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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2 고민경 인터넷 수능 문학 135p 이청준 <잔인한 도시>
날씨가 제법 싸늘해지기 시작한 어느 가을날 해질녘 그 사내가 문득 교도소 길목을 조그맣게 걸어 나왔다.
그것은 여간 희한한 일이 아니었다. 근래엔 좀처럼 볼 수 없던 일이었다.
교도소는 도시의 서북쪽 일각, 벚나무와 오리나무들이 무질서하게 조림된 공원 숲의 아래쪽에 있었다. 그리고 그 무질서한 인조림이 끝나고 있는 공원 입구께에서 2백 미터 남짓한 교도소 길목이 꺾여 들고 있었다. 공원 입구에선 교도소 길목과 높고 음침스런 소내 건물들을 제 손바닥 들여다보듯 한눈에 모두 내려다볼 수 있었다. 교도소 길목을 오르내리는 것이면 강아지 한 마리도 움직임이 빤했다.
[중략 줄거리] 오랜 복역을 마치고 출감한 한 사내가 공원에서 노숙하며 자신을 데리러 올 아들을 기다린다. 그는 공원에 떨어진 동전을 주워 옥중 동료들을 위해 새를 사 방생해 주기도 한다. 그러던 중 사내는 날개 속 깃을 잘라 놓고 새를 되잡아 파는 새장수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사내에겐 또 한 가지 이상스런 일이 일어났다.
사내는 이날 밤도 그 공원 숲 벤치 위에서 추운 새우잠을 견디고 있었는데, 자정을 한 시간쯤이나 지난 무렵이었을까, 예의 전짓불 빛이 다시 공원 숲 속을 훑어 대기 시작했다.
이번엔 물론 꿈이 아니었다. 실제로 빛줄기를 앞세운 밤새 사냥이 시작된 것이었다. 사내는 벌써부터 까닭을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사지가 움츠러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행스럽게도 전번 날 밤과는 사정이 훨씬 달랐다.
빛줄기가 아직 사내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이날 밤은 그 밤새 사냥꾼이 제 편에서 미리 사내의 잠자리를 피해 주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불빛은 좀처럼 사내 쪽으로 다가들 기미를 안 보이고 있었다. 사내와는 한참 거리가 떨어진 숲들만 이리저리 분주하게 휘저어 대고 있었다. 불빛을 맞은 밤새들이 낙엽처럼 어둠 속을 휘날리고 있을 뿐이었다.
불빛은 거의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졸음기가 말끔 달아나 버린 사내는 모른 체하고 다시 잠을 청할 수도 없었다.
그는 이윽고 야전잠바 옷깃을 들추고 천천히 벤치 위로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러고는 차분한 손짓으로 야전잠바 주머니 속을 뒤져 꽁초 한 대를 찾아 물었다.
사내가 그 야전잠바 옷깃으로 불빛을 가리며 입에 문 꽁초에다 막 성냥불을 그어 붙이려던 순간이었다.
후루룩-!
어둠 속 어느 방향으론가부터 느닷없이 사내의 잠바 깃 속으로 날아와 박혀 드는 것이 있었다. 담뱃불을 붙이려다 말고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라 손에 든 성냥불부터 날쌔게 꺼 없앴다. 그러고는 그의 가슴께 깃 속으로 박혀 든 물체를 재빨리 더듬어 냈다.
사내는 이내 물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다름 아니라 그것은 방금 숲 속의 불빛에 쫓겨 온 한 마리의 새였다.
(중략)
사내는 제풀에 고개를 한번 세차게 흔들었다.
가슴 속 ㉠녀석이 응답을 해 오듯 발가락을 몇 차례 꼼지락거렸다. 그 바람에 잠시 발길을 멈추고 녀석의 발짓을 느끼고 있던 사내의 얼굴엔 만족스런 웃음기가 번지고 있었다.
“그래 어쨌든 잘했지. 떠나온 건 잘했어.”
사내는 다시 발길을 떼 옮기며 말하기 시작했다.
“㉡녀석도 아마 잘했다고 할 게야. 글쎄, 이렇게 내가 제 발로 ㉢녀석을 찾아 나섰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우리도 거기서 겨울을 지낼 뻔했질 않았나 말이다.”
그리고 사내는 뭔가 더욱 은밀하고 소중스런 자신만의 비밀을 즐기듯 몽롱스런 눈길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너도 곧 알게 될 게다. 우리가 함께 남쪽으로 길을 나서길 얼마나 잘했는가를 말이다. 남쪽은 훨씬 북쪽하곤 다르다. 겨울에도 대숲이 푸른 곳이니까. 넌 아마 대숲이 있는 곳이면 겨울도 그만일 테지. 내 너를 그런 대숲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줄 테다. ㉣녀석의 집 뒤꼍에도 그런 대숲은 얼마든지 많을 테니까. 암대숲이야 많구 말구…… 넌 그럼 그 대숲으로 가거라. 그리고 거기서 겨울 나려무나…….”
사내의 얼굴은 이제 황홀한 꿈속을 헤매고 있는 사람의 그것처럼 밝고 행복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걸으며 중얼대고 있었다.
“넌 아마 그래야 할 게다. 가엾게도 작은 것이 날개를 너무 상했으니까. 이 겨울은 그 대숲에서 날개가 다시 길어 나길 기다려야 할 게야. 내년에 다시 날이 풀리면 네 하늘을 맘껏 날을 수가 있을 때까진 말이다. 그야 너만 좋다면 ㉤녀석의 집에서 이 겨울을 너와 함께 지내 줄 수도 있지만, 그건 아무래도 네 맘은 아닐 테니까…….”
- 이청준,「 잔인한 도시」
1. <보기>의 내용과 관련하여 윗글에 대해 감상한 내용이다. 적절하지 않은 것은? (문제 변형)
<보기>
1978년『한국문학』에 발표된 이 작품은 현실에서의 인간 소외를 다양하고 복합적인 상징을 통해 형상화하였다. 작가는 새장수를 통해 조작된 해방과 구속이 반복되는 절망적 삶을 제시하였고, 출옥한 죄수를 통해 그러한 악순환을 끊어 버리고 인간적 따뜻함이 있는 남쪽으로 회귀하는 휴머니즘적 주제를 보여 주려 하였다. |
① 윗글의 ‘사내’는 새를 자유롭게 방생하고자 하지만 새장수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한다.
② <잔인한 도시>는 70-80년대 사회의 부정적인 국면을 드러내고 있다.
③ 윗글의 사내는 자신의 품속으로 숨어들어온 새 한 마리와 함께 해방과 구속이 반복되는 절망적 삶에서 벗어나려 한다.
④ 새장수는 풀어 준 새들을 다시 잡아다가 파는 상술만 남은 사내로, 우리 시대 인간의 사슬을 만드는 자로 은유된 인물이다.
⑤ 보기에 나오는 출옥한 죄수란 새장수에게 쫓기고 사내의 품속으로 숨어들어온 새 한 마리이다.
정답 : 5번
정답 이유 : 출옥이란 형기를 마치고 감옥에서 석방되어 나온다는 뜻이다. 따라서 출옥한 죄수는 오랜 복역을 마치고 출감한 사내를 뜻하는 것이다. 사내는 조작된 해방과 구속의 악순환을 끊어버리고 인간적 따뜻함이 있는 남쪽으로 회귀하고자 한다. 숨어들어온 새는 새장수에게 쫓기고 있는 것이므로 출옥한 죄수라고 할 수 없다.
오답 이유
1번 : '사내'는 새를 자유롭게 방생하기 위해 새장수로부터 새를 사고 있다. 그러나 새장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새의 날개 깃을 미리 잘라놓고 팔면서 잘 날지 못하는 새들을 다시 밤에 되잡아 다음날 파는 것이다.
2번 : <잔인한 도시>는 1978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당시 현실에서의 인간 소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보기를 통해 알 수 있다.
3번 : 보기에서 출옥한 죄수를 통해 조작된 해방과 구속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끊어 버린다고 하는데, 여기서 출옥한 죄수란 윗글의 사내이고 위 사내는 그러한 절망적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와 함께 남쪽으로 길을 나설 생각을 하고 있다.
4번 : 새장수는 풀어 준 새들을 다시 잡아다가 파는 상물만 남은 사내이다. 이러한 인간의 모습은 점차 또 다른 인간에게서도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새장수는 당시 시대 인간의 사슬을 만드는 자라고 할 수 있다.
2. 윗글의 소설적 장치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선택지 변형)
① ‘남쪽’은 ‘북쪽’과 달리 ‘새’에게 따뜻함을 주는 희망적인 방향이다.
② ‘대숲’은 ‘공원’과 달리 ‘새’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공간이다.
③ ‘겨울’은 ‘가을’과 달리 ‘새’의 날개가 회복될 수 있는 시간이다.
④ ‘공원’은 ‘교도소’와 달리 해방과 구속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⑤ ‘전짓불 빛’은 ‘성냥불’과 달리 ‘새’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상징하는 소재이다.
정답 : 4번
정답 이유 : ‘공원’에서는 새장수에 의해 조작된 해방과 구속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교도소에서도 마찬가지로 해방과 구속이 일어나고 있다. 범죄자를 구속하고 형기가 지나면 해방하기 때문이다. 윗글의 사내도 형기가 끝나 해방된 죄수였다.
오답 이유
① ‘남쪽’은 ‘북쪽’과 달리 겨울에도 대숲이 푸른 따뜻한 곳며 새에게 희망을 주는 방향이다.
② ‘공원’은 새가 날개 깃을 잘려 새장수의 구속 하에 있는 공간이지만, ‘대숲’은 새가 자유롭게 맘껏 날 수 있는 공간이다.
③ ‘겨울’은 ‘가을’과 달리 날개가 다시 길어 나길 기다리는 공간이다. (근거 : 마지막 사내의 말) 공원에 계속 머물고 있으면 ‘가을’ 또한 새에게, 방생됐다가 다시 잡히고 날개 깃이 자라면 또 다시 잘리는, 날개가 회복될 수 없는 시간이다.
⑤ 사내가 담뱃불을 붙이기 위해 킨 ‘성냥불’과 달리 사냥꾼이 새를 잡기 위한 ‘전짓불 빛’은 새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상징한다.
지문 출제 근거 : 2009년 9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이청준 <잔인한 도시>가 출제되었는데 현재까지 이청준의 소설이 수능에 출제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수능에 마침 이청준 <잔인한 도시>가 실려 있어서 올해 수능에 나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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