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게 된 소년
- 소설 『끝없는 이야기』의 바스티안
주인공 바스티안은 작고 뚱뚱하고 소심하며 가정과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외롭고 주눅 든 소년이다. 어느 날, 바스티안은 우연히 『끝없는 이야기』라는 책을 읽게 된다. 바스티안은 위험에 처한 환상세계를 구하러 책 속으로 들어가 갖가지 환상적인 모험을 겪는다. 그는 소설 속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 준 덕에 소원을 이루어 주는 신기한 메달 ‘아우린’을 받게 된다.
바스티안은 ‘아우린’의 힘을 빌려 현실에서의 자신을 지워 가며 스스로를 점점 더 멋지고 강하게 만들어 나간다. 무한한 용기, 무제한의 권력, 아름다움의 극치를 체험하면서 오만과 과대망상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 메달은 소원 한 가지를 들어줄 때마다 기억 한 가지를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었다. 바스티안은 결국 현실세계에서 가졌던 모든 것은 물론 자아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바스티안은 영영 현실로 되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를 처지에 놓인다. 마지막 두세 가지 소망만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남겨놓았을 때 바스티안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로서 사랑 받기’를 갈망하게 된다. 좋든 나쁘든, 아름답든 추하든, 현명하든 어리석든, 모든 자기의 결점을 포함해서 사랑 받기를 갈망한 것이다.
‘변화의 집’에 당도한 바스티안의 소망은 더욱 강렬해진다. ‘위대하고 강한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의 소망은 ‘생명의 물’을 마시고 난 뒤에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생명의 물을 마시게 되었을 때 바스티안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기쁨이 차오름을 느낀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라는 기쁨으로. 자기가 누구이며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알게 된 바스티안은 새로 태어난다. 먼 훗날 바스티안이 자기의 세계로 돌아와 어른이 되었을 때에도 그는 이 기쁨을 간직하며 다른 이들에게도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된다.
소설 속에서 바스티안이 들어가는 환상세계는 그가 피하고 싶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처이다. 한편 온갖 모험들로 가득 찬 환상세계는 그가 그리는 심리적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갖게 된 ‘아우린’은 심리적 현실과 실제 현실의 갈등을 상징하고 있다. 심리적 현실에 만족할수록 실제 현실은 빈약해진다. 그의 모험여행은 실제 현실을 회복하기 위해 자아가 겪는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환상세계에서 바스티안의 멋진 모습은 허상에 불과했다. 바스티안은 허상보다는 못났지만 자신의 실제 모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현실로 돌아왔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되면 바스티안처럼 자신감을 가지고 현실을 헤쳐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책방 주인 코레안더는 소설의 끝에서 이렇게 말한다.
“환상세계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은 양쪽 세계를 다 건강하게 만든다.”
- <30년만의 휴식> 이무석, 258쪽
* 전형적인 영웅체험 이야기다. 현실에서의 자기 모습을 인정할 수 없어 갖은 고난을 겪은 끝에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는 내용이다. 이 세상의 모든 멋진 사람들은 이 과정을 거친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을 겉으로 볼 때 그들은 모두 행복해 보이지만, 실은 누구나 삶에 임한 사람들은 고초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지금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