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과 기중기(起重機) 청나라 강희재(康熙宰)는 중국 고금의 방대한 문헌들을 모아 활용하기 좋게금 6000여 항목으로 분류해 재구성한 세계사상 최대의 유서(類書)인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1만1000여권을 편찬 중국에 르네쌍스를 일으켰다. 조선 정조(正租)대왕은 이 고금도서집성 한 질을 사오게 하여 우리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는 밑거름이 되게 하였다. 정조는 그 중 독일인 선교사 Schreck. J 가 서술한 서양 축성법(築城法)이 분류된 기기도설(奇器圖說) 한 책을 정약용에게 주어 연구하게 하였으며 다산 정약용은 이를 근거로 ‘기중가설’을 지어 정조에게 바쳤다. 여기에 녹노와 독창적인 설계에의한 거중기(擧重機.또는 擧重器)가 제작되였고 이 녹노와 거중기로 현재 수원성인 ‘화성 성역’을 쌓게 하였다. 이 거중기의 자세한 설계도는 화성성역의괴(華城城役儀 車丸)에 수록되여 있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 - 1836)은 31세에 이 새로운 건설도구인 녹노와 거중기를 활용하여 10년 공사로 예정된 수원성 축성을 3년 안에 완공 할수 있었던 것이다. 정조18년 서기 1794년 2월 28일 기공하여 정조 20년 서기1796년 9월 10일로 2년 7개월 만에 완공하였다. 정조대왕이 정성을 다하여 축성한 이 수원성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인류 문화 유산에 올라가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정약용은 수원성 축조시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하여 현재의 도급방식과 비슷한 작업량에 따른 임금 지급방식을 채택하였으며, 수원성을 조기에 완성할수 있었던것은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새로운 첨단 장비를 고안 하여 자재운반에 사용하는 유형거 라는 수레와, 돌을 들어 올리는 거중기(擧重機)를 제작하여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이 거중기가 우리 나라 최초의 기중기(起重機)로 200여년 전에 제작하여 토목 공사에 활용 하였다는 것은 획기적인 사실이다. 이 거중기를 개량 발전시켜 현재의 기중기(起重機, crane)로, 우리 나라에서 승화시키지 못한 것은 우리 후손들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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