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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하귀검록》
## 제1화 ― 낙양에 들어선 소년
낙양성의 성문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진무혁의 전낭에는 동전 일곱 닢이 남아 있었다.
그중 두 닢은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입성세로 내야 했다.
한 닢은 저녁거리로 쓸 생각이었다.
나머지 네 닢이면 사흘은 버틸 수 있었다.
무혁은 그렇게 계산했다.
적어도 성문 앞에 늘어선 국수 노점에서 고기 육수 냄새가 풍겨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커다란 솥 안에서 하얀 면발이 끓고 있었다. 주인은 잘 익은 고기 두 점을 국수 위에 얹고 파까지 수북하게 뿌렸다.
“뜨끈한 소고기 국수요! 먼 길 온 사람은 한 그릇 먹고 들어가시오!”
무혁의 걸음이 저절로 느려졌다.
어젯밤부터 먹은 것이라고는 딱딱하게 굳은 전병 반쪽이 전부였다.
그는 허리춤의 전낭을 만졌다.
“세 닢이오!”
노점 주인의 외침에 무혁은 고개를 돌렸다.
국수 한 그릇에 사흘 치 식량을 쓸 수는 없었다.
그는 다시 성문을 향해 걸었다.
세 걸음쯤 갔을 때 주인이 말했다.
“오늘은 고기를 두 점이나 얹어 주는데.”
무혁의 걸음이 다시 느려졌다.
그러나 그는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태허문의 마지막 제자가 국수 한 그릇에 뜻을 굽힐 수는 없었다.
적어도 낙양성 안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래야 했다.
성문 앞에는 상인과 여행객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수레를 끄는 짐꾼, 비단을 실은 상단, 등에 칼을 멘 무인들이 뒤섞여 있었다.
무혁은 자신의 차림을 내려다보았다.
빛바랜 회색 무복.
먼지가 묻은 짚신.
등에 멘 한 자루의 장검.
검은 태허문에서 사용하던 평범한 철검이었다. 명검도 아니고,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보검도 아니었다. 하지만 무혁에게는 남은 것이 그것뿐이었다.
성문을 지키던 병사가 무혁의 앞을 창으로 막았다.
“이름은?”
“진무혁.”
“출신은?”
무혁의 눈빛이 잠시 굳었다.
태허문이라는 이름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멈췄다.
“하남 남쪽에서 왔습니다.”
“낙양에는 무슨 일이지?”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누구?”
“아직 모릅니다.”
병사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으러 왔다고?”
“얼굴과 이름은 모르지만, 찾으면 알 수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재촉하기 시작했다.
병사는 더 묻기를 포기하고 손을 내밀었다.
“입성세 두 닢.”
무혁은 전낭에서 동전 두 닢을 꺼냈다. 병사의 손에 올려놓는 순간 남은 동전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유난히 작게 들렸다.
다섯 닢.
병사는 무혁의 검을 힐끗 보았다.
“성 안에서 함부로 칼을 뽑으면 관아에 끌려간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찾으려면 이름부터 알아내라.”
무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성문을 지나자 넓은 낙양 거리가 펼쳐졌다.
무혁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낙양은 그가 지금까지 지나온 어떤 고을보다 크고 번화했다. 넓은 거리 양쪽으로 주루와 객잔, 비단 가게와 약방이 줄지어 서 있었다. 상인들의 외침과 수레바퀴 소리, 말발굽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길거리에는 검을 찬 무인도 많았다.
청색 무복의 문파 제자들이 무리를 지어 지나갔고, 커다란 도를 멘 사내는 혼자 길의 절반을 차지하며 걸었다. 어느 객잔 이층에서는 무인 둘이 창가에 앉아 서로의 무공을 논하고 있었다.
무혁은 낙양의 거리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태허문을 떠난 지 석 달.
이곳이 그의 첫 번째 목적지였다.
스승 청허진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 때문이었다.
‘낙양의 만보상회를 찾아가거라.’
그 뒤의 말은 듣지 못했다.
그날 밤, 태허문은 불길에 휩싸였다.
무혁의 기억 속에 붉은 불빛이 번졌다. 무너지는 전각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 연기 속에서 자신을 뒷산으로 떠밀던 사형 설진의 얼굴.
무혁은 손을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손톱이 파고들자 비로소 눈앞의 낙양 거리가 다시 보였다.
그는 기억을 밀어냈다.
지금 복수를 외쳐 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누가 태허문을 공격했는지도 모른다. 적이 몇 명인지, 어느 문파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하나뿐이었다.
현재의 자신은 약했다.
사형들이 목숨을 걸어 길을 열어 주지 않았다면 태허문을 빠져나오지도 못했을 만큼 약했다.
원수를 찾더라도 지금의 실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먼저 강해져야 했다.
누구도 대신 휘둘러 줄 수 없는 자신의 검으로 원수와 마주할 수 있을 때까지.
“도를 깨닫는 표정치고는 배에서 나는 소리가 너무 큰데?”
낯선 목소리에 무혁이 고개를 들었다.
길가의 약방 처마 아래에 한 청년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나이는 스물두셋쯤 되어 보였다. 푸른빛이 감도는 낡은 장포를 입었고, 허리에는 크고 작은 약병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손에는 반쯤 먹은 고기만두가 들려 있었다.
반듯하게 생긴 얼굴에는 장난스러운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무혁이 물었다.
“나에게 한 말이오?”
“여기서 굶주린 사람은 자네뿐인 것 같아서.”
“굶주리지 않았소.”
그 순간 무혁의 배에서 다시 소리가 났다.
꾸르륵.
청년은 만두를 먹다 말고 무혁의 배를 바라보았다.
“자네 배는 정직한데 입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군.”
“신경 쓰지 마시오.”
무혁이 걸음을 옮기려 하자 청년이 남은 만두 하나를 던졌다.
무혁은 반사적으로 받아 냈다.
아직 따뜻한 만두였다.
“왜 주는 것이오?”
“하나가 남아서.”
“모르는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낙양에 많소?”
“아니. 그러니 감사하며 먹게.”
무혁은 만두와 청년을 번갈아 보았다.
“대가는 없소?”
“없네.”
“정말이오?”
“사람이 호의를 베풀면 좀 받아들이게. 세상 모든 사람이 자네 주머니를 노리는 건 아니야.”
무혁은 만두를 다시 내밀었다.
“그렇다면 받지 않겠소.”
청년의 눈이 가늘어졌다.
“왜?”
“나는 구걸하지 않았소.”
“나도 적선한 것이 아니네.”
“그럼 왜 주었소?”
“안 먹으면 상할 것 같아서.”
“방금 하나가 남았다고 하지 않았소?”
“두 가지 이유가 동시에 있을 수도 있지.”
“말이 자꾸 바뀌는군.”
“만두 하나를 먹는 데 이렇게 많은 질문을 하는 사람은 처음이야.”
청년은 답답하다는 듯 일어나 무혁의 손에 들린 만두를 빼앗았다.
그리고 한입 베어 물었다.
“이제 내가 먹었으니 구걸도 적선도 아니네.”
그는 이가 닿지 않은 반대쪽을 무혁에게 다시 내밀었다.
“먹겠나?”
무혁은 얼굴을 찌푸렸다.
“남이 먹던 것을 어떻게 먹소?”
“그럼 처음부터 줄 때 먹었어야지.”
청년은 태연하게 남은 만두까지 모두 먹어 버렸다.
무혁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배 속에서 세 번째로 소리가 났다.
뒤에서 청년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자네 배가 나를 원망하는군.”
무혁은 돌아보지 않았다.
“내 배는 말을 하지 않소.”
“그렇지. 자네보다 훨씬 많은 소리를 낼 뿐이지.”
그때 거리 반대편에서 고함이 들렸다.
“비켜라!”
사람들이 다급히 좌우로 흩어졌다.
검은색 경장을 입은 사내 셋이 한 노인을 끌고 가고 있었다. 노인의 옷자락에는 약초가 가득 담긴 자루가 매달려 있었다.
“한 번만 봐주십시오.”
노인이 사내의 팔을 붙잡았다.
“손녀가 아파서 약값으로 써야 합니다. 사흘만 기다려 주시면 반드시 갚겠습니다.”
앞장선 사내가 노인의 손을 뿌리쳤다.
“빌린 돈이 은자 한 냥인데 사흘 만에 어떻게 갚겠다는 거냐?”
“약초를 팔면 절반이라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 약초부터 내놔라.”
사내가 노인의 자루를 빼앗았다.
자루가 터지며 말린 약초가 길바닥에 흩어졌다.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사내들의 허리에는 붉은 매듭이 묶인 칼이 걸려 있었다.
낙양의 흑도 방파인 적호방의 표식이었다.
무혁이 사내들을 향해 걸어갔다.
뒤에서 청년이 말했다.
“그쪽은 자네가 찾던 만보상회가 아니네.”
무혁의 걸음이 멈췄다.
그가 돌아보자 청년은 손가락으로 무혁의 허리춤을 가리켰다.
낡은 천 조각 아래로 작은 나무패가 드러나 있었다. 앞면에는 만 가지 보물이 모인다는 뜻의 만보상회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내가 만보상회를 찾는다는 것을 알았소?”
“눈이 있으면 알 수 있지.”
“그런데 왜 이제 말하는 거요?”
“자네가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무혁은 청년을 노려보았다.
“만보상회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소?”
“알지.”
“길을 알려 주시오.”
“그전에 저쪽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
청년이 끌려가는 노인을 가리켰다.
무혁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다시 적호방 사내들에게 다가갔다.
“노인을 놓아주시오.”
세 사내가 동시에 돌아보았다.
앞장선 자는 무혁의 낡은 옷차림을 훑어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어디서 굴러온 애송이냐?”
“빚이 있다면 약초를 팔 수 있도록 기다려 주시오.”
“네가 대신 갚을 것이 아니면 꺼져라.”
“얼마요?”
“원금과 이자를 합해 은자 다섯 냥이다.”
노인이 다급히 말했다.
“거짓말입니다! 은자 한 냥을 빌린 지 열흘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자가 붙었으니 다섯 냥이지.”
무혁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열흘 만에 원금의 네 배가 붙는 이자가 어디 있소?”
사내가 칼자루를 두드렸다.
“낙양에는 있다.”
무혁은 허리춤의 전낭을 만졌다.
동전 다섯 닢으로 은자 다섯 냥을 갚을 수는 없었다.
“돈이 없으면 비켜라.”
사내가 무혁의 어깨를 밀었다.
무혁은 밀려나지 않았다.
사내의 눈에 불쾌한 빛이 떠올랐다.
그가 다시 힘을 주는 순간 무혁의 왼발이 반걸음 뒤로 빠졌다. 상체가 비스듬히 돌아가자 사내의 손이 허공을 밀었다.
균형을 잃은 사내가 앞으로 비틀거렸다.
무혁은 손바닥으로 그의 팔꿈치를 가볍게 받쳤다.
사내의 몸이 그대로 옆으로 돌며 땅에 넘어졌다.
“이놈이!”
나머지 두 사람이 동시에 칼을 뽑았다.
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뒤로 물러났다.
무혁은 등에 멘 검을 뽑지 않았다.
두 사내의 실력은 높지 않았다. 발의 간격이 지나치게 넓고 칼을 쥔 손목에도 힘이 과하게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무혁에게도 여유는 없었다.
태허문을 떠난 뒤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했다. 내공은 한 줌에 불과했고 오래 싸우면 먼저 지치는 쪽은 자신이었다.
왼쪽 사내가 칼을 내질렀다.
무혁은 몸을 비켜 칼날을 흘려보낸 뒤 상대의 손목을 잡았다. 동시에 어깨로 가슴을 밀며 발목을 걸었다.
사내가 등을 보이며 넘어졌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칼이 날아왔다.
무혁은 허리를 젖혀 피하려 했지만 몸이 생각만큼 빠르게 따라 주지 않았다.
칼끝이 옷소매를 얕게 스쳤다.
무혁이 검자루를 잡았다.
검을 뽑으면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낙양에 들어온 첫날부터 관아에 붙잡힐 수는 없었다.
그 순간 작은 물체가 날아와 사내의 이마를 때렸다.
딱!
“악!”
사내가 이마를 감싸며 뒤로 물러났다.
땅에 떨어진 것은 말린 대추씨였다.
청년이 약방 처마에 기대어 서 있었다. 손에는 대추가 담긴 작은 봉지가 들려 있었다.
사내가 고함쳤다.
“어떤 놈이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네.”
“대추씨를 던졌잖아!”
“먹고 뱉었는데 자네 이마가 그쪽에 있었을 뿐이지.”
“죽고 싶으냐?”
“그럴 리가. 의원이 죽고 싶어 하면 환자들이 얼마나 불안하겠나.”
청년은 다시 대추 하나를 입에 넣었다.
사내들은 쓰러졌던 동료를 일으켜 세웠다. 세 사람은 무혁과 청년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적호방의 일에 끼어든 것을 후회하게 해 주겠다!”
“기억력이 나쁘면 지금 적어 두게.”
청년이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백리운이고, 저 친구는…….”
그가 무혁을 바라보았다.
“이름이 뭔가?”
무혁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내 이름도 모르면서 친구라고 한 거요?”
“지금 물어보고 있잖아.”
“진무혁이오.”
백리운이 다시 사내들을 보았다.
“저 친구는 진무혁일세. 이름을 알았으니 이제 제대로 기억하게.”
적호방 사내들은 이를 갈았지만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물러났다.
“기다려라!”
세 사람은 노인을 내버려 둔 채 골목으로 사라졌다.
백리운이 무혁의 옆으로 다가왔다.
“기다리라고 하니 기다릴 건가?”
“아니.”
“그럼 됐네.”
무혁은 길바닥에 떨어진 약초를 주워 노인의 자루에 담았다.
백리운도 쪼그리고 앉아 약초를 살폈다.
“이건 황기가 아니라 단삼이군.”
노인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약초를 아시오?”
“허리에 약병을 이렇게 많이 달고 다니는데 모르면 사기꾼이지요.”
“의원이십니까?”
백리운이 가슴을 폈다.
“강호제일의 신의가 될 사람입니다.”
무혁이 물었다.
“아직 되지 않았다는 뜻이오?”
“되기 전에도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출세하는 법이네.”
백리운은 노인의 손목을 짚어 맥을 살폈다. 조금 전까지 장난스럽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어르신도 몸이 좋지 않습니다. 며칠째 제대로 드시지 못했지요?”
노인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먹을 것이 있으면 손녀에게 먼저 주다 보니…….”
백리운은 품에서 작은 약병과 동전 꾸러미를 꺼냈다.
“이 약은 손녀에게 하루 두 번씩 먹이십시오. 이 돈으로 쌀과 달걀도 사시고요.”
노인이 놀라 손을 저었다.
“받을 수 없습니다.”
“빌려드리는 겁니다.”
“제가 언제 갚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손녀가 나으면 갚으십시오. 못 갚으면 그 아이가 커서 다른 아픈 사람을 한 번 도와주라고 하시고요.”
노인의 눈이 붉어졌다.
그는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인 뒤 약초 자루를 들고 돌아갔다.
무혁은 백리운의 빈 전낭을 바라보았다.
“전부 주었소?”
“전부는 아니네.”
백리운이 소매를 털자 동전 한 닢이 떨어졌다.
“이것이 남았군.”
“당신도 돈이 없어 보이는데.”
“나는 의원이라 약초를 캐서 팔면 되네.”
“약을 팔아 번 돈을 모두 남에게 주면 언제 부자가 되겠소?”
“나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적게 받고 부자에게는 많이 받네.”
“부자들이 순순히 많이 내오?”
“그래서 가끔 독도 씁니다.”
무혁이 한 걸음 물러났다.
백리운이 웃었다.
“농담일세.”
“방금 눈빛은 농담하는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소.”
“눈썰미가 좋은데?”
백리운은 무혁의 찢어진 소매를 살폈다.
“팔을 보여 주게.”
“다치지 않았소.”
“옷이 저절로 찢어졌나?”
“칼끝이 스쳤을 뿐이오.”
“그래서 보자는 걸세.”
무혁이 마지못해 소매를 걷었다. 팔에는 가느다란 상처가 나 있었다.
백리운은 약병에서 가루를 꺼내 상처에 뿌렸다.
따끔한 통증이 올라왔다.
“별것 아닌 상대에게 너무 오래 걸렸어.”
백리운이 말했다.
“굶어서 몸이 느린 것이오.”
“그것만이 아니야. 자네는 검을 뽑을지 말지 망설였네.”
“성 안에서는 함부로 검을 뽑을 수 없소.”
“좋은 판단이지만, 검을 뽑지 않기로 했다면 처음부터 다른 수를 썼어야지. 싸우는 도중에 망설이면 실력이 반으로 줄어드네.”
무혁의 눈빛이 달라졌다.
“무공을 아시오?”
“조금.”
“조금 아는 사람이 대추씨로 사람의 이마를 정확히 맞히오?”
“운이 좋았네.”
“그 거리에서 바람까지 계산한 것이 보였소.”
백리운이 무혁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마주쳤다.
먼저 웃은 사람은 백리운이었다.
“배는 굶었어도 눈은 살아 있군.”
그는 골목 건너편의 객잔을 가리켰다.
“밥부터 먹세.”
“돈이 없다고 하지 않았소?”
“내가 없다고 했지, 자네가 없다고 하지는 않았네.”
무혁이 전낭을 움켜쥐었다.
“내게는 동전 다섯 닢뿐이오.”
“국수 두 그릇은 먹을 수 있겠군.”
“나는 혼자 먹겠소.”
“만보상회로 가는 길을 모르는 사람이?”
무혁의 얼굴이 굳었다.
백리운은 태연하게 앞장서 걸었다.
“길 안내 값으로 국수 한 그릇. 아주 싼 편이네.”
“성문 앞에서는 국수 한 그릇이 세 닢이었소.”
“여기는 네 닢이야.”
무혁이 걸음을 멈췄다.
“그러면 돈이 모자라지 않소?”
백리운이 뒤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래서 자네만 먹게 하려는 걸세. 나는 옆에서 국물 냄새만 맡지.”
처음 만났을 때 만두를 혼자 먹어 치운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무혁은 한숨을 내쉬며 그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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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운이 데려간 곳은 화려한 대로가 아니라 낙양 서쪽의 좁은 골목이었다.
낡은 국수 가게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백리운은 자리에 앉자마자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국수 두 그릇이요. 고기는 많이 넣어 주시고.”
무혁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돈이 모자란다고 하지 않았소?”
“외상으로 먹으면 되네.”
주방에서 주인의 고함이 들렸다.
“지난 외상부터 갚아!”
백리운은 손가락 하나를 접었다.
“그럼 한 그릇만 주시오.”
“한 그릇도 안 돼!”
무혁은 잠시 눈을 감았다.
결국 그는 남은 동전 가운데 네 닢을 내놓았다.
국수 한 그릇이 탁자 위에 놓였다.
백리운은 젓가락 두 벌을 가져왔다.
“반씩 먹세.”
“나는 한 그릇 값을 모두 냈소.”
“길 안내 값은 빼야지.”
“아직 만보상회에 도착하지도 않았소.”
“먹고 나면 바로 데려다주겠네.”
두 사람은 국수 그릇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백리운이 먼저 젓가락을 뻗었다.
무혁의 젓가락이 그의 젓가락을 막았다.
탁, 타닥!
그릇 위에서 두 젓가락이 빠르게 부딪쳤다.
백리운이 왼쪽으로 면을 집으려 하면 무혁의 젓가락이 먼저 길을 막았고, 무혁이 고기를 노리면 백리운이 젓가락 끝으로 밀어 냈다.
짧은 공방이 일곱 번 이어졌다.
마침내 백리운이 면발을 집어 올렸다.
그 순간 무혁이 그릇을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백리운의 젓가락에는 파 한 조각만 남았다.
“치사하군.”
“실전에서는 상대가 그릇을 움직일 수도 있소.”
“그 말은 누구에게 배웠나?”
“방금 생각했소.”
백리운은 피식 웃었다.
무혁도 자신도 모르게 입가를 조금 풀었다.
태허문이 무너진 뒤 처음 짓는 웃음이었다.
아주 작고 짧아서 본인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웃음이었다.
두 사람은 결국 국수를 정확히 절반씩 나누어 먹었다.
빈 그릇이 놓이자 백리운이 물었다.
“만보상회에서는 누구를 찾는가?”
“서문백 회주.”
“거상 서문백을 직접 만나겠다고?”
“그렇소.”
“약속은?”
“없소.”
“소개장은?”
“이 나무패가 전부요.”
무혁은 허리춤에서 만보상회의 나무패를 꺼냈다.
백리운은 패를 받아 자세히 살폈다. 장난스럽던 눈빛이 조금 가라앉았다.
“오래된 물건이군. 만보상회에서 귀한 손님에게만 내주던 패야.”
“아는 것이 있소?”
“지금은 쓰지 않는 문양이네. 적어도 이십 년은 되었어.”
무혁은 나무패를 돌려받았다.
“스승님께서 주신 것이오.”
“자네 스승은 누구지?”
무혁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백리운은 더 묻지 않았다.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네. 사람마다 품고 다니는 사정 하나쯤은 있으니까.”
“당신에게도 있소?”
“나는 열일곱 개쯤 있네.”
“하나가 아니라?”
“살다 보면 늘어나.”
백리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세.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야 서문백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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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상회는 낙양 동쪽의 상업 지구에 자리하고 있었다.
높은 담장 안으로 여러 채의 창고와 객당이 보였고, 정문에는 칼을 찬 호위무사들이 서 있었다. 수십 대의 수레와 마차가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무혁은 거대한 현판을 올려다보았다.
萬寶商會.
스승이 남긴 말의 끝에 마침내 도착했다.
“길 안내는 끝났네.”
백리운이 손을 내밀었다.
“남은 동전 한 닢.”
무혁은 그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국수도 반이나 먹었잖소.”
“그건 함께 싸운 기념으로 얻어먹은 것이고, 이것은 길 안내 값이지.”
“누가 당신과 함께 싸웠다고 했소?”
“대추씨를 던져 도와줬잖아.”
“운이 좋았다고 했지 않소?”
“그 말을 믿었나?”
무혁은 전낭에서 마지막 동전 한 닢을 꺼냈다.
백리운의 손에 올려놓으려다가 멈췄다.
“한 가지 더 묻겠소.”
“질문까지 포함하면 가격이 오르는데.”
“당신은 왜 나를 따라왔소?”
백리운의 웃음이 조금 옅어졌다.
“따라온 것이 아니라 길이 같았네.”
“당신도 만보상회에 볼일이 있소?”
“아주 중요한 일이 있지.”
백리운은 무혁의 손에서 동전을 가져가더니 만보상회 정문 앞에 놓인 작은 기부함에 넣었다.
기부함에는 북망촌 수해민을 돕는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나는 서문백에게 받을 돈이 있거든.”
그가 당당하게 말했다.
“얼마나 받을 돈이 있소?”
“은자 오십 냥.”
“무슨 일을 했기에 그렇게 큰돈을 받소?”
“그의 목숨을 구했네.”
무혁이 백리운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저 말 많고 능청스러운 떠돌이 의원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것이 전부는 아닌 모양이었다.
두 사람이 정문으로 다가가자 호위무사들이 앞을 막았다.
“무슨 일로 왔소?”
무혁이 나무패를 내밀었다.
“서문백 회주를 만나러 왔습니다.”
호위무사는 패를 확인하더니 표정이 달라졌다.
“잠시 기다리시오.”
그는 안으로 들어가 다른 사람을 불러왔다.
잠시 뒤, 검은 무복을 입은 중년 무인이 정문으로 나왔다. 넓은 어깨와 단단한 걸음에서 오랫동안 외공을 연마한 흔적이 느껴졌다.
만보상회 호위대주 철무진이었다.
철무진은 나무패를 살핀 뒤 무혁에게 물었다.
“이 패를 어디에서 얻었나?”
“스승님께서 주셨습니다.”
“스승의 존함은?”
무혁은 잠시 침묵하다 대답했다.
“태허문의 청허진인입니다.”
철무진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태허문의 제자라고?”
주변의 호위무사들도 놀란 얼굴로 무혁을 바라보았다.
철무진은 목소리를 낮췄다.
“태허문은 석 달 전에 멸문했다고 들었다.”
무혁의 손이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마지막 제자 진무혁입니다.”
철무진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백리운이 옆에서 손을 들었다.
“감동적인 만남을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나도 서문 회주를 만나러 왔네.”
철무진의 얼굴이 즉시 굳었다.
“백리 의원.”
“오랜만이오, 철 대주.”
“지난번에 회주님의 약에 무엇을 넣었소?”
“몸에 좋은 것들만 넣었지.”
“회주께서 약을 드신 뒤 사흘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셨소.”
“원래 잠이 너무 많으셔서 조금 줄여 드린 걸세.”
“식욕도 사라졌소.”
“과식을 고쳤으니 좋은 일 아닌가?”
철무진의 손이 허리의 칼자루로 향했다.
백리운은 무혁의 뒤로 슬쩍 물러났다.
“무혁, 처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자네가 의리를 아는 사람이라고 믿네.”
“나는 당신을 잘 모르오.”
“국수 한 그릇을 나눠 먹었잖아.”
“그중 절반은 내 돈으로 산 것이오.”
“그러니까 더욱 깊은 인연이지.”
무혁은 백리운을 돌아보았다.
“서문 회주의 목숨을 구했다는 말은 사실이오?”
“물론이지.”
철무진이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목숨은 구했소.”
무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은자 오십 냥을 받으러 왔다는 것도 사실이군.”
“그건 거짓말이오.”
철무진의 대답에 백리운이 헛기침했다.
“정확히는 내가 받고 싶은 금액이 오십 냥이라는 뜻이었네.”
철무진은 백리운을 노려보다가 무혁에게 말했다.
“진 소협은 안으로 들어오시오. 회주께서 직접 만나실 것이오.”
그는 백리운을 가리켰다.
“저자는 밖에서 기다리시오.”
백리운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생명의 은인에게 너무 박하지 않소?”
“회주께서 다시는 문 안에 들이지 말라고 하셨소.”
철무진은 무혁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무혁이 몇 걸음 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백리운은 정문 밖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먼저 들어가게!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호위무사 두 명이 대문을 닫기 시작했다.
문이 닫히기 직전, 백리운이 틈 사이로 외쳤다.
“그런데 오늘 잘 곳이 없네! 나올 때 나를 잊지 말게!”
쿵.
대문이 닫혔다.
무혁은 굳게 닫힌 문을 잠시 바라보았다.
낙양에 도착한 첫날이었다.
그는 만보상회를 찾았고, 적호방과 시비가 붙었으며, 가진 돈을 모두 써 버렸다.
그리고 백리운이라는 이상한 의원을 만났다.
그때까지 무혁은 알지 못했다.
문밖에서 여전히 만보상회의 담장을 넘을 방법을 궁리하고 있는 저 능청스러운 청년이 앞으로 자신과 수많은 생사를 함께할 지기가 되리라는 것을.
또한 만보상회의 깊숙한 객당에서 기다리고 있는 서문백이 태허문 멸문의 밤에 관해 뜻밖의 단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철무진이 걸음을 멈추고 무혁을 돌아보았다.
“회주께서 자네를 기다리고 계시네.”
무혁은 등에 멘 철검의 끈을 바로잡았다.
석 달 동안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태허문의 이름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제부터였다.
원수를 찾는 일도.
무공을 다시 쌓는 일도.
끝내 자신의 검으로 강호의 정상에 서는 일도.
약한 소년 진무혁의 강호행은 낙양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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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 「서문백이 간직한 서찰」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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