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히브리서의 산을 지나니 또 다른 만만치 않은 요한계시록을 만나게 되네요...
이 산도 주의 은혜로 잘 넘어갈 수 있기를요...^^
계시록 1장
1-8절은 계시록의 서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란 주님이 역사의 결말을 계시하시는 과정을 가리키거나 그렇게 해서 밝혀지는 진리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계시는 복음 안에서 아들이 오직 아버지께서 주신 것만 말하듯이(요3:34; 8:26), ‘하나님’으로부터 예수님께 주어진 것입니다(1절).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에 대한 요한의 증거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온 메시지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증거라는 것입니다(2절).
3절의 축복은 요한계시록을 회중에게 읽어 주는 자와 그것을 듣고 메시지를 마음에 받는 사람들의 ‘복’을 선언합니다. 계시록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를 수신자로 하고(4절), 편지로서 이 책의 성격은 그 교회들에 대해 복을 비는 것으로 강조되고 있습니다(4-5절/은혜와 평강을 바라는 기도임). 5절의 예수님에 대한 묘사는 계시록을 처음 받는 신자들에게 적합한 듯 합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는 예수님이 부활에 의해서 하나님 나라의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며(먼저 나시고= 장자, 즉 상속자), 모든 인류를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열어 놓으셨음을 시사하며, 게다가 예수님은 ‘땅의 임금들의 머리’, 곧 이 세상의 적대적인 지배자들 위에 뛰어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5-6절의 영광송은 요한계시록의 근본 주제, 즉 제2의 출애굽으로서의 구속 개념을 반영합니다. 첫 번째 출애굽은 이스라엘이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고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자유로운 백성이 되도록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구출하신 일입니다. 구속 개념에 대한 소망은 ‘첫 번째 구속자’(모세)가 행한 일이 ‘두 번째 구속자’(곧 메시아)에 의해 반복될 것이라는 믿음인데, 즉 이 소망을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게 하셨으며, 장차 있을 그분의 재림을 통해 완성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우리를 사랑’하시며, 단번에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도록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 즉 왕과 제사장으로 만들어, 시내 산에서 받은 이스라엘의 소명을 성취하게 하십니다.
7절은 계시록의 표어로 불립니다. 다니엘 7:13절과 스가랴12:10절을 인용한 것인데,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애곡하게 된다고 합니다. 모든 인류의 애통이 회개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너무 늦어서 오는 후회인지는 불확실합니다. 아마도 마지막 날에는 섞여 있을 듯 합니다. 하나님이 ‘알파(역사의 시작)와 오메가(역사의 끝)’라는 선언은 하나님이 모든 시대에 대한 주권적이 주님이심을 확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시작과 끝이며, 그 사이에 놓인 모든 시대의 주로서 모든 시대의 시작부터 끝까지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8절/22:13에서는 알파와 오메가가 예수님께 적용이 됨).
9-20절에서는 요한이 예언하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전했다는 이유로 밧모섬에 유배되었는데, ‘주님께 속한 날’에 그 환상을 받게 되었고 에베소의 일곱 교회에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9-11절). 이 편지의 대상은 직접적으로는 소 아시아의 지방에 있던 그리스도인이지만, 각 회중이 전체 교회를 대표하기에 간접적으로는 세계 전역에 흩어진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13-16절에 있는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묘사는 다니엘 7:9절의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 대한 묘사를 반영하는데, 예수님이 하늘에 영광을 소유하시며 하나님의 형상을 공유하고 계심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속성을 그리스도께 적용시키는 것은 계시록에 계속 등장하는 현상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은 즉 교회들을 쥐고 계신 분이 바로 그러한 주님이심을 나타냅니다. 주님은 악을 재판할 권능을 가지고 계실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속한 자들을 붙들어 주실 수 있는 능력도 가지셨습니다(16절, 참고 20절).
높아지신 주님에 대한 환상에 대해 요한이 보인 반응은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는 것인데, 이는 그러한 경험을 한 모든 사람의 반응과 유사합니다(이사야, 에스겔, 다니엘 등, 사6:5; 겔1:28; 단7:28). 그리스도는 살아 계신 분으로서 죽음과 죽음의 영역에 대해 주관하는 권세를 가지고 계시며, 모든 인류를 위해 영원한 나라의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17-18절). 19절에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의 명령은 방금 주어진 환상과 지금 있는 일(2-3장)과 장차 될 일(4-22장)의 환상으로 나누어서 보는 것도 가능하지만, 4-5장, 12장에는 적용되지 않기에, ‘계시록 전체’를 기록하라는 명령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조지 비슬리 머레이). 20절의 문자적인 해석은 좀 어려운 듯 합니다. 하지만, 편지들은 교회 자체와 그 개별 교인들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교회의 존재는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이고, 그 교회들이 지상에서의 천상적인 소명을 깨닫고 그렇게 하도록 돕는 것이 편지의 목적인 듯 합니다.
계시록 2장 1절 – 3장 22절까지는 일곱 교회(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레델비아, 라오디게아)에 보내는 편지에 대한 것입니다.
그중에서 2장은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등 네 교회에 보내는 편지 내용입니다.
1-7절은 에베소 교회를 향한 메시지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외적으로 괜찮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위대한 교회가 되기에는 한 가지가 부족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주님을 향한 첫 사랑이 점차 퇴색되어 의무감만 남아서 에베소 교회는 사랑으로 감당하지 않고 그저 의무감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처음 시점으로 돌아가라고 회개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5절). 그리고 회개하면 회복과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7절).
8-11절은 서머나 교회를 향한 메시지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와 함께 주님의 권고만 있고 책망과 경고가 없는 교회입니다.
외적으로 서머나 교회는 초라한 교회입니다. 환란과 궁핍 가운데 있었던 열악한 환경 가운데 놓여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교회에는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실상은 유대인이 아닌 사단의 회 혹은 회당이 있었습니다(9절). 많은 학자들은 서머나가 황제 숭배의 중심지였다고 주장합니다(Grand Osborne, Revelation). 황제 숭배의 중심이였던 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된 자들로 인해 위기의식을 가지던 유대인들은 황제 숭배를 거절한다는 명목으로 그리스도인들을 고소하였을 것이 분명하고, 이것은 곧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서머나 교회는 이러한 어려운 역경을 딛고 하나님을 향하여 신실하게 서 있게 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당하는 고난을 주님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서머나 교회를 홀로 버려두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교회가 당하는 환난은 하나님의 부재 시에 생겨지는 악의 통치가 아니라,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계획안에 있는 사건입니다. 비록 고통당하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분명한 하나님의 간섭과 섭리가 있습니다(10절). 주님을 위해 끝까지 충성하게 되면, 둘째 사망의 해(하나님과 영원히 단절되는 죽음)를 받지 않게 됩니다(11절).
12-17절은 버가모 교회를 향한 메시지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문제가 사랑을 잃어버린 채 진리만을 고집하는 것이었다면, 버가모 교회의 문제는 바른 진리를 상실한 교회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는 사단의 위가 있는 곳, 곧 사단이 왕 노릇하는 곳을 의미합니다. 당시 사탄은 황제 숭배를 통해서 버가모 교회를 괴롭히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그들을 황제 숭배를 거절하였습니다. 순교자도 있었습니다(13절). 그런데 그런 곳에서 어떻게 발람의 교훈을 쫓고, 니골라 당의 교훈을 쫓는 자들을 용납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14-15절). 이는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서 거짓된 가르침을 용인하게 된 것이 문제의 발단인 듯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악과 함께 공존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주의 말씀의 기준이 자꾸만 모해해지면 진리를 고수하기가 어려워 집니다. 결국 진리를 적당히 타협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버가모 교회를 향한 주님은 초강수로 응수하십니다. 버가모 교회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진정한 심판자이신 주님이십니다. 이런 주님의 의도는 그들을 회개로 초대하기 위함인 듯 합니다(16절). 회개하면(돌이키면) 흰 돌을 허락해 주실 것(주의 은혜)입니다(17절).
18-29절은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메시지입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은 사랑과 믿음을 동력으로 하여 섬김과 인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준 있는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참으로 균형 잡힌 영성을 소유한 교회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결정적인 결함이 보입니다. 주님의 책망이 가혹할 정도로 엄중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 교회가 자칭 선지자라고 주장하는 이세벨과 그녀의 유혹적인 가르침을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세벨은 바알 숭배를 적극적으로 강요하여 이스라엘 공동체의 신앙을 와해시키려고 시도했던 장본인입니다. 두아디라 교회가 그러한 속성을 가진 이세벨 같은 여인의 길을 따라 가게 된 것입니다(20절). 주님은 이세벨과 관련된 사람들에 대하여 그들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1-23절). 그렇지만 주님은 이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돌이켜서 주님을 따르면 주님의 통치권에 참여하는 권세에 동참하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실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벽별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26, 28절).
오직! 우리 주님, 예수님께 소망을 두는 지혜로운 삶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첫댓글 두아디라 교회에 큰 시험을 던져준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에 관해서, 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큰 환난 가운데 던져지게 되는 원인이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회개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어요 (2:20-23).
악에서 돌이킬 결정적인 기회...
그가 누구이든 당사자는 그 기회가 찾아왔음을 알 수 있을 거에요.
그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돌이킴으로 "이기는 자", 끝까지 주와 동역하는 자로 남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렇네요~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회개하지 않은 참으로 어리석음이 있었네요...
이세벨에 의해 영적으로 모든 감각들이 마비되어 버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네요...
죄를 짓지 않으면 좋으련만, 다들 연약함이 있기에, 회개할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에베소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의 행위와 수고, 믿음, 인내에 대한 칭찬에도 불구하고 두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린 것으로, 선지자라 자칭하는 이세벨을 용납한 것으로 책망받습니다.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하나님은 잘한 것이 많다고해서 잘못한 것을 그냥 넘어가는 법도 없습니다.
서머나교회는 신앙으로 인해 환난과 궁핍가운데 있는데 장래에도 마귀로 인해 시험을 받게 될 것이 예고됩니다. 그러나 마귀의 활동은 십 일이라는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동안만 허락될 것이기에 두려워하지 말라합니다. 당장의 고난도, 끝까지 충성하는 자들에게 주어질 생명의 관도 모두 하나님의 뜻 안에서 계획되어 있습니다.
마귀와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보는 시도는 때때로 버겁게 다가옵니다. 또한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는 낙원의 생명나무 열매와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는 약속도 과분하여 버겁긴 마찬가집니다.
다 이해할 순 없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작고 사소한 것까지 다 살피고 아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든 환난과 궁핍중에도 부요하다는 평가는 받은 서머나 교회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부요한 자라는 평가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작고 사소한 것까지 다 살피고 아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히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며 기도하며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기는 자의 삶을 살아내기를 원하며 심판에 대해 생각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거대하게 보이는 현실만 보기보다 하나님의 권능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믿음으로(약속의 말씀 신뢰)~
온전히 이기는 자의 삶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반드시 일어날 일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려고 사도를 통해 계시하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때를 우리가 알지 못하나 반드시 그날이 올것임을 또한 믿습니다.
아멘입니다. 항상 깨어 기도하며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