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올해를 협동조합의 해로 정한 뒤, 한 해 동안 협동조합 얘기가 참 무성했다. 시민단체나 부문·이익단체는 물론이고 언론이나 지자체, 중앙정부에서도 협동조합을 주제로 하는 토론이나 보도를 많이 해 왔다.
협동조합 얘기의 기폭제가 된 것은 유엔의 협동조합의 해 지정과 맞물려 작년 말에 우리나라 국회에서 제정된 협동조합 기본법이라 할 것이다.
사실 2010년 10월에 처음으로 <한국협동조합연구소>에서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국회 사무처에 제출 할 때만 해도 그랬지만 31개 단체들이 모여 <협동조합 기본법 제정 연대회의>를 만들 때만 해도 이렇게 빨리 법이 만들어질 줄은 몰랐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의 손학규의원, 민주노동당의 이정희의원, 한나라당의 김성식의원 노력이 컸고 기획재정부와 청와대 민정수석실까지 협동조합의 역할과 필요에 공감하여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각각의 법안들을 협의·조정해 낸 공도 크다 하겠다. 덕분에 2011년을 단 3일 앞둔 12월 29일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 할 수 있었다.
협동조합의 필요를 조직하자
올 12월 1일부터 발효된 이 법안에 대한 우리 농민들의 관심은 두 가지로 모아진다. 농촌에서의 협동조합 활동의 과제설정과 그 추진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첫째라고 한다면 둘째는 협동조합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농촌지역에서의 필요를 올바로 조직해 내는 일이다.
두 번째 과제부터 얘기 해 보자. 필자가 보기에 협동조합 기본법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호박넝쿨과도 같다고 생각된다. 이 법안이 준비되고 발의 될 때 단 한 번도 농민대중들이 나선 적이 없다. 농촌에서 협동조직의 필요에 대한 절박함이 대중적으로 공론화 된 적이 없었다는 얘기다.
협동조합 본래 정신에서 멀리 이탈한 농협의 돈벌이 행태에 분개는 했지만, 이를 발판으로 농민 스스로가 올바른 협동조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도는 미약했던 게 사실이다. 원인 역시 두 가지로 판단된다.
요구투쟁과 저항으로 이루어진 우리 농민운동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된 측면이 첫째다. 이런 농민투쟁 역시 이중적이었다. 중앙단위에서는 농정을 놓고 격렬하게 대립하면서도 지역의 농협 매장에는 수입농산물이 넘쳐난다. 한미에프티에이(FTA)를 반대한다면서도 사료나 농자재가 초국적 자본에 종속되는 농법과 축산에 대한 문제인식이 없다.
촌구석 농협조합장의 연봉이 7-8천만 원을 웃돌고 농협임직원들이 연말마다 돈 잔치를 해도 무심 할 정도로 지역단위에서의 농민운동이 지리멸렬한 상태에서는 농민 자주적인 협동운동이 일어 날 동력이 없다.
둘째 원인은 농촌지역에 새로이 진입한 생태환경농업 활동가들이 아직은 지역세력화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귀농/귀촌인들의 상당수는 주목할 만한 삶의 이력과 지향을 품고 있다. 조만간 이들로 농촌이 재 조직화 될 수 있다는 기대와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농업의제나 지역 과제를 조직화하여 공공의 논의로 부상시키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제는 명확하다. 협동조합이라는 것이 우리 농촌에 왜 필요한가? 협동조합적 활동의 요구가 농촌에 어떤 게 있을까? 그리고 협동조합의 정신이 뭔가? 이런 부분에서 제대로 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협동조합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도깨비 방망이로 이해 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협동조합 운동의 원칙과 원리
농촌지역에서 협동조합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이 할 일을 정하기에 앞서서 협동조합 운동의 이념과 원리를 직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절실하게 원해서 자신의 힘으로 일구어 낸 성과물이 아닐 때 그것에 대한 소중함과 수호의지는 박약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에 대한 강연이나 토론회 같은 일회적인 행사로는 부족하다. 농촌지역 협동조합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작은 모임을 만들어서 깊이 있는 논의를 통해 단단한 의식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농협과는 어떻게 다른 협동조합이 될 것인지, 농협을 왜 협동조합의 근본정신에서 이탈되었다고 말하는 것인지, 기존의 영농조합과 협동조합 기본법상의 협동조합은 또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하겠다.
상법상의 '회사'와 민법상의 '비영리법인'의 차이도 정확히 이해 할 필요가 있다. 세법이나 공정거래법등이 전혀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주무관청도 다르다. 먼저 협동조합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자.
협동조합은 조합을 구성하는 조합원의 복리증진과 상호부조, 권익향상을 첫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조합원들이 생활상의 이해를 같이해야 한다. 생활이 같은 것과 이념과 뜻이 같은 것은 상당히 편차가 있다.
생활상의 이해 일치는 협동조합의 단단한 결속을 보장 할 것이다. 아무리 뜻이 높고 이념이 같다고 해도 사소한 감정과 활동방식을 놓고 갈라지는 경우가 많다. 생활을 중심으로 모여 있어야 그로부터 생겨나는 정서적 일치가 경제적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결속을 유지시켜 주는 접착력을 발휘 할 것이다.
농민들이 이해를 같이 하는 일상생활에서 출발
상법상 회사는 영리가 목적이며 투자자의 권한이 우선적으로 보장된다. 그러나 민법상의 사단법인은 공익우선이다. 협동조합법상의 협동조합은 조합원 권익과 지역사회 공헌이 목적이다. 공익성 영리활동도 보장된다. 회사와 법인과 협동조합은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필자는 1992년경에 협동조합 기업을 만드는데 참여했고 당시에 경전처럼 여겨졌던 김성오님이 번역한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를 가지고 집단 토론까지 한 적이 있다. 독일의 공장위원회나 유고의 노동자 자주관리기업에 대해서도 토론했었지만 결국 협동조합은 무너졌다. 일상을 공유하기보다 이념과 목적의 공유를 더 중시한 결과라고 여겨진다.
그동안 농업협동조합을 필두로 중소기업협동조합이나 신용협동조합, 소비자생활협동조합 등 협동조합 특별법에 근거한 8개의 협동조합이 있었지만 사각지대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분야를 이번 협동조합 기본법의 시행으로 접근이 가능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그래서 농촌에서 만들어질 새로운 협동조합은 상법에 의한 시장영역이 감당 할 수도 없었던 것들, 예컨대 생활상의 이해를 같이하는 영역에서 먼저 출발하자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가정에서는 교육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농촌지역의 교육은 모두가 고민하는 바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중학교 진학을 염두에 두고 전학을 고민한다. 중학교, 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상급학교 진학이 학교 다니는 유일한 목표처럼 되어 있다. 대안학교들을 협동조합 형태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열풍이 불고 있는 귀농·귀촌분야도 협동조합 설립이 가능하다. 지역마다 거의 다 있는 지역귀농인협의회 등이 지역에서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대부분 '공익법인 설립과 운영에 관한 법'이나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에 기초해서 설립신고를 하고 있다. 이 역시 협동조합 기본법상의 협동조합으로 전환 될 수 있다.
지자체의 위탁사업에 목매는 귀농인협의체들은 그 유용성과 한계를 동시에 인지하고 자립적인 협동조합 체제를 검토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건강을 위한 협동조합도 가능하다. 이미 지역에서 활동 중인 의료생협들은 소비자생활협동법에 기초하고 있다. 설립요건과 절차가 아주 간소해진 협동조합 기본법에 따라 건강관련 협동조합도 농촌에서 만들 수 있다.
군청이나 면사무소 등 공공영역과 연계
읍, 면 단위마다 있는 보건소가 농민들의 건강협동조합과 결합될 수 있다. 협동조합은 그 출발이 원래 공공 행정영역과 시장의 사적영역이 다가갈 수 없는 공백지역을 지역민 스스로 메우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민관 협력의 여지가 컸다.
농촌의 노인복지 관련 협동조합도 건강보험공단이나 자활센터 등과 연계 될 수 있다고 본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상의 재가요양 분야에서 노인복지 관련 협동조합의 활동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노인요양병원이나 전문노인요양시설 중심의 노인복지가 재가요양 중심으로 바뀌게 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기본 방향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방과 후 학교나 지역아동센터 등도 좋은 협동조합 활동의 대상이 된다. 시골 아이들이 방과 후에도 농촌의 좋은 환경조건 속에서 맘껏 뛰어 놀고 뭔가를 도모 할 수 있게 하는 다양한 접근이 가능 할 것이다. 농촌에도 예외가 아닌 과도한 교육열을 전인생태교육 방향으로 선회하는 신선한 시도가 있을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농·산촌 유학과도 결합하면 되겠다.
이런 분야의 활동은 협동조합이 점점 조합원의 이해와 상호부조에서 지역사회 공헌으로 나아가며 군청이나 면사무소의 연계과정은 기존의 행정서비스의 취약부위를 보완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이 같은 공적영역에서의 민간과 지방정부의 공동행정관리는 오래 전부터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는 현상이다.
이 외에도 주거부분의 협동조합은 시골집들의 열악한 난방시설과 단열의 취약함에 주목하여 활동 할 수 있다. 주로 시·군이 중심이 되어 자활센터가 시행하는 농가주책 개량사업이나 주거 취약자 지원사업을 주거 협동조합이 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사회적 협동조합의 설립
대개 해당 시·군의 자활센터가 아니면 외지의 건설업체가 와서 공사를 하는데 그 지역에 시골집 고치기 협동조합이 생긴다면 시골의 수많은 빈집들을 수리하여 다양한 체험장으로 활용하는 문제를 지방정부와 의논해도 될 것이다.
결혼 이주민 여성들이 떠오른다. 자녀들까지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쉼터나 돌봄시설,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일자리 만들기 협동조합은 또 어떤가? 농촌의 에너지 분야도 주목할 만하다. 농촌에너지의 80% 이상은 농사용 에너지다. 나머지가 생활에너지인데 이미 몇몇 마을은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협동조합 형태를 갖추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성격의 협동조합은 협동조합 기본법에서 규정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에 해당한다. 기본법에서는 사회적 협동조합을 별도로 규정하면서 설립과 운영에서 일반협동조합과 차이를 두고 있다. 조합원 공동의 이익보다는 사회 공공의 이익에 더 복무하는 협동조합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협동조합의 경우, 어떤 사업을 할 것인가를 정하기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어떤 사업을 하느냐가 사회적 협동조합 여부의 기준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회적 목적을 전면에 내세운다 하더라도 절대 잃지 않아야하는 것이 협동조합의 정신이다. 그래서 사회적 협동조합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호혜와 평등의 관계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더더욱 활동과정에서 내부에 권력이 형성 될 수 있다. 매우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역할을 고루 나누고 느리더라도 동의를 구하며 일치를 이루는 합의정신을 잘 지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겠다.
협동의 정신은 한결같아야
다중의 상상력과 창의력, 열정어린 활동력이 활활 타 올라야 협동조합은 산다. 어쩌면 그거 하나 믿고 자본의 힘, 시장의 수렁에서 탈출을 시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권력의 집중은 역할의 집중에서 비롯된다. 반면, 역할이 없는 조합원은 소외되기 십상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기에 앞서서 누가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목표중심의 활동에서 의사결집의 과정을 더 중시하는 활동이 되어야 한다.
경영능력이라는 또 다른 문제에 직면 할 수 있다. 실패하는 협동조합이 6-70% 이상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그래서 나온다. 대부분 경영문제일 것이다. 시장논리의 유혹이 바로 이때에 다가온다. 규모화, 합리화, 효율화라는 문제가 제기되는 그 순간은 협동의 정신을 잃었기에 초래되는 결과이기도 하고, 협동의 정신을 놓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부터 철저히 협동조합적인 절차와 방법으로 해야 할 것이나 이는 하루아침에 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앞으로 수십 년 곡절을 겪으면서 우리 농촌에 새로운 경제활동의 전형이 만들어져 나갈 것으로 보인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경제체제라고 보는 게 다수의 견해다. 환경과 자원과 인문사회 차원에서 더 이상 지금의 자본주의 방식은 희망이 없다고 전망한다. 그러니 그 과정이 간단할 수 없다. 구체제가 신체제로 대체되는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그래서 이런 협동조합이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가칭 '농촌지역 협동조합연구 교육원'.
농촌지역에서 만들어 가는 협동조합의 형태와 운영, 조직원리 등을 연구할 뿐 아니라 당사자들을 집중 교육하는 전문 기관이 꼭 필요할 듯하다. 한국적 전통 공동체를 잘 복원해 낸 협동조합도 만들어보고 협동조합운동의 기간요원들을 재교육하는 그런 협동조합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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