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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시 역사문화
[개관]
동쪽은 양산시와 부산광역시, 서쪽은 창원시, 남쪽은 남해, 북쪽은 밀양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8°44′∼129°01′, 북위 34°52∼35°23′에 위치한다. 면적은 463.36㎢이고, 인구는 52만 8865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은 1개 읍, 6개 면, 12개 행정동(34개 법정동), 246개 행정리(67개 법정리)리이다. 시청은 경상남도 김해시 부원동에 있다.
[자연환경]
시의 북부를 관류하다가 동북부에서 방향을 바꾸어 남류하는 낙동강(洛東江)이 밀양시·양산시 및 부산광역시와의 자연적 경계를 형성한다. 지세를 보면, 시의 북반부는 낙동강의 유수에 의해 침식되어 단절되었다가 다시 돌출된 태백산맥의 지맥이 지나가 평지가 적고, 무척산(無隻山, 700m)·석룡산(石龍山, 495m)·금동산(琴洞山, 463m)·신어산(神魚山, 630m) 등이 솟아올랐으나 차츰 고도가 낮아져 하구 쪽의 평야부와 맞닿아 있다. 대동수문은 밀물 때 바닷물이 흘러드는 것을 막는 구실을 하며, 관개에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김해평야는 낙동강의 상·중류에서 운반되어 온 토사가 퇴적되어 이룩한 우리나라 최대의 삼각주상의 충적평야이다
서쪽에는 북에서 남서쪽으로 해안산맥이 연속되어 비음산(飛陰山, 510m)·용지봉(龍池峰, 728m)·대종산(大宗山, 655m)·불모산(佛母山, 802m)·팔판산(八板山, 801m)·화산(花山, 798m)·굴암산(窟巖山, 621m)·보배산(479m) 등이 창원시와의 동부 경계를 이루며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중앙부는 낙동강 삼각주의 거대한 평야부를 이루어 이 시의 시가지와 일부의 농경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 동부는 북쪽에서 낙동강이 유로를 바꾸어 부산광역시와 경계를 이루며 남류하다가, 중앙의 삼각주 평야부를 배후지로 한 뒤 하구 부근의 명지도에 이르러, 유로가 두 갈래로 나뉜 동부의 본류와는 달리 폭이 현저히 좁아진 지류로서 남해에 도달한다.
낙동강에 유입되는 시역 내의 소하천으로는 주촌면 덕암리 쪽의 황새봉(393m)에서 발원해 주촌면·장유면을 관류하며 농경지를 형성하고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조구천(潮溝川)과, 진례면 산본리의 남쪽 용지봉에서 발원해 진례면·생림면을 북류하며 관개용수를 공급하는 화포천(花浦川)을 비롯해 동쪽의 대조천·예안천, 시 중심부의 해반천, 서쪽의 진례천·주촌천·죽동천, 서남쪽의 내삼천·죽동천 그리고 남쪽의 율하천·사촌천 등이 있다.
기후는 대체로 해양성의 온난다습한 기후를 보이는데, 연평균기온 14.4℃, 1월 평균기온 0.9℃, 8월 평균기온 25.6℃이며, 연강수량은 1,427㎜이다. 서리는 10월 말부터 내려 이듬해 3월 초순에 끝난다.
지질구조는 중생대 경상계 지층으로 덮여 있다.
[역사]
가락국(駕洛國)의 도읍지였던 김해는 청동기시대에 들어와 농경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인간생활의 터전이 되었는데, 부원동 등의 패총과 고인돌(支石墓)·고분군 등이 각 대학 박물관과 관계 연구기관에 의해 발굴되어 도처에 산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 2세기경에 고대국가의 틀이 잡히기 시작해, 삼한시대에는 구야국(狗耶國)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등장했고, 그것이 가락국으로 발전해 6가야국(加耶國)의 맹주국이 되었다.
서기 42년(삼한시대)에 김수로왕(金首露王)이 가락국(金官加耶)를 건국해 10대 491년을 이어 가야연맹체의 중심세력이 되었으며, 532년(법흥왕 19)에 구해왕(九垓王)이 신라에 투항해 금관군(金官郡)이 되었다가, 680년(문무왕 20)에 다시 금관소경(金官小京)이 설치되었으며, 757년(경덕왕 16)에 김해소경(金海小京)으로 개칭하였다.
고려 초인 940년(태조 23)에 김해소경은 다시 김해부가 되었다가 임해현(臨海縣)으로 강등되었으나 곧 임해군으로 승격했으며, 971년(광종 22)에 주도호부(金州都護府)로 승격했고, 1000년(목종 3)에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개칭하였다. 1012년(현종 3)에 김주(金州)로 개칭해 방어사를 두었으며, 1018년 의안(義安: 지금의 창원)·함안(咸安)과 칠원(漆原 : 지금의 함안군 칠원)·합포(合浦: 지금의 창원시 마산합포구)·웅신(熊神: 지금의 창원시 웅천)의 3현을 속군(현)으로 삼았다. 1078년(문종 32)에 동남해선병도부서사본영(東南海船兵都部署使本營)을 김해에 설치해 동남해 방비의 기지가 되었는데, 이 본영은 이후 존폐를 거듭하다가 1368년(우왕 4)에 폐지되었다. 1271년(원종 12)에 밀양에서 일어난 반란을 방어사 김훤(金晅)이 평정한 공으로 김녕도호부(金寧都護府)로 승격했으나, 1276년(충렬왕 2) 안렴사(按廉使) 유호(劉顥)가 살해되는 사건으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308년에 다시 김주목(金州牧)으로 승격되고, 1310년(충선황 2)에 김해부가 되었다.
김해부는 조선 초인 1413년(태종 13)에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로 승격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세종 때 김해부는 1,290호 1만 6642명이 살았으며, 웅신현은 63호 641명이 살고 있었다. 1467년(세조 12)에 지방군제 개편으로 경상우도병마절도사(慶尙右道兵馬節度使) 관하의 김해진관(金海鎭管)이 설치되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4월 19일에 김해성이 왜병에게 포위되자 부사는 성을 버리고 탈출했으나 고을 선비인 송빈(宋賓)·이대형(李大亨)·김득기(金得器)·유식(柳湜) 등이 의병을 일으켜 대적하다 순절하였다.『김해부읍지(金海府邑誌)』에 따르면, 1759년(영조 35) 김해도호부의 호구수는 8,511호에 인구수는 3만 3015명이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편으로 김해군이 되었으며, 1906년대산면(大山面)을 창원군으로 이관하고 양산군 대저면(大渚面)을 편입하였다. 1910년 23개 면을 14개 면으로 통합하고, 1918년좌부면(左部面)과 우부면을 김해면으로 통합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는 장유면 무계리를 중심으로 격렬하게 시위를 전개하였다. 1931년 11월 1일김해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33년 낙동대교가 준공되어 부산 구포와 연결되었으며, 1942년 10월 1일진영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남해고속도로가 개통된 해에 대저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6년 김해국제공항이 개설되었으며, 1978년 2월 15일 서낙동강 강동지역인 대저읍·명지면과 가락면 일부가 부산직할시 북구로 이관되었고, 다시 1989년 1월 1일가락면·녹산면이 부산직할시에 이관되었다. 1976년 4월 20일부터 중부·동부·서부출장소를 설치했고, 1979년 5월 1일 다시 북부출장소를 설치해 4개의 출장소를 운영해 오던 중, 1981년 7월 1일김해읍이 김해시로 승격해 김해군 1개 읍 9개 면과 김해시로 분할되었다가, 1995년 5월 10일 도농통합에 따라 김해군과 김해시가 통합되어 새로운 김해시가 되었다. 1998년 9월칠산동과 서부동을 통합하여 칠산서부동으로 개칭하였다. 2013년 7월 1일부로 장유면이 장유동으로 전환되었다.
[유물·유적]
불교문화재로는 상동면 감로리의 감로사지에 고려시대의 석탑귀부석등대석 등의 석불이 있고, 장유2동 대청동의 장유화상사리탑(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1호), 삼방동의 김해은하사대웅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8호), 구산동마애불(龜山洞磨崖佛,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86호), 진영봉화산마애불(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호)이 있으며, 구산동요지에서는 4기의 가마터가 발견되었다. 고려시대의 유적으로는 자연암벽에 폭 3cm 정도의 굵은 선으로 음각된 초선대마애석불이 있으며, 한림면의 안곡리삼층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4호)과 감로사지·백련암지·명월사지·중봉사지·임강사지·무척사지가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동상동에 사충단(四忠壇, 경상남도 기념물 제99호)이 있고, 대성동에는 김해향교(金海鄕校,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17호)가 있는데 1408년(태종 8)에 창건해 1770년 현 위치로 이건한 것으로 대성전·동무·서무·내삼문·명륜당·동재·서재·풍화루 등이 있으며, 흥동에는 선조국문교서(宣祖國文敎書, 보물 제951호)가 있다.
대동면 주동리 의 산해정(山海亭,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25호)은 남명 조식이 강도한 자리이며, 이 밖에 진례면 청천리에 낙오정, 담안리에 첨모재(瞻慕齋)가 있다. 상동면의 우계리주거지는 가야의 주거지로 추정된다. 장유면수가리패총에서는 신석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기와 골각기·방추차·흑요석 등이 출토되었고, 한림면용덕리패총에서는 신석기 말기의 토기가 발견되었다. 봉황동의 김해회현리패총(金海會賢里貝塚, 사적 제2호), 부원동패총, 장유면 유하리의 유하패총(柳下貝塚, 경상남도 기념물 제45호), 대동면 괴정리패총 등은 삼한시대 유적이다. 그리고 봉황동의 봉황대(鳳凰臺,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7호)는 가락국의 궁지였다고 한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은 ‘宋公殉節巖(송공순절암)’이라고 새겨진 서상동지석묘(西上洞支石墓, 경상남도 기념물 제4호), 기원전 4∼3세기에 축조된 내동지석묘(內洞支石墓, 경상남도 기념물 제97호), 명법동지석묘군, 광석지석묘, 용성지석묘, 장유면의 무계리지석묘와 유하리지석묘, 내연지석묘군, 연지지석묘, 용곡고인돌, 주촌면의 양동리지석묘와 망덕리지석묘, 지라지석묘 등이 있다.
서상동의 수로왕릉(首露王陵, 사적 제73호)과 구산동의 수로왕비릉(首露王妃陵, 사적 제74호)은 각각 가락국의 시조 수로왕과 허왕후의 능으로 전해진다. 전김해왕릉은 가락국 제2대 거등왕의 무덤, 능동고분군은 가락국의 제4대 거질미왕의 무덤으로 전하고, 김해구산동고분군(사적 제75호)은 약 6세기경에 조성된 것이다.
한편, 김해대성동고분군(사적 제341호)에서는 토기류와 공구·무기·마구 등의 철기류, 벽옥제옥장 등의 옥류가 출토되었고, 4∼6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김해칠산동고분군(경상남도 기념물 제98호)에서는 토광묘·목관묘·횡구식석실분·옹관묘 등의 다양한 묘제가 조사되었으며, 대동면의 김해예안리고분군(사적 제261호)에서는 총 125체의 인골이 출토되었다. 장유면 삼문리의 능동석인상 및 상석(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1호)은 가락국 왕릉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능동마을의 뒷산에 있는 고분 앞에 있는 문인석상과 상석으로, 능묘를 옹위하는 당시의 조각양식과 능묘제도의 변천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문헌으로 홍동의 선조어서각(宣祖御書閣,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0호)에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백성들에게 한글로 내린 교서가 보관되어 있다. 수로왕과 수로왕비의 신위를 봉안하고 향화를 받드는 전각으로 1878년(고종 15)에 건립된 숭선전에서 이루어지는 숭선전제례는 춘추향 2회로 춘향은 음력 3월 15일, 추향은 음력 9월 15일이며 시간은 상오 10시부터 약 1시간동안 거행된다.
산성으로 어방동의 분산성(盆山城, 사적 제66호)은 삼국시대의 산성으로 고려시대에 수축하고 임진왜란 때 개축했으며, 산성의 둘레 약 900m, 면적은 5만 721㎡이다. 천곡성도 가락국시대에 축조한 성으로 전한다. 김해부사 박위가 수축한 김해읍성은 임진왜란 때의 격전지로 유명하다. 주촌면에 있는 가곡산성이라고도 부르는 양동산성(良洞山城, 경상남도 기념물 제91호)은 남북의 두 성문에 초석이 남아 있으며 폭 2.5m, 둘레 약 800m이다. 각성산성 주위에서는 삼국시대의 적갈색연질토기편이 확인되었다.
동척철광지는 고려시대까지 철광산이었으며, 또한 수로왕이 하늘에서 내려온 구산동의 구지봉(龜旨峰, 경상남도 기념물 제58호)도 이 고장의 주요 유적이다. 천연기념물로 한림면에 김해 신천리의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185호)가 있고, 주촌면 천곡리에 김해주촌면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307호)가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대성동에 1408년에 창건한 김해향교(金海鄕校)가 있다. 형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을 교육·교화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0년(선조 33)에 부사 정기남(鄭奇男)이 중건하였다. 1683년(숙종 9)에 산사태로 무너진 것을, 1688년에 김후수(金後修)와 부사 이하정(李夏禎)이 중건해 지금의 자리인 송악산으로 옮겼는데, 50여 명의 교생(校生)을 정원으로 하는 중설향교로서 유학(儒學)을 가르쳤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지금에 이른다.
향교 이외의 공립 교육시설로는 800년(정조 24)1에 함허정(涵虛亭) 옛터에 설치한 양사재(養士齋)가 있었는데, 1821년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고 취정재(聚精齋)로 이름을 바꾸어 유생들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사설 교육시설로는 16세기 중반에 남명(南冥) 조식(曹植)이 산해정(山海亭)을 건립해 후학을 계도한 것이 처음인데, 나중에 신산서원(新山書院)으로 편액을 받았다. 그 밖에도 1642년(인조 20)에 설립한 구산동의 구천서원(龜川書院), 1703년(숙종 29)에 건립한 진례면 신안리의 송담서원(松潭書院), 1708년삼방동에 건립한 예암서원(禮巖書院), 1811년(순조 11)에 건립한 물봉서원(勿峰書院), 1832년에 건립한 진영읍 신룡리의 미양서원(薇陽書院) 등이 있었는데, 단이나 유허비만 남아 있는 곳도 있다.
신교육기관으로는 보통학교령에 의해 1908년에 지금의 동광초등학교가 설립되어 점차 각 면으로 파급되었고, 1909년에는 현 김해농업학교가 설립되었다. 1982년부터 어방동에 인제대학교 김해캠퍼스가 있어 1989년 종합대학교로 개편하였고 현재 가야대학교 김해캠퍼스와 함께 이 지역 고등교육의 산길로 자리 잡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 58개 교, 중학교 31개 교, 고등학교 23개교가 있으며, 3개 대학교(인제대학교·가야대학교·부산장신대학교)와 1개의 전문대학(김해대학교)이 있다.
문화시설로 시립 김해도서관, 장유도서관, 그리고 칠암도서관이 있다. 1964년에 개원한 김해문화원은 가락문화제 등의 향토행사를 주관하며 향토문화의 계승·발전에 공헌하고 있다. 외동에 위치하고 있다. 문화행사로는 가락문화제와 10월경에 진영읍에서 진영단감제가 열린다.
[민속]
이 지방의 유명한 놀이로는 가락오광대와 소싸움 외에 널뛰기·윷놀이·연날리기·지신밟기·씨름 등 전국적 분포를 보이는 민속놀이가 있다. 가락오광대는 1937년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된 탈놀음으로 상원날 밤에 연희되었다. 내용은 6과장으로 오방신장무과장, 상좌·노장중과장, 양반과장, 문둥이과장, 할미·영감과장, 사자무과장으로 되어 있는데, 영노과장이 따로 없고 할미과장에 나와서 영감(양반)을 욕하고 조롱하는 것은 가락오광대만의 특성이다.
소싸움놀이는 소를 먹이는 아이들이 즐겨 해 추석 무렵 본격적으로 쇠전(소시장) 근처에서 열린다. 상머슴이 고삐를 잡고 소싸움터로 끌고 가서 굴레를 벗기고 코뚜레도 빼 버리고 나오면 소끼리 뿔을 마주치고 싸움을 한다. 소가 밀리거나 달아나면 지게 되는데, 이긴 소에게는 목과 뿔에 비단과 종이꽃으로 장식을 하고 머슴이 타고 풍물을 울리며 돌아오면 주인집에서 술을 한턱 낸다. 원래 소싸움은 여름 동안 어느 집 머슴이 소를 잘 먹여 소가 힘이 세어졌는지 치하하려고 했던 것인데, 부농들의 세도자랑으로 번지고 근래에는 돈내기 등의 도박성향도 보이고 있다.
마을의 태평과 풍년을 비는 줄다리기는 상원경에 하는데, 마을사람들이 짚·돈·음식 등을 염출해 서부(수줄)와 동부(암줄)로 나누어 암줄의 고를 수줄의 고에 넣고 비녀목에 걸어 대개 3일쯤 당겨 승부를 겨룬다. ‘메구’라고 하는 농악놀이는 상원경에 즐기는데, 집안에서 치는 것을 ‘집돌금’, 샘에서 치는 것을 ‘샘굿’이라 해 정월 초에 집집마다 다니면서 가내 태평을 빌어 준다. 이 밖에도 아이들의 놀이인 풀쌈과 삘기따먹기 등이 있다.
이 고장은 대부분의 마을에서 동제를 지낸다. 흥동에서는 마을 뒤편 임호산 중턱의 산신당과 마을 중간에 있는 당산에서 연 1회 정월 14일 자정을 전후해서 동제를 지낸다. 동리에서 가장 연로한 사람을 제주로 삼고 도수 1명, 제관 2명을 선정해 제당(祭堂)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당산에서 당산제를 지낸 다음, 거리잡신을 위해 마을 동·남·서 세거리 입구에 제물을 진설해 제를 마친다. 다른 마을에서도 대체로 이와 비슷한 동제를 지낸다.
[설화·민요]
이 지방은 수로왕이 가락국을 건국했던 곳인 만큼 수로왕과 관계된 설화가 많이 전하며 지명유래설화도 풍부하다. 진영읍에는 신라 때부터 전하는 당나라 황후와 자암산(紫巖山)에 얽힌 설화가 있다. 미모의 당나라 황후가 웬일인지 우울하고 쇠약해지는데 백약이 무효였다. 어느 날 황제가 가위에 눌린 황후를 깨워 물으니, 밤마다 꿈속에서 어떤 청년이 침실을 침범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황제가 꿈에 신승(神僧)이 황후를 괴롭히는 청년을 바위틈에 가두는 것을 보고 꿈에서 본 산과 바위를 찾던 끝에 신라땅 김해 자암산에서 발견했는데, 그 뒤부터 황후가 회춘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암산 중턱에는 지금도 석불이 있다. 진례면의 외톨바위는, 선녀들이 자매의 순서정하기 공기놀이를 하다가 한 선녀가 옥황상제가 부른다는 전갈에 마음이 급해 공기를 하나 떨어뜨린 것이 바위가 된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 밖에도 진영읍 본산리 금봉의 「핏골」, 진영리 중부의 「세 그루의 회나무」, 주촌면 천곡리 용덕의 「아래가마소」·「떳다리」, 내삼리의 「김자점의 집터」, 대동면 주동리 원동의 「조차산(曺次山)에 관한 설화」, 장유면 삼문리 능동의 「중봉사(中峰寺)와 장군수」라는 절의 흥망 이야기, 생림면 무척산의 「천지전설(天池傳說)」 등이 다양하게 전해 내려온다.
이 고장에 전승되는 민요는 노동요와 비기능요인 타령요류가 중심이 된다. 노동요는 논농사가 중심이 되어 농업노동요가 주류를 이루나, 대도시 근교라서 일찍부터 농업기계화의 물결을 탔고 왕래가 잦아 비기능요의 비중도 크다.
농업 노동요로는 「모내기노래」·「논매기노래」·「보리타작노래(打麥謠)」를 들 수 있는데, 그 중 「모내기노래」를 「등지노래」라는 특별한 명칭으로 부른다. 「등지노래」의 사설은 보통 전승되는 모내기노래의 사설과 비슷하나, 한림면·주촌면의 것에 ‘허이’나‘헤이’라는 감탄어구가 삽입되는 것이 특이하다. 한림면의 「등지노래」는 다음과 같다. “(앞소리) 밀양에 삼랑[三浪津] 왈자처녀/ 허/ 이/ 전옥(典獄)간에 갇혔다에(뒷소리) 사정사정 옥사정[獄鎖匠]아/ 허/ 이 옥문쪼끔 열어주소.”
「논매기노래」는 후렴이 경상남도의 대표적인 ‘∼상사듸야’형을 사용하고 앞부분만 ‘이어열열’이라 해 2음보 후렴 중 가장 안정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보리타작노래」는 경상남도 특유의 것으로 단조로우면서도 힘차고 규칙적이다. 보통은 후렴이 ‘옹헤야’·‘에와(화)’·‘에오’·‘요오’ 등으로 단순하고 간단하나, 이 고장의 것은 상당히 길고 복잡하다.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개구리 보리는 살살간다/ (후렴)오헤야 헤야 헤야헤야 여기처라 헤야헤야/ 건너산에 비 묻어온다. (후렴)”
이 밖에도 부녀노동요로 「베틀가」·「시집살이노래」 등이 전해 온다. 비기능요인 타령요류도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다. 「각설이타령」·「창부타령」 등이 널리 불려지나 다른 지방의 것과 비슷하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동물을 소재로 한 타령과 상사·연정을 노래한 타령들이다. 「닭타령」·「소타령」·「이타령」 등은 다른 지방에서는 대체로 동요의 소재가 되는 것들을 타령으로 부른 것이며, 「처녀타령」·「과부타령」·「며느리타령」 등은 여자들의 연정과 고난을 노래한 것이다. 「폐가타령」이라 해 일상사의 조그만 잘못이 집안을 망치는 것을 노래한 것이 있는데, 사설이 재미있다.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자부다가 첩을잃고/ 첩 찾다가 본댁잃고/ 개치다가 짝지잃고/ 똥누다가 바지잃고…….” 이 밖에도 「줌치노래」·「아이 어르는 노래」 등의 동요와 「성주풀이」 등의 의식요가 있다.
[산업·교통]
지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3,000여 개의 중소기업체가 이 지역경제발전의 주축이며 저렴한 물류비 등 우수한 입지 여건으로 매년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한반도 동남권의 기계 테크노벨트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21C 다품종 생산 시대에 유리한 입지조건으로 인하여 선진농업지역으로 도약하고 있다.
이 시는 시가지면적이 142.05㎢이며, 이 중 대지면적은 32.50㎢로서 시가지면적 중 용도지역에 해당되는 대지면적은 22.9%이다. 이를 세분하면 주거지역 12.76㎢, 상업지역 1.42㎢, 공업지역 3.60㎢이며 잔여부분은 도로 및 녹지지역에 해당된다.
한편, 1995년 행정구역 개편시 광범위한 배후지 촌락지역의 편입으로 넓은 농경지면적이 시역에 포함되었다. 총경지면적은 110.2㎢이며 이 중 논이 86.2㎢, 밭이 24㎢로 각각의 점유비는 논이 78.2%, 밭이 21.8%이다. 즉, 논이 밭에 비해 약 4.5배 이상으로 낙동강 삼각주 평야지대의 주요 곡창지대를 이룬다. 관내의 논농사는 주로 대동면·장유면·주촌면·생림면 등지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며, 난대성 기후의 특성상 벼농사 외에도 채소 등을 재배하는 계절별 이모작 영농이 이루어진다.
시의 농가호수는 7,801호, 농가인구는 2만 2725명으로 농가인구율은 4.8%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주곡인 쌀 외에 보리·콩·고구마·채소 등이 주로 재배된다. 특히 시는 우리나라 제2의 대도시권인 부산광역시의 배후지 근교도시적 성격을 지녀, 농가인구의 20% 정도가 양배추·상추·배추·무·오이·가지 및 참외·딸기 등을 집약적으로 재배하는 근교농업이 이루어진다. 또한 겨울철 온상재배를 이용한 과수 및 채소재배와 화훼농업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영남 제일의 근교농업지역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또 대도시의 배후지적 성격을 이용해 부산에서의 수요를 목표로 한 전문 축산영농도 활발히 이루어져 젖소·돼지·닭 등을 대규모로 사육한다. 그리고 토양과 기후가 좋아 맛이 좋은 진영단감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임산물로서는 양송이재배 및 양봉이 일부지구에서 이루어진다. 수산업은 과거에 담수어 양식과 바다에서의 어업이 이루어지다가 근래에 와서 하천의 오염과 도시화의 진전으로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광업의 경우 8개 업소에 94명이 고용되어 있다. 사회 및 개인서비스업과 도·소매업 및 음식숙박업이 비교적 활발하게 영위되는 것은, 대도시 근교도시로서 지역 내 주민은 물론 역외지역의 유동인구가 시에서 일시체류 또는 통과하는 경우에 발생시키는 서비스 및 판매의 소비수요에 부응키 위한 주민의 경영적 이윤동기가 작용된 것으로 보인다. 시장은 대형마트 3개, 전문점 3개, 쇼핑센터 1개, 등록시장이 4개가 있다.
김해국제공항, 부산항 등 국제적인 교통망과 남해고속도로, 김해·양산간 고속도로, 부마고속도로 등 3개의 고속도로를 갖추고 전국을 연결하는 최고의 교통요건을 갖추고 있다. 교통은 부산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매우 편리하며, 부산∼광주간의 남해고속도로가 시를 동서로 지나고, 부산∼마산간의 국도와 그 외에도 많은 지방도는 이 지역에의 접근성을 높이는 주요 기반시설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시의 북부에는 경전선이 지나 교통의 요지이다.
[관광]
낙동강 하류의 저평한 평야에 자리 잡은 이 고장은 수향(水鄕)이자 고대 변한과 옛 가락국의 영토로 유형·무형의 각종 문화재가 많은 역사적인 고장이다. 부산광역시와 접해 있는 데다가 낙동강변의 경치가 수려하고 철새도래지·낚시터 등이 산재해 공휴일에는 수많은 탐조 유람객이 찾아든다.
시의 중앙에 솟은 기암괴석의 신어산은 소금강으로 불릴 정도로 절경이며, 이 곳에서 바라보는 낙동강변과 삼각주평야는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신어산과 양산 토곡산 사이의 깊은 협곡을 따라 굽이굽이 흘러가는 낙동강은 조선시대에 황산강(黃山江)으로 부르던 아름다운 강으로, 흰 모래사장과 과수원이 줄지어 있어 장유면 대청리의 장유계곡과 함께 ‘한국의 다뉴브강’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서낙동강 일대는 전형적인 수향으로, 도요새·백조·청둥오리·가마우지 등 100여 종의 철새들이 찾아드는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로 유명하다. 부산의 전원지역으로 교통이 편리한 데다 공해에 오염되지 않은 관광자원이 풍부해 앞으로 관광지로 크게 부각될 전망이다.
매년 개최되는 가야세계문화축전(GIFC)은 김해시 가야유적지 일원에서 이루어지는 가야문화를 계승하고 이 고장의 예술적 가치를 드높이려는 수준 높은 예술축제이다. 가락문화제는 김수로왕의 창국정신을 기리고 조상이 남긴 문화유산의 얼을 되새기며 지역민의 화합과 단결을 위한 행사로서 민속행사, 축제행사, 부대행사로 이루어진다. 매년 10월에 개최되는 김해예술제는 지역예술인들의 창작의욕을 높이고 양질의 문화예술 작품들을 시민들에게 선보이는 이 고장 유일의 순수예술축제이다. 이외에도 가락문화제, 김해분청도자기축제 등이 있다.
1998년에 개관한 국립김해박물관은 구지봉(龜旨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가야(加耶)의 문화유산을 집대성하기 위해 개관되었으며 부산·경남 지역의 선사시대의 문화과 가야의 성장 기반이 된 변한(弁韓)의 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다. 2006년 개관한 봉항동유적패총전시관은 회현리패총으로 유명한 봉황동유적의 패총 발굴면을 실물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 2005년 개관한 김해문화의 전당은 내동에 자리 잡고 있으며 최첨단 무대시설의 대·소공연장과 전시관, 영상미디어센터, 빙상장을 갖춘 스포츠센터 등 다양한 문화·레저 체험을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예술공간이다.
내동에 위치한 김해시민스포츠센터는 약 만평에 이르는 종합스포츠시설로서 수역과 빙상을 비롯한 다양한 스포츠를 관람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봉황동에는 김해공설운동장이 위치하고 있다.
[읍·면]
1. 진영읍(進永邑)
시의 서북부에 위치한 읍. 면적 39.72㎢, 인구 4만 5154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여래리이다. 본래 김해군 지역으로 하계면(下界面)이라 해 여래(余來)·우동(牛洞) 등 5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부면의 신룡(新龍)·내룡(內龍)·설창(雪倉) 등 6개 리와 상북면의 일부를 병합해 하계면이 되었다. 1928년에 진영면으로 개칭, 1942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남부에는 동서로 뻗은 금병산(金屛山)을 비롯한 소규모의 산지들이 있으며, 북부에는 읍의 북쪽에서 동류하는 낙동강과 소지류들이 이룬 진영평야가 동서로 전개되어 있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평야지대를 중심으로 쌀·보리·채소·감자 등이 생산되며 한우와 닭의 사육도 활발하다. 특히 최근 부산의 근교농업지역으로 변모하고 있으며, 단감나무단지의 개발로 전국적인 단감명산지가 되고 있다. 도로는 경전선 철도와 부마고속도로가 통하고, 부산∼대구간의 국도와 부산∼마산간의 국도가 교차해 부산·대구·마산·창원 등지와의 교통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진영리의 남방식고인돌, 본산리의 가야시대 절터, 하계리의 진장군묘(陳將軍墓) 등이 있다.
여래(余來)·진영(進永)·본산(本山)·하계(荷溪)·우동(牛洞)·방동(芳洞)·사산(舍山)·좌곤(佐昆)·신룡(新龍)·설창(雪倉)·내룡(內龍)·죽곡(竹谷)·의전(蟻田) 등 13개 리가 있다.
2. 대동면(大東面)
시의 동단에 위치한 면. 면적 48.60㎢, 인구 7,30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초정리이다. 본래 김해군 지역으로 김해의 동편 아래쪽에 있어 하동면(下東面)이라 해 수안(水安)·주중(酒中)·초정(草亭)·시례(詩禮)·괴정(槐亭) 등 11개 리를 관할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안·주중·주동·예안·초정 등 10개 리로 개편되었고, 1944년대동면으로 고쳤다. 상동면과의 경계에 신어산이 있고 중앙에 태백산(太白山, 352m)·까치산(272m) 등의 낮은 산이 있으나 낙동강연안에는 비옥한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다. 1934년에 가설한 대동수문은 바닷물이 거슬러 올라오는 것을 막는 동시에 조수지로서 김해평야의 관개를 담당한다.
산업은 쌀이 주산물이지만 낙동강에서 얻는 어획고도 많으며 고등채소와 원예 소득도 높다. 도로는 김해시와 부산 방면으로 지방도가 통하나 전반적으로 교통이 불편한 편이다. 한편 낙동강변에 물금(勿禁)·고암나루터가 있어 부산과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예안리의 고분군, 주동리의 산해정과 조선시대의 요지(窯址) 등이 있다.
괴정(槐亭)·대감(大甘)·덕산(德山)·수안(水安)·예안(禮安)·월촌(月村)·조눌(鳥訥)·주동(週同)·주중(酒中)·초정(草亭) 등 10개 리가 있다.
3. 상동면(上東面)
시의 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70.52㎢, 인구 3,54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대감리이다. 본래 김해군 지역으로 김해읍내 동쪽 위쪽에 있으므로 상동면이라 해 용당(龍塘)·후포(後浦)·학운(鶴雲)·용성(龍城)·감로·신곡(新谷) 등 20개 리를 관할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6개 리로 개편되었다. 면의 동북쪽은 낙동강에 접해 있고, 북부에는 생림면과의 경계에 무척산이 있으며, 남쪽의 대동면과의 경계에는 신어산, 대감리·감로리 사이에는 금동산(琴洞山, 463m) 등 산악이 많다.
농산물로는 채소류가 많으며 낙동강에서 잡는 어획고도 많다. 또한 산에서 따는 표고버섯을 비롯한 버섯류가 많으며 양봉업도 활발하다. 도로는 김해와 부산 방면으로 지방도가 나 있으며, 낙동강변에 개목·고암·양동 등의 나루터가 있어 양산시 원동(院洞)으로 통한다.
문화유적은 감로리의 감로사지와 백운암, 대감리의 조선시대 도요지, 여차리의 모석정 등이 있다.
감로(甘露)·대감(大甘)·매(梅)·묵방(墨方)·여차(余次)·우계(牛溪) 등 6개 리가 있다.
4. 생림면(生林面)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50.19㎢, 인구 4,18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봉림리이다. 본래 김해군 지역으로 생림면이라 해 사촌(沙村)·나전(羅田)·봉림(鳳林)·금곡(金谷) 등 7개 리를 관할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북면의 용덕리(龍德里) 일부와 밀양군 하동면(下東面) 일부를 병합해 오늘에 이른다. 면의 대부분이 무척산과 작약산(芍藥山, 377m) 등 산지로 되어 있으며, 이 산지 사이를 작은 하천이 북류해 낙동강에 합류한다.
산업은 북쪽의 평야지대에서 쌀과 보리 및 채소와 과일이 재배된다. 또한 산지를 이용한 양계업과 양돈업도 한다. 도로는 면의 중앙을 밀양∼김해간의 국도가 통과하고 서쪽으로 경전선이 지난다.
문화유적은 봉림리에 가락국 수로왕 때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는 마현산성과 가야시대의 고분·선은대비(宣恩臺碑)·순례비군(巡禮碑群), 생림리에 삼국시대 고분, 마사리 왜성, 생철리에 무척사지, 도요리에 사리탑과 비로암지, 사촌리에 어씨열녀비 등이 있다.
나전(羅田)·도요(都要)·생철(生鐵)·마사(馬沙)·봉림(鳳林)·사촌(沙村)·생림(生林)·안양(安養) 등 8개 리가 있다.
5. 주촌면(酒村面)
시의 중앙부에 위치한 면. 면적 31.22㎢, 인구 3,43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천곡리이다. 본래 김해군 지역으로 주촌면이라 해 외선(外仙)·원지(元支)·천곡(泉谷)·연지(宴支)·망덕(望德)·농소(農所) 등 10개 리를 관할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8개 리로 개편되었다. 면의 이름은 주주봉(酒主峰) 아래에 있기 때문에 연유된 것인데, 주주는 주지(술말)로서 마을로 변해 주촌면이 되었다.
김해시가지와의 사이에 있는 경운산(慶雲山, 378m), 진례면과의 경계에 있는 황새봉 등 고산은 아니나 산지가 많고, 한림면으로 넘어가는 정골[正谷]에서 시작하는 조만강이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원지리에 이르러 여러 골짜기의 물을 합해 면의 가운데를 흐르며 분지형 경지를 관개한다.
남쪽의 평야지대에서는 쌀이 주로 생산되는데 쌀맛이 좋고, 주지봉 아래의 물이 옥수 같아 술맛이 일품이어서 원님에게 진상했다고 한다. 면의 남쪽으로 남해고속도로가 동서로 관통하고 있는 데다 지방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천곡리에 천곡성과 조개더미, 원지리에 가야시대의 석길고분군, 내삼리에 성지, 양동리에 가곡산성과 삼국시대의 고분군·고인돌·조개더미, 망덕리에 고인돌, 농소리에 조개더미 등이 있고, 천연기념물로 천곡리에 이팝나무가 있다.
천곡(泉谷)·내삼(內三)·농소(農所)·덕암(德巖)·망덕(望德)·선지(仙池)·양동(良洞)·원지(元支) 등 8개 리가 있다.
6. 진례면(進禮面)
시의 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44.83㎢, 인구 7,82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송정리이다. 본래 김해군 지역으로 이 곳에 있는 진례성(進禮城)의 이름을 따서 진례면이라 해 청천(晴川)·시례(詩禮)·송정(松亭) 등 5개 리를 관할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율리면(栗里面)의 고모·고령(高嶺)·상우(上右)·개동(蓋洞)·담안·송현·산본 등 9개 리와 중북면의 의전리와 죽곡리 일부를 병합하였다. 장유면과 창원시의 경계에 용지봉이 있고, 주촌면과의 사이에 황새봉이 있다. 산본리 남쪽 여러 골짜기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흘러 신월리·조전리·송현리를 거쳐 흐르는 송현천(松峴川)이 면의 가운데를 남북으로 흐르며 분지형 경지를 관개한다.
농산물로는 쌀 이외에 별다른 특산물이 없으나 산나물이 군내에서 가장 흔한 곳이다. 또한 산지를 이용해 한우와 산양도 많이 사육한다.
도로는 면의 남쪽으로 남해고속도로, 북쪽으로 부산∼마산간 국도가 통과해 교통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청천리에 낙오정, 담안리에 첨모재, 신안리에 팔성암지(八聖庵地)와 송빈·김득기·이대형을 봉안했던 송담사지(松潭祠祉) 등이 있다.
고모(古慕)·담안(淡安)·산본(山本)·송정(松亭)·송현(松峴)·시례(詩禮)·신안(新安)·신월(新月)·청천(晴川)·조전(棗田) 등 10개 리가 있다.
7. 한림면(翰林面)
시의 중앙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59.41㎢, 인구 9,07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장방리이다. 본래 김해군 지역으로 옛 김해읍의 북쪽에 있으므로 하북면(下北面)이라 해 신천(新泉)·용덕(龍德)·명동(明洞)·안곡(安谷)·퇴래(退來)·병동(屛洞) 등 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북면의 가산(佳山)·가동(佳洞)·장방·시산(匙山)의 4개 리와 생림면의 생림리 일부, 그리고 밀양군 하남면의 명례리 일부를 병합해 상북과 하북의 두 자를 따서 이북면이 되었다가 1987년 한림면으로 개칭되었다. 남쪽에 봉화산(烽火山)이 동서로 달리고 있으나 대부분이 낙동강의 하안평야이다. 또한 북으로 낙동강이 동서류하고 서쪽에 주천강(注川江)이 북류하기 때문에 평야가 발달하였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며, 부산과 가까워 무·배추·참외·수박 등의 근교농업도 발달했고, 감과 연근도 많이 생산된다. 이 밖에 양돈·양계업도 활발하다. 도로는 금곡리에서 장방리를 거쳐 진영읍으로 통하는 경전선이 통과하며, 낙동강변에 명례나루가 있다. 문화유적은 안곡리에 고려시대의 삼층석탑, 명동리에 김득기의 낙산재와 김득기묘, 퇴래리에 권형효자비, 신천리에 이팝나무 등이 있다.
장방(長方)·가동(佳洞)·가산(佳山)·명동(明洞)·병동(屛洞)·시산(匙山)·신천(新泉)·안곡(安谷)·안하(安下)·용덕(龍德)·퇴래(退來)·금곡(金谷) 등 12개 리가 있다.
8. 장유1·2·3동[구 장유면(長有面)]
시의 서남부에 위치한 동. 면적 55.18㎢, 인구 14만 4710명(2015년 현재). 본래 김해군 지역으로 장유암의 이름을 따서 장유면이라 해 대청(大靑)·삼문(三文)·화촌(花村)·관동(官洞)·율하(栗下) 등 8개 리를 관할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유하면(柳河面)의 유하·무계·내덕·신문의 4개 리를 병합해 12개 리가 되었다. 창원시 진해구와의 경계에 굴암산이 있고 창원시와의 경계에 불모산과 용지봉이 있다. 이들 산악에서 발원한 율하천(栗下川)과 대청천이 농경지를 관개한다.
산업은 쌀과 보리가 대부분이지만 산지가 많아 버섯류와 산나물의 소출이 많은 편이고, 축산업도 하며 최근에는 각종 제조공장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도로는 부마고속도로와 여러 개의 지방도로가 통과해 교통이 비교적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무계동의 고인돌, 내덕동의 내덕산성과 3·1운동기념탑, 유하동의 가야시대 고분과 패총, 삼문동의 중봉사지와 가락국 왕릉이라 전하는 고분, 대청동의 장유화상사리탑, 응달동의 가락국왕의 포의(胞衣)를 매봉한 것이라 전하는 태봉과 태봉을 수호하기 위한 절이라는 임강사지, 수가동의 패총 등이 있으며, 조선시대에 정치회의 장소로 사용되었던 수령 530년 된 느티나무가 도지정보호수로 되어 있다.
관동(官洞)·내덕(內德)·대청(大淸)·무계(茂溪)·부곡(釜谷)·삼문(三文)·신문(新文)·유하(柳下)·율하(栗下)·응달(應達)·장유(長有)·수가(水佳) 등 12개 법정동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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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집성』(이창배, 1981)
『경남교육사』(경상남도교육위원회, 1980)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79)
『한국민요집』(임동권, 1975∼1981)
『향토와 인물』(김해군, 1962)
출처 : 김해시(www.gimhae.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