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전강해(1)
은혜와 평강이
본문 : 살전 1:1
오늘부터 데살로니가 전서를
강해하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는 바울의 서신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A.D. 51년경) 서신입니다.
즉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책입니다.
<데살로니가>
먼저 데살로니가란 도시에 대해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 도시는 B.C. 315년
“카산다”(Casander) 왕이
알렉산더 대왕의 누이이자 ......
자신의 아내인 데살로니가의 이름을
다서 지은 도시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라고 부르는 국가는
바울 당시에는 두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북부 : 마게도니아(주요도시 :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등)
남부 : 아가야(주요도시 :
아덴과 고린도)
B.C. 146년 로마가 이곳을 자치령으로 할 당시에
마게도니아의 수도가 될 만큼 큰 도시였습니다.
마게도니아의 중요한 항구요 무역도시였기에
상업이 발달하였고 상술에 능한 유대인들이 모여들었고,
지중해 전역에서 배들과 선원들이 모여들어
부도덕과 방탕의 도시였습니다.
<복음이 전해진 경위>
그럼 이 도시에 교회는 어떻게 생겼을까 ?
복음이 최초로 유럽에 전해진 경위에 대한
사도행전의 기록은 선교 역사상
가장 생동적이고 감동적인 기사 중 하나입니다.
바울은 실라와 함께 2차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수리아, 길리기아, 갈라디아 등지에 세운
교회들을 다시 방문하고....
‘드로아’라는 항구도시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거기서 환상을 보았습니다.
< 행16:9-10>
9절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절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아시아로 가려했던 자신의 계획을 접고
순종하기로 합니다.
이것이 유럽에 복음이 들어가게 된 배경입니다.
그래서 유럽에 첫 발을 내딛은 곳이
마게도냐의 빌립보입니다.
강변의 기도처에서 최초의 회심자를 얻었습니다.
바로 자주장사 루디아입니다.
그러나 귀신들려 점을 치는 여종을
고쳐준 것이 빌미가 되어 송사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종의 주인은 점으로
큰 이익을 보는 자였기 때문)...
결국 무참히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맙니다.
그러나 그날 밤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행16:25-26>
25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절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저는 지진이 나고 옥문이 열린 것도
기적이지만....., 더 놀라운 기적은......
바울과 실라가 그 밤에 하나님을 찬미한 것이
더 큰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 사건으로 간수와 그의 집이
구원을 받는 감동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후 빌립보를 떠난 바울 일행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도착하였습니다.
간단히 기록되어 있지만
무려 160Km나 되는 먼 거리입니다.
옛날 사람들 여행 속도로
하루 100리씩을 걸었다
하더라도 나흘 길이 짱짱합니다.
더구나 빌립보에서 당한 고난과
능욕의 상처가 아직 완전히
치유된 상태가 아니었음으로....
데살로니가로 가는 여정은
매우 힘겨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에 도착한
바울 일행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
또 복음을 전했습니다.
<행17:1-3>
1절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절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절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유대인의 회당에서 3주간 동안(세 안식일)
복음을 전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전한 복음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분명히 드러납니다.
바울의 메시지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구약성경이 고난과 죽임을 당한 뒤에
부활하실 메시아를 예언했다는 것,
둘째, 그 예언들이 나사렛 예수를 통하여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바울의 전도를 통해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있었고....
약간의 유대인들도 바울의 가르침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4절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데살로니가를 떠나는 바울>
그 일은 유대인들의 반발을 불렀습니다.
그래서 회당에서 가르치지 못하고
야손이란 사람의 집에서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인들의 반발은
생각보다 깊었습니다.
불량한 사람들을 동원하여 야손의 집을
침입하여 바울의 일행을 잡으려고 한 것입니다.
다행히 정보를 미리 알고 몸을 피할 수 있었지만,
대신 야손과 몇몇 성도들이 잡혀
읍장 앞으로 끌려갔습니다.
유대인들은 읍장에게
“이 사람들이 예수라고 하는
또 다른 황제를 추대해서 천하를
어지럽게 하려는 선동자들을 받아들였다”며
은닉죄로 고발을 했습니다.
그들의 바울의 죄목을 마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와 같은
죄목(반역죄)으로 뒤집어 씌웠습니다.
그들을 숨겨준 죄도 반역지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야손 일행은 구속되지는 않았지만
보석금을 내고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행17:5-9).
이 사건으로 바울과 실라는
더 이상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후 바울의 일행은 밤에
베뢰아로 가게 되었습니다(행 17장).
베뢰아에 도착한 바울은
또 유대인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행히 베뢰아 사람들은 너그러워서(신사적)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행17:11-12>
11절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절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그런데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바울이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거기까지 좇아와서 훼방을 놓았습니다.
결국 바울은 혼자서 베뢰아를 떠나
아덴으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디모데와 합류했습니다.
<디모데를 파송>
아직도 어린 교회를 이렇게 핍박 앞에 놓아두고
떠나는 것이 바울에게는
신경이 너무 쓰였습니다.
더구나 그 교회의 형제들이
새로 믿게 되었는데
믿음이 완전히 서기도 전에.....
그들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 때문에
바울은 몹시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데살로니가를
방문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기회가 되질 않았습니다.
<살전 2:17-18>
17절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18절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왜 길이 막혔는지 구체적인 언급은 없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다”고
극단적 표현을 쓰는 것으로 보아
매우 절망적인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결국 바울은 대안을 씁니다.
자기 대신 다른 사람을 보내는 것입니다.
바로 디모데입니다.
자신이 없는 동안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서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로
파송한 것입니다(아덴에서 파송).
바울은 계속해서 고린도를 향해 갔는데
여기에서 클라우디오 칙령으로 인해.....
로마에서 추방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게 됩니다(행18:2)
(로마의 4대 황제 클라우디오 칙령,
“모든 유대인은 로마에서 떠나라”는 것.
B.C. 49년).
이 때 고린도의 상황은 매우 불확실하여
바울의 마음이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했던 모든 선교활동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몹시 괴로운 상태였습니다.
이 때 데살로니가로 갔던 디모데가 돌아와
그에게 좋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의 마음이
살전3:7-9절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살전3:7-9>
7절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8절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9절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그가 처해 있던 ‘고난’(궁핍)과.....
그를 짓눌렀던 ‘역경’(환난)에서
해방되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제야 말로 다시 사는
보람을 느꼈다”(우리가 이제는 살리라)는 것입니다.
진실한 목회자의 심정이
잘 묻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선한 목자는 양떼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이 두려워한 것은 자기가
당하는 어려움이 아니었습니다.
믿는 이들이 낙심하고 배교하는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돌보는 양떼들에 대한
바울의 뜨거운 사랑에 감동을 받습니다.
<맺는 말씀 - 편지를 쓰는 바울 “은혜와 평강”>
그런데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염려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영향력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너무나도 기뻐서 지금 감격적인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격려하여
더욱 믿음에 굳게 서게 하려는
바울의 열정이 묻어나는...
최초의 편지가 바로 데살로니가 전서입니다.
그러니까 편지를 쓰는 장소는 ‘고린도’입니다.
그리고 편지를 쓰는 때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지방 총독 갈리오를 만났는데(행18:12),
그의 재직 기간이 A.D. 50-51년입니다.
그러므로 아마 A.D. 51년쯤에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바울의 인사말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이 문안이 다른 편지의 문안에
비해서 가장 짧습니다.
이 인사말이 형식에 있어서는
상투적인 것이지만 ....
그 내용에 있어서는 기독교적인
색채가 뚜렷합니다.
다른 편지에서는 ‘사도’라는 말이 있는데 .....
여기서 이를 뺀 것을 보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있어서
바울의 사도적 권위에
아무런 의심이 없으리만큼 .....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
예루살렘 교회의 일원이며 로마시민이기도
한 실루아노(실라의 로마식 이름)는....
바울의 제 2차 전도 여행에서 바나바를
대신하여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에서 그들과
합류하게 된 청년이었는데 ....
나중에 바울에게 가장 신임 받는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값없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의 공로가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닙니다.
전적으로 값없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왜요?
믿기만 하면 구원해 주시기
때문입니다(갈 2:16).
‘평강’은 은혜에 따르는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강과 은혜”로 바꾸어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은혜만이 평강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이 평강은 세상이 주는 평안이 아니요,
오직 주께로부터 오는 평안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품안에 거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입니다.
이 평강은 세상의 어느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온전한 안위를 말합니다.
<민6:25-26절>
25절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절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이 은혜와 평강이 사랑하는
금산교회 성도님들에게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