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원리'ㅡ'민치'를 짜두어야 '민주'를 이뤄낸다
- 국민주권 그리고 지구촌이 일상적으로 위태로운 시대, 새롭게 권력을 설계하자
왜 지금, 권력을 말하는가
2016년 겨울, 우리는 광장에 섰다.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세계가 놀랐고 우리 스스로도 놀랐다.
그리고 2024년 겨울, 우리는 다시 광장에 섰다. 계엄을 막아냈고, 또 한 번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두 번의 촛불혁명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두 번이나 권력을 심판했는데, 왜 세상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는가. 검찰은 여전히 권력의 창과 방패를 겸한다. 언론은 여전히 거대 자본과 정치 권력 사이에서 독자를 잃어가고 있다. 집값은 여전히 서민의 삶을 옥죈다. 사법부는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오명을 벗지 못한다. 권력을 심판했는데, 권력은 왜 그대로인가.
바다 건너를 보면 더 당혹스럽다. 미국이 흔들리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 세계의 지도자를 자임해온 나라가 스스로 동맹을 허물고 있다. 국제 규범을 만들어온 나라가 스스로 그 규범을 발로 차고 있다. 민주주의의 모범으로 여겨졌던 나라에서 군중이 의회를 점거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미국은 왜 추락하고 있는가.
그리고 지구촌 전체를 보면 불안감은 더 깊어진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중동이 불타고 있다. 기후 위기는 국경을 가리지 않고 몰아친다. 인류는 이 복잡하게 얽힌 위기 앞에서 어떤 원리로 평화를 설계할 수 있는가.
이 세 질문은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나는 그것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다고 본다. 우리가 ‘권력의 정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력을 모르면 반복된다
여기서 하나의 질문이 더 따라온다. 왜 우리는 권력자를 끌어내리고도 늘 새로운 대리인에게 설계를 맡겼는가. 광장이 흩어지면 시민들은 누군가에게 다음을 일임했다. 이것은 게으름이 아니다. 의사결정 집단에는 단일화하려는 본능이 있다(이 책의 명제 8에서 다룬다). 문제는 그 단일화가 어떤 구조 안에서 이루어지는가다. 이 책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쓰였다.
촛불은 타올랐지만 불길이 가리킨 곳은 '나쁜 권력자'였지, '권력의 구조'가 아니었다. 나쁜 사람을 몰아내면 좋아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권력의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좋은 사람도 그 자리에 앉으면 달라진다. 권력은 사람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사람을 바꾸는 힘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추락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개인의 문제로 보면 그가 사라지면 해결된다. 그러나 트럼프를 만들어낸 미국 권력 구조의 취약성을 보면, 문제는 훨씬 깊고 구조적이다. 견제받지 않은 권력이 어떻게 자기 증식하는지, 위임의 구조가 어떻게 허물어지는지를 모르면 같은 일은 반복된다.
평화도 그렇다. '좋은 지도자'가 나타나면 전쟁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역사에서 번번이 배반당했다.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균형을 이루며, 어떻게 위기에서 단련되는지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히 '다음 전쟁'을 기다리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 연재는 그 뿌리를 파고든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은 어디서 오는가.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썩으며, 어떻게 올바로 세울 수 있는가.
생명에서 권력을 읽다
필자는 권력의 문제를, 정치학 교과서보다 오히려 생명체의 세계에 주목하게 된다.
꿀벌의 군집을 보라. 여왕벌 한 마리가 수만 마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여왕벌은 자신의 의지로 일벌을 움직이지 않는다. 일벌들은 각자가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하며, 집단 전체의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권력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늑대 무리에서 알파는 가장 힘센 개체가 아닌 경우가 많다. 가장 많은 신뢰를 받는 개체, 위기 때 가장 믿을 수 있는 판단을 내리는 개체가 무리를 이끈다. 권력은 폭력이 아니라 위임에서 온다는 것을, 늑대가 먼저 알고 있다.
인간 사회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생명체의 후예이고, 권력의 원리는 생명의 원리와 연속선 위에 있다. 작은 마을에서 거대한 국가로, 한 나라에서 지구촌 전체로 넓혀가도 그 뿌리는 같다. 의사결정 하는 존재들이 모이면 권력이 형성된다. 그 권력의 크기는 위임의 크기에 비례한다. 위임이 견고할수록 권력은 강해지고, 위임이 허물어지면 권력은 무너진다.
그리스는 페르시아의 침공이라는 압력 속에서 민주정을 설계했다. 로마는 포에니 전쟁이라는 압력 속에서 법체계를 벼렸다. 압력 앞에서 설계한 자가 문명이 됐다. 설계하지 않은 자는 그 문명의 재료로 사라졌다. 지금 한국이 마주한 압력들 — 원전, 기후, 한반도 긴장, 대의제의 한계 — 이 새로운 설계를 요청하고 있다. 이 책은 그 설계의 원리를 탐구한다.
연재글의 구성에 대하여
필자가 구상해온 이 연재는 권력에 관해 대략 다섯 뭉치의 스물일곱 개의 명제로 이야기 할 것이다. 명제들은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 앞의 명제가 뒤의 명제를 낳고, 하나의 명제는 다른 명제와 맞물린다. 권력이 하나의 원리가 아니라 여러 원리의 그물망에 가깝기 때문이다.
먼저 권력이 왜 생겨나는가를 다룬다(1부 — 권력의 존재론). 권력은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의사결정하는 존재들이 모여 위임하는 순간 태어난다.
그 위에 권력이 서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살핀다(2부 — 권력의 토대). 생존의 약속, 신뢰, 대의명분 — 이것이 권력의 뿌리다.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추적한다(3부 — 권력의 작동). 권력은 단일화되려는 속성을 가지면서도 나눌수록 커진다. 이 모순 속에서 권력의 핵심 역학이 펼쳐진다.
권력이 어떻게 유지되고 진화하는가를 본다(4부 — 권력의 진화와 유지). 권력에는 호르몬이 따른다. 위기가 권력을 단련하고, 위임의 갱신이 권력을 살린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알고 행동하는 사람,
즉 군자와 참모에 대해 이야기한다(5부 — 군자론 혹은 참모론). 권력을 올바로 사용하려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통찰과 자세다.
마지막으로 6부는 IT와 AI의 발달과 권력의 문제를 다룬다.
이 과정에서 생명의 세계뿐 아니라 동서고금의 선현의 이야기와 현대의 과학적 원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관점을 인용하고 활용하였다. 특히 고대동양의 관중(관자)와 중세서양의 마키아벨리의 관점은 중요한 기둥이 되었다.
이를 심화하는 과정에서 AI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필자의 AI 동료는 AI Claude Sonnet 4.6 이다.
거의 모든 자료의 조사와 정리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그와 대화하면서 연재글 하나하나를 만들어 간다.
독자에게
이 연재글은 정치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광장에 섰던 시민, 투표함 앞에 섰다가 허탈함을 느낀 유권자, 조직 안에서 불합리한 권력 앞에 힘없이 무너졌던 사람,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답답했던 모든 이들을 중심에 놓은 글들이다.
권력을 알아야 권력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다. 권력의 원리를 이해해야 권력을 올바로 세울 수 있다. 두 번의 촛불이 세 번째 촛불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권력의 정체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선현이 밝혀둔 바를 찾아서 정리하고자 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면서 필자는 그 구슬을 꿰는 노력을 동시에 추구하고자 하였다.
필자도 아직 공부 중이다. 공자께서 공부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뜻을 요즘 절실히 체감하고 있는 편이다.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을 강호제현과 공유하고 교감하면서, 공부를 이어가고자 한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leewys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