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제일 되는 사명 (막 16:15~20)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그들은 삶의 목적이 분명하고 우선순위를 분명히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순위란 무엇입니까? 우선순위는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중요하긴 한데 오늘 꼭 해야 할 긴급한 일이 있고 중요하긴 하지만 천천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먼저 해야 할일과 나중해야 할일을 잘 분별해서 일할 때 일이 효율적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것을 우선순위로 삼는다는 것은 그것에 더 많은 우리의 노력을 경주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대부분 내 삶의 우선순위는 나의 사명과 일치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에 우선순위는 무엇일까요? 아니 성도들의 제일 되는 사명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 속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주로 어떤 일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셨습니까? 예수님은 그 분이 오신 목적을 누가복음 19장 1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구원하는 것이 주님의 우선순위라고 말합니다. 마가복음 1장 38절에 보면 복음서 초기 사역 때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일을 위하여 왔노라.”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전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이 공생애 3년을 마치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40일간 제자들과 같이 있다가 승천하실 때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준 명령이 무엇입니까? 복음 증거의 명령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마가복음 16장 15절에 말씀도 동일한 말씀입니다. “너희는 온천하에 다니면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의 우선순위는 복음전파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목적을 위해서 살아가시다가 위대한 일을 위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태복음 28장 19절 이하의 말씀이나 마가복음 16장 15절을 지상 대명령 혹은 자상 대위임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의 많은 비유의 이야기 속에서도 중심은 잃어버린 자의 회복입니다.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었는데 저녁에 개수하다보니 한 마리가 부족했습니다. 아흔 아홉 마리를 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서 온 산과 들을 해매입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돌아올 때는 어깨에 메고 기쁘게 돌아와서 온 마을 사람들을 불러서 잔치를 벌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양 한 마리를 찾은 것과 잔치 비용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목자의 마음은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 그 감격이 크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동전의 비유도 그렇습니다. 한 여인이 동전을 잃어버렸는데 그 동전을 찾다가 찾았을 때 너무나 큰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탕자의 비유는 사실 돌아온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방탕한 삶을 살다가 걸음뱅이가 되어 결국 갈 곳이 없어서 아버지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자가 회복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의 제일 되는 사명이 무엇일까요? 그것도 바로 예수님의 사역과 일치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고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이 성도의 제일 되는 사명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바울은 자신의 사명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니” 나의 달려갈 길이 무엇입니까? 내 인생의 사명입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생명도 아깝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바울의 사명이라면 그것이 오늘 우리의 성도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 후서 4장 2절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증거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원하시는 가장 아름다운 소원이 있다면 그것도 바로 복음증거입니다. 디모데 전서 2장 4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영혼의 구원이요 우리에게 주어지는 사명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서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 34절에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너희에게 할 일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 먼저 할일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증거의 사명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9장 58절에 예수님은 한 제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 그런데 그 사람이 말합니다. “저희 아버지가 지금 돌아가셔서 장래식을 치러야 하는데 장래식을 치르고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죽은 자들의 장래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두고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여러분 그 말의 의미가 있습니다. 꼭 육신의 부모의 장래를 지금 당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부모님이 언젠가 돌아가실 것인데 돌아가시면 장래를 다 마치고 나서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주님은 개인의 일상사보다도 복음증거, 하나님 나라의 증거를 더 우선순위로 삼으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의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복음 전파하는 것이 여러분의 삶의 사명이요 우선순위인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왜 명령이 중요할까요? 첫째는 왕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왕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시고,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십니다. 왕 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것은 왕이신 우리 주님의 명령입니다.
여러분 예전에 왕의 명령을 뭐라고 합니까? 어명이라고 합니다. 세상 어떤 상황 속에서도 “어명이요.” 하면 끝이 납니다. 사형 직전에도 어명이라고 하면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살 것 같은 사람도 “어명이요.” 하고 사약을 내리면 두말하지 않고 받아야 합니다. 내가 왜 사약을 받아야 하는지 이걸 먹고 몇 시간 후에 죽는지를 물어보면 안 됩니다. 그냥 먹는 것입니다. 왕의 명령이 곧 어명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전도의 명령은 주님의 명령이요, 왕의 명령이요. 어명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같이 따라 해보세요. “전도는 어명입니다.” 어명을 거역하면 큰일 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명령입니다. 왕이 내린 명령 이것이 전도의 명령입니다. 여러분 왕의 권위를 가지고 민정을 살피는 사람을 암행어사라고 불렀습니다. 암행어사에게는 마패가 주어지고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마패를 보여주면 누구 던 꼼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암행어사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그의 뒤에는 사복을 입은 많은 군졸들이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암행어사 출도요 하면 많은 군졸들이 그의 권위를 세워줍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암행어사의 권위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전도자의 권위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는 곳마다 능력과 권세를 부어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님의 명령 마가복음 16장 1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천하에 다니면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을 것이라.” 우리가 복음을 증거 할 때 그 복음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만은 그것을 거절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우리 전도자들에게는 놀라운 능력을 함께 겸해주셨습니다. 17절, 18절을 보겠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능력을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여러분 암행어사에게 왕의 권위를 주었듯이 우리 전도자들에게도 능력과 권세가 있습니다.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나아가 복음을 증거 할 때 이런 능력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복음전도를 방해하는 악한 세력들에게 명령할 때 귀신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또한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고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주신 권세입니다. 그래서 선교지에서는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생 청년들이 제 3세계에 단기선교를 가서 그곳에서 그들이 기도하는데도 놀라운 능력이 많이 나타납니다. 성경이 말하는 이런 능력과 권세는 복음 증거를 위해서 필요합니다. 복음이 증거 되기 위해서 병도 치유하시고 귀신도 쫒아내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 가서는 새로운 방언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의 언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8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포로가 되어서 로마로 후송되는데 배를 타고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나 파선을 당했습니다. 멜리데라는 섬에 정착을 해서 젖은 몸을 불을 때서 말리는데 불속을 뒤지다가 독사에게 물렸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아무 해도 받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그 멜리데 섬의 추장이름이 보블리오라는 사람인데 추장의 아버지가 이질이라는 병에 걸려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기도하고 안수했더니 그 병이 떠나간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증거 할 때 기도할 때 이런 능력과 권세가 나타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복음을 나가서 두루 전파할세 주께서 함께 역사했다고 20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복음을 전파 하냐고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복음 증거 할 때는 하나님께서 능력을 여러분에게 부어주시고 성령과 기름을 물 붙듯이 부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전도는 왕의 명령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전도는 왕의 어명입니다.
두 번째로 왜 전도가 중요할까요? 바로 복음의 연속성 때문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부모로부터, 할아버지로부터 손자, 후손에게 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단절 될 때 교회가 위기를 당하게 됩니다. 오늘 이 사회의 현상을 가르쳐 고령화 저출산의 시대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예전에 비해 삶의 환경이 좋아졌습니다. 의료 시설도 좋아졌고 병원도 가기 쉽고, 영양분도 잘 공급받고 장수를 합니다. 우리 권사님들은 대부분 기본이 80이고 조금 더 사시면 90까지 사실 것입니다. 아마 저희 세대가 되면 100세까지 살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고령화 사회가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노인들도 많고 젊은이도 많으면 좋은데 젊은이가 점점 줄어든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 두 사람이 만나서 아이 둘을 낳아야 인구가 현상유지 됩니다. 두 사람이 결혼해서 한명만 낳으면 인가가 한명 주는 것입니다. 요즘은 아예 결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럼 한명이 또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출산이 오늘 이 시대에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아이 많이 낳는 것이 애국하는 길입니다. 여러분 할 일 없으면 아기를 많이 낳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능력입니다. 아마 앞으로는 아이를 낳는 분들에게 굉장한 혜택을 줄 것입니다. 어떤 직장에서는 진급할 때 점수를 더 준다고 합니다. 아기를 많이 낳으면 애국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남한 인구가 사천만이지만 앞으로 몇 십년 후에 아기를 계속 낳지 않으면 천만이 됩니다. 그럼 우리나라는 세계속에서 영향력이 사라지고 말게 됩니다. 외국인들이 다 살게 되고 우리는 순수한 민족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소멸되고 맙니다. 저는 결혼 주례를 할 때 마다 신랑 신부에게 아기를 많이 낳으라고 주문을 합니다. 어제도 제게 주례를 할 때 신랑, 신부에게 물었습니다. “아기 몇 명이나 낳을 것입니까?” 그렇게 했더니 신랑 대답이 아주 기특합니다. " 낳을 수 있을 때까지 힘껏 낳겠습니다.” 제가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요. 신부에게 물었더니 신부는 몸이 날씬하고 호리호리한데 많이는 못 낳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두 명만 낳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낳을수 있으면 많이 낳으라고 제가 주문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애국하는 길입니다.
여러분 사회적인 현상이 나타나다 보니까 이런 신도시 아파트 지역은 젊은 사람들이 몰려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도시는 30,40대가 80% 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길동 같은 이런 전통적인 도시는 고령화 사회의 영향이 나타납니다. 주로 어르신들이 많고 젊은 사람들이 적습니다. 교회학교 중고등부가 줄어드는 이유가 그곳에 있습니다. 적게도 낳지만 이 지역적인 분포가 젊은 부부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많이 낳는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 아이들에게 복음을 열심히 증거하셔야 합니다. 비록 아이들 수가 적더라도 그들에게 복음을 잘 증거 해야 합니다. 가족에게 복음을 증거 해야지 그들이 이 교회의 뒤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이 천년 전에 사도들이 복음을 증거 했고 초대교회 교인들이 복음을 증거 했기 때문에 지금우리 한국에 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시대에 복음을 증거 하지 않아서 중단해 버리면 우리 후세대가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50년 후에 이 교회가 몇 명이나 채워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유럽이나 호주에 다녀온 사람들이 탄식을 하는 소리가 무엇입니까? 몇천명씩 모이던 교회들이 지금은 텅텅 비어서 어떤 교회는 나이트클럽으로 변하고 극장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운영이 되지를 않습니다. 여러분 복음전도는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에밀 브룬너라는 신학자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불길이 일어날 때 불이 존재하는 것처럼 전도할 때 교회는 존재한다.”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로타리클럽하고 똑같은 것입니다. 회비 내듯이 헌금을 내는 것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계속 새로운 신자를 재생산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가는 것입니다. 복음은 연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중단되면 교회는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은 복음의 연속성을 이어가는 훌륭한 전도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전도가 왜 중요할까요? 복음은 인간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 집사람에게 아무리 기쁜 소식을 전해 봐야 무슨 소식을 전하겠습니까? 당신 이번에 내가 옷 한 벌 사준다고 하면 얼마간은 좋아하겠죠. 그러나 옷 한 벌 사줘봐야 일주일도 효력이 가지 않습니다. 맛있는 것 한번 먹고 들어오면 기분은 좋지만은 이틀도 가지 않습니다. “언제 그런것 사주었냐?” 딱 잡아 땝니다.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우리 집사람이 차가 없을 때 소원이 티코 하나만 사주면 나를 없고 다니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렵게 티코 중고를 170만원 주고 하나 사주었습니다. 저는 저를 왕처럼 대우해줄지 알았습니다. 별로입니다. 뭐 티코 하나 사주고 제긴 뭐 그렇게 제냐고 합니다. 오히려 제가 더 기가 죽습니다. 티코하나 타고 다니고 감사하면 좋은데 티코도 차냐고 그렇게 말합니다. 조금 더 큰 차를 샀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것을 팔고 조금 더 보태서 조금 더 큰 차를 사주었습니다. 오래된 차지만 처음에는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별로입니다. 남은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데 이걸 사주었다고 무슨 큰소리냐고 합니다. 여러분 인간이 줄 수 있는 좋은 소식은 오래 못갑니다. 그러나 복음의 소식은 가장 기쁜 소식이요 생명의 소식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줄 수 있는 가장 기쁜 소식은 복음의 소식입니다. 우리가 남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소식은 복음의 소식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천하 인간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너희에게 주신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기독교의 전도가 중요한 것은 이것은 기쁜 소식이요 천국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우리는 텔레비전에서 신문에서 중동전이 일어났을 때 그 참혹한 전쟁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자들은 그것을 그냥 찍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것을 찍으려고 생명을 내걸고 찍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슬픈 소식이고 참혹한 소식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것은 슬픈 소식이고 참혹한 뉴스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천국의 구원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기자보다 못해서 되겠습니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여러분의 삶과 시간을 드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었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증거 하면 그 사람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심판이 없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이 준비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복음이 귀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복음 전파를 자기 삶의 사명으로 알고 살고 있습니다.
몇 일전에 국민일보 신문에 광주 고검에 계시는 김인호 장로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분은 광주 고검에 부장검사로 계십니다. 그리고 명성교회 장로님이십니다. 명성아카데미에 인제를 양육하는 곳에 위원장이십니다. 신앙이 좋은 분입니다. 그분이 일산지청에 차장으로 있을 때 검찰청에서 고위관리가 왔는데 회식자리가 있어 술을 권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거절을 했습니다. 몇 번 권했는데 계속거절을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 분이 안색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 승진 인사 때 이분이 누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구 고금 부장으로 좌천되었다가 지금은 광주 고검에 와있습니다. 자기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복음을 위해서라면 어디를 가던 좋습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분이 한번은 어느 강연회에서 자기 간증을 했더니 그곳에 왔던 구청장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통해서 구청에 얼마나 신우회가 열심히 활동을 하게 되었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어떤 절에 30년 동안 다니고 비구니를 지냈던 여자에게 복음을 전했더니 그 여인이 은혜를 받고 자기 회사의 사원에게 열심히 복음을 증거 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자기 소명이 전도입니다. 일산지청에 있을 때에도 피의자가 조사를 받으러 올 때도 예수 믿으라고 성경책 사서 주는 분이 김인호 장로님 이십니다. 그분은 말합니다. “내 직업은 검사이지만은 나의 사명은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주말이면 서울에 올라와서 예배를 드리고 간증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꼭 간다고 합니다. 우리교회에도 5월 달에 오신다고 합니다. 그분은 간증을 하고 사례비를 드려도 받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 자기의 사명으로 생각하는 것은 참 귀한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최고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국회의원 당선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이 대단한 소식 같지만 그 결과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습니다. 복잡합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소식은 “당신이 예수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당신의 모든 죄를 사했습니다.”입니다. 여러분 그것처럼 귀한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미국에 애플 컴퓨터를 운영하는 스티브 잡스라는 유명한 CEO 가 있습니다. 이분이 경영을 하다가 회사가 조금 어려워졌습니다. 그때 펩시콜라를 불같이 일으킨 존 스커지라는 젊은 사장이 있습니다. 38세에 사장이 되어 이 회사를 굉장히 크게 키웠습니다. 이 사람이 44세에 스커지를 자기 회사에 스카웃 하려고 그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권면했습니다. “우리 회사에 오세요. 지금 당신 연봉에 몇 배를 드리겠습니다. 좋은 집을 주고, 좋은 차를 주고, 모든 것을 다 제공하겠습니다.” 그런데 안 오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말에 그 사람의 마음이 움직였다고 합니다. “당신은 그 귀한 일생을 설탕물이나 팔면서 낭비하겠습니까? 이왕이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당신의 일생을 투자해 보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마음이 움직여서 에플 컴퓨터에 와서 애플 컴퓨터에서 큰일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매일 쳇바퀴 돌듯 하는 그런 일을 하다가 여러분의 인생을 마치겠습니까? 아니면 주님 앞에 섰을 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네가 잘했다.” 칭찬받고 아름다운 전도의 면류관을 받는 그런 삶이 되겠습니까? 다니엘서에 보면 “많은 사람을 옳은 대로 돌아오게 한 사람은 궁창에 별과 같이 빛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무엇을 물어 보겠습니까?” “얼마나 좋은 집에서 살고, 얼마나 좋은 차를 타고,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느냐?”를 묻지 않습니다. “몇 명을 전도 했느냐?“ ”몇 명의 영혼을 나에게 인도했느냐”를 물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은 인간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소식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네 번째로 왜 전도가 중요할까요?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44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얼마 전에 신도림동 주상 복합건물 화제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박광진씨라는 분이 자기 부인과 함께 그곳에서 도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6층에서 도배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불이야!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이 부부가 4층으로 뛰어 내려가니 검은 연기가 온 건물을 다 채워버렸습니다. 겁이 나서 위로 도망을 가는데 부인이 갑자기 너무 많은 가스를 마시고 몸을 지체 못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하고 8층에 쓰러졌습니다. 이 부인을 살려야 합니다. 그런데 사면이 다 유리벽이어서 창문을 열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특수 유리를 발로 차니까 작은 구멍이 생겼다고 합니다. 자기 아내를 목만 밖으로 내놓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게 했다고 합니다. 아내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아내를 끌고 12층 옥상으로 올라가다가 둘 다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부인은 빨리 구조가 되어서 병원으로 실려가 한강성심병원에 산소 호흡기를 끼고 누워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편은 빨리 발견이 되지 않아 이미 숨이 끊어졌습니다. 아내는 지금도 남편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고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그분들은 젊은 금술 좋은 부부였다고 합니다. 서로 손을 늘 잡고 다니고, 서로 껴안고 사랑을 표현하는 부부였다고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것을 들으면서 우리 예수님의 사랑이 그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우리가 죽어야 하는 자리에 그분이 대신 죽은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그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책에서 그런 내용을 읽었습니다.
학습지 교사를 하면서 가정을 돌보는 젊은 주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연세가 드셨는데 간경화 말기였습니다. 누군가 이식을 하지 않으면 오래 살 수가 없었습니다. 가족중에 피 검사를 했더니 아무도 맞지가 않고, 며느리만 일치 하는 것입니다. 며느리만 이식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시가와 친정에서 다 말렸습니다. “연로한 시어머니를 위해서 젊은 네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간이식을 했다가 잘 못되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며 말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주부는 모든 유혹을 다 뿌리치고 시어머니를 위해서 간 이식을 해주었습니다. 16시간의 긴 수술을 통해서 자기간의 60%를 이식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식이 잘 되어서 지금은 건강하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원무과에게 가면 누군가에게 간을 이식 할 때에 장기기증이유를 씁니다. 왜 하필이면 그분에게 장기를 기증합니까? 라는 질문에 그 주부는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께 나의 생명 같은 간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해야 되는 이유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 주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 이웃과 믿지 않는 분들에게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5절에 보면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여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우리는 살아야 할 존재입니다. 주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가슴깊이 세기며 우리이웃에게 그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위대한 복음 전도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