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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6-7(316) 주께 하듯 행동하라 2026. 1. 4
오늘은 새해 첫 주일입니다. 한 해 동안 주일성수 잘하시고,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의 영혼과 육신이 건강하게 회복되시기 바랍니다. 내 기쁨과 즐거움을 위한 예배와 교회생활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드려지는 교회생활이 되기를 축원 드립니다.
예배의 주인공은 예배에 참여한 내가 아니라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기에 2026년 이 한 해 동안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림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큰 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026년도 우리 덕민 교회 표어가 앞 강대상 벽면에 부착되어져 있습니다. 다 함께 한 목소리로 읽어 보겠습니다.‘주께 하듯, 기쁨으로 섬기는 한 해’. 에베소서 6:7절을 바탕으로 제가 기도하는 중에, 우리 교회와 모든 성도님들이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사 초기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서울 중화동의 경동제일교회에 영수직분으로 섬기는 엄귀현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의 본래 평상시 직업은 마부꾼입니다. 말을 몰면서 사람들을 태워 목적지까지 정성껏 섬기는 일을 합니다.
그러다가 마부꾼의 일이 비는 날이면, 한 걸음으로 교회로 달려 와서 성심껏 봉사를 합니다. 교회를 관리하고 정리하는 일을 솔선수범합니다. 사람들이 오기 전, 먼저 교회에 와서 궂은일을 다 합니다. 아무도 남지 않은 밤, 그는 마지막으로 불을 끄고 문을 잠그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성전 바닥을 정성껏 닦았고, 예배당 의자를 가지런히 맞추었으며, 작은 고장 하나도 그냥 넘기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교회 일에 지극정성을 다하여 봉사하는 모습을 보이자 여러 사람들이 ‘몸 생각하면서 대충대충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사람들이 안 봐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보시잖아요.’그는 사람의 평가를 위해 일하지 않았고, 하나님 앞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보이는 자리보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칭찬받기보다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묵묵히 일하는 분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목회자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직분자에게만 주신 말씀도 아닙니다.
✔안내하는 손길에서 ✔청소하는 손에서 ✔찬양대 뒤편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봉사 자리에서 우리가 누구를 향해 일하고 있는지를 묻는 말씀입니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주님 앞에서 드리는 섬김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사람을 의식하면 피곤해지고, 하나님을 의식하면 기쁨이 된다. 섬김의 크기는 일이 아니라, 누구 앞에서 하느냐에 있다.’
저는 2026년에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에게 귀하게 쓰임을 받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에게 쓰임 받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본문의 배경은 초대교회 당시 주인과 종의 신분이 사회적으로 존재하던 때에 주어진 말씀입니다.
오늘날은 <종>이라 부르는 사회적인 신분이 없습니다. 종은 없지만, 직장과 사회생활을 보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기준은 분명히 있습니다. 고용주와 고용자가 있고, 사장이 있으며 사원이 있습니다.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있고 그 지시를 받아 실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앞에서는 일하는 척 하지만 뒤 돌아 게으름 피우는 불성실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충성스런 자세가 아닙니다. 충성된 종은 주인이 보거나 안보거나 항상 성실하고 정직하게 자기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본문은 주인과 종의 관계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에서 주를 위해 봉사자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성실하고 충성된 모습으로 행하는 섬김의 자세입니다.
섬기며 봉사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사람을 기쁘게 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고 하나님께 하듯이 섬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한 해 동안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잘 섬깁시다. 성도들을 사랑으로 잘 섬깁시다. 그럴 때 아름답고 은혜로운 섬김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섬기듯이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자가 더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섬김을 받는 자 보다는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2천년 전 성경이 기록될 당시 유대인들은 끈으로 묶은 샌들을 신고 다녔습니다. 도로 사정도 열악해서 조금만 거리를 나돌아 다녀도 발은 매우 더러워졌습니다. 그래서 집에 손님이 오면, 주인은 종을 시켜서 가장 먼저 세수 대야에 물을 떠서 발을 씻기게 합니다. 손님의 발이 깨끗하게 씻겨지게 되면, 주인은 수건을 내어 주어서 물기를 닦게 합니다.
여기에서 관심 있게 살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손님의 발을 씻기는 것은 종이 하지만, 발을 닦는 것은 손님이 스스로 한다는 점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말씀은 잘 아실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발을 씻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직접 수건을 가지고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시는 더 낮아지는 섬김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 13:6,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이런 예수님의 모습은 완전한 섬김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능력이 없어서 낮아지고 섬기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서 모든 권세와 능력을 가진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런데도 더 낮아질 곳이 없는 자리까지 내려가셔서 섬김의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례요한의 고백대로 ‘우리는 허리를 굽혀 그의 신발 끈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며 활동하셨던 모든 것이 섬김의 모습이었습니다. 사회적 약자였던 어린아이와 과부들을 챙겨 주는 사랑의 실천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섬김을 받기 보다는 섬기는 자가 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은 군림하기 보다는 낮아지는 모습으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섬기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사명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2026년은 주께 하듯 기쁨으로 섬기는 자가 되고, 주께 하듯 기쁨으로 봉사하는 자가 되고, 주께 하듯 성심성의껏 이 세상에서 주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행동해야만 기쁜 마음으로 섬기는 모습을 가질 수 있을까요?
1. 성실하게 순종하는 모습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6절,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상반절에 보면‘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이 말씀에 가슴 뜨끔 하는 사람들 많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보면 눈가림만 하면서 일하는 흉내만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병든 사회입니다.
여러분들은 1995년 6월에 발생한 삼풍 백화점 붕괴라는 대한민국 최악의 건축물 붕괴사고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망자가 502명, 부상자가 937명으로 대한민국 현대 최악의 건축물 붕괴사고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나중에 사고에 대한 보고가 나왔는데, 건축물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구조변경이 있었는데, 눈가림 흉내만 내면서 설계 변경을 해 주고, 눈 감아 주었던 대한민국의 어두운 뒷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난 사고였습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2013년 4월에 방글라데시에서 불법 증축과 부실 구조로 인해 건물이 무너졌습니다. 사망이 1,134명 부상자 2,500명이라는 참사가 발생합니다. 이 또한 건물주도 눈가림으로 건축하였고, 허가관청도 눈가림으로 허가를 내 주었고, 건물에 균열이 가서 무너진다는 권고가 있었지만, 눈가림으로 흉내만 내다가 대참사가 발생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상에서도 눈가림만 하면서 사람을 속이는 모습은 절대 인정받지 못하는 추잡한 행동입니다. 눈가림만 하는 사람은 절대 신뢰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내 주변에 있다면, 언젠가는 나에게 큰 피해를 줄 사람입니다. 그래서 눈가림만 하면서 행동하는 사람은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사람이 되기에, 모두 싫어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사람들 눈에만 보이려고 눈가림으로 일하는 자가 되어서 안 됩니다. 모든 일을 할 때 하나님 앞에서 일하는 모습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절대 눈가림만 하면서 사람을 살짝 속이는 행동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눈가림이라는 말 자체가 언젠가는 가려진 눈이 드러날 때, 그 모든 실체가 다 드러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정직하게 행동하십시오.
그리고 하반절에 보면 바울은 ‘눈가림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본문에서 요구하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모습은 사람의 눈에 들기 위해 아부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신앙양심을 저버리면서 사람들에게 호감을 받으려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 부분에 참 못하는 사람입니다. 윗사람에게 적당하게 아부 떨고, 적당하게 불의한 일과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저는 전혀 그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오래전 제가 부목사 시절 섬겼던 교회에 장로님 한 분이 계셨는데, 부산 교계에서 이름만 드러내면 모를 이 없이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명절이면 꼬박꼬박 정성껏 선물을 보내면서 부교역자들에게도 참 잘 대해주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말과 행동, 교회안과 밖의 행동이 많이 달라서 제 신앙관점과 많이 부딛쳤습니다. 그 장로님은 당회 안에서의 말과 행동이 밖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담임목사의 뒷 담화를 성도들에게 서스럼 없이 하는 분입니다. 성도들의 아픔을 감싸 안아 주기보다는 교인들의 분열에 도리어 일조를 가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그 장로님과 가급적 부딪치지 않으려고 무진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하루, 주일 낮 점심식사를 한 뒤에, 장로님이 저를 따로 불러서 ‘주중에 저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싶으니 시간을 좀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그 분 면전에서 ‘제가 장로님을 많이 사랑하지만, 존경하지는 못 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본인의 기준만 가지고 노회일이나 교회 일을 올바르게 처리하지 못하는 장로님의 행동 원칙에 제가 추구하는 신앙관하고 맞지 않다. 그래서 장로님의 식사제안은 감사하지만, 사적인 만남은 가지고 싶지 않다’고 그야말로 당돌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다가, 그 장로님 눈 밖에 나면서 제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벌써 27-28년 전인 오래된 옛날이야기지만, 저는 지금까지 저의 행동과 저의 판단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은 단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점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단점과 장점이 함께 있는 부족한 목회자입니다. 하지만 자랑해야 할 나의 장점이 사람들을 속이는 눈가림만 하는 장점이라면, 저는 그 장점 모두를 포기할 것입니다.
영어 단어 중에 vocation(직업)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영어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vocatio 라는 단어에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라틴어 vocatio는 ‘부르다, 소환하다, 이름을 부르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모든 사람들이 가지는 직업이 단순한 직업(Job)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로부터 부름을 받아 가지는 직업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목회를 하는 목회자의 직업이나 거리에서 청소를 하는 청소부의 직업이나 하나님이 주시는 모두 다 귀한 직업이라는 말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내가 낮아지고 섬기는 모습 조차도 하나님이 나를 불러 사용하시는 은혜라는 점입니다.
2. 기쁜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7절,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저는 이 말씀이 2026년 올 한 해 동안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할 목표이자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 행하는 신앙의 일이든, 세상에서 행하는 내 직장과 내 삶의 일이든, 모든 일에 기쁨으로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못해서 하는 일은 억지로 하는 것이며, 이것은 기쁨이 아닙니다. 할 수 없이 하는 일이라면 눈가림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기에 매사에 기쁨으로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1)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2026년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우리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흔들리지 말고 기쁨으로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나아가는 한 해가 되어야 합니다.
2)기쁨으로 교회생활을 하는 2026년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생활은 개인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생활은 공동체 생활입니다. 내 목소리를 드러내고 주장하기 보다는 낮아지고 섬기는 것이 교회공동체의 기본 생활인 것을 잊지 말도록 합시다.
3)기쁨의 섬김의 생활을 하는 2026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Santiago=San Iacobo=성 야고보)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성당이 있는데, 이 성당에는 사도 야고보의 무덤이 있습니다. 야고보의 무덤이 있다는 것 때문에, 산티아고 대성당은 중세시대부터 현재까지 유럽 최대 순례지가 됩니다.
교통이 불편한 시절에 많은 순례자들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야고보의 신앙을 생각하며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아 왔습니다. 찾아날마다 오는 사람만 바뀌었을 뿐, 하루에도 수십명의 사람들이 성당을 방문하면서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성당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을 안내하는데, 이 일을 맡은 사람들이 ‘매일 같이 똑같이 안내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실증’을 느끼게 됩니다. 찾아오는 순례자는 일생한번 기회라 생각하고 큰돈을 만들고 시간을 내어 찾아오지만, 안내하는 이들에게는 지루한 일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정성도, 열정도 없이 대충대충 안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940년대, 에두아르도 보닌(Eduardo Bonnín)이란 분이 ‘이렇게 해서는 행동해서는 안 되겠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안내를 담당하던 사람들을 불러놓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곳을 찾아오는 순례자들을 순례자라고 생각하지 맙시다. 주님께서 찾아 오셨다고 생각합시다. 주님이 내 앞에 서 계신다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여 안내합시다. 최선을 다하여 설명하고, 정성을 모아 기도하고, 주님께 하듯 식사를 정성으로 대접합시다.’
이러한 자세로 안내를 시작하였더니 찾아 온 순례자들마다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눈가림만 하는 안내가 아니라 진심을 담은 성심성의 껏 하는 안내에 모두가 감동을 받게 됩니다. 이 경험을 가지고 보닌이 만든 영성 훈련 프로그램이 바로 평신도 영성훈련인 꾸르실료(Cursillo)운동입니다. 그래서 꾸르실료 운동은 ‘복음의 본질은 올바른 삶으로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매너리즘(Mannerism)이라는 말을 아실 것입니다.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말로 자주 사용되는데, 이 단어는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너무나 익숙해지다 보니 새로움이나 진정성이 없이 그럭저럭 눈가림만 하면서 시간만 대충 때우는 것’을 두고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대충대충, 그럭저럭 행동하는 것이 매너리즘의 전형적 모습입니다.
저는 2026년 이 한해가 여러분 모두 신앙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부부간에도 사랑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진심을 다해 기쁜 마음으로 아내와 남편을 사랑하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진심을 다해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 드립니다.
새해에는 성도들을 보실 때마다 ‘주님을 보는 것 같습니다’라는 성도님들이 되십시오.
그럴 때 우리는 진정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보시면서 ‘당신을 보니 주님을 보는 것 같습니다’라고 인사합시다. 이 마음 2026년 모든 시간 동안 변치 마시고 섬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