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삶(요4:20-24)
(요한복음 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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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요4: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요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요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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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예배를 '드리기' 위해 정기적으로 모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보러' 오는 분들도 종종 있습니다.
옛날 우리 속담에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천 년 동안 우리는 굿하는 것을 구경해 왔습니다. 그러한 문화적인 배경 때문에 교회에 나오면서도 무심코 예배 '보러' 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는 보러가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영어로 WORSHIP(워-ㄹ싶)이라고 하는데, 이는 '가치있는' 이라는 worth(워-ㄹ스)라는 말과 추상명사를 만들기 위해서말 끝에 붙이는 말 ship(싶)이 합해져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하나님께 최선의 가치를 드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배는 무엇이냐?...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상의 가치, 최고의 정성을 드리는 행위를 예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본질은 '드리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경의와 존경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일에 함께 모이는 이유입니다.
다시 요약해 보면, 예배란 먼저 창조주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경배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24절 말씀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했습니다.
또한 예배는 그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는 일입니다.
시편138:1∼2절 말씀에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양하리이다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높게 하셨음이라" 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 어떤 분들은 마치 극장에 가서 연극을 보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연극의 주인공은 대개 목사님이고, 막후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연출하시고, 모든 교인들은 예배를 평가하는 심판자입니다.
"오늘, 그만하면 됐어", "에이∼ 오늘은 틀렸어.... 성가대가 왜 그런지 모르겠어." 이런 식으로... 교인들은 그 연극을 평가합니다.
사람들 하나 하나를 심판하고 성가대도 심판하고... "그 목사님... 말이 왜 그렇게 빠른지.... 왜 또 기도는 그렇게 길지? 왜 기도가 짧지?" 하면서 설교도 심판하고... 예배 시간 동안에 별별 심판을 다합니다.
그러나 사실 예배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나 자신이 주연 배우이고, 목사님은 연출가이며, 진정한 심판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받으십니다.
옛날에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아벨의 예배는 즐겁게 받으셨지만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기억해야 될 것은 예배의 주연 배우는 바로 당신...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 예배란 무엇인가?
그러면 구체적으로 예배란 무엇입니까?
구약성경에서 '예배' 라는 단어는 "윗사람에게 와서 존경을 표시하며 엎드려 절한다" 라는 의미로 쓰여졌습니다.
창세기 18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상수리나무 밑에 있을 때 세 사람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척 보니까, 그 세 사람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천사들이 주님과 함께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음을 알아차리고 얼른 달려가 그들에게 엎드려 절했습니다.
그리고는 "내 주여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그러면서 급히 장막으로 들어가서 떡을 만들러 대접하고,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요리하고, 뻐터와 우유를 가져다가 드리며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주의 사자를 잘 대접하므로... 오랜 세월동안 아들이 없었는데, 아들이 있으리라는 약속을 받으므로 후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바로 이삭이었습니다.
이렇게 구약성경에 보면, 엎드려서 절한 것을 보고 "예배드린다", "경배한다"고 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예배'라는 단어는 '프로스퀴네오'(proskuneo)인데, 그 뜻은 "섬긴다"는 뜻입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경배하고 섬긴다는 두 단어가 한꺼번에 나올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날 예배를 드릴 때에는 하나님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분의 위대하심을 인정하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온 하나님의 자녀들이 공동체로 모여서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존귀하심을 찬양하며 그분께 축제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마치 부모님의 환갑 때에 잔치를 하는 것처럼, 일 주일에 한 번씩 드리는 예배 역시 잔치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목사님께 예배를 드리러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매우 잘못된 태도입니다.
목사님이 계시면 출석하고... 목사님이 어디 기도원이나 해외 출장을 가시면 자기도 집에서 쉬는 분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옛날에 '햄릿 비쳐'라는 유명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너무나 유명한 '설교가' 이어서 pulpiteer(펄핏티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말을 매우 잘하는 설교사, 설교꾼이라는 것입니다.
하루는 이 '비쳐' 목사님이 어디 여행을 가시고 다른 목사님이 초청되어 오셨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다가 초청된 목사님이 재미가 없다고 웅성웅성 대더니 하나 둘... 일어서서 나갑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이 "여러분! 여러분 중에 오늘 비쳐 목사님께 예배를 드리러 오신 분들은 전부 퇴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오신 분만 앉아 계십시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는 사람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람인지라 자칫 잘못하면 목사님을 보고... 그 목사님에게 예배 드리듯이 예배를 드릴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됩니다.
목사님이 계시든지 안 계시든지 출석에 변동이 없어야 됩니다.
또, 어떤 목사님은 여름철에 휴가를 가시면서 은근히 그런 것을 바라는 분이 있습니다. 나중에 휴가를 마치고 묻기를 "내가 없을 때 어땠어?" 그러면서 은근히 자신이 없을 때 교인들이 서운해하고 출석이 저조하고... 그러기를 은근히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담임 목사님이 바뀌어도... 여전히.... 변함없이...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고 영광을 돌려야 됩니다. 그런 교회가 말씀 위에 제대로 선 교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목사님은 보고 악수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목사님을 보고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 목사님을 통해서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주시지만,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그 목사님이 아니라 그 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내 보이시는 하나님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과 만나서, 그분이 내 마음속에 들려주시는 그 음성을 듣고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설교자 뒤에 있는, 설교자 위에 계시는, 설교자 안에 계시는... 그 주님의 모습을 보는 것이 우리 예배의 중심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람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목회자이니까 목회자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배의 중심은 목사를 만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목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겠다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분은 성가대 때문에 오고, 어떤 분은 목사 때문에 오고, 어떤 분은 친구 때문에 오고, 어떤 분은 할 수 없이 부인에게 끌려(?) 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 낮이든 주일 오후이든... 수요일 저녁이든 금요일 저녁이든... 어떤 예배이든... 교회에 올 때에는 꼭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서 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집에서 나올 때부터 주님의 전에 나아갈 때에는.... 오늘은 주께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실지... 기대를 하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내가 죄에서 헤매고 있을 때...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용서의 하나님으로, 자비의 하나님으로, 긍휼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심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격려가 필요할 때는 능력의 하나님, 힘과 용기의 하나님으로 주님은 나타나십니다.
나의 믿음이 흔들릴 때는 반석과 같이 하나님은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교만할 때에는 책망의 하나님으로, 마음이 어두워질 때는 빛의 하나님으로, 마음이 더러워질 때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나십니다.
기도할 때, 헌금할 때, 설교를 들을 때에, 그리고 함께 찬양할 때에.... 그 속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때는 개인적으로, 어떤 때는 공동체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나타나셔서 우리 모두에게 그분의 모습을 보여 주시고, 그분의 음성을 들려주시고, 그분의 밝은 빛을 비춰주십니다.
주님을 만나고 가는 사람들에게는 광채가 납니다(출34:29).
여러분은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갈 때.... 마음이 어떻습니까?... 뿌듯하고 만족스럽습니까?....
"오늘, 예배에 참 잘 왔다!", "참, 좋았어!", "오늘 참 은혜로웠어!" 하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고 가는 주일날은 얼마나 마음이 즐거운지 모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목사님, 저희는 이상하게 예배를 드리고 집에 가면 꼭 싸웁니다!" 그런 분이 있습니다. 악한 마귀는 은혜가 많은 곳에 자꾸만 시험을 가져다 줍니다. 이런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면 안됩니다.
그러면 주의 전에 나아가서 받은 은혜, 다 쏟아버리게 되고... 오히려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피곤하면 짜증이 나고 불평거리만 늘어놓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일날은 절대로 불평하거나 부정적인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긍정적인 말, 칭찬하는 말, 사랑하는 말, 성전에서 받은 은혜스런 말만 해야 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기쁨이 없고 싸움만 하게 되면 그것은 예배를 잘 드리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예배를 구경하러 왔거나 심판관으로 앉아서... "설교를 잘 하나?, 못 하나?" 보기도 하고 "이 교인들은 옷을 너무 호화롭게 입고 와!" 그러면서 판단을 한다면 안됩니다. 예배를 구경하러 온 사람에게는 그런 것들이 잘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온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개인의 성격과 취향에 따라서 옷을 조금 화려하게 입을 수도 있고 검소하게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은 개인에게 맡기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의 예배 중심은 언제나 주님입니다. 예배 시간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좋아하고, 주님을 즐거워하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만나고 가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2. 예배를 드리는 장소
둘째로 생각할 것은 예배는 어디서 드리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기 위해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동네에 이르렀을 때, 야곱의 우물곁에서 그곳으로 물 길러 온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했던 내용입니다.
당시에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하나님이 지정해주신 예배의 장소가 어딘가 하는 문제로 심각한 논쟁을 벌여오고 있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전통적으로 '그리심 산' 을 축복의 산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유대인들은 참으로 예배드려야 할 곳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예수님께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장소는 사마리아의 그리심산이나 예루살렘이라고 단정짓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예배드리는 자는 어디에서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어디에나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예배드릴 장소가 아니라,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바로 이런 사실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예배를 드리는 마음의 태도입니다.
신학자 '윌리암 템플' 은 말하기를,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의식을 소생시키는 것이며, 하나님의 진리로 마음을 풍성케 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음을 여는 것이요, 하나님의 목적에 뜻을 바치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4:21절 말씀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다른 의미로 볼 때, 교회에서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예배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 우리의 생활 전체가 예배입니다. 교회에서는 거룩하고 밖에 나가서는 온갖 죄를 짓는다면... 그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삶을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공경하고, 섬기는 자세로... 삶을 살아갈 때, 그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은 그것을 하면서... 또 직장에서 컴퓨터로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일을 하면서... 사업을 하는 분은 그 일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듯이 신실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듯이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하루는 하나님을 믿는 아들 딸들이 다 모여서, 하나님께 한 음성으로 영광과 찬양과 존귀를 드리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과 만나는 것은 온당한 일입니다. 또 그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성일로 지켜라!"
또 오늘 본문 23절에서는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찾으실까요?....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영광을 거두시고, 그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금년 한해를 출발하면서 오늘은 새해에 두 번째 결심으로 "예배 생활에 열심을 내야 되겠다!" 하고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결심과 다짐으로 금년 한해를 살아갈 때, 그런 분들은 신앙이 더 성장하고 ...하나님께 칭찬과 면류관이 예비 될 줄 믿습니다. 그런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예배를 드리는 방법
그러면,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우리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다섯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예배는 전심으로 드려야 합니다.
역대하 16:9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라고 말씀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는 말씀을 듣고....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아뢰기를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 다시금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였습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는 약속을 받았습니다(사38:5∼6).
평소에 그가 전심으로 하나님께 예배한 것을 기억하시고 그의 눈물의 기도를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위기에서 15년이나 생명을 더 연장시켜 주시고, 이웃의 모든 나라가 근접하지 못하도록 나라도 부강하게 세워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전심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므로 히스기야에게 임하셨던 복이 충만히 임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심으로 온 마음을 모아서 하나님께 예배하여야 합니다.
시편 119:2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하고 말씀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를 혼란하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상시에 우리는 이리저리 마음을 빼앗기면서 생활하지만.... 주일날 예배드리러 왔을 때는 조용한 마음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우리의 모든 마음을 집중해서 드려야 합니다.
찬송가를 부를 때에도 그 가사 하나 하나를 마음에 새기면서 정성껏 찬양하고, 헌금을 드릴 때도 정성을 다하여 드리고, 다른 사람이 대표로 기도할 때에도 기도하는 분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 속에 들어가서... 자신이 기도하듯이 "아멘, 할렐루야!" 하면서 하나님께 정성을 드리는 마음으로 따라 해야 합니다.
둘째로, 예배는 거룩하게 드려야 합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기에 거'룩' 그러면 매우 엄숙한 것을 떠올립니다만, '거룩' 이라는 단어는 그런 뜻이 아니라 '구별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거룩하게... 즉, 구별되게 드려야 합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똑같은 날이지만... 일요일은 주님께 드리는 날로 따로 구별해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흔히 일요일을 주님의 날이라고 해서 '주일' 이라고 부릅니다.
똑같은 시간이지만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 만큼은... 하나님께 드린바된... 하나님의 시간으로 구별해 놓는 것입니다.
많은 '날'과 '시간' 가운데, 하나님의 것이라고 특별히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바로 '주일성수'요, 많은 '물질' 가운데 특별히 하나님의 것이라고 구별해 드리는 것이 바로 '십일조'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은 하나님께 이미 드린 날이요, 구별해 놓은 시간이기 때문에... 친구가 찾아온다든지... 무슨 결혼식을 한다든지... 무슨 행사가 있어서 예배를 빠지거나 소홀히 하면 안됩니다.
매우 급한 일이 아니면, 먼저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린 후에 일을 보아야 합니다. 그 어떤 일도 예배를 대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는 시간은 내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이요... 하나님 앞에서 주님을 생각하면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거룩하다'는 말을 국어 사전에 찾아보니까, '성스럽고 위대하다' 는 뜻으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예배를 거룩하게 드려야 되니까, 예배시간에 박수를 친다든지 웃는 것도 안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뜻은 아닙니다.
아들, 손자, 며느리들이 많이 와서 웃고 박수치며 즐겁게 노래하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얼마나 좋아 하시겠습니까?
거룩하게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너무 엄숙하게 하고, 즐겁게 예배드리는 것을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찬송을 하든 기도를 하든... 이왕이면 기쁘고 즐겁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고, 그런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셋째로, 예배는 감사함과 기쁨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시편 100:2절 말씀에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내게 어떤 복을 주시려나... 나에게 어떤 위로와 은혜를 주시려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교회에 나아오면... 마음이 설레고,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른 교회에 나가고 싶고, 주일이 자꾸만 기다려지고, 기대가 되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또한, 예배 시작 전에... 조금 일찍 오셔서, 지나간 일주일동안 감사할 수 있는 제목들을 골라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또 찬양으로 예물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기쁨으로 드리는 찬송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물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을 '일요일'이라고 했다고 마음 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슨 믿는 사람이 일요일이 뭐냐?"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때는 일요일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를 전혀 모르고 예수 안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주일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처음 교회 나오시는 분들의 눈 높이를 생각해서 예배시간 안내에도 일요일로 표시해 놓았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릴 때에는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이다.
넷째로,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으로 드리고,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에 눈을 감습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와서 "목사님! 글쎄, 아무개가 기도하는데 써 가지고 읽었습니다!" 하시길래 "그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라고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잘 적어서 읽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도 써서 할 수도 있고 그냥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기도할 때에는 절대로 써 가지고 하지 말라고 한 곳이 없습니다.
오히려 시편의 많은 부분은 써 놓은 기도입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트집 잡고 화를 내고 싫어하고 하면, 그것이 더 큰 잘못입니다.
다섯째로, 예배는 준비되고 정성된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나님께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우리가 찬송과 기도와 물질의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그 가치를 제물로 표현했습니다.
속죄제, 번제, 화목제가 있었는데... 제사이기 때문에 반드시 제물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 제물은 소나, 양이나, 비둘기였습니다. 예배의 종류에 따라서 제물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재산 정도에 따라서 결정이 되었습니다.
잘 사는 사람은 소를 드리고, 그 다음은 양을 드리고, 그 다음은 비둘기를 드렸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자기가 최선을 다해서 드리는데... 소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이 양을 드리면 하나님이 받아주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또한 드리는 제물에는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레1:2∼3).
"흠 없는 것으로 드리라..." 즉, 다리를 저는 것이나 상처가 난 것이나 오다가다 주운 것으로 드리는 게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예물을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에 와서는 제사가 아니고 예배가 되었고, 제물이 아니고 헌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정성을 다해서.... 미리 준비된 것으로 해야 합니다.
어떤 분이 헌금할 것을 준비하지 않고 왔는데, 헌금 시간이 됐습니다. 우리 교회는 들어오실 때 헌금함에 드리니까 그런 일이 없겠습니다만.... 이 분이 갑자기 지갑을 열어서 얼마를 꺼내야 좋을지 몰라서 그냥 꺼내서 넣고 보니, 만 원짜리 였습니다. "천 원짜리를 꺼낼려고 했는데....."
헌금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의 분량에 따라 미리미리 정성껏 최선을 다해 준비해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주보에 이름이 틀렸다고.... 와서 얘기하는 분도 계신데, 너무 그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것, 하나님이 아시면 되는 겁니다.
또, 어떤 사람은 헌금을 누가 얼마를 했는지 발표를 해야 좋아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발표가 됐다고 화를 냅니다.
두 경우, 모두가 옳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헌금은 주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보에 이름이 실려 있든지 안 실려 있든지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헌금한 내용을 자세하게 기록해 놓은 때도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장막을 지을 때 예물을 드린 사람들이 무엇을 드렸는지 상세하게 다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수 천년이 지난 지금도 그분들이 무엇을 드렸는지 오늘의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헌금 내용은 발표해도 좋고 안 해도 좋습니다. 그런 것에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바친다'고 하는 기본적인 태도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므로 언제나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정성을 다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나아와 축제와 같이 예배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 때마다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며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복에 복을 더하시고, 승리의 길로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24:25절 말씀에 보니까 하나님께 정성된 제사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셔서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치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사기 6:24절에는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을 때.... 3백명의 군사로서 모래알과 같이 많은 미디안의 군사들을 물리치고 그 전쟁에서 크게 승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역대상 21:22절에서는 다윗이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니 온역이 백성 중에서 그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하여.... 금년에는 예배의 생활에 더욱 열심을 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겨서 반드시 승리하고, 반드시 복 받는 귀한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