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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습니다
본문 : 시 73:1-2, 13-28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주일마다 시편 제 삼권,
73편에서 89편까지 읽어나갈 것입니다.
세 번째 시편 읽기입니다.
첫 번째는 2021년에
시편 1편에서 41편까지 읽었고,....
두 번째는 2022년에
시편 42편에서 72편까지 읽었습니다.
그때 저는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세 번째 시편읽기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할 것을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73편은
‘아삽의 시’라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아삽이 누구일까요?
그는 ‘성전에서 찬송하는 직분’을 맡은
레위 사람이었습니다(대상 16:5)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와서
다윗의 장막에 두고,
그 앞에 찬양하는 사람들을 세워,
매일 하나님을 찬양하게 했는데,
아삽은 헤만, 여두둔과 함께
이 찬양대를 이끌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찬양을 인도하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해 의심하게 되고
그의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일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의의 길을 가는 사람이 의인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악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당연히 의인의 길을 인정하고
복을 주시지만, 악인들에 대해서는
심판하십니다.(시 1:6)
이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분명한 원리입니다.
이론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의 삶에서는 아닙니다.
‘이게 정말 맞나?’라는 생각이 드는 일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73편이
바로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왜 의인이 고통을 당합니까?.....
이 시에서, 아삽은 지금까지
그가 믿고 있었던 원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났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습니다(2절)’라고 고백합니다.
같이 해보겠습니다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습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는 악인의 형통함을 보았고(3절)...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바르게 살려는 사람이
오히려 종일 재난을 당하는 것(13-14절)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욥도 이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 일을 자신이 직접 당하게 되자
욥은 하나님 앞에서 답답함을
토로하기 시작합니다.
‘왜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통을 당합니까?’
‘왜 선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들이 일어납니까?’
‘선하신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면
이 땅에는 왜 악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까?’
이런 문제에 대답을 시도하는 것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신정론(theodicy)이라고 합니다.
우리 중에는 이런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해서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믿는 사람들, 특히 신실하게
믿음 생활하는 사람들도 이런 질문을
던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송두리째 믿음이 흔들리고,...
교회를 떠나 가나안 신자들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삽은 욥처럼 아주 솔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우선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
여기에 보면 아삽은 자신이 지금까지
분명하게 믿고 있었던 것은.....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선을 행하신다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선함’이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 선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눅 18:19)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삶의 현실에서는
그 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2절에서...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라고 말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현실을 보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악인 더 잘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심히 고민스러워하다가
‘이제 나는 하나님께서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신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더 이상 하나님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확신하고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님들 !
이것은 아삽의 오해입니다.
아삽이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삽은 왜 이런 오해를
하게 되었을까? <3절부터 14절에 보면>
그가 오해하게 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제가 이 부분을 쉬운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악한 사람들이 잘사는 것을 보고
나는 그런 교만한 사람들에게
질투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마음에 갈등도 없고,
몸은 건강하고 강합니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겪는 어려움들이 없고,
다른 사람들처럼 불행한 일들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교만을 목걸이로 삼고
폭력을 옷으로 입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하늘을 대적하고
혀로는 땅을 두루 다니며
악한 말을 내뱉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알겠는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이
뭘 알고 계신가?’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악한 자들이 사는 방식입니다
그럼에도 이 악인들은 항상 평안하고
재산은 점점 더 늘어만 갑니다”
반면에, 깨끗하게 살려는
“나는 하루 종일 고통을 당하였으며
매일 아침마다 벌을 받고 있습니다”(14절)
아니,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징벌하지도 않고,
나쁜 짓을 하는 그놈들 잘만 사는데...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정직하게 살려는
자신은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고,
종일 재난을 당하고 아침마다
징벌을 받고 있으니...
아무리 생각하고 따져보아도 이건 말이 안됩니다.
그래서 그는 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지금까지 자신이 정결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이 참 헛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거야 그렇다치더라도,
최소한 신실하게 사는 사람이 재난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하는 것 아닐까?
어떻게 신실하게 사는 사람이 보상은커녕
징벌을 받는 것처럼 매일을 재난을 당하며
살고 있을까?
선하신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이럴 수 있겠냐?’
성도님들 !
이것이 아삽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순수하게 하나님을 믿으며
말씀에 순종해온 자신의 삶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만약 이 오해가 풀리지 않으면,....
아삽은 앞으로 완전한 위선자로 살든지
아니면 믿음의 공동체를 떠나야 합니다.
이 오해가 풀리지 않으면,......
불신자와 다를 바 없거나
아니면 불신자가 되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없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도님들 !
악한 마귀가 무섭게 우리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빼앗아가려고
노리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성도님들의 믿음을
흔들어 놓을지라도,
속단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여도,
답답할 정도로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더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찾아와서
우리를 깨우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보세요...
아삽은 처절하게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선하신 역사에 의문을 드러냈지만,....
결국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답을 얻었고,
영적 좌절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17절이 바로 그 전환점입니다.
<1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라는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성소에게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도대체 성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혹시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처럼
천사를 만났을지도, 혹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어떤 선지자나 지혜자를 만나
충고를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이 여기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우리가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은
한 문장이 나옵니다,
바로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다
(אָבִינָה לְאַחֲרִיתָם 아비나 레아하리탐)’라는 것입니다.
성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성소에 들어갔을 때.....
아삽의 가슴에 분명하게 새겨진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악인의 종말’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내가 깨달았다’라는 것은.....
어떤 특별한 일이 있었다기보다는
평소처럼 예배를 드렸는데,
고민과 갈등 가운데에서도....
다른 날과 똑같이 하나님을 찬양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의 눈을 열어주셨고....
인생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가지게 하셨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도저히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을 때,
우리가 할 일은 성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삽은 자신이 맡은 찬양 사역을
‘그래도!’ 계속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찬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는 답을 얻었습니다.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삽의 눈을 열어
깨닫게 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두 가지입니다.
그 첫째가 바로 앞에서 언급한,
악인들의 운명에 대한 것입니다.
<18-1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18절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여기에 보면 아삽은
‘주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라고 말합니다.
너무나 잘 되는 것 같고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샀던 악인들....,
사실 알고 보니까 ...
미끄러운 곳, 바할라코트(ַּחֲלָקֹות)에 서 있습니다.
악인들의 번영은 임시적인 것이고,
미끌어져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멋있게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들은 언제 미끄러져
갑자기 황폐하게 되고 멸망 당하게
될지 모르는 곳이 서 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악인들은 고작
그런 존재입니다.
악한 자가 결국 어떻게 될지,....
마지막 날 우리는 분명히 볼 것입니다.
그때는 어떤 원망과 불평,
질문들도 다 사라질 것입니다.
어떤 책에서 읽었습니다만,
미국 캔자스주 부활교회
아담 해밀톤(Adam Hamilton)목사님이
한때 뉴욕에 존재하고 있던 ‘
드루드회 (Druidical Society)’라는
단체에 대해 이런 보고를 하였다고 합니다.
이 단체는 모두 36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모임의 목적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방해하고
조롱하며 모독하는 일이었습니다.
참 이상한 모임도 다 있습니다.
사탄의 모임입니다.
한번은 이 단체가 모여서
아주 극단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조롱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성경을 불에 태우고,
개에게 세례를 베풀고,
개와 함께 앉아서 성찬식을 행하였습니다.
기독교의 신앙을 개와 같은 짐승들이
믿는 것으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저녁에
이 단체의 회장이 두 눈이
퉁퉁 불어서 튀어나오고 혀가 부풀어 오르더니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새벽에 죽었고,
또 한 회원도 그 이튿날 아침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 후 5년 안에,
8명이 총에 맞아 죽고,
2명은 굶어 죽었고,
7명은 단두대에서 죽었고,....
1명은 경련을 일으켜 죽었으며,
7명이 물에 빠져 죽고,
5명은 자살하였으며,
1명은 추위에 얼어 죽었다고 합니다.
모두가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님들 !
이런 사실을 마지막 때에
가서야 알게 된다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계속 탄식만 하며 살지 않겠습니까? ...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내 버려두지 않습니다.
아삽의 눈을 열어 깨닫게 하신 것처럼,.....
우리의 눈도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신 차려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혹시 이해되지 않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성소에 들어가야 합니다.
예배를 멈추지 말고, 성경읽기 멈추지 말고,
찬송과 기도 멈추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죽음 이후의 세계를 보지도 못하고,....
영적 세계를 다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면.....,
우리는 믿음의 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고 듣는 것,
우리 생각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삽의 눈을 열어
깨닫게 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두 가지입니다.
그 첫째가 바로 앞에서 언급한,
악인들의 운명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이라.....
둘째, 아삽의 깨달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근본적인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나와 항상 함께 하시고
나를 붙잡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23-2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23절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절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
여기에 보면....,
아삽은 그래도 자신이 믿음을 잃지 않은 것은 ....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기 때문이다,
주께서 나를 교훈하셔서 인도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때까지 악인이 잘살고,
형통한 것처럼 보였지만,
알고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눈을 열어 보게 해 주자
그들의 실상이 다 드러났습니다.
그들에겐 하나님이 없습니다.
세상의 좋은 것들 다 가진 것 같아도
하나님 없는 인생이라면,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아삽 자신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 오른손이 나를 붙잡고 계십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잘 나가는
악인들 왜 부럽겠습니까?
세상에 속한 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이
진짜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25절-26절>
25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26절 내 욕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이시라”
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늘 위에든 땅 아래든,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합니다.
그래서 아삽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27-2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27절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절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떠난 사람 다 망하였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진짜 복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것이
인생의 해답입니다
미국 회중교회 목사인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은 ...
미국이 파송한 최초의 선교사입니다.
그는 미얀마로 파송받아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선교는 쉽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을 전도하기까지는 6년이 걸렸고.....
미얀마 군인들이 그의 집을 수색하여 미얀마어로
번역해 놓은 성경과 미얀마어 사전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또 끌려가서 감옥에서 17개월을 지냈고.....,
감옥에 있을 때...........,
갓 태어난 아이는 죽고,
아내마저 잃고 말았습니다.
아도니람 저드슨는 한동안
이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폐인처럼 살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이런 훌륭한 당신의 종에게
이렇게 모진 결과를 안겨주시는 것일까요?
그래서 아도니람 저드슨의 선교가
실패였을까요? 아닙니다.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그의 삶을 살펴보면,
실패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미얀마 선교는 오늘날 엄청난 열매를 맺고 있고,
수많은 선교사들이 그를 뒤 따라 일어났습니다.
그의 아들 중 한 명인
에드워드 저드슨(Edward Judson)은
아버지를 이어 뉴욕에서 목회를 했는데,
매우 성공적인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에드워드 저드슨은 자신의 책,
『거꾸로 된 리더쉽』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고통 없이 성공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이 우리 앞서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공 없이 고통 받고 있다면,
아마 우리 뒤에 다른 사람이 성공을 거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위대한 사역을 하느냐가 아니라
매일 매일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어느 목사님의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병원에 있을 때,
제 옆방에 입원한 아이가 링거 주사를
맞지 않으려고 울었습니다.
아이가 너무나 두려워하여
간호사들이 주사를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그 아이의 아빠가 아이를 꼭 껴안아 주며
얼굴에 몇 번이고 입 맞추어 주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습니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아이의 발에
주사바늘이 들어간 모양이었습니다.
아빠 품에 안긴 꼬마는
아빠가 왜 자기를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는지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빠가 꼭 안아주고 입 맞추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것을 통하여.....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님들 !
이 부조리한 세상....,
악한 자가 잘사는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을.....
예수 믿는 우리가 승리하는 비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
기어이 하나님의 성소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하나님 떠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성소로 들어가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여전히 하나님 신뢰하고
하나님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 깨닫게 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저와 금산교회 성도님들이 ....
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