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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역대기의 기록 목적과 신학
황성일 / 광신대학교 구약학 교수
역대기의 히브리어 제목은 ‘דִּבְרֵי הַיָּמִים(디브레 하야밈)’이고 ‘그 시대의 사건들’이라는 뜻이다. 원래 한 권이었던 역대기가 상•하로 나눠게 된 것은 구약의 헬라어 번역에 해당하는 70인역의 영향인 것으로 여겨진다. 역대기는 히브리식 분류법에 따라 ‘케투빔’이라고 부르는 성문서의 가장 마지막 책이며, 따라서 히브리 성경 전체의 맨 마지막 책이기도 하다. 역대기를 히브리 성경의 가장 끝에 놓인 이유는 구약 책들 중에 가장 나중에 정경으로 채택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아담에서부터 새로운 이스라엘의 창조에 이르는 역사를 담고 있는 역대기가 창조와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에 관한 책인 창세기에서 시작한 정경의 종결 부분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을 반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열왕기에서 ‘유다 왕들의’ 혹은 ‘이스라엘 왕들의’이라는 수식 어구를 갖고 있는 ‘역대지략’이 32회 언급된다. ‘유다 왕의 역대지략(왕상14:29)’, ‘이스라엘 왕의 역대지략(왕상14:19)’. 여기서 역대지략은 ‘디브레 하야밈의 책’이라는 뜻이다. 한편 70인 역에서 이 책의 제목은 ‘파라레이포메논(Paraleipome- non)’이다. 이는 헬라어 동사 ‘파라레이포’에서 유래한 것으로 ‘남겨진 것들’이라는 뜻이다. 이 제목은 역대기가 사무엘서-열왕기의 내용을 대부분 그대로 베꼈으며, 그에 더해 사무엘서-열왕기에서 누락된 부분을 보충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준다. 따라서 이런 이름은 역대기의 독특한 신학이나 사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역대기의 가치를 절하하는 잘못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유대인들의 종교 관습에 따르면 속죄일 전야에 대제사장이 잠에 떨어져 자격을 상실하지 않도록, 잠을 쫓아내기 위해 읽어야 할 책들 중에 하나가 역대기였다. 성경의 수면제 (Scriptural Sominex)라는 별명을 가진 족보(대상1~9장) 부분을 제외하면 역대기에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구원과 징벌, 성전과 예배에 대한 진지하면서도 다채롭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있어서 대제사장의 잠을 쫓는 데 적절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역대기가 성전과 레위인 중심의 역사라는 점에서 대제사장의 필독서가 되었을 것이다.
저자와 기록 목적
1. 저자와 기록 배경
에스라서-느헤미야서와 역대기의 저자가 동일인이라는 견해는 탈무드에서 이미 나타나며, 보수주의 학자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예를 들면, 고레스의 칙령을 인용하는 에스라서의 첫 부분(1:1~3)이 역대기의 마지막 부분(대하36:22~23)과 거의 같다는 것이 동일 저자임을 지지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하지만 동일 저자라는 견해는 역대기와 에스라서-느헤미야서가 서로 다른 강조점을 갖고 있다는 것에서 곤란을 겪는다.
에스라서-느헤미야서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들은 안식일, 이스라엘 북부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이다. 하지만 이런 주제들이 역대기에선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최근 학계에는 에스라서 느헤미야서의 저자가 역대기의 저자와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것이 가장 합당한 견해라고 여겨진다. 북부 주민들과의 갈등은 귀환 초기부터 느헤미야 시대까지 계속되었으므로, 역대기는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 이후를 배경으로 삼고 있을 것이다.
한편 역대기의 끝에 언급된 고레스의 칙령은 포로가 된 유다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도록 명령하고 있다(주전 538). 또한 역대상 29장 7절에 성전 건축을 위한 헌물의 일부가 다릭(daric)으로 표시돼 있다. 다릭은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Darius I, 주전 522-486)의 이름을 기념해 만든 것이며, 주전 515년 이전에는 사용되지도 않았다. 역대기의 족보에는 주전 597년에 느부갓네살 왕의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던 유다 왕 여호야긴의 후손이 모두 일곱 세대를 기록하고 있다(3:17~24). 따라서 만일 한 세대가 25년이라고 한다면, 여호야긴의 후손들 중에 마지막 세대인 일곱 명은 주전 420~410년 무렵에 태어났을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주전 5세기 끝에 역대기의 최종 형태가 결정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3:24).
한편 역대기 저작 시기의 하한선을 결정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역대기 본문에서 헬레니즘의 영향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 주의한다면 적어도 페르시아 시대에 기록되었다고 간주할 수 있다. 만일 역대기 저자가 자신의 시대에 생존한 사람들까지 족보에 삽입하려 했다면, 역대기는 여호야의 후손 중에 마지막 세대가 태어났을 때인 주전 400년쯤 어느 시기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역대기가 에스라서-느헤미야서 이후에 기록되었다면, 귀환 후의 사건들에 대해 기록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역대기 저자가 에스라서 느헤미야서를 염두에 두고, 자신의 책이 그 책들과 연결될 수 있도록 에스라서의 첫 부분인 고레스 칙령을 역대기의 끝으로 삼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자신과 사상이 다른 에스라 느헤미야를 역대기의 연결편으로 생각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는 역대기를 모세 오경의 구조에 맞추려 했을 것이다. 오경은 천지 창조에서 시작해 아브라함의 가족이 가나안 땅에 잠시 머물다가 이집트에 내려가 오랜 세월을 지낸 후 다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출발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와 같이 역대기도 아담에서 시작해 아브라함의 후손이 가나안 땅에 머물다가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서 오랜 세월을 지낸 후에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기 위해 출발하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고레스 칙령은 마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는 모세의 마지막 명령에 비교될 수 있다(신31:1~8; 대하36:22~23).
이 시대의 상황을 알려주는 자료는 거의 없다. 단지 우리는 역대기의 내용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역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세 가지 사실이 역대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첫째는 다윗 가문의 왕들이 더 이상 다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둘째는 성전이 종교 및 경제를 포함한 모든 생활의 중심이 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그 공동체의 지도력을 구성하게 된다. 셋째는 바벨론에서 귀환한 사람들과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면하고 그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함께 섞여 살고 있다는 점이다. ‘귀환한 사람들’이 엘리트층을 형성하고, 그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빈천한 사람들’로서 하부 계층을 형성했다(왕하25:12).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이 70여 년 만에 돌아와 그 땅에 대한 참된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서자(주전 538 이후),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그 땅에 남아 있으면서 땅의 실제적 주인으로 있던 빈천한 사람들이 사이에 큰 갈등이 발생했음이 분명하다(에스라-느헤미야, 학개, 스가랴). 하지만 에스라 느헤미야의 종교 사회 개혁 이후 다시 수십 년이 지나면서, 역대기 저자의 시대에 이르러선 그와 같은 갈등이 대부분 사라지고 없었을 것이다.
2. 기록 목적
모세 오경처럼 역대기는 가나안 땅에 새롭 게 형성된 공동체에게 미래의 소망과 함께 올바른 삶의 규범을 제시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이 공동체는 분열 왕국 시대 이후 계속 존재해 온 지파들 사이의 갈등을 넘어서 다시 형성된 12지파의 연합체인 온 이스라엘에 의해 구성된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였다.
역대기의 저자는 다른 역사서들에서 누락된 자료들을 포함해 자신이 모을 수 있는 여러 자료들을 한 권의 책 속에 수록하려는 자료 수집의 목적을 갖고 있진 않았다. 동시에 저자는 역사를 단순히 다시 기록하려는 의도에서 역대기를 제한하지도 않았다. 그는 역사라는 도구를 이용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역사적, 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 따라서 ‘과거에 어떤 사건이 발생하였는가?’라는 질문보다 ‘과거의 그 사건이 왜 발생했는가?’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췄고, 그 대답을 신학적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했다. 따라서 역대기 저자는 과거 사건들의 결말이 하나님과 그 분께 드리는 제사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음을 밝히려고 했다.
역대기의 설명적 특징은 역대하 25장과 열왕기하 14장에 나타난 아마샤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열왕기는 아마샤가 에돔을 공격해 대승을 거둔 후 북이스라엘의 요아스에게 싸움을 걸러 갔다고 말한다. 그는 요아스에 의해 사로잡혔는데, 그 후에도 왕으로 통치하고 있었다. 열왕기의 이런 기록은 왜 아마샤가 북이스라엘과 전쟁하려 했는지 설명할 수 없으며, 전쟁을 도발한 자가 왜 패배했는지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러나 역대기는 열왕기하 14장의 내용에 더해 아마사가 이스라엘 용병들을 고용했다가 돌려보낸 일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북이스라엘과 아마샤 사이에 갈등을 초래한 요인이며, 결국 아마사와 요아스와의 전쟁으로 이어짐을 설명한다. 역대기는 아마샤가 에돔을 정복한 후 에돔의 신들을 섬겼다는 기록을 삽입함으로써, 아마샤가 우상 숭배로 인해 요아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설명을 제공한다.
또한 역대기 저자는 제사장-레위인과 성전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려 했다. 그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왕국 시대부터 국가의 대소사에 참여해 왔음을 강조하고, 특히 성전을 관리하며 예배를 인도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지은 성전은 이스라엘 사회의 중심에 있어 왔으며, 하나님께서 이 성전에 자신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선언하셨음을 거듭 강조한다. 제사장과 레위인의 지도를 받으면서 성전에 계신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고 그분을 의지한다면, 귀환한 자들의 새로운 공동체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안전하게 번영할 것이라는 소망을 제시한다.
다윗 후손의 왕을 상실한 그들에게 다윗의 언약은 너무나 멀리 존재 하는 것이다. 역대기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몇 백 년 전의 언약에 근거해 지금의 불확실한 상황을 헤쳐 나가기에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당신이 지금 하나님을 의지하면 복을 받지만,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을 것이다’라는 개인적 응보의 신학이 귀환한 새 공동체의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어 주길 기대하면서 자신의 책을 기록했다.
역대기의 신학
1. 성전 중심 공동체
성전 자체의 구조에 관한 역대기의 기록은 오히려 열왕기보다 간략하다(왕상 6~7장, 대하 3-4장). 하지만 역대기는 성전의 신학적 의미를 강조하며, 성전이 있는 장소로서 예루살렘을 중요하게 여긴다.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시작할 때, 역대기는 열왕기와 달리 그 건축 장소가 예루살렘에 있는 모리아 산인 것을 분명히 지적했다(대하 3:1; 비교 왕상 6:1). 그 외에 솔로몬이 성전을 예루살렘에 건축했다는 표현이 등장한다(6:10). 레위인들에 관한 다윗의 말 속에서 ‘여호와는 예루살렘에 영원히 거하신다’라는 고백이 있다(23:25). 솔로몬의 성전 봉헌 기도도 역대기는 ‘예루살렘을 택하여 내 이름을 거기 두고’라는 구절을 삽입하고 있다(대하 6:6; 비교 왕상8:16).
아비야가 여로보암에게 남유다 왕국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근거는 성전과 제사장과 올바른 예배가 예루살렘에 있다는 것이다(대하 13:10~12). 북왕국이 멸망한 것은 참된 예배와 그 장소에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제사장과 레위인의 역할도 강조된다. 다윗이 법궤를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 오려 할 때, 사무엘서에서 ‘이스라엘에서 뺀 무리 3만 명’을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삼하 6:1). 그러나 역대기에서 다윗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았다(13:2). 그 이후 다시 오벳에돔의 집에서 법궤를 가져오려 할 때, 역대기에선 다윗이 아론 자손과 레위 사람들을 불러 모았음을 언급하면서, 그 당시에 소집된 레위인들의 명부를 길게 덧붙이고 있다(15:1~28).
역대기는 성전 조직에 관해 상세한 설명을 제공한다(16:4~6, 37~42). 여로보암의 종교적 탈선에 실망한 북이스라엘 지역의 레위인들이 예루살렘에 내려와 르호보암 왕국을 강성하게 했다는 기록이 역대기에 나타난다(대하11:16~17). 여호사밧은 레위인들을 재판 관과 관리로 등용했다(대하19:8, 11).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유다 모든 고을에서 소집된 레위인들의 도움을 얻어 아달라를 쫓아내고 요아스를 왕위에 앉혔다(대하23:1~11). 히스기야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모아 유월절을 지킬 때, 제사장과 레위인의 활동을 기록 하고 있다(대하30:21). 성전 건축을 완성한 후 법궤를 지성소에 안치했을 때, 제사장들의 참여와 레위인 성가대의 찬양에 관해 추가로 설명하고 있다(대하5:11~13).
2. 다윗
역대기는 성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이므로, 성전 건축과 관련된 두 왕인 다윗과 솔로몬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다윗 왕에 관한 기록인 스무 장(10~29장), 솔로몬에 관한 기록인 아홉 장(대하1~9장)을 합하면 역대기 전체의 절반에 이른다.
다윗은 성전의 모든 제도들을 규정하고 성전 건축을 위해 많은 자원들을 축적했으므로, 다윗에 대한 역대기의 평가는 매우 호의적이다. 역대기 저자에게 하나님의 전 건축에 참여한 왕들은 하나님께 충성된 자들이어야 했다. 따라서 저자는 다윗 왕을 이상화하는데 방해가 되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제거했다. 다윗이 사울과의 경쟁을 통해 왕이 되었다는 사무엘서의 기록과 달리, 역대기에선 다윗이 오직 하나님의 선택을 통해 왕이 되었다고 기록한다. 이를 위해 역대기에선 사울과 다윗 사이의 갈등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법궤를 모셔 온 뒤, 다윗이 미갈에게 ‘하나님께서 사울과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셨다’라고 말한 것이 역대기에 기록돼 있지 않다(삼하6:21).
다윗 언약을 기록하면서 사울 왕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단지 ‘네 전에 있던 자’라는 우회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17:13; 참고 삼하7:15). 밧세바와 간음하고 이어서 우리아를 살해한 다윗의 죄가 역대기에는 기록돼 있지 않다. 또한 다윗 왕의 아들들 사이에 있었던 갈등과 반란들이 역대기에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 다윗을 이상화하기 위해 사무엘서에 없는 자신만의 설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다윗의 명성이 열국에 퍼졌고 여호와 께서 열국으로 저를 두려워하게 하셨다(14:17)”
그러나 역대기가 다윗을 이상적인 왕으로 묘사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대기는 다윗 왕의 죄를 한정적이지만 기록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다윗에게 성전을 건축할 자격이 부족했음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열왕기는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 것은 전쟁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왕상5:3). 여기서 다윗은 많은 전쟁을 수행했기 때문에 성전을 건축할 여유를 얻지 못한 것처럼 나타난다. 역대기 저자는 열왕기의 이런 설명을 받아들이지만, 그것만으로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 충분한 이유가 되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역대기는 다윗이 피를 많이 흘렸다는 설명을 추가하고 있다(22:8; 28:3) 피를 많이 흘렸다는 것과 전쟁을 많이 했다는 것을 동일한 내용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전쟁을 돕고 축복하신 것을 고려한다면, 다윗의 전쟁이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인 흠이 된다고 생각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14:10, 14~17; 18:6,13; 19:13).
그렇다면 다윗의 피흘림은 그의 전쟁과 무관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죄를 가리킬 것이다. 다윗의 생애에서 ‘피 흘리는 죄’로 여겨질 수 있는 사건은 두 가지가 있다. 그 중에 하나인 우리아 살해는 역대기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역대기에서 다윗의 ‘피 흘리는 죄’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은 그의 통치 말기에 있었던 인구 조사다(21장). 다윗은 인구 조사를 시행해 하나님께 죄를 지었고, 그 결과로 7만 명의 무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음을 당했다. 인구 조사는 전쟁을 위한 것으로서 다윗의 ‘피 흘리는 죄’와 전쟁은 간접적으로 연결된다(21:5).
사무엘서는 다윗의 인구 조사 동기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고 기록한다. 이런 설명은 역대기 저자에게 불충분하므로, 그는 다윗의 대적(문자적으로 ‘사탄’)들이 일어나 다윗을 위협했기 때문에 다윗이 군대의 재편성을 위한 인구 조사를 시행했다고 말한다(21:1). 결국 역대기 기자에 따르면 전쟁의 사람이었던 다윗이 그 전쟁의 위협 때문에 무죄한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했으며, 성전을 짓지 못하게 된 것이다. 역대기에서도 다윗 언약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사무엘하 7장의 언약이 역대상 17장에 동일하게 기록돼 있으며, 성전 건축과 관련해 역대상 22, 28장과 역대하 6장에서 반복된다. 아비야는 여로보암과의 전쟁에서 남유다 왕국의 정통성을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 후손에게 주신 언약에 근거해 주장한다(대하13:5). 여호람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다윗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다윗 왕가를 멸망시키지 않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대하21:7).
하지만 사무엘서-열왕기서와 비교해 볼 때, 역대기에서 다윗 언약이 비교적 소홀하게 취급됨을 알 수 있다. 영원히 보존되는 것이 사무엘하 7장 16절에서는 ‘다윗의 집과 나라’이지만, 역대상 17장 14절에서는 ‘하나님의 집과 나라’로 기록하고 있다. 열왕기서는 포로로 잡혀갔던 여호야긴이 에윌므로닥에 의해 감옥에서 풀려나 높은 지위를 얻게 되었음을 마지막으로 기록한다. 이와 같은 언급은 다윗 가문에 대한 소망이 미약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다는 표현이다. 그러나 역대기에서 그 기록은 사라진다.
역대기는 왕의 역할을 최소화하거나 왕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역할을 강조한다. 역대기 저자는 제사장과 레위인 외에 다양한 사람들을 행동의 주체로 등장시킨다. 제사장-레위인의 활동에 대해선 아래에 설명할 것이다. 그 외에 다른 예들을 들어보면, 예루살렘 성을 점령한 후 재건한 사람이 사무엘서에선 다윗 혼자이지만, 역대기에선 다윗과 요압이 함께 나타난다(11:8; 심하5:9). 염곡에서 에돔 사람 1만 8,000명을 죽인 사람이 사무엘서에선 다윗이지만, 역대기에선 아비새다(18:12; 삼하8:13). 또한 다윗이 암몬 족속과 전쟁할 때 왕들의 출전에 대해, 사무엘서에선 다윗이 군대를 파송하지만 역대기에선 요압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나간다(20:10; 삼하11:1).
3. 솔로몬
열왕기에서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다윗의 후계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형제들과의 권력 투쟁을 통해 왕이 된다. 또한 성전을 건축한 그의 통치 전반기에서 번영과 평화를 성취했지만(왕상10장), 통치 후반기에서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고 우상 숭배에 빠져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의 위기로 빠져들게 했다(왕상11:1~8). 그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으며(왕상11:9),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대적하는 원수들을 일으켜 그의 왕국을 괴롭혔다(왕상11:14, 23, 26).
하지만 역대기에서 솔로몬은 다윗보다 더욱 이상적인 왕이다. 다윗은 성전을 건축하지 못했지만, 솔로몬은 성전을 성공적으로 건축했다. 이 사실은 성전을 강조하는 역대기 저자로 하여금 솔로몬을 이상적인 왕으로 묘사하게 만든다. 역대기는 솔로몬의 죄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다. 사무엘에서는 솔로몬에 대해 다윗의 후손으로서 성전을 건축할 왕이 죄를 범할 가능성을 암시하지만(삼하7:14,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징계하려니와’), 역대기에선 이 구절을 기록하고 있지 않다. 역대기는 솔로몬이 취한 이방 아내들과 그 아내들로 인해 솔로몬의 우상 섬김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그러므로 역대기는 열왕기와 달리 이집트에 피신해 있던 여로보암이 스스로 이스라엘로 되돌아 왔다고 기록함으로써, 왕국 분열에 대한 책임을 솔로몬이 아닌 여로보암에게 돌리고 있다(대하10:2; 비교 왕상12:3).
또한 역대기에서 솔로몬은 평화를 상징하는 유일한 왕으로 나타난다. 사무엘서는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삼하7:1)’라고 기록하면서 다윗의 시대에 평안이 성취된 것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역대기에선 ‘다윗이 그 궁실에 거할 때’라고 간략히 표현함으로써 다윗의 시대에 평안을 돌리지 않고 있다(17:1). 사무엘하 7장 11절과 역대상 17장 10절에서도 역대기 기자는 다윗에게 ‘평안’을 적용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전쟁을 부각시킨다. 이렇게 함으로써 역대기는 다윗이 전쟁을 계속 진행하고 있으며, 평안은 그의 생애 가운데 오지 않았음을 말한다. 솔로몬의 이름을 평화라는 단어와 연결하는 ‘재담(Paronomasia)’을 사용해 그를 평강의 사람이라고 부른다(22:9).
사무엘서의 다윗 언약이 성전을 건축할 사람으로 ‘다윗의 후손’을 말하지만(삼하7:12~13), 역대기에서 그 후손은 솔로몬이라고 규정한다(22:8~10). 역대기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을 위해 솔로몬을 택하셨고 그에게 평안과 안정을 주실 것이다. 솔로몬이라는 이름은 다윗의 두 번째 연설에서 나타난 왕조 언약 안에도 삽입된다(28:6). 다윗 왕을 제외하면 솔로몬이 왕들 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왕으로 제시된다.
다윗과 함께 솔로몬도 온 이스라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으로 묘사된다(29:23). 백성들뿐 아니라, 모든 용사들과 다윗의 모든 왕자들이 솔로몬에게 복종한다(29:24). 열왕기상 1~2장에 나타난 아도니야와 요압과 아비아달의 반란이 역대기에 전혀 기록돼 있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불러 선택하신 솔로몬이 모든 계층과 신분을 포함해 온 이스라엘의 지지를 얻고 왕위에 올랐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역대기는 솔로몬을 다윗처럼 예루살렘 성전과 그 제사에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열왕기에서도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며, 열렬한 성전 봉헌 기도를 드린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역대기는 한 걸음 나아가 솔로몬의 지혜와 번영을 말하고 있는 열왕기상 3장 16절에서 4장 34절까지의 내용을 생략하고, 곧바로 성전 건축 이야기로 나아간다. 그뿐 아니라 역대기는 성전에 관한 사항을 제외하면 솔로몬에 대해 많은 사항들을 생략하고 있다. 이는 역대기 저자가 솔로몬을 단순히 이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솔로몬을 성전 건축자로 묘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솔로몬은 이상적인 성전 건축자였다.
역대기는 솔로몬의 종교적 열심을 강조하기 위해 열왕기의 내용을 수정하거나 보완한다. 예를 들면, 역대기는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제사 드린 것을 언급하면서 열왕기의 기록에 없는 두 가지 내용을 삽입한다. 즉 온 회중이 함께 산당으로 갔으며, 그 산당에는 모세가 만든 여호와의 장막과 번제단이 있음을 말하면서 솔로몬의 산당 제사가 합법적임을 암시한다(21:29), 또 다른 예는 후람에게 보낸 솔로몬의 편지다. 이 편지에서 솔로몬은 후람에게 성전 건축의 목적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함이며,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용납지 못하는 크신 분이라는 신앙 고백을 삽입하고 있다(대하2:4-6).
4 하나님의 징계와 구원
‘응보(retribution)’는 역대기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들 중에 하나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말한다. 역대상 28장 9절에서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실 것이다” 선지자 오뎃의 아들 아사랴가 아사와 그의 백성들에게도 말한다. 역대하 15장 2절에서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 것이며,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 바 되시겠지만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실 것이다” 이와 같이 역대기 저자가 묘사하는 응보는 개인적이며 즉각적이다.
역대기는 왕이 죄를 지은 후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많은 이야기들을 적고 있다. 한 왕이 자신의 생애 중에 질병이나 죽음 혹은 포로로 잡혀가는 것과 같은 재앙을 겪게 될 때 사무엘서-열왕기에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지만, 역대기에서는 자신의 응보 신학에 따라 설명을 붙인다. 예를 들면, 사울이 길보아산 전쟁에서 패해 죽은 것에 대해 역대기에서는 그가 여호와께 묻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고 설명한다(10:13-14). 인구 조사를 시도한 다윗의 죄는 이스라엘 백성 7만 명을 온역으로 죽음을 당하게 하는 징계로 나타난다. 르호보암이 이집트 왕 시삭의 침략을 받은 것은 그가 하나님의 율법을 버렸기 때문이다(대하12:2). 아사의 발에 병이 난 것은 그가 선견자를 감옥에 가두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대하16:7-14).
한편 역대기는 언제나 회개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다윗은 인구 조사를 행한 죄를 짓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을 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 나아가 회개한다. 그때 하나님께서 온역을 거두시고 다윗으로 하여금 성전터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하신다. 르호보암도 이집트 왕 시삭의 공격을 받았을 때 선지자 스마야의 충고에 따라 회개하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강 구원하신다. 히스기야가 교만해져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이 그와 백성들에게 임하게 되었지만, 그와 백성들이 함께 회개하자 여호와의 진노가 그들의 생전에 임하지 않게 되었다(대하32:25~26). 회개한 자의 대표적인 예는 므낫세다. 그가 우상 숭배의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앗시리아의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잡혀갔다. 하지만 그가 거기서 회개하고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유다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다(대하33:10~13).
하나님께서는 겸비하여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구원하신다. 아비야가 여로보암과 싸울 때 여호와를 의지해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구원하셨다(대하13:18). 아사가 구스 사람 세라와 전쟁할 때 하나님을 의지해 기도하자,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대하14:9~15). 아사가 선지자 오뎃의 격려를 받아 여호와께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평안을 주셨다(대하15:15). 여호사밧이 하나님을 의지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점점 강대하게 만드셨다(대하17장). 암몬과 모압과 세일 사람들이 여호사밧을 공격해 왔을 때, 여호사밧이 기도해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승리를 주셨다(대하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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