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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본문 : 민 1:1-4
훈련소는 군대에서 꼭 필요한 기관입니다. 군인을 만들어내는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민간인으로 살던 사람이 훈련소에서 군인으로 다듬어지지요.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전국 각지에서 젊은 청년들이 몰려옵니다.
학교 다니던 사람..., 직장 생활하던 사람..., 공시생으로,... 혹은 백수로 살던 사람....
저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훈련소에 들어옵니다. 말도 많습니다. 제 멋대로입니다.
명령을 해도 어슬렁거리며 잘 듣지 않습니다.
‘제대로 군인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5주 훈련 기간이 지나고 나면, 사람들이 달라집니다.
눈빛이 달라지고 온 몸에 군기가 가득 배입니다. 말투도 달라집니다. ‘다나까체’로 바뀝니다. 행동도 달라집니다. 명령이 떨어지면 민첩하게 움직입니다.
막 전쟁터에 내보내도 될 정도로 사람이 달라집니다.
남자의 수를 계수하라....
금년 새해 첫주 오늘부터 우리는 주일마다 민수기서를 함께 읽어나갈 것입니다.
민수기서는, 모세오경의 네 번째 책으로, 일종의 ‘신앙 훈련소 이야기’입니다.
민수기(民數記)라는 이름은 이스라엘 민족을 대상으로 시행된 .....
두 번의 인구조사,.... 민족의 수를 계수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은 ‘Numbers’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전의 본래 이름은 ‘브미드바르(בַּמִּדְבָּר)’입니다.
‘광야에서’라는 뜻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40년을 보내는 동안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이 ‘광야에서’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훈련을 받았습니다.
유명한 구약 신학자 월터 부르거만(Walter Brueggemann)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 광야에서 새로운 백성으로 거듭 태어났다’라고 했습니다.
민간인으로 살던 사람을... 군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곳이 훈련소인 것처럼,....
이스라엘 자손이 머물렀던 시내 광야는 그들을 ...
‘애굽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호와 전쟁’을 수행하는 영적 군대가 되도록 변화시킨 의미 깊은 장소였습니다.
<본문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
여기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알다시피,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에서 무려 430년 동안 노예로 지냈습니다.
고통스러운 노예 생활과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탄식하며 부르짖었더니....
그들의 고통의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 그들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출애굽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그들이 결코 잊지 않도록,....
출애굽이 일어난 그 달을 달의 시작,...... 곧 한 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시내 산, 곧 시내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은 그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언약을 맺은 후에,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상을 살아가도록, 두 가지 증표를 주셨습니다. 하나는 십계명, 율법이었고..
다른 하나는 성막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율법과 성막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그들 신앙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내 광야에서 1년 정도 머물고 난 다음..., 출애굽 제 2년 2월 1일,....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먼저 그들의 수를 계수하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2절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여기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남자의 수를 종족과 가문에 따라 계수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각 지파별로, 각 가문별로 계수했더니, 그 수가 육십만 삼천 오백오십 명이었습니다(46절)
계수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계수하라고 하신,.... 이스라엘 자손이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그들이 누구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애굽의 노예였다가 해방된 사람들, 홍해를 건넌 사람들입니다.
같이 해 볼까요? ‘홍해 건넌 사람들!’
성도님들 ! ‘그들이 홍해를 건넜다’라는 것은 지리적인 이동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단순히 애굽 땅에서 살다가 이제 광야로 나와서 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홍해를 건넜다’는 것은 그들의 신분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홍해를 건너기 전,.... 홍해 건너편에서는,........ 애굽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는 일에 동원된 ‘합비루’들 곧 부역의 중노동에 시달렸던 최하층민들이었습니다.
감시를 받았고, 허락된 장소에서만 살아야 했습니다. 자유를 박탈당한 채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소망없이 살던 그들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노예에서 자유인으로’,..... 아니 그 이상,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
오늘 우리가 그렇습니다.
죄와 죽음, 저주 아래서 고통당하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도님들도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그 때에 성도님들은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우리도 모두 전에는, 그들 가운데에서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했으며,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
범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성도님들은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엡2:1-4)
“그러므로 이제부터 성도님들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엡 2:19)
그렇습니다. 저와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 그야말로 하늘나라 로얄 패밀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민수기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수를 계수하라고 명령하신 이야기가 두 번 나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1장과.... 민수기 하반부 26장에 두 번 나옵니다.
문제는, 처음 계수된 사람과 두 번째 계수된 사람이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 민수기 1장, 첫 번째 계수한 사람들은 출애굽 한 사람의 수이지만...
- 26장에서 두 번째 계수한 사람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갈 사람들의 수입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나온 사람과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이 달랐습니다.
홍해를 건넌 사람과 요단 강을 건넌 사람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실은 같아야 합니다.
출애굽한 사람, 홍해 건넌 사람은 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 계수한 수에 들어간 사람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오직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 두 번째 계수에 포함되었습니다. 참 안타깝고 불행한 일입니다.
우리 중에도 예수 믿고 교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세상이라는 광야를 지나는 동안....
의외로 낙오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슬그머니 교회를 떠난 사람들.., 가나안 신자들,....
가톨릭으로 간 사람들, 심지어 저는 교회 다니다가 절에 간 사람도 봤습니다.
안성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했을 때, 여집사 한 사람이 교회를 떠나 절에 갔습니다. 말도 안됩니다. 우상과 미신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은 많이 보았지만,.....
예수 믿다가 절에 다니겠다니....... 아니 절에 다니다가 교회로 와야 맞지 않습니까?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심방 전도사님을 통해 ‘도대체 왜 그러냐?’라고 물었더니 .....
예수 믿으면, 아들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교회 다녀도 아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이번에는 절에 가 봐야 하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교회 다니면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몰랐고, 하나님의 임재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민수기서는 출애굽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예수 믿는 참 맛, 예수 믿는 참된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시 말해서, 이 땅에서 방황하다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내 광야, 신앙의 훈련소에서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하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믿음의 훈련입니까?....
그렇다면 이스라엘 자손은 시내 광야에서 어떤 훈련을 받았을까요? ...
출애굽기를 읽어보면, 두 가지 훈련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말씀 훈련이고....
- 다른 하나는 예배 훈련입니다. .....같이 해볼까요? ‘말씀훈련, 예배훈련!’
하나님은 우선 이스라엘 자손을 말씀으로 훈련시키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과 언약을 맺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것은 십계명과 율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계명과 율법을 따라 사는 말씀의 사람들, 곧 말씀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직접 돌에 새겨서 주신 십계명을 삶의 기준으로 삼았고,....
이 계명을 너무나 소중히 여겨서..., 언약궤에 모셔 놓았습니다.
그리고 광야를 지나는 동안, 이 언약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늘 앞세웠습니다.
언약궤가 그들의 갈 길을 인도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 그들을 지켜주었습니다.
민수기 10장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를 행군해 갈 때 어떻게 행렬을 이루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12지파를 크게 네 부대로 나누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부대에 세 지파씩을 배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행군을 할 때에는 제일 앞에 언약궤가 섰고, 그리고 첫 부대인 세 지파가 그 뒤를 따랐습니다.
그 다음에는 성막과 두 번째 부대인 세 지파가 뒤따랐습니다.
그 다음에는 성물들과 세 번째, 네 번째 부대가 세 지파씩 뒤따랐습니다.
언약궤를 앞세웠고, 성막을 그 중심에 모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여호수아 3장을 보면...., 요단강을 건널 때 그들은 언약궤를 앞세웠습니다.
15절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잠기자, 흘러내리던 물이 멈추었다고 말합니다.
17절은 그 언약궤가 요단강 한 복판에 서 있는 동안에 강바닥의 물이 다 말랐고...
이스라엘 자손은 마른 땅처럼 요단강을 건널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언약궤가 요단강에서 나오자 다시 요단강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수 4:18)
무슨 말입니까? 가는 길에 언약궤, 말씀을 앞세우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앞장서자 요단강이 열렸고, 말씀이 앞장서자 여리고성도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
성경을 단순한 책이나 문자의 기록으로 보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았습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고 외쳤습니다.
우리 신앙은 이 말씀 위에 서 있어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한번은 사람들이 마틴 루터가 한 일에 대해 놀라워하자, 그는 이런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제가 한 일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설교하고, 번역하는 일이었다. 사실 나는 달리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역사했다. 내가 잠을 자거나 나의 친구 필립과 암스도르프와 함께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어서, 군주나 왕들이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교황의 힘을 약화시켜 나갔다, 정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직 말씀이 모든 것을 해냈다.” ......
그러니 성도님들 !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길, 말씀의 백성이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를 읽어보면, 두 가지 훈련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말씀 훈련이고....
- 다른 하나는 예배 훈련입니다. .....같이 해볼까요? ‘말씀훈련, 예배훈련!’
시내광야에 있는 동안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성막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성막의 설계도를 모세에게 주었고, 모세는 그 설계도에 따라 성막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성막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사, 곧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은 제사하는 백성, 예배로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 중심으로 사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을 통해 그들에게 세 가지 은혜를 주셨습니다.
- 하나는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임재하신다.’ 즉 ‘Presence’의 은혜입니다.
-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해주신다.’ ‘Protection’의 은혜이고,
- 그 다음은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해 주신다.’ ‘Guidance’의 은혜입니다.
성경에 보면, 성막은 늘 이스라엘의 진영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임재해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12지파를 동서남북으로 세 지파씩 성막 주위에 배열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춘 것입니다.
성막이 그들 가운에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그들을 완벽하게 보호하셨습니다.
성도님들 ! 이것처럼 우리 생활에 중심에는 늘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예배 중심으로 삶의 스케줄이 짜여 지고 배치되어야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이 됩니다.
예배가 중심이 되지 못하면, 우리 삶은 금방 뒤죽박죽이 되고 말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주일을 지키는 것은 천국 가는 훈련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주일을 지키는 것은 복된 삶의 방식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주일을 꼬박꼬박 지킨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주일에도 할 일이 쌓여 있고, 직장생활로 지쳐서 주일에는 쉬고 싶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루터의 말처럼 ‘주일 지키는 것’을 ‘천국 가는 훈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무리 바쁘고, 지쳐도 주일이 되면 손을 놓고, 예배하러 교회로 와야 합니다.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예배가 삶의 중심이 되어야 나머지 신앙생활도 수월해질 수 있습니다.
이용규 선교사님의 책, 『내려놓음』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몽골의 이레교회에서 개척한 베르흐 지역 예배처소를 방문해서 주일예배를 시작하려고 할 때, 벌러르라는 자매가 몸에 땀이 범벅이 된 채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이 자매는 몇 달 전에 기도를 통해, 듣지 못하던 귀가 열린 자매입니다.
이 자매는 그날 소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소를 찾으러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예배시간이 다 된 것을 알고는, 잃어버린 소를 찾기를 포기하고, 예배하러 달려온 것입니다.
이용규 선교사는 이 자매가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그 믿음의 결단이 부끄럽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배를 마치자 밖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 자매가 잃어 버렸던 소가 집이 아니라 예배처소로 찾아온 것입니다. 예배를 소중히 여겼더니 하나님께서 잃었던 소를 그곳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성도님들 ! 누가 뭐라고 해도 예배가 우리 삶의 중심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삶이 평안해 질 수 있습니다.
혹시 삶이 불안하고 문제가 있다면, 예배가 나의 삶의 중심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혹시 예배가, 성막이 여러분의 생활 저 밖으로 밀려나 있지 않다면....
재빨리 삶의 한 복판으로 되돌려 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싸움에 나갈만한 자.....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수를 계수하라고 하실 때.....
‘싸움에 나갈만한 자를 계수하라’고 하신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중 이십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여기에 보면,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고 하셨습니다.
싸움에 나갈 만한 자,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된 자를 계수하라고 한 것입니다.
사실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영적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도중.....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수많은 적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싸움에 나갈만한 자를 계수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만이 아니라 오늘 저와 성도님들도 하나님의 군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3-4)라고 했습니다.
혹시 저와 성도님들은 싸움에 나갈 만한 자일까요? 제 생각에는, 한국교회가 부흥하려면...
성도들이 강한 군대 조직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숫자에 연연한 약한 집단, 모달리티(modality)가 아니라 .....
주님의 명령에 목숨을 거는 강한 집단, 소달리티(sodality)로 거듭나야 세상을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달리티, 모달리티는 선교학자 랄프 윈터의 구분 방식입니다)
1807년 독불 전쟁 때 독일은 프랑스에게 패했습니다.
당시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책을 쓴 독일의 철학자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는 1807년 12월부터 1808년 초까지 주일마다 14회에 걸친 강연을 통해 독일 국민들에게...
그들의 이기심과 도덕적 타락을 경고했습니다.
그 후, 1871년 다시 일어난 독불 전쟁에서는 독일이 프랑스를 굴복시켰습니다.
당시 전쟁에서 이긴 개선장군의 첫마디가 의미심장했습니다.
“조국의 승리는 나의 공로가 아닙니다. 독일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힘이었습니다. 모든 영광을 그들에게 돌립니다.” ....
무슨 말입니까? 전쟁에서 이기려면..., 최신무기도 필요하고...., 풍부한 물자들도 필요하지만 그런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좋은 군인입니다.
올바른 국가관, 올바른 정신무장이 된 좋은 군인이 있어야 전쟁에 이깁니다.
그런데 그런 군인이 되도록 올바른 국가관을 세워준 사람들이 바로 초등학교 선생님들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싸움에 나갈만한 자가 되려면, 처음부터 잘 훈련받아야 할 것입니다.
성도님들 ! 민족의 수, 사람들의 수를 계수하는 이야기는 성경 여기저기에 많이 나옵니다.
- 다윗의 군사들을 계수했고.....
-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을 계수했으며,...
- 주님의 제자들...., 특히 부활을 목격한 자들의 수를 계수했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장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의 수, 물론 상징적인 숫자이지만, 14만 4천 명을 계수하는 이야기입니다.(계 7:4) 혹시
저와 성도님들의 이름은 그 숫자에 포함되겠습니까? 물론, 아멘! 아멘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순간,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었고 천국 시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의 계수에 들어간 사람인가?’ ...
- ‘나는 싸움에 나갈 만한 사람인가?’를 진지하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
말씀훈련, 예배훈련을 받고, 싸움에 나갈만한 자가 된 것처럼........
저는 우리 금산교회 성도들이 ....
- 말씀훈련과 예배 훈련을 잘 받고....
- 싸움에 나갈만한 자가 되고...
- 하나님의 계수에 꼭 포함되는 성도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