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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5년 12월 2일(화)부터 13일(토)까지 진행된 불광 법회의 인도, 네팔 성지순례의 기록입니다. 여행은 혜총 스님을 지도 법사로 모시고 37명이 함께하였습니다. 이번 순례로 부처님의 발자취를 오래오래 기억하시도록 12일 동안의 순례 여행기를 올려드립니다.
집결장소 : 인천공항 1청사 3층 게이트 13번 앞
집결일시 : 2025년 12월 2일 (화) 오전 8시까지
깊은 신심으로 인도 순례길을 떠나기 위해 오전 8시 인천 공항 미팅 장소에 도착한 함께할 보살님들의 모습이 아침햇살 같다.
이른 출발을 감안하여 여행사에서 미리 각각 두 개의 김밥을 준비해 주었다. 하나는 출발인원 확인 후, 대기 중에 아침으로 먹고,. 하나는 Ai 항공(인도항공)을 이용하는 관계로 혹시 인도 기내식에 익숙하지 않는 분들을 위한 것이었으니 가방에 넣어 두었다.
출발 전에 6~7인으로 조를 형성했던 관계로 대면이 없던 분들마저 어느새 각조 단톡방에서 얼마나 친숙한 관계가 이루어졌는지 특히, 1조는 반짝이는 예쁜 헤어밴드까지 준비했으니 앞으로의 긴 여정이 힘들지만은 않을 것임을 예견해 본다.
혜총 스님을 지도법사로 모시고 떠나는 순례 법회이니만큼 스님께서 법문 전에도 필히 외우시는 '광명진언' '발 일체 업장 근본 득생정토다라니' '아미타불종자진언'을 함께 독송할 수 있도록 A4 1/4 크기로 견고하게 제작해서 전원에게 배부했다.
낮 12시 05분.인천 국제공항을 출발.
낮 12시 5분에 인천공항을 떠날 떼 중천에 있던 태양은 서너 시간 넘게 비행 중인데도 여전히 중천에 있다. 3시간 반의 시차 때문이다.
드디어 우리 일행은 현지 시간 17시 30분에 인도 뉴델리 공항에 도착.
공항에서 짐을 찾아 현지가이드를 만나니 ‘인도로구나’ 실감이 났다. 저녁이라 그런지 두터운 옷이 아직은 거추장 스럽진 않았다.
입국 수속을 끝내고 버스 대기 장소로 이동하는 거리가 꽤나 멀다. 다리 불편하신 스님께서는 짐 싣는 카트에 캐리어와 함께 앉아 이동하니, 노 스님이 마치 동자승 같은 느낌이랄까?(죄송^^)
대기 중인 버스에 탑승하여 20분 정도 가야하는 호텔로 향했다. 예외 없는 스님의 차량기도를 여법하게 올리고 호텔 레스토랑에 들러 저녁까지 마치니 여느때와 달리 3시간 30분이 더 긴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내일은 이른 새벽 기상, 델리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랑가바드로 떠나야 하는 일정이다. 트렁크는 일행보다 먼저 아그라로 보내지기 때문에 2일간의 여행을 위한 간편한 가방을 챙겨놓고 인도에서의 첫 밤을 맞았다.
12월 3일(수요일) [엘로라 석굴군]
엘로라 석굴군은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주 아웅랑가바드 근처에 위치한 고대 석굴 사원군으로, 5세기부터 10세기 사이에 조성되었다. 이 유적은 불교(1~12굴), 힌두교(13~29굴), 자이나교(30~34굴) 사원이 나란히 조성되어 있어, 고대 인도의 종교적 관용과 예술적 융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다. 총 34개의 석굴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6번 카일라사 사원으로, 하나의 암석을 위에서 아래로 깎아 만든 세계 최대 규모의 바위 절단 사원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예술적 정교함과 기술적 정밀성에서 고대 인도 조각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엘로라 석굴군 사원들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16번 석굴 카일라사나타 사원의 모습이다. 절벽을 통째로 수직으로 깎아 만들어낸, 하나의 거대한 암석을 깎아서 조각해낸 사원으로, 규모로 보나 기술적으로 보나 예술적으로 보나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건축물로 손꼽힌다
현지에서 멋진 사진 포인트를 알려주시는 분의 덕택으로 '카일라스 사원'을 배경으로 이렇게나 멋진 사진도 남길 수 있었다.
불교 석굴들 중 단연 유명한 '비슈바카르마 석굴'이라고도 부르는 10번 석굴. 서기 650년 경 지어져 석굴 내부 천장의 빔이 마치 목재로 만든 것처럼 생겨서 '목수의 동굴'로도 알려져 있다. 복층 구조를 띈 입구를 지나 석굴 내부로 들어가면 '차이티야 그라하', 즉 성당처럼 생긴 예배당이 나온다. 예배당 중앙에는 설법하는 자세의 4.6m 크기의 부처상이 안치되어 있다.
10번 석굴에서 혜총 스님의 집전으로 기도하고, '부처님 만세', '대한민국 만세', '불광법회 정상화 만세', '불광법회 가족 만세','전 세계 평화 만세' 우리 모두의 간절한 발원을 담았다.
12월 4일(목요일) [아잔타 석굴군]
아잔타 석굴군은 인도 마하라슈트리주 아우랑가바드 북동쪽에 위치한 고대 불교 석굴 사원군으로, 기원전 2세기 부터 기원후 6세기까지 두 시기에 걸쳐 조성 되었다. 총 30개의 석굴이 말굽 모양의 협곡 절벽을 따라 형성되어 있으며, 초기에는 히나야나 불교 양식으로 시작해 후기로 갈수록 마하야나 불교 양식과 정교한 벽화, 조각이 발달했다. 석굴 내부에는 붓다의 생애와 전생담을 주제로 한 벽화와 탁월한 부조들이 남아 있어, 고대 인도 회화와 건축 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엘로라 석굴군과 함께 인도의 종교 미술을 대표하는 유적이다.
조금 험한 길이기는 해도 아잔타 석굴 맞은편 능선을 타고 올라가니 말굽모양의 석굴이 눈에 확연히 들어오고 쏟아지는 폭포수도 볼 수 있었다. 이전 방문에서 보지 못했던 또 다른 풍경과 지형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스님께서도 young man 영재씨의 손을 꼭 잡고, 걸으며 쉬며 한 걸음 한 걸음 산길을 내려오시어 아잔타 '1번 석굴' 과 '10번 석굴' 에서 기도 올렸다. 후로 가이드 Mr. 디팍으로 부터 차례차례 석굴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아잔타 1번 석굴에서 기도드리는 불광 법회 형제들의 가슴속에는 불광정상화의 간절한 염원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대승과 소승이 공존하는 아잔타 26번 석굴>
점심은 수제비가 준비되어 있다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기대에 차 식당에 도착하여 30분 내로 후딱 점심공양 후엔 기나긴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도르로 가기 위한 버스 운행은 대략 7~8시간 소요 예정이라고 했지만 무질서 속에 질서를 유지하는 인도의 도로 사정은 예측 불허 상황인지라 우리도 총 10시간에 걸처 인도르 Essentia hotel에 도착했다.
장장 10시간의 버스 여정은 한국에서는 상상을 못할 시간이지만 차 속에서 여행사 조 대표님의 건강을 위한 강연과, 스님의 기도, 성지순례 참여자 한 사람 한 사람 자기소개를 하고 나니 한결 친근감이 들었고, 불광 법회 정상화를 위한 마음들을 다시 한번 느낄수 있었다.
12시30분 출발해서 밤 10시30분 도착. 늦었지만 저녁 공양도 가볍게하고 각자 방으로 돌아가 내일 새벽 4시 기상을 위해 잠자리에 들며 하루 일과를 마친다.
12월 5일(목요일) [산치 대탑]
산치 불교 대탑은 인도 마디아프라데시주 산치에 위치한 고대 불교 유적으로, 기원전 3세기 아쇼카 대왕에 의해 세워졌다. 이 대탑은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불교 건축물 중 하나로, 불교의 성스러운 유물(사리라)을 봉안한 구조물이다. 원형 돔 형태의 탑을 중심으로 네 방향에 아름답게 조각된 석문(토라나)이 설치되어 있으며 이 문들은 석가모니의 생애와 전생담을 묘사한 정교한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산치 대탑은 힌두교가 우세했던 지역에서 불교가 어떻게 존속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산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어 있다.
고대 인도 건축과 불교 예술의 조화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4시 모닝콜에 기상하여 호텔 식당에서 식사하고 5시 40분 예정시각에 맞추어 버스로 산치를 향해 출발하였다. 도착까지 4시간 예정이라고 하는데 예전 같으면 장거리라고 생각했겠지만 어제 버스 탄 시간의 반도 되지 않으니 마음 가뿐하다.
오늘도 버스 출발 후 10분 정도 지난 5시 50분부터 50분 동안 혜총스님의 집전으로 아침 기도를 했다. 예불, 염불에 이어 참석자 전원을 포함하여 불광 법회 가족의 안녕과 불광 정상화를 위한 축원을 드렸다. 스님께서는 우리들이 현재 하는 일이 관광 또는 여행이 아니고 부처님 성지를 친견하는 기도라는 점을 강조하셨다.
성지순례 중 버스에서 잠자지 말고 깨어있으라고 강조해 오셨던 스님께서 오늘 처음으로 특별히 버스 안에서의 수면을 허락하셨다. 덕분에 어제 밤 모자란 수면을 1시간 동안 수면 명상 이라는 이름으로 느긋하게 즐길 수 있었다.
스님께서는 이번이 26번째 인도 순례라고 하시고, 연꽃여행사 조승희 대표는 이번이 109번째라고 한다. 성지순례가 기본이지만 인도에 왔으니 인도 자체에 대해서도 견문을 넓히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에서 조 대표님의 인도 소개가 있었다. 인도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은 모두 종교로 버무러져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 날에는 특별히 정치와 관련하여 현직 모디 총리를 중심으로 정치가 종교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설명해 주었다.
4시간 10분 정도를 달려 9시 53분에 산치 대탑에 도착했다. 산치 대탑은 인도 마디아프라데시주 산치에 위치한 고대 불교 유적으로, 기원전 3세기 아쇼카 대왕에 의해 세워졌다. 아쇼카 대왕의 활동무대는 인도 동북부였고 이곳 산치는 처가가 있던 지역이라고 한다. 이 대탑은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불교 건축물 중 하나로, 불교의 성스러운 유물(사리)을 봉안한 구조물이다. 원형 돔 형태의 탑을 중심으로 네 방향에 아름답게 조각된 석문(토라나)이 설치되어 있으며, 이 문들은 석가모니의 생애와 전생담을 묘사한 정교한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산치 대탑은 힌두교가 우세했던 지역에서 불교가 어떻게 존속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산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고대 인도 건축과 불교 예술의 조화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산치 대탑에서 목탁을 치며 석가모니불 염불하면서 탑돌이를 한 후 서문 쪽의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예불을 드렸다.
현지 인도인들이 우리 일행에게 큰 관심을 보여서 한국말로 인사도 하고 사진도 함께 촬영했으며 혜총스님께서는 기회가 될 때마다 외국인들에게 안수 축원을 해주시기도 하셨다.
버스에서 내려 대탑을 향해 길을 간다.
스님 목탁소리 따라 '석가모니불'을 정근하며 4개의 문을 지나는 탑 주위와 비스듬히 오르는 윗층까지 정근 염불로 한 바퀴를 돌았다.
대탑 앞에서 예불과 기도를 올리고 각자 사진을 찍는 잠깐의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정확하게 1시간 30분이 지난 11시 24분, 산치 대탑을 출발하여 10분이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1시간 동안 인도식으로 점심공양을 하고 보팔 기차역을 향해 출발하였다.
1시간 20분 정도를 지난 오후 1시 47분에 보팔의 해빕간즈역 Habibganj railway station 앞에서 버스를 내렸다. 역 2층에 있는 대기실에 도착하니 2시 5분으로 기차를 탈 시간이 1시간 이상 남아있었다. 현지 가이드 디팍(대박)의 설명에 따르면 인도의 교통 사정에는 예측 불가능성이 높아서 불편하더라도 미리 와서 기다리는 것이 안전하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3시 14분에 아그라행 특급기차 두 칸에 나누어 타고 9시 30분 아그라역에 도착할 때까지 6시간 16분 동안 차 안에서 제공되는 간식, 물, 밥을 먹거나 수면 명상, 대화를 즐기며 차창 밖으로 쓰레기가 가득한 찻길 너머의 풍경을 감상하였다. 평평하고 넓은 땅에서 풍요로움이 느껴졌다. 아그라역에서 버스로 약 25분 소요되는 Jaypee Palace 호텔에 도착한 시각은 밤 10시가 넘었다. 호텔은 이름과 같이 궁전처럼 멋있었으나 늦은 시각이라 돌아볼 여유가 없었고 늦은 저녁공양을 마친 후 잠자리에 들었다.
12월 6일(토요일) [타지마할 방문]
타지마할은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아그라에 소재한 무굴 제국의 5대 황제 샤자한과 그의 황후 뭄타즈마할의 영묘이다.
완벽한 비율과 좌우대칭으로 보이는 조형미, 흔치 않은 주변 경관과의 배치에다 빛이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외관과 어우러져 일출과 일몰에 따라 그 자태가 변하는 건축물, 무엇보다 오늘날에 보기에도 감탄만 나오는 이런 건축물이 17세기 당시의 기술로 22년 만에 완공되었다는 것은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내부에 왕과 왕비의 가짜 석관이 나란히 보인다. (진짜 묘는 지하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왠지 계속 4시 모닝콜에서 5시30분 모닝콜은 시간을 많이 확보한 생각이 들어 여유로운 아침이었다.
7시 40분 타지마할을 향해 가면서 스님께서는 오늘은 성지 순례에서 잠시 벗어나 관광 시간을 즐기라고 말씀하셨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타지마할'
사랑의 힘으로 탄생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 타지마할을 두고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는 이런 찬사를 남겼다고 한다.
"어느 날 흘러내린 눈물은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맑고 투명하게 빛나리라. 그것이 타지마할이라네.”
화창한 날씨와 아름다운 건축물이 더욱더 화사하게 어우러지는 날. 이곳을 찾은 것은 불광형제들의 멋진 시절인연이었다.
아그라 요새
아그라 요새는 인도 아그라에 위치한 요새로 타지마할과는 야무나강을 사이에 두고 북서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마주보고 있다. 붉은 사암의 성채와 내부의 하얀 대리석 건물이 어우러져 웅장함과 정교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건축물이다.
10시경 차에서 아침 예불을 하고 도착한 아그라성(왕 살아던 마을)은 붉은 사암으로 지어지고 내부는 하얀 대리석으로 된 건축물이다..
아그라 성 주변으로는 해자를 만들고 그 안에 악어를 키워, 적이 한 번도 침범한 적이 없다고 했다. 멀리 타지마할이 보이는 곳이었다.
그러나 안개가 밀려오면 타지마할이 보이다 사라지고, 다시 보이는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도 든다고 한다.
아그라 성을 떠나면서 버스 안에서 스님께서 정동원의 '여백' 이란 노래를 들려주셨는데 (전화기 충전은 잘하는데 내 삶은 충전하지 못하고 산다는 가사가 오늘따라 가슴 깊이 와닿았다.) 우리가 떠나온 이 순례길이 우리 삶의 충전을 위한 길이란 생각을 하며...
12시경 조식 먹었던 동일한 호텔에서 든든히 점심 공양 후 1시 20분경 버스를 타고 럭나우로 출발했다.
예상 장장 4시간이 소요되는 장거리인데 도로 사정으로 그 이상이 소요되기도 하지만 차량 이동중에도 천기누설 인도이야기 등, 해박한 상식을 말씀해 주시던 조 대표님 열의와 부처님 나라에 와서 다녔던 곳에 대해 확신에 찬 음성으로 이야기 해주시고.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자 애쓰시는 혜총스님 열정은, 먼 길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게 하는 명약(名藥)이기도 했다.
저녁 6시경부터 진언합송을 시작으로 차량에서 정성스럽게 저녁 예불을 올리니 호텔에 도착했다. 오늘은 여기가 종차역이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부처님 성지를 순례하는 일정을 기대하며 오늘을 고이 접어두기로 한다.
** 부처님 8대 성지 **
12월 7일(일요일) [스라바스타]
럭나우에서 조식 후 5시 50분 버스에 올라 3시간 30분을 달려 스라바스티에 도착했다
조금 달리던 버스에서는 어김 없이 스님과 함께 광명진언, 천수경 독경, 축원, 반야심경으로 1시간 가까이 올리던 아침 기도는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혜총 스님께서 이끄는 순례단만의 환희심 나는 기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동하는 동안 화장실을 찾지 못해 적당히 가림할 수 있는 풀들이 자란 들판에서의 노상방뇨는 모두를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추억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한 생각 바꿔 인도 농가에 거름 보시 공덕이라 위로하며..) 드디어 아침 9시 무렵 스라바스타에 도착했다.
스라바스티 ( 수닷타 장자 집터, 앙굴리마라 스투파)
코살라국의 제타 왕자가 소유한 동산을 그 넓이만큼 황금을 주고 사서 기원정사를 지어 부처님께 보시한 수닷타 장자는 계속 보시하게 되어 창고가 비게 되었다. 마지막 남은 물레를 팔아 3일치 식량을 구했는데 아난존자가 탙ㄱ발을 오셔서 하루치를 시주하고, 다음 날 가섭존자가 와서 하루치를 시주고고, 그 다음날은 부처님께서 탁발을 오셔서 나머지를 시주하였다. 그 후 수닷타 장자는 창고에 들어가 보니 놀랍게도 본래의 황금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고 한다.
수닷타장자 집터 길 건너에 있는 99명의 사람을 죽여 그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다닌 희대의 살인마 앙굴리라마가 부처님을 발견하고 100명을 채우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멈춰선 부처님을 도저히 붙잡을 수 없었다. 부처님은 “나는 멈추었다. 그대도 멈추어라”라는 사자후가 앙굴리말라를 일깨워 비구가 되셨다는 앙굴리라마 수투파에서 우리는 반야심경을 독경하였다.
기원정사
9시45분 기원정사에 도착하여 석가모니 정근 하며 세바퀴를 돌고 조 대표님께서 미리 돗자리를 깔아 기도 자리를 마련해 주신 곳에서
향을 사르고 예불.축원을 올렸다. 스님께서 기도 동참 형제들에게 머리에 향을 올리시머 축원을 해주셨다.
이 나무가 아란존자께서 심은 '아난다 보리수(菩提樹)' 이다. 당시로부터 세 번째 나무.
앗, 보리수(菩提樹)를 보고 오는 길에 자제헌 보살님이 가방을 잃어버렸다는 소식과 동시에 찾았다는 소식. 역시 부처님 나라다.
기원정사 참배를 끝내고 맛나게 점심 공양 후, 다음 일정 룸비니를 가기 위해 출발했다.
룸비니를 가기 위해서는 네팔 국경을 통과해야 하고 여권을 제시하고 입국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경까지 가는 길은 혼잡하고 차가 많이 막혔다. 결국에 막히는 도로에 버스만 남겨 놓고, 우린 버스에서 내려 도로와 보도가 따로 구분 없는 차와 사람들이 북적이는 틈새를 요리조리 비껴 걸으며 어찌 되었든 네팔 국경 수속하는 곳까지 도착했다. 두 번의 심사가 있다. 천막을 친 곳에서의 심사가 추가되어서 그렇다. 이해할 수 없지만, 네팔 땅도, 인도 땅도 아닌 지역을 통과하기 위한 절차다. 수속을 마칠 무렵에야 버스가 도착했다. 우리의 선택은 퍼팩트 한 것이었다. 더구나 수속하는 시간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보통이나 사상 처음으로 빨리 끝나 정말 좋다 하시며, 스님과 조 대표님께서는 불광법회가 복(福)이 많다 말씀하신다. 마하반야바라밀! 만세 삼창.
스님께서는 수속장 옆에 과일 판매대에 팔아주고 싶으셔서 석류 주스를 사시겠다고 딜을 하고 계시고, 수속이 전원 끝나기까지 자투리 시간에도 내일 장기자랑을 펼치겠다는 두 팀의 리허설하는 모습도 참으로 정겹다.
8시 19 분 전원 수속을 마치고 버스에 탑승. 20분 후 네팔 SlDHARTHA VlLAS 호텔에 도착하여 석식 공양을 했다.
내일은 4시 모닝콜 4시 50분 아침 공양 5시 40분 출발. Mr. 디팍의 공지를 받고 각자 룸으로 직행했다.
12월 8일(월요일) [룸비니]
네팔 남부의 룸비니는 석가모니가 된 샤카 왕자인 싯다르타 고타마가 탄생한 신성한 곳으로 마야데비 사원을 포함한 룸비니 지역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1896년 2,200년 전 인도 아쇼카 대왕의 기념 기둥이 발견됨으로써 불교성지가 되었다. 또 2013년에는 영국과 네팔의 협동 조사팀이 마야데비 사원 내부에서 기원전 6세기 경의 것으로 보이는 사원의 흔적과 목재를 발견하였으며 그 외에도 석가모니의 탄생 지점을 표시한 표석과 탄생 장면을 묘사한 조각상이 발견되는 등 현재까지 이곳은 석가모니의 탄생지임이 확인되고 있다.
룸비니는 역사의 보물을 모두 소유하고 있는 신성한 정원이다. 붓다의 어머니인 마야데비의 얕은 양각을 발견할 수 있는 마야대비 사원은 석가모니를 낳고 연꽃잎과 성수로 목욕시켰던 곳이다.
새벽 4시 기상하여 아침 공양 후 5시 40분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로 출발. 동 트기전, 깜깜한 길을 버스는 달린다.
버스 안에서 아침 예불을 하고 6시 룸비니 도착. 부처님 탄생지에서 칠정례를 하고, 스님께서 물을 떠서 마정수기를 해주셨다.
단체사진도 찍고 부처님의 위력을 흠뻑 받으며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음 일정인 쿠시나가르로 간다. 룸비니로 왔던 역순으로 인도 국경 통과하여 인도 입국 절차를 거쳐야 한다
8시에 버스에 탑승했는데 얼마를 가다가 버스의 이상 증상이 나타났다. 차는 달리지 못하고 15Km의 속력으로 목적지를 향해 갈 수밖에 없었다. 스님께서는 조용히 기도하신다. 우리 모두도 무탈하게 성지순례가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조 대표님과 Mr. 디팍은 그 사이 해결 방법을 찾고 있었고 결국 20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1시간에 걸쳐 네팔 국경에 도착하여 출국심사를 번호순대로 순조롭게 마칠 수 있었고,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인도 국경으로 와서 입국심사를 받고 고장 난 버스를 다시 타고, 수배해둔 버스와 접선할 수 있는 곳까지 가고 있다. 지금 시간은 11시 20분이다.
모든 분들의 염원으로 1시 30분에 새로운 버스가 도착하여 짐을 옮기고 1시 40분에 다시 도로를 달렸다. 오후 4시 차 안에서 저녁 예불을 하고, 4시 30분.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사찰. 부처님 열반당에 도착했다.
열반당 부처님께 가사 공양 올리기 위해 우리 일행은 입구에서부터 가사를 맞잡고 정근하며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쿠시나가라(산스크리트어 kuśinagara)에 있던 두 그루의 사라수(娑羅樹) 나무를 돌아 열반당으로 향했다.
열반당 부처님께 우리 모두 맞잡고 가사 공양을 올리고 기도를 드렸다.
열반당에서 숙소까지는 10분 거리여서 바로 도착했다. 방 배정받아 각자 짐을 풀고 저녁 공양을 마친 후 7시부터 조 대표님 공연 및 캠프파이어를 시작했다.
12월 9일(화요일) [케사리아]
오늘은 좀 늦은 아침 6시 20분에 Royal Residency Kushinagar 호텔을 출발하였다.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부처님의 다비장 파고다에 도착하여 탑돌이를 3회 하고 예불, 염불, 축원에 이어 혜총 스님의 법문이 있었다.
1. 계를 지키고, 2. 인과응보(인과법, 연기법, 콩 심은 데 콩 나고~~)의 진리를 믿으며, 3. 스스로를 믿으며 부지런히 공부해서 부처가 되어 스스로 행복하고 다른 이도 행복하게 하라는 내용으로 열심히 정진할 것을 강조하셨다. 1시간 동안 여법하게 법회를 본 후 잠시 개인 시간을 가진 후, 7시 51분에 케사리아로 출발하였다.
버스 안에서 조 대표님의 부처님 사리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현재 세계 각지에 부처님 진신 사리가 많이 모셔져 있는데 사학자들이 공인하는 진신사리는 네 곳에 모셔져 있는 것뿐이라고 한다. 그중 한 곳을, 우리들이 바이살리에서 참배할 수 있는 예상에 없던 뜻깊은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한다. 공인된 사리 중 가장 대표적인 사리는 현재 델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나 발굴 과정에 대한 기록이 없는데 비하여 비하르주의 수도 파티나에 있던 주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사리는 발굴 과정에 대한 기록이 존재하는 것으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립 박물관에서 사리를 친견하려면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특별 허락을 받은 후 금고에 보관되어 있는 사리를 담은 토기만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인도가 최근 불교를 안고 가기로 결정하면서 사리 발굴지 주위에 사리 박물관을 건립하여 주립 박물관에 모셔져 있던 사리를 옮겨왔으며 조 대표님이 어제 그 박물관의 개관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혜총 스님께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귀한 법문을 주셨는데 오늘은 스님의 작은 키와 관련된 이야기, 남편과 아내가 말, 몸, 마음, 물건을 모두 상대에게 바침으로써 무아의 상태가 되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법문이 흥미로왔다. 스님께서는 법문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부산에서 챙겨오신 미역귀와 아몬드 등 먹을거리도 때때로 챙겨주신다.
2시간을 달려 케사리아 대탑에 도착했다. 부처님께서 출가 후 삭발을 실행한 장소이며, 때마침 지나가는 사냥꾼의 옷과 바꾸어 환의한 장소이기도 한 케사리아 대탑은 인도에 현존하는 대탑(스투파) 중 가장 큰 규모이다. 이 대탑에서 부처님의 발우가 발견되어 “발우탑”이라고도 부른다. (혹자는 탑의 모양이 발우를 뒤집어 놓은 모양이라고 해서 “발우탑”이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이곳에서 출토된 발우는 현재 아프카니스탄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전 세계에 남은 부처님의 유일한 유품이다. 이 탑은 현재도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며 앞으로 몇 십 년은 더 발굴해야 그 실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한다. 케사리아는 주황색을 뜻하며 이는 수행자 옷을 뜻하기도 한다.
<최초 출가한 출가 성지 케사리아 대탑을 돌고 반얀트리 아래서 법문 듣는 중>
케사리아 대탑으로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강이 보였는데 바로 이 강이 부처님께서 바이살리를 떠날 때 사람들이 계속 따라오니 이제 그만 오라고 하시며 발우를 띄운 강이기도 하다. 케사리아는 부처님께서 출가생활을 시작한 곳이자 마감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은 케사리아 대탑에 연꽃, 장미 등 꽃을 헌화한 후 함께 기도한 후 탑 주위에 있는 오래 된 큰 반얀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탑돌이를 하였다. 거대한 주황색 대탑과 헌화된 꽃들이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했다. 대탑을 나오는 길에 토기 잔에 정통 짜이를 시식하기도 했다.(짜이를 담아준 토기 잔은 깨 버리는 것이라고 해서 그리했다.)
11시 38분 바이살리행 버스를 타고 버스 안에서 따뜻한 땅콩을 나누어 먹기도 하고, 조 대표님이 진행하는 4차원 퀴즈도 즐기며 여독을 씻었다. 1시 경 부처님 당시 가장 발달한 공화국인 마가다국의 수도였던 바이살리의 바이살리 Blue Lotus 호텔 식당에 도착하였다. 성지순례 일정 전체에 걸쳐 호텔 식당을 이용하며 한식조리사가 미리 별도의 자동차로 이동해서 한식을 조리하여 인도식과 함께 선택할 수 있게 해 준 덕분에 식생활에서도 불편함이 거의 느낄 수 없었다. 한국에서 가져간 밑반찬 등이 짐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새 박물관은 식당에서 3분 거리에 있었다. 진신사리는 웅장한 박물관의 중앙에 크리스탈 용기 속에 보관되어 있었으며 사진 촬용도 가능했다. 박물관이라고는 하지만 수장한 것이 진신사리뿐이고, 정식명칭은 부처님 유물 사리탑 (Remains of Buddhist Stupa, Buddha’s Relic Stupa)이다. 가이드 설명으로는 아직 정식 개장이 아닌 덕분에 방문객도 적고 사진 촬영도 가능한 것이고, 앞으로는 관람 및 참배에 상당한 수준의 통제가 예상된다고 했다.
진신사리 친견 후 대림정사로 향했다. 바이샬리는 비구니가 최초로 출가한 지역이며 제2차 결집이 진행된 뜻깊은 지역이기도 하다. 대림정사에는 아쇼카 석주가 유일하게 완벽한 상태로 보관되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으며, 부처님께서는 이곳에서 마지막 안거 후 열반지 쿠시나가르로 떠나셨다. 대림정사(부처님 마지막 설법 성지)에서 지고 있는 석양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한 후, 큰 돗자리 펼치고 앉아 모두 부처님 마지막 설법 듣는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다.
대림정사 참배 후 진신 사리 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사리탑 유적지를 방문했다. 마감시간이 임박하여 입장할 수 없을까 걱정하며 바쁘게 움직였는데 다행히 제대로 참배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큰 암석의 중간부분을 파내어 사리를 보관해 오던 것을 발굴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부처님 열반 후 쿠시나가르가 사리를 독점하려 했으나 부처님과 인연 깊었던 다른 왕이나 부족들이 반대하여 무력충돌까지 불사할 분위기였다고 하나 도나라는 브라만이 중재하여 8몫으로 균분하였다고 한다. 유적지를 오가는 길에 인도인들의 집들을 직접 방문하기도 하는 등 현지인의 일상생활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도 어린이들이 “1달러”를 외치며 우리 일행을 따랐고 다행히 어린이들이 많지는 않아서 부담없이 기부를 할 수 있었다. 이곳 자몽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맛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대신 버스 안에서 조대표로부터 우리나라 새우깡 같이 인도의 남녀노소가 즐기는 과자 문다르(인도 녹두) 5봉지씩을 선물 받아 인도인의 간식을 시식하였다.
이날은 예외적으로 일찍, 5시 반이 되기도 전에 호텔에 도착하였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6시부터 저녁공양을 시작했고, 오랜만에 느긋하게 식후 정담까지 나누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12월 10일(수요일) [라즈기르]
오늘도 모닝콜은 새벽 4시. 아침 공양은 5시, 차량 탑승은 5시 40분. 아자 아자 출발하자!
탑승 후 차량 기도를 시작 한다. 칠정례. 정근 천수경 축원 반야심경.. 스님 목소리가 어제보다 가라앉아 조금 불편해 보였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니 기도하시겠다는 일념이 통했던 것일까? 다시금 본래의 혜총 스님 페이스를 찾으셨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다. 빌려 쓰다 가는 것'이라는 말씀의 내용으로 법문도 해 주셨다.
9시경. 날란다 대학 근처에 도착했다.
날란다 (최초의 불교대학)
날란다 대승원 유적은 인도 북동부 비하르 주에 위치한다. 이곳은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 13세기에 이르는 오랜 세월 동안 승려들의 수행처이자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하면서 수많은 고고학 유적을 남겼다. 유산은 대형 사리탑, 부도탑, 비하라(거처 또는 교육용 건물), 벽화, 비석, 금속의 예술 작품을 포함한다. 날란다는 인도 아대륙에서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대학교로 손꼽힌다. 이 대학교는 8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중단 없이 연구하여 체계화된 지식을 전승하고 있다. 날란다는 종교로서 불교의 성장, 승려 및 교육 전통의 번영 등을 보여주는 역사적 발전상을 증명하고 있다.
방이 교실 사방으로 배치되어 있고 옆에 법당이 있다. 기숙사(교실) 한켠에는 겨우 혼자 들어가 참선할 수 있는 천장이 높이 뚫린 명상방도 있었다. 날란다를 떠나 10시15분경 버스에 올라 영축산으로 출발했다.
나지기르 (죽림정사-왕사성, 영축산, 최초의 사찰)
왕사성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곳이다. 깨달음을 얻은 부처는 라지기르를 찾아 오랜 시간 머물며 설법을 했는데, 부처의 사후 1차 결집을 행한 곳으로 불교사적 의미는 매우 큰 곳이다.
조식 후 버스로 3시간 정도를 달려 라즈기르로 영축산 입구 10.50분 도착
다리가 불편하신 스님, 몇몇 분은 가마에 탑승하시고 다른 분들은 영축산 향해 go go~~
아난존자 수행터, 사리불존자 수행터, 가섭존자 수행터를 지나서 독수리 봉 옆을 지나 법화경을 설하신 영축산에 올랐다.
공양물로 과자를 준비해서 공양 올리고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춰서. 간절한 마음으로 석가모니 정근을 하며 세 바퀴를 돌고 예불 축원 반야심경으로 기도 올리고 염화미소를 생각하면서 참선도 하고 부처님 설법대에서 혜총 스님의 법문도 듣고 우리의 발원 담아 외치던 만세 삼창이 영축산 온누리에 울려 퍼졌다. 공양 올린 과자 나눔도 하였다..
최초의 사찰 빔비사라왕이 기증한 죽림정사에서 스님께서 주도하신 호수 마정수기를 받고 2시10분경 득도성지인 부다가야 마하보디대탑으로 출발 하였다.
호텔에 버스를 주차해 두고 작은(툭툭이) 차를 4명식 나누어 탑승하고 부다가야 대탑에. 들어가기 위해서 두 번의 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다. 신발을 벗어놓고 서로서로 줄 맞추어 많은 인파속에 법당 부처님 전에 황금색 가사를 공양올리고 석가모니정근. 축원 반야심경 사홍서원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서 많은 인파속에서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춰 석가모니정근을 하면서 대탑을 세 바퀴, 돌고 조금 넖은 공간에 앉아 함께 참선도 경험하고 밤에 오색등이 켜진 대탑 주변도 돌면서 바라본 부다가야 대탑 밤 풍경은 정말 멋졌다.
환희심과 벅찬마음으로 득도 성지를 나와서 우리 나라 스님께서 창건하신 근처 분황사를 참배하고 인재를 키워내는 거룩한 불사중이라는 스님의 법문과 간단한 예불과 혜총스님께서 정성껏 축원을 하셨다. 분황사 주지 스님께 보시금을 전달하고, 대접해 주신 차도 마시고 앞으로 더욱 발전하시도록 후원 등록도 하고 왔다.
호텔 도착해 공양하고 숙소 들어오니 8.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쉽지 않은 일정이지만 환희심을 느끼면서 벅찬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 한다
12월 11일(목요일) [사르나트 초전 법륜지]
오늘도 새벽 4시에 모닝콜 5시 공양 시간에 어제 방문했던 분황사 스님들께서 오셔서 혜총스님과 조식을 함 께하셨다.
6시 5분에 갠지스강, 사르나트가 있는 바라나시로 출발하였다. 5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될 예정이다. 이제는 장거리 버스 타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이 아침. 스님께서 8대성지에서 기도하고 점안하신 귀한 선물로 주신 예쁜 봉투에는 인도 화폐 20루피 2달러 2장이 신권으로 담겨 있었다. 부처님 나라 순례를 새기며 소원 성취하라는 말씀 주시니 그 감동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차량에서 6시26분 아침 예불을 끝내시고 스님께서는 모두에게 기억을 잘 하면 성공이다. 깨어있는 상태로 돌아가라 당부 하셨다.
바라나시에 도착하니 점심 시간이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점심 공양만 하고 1시 10분쯤 스리랑카 사찰를 방문하러 떠났다.
10여 년 전에 혜총 스님께서 정면 우측에 불상을 모신 녹야원 부근 스리랑카 사찰을 방문하여 순례단장님께서 보시금을 전달하였다. 주지스님께서 노란 증표 줄을 하나씩 주시셨다. 손목에 매고 함께 기도 올리고 도량을 염불하며 도는데 오석(烏石)에 새겨진 한글로 된 혜총 스님의 글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였다.. 이제 부처님의 최초 설법지인 사르나트를 향해 간다.
사르나트(초전법륜지)
석가모니의 최초 설법지이다. 한자로 녹야원(鹿野園)이라고도 불린다. 지명 사르나트는 "사슴의 군주"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사란가나타를 어원으로 한다. 이 장소에 자타카에 나온 황금 사슴을 기리는 공원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사르나트는 불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와 상징성을 갖는 불교성지이다. 불교 역사가 여기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고타마 붓다는 보드 가야의 보리수 아래인 금강보좌(金剛寶座)에서 무상대도(無上大道)인 정각을 이루었지만, 고타마 붓다는 21일 정도의 기간 동안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자신의 깨달음을 혼자만의 즐거움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남에게도 베풀 것인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 때문이었다. 깨달음에 대한 점검과 동시에 이런 깨달음의 사회화에 대한 망설임 속에 있을 때, 하늘(梵天)에서 권청(勸請)의 향연 소리에 고타마 붓다는 전법륜(轉法輪)을 결심한다. 이는 즉 법륜(法輪)을 굴린다는 뜻이다.
초전법륜 성지 녹야원 사르나트 참배 후, 넓은 잔디가 펼쳐진 곳에 자리하고 기도, 염불, 축원을 끝내고 청법가를 부르고 혜총 스님의 법문을 청해 듣는 시간을 가졌다. 없는 자에게 베푸는 마음을 가도록 하고, 모든 이에게 이익주는 선생에게 대중공양하고, 본인 스스로 반석을 만들어 제공, 무상 본래 모습을 잃지 않는 것, 계를 파괴하지 않는 마음, 모든 것은 무상하지 않는다는 깨달음 등의 법문을 주셨다.
사르나트 박물관
3시10분 다음 일정인 사르나트 박물관에 도착했다. 박문관을 들어서자 사암으로 만들어진 동 서 남 북으로 등을 맞대며 네 개의 방향을 주시하고 있는 최고의 걸작품 4마리 아쇼카왕 때 만들어진 사자상이 있었다. 발아래 받침에는 말, 사자, 황소, 코끼리 상이 새겨져 있고 사이마다 24개의 바퀴 상이 조각되어 있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공화정을 선포한 1950년 제정된 인도 국장의 형상이 아쇼카 사자상이라고 한다. 사자상 아래 진리의 수레바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것으로인도 국기 중앙에 그려져있다. 모든 지폐마다 아쇼카석주가 있다고 하고, 인도 국기 흰색은 법륜을 말한다고 한다. 네오나그리 문자55개 중에 힌글의 5개( ㄴ.ㅇ.ㅅ.ㅁ.오)가 같다고 Mr. 디팍의 설명이다.
갠지스 강
다시 우리 일행은 3시30분 툭툭이를 타고 갠지스강으로 갔다. 울퉁불퉁한 도로를 지나는데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널 뛰듯 뛰고 도로의 소음은 아마도 우리나라의이동 소음(오토바이등) 과태료 대상 인 95dB의 2배는 될 것 같아 정신까지 혼미해졌다..대단하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무질서 속에 클랙슨을 무한정 울려대는 가운데에 지극히 질서가 있다는 아이러니함에 재차 놀라며 4시 17분에 갠지스 강가에 도착했다. 힌두교. 불교의 성지인 갠지스강. 전체 길이는 2500Km가 되고 힌두교는 살아서 꼭 한 번 갠지스강에서 목욕해야 된다고 한다.
설명을 들어보니, 갠지스강은 남쪽에서 북으로 가다 서쪽으로 넘어간다고 하고 갠지스강물은 1년을 두어도 썩지 않는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장례를 당일에 화장하며 13일 동안 남자 가족들은 모두 머리를 깎고 강황 등을 먹지 않는다는 등 여러 가지 인도의 장례풍습도 알게 되었다.
갠지스강에 우리를 태운 배가 스르르 밀려 떠간다. 건너 모래 언덕에 올라 스님께서 갠지스 강물로 마정수기를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곱다는 모래를 한줌 집어 손가락 사이로 흘려도 보았다. 모래 언덕 위를 올라 관광객을 위한 사진용인지 낙타를 권하는 사람도 있어 낙타와 함께 단체사진도 찍었다. 돌아오는 배에서는 노을이 지고 있는 멋진 갠지스강을 배경으로 조 대표의 핵심선물인 하트 꽃장식 초를 켜고 독사진을 촬영했다. 촛불이 꺼지기 전에 일행 모두의 사진을 찍어야 하는 모두 급하게 뱃머리를 오르내렸다.
스피드! 스피드!. 석양도 지고 있고, 켜 놓은 촛불도 사그러져가고... 그러나 초스피드한 행동으로 우리 모두 포인트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해가 넘어가고 밤이 찾아오니 저 멀리 부둣가 강가에서 기도 소리가 들리고 장례를 치르는 풍경이라 하여 바라보니 불이 훤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갠지스강. 우리 삶이 이 강물처럼 그저 무시무종(無始無終) 흘러가는 즉,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음이 실감 났다.
그런 갠지스강에 유유히 떠있는 배에서 삶을 생각하고 있을 때, 조 대표님의 콘서트가 펼쳐지니 그것은 금상첨화(錦上添花)였다. 이것이 삶이다. 멋지게 함께 노래부르며 즐기노라니 어느새 배가 선착장에 도착했다. 다시 덜컹거리는 툭툭이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니 6시 33분이었다. 지금까지 밟아 온 순례길을 되돌아 보며 마지막 밤을 지냈다.
12월12일(금요일) 순례여행 마지막 날
여행 마지막 날 아난드 인터내셔널 호텔에서 아침 6시 30분 기상하여 7시 30분 공양 후 8시 30분 버스 탑승 아침 예불 후 조 대표님은 귀국전 주의 사항 및 안내를 해 주었다. 9시 30분 바라나시 공항에 도착하여 수속을 시작했다. 요리사 두 분이 도시락까지 준비하여 나눠주었다.
한국식 식사를 제공해 주신 요리사 두 분 덕분에 풍성한 먹거리로 배탈 나지 않고 건강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일행 중 아무도 배탈이 나지 않은 것은 인도 송객(送客) 1위를 자랑하는 연꽃여행사의 조 대표가 몸속으로 들어가는 물은 모두 생수만 사용하라고 당부를 거듭하며 생수를 무제한 공급한 덕분이기도 했다.
10시 20분 탑승 수속을 하고 5번 게이트 앞으로 모여 나눠 준 도시락을 먹고 12시 10분 boarding pass 준비하고 대기 중, 12시20분부터 뱅기 탑승 시작 12시 50분 이륙 시작 10분 지연되었다.
오후 1시 30분경 기내식으로 인도식 샌드위치와 초코 케익, 물을 받아 간단하게 먹었다. 잠깐 졸고 나니 오후 2시10분 착륙했다. 셔틀버스를 타고 나와 모두 화장실을 이용하고 3시 공항 밖으로 나왔다.
바이샬리의 박물관에서 진신사리를 참배했기 때문에 델리국립박물관 방문을 취소하고 델리 악사르담 힌두교 사원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사원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조 대표가 인도의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종교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파르시(페르시아사람이라는 뜻. 자이나종교의 한 집단)라는 한 집안종교인데 6만 명이 믿고 있다고 한다. 인도의 14억 5천만 인구 중 파르시종교인의 비중이 얼마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에 상당한 경제적 영향력을 갖는 이유는 핵을 개발한 사람, 유명한 배우, 은행장, 국민기업대표 등이 파르시종교를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잠세티 타타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기부를 많이 한 사람인데, 기부(공덕수첩)를 많이 하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하기 때문에 100대 기업 중 상위 기업들을 파르시종교가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자이나교의 스님 한 분을 시봉하는 사람이 50~60명이나 되는데 그 이유는 시봉자들이 공덕수첩을 짓기 위함이라고 한다. 나체로 걸어가는 스님의 앞에서 빗질을 하는 시봉자 등 그 역할이 아주 세분되어 있다고 한다.
인도 수도 캘커타(콜커타)에서 1911년 뉴델리로 변경했다고 한다. 뉴델리 중심은 영국식으로 로터리가 있다. 뉴델리 3천만 명 살고 있다. 60% 이상이 타지역 사람들이 와서 살고 있는데 인구가 많아 주변에 신도시를 만들고 지진이 발생하는 지역이라서 아파트는 4~5층만
건축 가능하고 오염이 가장 심하다 . 인도는 39개 주가 있다. 델리 지하철 8호선까지 있고 9호선 공사 중 그래도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차를 많이 가지고 있어 차량 정체가 심하고 주차 문제가 심각하고 치안도 안 좋다고 한다.
뉴델리주는 우버 택시사업이 앱까지 깔려있어 예약하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고 지하철도 매우 깨끗하고 좋다. 요금은 500원정도 된다고 한다. 인도 봄베이는 상업지역이라 물가가 가장 놓고 건물은 싱가폴 느낌이난다고 한다. 그다음 물가가 높은 곳이 뉴델리지역이라고 한다.
인도 뉴델리 신도시에 삼성과 엘지공장이 있다고 한다. 델리공항에서 버스로 40분정도 와서 악사르담 사원에 도착 테러가 있은 이후 보완이 강화되어 핸드폰 시계 지갑 가방 모두 놓고 입장을 했다. 악사르담사원은 2000년도 착공하여 5년동안 완공한 건물로써 힌두교 큰스님 열반 후 돈 많은 단체에서 기부로 만들어진 사원 정말 으악 소리가 날 정도로 웅대하고 규모도 크고 화려했다.
우리는 다시 5시30분 버스를 타고 출발 쇼핑센터로 이동했다.
버스 안에서 가이드 Mr 디팍이 인도 음식은 몸에 좋은 강황 마늘 양파 고수 토마토 좋은 재료 음식을 만들어 먹어 안경 끼는 사람이 많지 않다며 TV, 핸드폰. 많이 봐도 눈 나빠지지 않는 이유라고 한다. 파전이나 밥할 때 생선요리할 때 강황 가루 넣어먹으면 좋고 짜이는 인도인이 먹는 기본 차 우유+홍차+설탕을 넣는다고 열심히 설명한다.
혜총스님의 마지막 버스설법도 있었다. 부처님은 나무와 관련이 많다고 하시며 반얀나무, 보리수나무, 열반당 사라쌍수 등을 드셨고, 선한 공덕과 악한 공덕, 업에 의해 태어나고 업에 의해 죽는다, 업을 극복하면 부처가 되고 업을 극복하지 못하면 중생으로 산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저녁예불을 마치고 이번 여행의 마무리 인사를 하고 박수로 모두 찬탄하였다. 스님께서는 이번 순례길에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 죽림정사, 갠지스강에서 3번의 마정수기를 해 주셨다.
교통이 너무 밀려 버스에서 강황 주문을 받는 방식으로 쇼핑센터 방문을 수정하고 바로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식당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서 검색을 받는 진기한 경험도 하였다. 한국 서울식당에서 한식으로 김치찌개와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맛나게 먹었다. 델리공항으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혜총 스님, 여행사 조승희 대표, 가이드 Mr.디팍, 법회장을 대신한 반야행보살, 순례단 단장, 합창단 단장, 사무국장의 인사말로 긴 순례길을 정리하며 소감을 나누었다. 델리공항 도착과 함께 수속을 잘 마치고 14번 Gate에서 12시 20분에 비행기에 탑승하여 12시 50분에 델리 공항을 이륙하여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번 인도 순례를 원만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지도법사로 함께 해주신 혜총 스님께 더할 수 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전 일정 진행을 맡아주신 연꽃 여행사 조승희 대표님, 현지 가이드 Mr 디팍, 그리고 부부동반, 가족동반, 친구 동반 여러 불광 형제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이번 여행팀의 평균 연령대를 낮춰주신, 과묵하시나 웃음을 유도하면 너무도 예쁘게 웃어주시던 박영재 변호사님, 통통 튀는 생동감으로 팀 전체를 활기차게 하시던 유유희 변호사님,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열흘이 넘는 인도, 네팔 성지순례는 장거리 이동이 많아 쉽지 않았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보게 한 풍성한 여정이었습니다. 함께 성지를 걷고, 기도드리고, 이동하며 나눈 말들 속에서 얻은 큰 환희심으로 우리들은 저마다의 성찰과 발원을 품게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순례는 끝났지만, 이 여정에서 마주한 마음의 흔적들이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도 오래도록 이어지기 바랍니다.
이번 순례로 부처님의 발자취를 오래오래 기억하시도록 12일간의 인도 순례 여행기를 올려드립니다.
인도 순례를 함께했던 여러분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합창단장 본자운(윤혜선) 합장_()_
첫댓글 선학보살님
상새하게 설명을 더해서 써주셔서 고맙습니다.덕분에
읽으면서 인도 순례를 다시한번 다녀온 느낌입니다.
법회지도 쓰시고 대단하시고 고맙습니다.
건강 잘챙기시고 절에서뵈요~♡♡♡
여심행합장
인도의 고대 문화유산이 환희심이 절로나는 최고의 사진들 애쓰셨습니다.()
본자운 윤혜선 합창단장님,
부처님나라 인도 성지순례 참배기를 생생하게 남겨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와 찬탄드리며,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라는 속담이 생각 납니다.
기억은 어느덧 희미해져 가겠지만...
앞으로도 쭈욱 생생한 성지순례 참배기록문을 보며,
혜총스님의 " 잠 자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말씀 붙잡고 신행생활에 큰 힘이 될것 같습니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임에 한량없는 감사를 올립니다.
무상심 박인양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