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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개관]
거룩한 나그네들을 위한 서신
최원준 / 장로회 신학대학교 신약학 겸임교수
1. 베드로전서의 저자, 집필 연대 및 장소, 수신자
1. 저자
베드로전서의 저자는 1장 1절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이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의 주장처럼, 베드로전서의 헬라어가 뛰어나다는 점(베드로는 어부였다), 베드로전서에 나타난 외부의 박해(4:12 등)가 로마 제국의 전반에 걸쳐 있었던 박해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5장 1절에 언급된 장로라는 교회의 직제 등은 베드로 이후의 시기를 반영한다고 볼 때 베드로가 아니라 그의 제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설사 베드로가 아닌 그의 제자가 실제 저자라고 해도, 그가 받거나 배운 전승은 베드로로부터 온 것이다.
2. 집필 연대 및 장소
만약 베드로가 썼거나 아니면 베드로가 구술한 것을 실루아노가 대필했다면(12절), 그 연대는 주후 60-65년 사이였을 것이다. 베드로의 제자가 썼다면 70~90년 사이에 씌어졌을 것이다. 저자는 수신자에게 ‘바벨론’에 있는 교회의 문안 인사를 전하고 있다. 여기서 바벨론은 로마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1Clement 5). 이런 사실로 인해 베드로전서는 로마에서 집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3. 수신자
1) 지리적 측면에서 본 수신자
저자는 수신자에 대해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1:1)’라고 말한다. 여기에 언급된 5개 지명은 모두 소아시아 지역에 속한다. 베드로가 이 지역을 방문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이 중에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는 베드로가 성령 충만함을 받은 후에 설교했을 때, 그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았던 사람들의 출신지 12개 가운데 3개이다(행2:9). 그렇다면 이 세 지역의 사람들이 자기 지역으로 돌아가 가정 교회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갈라디아서에 등장하는 소위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갈1:6~9)’은 앞서 언급한 대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은 자들, 그래서 유대 기독교의 영향을 매우 강하게 받은 자들로 추측된다.
2) 사회적 측면에서 본 수신자
베드로전서의 수신인은 어떤 특정 교회의 교인이 아니라 ‘나그네’로 나타난다. 한글 개역 성경이 ‘나그네’ 혹은 ‘행인’으로 번역하고 있는 헬라어는 ‘파레피데모이(παρεπίδημοι, 1:1; 2:11. 그 외에 히11:13)와 파 로이코이 (πάροικοι, 2:11. 그 밖에 행7:6, 29, 엡2:19)가 있다.
두 단어는 구약의 ‘게르’에 해당하며, 70인 역에서도 ‘게르’는 파레피데모이' 와 ‘파로이코이’로 번역되었다. 이 단어들에 대한 기존 영어 성경(KJV, RSV 등)은 ‘exiles, pilgrims, sojoumers’로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엘리어트에 따르면, 이런 번역은 그 단어들의 사회적, 정치적 함축의 의미를 왜곡시킨다. 즉 위와 같은 번역은 ‘이 땅 위에 있는 영적 순례자’라는 종교적 의미만을 표출하고 있을 뿐이다.
엘리어트는 ‘파레피데모이’와 ‘파로이코이’를 각각 ‘visiting strangers, resident aliens’로 번역하고 있다. 이들은 70인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베드로전서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그레코-로만 세계에서 낯선 땅에 영구적으로 혹은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낯선 자들이다. ‘파로이코이’란 문자적으로 볼 때 ‘다른 사람의 집’에 함께 사는 이방인들이다.
이런 ‘파로이코이’는 바로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민들(이집트와 가나안에 거주했던 아브라함, 미디안 땅에 살았던 모세, 이집트에서 종살이했던 이스라엘 그리고 프톨레미 왕가 치하의 이집트에서 살았던 유대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당시의 묘비명을 통해 나타난 증거로 볼 때, ‘파로이코이’는 지역 사회에서 하나의 특정한 사회적 계층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완전한 시민들보다 지위가 낮았지만, 완전한 이국인들(크세노이. 엡2:19; 히11:13)보다는 지위가 높았다. 이들은 결혼할 수 있는 사람, 땅의 소유, 재산 계승, 투표, 일정한 단체 참여에 제한을 받았고 높은 세금을 내야했으며 더 엄한 형벌을 받아야 했다. 원지역 주민들과 달리 지역적 뿌리가 없고 민족도 다르며, 언어와 문화도 다르고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인 충성도 달랐기 때문에 이들은 흔히 기존 질서 및 안녕에 대한 위협적인 존재로 간주되었다. ‘파로이코이’는 언제나 지역 주민들의 두려움과 불신,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비방, 차별, 착취 등을 당했다. 당시 소아시아에서 ‘파로이코이’는 도시와 시골 모두에서 발견되며 이들은 장인, 상인, 토지를 빼앗긴 농부들이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사회적 소외와 박해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소외된 백성의 체험이었다. 이런 역사로부터 베드로전서의 저자는 흩어짐과 모임, 고난과 구원, 사회적 배척과 하나님의 수용에 대한 모형을 이끌어 냈을 것이다.
엘리어트의 이런 주장은 ‘파로이코이’의 사회적 지평을 밝혀 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주장되어 왔듯이, ‘파로이코이’는 ‘믿는 이들의 종말론적 나그네 실존’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참된 하늘의 집을 찾아가는 이 세상에서의 나그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며, 이 같은 종교적 의미와 사회학적 의미는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파로이코이’의 당시 상황을 살펴보자. 먼저 이들은 당시 소아시아에 널리 퍼져 있었다(1:1). 이들은 무엇보다 박해를 당했다(1:6; 3:14, 17;4:1, 12-16, 19; 5:9~10). 그러나 이 박해는 네로 황제 시대의 박해(64~65년)나 도미티안 황제의 박해(93~96년)와 같이 제국 전반에 걸쳐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권력 기관이나 권세자에 대한 순종을 말하고 있는 점, 권력 기관의 역할을 인정하고 있는 점, 심지어 왕을 공경하라고까지 말하고 있는 점(2:13-17)이 그 증거다.
이들에 대한 박해는 이들이 거주하고 있던 지역의 믿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는 비방(2:12; 3:16; 4:4, 14)이다. 그 사람들은 믿는 이들(베드로전서의 수신자들)을 악행자라고 모함하고 선행을 해도 욕하며, 또 자신들의 생활 방식(4:3)에 따르지 않는다고 비방했다. 그 사람들의 비방은 다만 말에만 그치지 않고 믿 는 이들을 차별하고 냉대하기까지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수신자들을 향해 베드로전서의 저자는 어떤 권면을 하고 있는지 아래서 살펴보자.
II. 베드로전서의 주제
베드로전서의 목적은 무엇보다 고난 가운데 있는 독자들을 권면하는 일이다. 따라서 베드로전서는 관념적 신학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윤리를 언급하고 있다.
1. 예수를 본받으라
베드로전서는 윤리 서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윤리적 권면들이 나타난다. 그런데 저자는 권면의 근거로서 예수의 모범을 제시하고 있다. 2장 18~25절은 사환들에 대한 권면인데, 이들은 선을 행하면서도 고난을 받고 있었다. 저자는 이들에게 그런 고난은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 고난을 참으라고 권면한다. 이 권면에 이어 저자는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한 예수의 고난을 모범으로 제시한다. 이런 권면과 예수의 모범을 제시하는 것은 3장 16~22절에서 다시 한번 나타나고 있다.
또 4장 13절에서는 수신자들이 고난을 받음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서 오히려 즐거워하라고 권한다. 실제로 저자는 자신에 대해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5:1). 그밖에도 다음과 같이 보다 구체적인 윤리적 권면의 근거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제시되고 있다.
1)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 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3:10b)’라는 권면은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2:22)’에 근거하고 있다.
2)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3:9)’라는 권면도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신(2:23)’ 예수의 모범에 근거하고 있다.
3)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고난을 받으신 것처럼 믿는 이들 역시 고난을 받게 되는데, 믿는 이들이 당하는 고난은 다시는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다(4:1~2).
2. 종말론에 근거한 권면
저자의 권면은 기독론적 근거뿐 아니라 종말론적 보상에도 근거하고 있다. 베드로전서의 수신자들은 당시의 보편적 가치관이었던 ‘명예와 수치(honor and shame)’의 관점에서 볼 때 수치의 삶을 살았다. 이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당시 사람들의 일반적 관행과 행태를 따를 수 없었고, 이로 인해 비난과 수치를 면키 어려웠다. 그러나 저지는 결국에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2:6)’고 권면한다. 또 저자는 지금은 성도들이 시험과 시련을 당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honor)를 얻게(1:7)’ 될 것이라고 권면한다(1:11 참조). 반대로 성도들을 비방했던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3:16). 따라서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받을 때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4:16).
그밖에 저자의 여러 권면은 종말론에 근거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4:8)’해야 할 이유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기(4:7)’ 때문이다. 또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4:14)’라는 말씀에는 마태복음 5장 10-12절의 말씀처럼 종말 사상이 근저를 이루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말세(1:20)’로 보고 있고, 또한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4:17)’고 확신한다.
또 저자가 자신을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5:1)’이라고 확신에 찬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자신이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6:1)’임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장로들에게 더러운 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양 무리를 치며 양 무리의 본이 되라는 권면(5:2~3)은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것(5:4)이라는 기대와 나란히 하고 있다. 또 저자는 젊은 자들에게 겸손하라고 권면하면서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즉 마지막 날에 높이실 것이라고 격려한다(5:5-6).
3. 구원, 모든 권면의 근거
저자는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사욕을 버리라(1:14)’는 권면의 근거로서 첫째, 하나님 아버지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믿는 이들 역시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며(1:15~16), 둘째, 어린양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써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되었기 때문이요(1:18~19) 영원토록 변치않는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으로 거듭났기 때문(1:23~25)이라고 말한다. 즉 구원론이 윤리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악독, 외식, 비방을 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권면(2:1-2)은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기 위함이다(2:2). 여기서 구원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순간 단번에 주어져 영원토록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뤄야 할 목표로 제시되고 있다. 베드로전서에서 믿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신실함(fraithfulness)’이다(1:7, 9 참조).
앞서 언급한 대로 독자들은 ‘파로이코이’로서 온갖 차별과 냉대 속에서 살아가기에 저자는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필요가 있었다. 저자는 편지 서두에서부터 이들이 누구인지를 상기시킨다. 이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선택받은 자들이고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신 자들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통해 구원을 얻은 자들이다(1:2). 이들은 보배롭고 요긴한 산돌이요 모퉁이돌인 예수와 함께 하나님의 신령한 집을 이루는 자들이며(2:4, 6), 하나님께 드릴 신령한 제사를 담당할 거룩한 제사장(2:5)이다. 또 믿는 이들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2:9)’이며, ‘하나님의 긍휼을 얻은 자(2:10)’이다. 이렇게 여러 수식어로 믿는 이들의 정체를 정의하는 것은 저자의 윤리적 권면이 구원에 따른 새로운 자아 의식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 선을 행하라
베드로전서의 핵심적 윤리는 ‘선을 행함’이다(2:12, 15, 20; 3:6, 13, 17; 4:19) 베드로전서가 말하는 ‘선을 행함’은 가난한 자를 위한 구제와 같은 일반적 개념이나 금식과 기도와 같은 종교적 행위라기보다 관계적 개념의 성격이 짙다. 즉 ‘선을 행함’은 권세자와의 관계(2:15), 사환과 주인과의 관계(2:20), 아내와 남편과의 관계(3:6)에서 언급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또 ‘선을 행함’은 선교적 효과를 지닐 수 있다. 저자는 믿는 이들이 선을 행할 때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2:12)’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 베드로전서에서 ‘선을 행함’의 특징은 고난과의 관련성이다. ‘선을 행함’은 고난을 초래할 수 있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요(3:17) 그 고난을 참는 것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일이다(2:20).
5. 형제 사랑의 윤리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에 이웃이나 원수에 대한 사랑보다 ‘형제 사랑(서로 사랑하라)’이 주로 나타나는 것처럼(요13:34; 15:12, 17; 요일4:7, 11, 19, 21; 요이5), 베드로전서에서도 ‘형제 사랑’이 강조되고 있다(1:22; 2:17; 3:8). 또 저자는 형제 사랑을 여러 덕목 가운데 하나로 취급하지 않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취급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4:8)”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라(4:9)’는 말씀 역시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대접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필로크세노이(φιλόξενοι)’는 ‘나그네들에 대한 사랑’, ‘나그네 대접(hospitality)’을 의미한다. 본문에서 나그네란 아마 교회를 섬기는 일을 하던 방랑하는 기독교 순례자를 의미하는 것 같 다. 숙박 시설이 거의 없었던 당시로서, 또 박해를 받던 베드로전서 독자들의 상황을 감안할 때 나그네에게 문을 열어 대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나그네를 대접하기 위해 돈과 시간을 요한다는 점에서 ‘원망(=불평)없이 한다’는 말은 자발적이고 기쁜 마음으로 대접하는 것이요, 이는 형제 사랑의 마음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저자가 형제 사랑을 강조하는 것은 그가 성도를 하나님의 집/가족(the household of God)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저자가 ‘집’이란 뜻의 헬라어 οἶκ-를 그 어근으로 하는 여러 전문 용어를 신학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데서 확인된다. 먼저 저자는 수신인을 ‘신령한 집(2:5)’ 혹은 ‘하나님의 집(οἶκος τοῦ θεοῦ, 4:17)으로 부르고 있다. 또 2장 5절에서 ‘너희가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라고 할 때 ‘세워지다’라는 동사도 οἰκοδομεῖσθε이다. 남편에 대한 권면인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라는 말씀에서 ‘동거하다’는 동사 역시 συνοικοῦντες(3:7)이다. 나아가 4장 10절에서 저자는 선한 청지기(οἰκονόμοι)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베드로전서에서 ‘하나님의 집/가정’ 신학은 형제 사랑 윤리의 근거이다. 또 저자는 ‘하나님의 집’의 식구됨(membership)을 통해 고난 속에 있는 믿는 이들에게 분명한 정체 의식과 연대 의식을 심어주려 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저자는 베드로전서의 독자만이 아니라 다른 형제들도 고난 속에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이들로 하여금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굳게 하라고 권면한다(5:9).
6. 가훈표에 나타난 윤리
베드로전서에는 에베소서 및 골로새서처럼 가훈표(Haustafel)가 있다(엡5:22-6:9; 골3:18-4:1).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의 가훈표가 아내-남편, 자녀-아비, 종-상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면 베드로전서의 가훈표(2:18~3:7)는 사환들(2:18~25), 아내들(3:1-6), 남편들(3:7)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 각 본문의 주해와 적용에서 상세히 다뤄질 것이므로, 여기서 요점만 간략하게 언급하도록 한다.
(1) 사환들에 대한 권면(2:18~25)
사환들에 대한 권면은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 있는 종들에 대한 권면과 비교해 볼 때 그 특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첫째,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는 종을 ‘둘로이’라고 부르는 반면에 베드로전서에서는 오이케타이’로 부르고 있다. 후자는 집안 일에 종사하는 종(household servants)인 반면에 전자는 보다 일반적이고 넓은 영역을 포함한다. ‘둘로이’ 대신에 ‘오이케타이’를 쓴 것은 베드로전서의 저자가 수신자를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household of God)로 보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또 ‘오이케타이’가 베드로전서의 수신자의 상황과 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오이케타이’는 선하고 관용하는 주인 뿐만 아니라 까다로운 주인, 선을 행했지만 오히려 고난을 주는 주인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오이케타이’의 취약함은 수신자 ‘파로이코이’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이방인 이웃들로부터 비방과 박해를 받는 상황과 유사하다. ‘오이케타이’에 대한 권면이 제일 앞에 위치한 것도 ‘오이케타이’가 믿음의 집 식구들 모두에게 일종의 범례(paradigm)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또 ‘오이케타이’에게 주는 권면에 이어 그리스도의 고난을 언급한 것도 ‘오이케타이’가 당하는 부당한 고난이 ‘파로이코이’가 당하는 부당한 박해,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유비관계에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저자는 사환에 대한 권면(18~20절) 다음에 그 권면의 이유로서 기독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데(21~25절), 마찬가지로 3장 13~22절에서 저자는 수신자들에 대한 권면에 이어 기독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2) 아내에 대한 권면(3:1~6)
에베소서나 골로새서 그리고 베드로전서 모두 아내에 대해 자기 남편에게 순복(순종)할 것을 권하고 있다. 에베소서의 경우에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됨을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에 견주면서 남편의 우위를 강조하고 있고, 골로새서에서는 남편에 대한 순종이 마땅함을 선언적으로 말하고 있다. 반면에 베드로전서에서는 아내의 순종이 갖는 선교적 목적이 나타나 있다.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고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3:1)”
3) 남편에 대한 권면(3:7)
에베소서는 남편이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이 ,또 자기 몸을 사랑하듯이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에베소서에서는 아 내에 대한 권면과 남편에 대한 권면 모두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속에서 말하고 있다. 한편 베드로전서는 아내가 ‘자기보다 약한 그릇임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약하다’는 말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육체적으로 약하다는 뜻으로 봐야 하며,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해석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7절 하반부에서 아내된 자는 남편과 함께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사람(표준새번역)’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갈라디아서 3장 28~29절(“너희는 …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의 언급과 상통한다. 또 아내가 ‘생명의 은혜의 공동 상속자’로서 인식될 때 당시 사회의 절대적인 남성 우월적 부부 관계에 변화가 있게 될 것이다. 비록 베드로전서 저자가 당시의 차별적인 남녀 관계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내를 ‘생명의 은혜의 공동 상속자’로 선언한 것은 가히 놀랄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7. 국가에 대한 권면(2:13~17)
베드로전서 2장 13~17절은 로마서 13장 1~7절, 디도서 3장 1절처럼 국가에 대해 믿는 이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세 본문 모두 권세자에게 순종할 것을 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되지만, 로마서 13장 1절에서 권세가 하나님께로 났다고 하는 반면에 베드로전서 2장 13절은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라고 말한다.
베드로전서에서는 국가 권력 기관의 신적 기원에 대해 적어도 명백히 말하고 있지 않다. 로마 제국에 대한 이 같은 부정적 태도는 5장 13절에서 로마를 ‘바벨론’이라는 묵시 문학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암호로 표시한 것에서도 보인다.
또 인간의 제도나 권세의 역할에 대해 로마서 13장과 베드로전서 2장은 유사한 견해, 곧 인간의 권력 기관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를 보여주고 있다(딤전2:1~2도 참조). 그러나 로마서 13장에서는 이 일을 담당하는 관원에 대해 ‘하나님의 사자(4절)’나 ‘하나님의 일꾼(6절)’으로 말하는 반면에, 베드로전서 2장 14절에서 방백은 ‘왕이 보낸사람’이다.
베드로전서 저자는 믿는 이의 자유를 사회적 책임 안에 제한 하고 있다. 즉 믿는 이가 분명 자유한 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자유를 모든 사회적 의무에 대한 자유로 오해하여 악을 행하는 구실로 삼아선 안 된다고 말한다(2:16). 그럴 경우에 어리석은 사람들이 믿는 이의 참 자유를 알지 못하고 오해와 비방의 말을 하게 될 것인즉(2:15), 오히려 믿는 이들은 선을 행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곧 사회적 의무를 충실히 행하고 사회 질서를 존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권고한다. 여기서도 베드로전서 저자는 믿는 이들의 국가에 대한 태도로 ‘선을 행함’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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