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한의학의 불확실성 밝힌 ‘삼극의학’
“실력 우수하면 한의학이 주류될 수 있어”
서울서 진천행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가면 경기도 용인시에서도 외곽지역에 해당하는 좌전이란 곳이 나온다. 여기서 다시 택시로 5분 정도 들어가면 통나무로 지은 감로한의원을 찾을 수 있다. 얼핏보면 별장인가도 싶지만 원삼면이라는 이곳 시골마을에선 거의 유일무이한 의료기관이라 할 수 있다.
오수일 원장(47)이 이곳 시골마을까지 오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84년 서울 종로 오륜한의원에서 진료를 시작한 오 원장은 이듬해 서울 논현동의 건물 한층을 빌려 기수련에 관심이 있는 한의사, 대학교수, 작곡가 김도향 씨 등 10여명을 대상으로 매일밤 9시부터 새벽 1~3시까지 7년동안 기수련을 가르치며 동호회같은 모임도 운영했다. 훗날 김도향 씨가 태교음반을 내는 데에도 자문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수련 모임에서 호응을 얻고 효과를 본 오 원장은 이를 환자들에게도 적용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90년부터 보생한방병원을 개원해 운영했으나 한방병원에서는 직원이 40명 이상 되다보니 인력관리와 병원행정에 신경 쓰느라 환자진료에 적용해 보고자 했던 기수련은 미처 신경을 쓸 수 없었다. 하는수 없이 2년후 동창에게 한방병원을 인계해 주고 소백산으로 들어가 수련생활을 했다.
그러던 93년 서울에 잠깐 올라왔다가 압구정동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던 후배의 권유로 약 5년간 진료를 맡게 되었다. 입지적인 이유도 있고 경제적인 수준도 높아서인지 연일 몰려드는 환자들을 진료하느라 심신은 지칠 대로 지친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환자를 조금 덜 보는 한이 있더라도 마음의 여유를 얻고 그가 하고자 하는 한의학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조용한 곳을 찾아다니다 발견한 곳이 지금의 감로한의원이 있는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시골마을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99년 개원한 이래 지금까지 진료해 오고 있는 오 원장은 처음엔 그저 조용한 시골마을로 생각하면서 침도 놓고, 책도 쓰는 등 한가로운 생각으로 시작했으나 점차 인근지역을 비롯한 원거리지역에서까지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환자들이 제법 늘어났다고 했다.
오 원장이 한의계와 인연을 맺게 된 배경은 1969년 초등학교 5학년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려서부터 단전호흡과 명상, 무술 등을 좋아했던 그는 이때부터 지금까지 35년간 밥먹고 놀러다니는 것보다 수련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고 한다. 그 결과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한 ‘氣感’을 갖게 되었고 이러한 기감은 한의학 원리를 연구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한의대를 입학하기 전인 서울고등학교시절에도 단전호흡과 기공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이러한 훈련의 바탕이 된 도가와 불교사상에 심취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경락과 기의 흐름을 구체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한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도가수행과 관련된 내용이 들어 있는‘동의보감’(남산당 刊) 번역본을 용돈을 모아 구입해 책이 너덜너덜해 질 정도로 여러차례 탐독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듯 조금은 남다른 고등학교시절을 보낸 그는 집안의 반대가 있었지만 76년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한다.
그는 “엄밀히 보면 한의학과의 인연은 인술의 관점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으며 나에겐 ‘심신단련’이 제1테마인 셈이었다”고 털어놨다.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은사로 소설 ‘丹’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했던 봉우 권태훈 선생을 꼽았다. 그전까지는 여러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배웠지만 언제나 뭔가 중요한 것이 하나 빠져있는 듯한 느낌은 지울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오 원장은 권태훈 선생으로부터 배운 ‘호흡수련’으로 인해 정신적인 힘, 즉 깨달음이 생겨 내관(내면을 보는 감각)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러한 수련을 통해 얻은 내관의 힘 덕분에 고대 한의학의 선구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한의학을 연구할 수 있었고 또 그 과정에서 한의학 원리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이를 이용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조금 더 깊이 들어갈수록 서로 상충되는 이론들이나 모순되는 부분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오 원장은 “황제내경 같은 원전을 기준으로 해서 그 이론에 부합되면 맞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틀린 것으로 간주하려는 자세는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예를 들어 100가지 중 99가지가 맞고 1가지가 틀리면 그 원인을 찾아 규명해내야 하는데 하나 틀린 것쯤은 간과해 버린다는 것이다. 현재의 한의학도 이러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어떤 문제가 발생되면 이를 연역적인 사고로 풀어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의학의 기초가 생리학인데 과거 황제내경을 보면 간이나 신장에 대한 연구는 양적으로도 많았으나 심포나 삼초(동맥, 정맥 림프 등의 혈관계통)에 대한 연구는 아주 미미한 수준이라고 했다. 심포나 삼초가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닌데도 연구하던 중간에 멈춰버린 것이라고 했다. 한의학의 근원적인 문제점이 생리학의 불완전함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이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생리학, 병리학 그리고 진단 및 치료학의 문제점들이 동시에 해결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연구과정에서 오행이론이 한의학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라는 사실도 발견했다. 오행이론의 하나인 상생상극은 훌륭한 이론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맞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오행의 상생상극이론은 대단히 매력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상생상극’이론이 들어맞지 않는 경우에는 ‘상승상모’이론이라는 예외규정을 두어 허점을 드러내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동안은 불완전한 이론을 토대로 치료가 되면 좋고 안되면 할 수 없는 식으로의 유지가 가능했을지 모르나 현대에는 특히 서양의학을 상대로 불완전한 생리이론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오행이론처럼 수단만 가지고는 더 이상 한의학의 생존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불합리성을 가지고 있는 오행론을 배제하고 음양론을 발전시킨 ‘음양삼극’ 원리를 찾아내면서 그동안 가져왔던 여러 가지 한의학의 모순점들이 하나하나 풀려나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렇게 그가 기존의 생리, 병리이론들을 ‘기감’과 ‘내관공부’를 통해 검증하고 서양의학의 이론과 비교 검토해 이를 하나의 체계로 정리한 것이 ‘삼극의학’이론이며, 최근에는 이를 책(메디터치 刊)으로 펴내기도 했다.
여기서 ‘삼극의학’의 ‘삼극’이란 온도·풍도·습도 등 세 가지에 따른 각각의 음양분류를 뜻한다.
그가 ‘삼극의학’이란 이론을 연구하고 정리하게 된 것은 불완전한 것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고, 인체에 대해 알고자하는 뜻에서였다고 설명했다.
오원장은 “생리학이 완전할 때 그를 기초로 하는 병리학과 진단, 침구 및 약물 등의 임상치료학이 완전한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이렇게 완전한 체계를 갖춘다면 오히려 서양의학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난치병의 치료까지도 한의학적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기본적인 치료의학관에 대해 A라는 환자를 어떠한 한의사가 진료하건 간에 같은 원리에 의해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믿는다고 했다. 즉 서양의학에서 간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하면 한의학에서는 원인이 심장에 있다고 보더라도 이것이 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진단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원장은 “한의사의 길에 대해 당연히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지만 마음까지도 치료할 수 있어야 하고, 자만하지 않으면서 임상적으로나 학문적으로 계속 연구 보완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한의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개인적인 모든 인간관계 또한 원만해야만 환자진료에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삼극의학’ 이론을 더 많은 한의사들이 좋은 임상으로 활용해 보다 많은 환자들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앞으로 지금까지 연구해 뼈대를 만들어 놓은 이 이론을 특히 임상쪽에 비중을 더 두어 계속해서 더 깊이 있게 연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 이론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한의사들의 전체적인 진료수준이 좀 더 높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한편 현재 중국의 의료가 양진한치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치료수단만 남아 있고 점점 서양의학에 흡수되어 가고 있는 것이 큰 문제라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실력이 있어야 하고, 어느 한의원을 가나 진단이 똑같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한의학이 완전해지고, 실력이 우수해지면 일원화의 위기에서도 오히려 한의학이 주류의학으로서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진료하랴 연구하랴 쉴틈없는 오 원장이지만 하루일과중 저녁식사 만큼은 요리에 취미가 있는 그가 직접 준비한다. 그가 만든 요리로 즐거워 할 두 딸과 아내를 떠올리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고. 그의 이런 쑥스러운 미소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오수일 원장의 대표적 저서로는 ‘태교명상’과 ‘생활한방·氣’ 등이 있다.
용인 = 강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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