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가 예술품이 될 수 있을까?
[현장] 농업인들의 <인사동 블루스 農 & 藝>전
"이번 전시는 마케팅 교육입니다. 농업인들이 인사동에서 예술인들과 함께
디자인을 개발하고 포장을 연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화랑이 밀집해 있는 인사동에 이색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벤처농업대학에 학사 일정을 준비하고 있는 민승규 박사(삼성경제연구소)가 학생들을
이곳으로 불러모았다. 어떻게 보면 작은 공간의 농산물 전시회다. 한국농업벤처대학의 학생들이 주축이다.
참여 업체가 총 29개인데 민속주 참여가 7개 업체이고, 일반 1차 농산물, 2차 농산물 업체가 22개이다. 배로 술을 만든 나주배술이 있는가하면 파, 우리콩두부, 한방오이, 김치, 청매실, 쌀, 말린청국장, 상황버섯, 오리알, 현미쌀, 도라지꽃, 백일홍, 버려진 페트병에 담긴 아이디어 화분이 있다. 한
유리 공간에는 주먹만한 달팽이가 케일 잎을 뜯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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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업과 예술의 만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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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신동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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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하면 생각나는 것은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화랑이다. 화랑 수는 집계가 안될 정도로 많다. 그만큼 대한민국에는 작가들이 많다. 그래서 한 집
건너 화랑에는 신예작가부터 중견작가에 이르기까지 매주 각종 형태의 미술전시가 열린다.
지금은 길바닥에 벽돌이 깔리고 깔끔히 정리됐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전시가
시작되는 수요일 인사동에는 플래카드 광고가 골목에 넘실댔다. 한마디로
예술꾼들의 거리였다. 이곳에 농사꾼들이 예술꾼들과 함께 판을 벌인 것이다.
"파가 예술품이 될 수 있나요?"
벤처농업대학 2기생으로 이번에 무농약 파를 전시한 대표적인 파 생산 작가에게 던진 첫 질문이다. 그 학생은 처음에 당황하더니 담담히 자기의 주장을 또박또박 설명했다.
"물론 여기는 예술인들의 공간입니다. 저흰 농민이고요. 하지만 저희도 예술인 못지 않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는 파는 아무나 생산하는 것이 아닙니다."
황유섭(1963생)이라는 생산농민은 파 생산도 '정신' 없이는 안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요즘도 새벽 4-5시면 일어나 벌레를 잡는다고 한다.
"유기농 파를 우리 소비자와 약속했고 우리 농업이 유기농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흔히 듣는 농사 철학이지만 그 농민 말 속에 '순수'가 '순수'해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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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는 농약을
먹고 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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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신동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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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농약 파
한단은 예술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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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신동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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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생산해 전시한 '예술품'파를 뜯어보았다. 파뿌리부터 키를 눈대중해보면 길이 약 100cm. 파뿌리 20cm, 흰줄기 25cm(지름2cm), 녹색 잎이 50cm다.
이 파가 작품이라 생각되는 이유 3가지. 첫째, 기분이 상쾌하다(소재가 신선한 탓). 둘째, 팔등신 미녀같이 잘 키웠다. 줄기 대가 희고 윤기가 흐르며 미끈하다. 보통 파는 잎이 꺾이고 홀쭉한데 이 작품은 잎이 너무 통통하다. 통통한 자전거 속 타이어 같이. 만지고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다. 흠이라면 녹색 파 잎에 허연 흠자국들이 보인다. 벌레가 지나간 흔적이라고 한다. 자연에 가깝게 키웠다는 이야기. 이것이 셋째 이유다.
사실 우리가 먹는 파는 '농약 덩어리'라고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파에
유난히 병해충이 많이 달려들기 때문이다. 그만큼 농약을 치지 않고 파를
키우기는 어려운 일이다.
"한번은 200평 하우스를 하루종일 매 봤어요. 벌레들이 밤에만 활동하고 낮에는 땅 속에 숨기 때문이죠."
황유섭씨가 이날 땅 속을 뒤져 잡은 벌레는 페트병으로 2병이나 된다. 이
벌레들이 그동안 흠집을 내 버린 파도 엄청나다는 것이다.
"힘든 일이지요. 집념과 철학 없인 이 일 못해요. 파 한 뿌리 우습게 보이지만…."
그는 정말 진품 파 한 뿌리 키우려고 온갖 난리(?)를 떤다. 인근산에 있는
토착미생물을 떠다가 쌀겨에 배양해 미생물 농법을 하기도 하고, 당귀, 인삼, 계피, 감초, 생강, 마늘 등을 막걸리에 25일 숙성해 한방영양제로 주는가 하면 고등어나 청어같은 등푸른 생선을 설탕에 배합해 아미노산을 만들기도 한다. 또 칼슘을 보충해 주기 위해 갈비 집에서 소뼈를 얻어다가 뼈에
붙은 살을 태운 후에 현미식초에 담궈 칼슘제를 만드는데 이를 1000배에 희석해 뿌려준다.
"토양살충제란 농약이 있어요. 농약성분이 3년간이나 검출되죠. 굉장히 위험해요. 그런데 농민들은 생각 없이 농약을 뿌리죠. 300평에 1봉지면 적당한데 5-6봉지 뿌리는 건 보통이지요."
황유섭씨는 농민들이 농약병에 표시된 농약사용 표시를 믿지 않는다고 한다. 농약불신 때문이다.
"땅 속에 숨어 있는 고자리(굼벵이 일종, 파뿌리를 파먹는다)를 없애려고
뿌리는데 과다사용으로 냄새까지 납니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의 '예술행위'로 농산물을 만드는데, 왜 우리 소비자들이 '농업예술인'이 만든 농산물을 외면하는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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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연꽃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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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신동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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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이 전시회에 무농약 파만 있는 게 아니다. 유달리
관람객이 머무는 곳. 고흥에서 출품된 홍철용씨의 '백연차'가 전시되어 있다. 지름 30cm의 흰 백연을 큰 물그릇에 띄웠는데, 긴 쪽박으로 계속 차를
대접해도 줄지를 않는다. 이런 것이 행위예술(?).
더욱 이 하얀 연꽃은 꽃 수술이 그대로 살아 있고 꽃잎에 새겨진 세로무늬도 선명하다. 어느 예술가라도 감탄할 만하다.
"백연을 가지고 행위를 한 지 16년째입니다. 옛날 사대부집 마나님 방 앞에는 연못이 있어 창문만 열면 연꽃의 은은한 향기와 우아한 꽃을 즐겼지요."
연꽃은 한 송이에 1-2만원이라고 한다. 연꽃차는 살아 있는 연꽃을 이용하는데 좋은 물에 띄워 1-2시간 후면 은은한 연꽃 향기가 우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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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벨링 된
소곡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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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신동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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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벨링 된
배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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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신동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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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회가 빛나는 것은 중견 예술인들과의 만남이다. 김상철, 정정식 작가를 포함 5명이 벤처농업인들과 호흡을 했다. 이들은 농업인들이 만든 민속주에 라벨을 무료로 그려 주었다.
"출발이 좋아요. '藝'는 벼를 심는 모습의 풀이인데, 쌀 봉투같은 디자인도
우리 예술가들이 참여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이겠죠."
김상철 작가는 한산소곡주와 가야곡왕주에 라벨링 작업에 참여했다. 소곡주의 맛은 귀족적이고 색은 어두워 밝고 붉은색의 꽃을 활짝 피우면서 환희적인 이미지로 만들었고, 가야곡왕주는 술맛이 달콤하고 대중적인 느낌이 있어 막 피우는 꽃 몽우리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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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미와 금미와 은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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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신동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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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한번 볼 만한 전시회 인 것만은 틀림없다.
전시기획자 권영미씨는 "우리 농산물에 가능성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백남준 비디오 아티스트가 모니터에 비디오를 창조해 세계적인 예술가로
태어났듯이 우리 농업에 예술 혼만 담는다면 분명히 세계적인 명품 농산물로 태어날 수 있다."
미술평론가 김종근씨도 "우리 술맛은 특A"라고 극찬한다. "현명농장과 나주에서 만든 배술, 은진송씨가에 대를 이은 고가송주 다 마셔보았는데, 맛은
이건데 마케팅이 많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프랑스엔 예술가들이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있죠. 유명작가들이 한정된 술병에 넘버링을 해가며 술병에 사인을 합니다."(미술평론가 김종근)
주말 할 일도 많고 가 볼 곳도 많지만, 농민 예술가들 기 살리러 인사동에
가보는 것은 어떨지.
전시안내
장소 ; 인사아트센터(수도약국 건너편 빌딩5층)
일시 ; 2003. 6. 18-24
주최 ; 한국벤처농업대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