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7월 초순 초
▶ 다부동전적기념관 - 674고지 - 837고지 - 820고지 - 유학산/ 839m - 쉰질바위 -
- 봉두암산 (지도상 456.2m) - 3.1독립만세운동기념탑 - 진미동행정복지센터
◐ 다부동전적기념관 - 60분 "674고지" - 40분 "837고지" - 40분 "유학산" -
- 40분 임도 "빽고개 ?" - 20분 "달뜨기봉" - 20분 "쉰질바위" - 10분 "봉두암산" -
- 50분 "체육쉼터 / 폐초소" - 20분 "3.1독립만세운동기념탑" - 10분 "진미동행정복지센터" ◑
◆ 6시간 30분 정도
"구포역 / 6시 48분" 출발
"동대구역 / 8시 2분" 도착
※ 내릴 때 5호~6호 객차에서 대기한다.
<< "공단역" 에서
300번 버스를 타기 위해
오늘도 바쁘게 서둘러야 한다 >>
"동대구역 1호선 / 8시 8~9분" 출발
"명덕역 / 8시 20분" 도착
※ 내릴 때 맨 앞쪽 객차에서 대기한다.
3호선 환승
"명덕역 / 8시 25분" 출발
"공단역 8시 41분" 도착
"300번 버스 / 8시 46분" 도착
"다부전적기념관" 하차
3월에는 "오계산~가산" 으로 갔었는데
오늘은 반대쪽으로 산행이다.
"가산 119 안전센터"
도로따라 올라간다.
2분 후
"다부동전적기념관"
"救國館(구국관)"
"다부동전적기념관"
이 곳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6ㆍ25의 참극으로 인해
조국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섰을 때,
한ㆍ미연합군이 피로써 막아낸
다부동 혈전의 전장이다.
1950년 8월초
북한군은 제3ㆍ13ㆍ15사단 등 5개 사단 병력을
왜관, 다부동 전선에 집중 투입,
8월 15일까지 대구를 침공할 기세로
발악적인 총 공세를 가해왔다.
이때 국군 제1사단과 제8사단이 주축이 되어
미 제1기병사단 장병들과 밀고 밀리기를 수 십 차례,
아군은 최후의 일각까지 고귀한 생명을 바쳐
처절한 혈투끝에 적의 공세를 분쇄하였다.
그 후에도 북한군은 9월초에
또 다시 낙동강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하여
최후의 공세를 재개했으나,
아군은 우세한 화력과 과감한 반격으로
9월 중순경에 적의 주력 부대를 섬멸하고
대구-다부동전선을 끝까지 고수,
반격의 보루를 확보하였다.
이 혈전에서 아군은
적 전차 13대 파괴, 적 사상 17,500여명의 대 전과를 거두었으나
아군도 10,000여명의 인적 손실을 입었다.
경찰 또한 낙동강 전투에 15,000여명이 참전하여
그 중 전사자 기록에 있는
197명을 비롯한 수 많은 경찰이 고귀한 생명을 받쳤으며
당시 경찰의 "대구사수정신"은 6ㆍ25전사에 길이 빛나고 있다.
이 곳 다부동전적기념관은
그 때 그 현장의 교훈을 알리는 전쟁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1981년 11월 30일 국방부에서 건립하여
본 군이 관리를 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에서 부터 차례대로>
"나이키 유도탄"
1957년 미국 웨스턴일렉트릭사에서
제작된 유도탄으로서
우리 국군에는 1965년에 도입되어
중, 고 고도로 공격하는 적 비행물체 파괴 및
중요 목표물에 대한 지대지 임무를 수행하였다.
유효사거리 지대공
155km / 지대지 183km
속도 : 마하 3.5
상승고도 : 30km
길이 : 12.1m
중량 : 4,869kg
"백선엽 장군"
대한민국 4성 장군
"조국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내가 앞장서서 싸울테니,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다부동전투에서
뒤쪽에는 다른 장성들
자리를 옮겨가며
"F-86F (SABRE / 전투기"
"트루먼대통령 / 이승만대통령"
우리는 바로 여기서 自由세계를 지켜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라 싸워서 가지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인과 미국인으로 살았지만
세계시민으로서 각자의 생명을 바쳤다.
우리는, 여기서 다함께 흘린 피로
세계의 자유를 지켜낸 李承晩ㆍ트루먼 대통령에게
敬意를 표한다.
자유세계를 구한 李承晩 트루먼 대통령의 결단
"우리는 몽둥이와 돌멩이를 들고서라도 싸울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불법남침 보고를 받은 직후,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무초 주한 미국대사를 불러
"우리는 남자ㆍ여자ㆍ아이들까지 나와서
필요하다면 몽둥이와 돌멩이를 들고서라도 싸울 것입니다."라고
결사항전의 의지를 밝혔다.
트루먼 대통령도
애치슨 국무장관으로부터 남침보고를 받자마자
"(딘,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개자식들을 막아야 합니다)"이라고 했다.
이대통령이 영도하는 국군이, 한미동맹도 없는 상태에서
스탈린ㆍ모택동ㆍ김일성 연합세력을 상대로
1:3으로 싸우며 버티고 있는 가운데
트루먼 대통령은
남침을 '마적단 습격사건'으로 규정하고
유엔군 기치 하의 미군 출동을 결단했다.
李 대통령은
북한군이 물밀듯 남진하고 있던 그해 7월 19일
대구에서 트루먼 대통령에게 직접 영문편지를 썼는데
"세계 공산주의자들이
우리나라의 가슴 속에 심어서 키워온
제국주의적 침략의 악성(惡性) 암세포들을
이번 기회에 영원히 도려내어"
통일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1950년 8월에 다부동(多富洞) 전투는
한미군(韓美軍)이 최초의 연합작전으로
북한군 주력을 무찔러 인천상륙작전과
북진(北進)의 길을 연 세계사적 결전이었고
한미동맹을 예약한 승리였다.
1953년 8월 9일 성명에서
"한미방위조약이 성립된 것은
그 영향이 자손만대에 영구히 미칠 것이니,
우리가 합심합력(合心合力)하기만 하면
침략할 자가 없을 것이다"고 기뻐했다.
한미군을 주력으로 한 유엔군의 항정(抗戰)으로
대만이 살았고, 일본이 경제부흥, 서독이 재무장,
NATO가 군사동맹체로 강화되었으며
미국은 군사비를 네 배로 늘려
본격적인 대소(對蘇)봉쇄정책에 나섰고,
한국은 '자유의 방파제' 덕분에 번영의 길을 달려
그 40년 뒤 소련 및 동구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졌다.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은
2023년 4월 美의회 연설에서
"한미동맹은 정의ㆍ평화ㆍ번영을 위한 것"이며
"세계시민들의 자유를 지키고 넓혀나갈 것이다"고 선언했다.
이승만ㆍ트루먼 대통령의 위대한 결단을
잊지 못하는 우리는, 세계시민 정신으로
다부동에서 함께 흘린 두 나라 젊은이들의 피값으로
동서냉전에서 자유세계가 승리하고
한국 전체가 부자동네(多富洞)가 되었으니
이제는 자유통일로 북한을 해방하여
그 은혜에 보답할 때라고 다짐하며
그런 뜻을 모아 두 분의 동상을 여기 세운다.
李承晩트루먼朴正熙동상건립추진모임
2023년 7월 27일
"구국경찰 충혼비"
1950년 6ㆍ25전쟁이 일어난 그해 8월
북한군은 대구 점령을 목표로
낙동강 전선에 전투력을 증강하여 총공격이 개시하면서
시내중심가에 포탄이 떨어지고
영천이 함락되는 등 전황이 극도로 불리하자
정부를 비롯한 미8군사령부까지
부산으로 이동하고
마지막으로 경찰도 철수하라는 요청이 있었으나,
당시 경찰 총수인 조병옥 내무장관은
"대구를 적에게 내주는 것은 나라를 내 주는 것과 같다" 며
우리 경찰만이라도
대구를 반드시 사수해야 한다는 필사의 굳은 결의로
공포에 사로잡힌 70만 대구 시민을 보호하고
군과 더불어 대구방어에 큰 몫을 다함으로써
맥아더 장군이 주도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적 발판을 만들어
전쟁국면을 반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는 등
구국경찰의 역활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특히 경찰은
낙동강 전투에 15,000여명이 참전하여
그 중 전사자 기록에 있는 197명을 비롯한
수많은 경찰이 고귀한 생명을 바침으로써
나라를 구한 "대구사수정신" 은
6ㆍ25전사에 길이 빛나고 있다.
이에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구국경찰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며
산 교육의 터전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이곳 다부동전적기념관에
모든 경찰의 뜻을 모아
구국경찰 충혼비를 세우게 된 것이다.
"전적기념관" 은 청소 중이어서
오늘도 패스한다.
碑文(비문)
일찌기 왜적을 무찌른 역사의 옛 터에
화랑의 忠魂(충혼)이 다시 깃발되어 나부꼈으니
여기가多富洞(다부동), 血戰(혈전)의 現場(현장)이다.
1950년 8월. 붉은 이리떼의 侵略(침략)을 받아
落東江(낙동강)이 피로 물들고,
遊鶴山(유학산)이 砲彈(포탄)으로 뒤덮여
祖國(조국)의 命運(명운)이 百尺竿頭(백척간두)에 섰을 때,
國軍(국군) 제1사단 將兵(장병)들이 主動(주동) 이 되어
美(미) 제1기병사단 將兵(장병)들과 함께
自由守護(자유수호)의 信念(신념)으로 뭉쳐 싸우기를
55日(일), 밀고 밀리기를 수십 차례,
마침내 我軍(아군)이
北傀軍(북괴군) 제3, 제13, 제15 사단의 攻勢(공세)를 막아내고,
여기서 反擊(반격)의 기틀을 잡아
起死回生(기사회생)의 轉機(전기)를 마련하였다.
우뚝한 이 山(산)에는
그 날의 喊(함) <성> 이 남아있고,
도도한 저 江(강)에는
그 날의 血流(혈류)가 담겨있어,
그 때 이름없이 散華(산화)한
護國(호국)의 넋을 여기에 새겨 길이 전하니,
아! 뉘라서 이 碑(비) 앞에서 옷깃을 여미지 않으리오.
<함성 같은데 글자 하나를 모르겠네??>
오른쪽으로 빙 돌아가면서
40mm 대공포 (미국)
UH - lH 헬리곱터 (Helicopter)
45mm 직사포 (소련)
37mm 직사포 (미국)
호크 (HAWK) 미사일
■ ■
T - 37C (별칭 : TWEET)
● ●
"구국용사 충혼비"
구국용사 충혼비는
1950년 8월 1일부터 9월 24일까지
이곳 다부동 전투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장렬히 산화하신
국군 제1사단, 제8사단 10연대, 제7사단3연대 1대대,
미 제1기병사단, 미 제25사단 27연대,
미 제2사단 23연대 장병들의
영령을 추모하고 그 넋을 기리며
후세에 전쟁의 산 교훈으로 삼고자
김영삼 대통령이
"구국용사 충혼비" 비문을 직접 쓰시고
1995년 6월 24일 당시
전투에 참전한 용사들과 함께 제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명각비는 다부동전투에 참전한 장병들의 명단을
병적확인을 거쳐서 확인된 전사자 및 생존자의
당시 부대와 계급, 이름을 새긴 비이며,
구국용사의 묘는
1994년 9월부터 1997년 4월까지
8차례에 걸쳐
육군 제50사단 장병들이
유학산 일대에서 발굴한
259점의 유해를 합장한 것이다.
청소 중인 기념관을 뒤로 하고
큰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 지도를 참고하여
들머리를 찾아간다.
아래 보이는
큰 주차장
"가산" 방면으로 ~
쭉 바라보고 ~
"실봉산"
유학산 등산로 안내
잠시후
고속도로 밑을 지나고
2분 후
횡단보도를 건너가야 하는데
수동이라서 버튼을 눌러야 된다.
당겨본 능선
횡단보도 건너오면
"천년산업" 공장으로 간다.
잠시후
"천년산업" 지나고
잠시후
우측으로 들어간다.
"유학산정상(팔각정) 4.8km" →
2분 후
"천년산업" 뒤쪽에서
"황학산" 방향
2분 후
좌측 갈림길에서
우측 직진 →
2분 후
좌측 갈림길에서
계속 직진 →
잠시후
직진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
"유학산 등산로" →
▶ 등로는 빡세게 올라간다.
7분 후
송전탑 지나면
잠시후
직진 갈림길에서
로프로 막아 놓은 왜 ??
좌측으로 올라간다.
♠ 직진은- 우회로
3분 후
우측 갈림길 지나고
좌측 직진 →
2분 후
로프를 넘어가면
우회로와 합류한다.
1뷴 후
우측 갈림길에서
다시 로프를 넘어
좌측으로 올라간다.
● 질러서 올라가는 것이니
그 만큼 힘들게 올라간다 ●
4분 후
우측 갈림길 지나고
계속 직진 →
3분 후
마지막 로프를 넘어가면
우회로와 합류한다.
경사 때문에
로프로 막은 것인가??
의자에 앉아 쉬며
가쁜 숨을 몰아내고
다시 빡세게 올라간다.
15분 후
작은 바위를 지나면
2분 후
"674 고지 탈환전"
"837 고지 1.24km" →
3분 후
바위 하나 지나며 올라간다.
5분 후
암릉길을 지나고
5분 후
"삼각점" 이 있는 봉우리
직진 →
♠ 우측에 있는
"삼각점"
주변을 둘러 보았는데
갈림길이 있는지는 ??
"등산로" 를 따라간다.
2분 후
멋진 조망터를 만나고
"가산, 황학산, 소학산"
지도보며 짐작으로 ??
좌측은 "기반산" 라인
우측은 "성곡봉, 수암산" 라인
진행 능선
(서너 번 오르내림)
★ ★ ★
10분 후
우측으로 꺽고
곧 바로
좌측으로 꺽는다.
♠ 헷갈리지 않게
나무로 막아놓았는데
바로 가면 등로가 있을까 ??
진행 등로 초입에는
리본 두 개가 보인다.
잠시후
표식을 위하여
작은 바위 찍어본다.
1분 (오름) 후
특이하게 누운 나무
차례대로
"소학산, 황학산, 가산"
"기반산" 능선
계속 진행 →
2분 후
표식을 위하여
등로 모습을 남겨놓고
5분 (오름) 후
이건 더 특이하게 반겨준다.
3분 후
"837 고지 탈환전"
"820 고지 600m" →
■ "674 고지" 에서는
1.24km" 를 왔다.
(두어 번 오르내림)
8분 후
앞에 있는 바위에 오른다.
잠시후
바위 위에 올라
지나온 방향부터 ~
시계 방향으로 ~
같은 방향이 조망된다.
■ ■
■ ■ ■
(오름-2, 내림-잠시, 오름-1)
4분 후
한쪽으로 쏠린 가지송
곧 이어서
명품송 한 그루
지나온 봉우리 ~
"소학산, 황학산"
잠시후
여기를 "신선대" 라고 ??
"기반산" 라인
"유학산"
♣ 나머지 사진은 2페이지로 ~ ~ ~
보고 걷고 | 다부동전적기념관- ★유학산 - 봉두암산- 3.1운동기념탑- 진미동 2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