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에덴 동산
신화는 초자연적 존재에 즉 신神과 또는 우주의 기원과 민족의 시원 등에 대한 서사적 이야기이다. 모든 나라와 민족에게는 그 공동체 고유의 신화들이 있다.
성경은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에 대한 이야기로 하느님께서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이야기, 그리고 손상되고 파괴된 창조질서의 복원에 대한 이야기다. 성경은 마치 한 권의 그림으로 된 두루마리와 같다. 그 첫머리에 우주의 시작이 그려져 있고 그 마지자막에는 우주의 완성(종말)을 보여주고 있다.
창조와 관련된 에덴 이야기 이것은 신화神話이다. 신화는 사실(실화)이다. 다른 신화와 마찬가지로 진실을 말하고 있다. 이 신화는 인간 본성에 대한 교훈과 인간의 진화에 대한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는 그때 그 순간부터 자의식이라는 진화가 비롯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신화를 통해 부끄러움이 인간의 특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처음 에덴의 인간은 하느님과 자연과 일체감을 이룬 존재였다. 그런데 죄를 범하고 낙원에서 추방되었다는 것은 이 일체감을 상실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 멋지고 의미 심장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분별과 선택의 힘에 대한 것으로, 우리가 진리를 추구할 것인가? 거짓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에덴동산 이야기는 선과 악의 발생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 일체감 상실의 고통이 원인이요, 일체감 상실의 회복이 곧 구원이다. 여기서 인간은 생산적 고통(실존적 고통)과 일상적 고통(신경증적 고통)을 구별하여야 한다. 즉 내 고통이 신경즉적인가, 실존적인가 차이를 구별하며 내 실존을 강화 또는 저해할 수 있다. 이 멋지고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선택의 힘에 대한 것으로 force냐, power냐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내가 고통을 생산적으로 선택할 수도 파괴적으로도 선택할 수도 있다.
창세기 3,24절의 커룹과 불칼 파수는 인간이 낙원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불 칼로 지킨다는 것이다. 에덴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성장해야만 한다. 삶이라는 광야에서,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진리이다. 약물 남용을 포함해서 인간의 정신 병리 중 상당수가 에덴으로 되돌아가려는 시도(절대적 행복)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술 대마초 코카인등을 적당히 사용한다면 우리는 몇 분 몇 시간은 저 우주와의 따뜻하고 포근한 일체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느낌을 단시간이며 치러야 할 대가도 너무 비싸다.
첫댓글 성경자료방을 추가했습니다. 의미있는 첫 번으로 무엇을 올릴까 고민하다 철학, 신학,과학의 모태가 되는 신화에 대한 것이 적당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위 내용, 어디서 읽었는지 아마 정신과 의사인 이나미 아님 정신혜 두 분 선생님이 쓰신 글 같은데 읽으면서 엄청 공감했던 글입니다. 실력이 된다면 이 글 앞두리ㅗ 신화에 대해 더 부연 설명을 하고 싶었지만. .... 짧으면 짧은대로 신화가 어떻게 하느님을 말하는 신화가 되고 또한 철학과 과학 일상이 되는지 이 짧은 글에서도 여실히 엿볼 수 있습니다. 저는 무진장 영감을 받는 대목입니다. 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