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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두분 어복선 테레사 자매님과 권복금 보나 자매님이 10년전에 함께 공동체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어서 10주년 행사에 즈음하여 당시를 회고하는 글을 부탁드렸었다. 그러나 테레사 자매님은 1990년에 웰링톤에 도착하시고, 보나 자매님은 1992년에 도착하신 탓에 두분의 공동체 시작 기준점이 다른것에 혼란을 갖다가 교민회의 기록과 공동체 월보의 기록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시간적인 착오가 있다 하더라도 두분의 글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수정없이 그대로 옮겨 실었음으로 그 점 양해를 바란다. 90년 당시에는 젊은 사람들 (30대 중반 부터 40대, 몇명의 20대 후반) 이 한달에 한번씩 모여 축구게임을 하곤 하였는데 영어연수차 젊은 (20대 중반) 수사님들 몇분이 Porirua 에 머물고 있는것을 알고는 함께 팀이 되게 되었다. 이분들은 1-2년간씩 머물었고 많을땐 4-5명이 되었었다고 기억된다. 매번 시합이 끝난 후면 당시 교우이시며 교민회 일에 적극적이시던 이충종 베드로 형제님과 테레사 자매님댁, 또는 가까운 맥주집에 들려 뒤풀이를 하곤 하였는데 특별한 날에는 따로 초대하여 고기도 굽고 술도 나누며 늘 아쉽던 캐톨릭인의 영적 교통이 이루어 질수있었으니 그런 것이 테레사 자매님에게 얼마나 감사했었을 것인가는 짐작할 만한 일이다. 그러다가 수사님들의 수가 줄어들면서 1992년이 되어 보나 자매님이 웰링톤에 오신 후에 보나 자매님을 중심으로 만나지게되는 박태양 미카엘, 이충종 베드로, 백의철, 류희관, 백경옥 엘리사벳, 유정연 미카엘라, 김승엽, 최승진씨등이 순서의 차이는 있지만 서로 오고가게 되면서 도전적이고 리더기쉽이 많았던 보나 자매님의 추진력과 테레사 자매님의 정성이 함께 어울려 1994년 우리 공동체의 탄생으로 이어졌다고 보인다. 특별히 두분의 기록에는 없지만 초기에는 이영화 요셉 수사님의 도움이 있었고 수사님이 떠날 즈음하여 이곳에 오신 최봉근 티토선교사님은 10주년 행사가 지나고 오늘 현재까지도 곁에서 공동체를 지켜봐주고 계시니 그것은 신부님이 안계시는 우리 공동체를 어여삐 여기시는 하느님의 은혜가 아닌가 생각된다. 공동체 시작이후 월보가 발행되기까지 1년여의 공백은 1호 월보를 만들면서 김명숙 세실리아 자매님이 잘 정리해 주셨고 그 이후의 기록 또한 월보에 정리되어 있음으로 더 궁금하신 사항은 월보를 간추린 공동체 연혁이나 발행 이후 꾸준히 보관되어온 월보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2004년.12월. 한종욱 요한 ) |
테레사 자매님의 글 웰링톤 공동체 10 주년을 보내는 저에겐 감회가 깊습니다. 살던곳에서 지방만 틀려도 타향살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말도, 문화도, 인종도 틀린 이국에 살면서 같은 한국인인것만도 반가워서 눈물을 흘리던 시절, 교우라는 사실에 형제애를 느끼면서 모여서 기도하고 음식도 나누었지만 지속적인 모임은 어려웠습니다. 간혹 신부님이 방문 하시거나 수녀님이 오시면 가정미사를 드렸고 당시 포리루아에 수사님 몇 분이 와 계셨는데 그 분들이 오셔서 공소예절을 지냈고 또는 제가 살고 있는 지역 피터 엔 폴 성당 주임 신부님께서 알려주신 콜롬반 수도원엔 이나라 신부님인데 한국에 계시다가 은퇴 하시거나 다니러 오신 신부님이 계시곤 하여 계신때를 알면 수도원으로 찿아가서 미사를 참례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보나 자매님이 오시면서 모임이 활발해 지기 시작했고 94년 12월에 교구에 등록 하면서 St.Mary of the Angels 성당을 기점으로 모여서 같이 미사에 참례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오클랜드에 한국 신부님이 부임해 오시면서 우리 공동체를 방문해 주셨습니다. 사목위원과 사목회장을 선출하여 공동체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하셔서 초대 회장으로 박태양 미카엘 형제님을 모시고 더욱더 활동적인 공동체로 바뀌어 갔습니다. 95년에 김명숙 세실리아 자매님이 오셔서 5월부터 월보를 발행하였고 그동안 많은 일을 해 주셨는데, 잊지 못할 일은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우리 공동체를 방문해서 함께 시간을 보낸 일입니다. 그때는 학생회도 활동이 활발해서 “문학의 밤” 을 윌리암 추기경님까지 모시고 거행했습니다. 정동헌 대건 안드레아 형제님과 선교사님의 수고와 주님의 이끄심으로 많이 성장해 성장해 왔습니다. 여러가지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봉사해 주신 형제 자매님들께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
보나 자매님의 글 1992년 6월 부터 “로사리오 기도” 모임으로 공동체 모임이 시작 되었다. 처음 모인 신자들은 어 테레사, 유 테레사, 이충종 부부, 권보나였고 장소는 정홍영, 어 테레사 자매님댁이었다. 그때부터 매월 한번 (모임때 마다 장소와 날짜를 정하는 방법으로) 낮 모임을 계속하다가 3-4개월 후 부터 매월 첫째와 셋째 수요일 저녁 모임으로 바뀌면서 신자들 집을 돌아가며 저녁을 먹으며 신앙과 친목을 쌓아갔다. 93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인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첫 모임을 가졌는데 당시 카로리에 살던 우리집에서 였고 모였던 사람들은 유 테레사, 어 테레사 부부, 백 엘리사벳, 유 미카엘라 였다 . 모임은 교우집을 돌아가며 가졌고 백의천씨 부부가 합류 하면서 공동체 총무로 정하고 교구에 정식등록을 하도록 하였는데 1994년으로 기억된다. 교구 등록 당시 교구에서는 빅토리아 터널 앞에 있는 St. Joseph 성당에 나가도록 제안 받았었었으나 개인 사정으로 백의천씨가 오클랜드로 이주하여 총무없이 지내며 미루고 있다가 1994 년 부활절에 정동헌씨와 류희관씨가 St.Mary of the Angels 에서 영세를 받으면서 우리의 소속 성당으로 정하게 되었다. 오클랜드에 부임해 오신 김창수 신부님께서 방문해 주셨을때 사목회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 무렵에는 박태양, 최승진, 김승엽씨 부부, 박득호씨 부부등이 합류하여 활동이 더욱 활발하다가 박수창 신부님이 방문 오셨을때 박득호씨 집에 모여 모임을 가지면서 신부님의 권유로 박태양 미카엘 형제님을 초대 사목회장으로 정하기에 이르렀다. 초대 사목회장을 중심으로 정해진 임원들은 부회장에 이충종, 권보나, 총무에 정동헌 대건 안드레아, 회계에 어복선 테레사였다. 모두들 열심히 일했으며 김수환 추기경님을 모실수 있는 영광도 받았다 . 93년 12월 모임이 시작된 이후 이광돈 요셉, 마리아 부부, 김 세실리아, 정 대건 안드레아 부부, 타이투스 선교사님 등의 합류로 공동체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바뀌면서 활발하게 변화되어 갔다. 공동체를 위해 많은 분들이 봉사 했지만 특별히 정소영 바울리나, 이 요셉 마리아 부부는 초기에 많은 수고를 해 주셨고 박 회장님, 정동헌 총무, 어 테레사 자매님이 지금의 공동체가 만들어지도록 해주신 수고는 잊을수 없다. 그 동안 정확한 날짜들은 모르겠으나 아시아 2000 음식 바자회, 공동체 기금 마련 개러지 세일, 야채 바자회, 고구마와 와인의 밤 행사등이 기억에 남고, 특별히 1박 2일 일정으로 오셨던 추기경님 환영모임때 웰링톤과 파머스톤 노쓰 교우 등 160 여명이 우리집에 모여 나눈 저녁식사는 뉴질랜드 윌리암 추기경님, 교황대사, 본당 신부님등이 참석해 주셔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
첫댓글 타향에서 주님을 모시는 모습이 사도행전을 읽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타향에서 살다보면 서로가 애정이가고 가족이상으로 느낄것같네요,
모두 주님안에서 승리하시길 간구해봅니다,
타향에서 귀한 복음을 중심으로 모였던 분들의 글을 읽으니 초기 교회 공동체에 대한 궁금증이 더 오르네요. 사진기록이 있어서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축복이 될 것 같습니다. 모두 주님안에서 감사와 기쁨이 커지길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