유를 함께 생각해 보면서 우리 신앙에 접목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20절 중반 절 이하에 "네가 여호와의 전 역사의 모든 일을 마칠 동안에 여호와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사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이 [내가 너와 함께 하리니 강하고 담대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아무도 그 역사를 중단할 수가 없습니다. 대적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 길이 평탄하고 형통케 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힘과 용기의 근원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협력자들이 있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 하라고 했습니다.
21절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이 있으니 여호와의 전의 모든 역사를 도울 것이요 모든 공역에 공교한 공장이 기쁜 마음으로 너와 함께 할 것이요 모든 장관과 백성이 온전히 네 명령아래 있으리라"했습니다. 큰 역사일수록 많은 협력자들을 필요로 하는 법입니다. 다윗이 솔로몬을 격려하면서 그 두 번째 이유로 좋은 협력자들이 많이 있음을 들었던 것입니다.
교회나 기업 국가를 막론하고 좋은 협력자들이 많으면 그 지도자는 충분히 지도력을 발휘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가 주의 사역을 위해서 좋은 협력자들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주제: 성전건축을 예비한 다윗 왕
성경: 역대상 29:1-9
다윗 왕은 온 회중을 향하여 솔로몬에게 맡겨진 예루살렘 성전 건축의 대업에 협조할 것을 당부하는 것을 봅니다. 1절을 보면 "이 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말을 꺼내고 있습니다. 성전 건축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로서 인생의 일 중에 가장 보람차고 거룩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모든 것을 예비했던 다윗 왕의 신앙을 다시 생각해 보면서 진리를 붙들려고 합니다.
첫째로] 성전건축은 하나님의 큰 역사라고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성전건축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권력과 재물로 되는 일이 아니며 재능과 기술로 되는 일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스가랴 선지자는 말하기를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스가랴 4장6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전 건축은 너무나도 거룩한 일이기 때문에 거룩한 신앙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둘째로] 다윗 왕은 성전 건축을 위해 솔선 수범했습니다.
2절을 보면 다윗 왕은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예비헸노라고 말합니다. 또 3절을 보면 "나의 사유의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 왕은 힘을 다하여 성전 건축을 예비했습니다.
다윗 왕은 먼저 백성들에게 솔선수범을 보이기 위해서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봉헌의 의미는 소유보다 믿음이 중요합니다. 또 현세보다 내세가 중요합니다. 또한 인간보다 하나님이 더 앞서야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질 때 이런 의미로 아름답게 드려지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윗 왕과 백성들은 성심으로 드렸습니다.
9절에 "곧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며"라고 했습니다. 봉헌은 액수의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드려지는 예물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으며 본인에게도 결코 기쁨이 없습니다. 동방의 의인 욥이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한 고백은 참된 봉헌의 정신이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질 때 또 드릴 때 이런 마음으로 드려지기를 소망합니다.
주제: 풍성한 제물
성경: 역대상 29:20-22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의 풍성함은 두 가지 기준에 의해 평가됩니다. 그 하나는 사람의 관점으로서, 헌물의 동기라던가 태도, 마음가짐 등 내적 요소들은 무시하고 드려지는 제물의 양에 따라서만 평가하는 관점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관점으로서 사람이 보는 것과 같은 외형적인 요소가 아니라 내적인 요소를 중시하여 평가하는 관점입니다. 한 과부의 두렙돈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외적인 평가가 아니라 내적인 요소를 중요시하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녀의 연보를 평가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솔로몬에게 왕위를 전위하면서 하나님께 드린 풍성한 제물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몇 가지로 진리를 붙들게 됩니다.
첫째로: 다윗은 온 백성들로 하나님을 송축하도록 했습니다
[송축]이라는 말은 찬양한다는 말로서 성전 건축을 위해 하나님께 자원하여 풍성한 제물을 드리고 또 족장들로 드리게 했던 다윗은 이제 백성들에게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명했습니다. 이때 온 會衆이 자신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는 광경을 20절에서 보게 됩니다. 다윗은 일생동안 많은 고난을 겪었음에도 하나님 찬송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다윗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안다면 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부지런히 해야하겠습니다.
둘째로: 백성들이 여호와께 풍성한 제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한 백성들은 다음날 풍성하고 넘치는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음을 볼 수 있습니다. 21절에 "이튿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또 번제를 드리니 수송아지가 일 천이요 수양이 일 천이요 또 그 전제라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풍성한 제물을 드리고"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이렇게 풍성한 예물을 드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였으며, 영원한 평화를 기원하는 소망이 담긴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런 삶이 되어야 할 줄 압니다. 매일 매일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는 산 제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현재 내가 사는 이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우리는 단 하루도 온전히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솔로몬과 사독에게 기름을 부어 왕과 제사장이 되게 했습니다.
왕의 직책, 그리고 제사장의 직책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그 주요한 직책을 기름을 부어 세웠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직책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가진 직책을 가지고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힘쓰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삶은 더욱 복된 삶으로 이끌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제: 형통한 왕 솔로몬
성경: 역대상 29:23-25 489, 516
분명한 목적을 향해 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길이 평탄하기를 소망합니다. 걸리는 것이나 장애물이 많으면 그만큼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이 늦어질 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다윗 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솔로몬의 형통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의 형통은 하나님께서 주신 형통이었는데 우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면 모든 일이 형통케 될 것입니다. 그럼 오늘 말씀에서 몇 가지로 교훈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솔로몬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솔로몬의 즉위는 단지 다윗 왕가의 보좌에 앉은 것뿐만 아니라 여호와께 속한 位에 앉았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언약의 확실성, r그리고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고 따르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약속을 받는 자가 아니라 약속에 참예하는 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모든 방백과 용사 그리고 다윗의 아들들이 솔로몬에게 복종했습니다(24절).
어느 왕조나 왕권을 둘러싼 음모, 시기, 질투 반목 등 아름답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등극과 함께 이러한 요소들이 온전히 제거되었던 것입니다. 왕이 아무리 유능하다고 할지라도 잘 다르고 합력하는 사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어떤 왕이라도 그 지도력을 잘 발휘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셨으므로 모든 신하들과 왕자들이 잘 따르고 협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편이 되신다면 이렇게 모든 자들이 협력하고 형통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더욱 이런 은혜가 넘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왕의 위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형통케 하셨을 뿐만 아니라 심히 존대케 하셨고 왕의 위엄을 주셨습니다. 25절
여기서 분명하게 교훈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위를 주셔야만 그 권위가 참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권위를 주심으로 누구보다 존대케 되어지는 복을 얻을 수 있도록 또 우리의 가족들이 그런 은혜를 받아 누리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주제: 하나님의 도우심
성경: 역대상29:26-30 365, 496
인간의 생애를 평가하는 기준에는 인본주의적인 관점과 신본주의 적인 관점이 있습니다. 인본주의적인 관점은 인간의 능력을 중점적으로 평가하는데 반해서 신본주의적인 관점은 인간의 능력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에 초점을 맞춥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생애를 마감하면서 우리에게 귀한 사실을 교훈 해 주는 말씀입니다. 그의 일생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의 일생이었습니다. 다윗이 남긴 부귀 영화나 남긴 모든 업적들이 분명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일어났음을 봅니다. 몇 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로 온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아버지의 양 무리를 돌보는 보잘것없는 신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선정을 베풀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사람을 얼마든지 높일 수도 있고 낮추실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사람은 인간적인 조건들을 충족시키기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그 사람을 높여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다윗은 나이 많아 늙도록 부와 존귀를 누렸습니다.
믿음과 순종에 대해 하나님께서 주신 상급이 장수와 부와 존귀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인생에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다면 다윗과 같이 나이 많아 늙어도 부와 존귀를 그리고 장수의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도록 우리 믿음을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의 시종 행적이 책에 기록되었습니다.
다윗에 관한 모든 것은 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행하는가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책에 낱낱이 기록되고 있음을 알아 경거망동함이 없도록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수정의 여지가 결코 없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우리도 우리 인생에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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