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여전부터 본격적으로 산행에 조금씩 취미를 붙여서 여기저기 인터넷을 뒤지며 산행기를 읽던 중에 작년 이맘때쯤인가 누군가의 중미산/매곡산 산행기를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 고향산천의 산행기라 반갑기도 한 반면 한편으론 황당하다는 느낌이었다. 그 능선이야말로 등산로가 제대로 되어 있지도 않을 뿐더러 산정상(가마봉/매곡산)에 올라 본들 조망도 시원치 않고 무언가 특별한 것이 없는 그저 평범한 야산에 불과할 것이란 생각에서 였다.
그러나, 점차 산행횟수가 늘어나면서 유명한 산을 찾아 멀리 다니는 것도 좋지만 한번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의 산행도 뜻있는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을 오가며 주변의 산을 볼 때마다 기회가 되면 산행을 하리라 마음을 먹었지만 아직 독도법도 잘 모르고 산행 경험도 많지 않아 실행을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대장님이 중미산/매곡산의 산행공지를 올리신 것이 아닌가? 그저 반가운 마음에 토요일 근무일정도 바꾸고 대장님의 꼬리를 1착으로 잡는다.
새벽 5시 30분 자명종 소리에 눈을 뜨니 어제 밤 설레임에 일찍 잠들지 못한 탓에 몸이 무겁다. 그러나, 7시까지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려면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물을 끓여 보온병에 담고 정종도 스텐주전자에 따끈따끈하게 데워 보온병에 담는다. 어제 미리 준비해 놓은 배낭을 주섬주섬 꾸려 메고 살며시 집을 나선다.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약속시간에 맞추기 위해 조금만 더 일찍 서두르면 좋을텐데 생각하면서 혹여 늦을까봐 마음이 조급하다. 아파트단지부터 전철역까지 거의 뛰다시피하여 6호선, 7호선, 2호선을 차례로 타고 마음을 졸이며 동서울터미날에 도착하니 아직 15분쯤 여유가 있다.
도시락은 챙겼지만 아침을 먹지 않아 양평가는 버스에서라도 먹을까하고 김밥집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저만치 염통대장님의 뒷모습이 보인다. 얼른 뛰어가 인사를 여쭙고 있는데 당초 참석꼬리를 달지 않았던 관우님이 산이랑님과 같이 나타나신다. 두분께 반갑게 인사를 하니 관우님 왈 출근을 해야 하는데 산이랑님이 마구잡이(?)로 꼬드겨서 나왔단다. 관우님도 아침식사를 안했으면 김밥을 좀 넉넉하게 살 요량으로 식사여부를 물으니 포장마차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잔다. 관우님이 사주시는 잔치국수 한그릇을 얼른 비우고(관우님 잘 먹었슴다.) 나오니 솔방울님과 문주란님도 이미 와 계신다.
07:05에 동서울터미날을 출발한 속초행 버스는 벌써 양수리를 지나고 신양수대교를 달리고 있다. 아침햇살이 차창을 눈부시게 비추는 가운데 남한강은 물안개를 뽀얗게 피워 올리고 있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하다. 고향을 갈 때면 언제나 지나는 길이 건만 오늘따라 새롭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차안에서는 지난번 인수봉 등정의 무용담(?)을 산이랑님과 관우님이 번갈아 하시고 솔방울님부부와 나는 감탄사를 연발하다 보니 어느덧 양평터미날에 버스가 45분만에 도착한다.
양평터미날에서 다음 행선지인 중미산행 버스 출발시각(08:20)을 확인하고 여유롭게 기다리며 막걸리도 사고 볼일(?)을 보고 버스에 오르니 우리 뽀루님들만 탔다. 양평시장에서 연세가 지긋하신 아주머니 한분이 타시더니 내 뒷좌석에 앉으신다. 버스는 냉면으로 유명한 옥천을 지나고 한화콘도입구를 거쳐 꼬불꼬불 힘겹게 농다치고개를 오른다. 이 때까지 내리지 않으시는 아주머니께 어디까지 가시느냐고 여쭈니 정배리까지 가신단다. 알고 보니 나의 모교인 정배초등학교의 초대교장으로서 지역사회의 명망가셨던 분의 며느님이시란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고향에 오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족보(?)를 캐면 금방 들통이 나게 마련이라 행동거지가 조심스럽다. 어느덧 버스는 농다치고개를 넘어 중미산천문대를 지나 양현마을의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 중미산휴양림입구에서 아주머니께 안녕히 가시라고 하고 우리 뽀루님들은 버스를 내린다.
고여 있는 물에 얼음이 얼은 임도를 따라 5분여 걸으니 본격적인 산행들머리이다. 초반부터 상당히 가파르다. 초등학교 6년동안 봄가을로 한번씩 있는 12번의 소풍중에 10번은 동일한 곳으로 가고 2번만 다른 곳으로 갔었는데 그 2곳중 한곳이 지금 오르고 있는 이 길을 지나 서너치고개를 넘어 유명산계곡의 입구였었다. 철없던 시절 힘들어하며 이 길을 오른 이후 지금 불혹을 훨씬 넘은 나이에 다시 오르니 감회가 새롭다.
서릿발이 선 산길을 헉헉거리며 30여분 올라 능선에 이르니 금방 땀방울이 맺히고 오른쪽으로 서너치고개마루가 보인다. 잠시 숨을 고르며 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고 능선길을 따라 재차 30여분을 치고 오르니 바위지대가 나오고 이 바윗길을 가볍게 네발로 오르니 바로 중미산 정상(834m)이다.
약간 흐린 날씨지만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한마디로 기가 막히다. 멀리 서쪽으로 북한산의 백운대, 인수봉으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도봉산, 천마산, 운악산, 화악산, 지척에 보이는 용문산, 유명산, 소구니산이 차례로 조망된다. 지난번 양평에서 청평으로 가던중 잠깐 짬을 내어 서너치고개를 들머리로 해서 중미산에 올랐을 때는 이렇게 조망이 좋은 줄 몰랐었는데.....
산행하는 사람마다 각자 취향이 다르겠지만 산행의 즐거움을 산정상에서의 조망, 암벽타기의 스릴, 상쾌한 삼림욕이라 할 때 나는 시원하고 장쾌한 조망을 제일 좋아한다. 따라서, 오늘 산행은 이것으로서 벌써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따끈따끈한 정종 한잔으로 정상주를 대신하고 아쉽지만 조망을 10여분으로 끝내며 이제 가마봉/매곡산을 향하여 본격적인 능선 종주 산행을 시작한다.
약 20여분에 걸쳐 내리막길을 내려 오니 삼각골로 빠지는 안부가 나오고 다시 오르막길을 약 30여분을 치고 오르니 699m봉이다. 잠깐 숨을 고르고 다시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지는데 길이 희미하다. 대장님이 열심히 독도를 하시며 정확하게 방향을 잡아 가지만 길이 워낙 험하다. 중미산 내리막길에서부터 무릅관절에 조금씩 통증을 느끼시던 문주란님은 무릅보호대를 하시고 내려 오지만 점점 힘겨워하시는 것 같다.
약 30여분만에 소유곡으로 내려가는 안부에 이르러 휴식을 겸해 솔방울님이 가져오신 쌀과자를 안주로 막걸리를 한잔하고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니 금방 헬기장이 있는 615m봉이다. 이곳에서 왼쪽계곡을 보니 지금은 교회기도원에 빼앗겨 버린 십자수계곡이 저멀리 내려다 보인다. 3곳의 계곡물이 한군데에 모여 열십(十)자로 흐르고 합수점 한가운데는 초등학생 100여명이 앉을 수 있는 넓직한 바위가 있어 초등학교 10번의 소풍을 갔던 정말 멋있는 곳인데 아쉽게도 지금은 계곡을 통째로 기도원이 접수해 버렸으니....안타깝고 아쉬울 뿐.... 쩝!!!
그러나, 이런 내 어린시절 추억에 잠기는 것도 잠깐, 다시 갈길을 가야하는 우리 뽀루님들이 아닌가? 헬기장을 내려오며 솔방울님의 부축에도 불구하고 문주란님의 무릎은 안타깝게도 점점 고통을 호소하게 되고 관우님부부는 선두와 후미를 조절하느라 바쁘시다. 40여분을 내려 와 명달리고개를 바로 코앞에 두고 휴식을 취하는데 솔방울님이 문주란님하고 힘들게 내려 오시더니 명달리고개에서 산행을 중지하고 문호리로 바로 가겠다고 하신다.
이에 일단 이 자리에서 휴식겸 점심을 먹기로 한다. 대장님 말씀에 의하면 오늘 산행계획코스중 약 3/7 지점이란다. 언제나 산행중의 점심시간은 정말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지만 각자 싸가지고 온 반찬이 어느 호텔 뷔페보다 더 정갈하고 깔끔하다. 솔방울님이 가져오신 향기와 맛과 색깔이 기가 막힌 술을 반주삼아 푸짐한 식사를 하고 과일과 따끈한 커피로 디저트까지 냠냠!! 쩝쩝!!
식사를 하며 생각하니 휴식이 끝나도 문주란님의 무릎 통증이 가라 앉지 않는다면 명달리고개에서 문호리까지 가는 교통편이 문제다. 대중교통은 물론 없고 어쩌다 한 대씩 지나가는 차를 무조건 잡아 사정을 호소하고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데 이게 쉬운일이 아니지 않는가? 식사를 얼른 끝내고 휴대전화의 전화번호를 검색하여 고향을 지키고 있는 친구들을 수소문하니 마침 명달리에 한 친구가 집에 있다.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승용차는 아니지만 괜찮다면 트럭으로라도 픽업을 해 주겠다고 흔쾌히 대답을 한다.
고개마루에서 그 친구와 만나 문주란님을 보내려고 하니 의리의 산이랑님이 도우미를 자처하신다. 문호리까지 산이랑님이 동행을 하시고 솔방울님은 계속 산행하기로 한다. 이에 친구에게 두분을 잘 모셔 줄 것을 부탁하고 트럭이 출발하니 정각 14:00시다.
이제는 대장님을 위시한 뽀루전사 4명만 남았다. 문주란님과 산이랑님 몫의 산행까지 남은 뽀루들이 해야 되지 않겠는가? 이런 의무감 때문인지 후반 산행은 그야말로 산악구보를 무색케 하는 일사분란한 산행이다. 20분만에 가마봉에 오르고 뒤돌아 보니 꾸불꾸불 이어진 명달리고개가 내려다 보인다. 이 고개야말로 명달리에 살던 10여명의 친구들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넘나들며 통학을 하던 고개가 아닌가? 또한, 초등학교 12번의 소풍중 나머지 1번은 이 고개를 넘어 명달리 분교로 갔던 바로 그 고개가 아니던가?
가마봉에서 15분여 내리막길을 내려 오니 진대마을로 빠지는 안부다. 이 곳 또한 지금은 거의 길의 윤곽조차 희미하지만 진대마을에 살던 친구 2명이 초등학교 통학을 위해 넘나 들던 고개다. 안부에서 다시 수북히 쌓인 낙엽을 밟으며 전혀 사람의 발자취가 없는 등로를 40여분간 힘차게 오르니 매곡산헬기장이다. 왼쪽 계곡으로 저만치 어디쯤인가 있을 선영을 눈가름으로 찾아 마음속으로 성묘를 한다.
이제 푯대봉을 향해 다시 행군이 시작된다. 왼쪽으로는 무궁화공원묘지의 흉물스런 모습이 보이고 바치울로 빠지는 안부에 이르자 무연고 묘지의 무성의한 푯말도 보인다. 죽으면 이렇게 되는구나 생각하니 약간은 우울하다. 이런 기분도 잠시 선두에 가시는 대장님을 따라 잡기에 여념이 없다. 스틱도 없으신데 대장님은 오르막길이건 내리막길이건 잘도 가신다.
발목까지 쌓인 낙엽은 한겨울의 눈길처럼 매우 미끄럽다. 우리뽀루님들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길의 뽀드득 소리대신 낙엽은 바삭 바삭 소리를 내고 내리막길에서는 아예 낙엽을 눈삼아 스키를 타듯 미끄러져 내려온다. 눈앞에 푯대봉을 가늠하며 내달리기를 한참하니 드디어 북한강이 저만치 아래 보인다.
오른편 북한강쪽 사면으로는 흰줄이 쳐져 있고 중간 중간에 산나물 및 산더덕 채취금지 안내판이 흉물스럽게 붙어 있다. 잠시후 고사리가 무성한 푯대봉 정상이 나오고 잠시 숨돌릴 틈도 없이 지루하게 문호리에서 기다리고 계실 문주란님과 산이랑님을 생각하며 그대로 내려 달린다. 그 와중에도 관우님은 푯대봉주변에 고사리를 생각하고 내년 봄에 와서 우리 뽀루방 명의로 나물채취금지 팻말을 붙이면 어떻겠냐고 우수개소리를 하신다.
점점 고도를 낮출수록 우측으로 모교인 서종중학교(서울로 유학을 와서 졸업장은 없지만)도 보이고 드디어 정각 17:00시에 날머리인 문호리 문호교회앞에 정확하게 내려선다. 산행계획구간의 3/7지점인 명달리고개까지 약 4시간이 걸렸는데 나머지 4/7구간에 3시간이 걸렸으니 엄청 빠른 속도다. 솔방울님은 124군부대 출신도 이렇게 빠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농담도 하시고......
문주란님과 산이랑님이 계신 곳으로 합류하여 저녁식사를 겸해 쐬주에 뒷풀이를 하고 양수리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양수리에서 버스를 갈아 타고 팔당부근의 꽉막힌 길을 근근히 통과하니 팔당대교에서 관우님부부가 먼저 하차를 한다.
이후로는 비교적 잘 빠지는 길을 달려 망우리 고개를 넘어온다. 오른쪽 방향을 보니 마침 저멀리 육군사관학교에서 화랑축제 불꽃놀이가 한창이다. 오늘 산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가족과 함께 신내동 봉화산에 올라 저 불꽃놀이를 같이 감상할 계획이었는데....(아이들에게 좀 미안하다) 잠시후 7호선 상봉역에 도착(20:50)하니 대장님과 솔방울님부부가 내리신다. 다음 산행에서 뵙기를 기약하며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5. 산행후기
오늘 산행 내내 우리뽀루님들외에는 다른 산님을 전혀 볼 수 없었던 그야말로 뽀루들만의 호젓하고 깨끗한 청정지역의 산행이었는데 카메라가 준비가 안돼 증명사진 한장 없는 것이 아쉽지만 마음속에 담아 두기로 합니다.
문주란님과 산이랑님이 산행을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다음 기회에 좋은 컨디션으로 함께 하시길 바라며 문주란님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산행을 지휘하신 염통대장님께 감사드리며 말씀은 안하시지만 마음 졸였을 솔방울님 수고 하셨습니다. 언제나 든든하게 우리 뽀루방을 지켜주시는 관우님+산이랑님께도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산행이 끝난후 바로 따끈따끈한 산행기가 올라와야 실감이 나는데 게으르다 보니 너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산행기를 처음 쓰다보니 어눌한 표현으로 매끄럽지 못하고, 아울러 저의 어린 시절 추억을 더듬다 보니 쓸데없이 너무 장황한 산행기가 되어 버렸군요. 이 점 양해하여 주시기 바라며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끝.
첫댓글 산행후기란이 썰렁해서 제가 다른카페에 실었던 산행기 퍼 왔습니다. 윗글에서 제 닉네임은 '늘푸름'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오랫만에 동생 동일이 한테서 전화가 왔길래 반가운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친구분 얘기를 하더군요. 다시한번 반갑고 감사합니다. 좋은 날 되시길 바랍니다.
어제 동일이를 만나서 얘기를 했습니다. 동선이도 동창인데 사촌되신다고 들었습니다. 좋은 산행하시길 바랍니다.
아하....그렇군요....늘푸름 아주 멋진데요......
잘보고 갑니다. 나도 산행후기 쓰려 해봤는데 잘안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