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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1구간 제1부
외평마을-내송마을-구룡치-회덕마을
20251118
1.지리산둘레길 탐방을 시작하며
지리산둘레길 종주를 시작한다. 코리아둘레길 탐방에 집중하느라고 다른 탐방에 마음을 두지 못하였는데, 코리아둘레길 종주를 마치고 나니, 때마침 '좋은사람들' 도보여행팀에서 지리산둘레길 종주를 시작한다. 기회를 맞이하여 '좋은사람들' 도보여행팀을 따라 드디어 지리산둘레길 탐방을 시작한다. 지리산 천왕봉과 주능선 그리고 주변 산들을 산행하였지만 지리산을 에워싼 지리산둘레길 종주는 처음이다. 지리산둘레길에 대하여 개략적으로 알아본다. "지리산둘레길은 지리산을 둘러싼 옛길을 바탕으로 크게 환형으로 조성된 도보길이다. 지리산 주변의 3개 도(전북, 전남, 경남), 5개 시군(남원시, 구례군, 하동군, 산청군, 함양군) 21개 읍면 120여 개 마을을 잇는 285km의 장거리 도보길이다. 2007년 사단법인 숲길이 창립되어 조사와 설계를 시작한 이래 2014년까지 순환로를 포함 22구간 285km가 개통되었다." - 다음백과. 지리산둘레길은 지리산 둘레를 에워싼 전체 22구간 285km 거리이다. 매달 2개 구간을 탐방한다고 하면 11개월이 소요된다.
지리산둘레길 탐방을 위한 여러 사항들은 '지리산둘레길http://jirisantrail.kr/' 사이트에 잘 나와 있다. 이 사이트에서는 지리산둘레길을 '사람과 생명, 성찰과 순례의 길'이라고 이야기한다. 지리산둘레길 탐방을 위한 탐방객의 마음가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지리산둘레길은 지리산 둘레를 잇는 길에서 만나는 자연과 마을, 역사와 문화의 의미를 다시 찾아내 잇고 보듬는 길입니다. 한 땀 한 땀 수놓듯 이어가는 지리산 둘레길을 통해 만나는 사람,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모든 생명들의 속삭임을 귀 기울여 들어 보세요. 외따로 떨어져 지내며 이제나 저제나 사람의 체취를 느끼고 싶어 동구 밖을 하염없이 바라 보시는 할머니, 소로 이랑을 갈며 한 해, 한 철 농사를 이어가는 농부, 한 때는 좌, 우로 나뉘어 낮과 밤을 달리 살아야 했던 아픈 상처도 지리산 길은 품고 있습니다. 지리산 길의 출발은 순례길, 2004년 ‘생명 평화’를 이 땅에 뿌리고자 길을 나선 순례자들의 입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지리산 순례길이 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그 제안이 다듬어지고 구체화된 게 지리산둘레길입니다. 지리산길은 소외된 지역의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 이 길 위의 모든 생명체들에게 평온함과 평안, 공존과 화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참 바쁜 세상살이, 살붙이마저 마주 대할 시간이 자주 없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를 누리지만 마음은 허허롭기만 합니다. 지리산둘레길에 오셔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웃과 정을 나누는 시공의 길을 느껴보세요. 처음과 같이 앞으로도 지리산둘레길은 나눔과 되돌아봄의 길이어야 합니다."
지리산둘레길을 탐방할 때 이정목을 잘 살펴야 한다. 지리산둘레길의 이정목은 장승형으로 되어 있다. 이 장승을 벅수라고 하는데, 이 벅수에는 생명평화의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한다. 벅수와 생명평화의 의미를 '지리산둘레길' 사이트에서 알아본다.
●벅수(2021년) : 길을 떠나는 이들에게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장승은 우리 문화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벅수는 장승의 다른 말이자 우직하거나 바보스러움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도 합니다. ‘지리산둘레길’에서는 장승형 이정목이 가야할 길을 가리켜 줍니다. 그 이정목을 형상화하여 우린 ‘벅수’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지리산둘레길’의 우직함 묵묵함을 잇고자하는 마음입니다. 세상은 촌각을 다투듯 바쁘고 정신없지만 지리산에 깃들어 보면 참 우직하게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과 숲이 있습니다. ●생명평화 무늬 : 2000년 시작된 ‘지리산마음으로 세상을 배우자’ 지리산공부모임과 실천방향을 그림으로 담은 생명평화 무늬. 지리산 둘레를 걷다 보면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이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단순 소박함을 깨우치게 됩니다. 그대 없이 내가 있을 수 없다는 지리산의 가르침은 시대를 넘는 진리입니다. - 지리산둘레길
2.지리산첫길 사무락다무락을 넘다
지리산둘레길 1구간을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 남원 주천안내센터 앞에서 출발한다. 1구간은 남원 주천~운봉 구간으로, 탐방 거리 14.7km, 예상 탐방 시간 6시간, 난도 중이다. '지리산둘레길http://jirisantrail.kr/' 사이트에서 소개한 1구간 탐방 개략을 알아본다. "1구간 남원시 주천~운봉 구간은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 외평마을과 남원시 운봉읍 서천리를 잇는 14.7km의 지리산둘레길이다. 지리산 서북능선을 조망하면서, 해발 500m의 운봉고원의 너른 들과 6개의 마을을 잇는 옛길과 제방길로 구성된다. 이 구간은 옛 운봉현과 남원부를 잇던 옛길이 지금도 잘 남아있는 구간이다. 회덕에서 남원으로 가는 길은 남원장으로, 노치에서 운봉으로 가는 길은 운봉장을 보러 다녔던 길이다. 특히 10km의 옛길 중 구룡치와 솔정지를 잇는 회덕~내송까지의 옛길(6km)은 길 폭도 넉넉하고 노면이 잘 정비되어 있으며 경사도가 완만하여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솔숲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다."
1구간 경유지와 경유지 간 거리는, 주천면 외평마을 1.1km 내송마을 2.5km 구룡치 2.4km 회덕마을 1.2km 노치마을 2.2km 운봉읍 가장마을 2.2km 행정마을 1.7km 양묘장 1.4km 서림공원으로 전체 14.7km이다. 경유지 행정 구역은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 은송리, 호경리 지역을 통과하여 구룡치를 넘어 주천면 덕치리로 넘어간다. 주천면 덕치리에서 질매재를 넘어 운봉읍 덕산리, 행정리, 서천리, 동천리, 서천리 서림공원에서 마치게 된다. 1구간은 남원시 주천면 4개 里 지역과 운봉읍 4개 里 지역을 통과하는 탐방로이다. 1구간 탐방 과정을 3부로 나누어 제1부는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 외평마을에서 주천면 덕치리 회덕마을까지 기록한다.
1구간은 주천면 장안리 무수천을 가로지르는 정령치로의 장안교 서단(西端)에서 무수천(無愁川) 둑방길을 따라 출발한다. 무수천 둑방 동쪽의 장안리 지역에는 지리산둘레권역 농촌체험과 숙박&식사가 가능한 지리산나들락이 자리한다. 지리산나들락을 통과하여 주천면의 주요 하천인 원천천(元川川)의 나무다리에서 만복대, 정령치, 고리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능선을 살피면 가슴이 뜨겁다. 백두대간 지리산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과 전남 구례의 성삼재에서 작은고리봉, 만복대, 정령치, 큰고리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지리산 서북능선을 산행하던 시절이 가슴을 달군다.
원천천을 건너 옛날 주막이 있었던 비부정(沸釜亭)을 지나 장백산로로 나가, 동쪽의 주천면 호경리와 은송리 들녘, 지리산 서북능선을 바라보며 장백산로를 따라 북진한다. 장백산로에서 북서쪽 은송리 외송마을에 정자가 보인다. 지나칠 수도 있지만 궁금하여 지리산둘레길 코스에서 벗어나 정자를 살피러 갔다. 문화(文化) 류씨에서 분적한 서산 류씨 우송又松 류영욱柳永郁이 1924년에 세운 정자 '관풍정'이 멸실된 것을 그의 장자 법암法庵 류병호柳秉鎬가 2017년에 복원한 정자였다. 정자에는 정자 주인의 인생관 백세청풍(百世淸風)이 중심으로 하여 남명 조식 선생과 퇴계 이황 선생의 학문과 인성의 바탕이 되는 천인벽립(千仞壁立)과 연비어약(鳶飛魚躍) 등의 문구 등 여러 주련이 붙어 있다. 관풍정 뒤 외송천(外松川) 둑방에는 관풍대가 자리한다.여유가 있다면 관풍대에서 외송천으로 내려가 주천천까지 걸어보고 싶었지만, 욕심을 버리고 뒤돌아서 장백산로의 내송마을 출입구로 되돌아왔다.
장백산로에서 내송마을로 이어가는 도로명이 지리산첫길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정령치로와 장백산로, 이제부터 지리산첫길을 따라간다. 지리산첫길이 어디까지일까? 궁금하였는데, 탐방을 끝내고서야, 주천면 은송리 내송마을에서 주천면 덕치리 회덕마을로 이어지는 지리산국립공원 구룡계곡 서북쪽의 산길을 지리산첫길이라 명명한 것임을 알았다. 이 길은 남원장을 보기 위해 운봉 지역 사람들이, 운봉장을 보기 위해 주천 사람들이 넘나들던 산길이라고 한다. 지리산둘레길 1구간의 명품은 결국 지리산첫길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리산첫길을 따라 내송마을로 올라간다. 내송마을은 해발 230m의 중산간 구릉지대에 위치하여 임야가 산비탈에 펼쳐지며 북쪽에는 장백산이 솟아 있다. 아담하고 정겨운 내송마을 동쪽 숲길 입구에 개미정지가 있다. 개미정지는 서어나무숲에 자리하는데, 개미 조형물이 예쁘게 조성되어 있고, 스탬프함과 벅수 이정목이 서 있다. 정지는 쉼터를 뜻하는 이 지역 방언이라고 한다. 잠든 조경남 장군의 발을 개미들이 깨물어 왜구들의 침략을 알렸다는 개미정지를 비롯해 솔숲에서 왜구들에게 화살 공격을 하였다는 솔정지 등 이 고장 출신의 의병장 조경남 장군의 전설이 지리산첫길 곳곳에 남아서 호국정신을 일깨운다. 개미정지에서부터는 오르막길이 계속되어 560m대의 구룡치까지 힘겹다. 남쪽으로는 주천면 시가지가, 동쪽으로는 지리산 서북능선이 나뭇가지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조경남 장군의 전설이 있는 솔정지가 어디일까? 솔정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없다. 구룡임도 고개에 쉼터가 있는 곳이 솔정지일 것이라 추정한다.
구룡임도를 가로질러 산길을 오르면 비탈길은 더욱 가팔라져서 심장이 약한 길손은 몹시 고통스럽다. 길가에 사그라드는 구절초 흰꽃이 길손을 맞이하며 용기를 북돋운다. 아직도 구절꽃이 지지 않았다면 지금도 가을이 계속되는 것일까? 드디어 주천면 호경리와 덕치리의 경계를 이루는 구룡치에 이른다. 구룡치에는 쉼터가 조성되어 있고 구룡치를 알리는 벅수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구룡치 동남쪽 아래는 정령치로 이어지는 구룡계곡일 것이다.
구룡치부터는 내리막길이어서 편안하다. 소나무 연리지(連理枝)가 있는 곳에 사랑을 찬양하는, 소설가 윤영근의 '사랑은 하나이어라' 글이 적힌 글판이 설치되어 있다. 글판에서 연리지 소나무를 용소나무(龍松)라고 이른다. 용틀임하는 강렬한 사랑이 지리산첫길에 불꽃으로 피어나는 듯. 사랑을 찬양하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3막 끝 장면 이졸데가 트리스탄의 죽음을 노래하는 '사랑의 죽음' 아리아가 용소나무를 타고 하늘로 치솟는다.
"얼마나 온화하고 고요한 미소를 띠는지, 그의 눈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다들 보이죠? 안 보이나요? 그가 더 밝게 빛나며 별빛에 둘러싸여 솟아오르는 모습이 다들 안 보이나요? 어떻게 그의 가슴이 용사답게 부풀어 오르고 숭고함이 그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는지 보이죠? 황홀하도록 부드러운 그의 입에서 향기로운 숨결이 흘러나오는 것도요? 다들 보세요!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나요? 이 선율, 경이롭고 충만하면서도 고요하며 환희를 노래하고 모든 것을 말하는 선율, 부드럽게 조화를 이루면서 그로부터 울려나와 내 내면을 적시고 이윽고 날아올라 사랑스럽게 울려 퍼지는 선율이 들리나요? 밝게 퍼져 나가면서 나를 감싸는 건 부드러운 공기의 파도인가요? 아니면 황홀한 향기의 물결인가요? 부풀어오르며 나를 둘러싸고 속삭이는 것들을 빨아들이고 귀기울여야 하나요? 이들을 들이마시고 빠져들어야 할까요? 달콤한 향기 속으로 사라져야 할까요? 굽이치는 물결 속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속에서 세계의 숨결이 불어오는 우주 속에서 빠져들고 탐닉하며 의식 없이 누리는 최고의 환희!"
곳곳에 무덤들이 보인다. 구룡계곡 서북쪽 지역이 천하의 명당이어서일까? 동남쪽 구룡계곡으로 이어지는 골짜기 언덕에 장흥고씨묘동(長興高氏墓洞) 묘비가 서 있다. 장흥고씨묘동(長興高氏墓洞) 묘비 좌우에는, 이곳이 풍수지리적으로 아홉 마리 용이 구슬을 가지고 놀며 승천한다는 명당 자리임을 나타내는 '전후구룡농진주(前後九龍弄眞珠)'와 '내왕귀객완진주(來往貴客翫眞珠)'가 적혀 있다. 무엇이 명당을 증거하는 것일까? 후손의 부귀권세가 과연 조상의 무덤자리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을 누리려는 후손의 헛된 욕망이 명당자리 찾기에 혈안이 된 것일까? 평화와 행복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내세와 무덤, 천당과 지옥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거듭 묻고 싶다.
이 지역 사람들이 고개를 넘나들며 소망의 돌을 얹어놓으며 무사안녕을 빌었다는 사무락다무락 고개를 넘는다. 사무락다무락은 ‘사망(事望)다무락’이 변한 말로 '소망의 담벼락'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소망의 돌탑이 담벼락처럼 쭈욱 늘어서 있는 모양을 나타낸 것 같다. 사무락다무락을 넘으며 살피니 노송 아래에 자그마한 돌무지가 있다. 작은 정성이 오히려 큰 감동을 준다.
지리산첫길에 서린 삶의 희노애락을 품으며 덕치리(德峙里) 회덕(會德)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내려가 회덕천(會德川)을 건너 구룡폭포길로 나간다. 지리산첫길은 구룡폭포길과 만나는 곳에서 끝난다. 그곳에서 동남쪽을 바라보면 지리산 서북능선의 만복대, 정령치, 고리봉 능선이 더 가까이서 보이고, 구룡폭포길 동쪽 바로 아래는 지리산 서북능선에서 발원한 원천천이 서쪽 구룡계곡으로 흘러간다. 구룡폭포길을 따라 동쪽 방향 회덕마을로 향한다. 마을에는 소나무들이 많다. 구룡폭포길 북쪽 파밭 가장자리에서 자라는 감나무에 노란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일손이 딸려서 아직도 감을 따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그냥 내버려 둔 것인가? 파밭 뒤에는 회덕천이 원천천으로 흘러내리고, 그 북쪽 둑방에 초가 한 채가 있다. 마을 안쪽 귀퉁이에 있어서 ‘구석집’이라 불리는 이 초가집은 한국전쟁 때 불에 타서 전쟁 후에 다시 지었으며, 전라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구석집에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고, 앞서간 일행을 따라 회덕마을을 지난다.
3.탐방 과정
탐방 거리 : 15.5km
탐방 소요 시간 : 4시간 46분
남원 주천안내센터 앞에서 지리산둘레길 1구간 주천~운봉 구간을 출발한다. 이 구간은 2016 베스트길 우수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남원센터 주천~운봉 구간은 2016년 지리산둘레길 베스트길 선정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기에 우수상을 수여하며 길의 유지관리에 최선을 다해온 남원센터 팀장과 근무자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2016년 11월 11일 사단법인 숲길"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 정령치로의 장안교 서단 남쪽 출입구에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로(白衣從軍路) 안내판이 서 있다.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로(白衣從軍路) :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이후, 명나라와 일본 간의 강화 협상이 결렬되자 일본은 1597년 1월 정유재란을 일으킨다. 이때 왜군의 거짓 정보를 접한 선조는 이순신장군으로 하여금 부산포로 가서 일본군을 맞아 공격하라고 명하나, 장군은 불가한 이유를 들어 왕명을 따르지 않다가 의금부에 투옥되고 4월 1일에야 다시 풀려나게 된다. 이때 조정은 그에게 경남 초계(지금의 합천) 권율 도원수 휘하에서 계급 없이 전쟁터에 임하라는 '백의종군'을 명하는데, 이로부터 120일 후인 1597년 8월 3일 이순신장군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제수받기 전까지 백의종군하며 움직인 동선(動線)을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로'라고 한다. 서울을 출발한 장군은 경기도, 충청도, 전라북도의 여산, 삼례, 전주, 임실을 거쳐 남쪽으로 향하는데 4월 24일부터 4월25일까지 남원과 운봉에서 이틀을 머문다. 이때 권율 도원수가 순천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합천으로 가려던 계획을 바꿔 구례를 거쳐 순천으로 향하게 된다. 남원의 백의종군로는 장군이 남원에서 구례로 가는 2박 3일간의 여정을 담은 구간이다. 이순신 장군의 고독한 발자취를 경건한 마음으로 걸어보자.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로 코스 안내 : 오수교차로 2.5km 월평정류소 2.7km 사매교차로 1.5km 오리정휴게소 2.6km 뒷밤재 5.6km 축천교 2.4km 동림교 2.1km 월락삼거리 5.0km 이백초등학교 2.2km 양가저수지 3.0km 여원재 3.5km 운봉초등학교 13.0km 주천 외평마을 7.0km 밤재 (남원구간 53.1km). 운봉초등학교~외평마을, 외평마을~밤재 구간은 지리산둘레길을 이용하십시오.
정령치로는 동쪽 지리산국립공원의 구룡계곡을 거쳐 남원시 주천면과 산내면의 경계를 이루는 정령치를 넘어간다.
지리산둘레길 1구간을 출발한 탐방객들이 장안리 무수천 서쪽 둑방을 따라가다가 무수천 징검다리를 건너 동쪽 둑방으로 올라간다. 중앙 뒤에 해발 456.6m 장백산(長百山)이 솟아 있다.
정령치로의 장안교에서 서쪽 전북 남원시(南原市) 주천면(朱川面) 면소재지인 장안리(長安里) 중심지를 살핀다.
●장안리(長安里)는 본래 남원군(南原郡) 하원천면(下元川面) 외평리(外坪里)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 때 외평리(外坪里), 무수리(無愁里), 호정리(湖亭里)와 신기리(新基里), 내룡리(內龍里) 각 일부를 병합하여 장백산(長百山)의 안쪽에 위치하였다고 해서 장안리(長安里)라 하고 주천면(朱川面)에 편입되었고 면사무소를 설치하였다. 1995년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합되어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가 되었다. 장안리에는 무수, 외평 등이 있다. - 주천면행정복지센터
●주천면의 소재지인 장안리의 무수동과 외평마을은 각각 내방(內坊)과 외방(外坊)으로 불렸는데, 내방은 물이 많아 근심이 없다고 하여 무수(無愁)라 불렸고, 밭이 많은 외방은 밭들, 밖들로 불리다가 외평(外坪)이 되었다.(외평은 원래 마을이 배 모양 같다고 하여 뱃들이라 불렸다고도 한다) 예로부터 숙성치를 넘어 구례군 산동면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고, 통일신라 때부터 교통의 요지였다. 조선조 말까지 원천원(元川院 : 국가에서 운영하는 숙박업소)이 있었고 면의 중심지로 원터라 불리다가 지금은 외평이 되었다. 외평마을은 산동-주천 구간과 주천-운봉 구간의 시종점인 지리산둘레길 주천센터가 있다. - 지리산둘레길
정령치로의 장안교 서단 북쪽 출입구 앞에 지리산둘레길 1구간 시작점 표지판이 서 있다.
지리산둘레길 1구간 시작점 출입구 옆에 원터마을(외평) 유래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1390년경 채씨(蔡氏)와 정씨(丁氏)가 들어와 터를 잡기 시작하였으며 고려조 이래 조선말기까지 응양(현재 이백면 효기리)에서 원님이 말을 갈아타고 이곳 현 파출소 앞에서 일단 쉬어가는 곳이어서 원터거리라 하였는데, 경치가 수려하여 감탄을 자아낸 곳이라 전해지고 있다. 통일신라 때부터 교통의 중심지로서 국가에 납품하는 물자를 생산해낸 지역(원부곡)이었으며 조선조 말까지 원천원(元川院 : 국가에서 운영하는 숙박업소)이 있었다. 1885년(고종 22년)에 면 중앙지로서 위치를 정하고 하원천방(下元川坊)의 소재지로서 원터라는 마을 명칭으로 불린다. 마을이 내방(內坊)과 외방(外坊)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내방은 물이 많아 근심이 없다 하여 무수(無愁)라 불리고, 외방은 땅이 건조하여 들의 대부분이 밭으로 구성되어 밭들이라고 부르다 외방 외(外)자와 밭들의 전평(田坪) 평자를 따서 외평으로 바뀌었다.
무수천의 서쪽 둑방에서 징검다리를 건너 동쪽 둑방으로 올라간다.
무수천의 동쪽 둑방으로 올라서면 예다원펜션이 북쪽에 자리한다.
정령치로의 장안교에서 무수천 서쪽 둑방을 따라오다가 동쪽 둑방으로 건너와 예다원펜션을 지나 지리산나들락 표지판 앞으로 왔다. 지리산나들락은 지리산둘레권역 농촌체험과 숙박&식사가 가능하다.
지리산나들락을 지나간다. 지리산 둘레권역 안내도와 지리산 둘레권역 홍보관이 있다.
지리산국립공원 둘레길 개관도, 1구간과 주변 안내도, 구룡폭포 순환코스 안내도, 지리산둘레길 명소들이 소개되어 있다.
●구룡폭포 : 지리산국립공원 북부지소가 있는 주천면 호경리에서부터 구룡폭포가 있는 주천면 덕치리까지 펼쳐지는 심산유곡을 구룡폭포길이라 이른다. 수려한 산세와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으로 이어지는 이 계곡은 길이가 약 3km이다. ●육모정 : 아홉 마리의 용이 노닐었던 곳이라 하여 용호동이라 불렸으며, 약 400년 전 이 지역의 선비들이 용소 앞 넓다란 바위 위에 6각형 모양의 정자를 지어 육모정이라 이름하였다. ●정령치 : 서산대사의 황령암기에 의하면 정령치는 기원전 84년에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씨 성을 가진 장군으로 하여금 성을 쌓고 지키게 하였다는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용궁마을 산수유 : 용궁 산촌마을은 사방을 병풍으로 두른 듯한 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마을 인근 야산에서 고로쇠와 송이 채취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으며 기력 회복에 좋은 산수유도 만날 수 있다.
지리산 둘레권역 홍보관 출입문 옆에 지리산 둘레권역 마을 안내판과 특산품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내·외용궁마을, 외평마을, 호경마을의 특산품인 산수유, 호미자, 고추, 들깨, 검은콩, 참깨, 적두(팥), 천연벌꿀 등을 소개한다.
●외평마을 : 들이 넓고 물이 풍부하여 넉넉한 생활을 하는 데 근심걱정이 없는 마을이라 하여 '무수동(외방)'이라 이름 붙은 무수마을과 땅이 건조하고 들의 대부분이 밭으로 구성된 '밭들(내방)'마을이 있었다. '외방'의 '외' 자와 밭들 즉 '전평'의 '평'자를 따서 외평이라 이름붙은 외평마을로 합병하는데, 그 위치가 장백산 안쪽에 있다 하여 장안리라 칭하게 되었다. 주천면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2017년 6월 현재 면적은 1.48㎢이며, 총 172세대에 395명(남자200명, 여자195명) 주민이 살고 있다. 총면적은 148ha이며, 수도작 위주의 벼농사가 주요 산업이며, 축산업, 과수, 제조업, 서비스업 등도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원천초등학교 등이 있다. 주요 기관으로는 주천면사무소, 주천파출소, 주천우체국, 농촌지도상담소, 그리고 주천보건소 등이 있다. 금융기관으로는 주천농업협동조합이 있다. 마을앞 도로에서 좌측도로는 전라남도 구례 방면으로 이어지고, 우측도로는 남원시 어현동으로 이어지는 국도 19호선과 접경지역이다. 이외에도 동서방향으로 이어진 도로와 북쪽으로 연결된 도로가 있어서 교통은 편리하다.
●호경마을 : 지리산의 육모정과 구룡계곡의 산수가 수려하고 경치가 좋은 곳이라 하여 호정리의 호수 호'와 '빛 경' 자의 한자를 써서 마을 이름이 되었다. 원래 이름은 지리산 속에 있다 하여 내촌으로 불렸다. 주천면의 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2017년 6월 현재 면적은 4.29㎢이며, 총 70세대에 123명(남자64명, 여자 5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총 면적은 429ha이며, 주민의 대부분이 수도작 위주의 벼농사를 하며, 서비스업을 하는 농가가 3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관광 자원으로는 육모정과 구룡계곡, 춘향묘 등이 있으며, 공공기관으로는 지리산 국립공원 북부관리사무소 구룡분소가 있다. 1986년도 지리산 육모정, 정령치, 성삼재와 그리고 운봉읍과 산내면 뱀사골 등으로 통하는 지방도 60호선이 개설되어 교통이 편리해졌다.
●내·외용궁마을 : 신라 진성여왕 때 이 마을 동쪽에 있는 해발 1,050m의 높은 산 영제봉에 부흥사라는 큰 절이 세워져 고승과 선사들이 드나들며 휴양한 곳으로, 지상의 용궁이라 칭하여 용궁리가 되었다고 한다. 용궁리는 본래 남원군 하원천면 외룡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주촌면 내룡리 일부를 병합하여 용궁리라 하고 주천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합되면서 남원시 주천면 용궁리가 되었다. 주천면 장안 삼거리에서 1km 정도 남쪽으로 올라가면 좌로는 바깥용궁, 우측으로는 안용궁이 자리 잡고 있다. 남쪽으로는 구례군 산동면, 동쪽으로는 지리산, 북쪽으로는 외평, 그리고 서쪽으로는 웅치, 무수마을과 각각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해발 1,000m가 넘는 영제봉이 마을 뒤에 우뚝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아래로는 영제봉에서 흘러내린 물을 저장하는 장안저수지와 용궁저수지가 있다. 마을 뒷산은 지리산 줄기로 큰 계곡을 이루고 있다. 이 계곡을 '큰골' 이라 하는데, 주봉까지 약 4km의 구간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전체 면적은 6.29㎢이며, 총 66가구에 133명(남자63명, 여자 7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농림업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벼농사와 과수 작목이 주요산업이다. 영제봉을 배경으로 한 산간 지대이기 때문에 산나물, 오미자 등 임산물이 풍부하다. 또 마을의 위치가 경사진 구릉 지대이기 때문에 주천면 전 지역이 내려다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다.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 지리산나들락을 지나 원천천의 나무다리를 건너 주천면 호경리와 은송리로 넘어간다.
나무다리에서 원천천 하류 방향을 살핀다. 원천천은 남쪽의 주천면 장안리와 북쪽의 주천면 은송리 사이를 흘러간다.
지리산나들락 숙박업소를 지나 원천천의 나무다리로 올라와서 주천면 장안리와 그 뒤 서남쪽 지역을 돌아본다.
장안리 동쪽에 주천면 호경리 지역이 펼쳐지고, 맨 뒤 지리산 서북능선의 중앙 고리봉과 정령치, 그 오른쪽의 만복대가 한눈에 보인다.
본래 남원군(南原郡) 하원천면(下元川面) 내촌리(內村里)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 때 내촌리(內村里), 호정리(湖亭里) 각 일부가 병합되어 호정의 호(湖), 내촌의 육모정과 구룡계곡 산수가 수려하고 경치가 아름답다고 하여 빛 경(景)을 써서 호경리(湖景里)라 하고 주천면에 편입되었다. - 주천면행정복지센터
원천천 북쪽에 주천면 은송리 외송마을이 자리하며, 왼쪽 뒤에 장백산이 솟아 있다.
원천천의 나무다리를 건너면 비부정식당 입구가 있다.
그 옛날 그 길목에 주막 하나 있었네. 전남 지방, 경남 일부에서 한양 가는 유일한 옛길 전남 경계 숙성치-원터거리- 솟보거리-목넘어고개-응냥 마필이 쉬어가는 옛날, 역전을 거쳐 한양을 가는 길목 솟보거리주막. 신라시대에는 함양을 거쳐 경주로 통하였고 조선시대에는 한양 가는 유일한 길로, 지금은 그 자리에 沸釜亭(비부정)이라는 쉼터가 자리 잡고 있으니 그 지운을 다시 한번 길가는 사람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주막(酒幕) : 시골 길거리에서 밥과 술을 팔고 나그네에게 잠자리도 제공한 집. 주막집, 탄막, 여점, 야점, 점막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후 鳥嶺院(조령원), 洞華院(동화원) 등 관설 원이 있었다.
비부정식당 입구를 지나서 장백산로를 따라 북쪽 내송마을 입구 방향으로 이어간다.
오른쪽 비부정식당 출입구에서 장백산로로 나와 장백산로 남쪽을 돌아본다. 왼쪽 맨 뒤에 지리산 서북능선의 만복대가 보인다.
맨 뒤에 지리산 서북능선이 이어진다. 중앙 오른쪽에 만복대, 중앙에 움푹 파인 정령치, 그 왼쪽에 뾰족한 고리봉이 확인된다.
장백산로를 따라 주천면 호경리에서 은송리로 넘어와 은송리 북동쪽의 내송마을을 올려본다. 지리산둘레길은 내송마을을 지나 개미정지와 솔정지를 거쳐 구룡치를 넘어간다. 오른쪽 뒤 고개가 구룡치가 아닐까?
은송리(銀松里)는 본래 남원군(南原郡) 주촌면(朱村面) 은행리(銀杏里) 지역으로 은행정(銀杏亭) 또는 행정(杏亭)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 때 내송리(內松里), 외송리(外松里), 은행리(銀杏里), 내촌리(內村里)와 하원천면(下元川面) 호정리(湖亭里) 각 일부가 병합되어 은행과 내송의 이름을 따서 은송리(銀松里)라 하고 주천면에 편입되었다. - 주천면행정복지센터
장백산로에서 서북쪽을 살피면 주천면 은송리 외송 지역에 관풍정觀豊亭이 있다.
주천 방향의 장백산로 내송 버스정류소에서 지리산둘레길을 벗어나 뒤쪽에 있는 외송마을 관풍정을 살피고 되돌아온다.
장백산로의 내송 버스정류소에서 지리산둘레길을 벗어나 주천면 은송리 외송마을 관풍정으로 왔다.
관풍정 처마 들보에 현판과 기둥에 주련들이 걸려 있다. 관풍정의 인생관은 백세청풍(百世淸風)이 대표한다.
●상량문(上樑文) 2011년 신묘(辛卯) 陽 9월 28일 입주(立柱) 상량(上樑). 千客萬來로 사람은 山野 되고, 百世淸風 山野는 사람 되어, 希望의 문을 열자 觀豊亭아 영원하라. 內松 金時烈 ●백세청풍百世淸風 영원히 변치 않은 맑고 높은 선비의 절개 ●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어도 제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나무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쓰는 호미는 빛이 나고 고여 있는 물은 썩는다. 독일속담 ●自由는 萬民의 生命이요, 平和는 人生의 幸福이다. 萬海 韓龍雲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학문은 '천인벽립(千仞壁立, 천길 낭떠러지 절벽)'의 엄중한 기풍으로 표현하고,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의 학문은 '연비어약(鳶飛魚躍,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다)'의 훈훈함으로 표현하였다. 연비어약(鳶飛魚躍)은 만물이 저마다의 법칙에 따라 살아가야 천지의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라고 한다.
●千仞壁立 南冥曹植先生 學問世界 ●魚躍鳶飛 退溪李滉先生 學問世界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하늘이 福으로 갚는다. 孔子
관풍정 옆 관풍대 입구에 관풍대 표석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 관풍정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관풍정 안내판을 옮긴다.
여기는 도장산道長山이 감싸고 외송천外松川이 휘감아도는 남원 고을 동쪽 이십리, 남원시 주천면 은송리 바깥솔치(외송마을), 풍수지리적으로 거북이혈(龜頭穴)에 개미집 형상을 하고 있는 이곳은, 앉아서는 풍년든 원천벌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서서는 흙덩이를 두드리며 부르는 격양가를 들을 수 있어 예로부터 관풍정이라 부르게 된 천세만대千世萬代 외송마을 수호신의 영험스러운 당산입니다. 또한 이곳 관풍정은 먼 옛날 금산·무주·진안·장수인들이 구례·하동장에 소금 사러 가는 길과 운봉·상원천(고촌·내기·회덕·노치·달궁·심원)인들이 남원장(4, 9일)에 오가는 장길의 교차지점으로 길손들의 중요한 쉼터였으며, 작금에는 800리 지리산둘레길이 열림으로써 더욱 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나고 자라면서 이곳에 쉴 수 있는 정자를 짓고자 하는 뜻을 간직하며 살아온 선인들은 먼 곳에서 온 나그네가 쉴 수 있는 나는 듯한 정자, 관풍정을 1924 甲子년 단오절에 지었다고 이곳 서산류씨瑞山柳氏 우송가又松家의「관풍정기觀亭記」에 전하여 오고 있으나 풍수해와 전란으로 훼손되어 없어지고 얼마전까지도 오랜 세월의 향기를 간직한 세 그루의 느티나무와 몇 개의 주춧돌, 그리고 힘자랑하던 '들독'이 남아 있어 그때의 운치를 가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우송又松 류영욱柳永郁의 장자 법암法庵 류병호柳秉鎬 선생은 선인들이 가꾸어 온 관풍정의 재건을 갈망하는 지역민들의 뜻을 받들어 부지를 희사하고 관비 5천만원을 유치하여 석축과 누정을 재건하였고, 사재를 털어 안내비와 마을민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3개의 거북이형 반석(三龜巖, 40여 톤의 거석으로 경남 산청양수발전소건설장産)을 관풍대에 올려놓아 8도 걷기 동호인들로부터 인기있는 명소 관풍공원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남다른 애향심과 2세 교육에 평생을 헌신해 온 법암 류병호 선생은 구순九旬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이 관풍공원의 잔디를 기꾸며 8도걷기 동호인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한결같이 맑은 인생의 참맛을 아시는 길손들이여! 원터거리와 응령應令고개 솔치 입로入路에 아담하고 예술적 조형미가 넘치는 이곳 팔각의 관풍정 거북바위에서 술 한 잔에 시 한 수 읊조리며 우리 마을민들의 따뜻한 정을 가까이에서 느껴 보시고 일생一生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쉬어 가십시오. 2017년 3월 31일 솔치(내·외송마을) 주민 일동
관풍대에는 거북이형 반석(구암龜巖)이 있고, 끝에 관풍정기비(觀豊亭記碑)가 세워져 있다.
관풍정기비(觀豊亭記碑)에 관풍정기(觀豊亭記)가 원문(原文)으로 새겨져 있다.
附之東二里許 有一面源泉是也 又有一洞 松峙是也 生長於斯五十載間 遊息之所 未有一間 茅屋之構 常在心念而久矣 山抱水回中 有一區蟻封之所 而遠客騷人 來休于此 常謂余曰 何不有亭翼然 何必有一名煌然乎 曰有志未搆 幾至幾年矣 今玆搆得一間 則何以名 何以號 顧且淺見思之 則坐以觀野色之豊穰 立以聽擊壤之歌 可以占年之大有 於斯可知 故因以自號 曰觀豊亭也 有友遠方來 則或酒而醉 或時而歌 可以一二日之勝事 可以寓一生之樂也 一般清意味 料得少人知 古亦云矣 然如此者誰也 瑞山人柳又松哉
一九二四年 甲子 端午 又松 謹記.
臺舊令新 터는 오래고 사명은 새롭다. 曾子曰 君子 以文會友 글로써 벗들이 모이고, 以友輔仁 벗으로써 어짐을 돕는다.
관풍정기(觀豊亭記) 원문(原文) 뒷면에 관풍대觀豐臺 국역문이 새겨져 있다.
고을 동쪽 2리쯤에 한 면이 있으니 원천면이 바로 이곳이다. 또 한 동이 있으니 송치동이 바로 이곳이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지 50년 동안 노닐며 쉴 수 있는 집 한 간을 아직 장만하지 못하였다. 띠집을 얽을 생각을 항상 마음 속에 간직한 지 오래였다. 산이 감싸고 물이 도는 곳에 개미집처럼 볼록한 데가 한 곳 있다. 먼 곳의 운치있는 나그네가 이곳에 와서 쉬면서 일찍이 나에게 말하기를 "어찌 나는 듯한 정자를 짓지 않습니까?" "어찌 꼭 빛나는 이름이 있어야만 하겠습니까?" 내가 이르기를 "뜻은 있으나 아직 짓지 못한 지 거의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하였다. 이제 여기에 한 간 집을 지었으니 무엇이라 이름을 붙이며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돌아보건대 얕은 견해로 생각해 보니, 앉아서는 들판의 풍년든 모습을 볼 수 있고 서서는 흙덩이를 두드리며 부르는 노래를 들을 수 있어, 그로써 그해 풍년을 점쳐 알 수 있으므로 인하여 스스로 관풍정이라 부르게 되었다.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이 온다면 때로는 술을 마시고 취하기도 하며 때로는 시를 지어 노래를 부르기도 하니, 이로써 하루 이틀의 멋진 일이 될 수 있으며, 이로써 일생의 즐거움을 부칠 만하다. "한결같이 맑은 맛을 알아줄 이 적으리로다"라고 예전에 이렇게 읊조린 이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하는 사람이 누구 있을까? 서산을 관향으로 하는 류우송이리라. 1924년 갑자(甲子) 단오(端午) 우송(又松) 근기(謹記). 2008년 무자(戊子) 국추(菊秋) 문학박사 경상대학교 인문대학 한문학과 교수 이상필(李相弼) 근역(謹譯)
관풍정기비(觀豊亭記碑) 앞에서 관풍대(觀豐臺)에 올려놓은 3개의 거북이형 반석인 삼구암(三龜巖)을 살폈다.
외송마을 관풍정을 살피고 내송 버스정류소로 되돌아와 장백산로 횡단보도를 건너 대성쉼터 앞에서 내송마을로 이어간다.
장백산로는 남원시 주천면 은송리에서 북쪽으로 고개를 넘어 이백면 효기리로 이어진다.
내송마을 입구의 대성쉼터 음식점 앞에 지리산둘레길 이정목과 안내판이 서 있다. 지리산첫길을 따라 내송마을로 이어간다.
마을이 처음 형성되었을 때에는 뒷산 고개가 소가 누워있는 형국이라 쇠고개, 우치동으로 불렸으나 마을 주변에 송림이 무성하여 솔고개로 불리다가 내송(內松)이 되었다. 내송마을에는 두꺼비를 닮은 바위처럼 생긴 청동기시대 고인돌이 남아 있어 복을 가져다 주고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는다. 이곳 출신 조경남(趙慶南) 장군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에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전공을 세웠고 그가 남긴 일기인 <난중잡록>은 지방유형문화재로 중요한 역사적 자료이다. 내송마을 버스정류장에는 화장실이 있고, 해발 500m 내외의 운봉고원으로 향하는 오르막길 안내판이 있다. - 지리산둘레길
내송마을 출입구에 지리산둘레길 장승형 이정목과 지리산둘레길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뒤쪽에 화장실이 있다. 안내판에는 오르막 구간 안내문이 적혀 있다. "본 구간은 해발 600m의 운봉 고원을 향해 오르는 구간으로 2km 상당 오르막 구간이 지속됩니다."
관풍정에서 장백산로 내송 버스정류소로 나와 장백산로 횡단보도를 건너 대성쉼터 앞에서 지리산첫길을 따라왔다.
내송마을 지리산첫길에서 은송리와 호경리 들녘 너머 맨 뒤 만복대, 정령치, 고리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능선을 확인한다.
주천면 은송리와 호경리 들녘 너머의 남쪽 중앙에 주천면 면소재지 장안리 외평마을이 보인다.
내송마을 와등 삼거리에서 오른쪽은 육모정 방향의 와등(臥嶝) 고개로 이어지고, 지리산둘레길은 지리산첫길을 따라 직진한다.
1코스 주천 시점 1.1km, 운봉 종점 13.8km 지점으로, 육모정 1.9km, 개미정지 450m 거리에 있다.
와등 삼거리 맞은편에 토닥토닥 와야재 갤러리공방이 자리한다.
와등 삼거리에서 200m 지점의 지리산둘레길 남원044-1 이정목을 지나 위쪽의 은송저수지 방향으로 올라간다.
주천면 은송리 내송마을 지리산첫길에서 주천면 은송리와 호경리 들녘, 그 너머 장안리 외평마을을 뒤돌아본다.
맨 뒤쪽에 장백산이 솟아 있다. 내송마을은 해발 230m의 중산간 구릉지대에 위치하며 임야가 마을을 감싸고 있다.
지리산첫길을 따라 개미정지 방향으로 올라간다. 앞에 은송저수지 제방이 보인다.
지리산첫길은 은송저수지 제방 옆을 지나 개미정지로 올라간다.
이 저수지를 내송저수지라고도 일컬으나 제방에 은송저수라고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은송저수지 제방 옆에서 주천면 은송리 내송마을을 내려본다.
은송저수지를 지나서 남원시 주천면 서쪽 지역을 내려본다. 주천면 너머에, 시청이 있는 남원시 시가지가 있을 것이다.
출입구 앞 개미정지 이정목 뒤에 개미정지 안내판과 지리산둘레길 스탬프함이 설치되어 있다.
전북천리길 '개미정지-서어나무 쉼터' 안내판과 그 옆에 지리산둘레길 스탬프함이 설치되어 있다.
지리산둘레길이 열리자 묵었던 이곳에는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쉬었다 갔다. 길이 새로 열리고 사람들의 발길로 뿌리가 드러나 복토를 하고 서어나무의 안녕을 빌었다. 세월의 녹이 낀 서어나무는 속이 비었다. 비었으나 생명의 줄기를 이어간다. 신비롭다. 개미정지로 일컫는 이곳은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다가 여기서 잠이 든 의병장 조경남 장군의 발을 개미들이 물어뜯어 위급함을 알렸다고 하여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또한, 이곳 서어나무 쉼터는 재 너머 지리산 속 주민들이 남원장을 다녀갈 때 이고 지고 가던 짐 보따리를 내려놓고 옹기종기 쉬어가던 옛 주막터이기도 하다.
서어나무 쉼터에 전북천리길 스탬프함이 설치되어 있고, 그 뒤 서어나무숲에 개미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내송마을을 지나 숲길에 접어들면 ‘개미정지’라 불리는 개서어나무숲이 나온다. 정지란 쉼터를 이르는 말인데 주천 사람들이 운봉장을 보러 가기 전 쉬어가던 곳이었다. 개미정지는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다가 잠든 의병장 조경남 장군의 발을 개미들이 물어뜯어 위급함을 알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지리산둘레길
지리산둘레길 주천~운봉 1구간은 주천면 덕치리 정자나무쉼터 입구까지 전북1000리길과 동행한다.
◆남원시 제1길 아홉 개로 굽이치는 폭포를 만나는 지리산둘레길 ●구룡폭포순환길 : 남원 주천안내센터-내송마을-구룡치-사무락다무락-정자나무쉼터-육모정-남원 주천안내센터 ●지리산둘레길 주천~운봉 : 남원 주천안내센터-내송마을-구룡치-사무락다무락-정자나무쉼터-회덕마을-노치마을-가장마을-행정마을-양묘장-운봉읍 ◆전북1000리길 스탬프 투어 : 전북1000리길은 전북 지역의 아름다운 길을 선정하여 안내하고 있습니다. 전북1000리길과 지리산둘레길 기념스탬프를 모두 담아가세요.
개미정지 서어나무숲에 나무로 제작한 개미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개미정지에서부터 구룡치까지는 계속 고도를 높이는 오르막길이다.
쉼터에 주천 2.6km, 운봉 12.3km 지점을 알리는 지리산둘레길 남원046 이정목이 세워져 있는 곳이 솔정지인 듯.
개미정지를 지나 구룡치로 가기 전 ‘솔정지’를 만난다. 정유재란 당시 숙성치를 넘어 남원성을 향하는 왜군을 향해 조경남 장군이 활시위를 당겼던 곳이라 한다. 지금은 주천 들녘과 숙성치, 밤재를 바라보던 그때의 아름드리 소나무는 고사되어 흔적만 남았다. - 지리산둘레길
구룡임도를 가로질러 이정목이 세워져 있는 출입구를 통과해 구룡치로 이어지는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구룡임도에서 올라가 쉼터벤치를 지나면 더욱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동남쪽으로 지리산 서북능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백두대간 여가캠핑장 4.0km 지점의 전북천리길 이정목을 지나면 오르막길은 더 가팔라지고 주천면 들녘이 시야에 들어온다.
주천면 호경리에서 구룡치를 넘으면 덕치리 지역이다. 구룡치에는 이정목과 국가지점번호 표지목이 서 있고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구룡치는 주천면과 운봉읍 사이의 옛 고갯길이다. 주천면의 여러 마을에서 남원장을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길목이었다. 달궁마을 주민들은 거리가 멀어 남원 장에 가려면 2박 3일에 걸쳐 다녀와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구룡치를 장길로 이용하는 마을 주민들은 해마다 백중 (음력 7월 15일)이 지나면 마을별로 구간을 나누어 길을 보수해서 이용해 왔다고 한다. 고달픔을 인내한 사람들에 의해 길은 지켜져 왔다. 구룡치를 넘어 회덕마을로 향해 가는 길. 잘 보존된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봄이면 붉은 소나무들 아래로 화사한 진달래 꽃대궐이 펼쳐지는 오솔길은 보물과 다름없다. 원시림과 구룡계곡을 품은 큰 산을 넘어간다. - 지리산둘레길
주천 3.6km, 운봉 11.3km 지점의 구룡치에 지리산둘레길 남원049 이정목과 국가지점번호 다마 9766/ 1104 표지목이 서 있다.
주천면 호경리 지역을 힘겹게 올라선 구룡치를 넘었다. 주천면 덕치리 지역으로 넘어와 구룡치를 뒤돌아본다.
주천면 덕치리 구룡치 내리막 언덕 비탈에 자리한 풍천豊川 노씨盧氏 노석윤盧錫允의 묘지는 봉분이 내려앉았다.
진주晉州 소씨蘇氏 소재성蘇在成과 배우자 진주晉州 강씨姜氏 쌍분雙墳을 지나간다.
용틀임하는 연리지(連理枝) 용소나무(龍松)를 지나간다.
연리지(連理枝) 용소나무(龍松)의 사랑을 찬양하는, 소설가 윤영근의 '사랑은 하나이어라' 글이 적힌 글판이 설치되어 있다.
두 소나무가 서로 접목된 이 연리지(連理枝) 나무는 일심동체로 남녀 이성간의 화목은 물론 깊은 애정도 그려주고 있으며 또한 비상(飛翔)하려는 용의 형상을 지니고 있어서 이 명품 용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거나 소원을 빌면 모든 이들의 행운과 건강이 오래오래 이어진다고 전하여 오고 있다. 백두대간 천 세월 묻어둔 이야기로/ 아낌없이 몸 비벼 싹튀운 정/ 산속에 잠재운 그 사랑노래 늘 아름답구나
용틀임하는 연리지 용소나무(龍松) 앞의 바윗돌은 마치 제단 같은 느낌이 든다.
연리지 용소나무(龍松)를 내려가 백두대간 여가캠핑장 2.8km 지점의 전북천리길 이정목을 지나간다.
지리산첫길 구룡골짜기의 나무다리를 건넌다. 골짜기 위에는 쌍분(雙墳)이 있다.
상록수들이 보호막을 두르고 있는 고개에 비석이 서 있다. 무엇일까?
구룡농주(九龍弄珠) 장흥고씨묘동(長興高氏墓洞) 묘비 좌우에는, 이곳이 풍수지리적으로 아홉 마리 용이 구슬을 가지고 놀며 승천한다는 명당 자리임을 나타내는 '전후구룡농진주(前後九龍弄眞珠)'와 '내왕귀객완진주(來往貴客翫眞珠)'가 적혀 있다. 이 묘역 남쪽 구룡계곡에 구룡폭포가 있다.
물웅덩이가 형성되어 있는 고갯마루에 정자나무쉼터 안내판이 있다. 정자나무쉼터는 전북천리길과 지리산둘레길의 갈림길에 있다.
이 고개를 넘나들던 마을 주민들이 무사안녕을 빌던 사무락다무락 고개를 넘는다.
주천 5km, 운봉 9.9km 지점의 지리산둘레길 남원051 사무락다무락 이정목을 보고 이곳이 사무락다무락임을 알았다. 사무락다무락은 '소망의 담벼락'이라는 뜻으로, 이 고장 사람들이 고개를 넘나들며 무사안녕을 소망하는 돌탑들을 세웠던 곳이라고 한다.
산수국 등 야생화들이 군락지를 이루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 소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사무락다무락’을 만난다. 갈 때는 무사히 다녀오겠다고, 올 때는 잘 다녀왔다고 돌을 쌓아 빌었던 곳이다. 사무락은 ‘소망’을 뜻하고, 다무락은 ‘담벼락’을 뜻하는 말이다. ‘사망(事望)다무락’이 운율에 맞춰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망(事望)은 일이나 사업의 좋은 징조나 전망, 무사하길 바란다는 뜻이다. 군데군데 작은 돌무더기가 있었던 곳은 몇 해 전 무너지고 없어졌지만, 고개를 무사히 넘고자 하는 그 바램만은 여전히 같을 것이다. 근처에 있는 노송과 벅수(51번)가 예전 사무락다무락이었음을 알려준다. - 지리산둘레길
사무락다무락 고갯길의 그윽한 소나무 아래에 소망의 돌탑 '사무락다무락'이 서 있다.
백두대간 여가캠핑장 1.8km 지점의 전북천리길 이정목을 지나간다.
지리산첫길 언덕에서 주천면 덕치리 회덕마을과 맨 뒤 지리산 서북능선의 바래봉 능선을 확인한다.
덕치리는 본래 남원군(南原郡) 상원천면(上元川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 때 회덕리(會德里)와 노치리(蘆峙里) 일부를 병합하여 회덕과 노치의 이름을 따서 덕치리(德峙里)라 하고 주천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합되어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가 되었다. 덕치리에는 회덕, 노치 등이 있다. - 주천면행정복지센터
지리산첫길을 내려가 구룡폭포길로 올라간다. 맨 뒤의 지리산 서북능선의 산봉 - 오른쪽 맨 뒤에 만복대, 중앙에 정령치, 그 왼쪽에 고리봉을 확인한다.
왼쪽의 지리산첫길 출입구를 통해 구룡폭포길로 나왔다. 이곳에서 전북천리길 구룡폭포순환코스는 서쪽 방향으로 이어가고, 지리산둘레길 1코스는 구룡폭포길을 따라 동진한다.
구룡폭포길의 지리산첫길 출입구 옆에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순신 장군은 경남 합천으로 백의종군하던 도중, 1597년 4월 25일 운봉(박롱 혹은 박산취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냅니다. 이때 권율 도원수가 전남 순천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다음 날 아침 구례로 향합니다. 구례로 가기 위해서는 여원재로 되돌아가 주천을 거쳐갈 수 있겠으나, 이곳에서는 남원의 아름다운 지리산둘레길 '운봉~주천' 구간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여원재로 되돌아갈 경우, 이백면사무소로 내려서면 약 4km 거리에 주천면 외평마을이 있습니다. - 안내판
이순신 백의종군로 안내판 옆에 지리산둘레길&구룡폭포순환코스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두 길은 갈라진다.
지리산둘레길 화장실이 아래에 있으며, 그 맞은편 수령 200년이 넘는 느티나무 아래 정자나무쉼터 식당이 있다.
정자나무쉼터 식당 왼쪽을 살피면 주천면 덕치리 미륵재골 너머 맨 뒤에 중앙의 만복대, 왼쪽 움푹 파인 정령치, 그 왼쪽 고리봉으로 지리산 서북능선이 이어진다. 바로 아래의 원천천(元川川)은 오른쪽으로 흘러 지리산둘레길 1코스 비부정 식당 앞으로 내려간다.
구룡폭포길을 따라 주천면 덕치리 회덕마을을 지나간다. 오른쪽 길은 덕치리 미륵재골 미륵정사로 이어진다.
남원시 주천면 은송리 장백산로의 내송마을 출입구에서부터 지리산첫길을 계속 따라 주천면 덕치리 구룡폭포길로 나왔다. 구룡폭포길 북쪽에 지리산첫길 출입구가 보인다.
주천면 덕치리 구룡폭포길 남쪽 길가의 농가 옆에 그윽한 소나무가 자라고 그 아래 무덤들이 조성되어 있다.
노란 감들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 뒤쪽 덕치리 회덕마을에 '구석집'이라 불리는 초가가 있다.
회덕마을은 평야보다 임야가 많아 짚보다 억새를 이용하여 지붕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때는 마을 전체가 억새풀로 지붕을 이은 ‘샛집’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마을 안쪽 귀퉁이에 ‘구석집’이라 불리는 초가집은 1895년에 지은 후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전쟁 후에 다시 지었다. 이 ‘덕치리 초가’는 조선시대 형식의 샛집으로 전라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구석집 사랑채 마루에 앉으면, 집 앞 논밭 너머로 지리산의 줄지은 봉우리가 펼쳐진다. - 지리산둘레길
구룡폭포길을 따라 회덕마을을 통과한다. 밭에는 비닐하우스들이 즐비하다.
밭에서 할머니가 배추를 캐고, 왼쪽 뒤에 운봉의 바래봉 능선이 가늠된다.
덕치리 회덕마을 앞 구룡폭포길에 백두대간 여가캠핑장 1.3km 거리를 알리는 전북천리길 이정목이 서 있다.
주천 6.1km, 운봉 8.8km 지점의 남원056 지리산둘레길 장승형 이정목(벅수) 뒤에 주천리 회덕마을이 자리한다.
회덕마을이라는 이름은 풍수지리설에 의해 덕두산(德頭山), 덕산(德山), 덕음산(德陰山)의 덕을 한 곳에 모아 마을을 이루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원래는 남원장을 보러 운봉에서 오는 길과 달궁 쪽에서 오는 길이 모인다고 해서 '모데기'라 불렀다. 회덕마을은 평야보다 임야가 많아 짚보다 억새를 이용하여 지붕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때는 마을 전체가 억새풀로 지붕을 이은 ‘샛집’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마을 안쪽 귀퉁이에 ‘구석집’이라 불리는 초가집 ‘덕치리 초가’가 있다. - 지리산둘레길
회덕 버스정류소 옆에 회덕마을 표석이 서 있다.
청심선후회(淸心先後會)에서 세운 회덕마을 표석 아래에 '고향산천' 글이 새겨 있다.
포근한 부모님품 있고/ 의지할 곳 정이 있어 좋은/ 우리의 고향산천// 산·계곡·맑은 물·넓은 들판/ 수놓여 있는 우리의 고향땅// 나무내음·풀내음에 도취되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우리의 보금자리// 수많은 추억들 살아 숨쉬고/ 고향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우리의 고향산천을/ 우리들 가슴 속에 영원히 간직하리라! 2003년 11월 1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