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풍경 같은 브로모(Bromo) 화산
山 河 姜 中 九
캄캄한 밤하늘에 별들만 초롱초롱 빛나더니 이윽고 동쪽하늘에 여명이 비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천천히 분홍빛으로 물들어 가다가 황홀한 꽃그림을 그린다. 그리하여 검은 지평선 위로 아침 해가 이글이글 불타면서 솟아오르는 장관을 바라보던 나는 하도 감동적이어서 숨을 쉴 수가 없었으니. 페난자칸(Pananjakan) 전망대에서 바라다보는 해돋이는 참으로 장엄하고 신비스러웠다.
그리고 전망대 남쪽으로 펼쳐진 구름바다에 높고 낮은 화산들이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으니, 앞에 솟은 바툭산(Batok:2,440m)은 새색시처럼 초록빛 주름치마를 곱게 차려입고 얌전히 섰는데 그 다음에 있는 브로모(Bromo:2,392m) 화산은 하얀 연기를 내뿜어서 버섯구름을 만든다. 제일 뒤에 높이 솟은 세메루(Mt. Semeru:3,636m) 화산은 지금은 간헐적으로 연기만 내뿜고 있지만 1818년 이후 55번이나 폭발한 무서운 화산이다.
화산이 많아서 불의 나라로 알려진 인도네시아에는 휴화산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고 활화산도 100개가 넘는다. 화산은 폭발하면 위력이 대단해서 엄청난 재앙을 일으키지만 평소에는 신기한 경관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브로모 화산은 자바섬 동부주도인 수라바야 남쪽에 서서 창세기 때 지구의 형성과정 같은 신비로운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브로모 화산의 하이라이트는 새벽에 산을 올라 보는 해돋이와 커다란 분화구 속에 깔려있는 구름바다 속에 솟아올라 연기를 뿜고 있는 브로모산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
나도 브로모 화산의 해돋이를 보려고 새벽 4시에 지프차를 타고 호텔을 나섰다. 차는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비탈길을 따라서 힘겹게 달려간다. 그리하여 30분만인 4시 30분에 도착한 곳이 해발 2,740m 높이의 페난자칸 전망대였다.
옷을 몇 겹이나 껴입었는데도 춥다. 하기야 이곳은 높이가 백두산 정상과 같으니 그렇지 않겠는가. 상점에는 1만 루피에 재킷을 빌려주고 있지만 나는 더운 커피 한 잔으로 추위를 달래고 전망대에 올라보니 캄캄한 밤하늘에 별들만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동쪽 하늘에 뜬 해가 서너 뼘쯤 솟아올랐을 무렵 지프차를 타고 구름바다 속에 있는 브로모 화산을 찾아간다. 차는 험한 산길을 내려가는데 경사가 급해서 겁이 났다. 만에 하나 브레이크가 고장이라도 나는 날이면 모든 게 끝장이다.
산을 내려온 지프차는 외륜산 분화구인 모래밭을 달려간다. 잿빛 모래로 뒤덮인 분화구는 안개가 서려있고 그 한가운데 브로모산과 바툭산, 그리고 그 너머로 세메루산이 서서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원래 브로모산과 바툭산은 인근에 있는 쿠르시산과 한 봉우리였으나 대폭발이 일어나 세 개의 봉우리로 나누어진 것이다. 달리던 차가 걸음을 멈춘다. 이제부터는 화산재가 많아서 말을 타고 가야한단다. 말은 조련이 잘 되어 있어서 앞 말을 따라가다가 브로모산을 오르는 계단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브로모산을 오르는 곳에는 쇠로 만든 계단길이 있었다. 길을 따라 정상에 올라서니 보르모산 분화구가 커다란 입을 벌리고 엄청나게 많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연기가 솟아나는 분화구를 내려다보니 신비롭기도 하거니와 어쩌면 지금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아서 겁이 났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적힌 천지창조신화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이 화산은 1993년과 2001년에 큰 폭발이 있었고 지금은 수시로 변하는 유황연기 분출량에 따라 접근을 통제하고 있다.
분화구 가에는 텡거족 청년이 꽃을 팔고 있었다. 한 다발에 1만 루피라니 우리 돈으로 1천 원 남짓하지만 화산에서 꽃을 팔다니 이상했다. 알고 보니 텡거족 사람들은 이 분화구에 신들이 산다고 믿고 있고,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었다. 옛날에 조코 세거(Joko Seger)왕과 로로 안텡(Roro Anteng)왕비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식이 없어서 브로모 산신에게 자식을 점지해 달라고 빌었다. 그러자 산신은 막내아들을 제물로 바치겠다면 자식을 낳도록 해주겠다고 했고 왕과 왕비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하고 여러 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런데 막내인 케수마(Kesuma)를 너무나 사랑한 국왕은 산신과의 약속을 미루자 노한 산신은 왕에게 약속을 어기면 나라에 큰 재앙을 내리겠다고 했다.
그 사실을 안 케수마는 스스로 브로모산 분화구에 몸을 던져서 신의 노여움을 풀고 백성들을 구했다. 이때부터 텡거족들은 마지막 달 보름에 쌀과 과일과 꽃을 브로모 산신에게 바치는 야드냐 카사다(Yadnya Kasada) 의식을 거행하기 시작했다.
꽃다발을 화구에 던지면서 소원을 빌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청년의 말에 너도 나도 꽃을 사서 화구에 던져보지만 정성이 부족해서인지 꽃다발은 화구벽에 떨어지고 만다. 탱거족 아주머니는 그 위태로운 화구벽을 타고 다니면서 떨어진 꽃다발을 줍고 있고.
브로모산 아래는 힌두교 사원이 있었다. 하기야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우주를 창조하는 신 앞에는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그러니 인간은 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사원을 짓고 탑을 쌓아서 신의 축복을 받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신이 노하기라도 하는 날이면 화산을 폭발하고 지진을 일으켜서 인간이 창조한 것을 하루아침에 파괴해버리고 만다. 그러한 사실을 족자카르타의 프롬바나(Prombana) 사원이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다시 탑을 쌓고, 창세기부터 이러한 역사는 되풀이 되고 있다.
하얀 연기를 끊임없이 내뿜고 있는 브로모산과 간헐적으로 버섯구름을 내뿜고 있는 세메루산, 그리고 침묵을 지키고 섰는 바툭산, 이들은 오늘도 창세기의 역사를 쓰고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젼경
전망대에서 바라본 젼경
브로모화산 근경
브로모산 근경
브로모 화산 분화구
분화구
분화구
분화구
분화구
세메루(Mt. Semeru:3,636m) 화산의 분출 사진[인터넷에서 인용]
브로모화산 폭발 사진[인터넷에서 인용]
첫댓글 대단한 경관을 보고, 글도 감동으로 읽었습니다.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