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투체를 하는 순례자들을 마음 아프게 바라보면서 그들에게 마음 속으로 물었다.
순례자들이여... 무엇을 위해서 순례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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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의 끝인 티벳의 수도인 라싸에는 포탈라궁과 조캉사원이 있다.
거기에는 티벳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오지투체를 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중국 또는 인도 네팔 등에서 온 불교신자들로 몇 달 또는 해를 걸쳐서 성지순례를 온 사람들이다.
티벳불교를 믿는 사람들의 소원은 평생에 한 번이라도 이 사원에 순례를 하는 것이다.
대중교통을 통해서 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1천키로미터가 넘는 험한 길을 경배를 하면서 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차마고도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면 가족이 수레에 짐을 싣고 한 사람은 출발지에서부터 오체투지를 하면서 가는 것을 보게
되는데 숙연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몇 년 전 티벳에 갔을 때 라싸의 포탈라궁이나 조캉사원, 시가체의 타쉬룽포사원에서 그렇게 순례를 온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을
보는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그들의 순례가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래 성지순례의 목적은 순례의 길을 통해서 마음을 수양하는 것이 목적이었을 것이나 세월이 지나면서 내세를 위한 조건으로 변
질되어 형식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성지순례는 불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종교는 거의 다 있겠지만 티벳불교 못지않은 열성을 가지고 순례를 하는 종교가 이슬람
이다.
해마다 12월 20일 경에 행해지는 성지순례기간 중에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수백 만 명의 무슬림이 메카라는 마호메드의 탄생지에
모이기 때문에 수십 명에서 수백 심지어는 수천 명의 압사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수십 명에서 수 천 명씩 사고로 목숨을 잃지만 누구도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도 평생에 한 번은 성지순례를 해야 이슬람교도로서의 사명을 다 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성지순례를 하다가 죽으면 천국
을 가는 것으로 믿기 때문라고 한다.
비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고행을 통해서 성지순례를 하는 티벳불교인들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순례행위가 무모하게 생각
되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또 종교인들이라고 하더라도 외적인 행위보다 내적인 변화를 중요시하는 종교나 종교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그들의 행위가
무모한 행위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들 중에는 성지순례를 일생의 소망으로 삼고 순례를 하기 위하여 일생을 바쳐 준비를 하기도 한다고 한다.
티벳불교에서의 순례는 자신의 업보를 멸하기 위한 것도 되지만 다른 사람들의 업보를 소멸하기 위한 순례를 한다고 하며, 이슬람
의 경우에는 그들의 죄가 어린아이처럼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과연 순례를 한다고 하여 그렇게 되겠는가?
자신들의 희망사항일 뿐이며 자신들도 자신의 바람대로 되어질 것이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순례를 한 사람과 순례를 하지 않은 사람들과 달라지는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일생의 소원을 성취했다는 만족감 이외에 달라질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순례를 하기 위해서 일생을 준비를 하는 그 과정을 통하여 심성이 순화가 된다든가 하는 순기능은 있을지 모르지만 단순하게 순례
를 하는 것 자체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본말이 전도된 신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례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은 그 과정을 통하여 그 종교의 창시자의 마음을 체휼하는 것으로 족한 것이지 거기에서 더 이상의
것이 얻어질 수도 얻어지지도 않는다.
거기에서 만약 그 이외의 것 이상의 것이 얻어진다고 한다면 그것은 결국 우매한 사람을 속이는 것이요 그 이상의 것을 바란다면
그 또한 어리석은 사람일 것이다.
종교나 의식에서 행위를 중요시하는 것은 그 행위를 통해서 내적인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지 그 행위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
는 거의 없다.
그리고 목적이 되어서도 안 된다.
종교에서 어떤 행위를 강조하는 것은 그 행위를 통해서 그 사람이 종교의 본질에 더 가깝게 가게 하기 위한 방편일 것이다.
때가 덕지덕지 묻어 찌들은 옷을 물에 아무리 넣었다 건졌다 하더라도 때는 빠지지 않는다.
때는 비비고 방망이로 두들겨 빨아야 빠지게 되어 있다.
때가 빠져야 옷의 본래의 색깔이 돌아오는 것처럼 조건을 세움을 본성이 회복되는 것이 아니고 철저한 회개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
이 아니겠는가....
관광은 즐기는 것이 주가 되고 여행은 보고 느끼면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주가 되는 것으로 집을 떠나는 것은 같지만 목적은 다르
다.
그리 많이 다녀보지는 못했지만 가장 가슴이 아팠던 여행지가 인도 그리도 남미 아프리카 였었다.
여행을 하다가 보면 대부분이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그들의 삶이 한동안 눈앞에 어른거리게 된다.
그 중에서도 인도의 하층민들의 삶은 우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참하게 사는데 그들은 부당한 카스트 제도와 다음 세상에 더
좋은 계급으로 태어날 것이라는 믿음 아래서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계급의 사람들은
그들이 그렇게 사는 것 또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들을 보게 되면 연민의 정과 더불어 분노가 차오르게 된다.
견문이 넓어지는만큼 아픈 기억도 많아지는 것이 여행이다.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내가 느끼는 여행의 코드는 연민이고 슬픔이었다.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고....
포탈라 궁 앞에서 오지투체로 참배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