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평생학습포털(GSEEK)의 온라인학습 신규강좌, “시민사회를 변화시키는 스토리텔링의 힘”을 소개합니다. 강남대학교 교수이자 콘텐츠평론가로 유명한 강유정씨의 명쾌하고 깊이 있는 인문학적 소양과 통찰이 돋보이는 콘텐츠입니다. 학교폭력에 대한 사적복수를 소재로 사법정의의 무력함을 질문하는 <더 글로리>, 경제적 양극화와 현실의 부조리를 코믹하면서도 비장하게 고발한 <기생충>, 아동인권과 법의 한계를 씁쓸하게 조명하는 <미쓰백>, 청소년노동 현실과 실업계고교의 현장실습과정의 불공정,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현실을 아프게 드러내는 <다음 소희>라는 네 편의 의미 있는 영화에 주목합니다.
최종적으로 영화가 담아내는 현실과 현실을 반영한 영화의 기능 그리고 시민사회를 변화시킨 스토리텔링의 힘을 촘촘히 살펴보게 됩니다. 강의는 전체 5강으로 구성되어 있고, 네 편의 영화가 주는 주요 메시지와 역사적 성찰 및 연관되는 영화와 소설들을 두루 소개받는 행복감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강사가 주는 선물은 또 있습니다. 소장가치가 충분한 1~5차시 학습자료 PDF 파일과 강의 MP3 파일은 덤입니다.
♣ 아래 글은 콘텐츠평론가 강유정씨 강의 내용을 간추렸으며, 드라마 및 영화의 내용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더 글로리>: 지워지지 않는 고데기 상처
“오늘부터 모든 날이 흉흉할 거야. 자극적이고 끔찍할 거야. 막을 수도, 없앨 수도 없을 거야. 나는, 너의 아주 오래된 소문이 될 거거든. 연진아”
무시무시한 저주를 쏟으며 사적복수의 포문을 여는 학교폭력 피해자 문동은의 대사는 가해자 박연진의 간담을 서늘하게 합니다. 2023년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는 이야기의 오랜 기능 중 하나인 사필귀정(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길로 돌아간다)의 쾌감을 선사합니다.
<더 글로리>의 김은숙 작가는 부모의 권력과 재력을 활용해 자신들의 폭력을 덮고 공권력을 남용, 비윤리적인 폭력을 아무 가책 없이 행한 박연진 일당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상실된 공정을 되찾고 정의로운 회복을 시청자들에게 경험시킵니다. 학교폭력 주제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인 이문열 원작, 박종원 감독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2)>과 유하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2004)>, 민규동 감독의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1999)>,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2014)>를 소개하며, 방치된 교육제도 아래 학교와 사회의 폭력성을 함께 들여다봅니다.
2. <기생충> 분명 재밌었는데, 불편한 이유
“부잔데 착한 게 아니라 부자라서 착한 거야… 돈이 다리미라고. 돈이 주름살을 쫘악~ 펴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두 가족의 일시적인 조우와 공생을 소재로 한 영화로, 현 사회의 첨예한 계급문제를 예리하게 파고듭니다. 기생충의 등장인물들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습니다. 이 지점이 할리우드 영화와의 차이점이자 현대적인 부분입니다.
유리천장이 성차별적인 조건 속에서 여성이 더 높은 사회적 직군에 오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유리바닥은 하층 계급이 중산층 이상으로 진입하는 것을 금지하려고 높은 진입장벽을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장벽으로는 교육자본이 쓰이고, 이제 교육은 계층을 넘나드는 사다리가 아닌 계층을 공고히 하는 유리바닥의 수단으로 전락했습니다. 경제적 양극화는 결국 학력, 거주지, 소비 양태를 통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점점 양극화가 심해지는 시대적 상황과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현실을 굳이 영화 속에 담아내는 목적은 극단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극복하려는 인간본연의 의지표명입니다.
3. 상처 입은 어른이 상처 많은 아이에게, <미쓰백>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매 순간 날 배신하는 게 인생이야.”
"나는 무식해서 가르쳐줄 것도 없고, 가진 게 없어서 줄 것도 없어. 대신 니 옆에 있을게. 지켜줄게."
이지원 감독의 <미쓰백>은 자신의 과거처럼 위험에 홀로 놓인 소녀를 돕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아무런 법적 권리나 힘도 없는데 말입니다. 같은 상처를 가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아이를 돕는데도 그녀의 선의는 법의 기준에서 모두 불법입니다. 영화에서 법적 친부모는 아이를 학대, 방임을 넘어 유린하는 반면 법률상 아무 권한이 없는 주인공 미쓰백은 절절히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영화 <미쓰백>은 법적인 권한은 없지만, 오히려 진정한 모성과 연대의식을 통해 사랑으로 아이를 키워낼 수 있다는 ‘사회적 양육’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아동인권의 핵심은 가족과 가정에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책임질 일입니다. 결국 제도적으로 잘 갖춰진, 합법적 사회 양육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소설 《레 미제라블》(프랑스어: Les Misérables →비참한 사람들)의 빅토르 위고가 17세기 프랑스 유럽에서 주장하고 요구했던 바로 그것, 사회적 양육제도 말입니다. 400년이 훌쩍 흘렀지만, ‘사회가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생각’이 여전히 쉽지 않은 대한민국의 현실이 가슴 아픕니다.
4. <다음 소희>: 어리고 약해서 당하는 폭력과 착취
“힘든 일을 하면 존중받으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이나 한다고 더 무시해. 아무도 신경을 안 써.”
“학생이 일하다 죽었는데, 누구 하나 내 탓이라는 사람이 없어.”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는 대중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인 ‘청소년 노동자’의 메시지를 담은 매우 의미 깊은 영화입니다. 소희가 일하게 된 대기업 콜센터는 기본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인권이 너무 쉽게 무시되는 곳이었습니다. 콜센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실적과 회원 유지였는데, 월급은 터무니없이 적고 약속한 인센티브는 회사가 차일피일 미루며 지급하지 않습니다.
영화에는 두 명의 죽음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콜센터 직원을 몰아세울 수밖에 없었던 관리자의 죽음입니다. 심한 가책과 자책감, 부담감을 이기기 못해 회사 주차장에 세워둔 차안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회사 주차장임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산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팀장은 이 죽음을 외면하라면서 소희, 소희들을 더 몰아붙이고, 팀장의 죽음 이후 소희는 급격하게 무너집니다. 소희는 누구한테도 이 공허함과 괴로움을 이해받지 못하고 스스로 세상을 떠납니다.
<다음 소희>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감독은 실제 사건에 없는 경찰 ‘유진’이란 캐릭터를 만듭니다. 처음에 유진은 기계적으로 자살로 처리하려 했습니다. 그러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단순한 개인적 일탈이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임을 깨닫습니다. 유진은 영화 제목처럼 더 이상 ‘다음 소희’가 없기를 바라는 간곡한 심정으로 사람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집니다. “학생이 일하다 죽었는데, 이렇게 가만히 있기만 할 겁니까?”라고.
5. 영화를 통해 보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현실
“좋은 영화란 지독한 세계를 묘사하면서도 그 속에 살아있는 인간존재를 위한 가능성에 빛을 거두지 않는 영화가 아닐까요?”
뉴스에서 보는 사실들이 건조한 자료, 혹은 재료라면 영화는 가공된 허구이지만 현실에서 배제한 진실들, 어쩌면 더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는지 모릅니다. 픽션, 허구가 사실보다 더 진실하다고까지 말하는 이유는 사실을 통해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심리에 대한 공부와 탐구, 고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판타지는 현실적 실현이 어려운 일들을 해결하고 성취하는 모습을 통쾌하게 보여줍니다. 현실에서 보기 힘든 공정, 정의로운 복수, 사필귀정과 같은 속 시원한 결말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합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꼭 영화 내부에서만 일어나고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영화 <도가니> 이후에 장애학교의 폭력들이 다소 개선되었고,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덕분에 학교폭력에 대한 각성이 일어나면서 현실사회에도 엄청난 반응과 파장을 낳았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이 시대가 어둡고 어리석은 시대라는 것에 동의할 거다. 하지만 모든 것이 얼마나 어둡고 어리석은지를 그저 극화해서 보여주는 소설이 필요할까. 어두운 시대에서 좋은 예술에 대한 정의는 시대의 어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있고 빛을 내는 인간적이고 마법적인 요소들에 대해 심폐소생술을 가해주는 그런 소설일 거다. 어떤 소설이든 하고 싶은 대로 어두운 세계관을 가질 수 있겠지만, 정말로 좋은 소설이란 이런 세계를 묘사하면서도 그 속에 살아있는 인간존재를 위한 가능성에 빛을 비춰주는 소설이다.”
미국의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이 말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창작자들에게도 인상적입니다. 여기에 언급된 소설이란 말 대신 영화를 대입해보면 좋은 영화의 정의도 산출됩니다. 좋은 판타지란 어두운 세상을 견디게 하는 가능성을 믿고 내일을 따뜻하게 기다리게 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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