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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군(達城郡)은 부·군·면의 통폐합에 따라 대구부(大邱府)의 외곽과 현풍군을 합쳐 1914년 3월 수성면 등 16개 면을 관할하면서 출범되었습니다. 그리하여 2014년이 되면 달성군은 개청 10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1995년에 경북도에서 대구광역시로 편입이 되고 현재 3개의 읍과 6개의 면으로 구성되어져 있지요.
100년의 역사를 앞두고 달성군에서는 여러가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개청100년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로 달성군의 옛 사진들을 수집하여 순회전시를 하는 '옛 사진으로 보는 100년 달성' 전이 인기랍니다. 40代 이상의 어른세대들한테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어릴때의 추억과 향수가 물씬 풍겨나는 애틋한 흑백사진들입니다. 고향을 달성에 두고 계신 분들은 누구보다도 감회가 새로운 사진들입니다.
이 외에도 달성군에서는 100년 달성 기념사업 준비원년을 맞아 달성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달성군 홈페이지에 '100년 달성, 역사자료실' 코너를 오픈하여 누구나 열람을 할 수 있게 하여두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 외에도 100년 달성을 되돌아 보는 다양한 자료들이 있으니 시간 되시면 한번 둘러 보시길 바랍니다.
(http://www.dalseong.daegu.kr/dalseong/administration/sub01_17.html)
아래 자료는 순회전시를 보지 못한 분이나, 고향을 달성에 두고 있으면서 타향에 계신 분들을 위하여 만든 사진첩입니다. 기억속에 뚜렷한 유년의 추억과 함께 내고장 달성의 애향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래 봅니다.
조기청소 (가창 용계리, 1972년)
새마을운동 사업의 일환으로 추석 전 대청결 운동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가창면사무소 앞 도로이며 사진의 가창농협은 현재 명광약국 건물이다.
마을진입로 확장사업(구지 예현리, 1972년)
현재 구지면 예현리 마을에서 창녕군 대합면 이방리 방면으로 촬영한 것으로 1972년 봄 마을 진입로 확장사업을 마을주민 전체가 참여하여 리어카, 삽 등으로 평탄화 작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은 구마고속도로 및 달성2차산업단지 진입도로가 개설되어 지나가고 있으며, 공사 중이던 마을 진입로는 현재 아스팔트가 포장된 2차선 도로가 개설되어 버스가 다니고 있다.
강창나룻배(다사, 1964년)
현재 다사읍 죽곡리에서 달서구 파호동 방향으로 촬영한 것으로 벌거벗은 산 배경이 이락서당, 양수시설, 민가, 나룻배 등을 더욱 뚜렷이 부각 시킨다. 나룻배를 탄 여유로운 사람들과 손수레, 자전거가 이채롭다. 뱃머리에서 시선을 집중시키는 그 누구와 손수레, 자전거에 실린 그 무엇이 궁금하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락서당과 양수장 시설만이 강창 나룻터의 흔적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을 따름이다.
지붕 개량사업(다사 매곡리)
현재 다사중학교 정문쪽에서 한일 유엔아이 아파트 방향으로 촬영한 것이다. 속칭 뒷동산으로 불리던 산과 마을 일부가 공동주택 개발로 사라지고, 사진의 앞쪽과 오른쪽 일부가 남아 있다. 하역작업에 무관심한 꼬마들과 천막에 설치한 현장지휘소가 흥미롭다.
현재 이천리 음지길 뒤쪽 산에서 윗골 방향으로 촬영한 것으로, 초가지붕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어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새마을 운동이 1970년부터 시작하였으니 지붕개량이 되지 않아 지연스러운 옛 풍경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용연사 가는길(옥포 기세리, 1970년대 후반)
1970년대 용연사 가는 길이 포장이 되지 않았을 때, 용연사 관광객들이 도보로 많이 다녔는데, 관광객 대상으로 수박을 팔았고, 군에서 원두막 설치비용을 지원해주어 당시 12동쯤의 원두막이 설치 되었다. 길이 아스팔트로 포장되고 나서 원두막은 사라져 버렸다.
심은 지 얼마 안된 벚나무가 현재의 울창한 벚나무와 대조를 이룬다.
용연사 삼거리(옥포 간경리)
현재 용연사 삼거리에서 대구시내 방향으로 촬영한 국도 5호선의 모습이다. 지금은 왕복 6차로로 확장되어 주요 간선도로의 역활을 하고 있다. 쓰러질 듯한 집과 가게들이 지금은 현대식 건물로 모두 바뀌었다.
물대기 작업(유가 쌍계1리, 1970년대)
계속되는 가뭄으로 인한 용수부족으로 양수장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하빈 동곡리
현재 하빈면 동곡사거리에서 하빈농협 동곡지소 방향으로 촬영한 것으로 그 당시 잡화점을 하였던 동곡상회 사진이 인상적이다. 40여년이 지난 현재에는 하빈면 동곡리 칼국수 식당촌이 형성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제1회 달성군민체육대회(화원초등학교, 1966, 10, 18)
국도 5호선에서 촬영한 당시 화원초등학교 정문(현재 후문)의 모습니다. 현재는 상가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어 예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며, 화원전통시장장날(1일, 6일)이면 이 일대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화원 유원지 정경(1930년대, 근대역사관 소장)
화원유원지의 절벽모습을 배에서 촬영한 장면으로 상당한 양의 모래사장과 수량을 확인할 수 있다. 앞쪽 건물은 관리자 숙소 건물로 일본인 2명이 관리원으로 거주하였다고 하며, 뒷쪽 건물은 눅가으로 50년대까지 존재하였다고 한다. 또한 좌측 봉우리에는 현재 화원동산 전망대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며 강가에 나룻배가 정박되어 있는 곳이 사문진 나루터이다.
화원유원지(1930년대)
현재 화원동산 전망대에서 화원유원지 낙동강변으로 촬영한 것으로 우측에 보이는 오솔길은 지금도 산책로로 꾸며져 이용되고 있다. 멀리 유원지 식당가가 보이며 계곡 부분의 평지는 현재 화원유원지 수영장이 자리잡고 있고, 좌측으로 보이는 능선이 성산고분군이다.
지금은 유원지 일대가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예전에는 나무 밑둥치까지 땔감으로 이용되는 시절로 헐벗은 민둥산의 모습이 그 시절 어려운 생활상을 연상케 한다.
자연보호 캠페인(화원유원지, 1978년)
화원유원지 강변 숲속에서 화원초등학교 학생들(학생들의 키로 봐서는 5~6학년 정도)이 4H클럽활동으로 자연보호캠페인을 하는 모습이다. 이 시절 나무심기 운동으로 수양버드나무가 많이 심었다고 하며, 아직도 화원유원지 강변축구장옆에는 버드나무숲이 자리잡고 있으며, 학생들이 서 잇는 좌측과 우측은 현재 화성식당과 제일식당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 일대는 현재 낙동강 정비사업이 한창이다. "난잡한 행동을 하지 맙시다" 라는 피켓 문구가 이채롭다.
김수환추기경 희망원 방문(1983년. 2. 21)
김수환 추기경이 대구시립희망원을 방문하여 원생들과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다. 당시 대구시립희망원에는 행려병자와 장애인 등 1,000여명이 열악한 상황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며, 김수환 추기경은 "이들이야 말로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닌가"라고 말씀하시면서 희망원을 찾았다고 한다.
테레사수녀 희망원 방문(1981.5)
1981년 테레사수녀가 한국 방문 당시 희망원을 찾아 원생들을 격려하는 장면이며, 이문희 대주교(뒷줄 오른쪽)의 모습도 보인다. 1910년 8월 27일 유고슬르비아에서 태어난 테레사수녀는 1950년 10월 "사랑과 선교 수녀회"를 설립하여 빈민. 고아. 나병환자 등을 구원하는데 몸 바쳐 일했으며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잠수교 건설(화원 성산리, 1975년)
새마을사업으로 성산1리 마을앞 잠수교 건설공사 모습이며, 1가구 1인이 참여하는 마을 부역사업으로 남자가 부녁에 참여할 수 없으며 아녀자가 부역에 참여하였다. 좌측에 보이는 가옥은 성산1리 마을회관이고, 그 옆에 보이는 가옥은 배진필씨 가옥으로 정면은 시멘콘크리트 현대형, 뒷면은 한옥형인 반양옥형 가옥으로 당시에는 이런 반양옥형 가옥이 유행하였다.
전기 점화식(현풍 지리, 1970. 10. 21)
새마을운동 농어촌전기사업의 일환으로 지1리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지동전기사업 점등식 행사가 열리고 있다. 현수막이 걸려있는 은행나무와 뒤로 보이는 기와 건물 등이 아직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좌측 끝 前 달성문화원장의 모습도 보인다.)
낙동강변 피난민촌(현풍, 1950. 8)
전쟁이라는 것이 참으로 많은 이들의 터전을 빼앗아 갔으리라. 지금 이만큼 큰 호사를 누리며, 아들 딸 무사히 키우고 잘 살고 있는 것도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를 거치며 이뤄낸 땀의 댓가가 아닐까?
피난지의 학교(현풍, 1951년)
피난지에서는 교사(校舍)를 구하기 어려워 창고나 임시막사 같은 허름한 곳을 활용하였고, 그것도 어려우면 천막을 치고 교육을 시켰다.
신작로(현풍 부리)
군민체육관 ~ 현풍 농협간 신작로의 모습이며, 시가지 도로 좌측 뒤에 보이는 산은 현재 달성군 충효탑이 있는 자리이다. 덕안의원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으며 건너편에는 현재 현풍농협이 들어서 있다.
성서 이곡동(1975년)
1981년 대구시의 직활시 승격당시 공산면, 월배면과 함께 달성군에서 대구로 편입된 성서면 이곡동의 옛 모습이다. 농한기 객토작업에 참여한 부녀자들이 흙을 머리에 이고 옮기느라 분주하다.
옥공지구 경지정리 기공식(논공 금포리, 1965년)
옥공지구로 보아 논공 금포리와 옥포 강림리 경계지점으로 추정되며, 이날 행사는 舊 금포배수장 철거 장소에서 실시되었다. 경지정리 지구는 논공 금포리와 옥포 교항, 신당리를 아우르는 지역으로 사진 속 지구도면상 그 면적이 3km2정도 될 듯 하다. 당시 인쇄기술이 발달하지 못하였는지 행사 현수막 등을 모두 손으로 제작한 탓에 소박하고 단촐한 느낌이다. 호기심에 엿보는 아이들의 행동이 재미있다.
현재 금포토지지구내 금포1리 마을로 추정되며, 좌측 상단 산 비탈면은 현재 군청 뒤 금계산의 일부로 88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는 자리이며 산 뒤쪽으로는 노이리 마을이 위치해 있다. 아직 초가지붕이 대부분인 것으로 보아서 새마을 운동 전 혹은 초창기 모습으로 보이며, 삽으로 모래와 시멘트를 다지는모습에서 마을 주민들의 강한 협동심을 엿볼 수 있다.
달성공단 조성전(논공읍, 본리리, 1970년대)
현재 달성군청청소년센터가 들어서 있는 산비탈면에서 북쪽방향을 보고 촬영한 본리리 마을전경이다. 마을가옥 지붕을 보아서는 지붕개량사업이 완료된 시점으로 보이며 촬영연대는 1970년도 중 후반으로 추정된다. 본리리 중앙에 우뚝 솟은 산은 돌구산으로 현재 공단근린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지금은 복개. 정비된 용호천이 이 당시에는 굽이굽이 자연스럽게 흐른 흔적이 어렴풋이 확인된다.
강창교 개통식(다사, 1971. 3. 15)
현재 달서구 파호동에서 다사읍 죽곡리 방향으로 촬영한 것으로 멀리 다사 연화산 취모봉(모암봉)만이 오로지 세월의 무상함을 비껴 제자리에 우뚝 서 있어 정겹게 보인다. 강창교는 타지역과 비교해서 상당히 빠른 시기에 개통된 교량으로 당시 성서, 다사지역의 주민들에게 큰 기쁨과 희망을 선사하였고, 개통식에서 구경하는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현고개 가는 길목(다사 매곡리)
현재 매곡리 태왕드림하이츠 아파트 쪽에서 다사초등학교 방향으로 촬영한 것으로 당시 이곳은 다사지역에서 가장 중심지역 이었다. 사진에 보이는 다사상회 앞에는 파출소이고, 파출소 뒷집은 양조장이며, 파출소 옆에는 우체국, 사진에 보이는 비포장길을 따라가면 면사무소, 초등학교가 있었다. 현재 우측 산 아래에 '달성문화센터'가 위치해 있다 콘크리트구조물에 기대어 버스를 기다리는 교련복 복장의 여고생이 인상적이다.
마을입구 도로공사(옥포 본리리, 1976. 12)
멀리 보이는 건물이 옥포농협이고, 사진 왼쪽 새마을기 바로 뒤쪽 건물 자리에 보건소가 들어섰다. 새마을 사업으로 본리리 마을 입구의 도로폭을 넓히는 공사를 주민과 함께 하였다.
마을 정경(하빈 대평리, 1975년)
현재 하빈면 대평1리 마을을 칠곡군 지천면 방향으로 촬영한 것으로 그 당시 대평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는 국민학생들의 모습이 아주 정겨움을 일으키는 모습이다. 현재 대평초등학교는 폐교되어 하빈면 하빈들소리 문화공연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
화원유원지 가는길(화원 성산리, 1970년대 초)
화원유원지 방향에서 성산1리 방향으로 촬영한 것으로 비포장 신작로와 성산리 158번지 일대 성산1리 마을전경이다. 사진에 보이는 버스는 화원유원지로 가는 31번 버스이다. 버스 옆 우측에 보이는 고분은 1990년대 후반 경북대학교에서 발굴 조사하여 유물과 사진자료가 현재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현재 능이 있는 자리에는 표씨 종중 재실이 자리잡고 있다.
현풍천 주변
현풍 1교에서 현풍면사무소, 현풍초등학교로 향하는 도로와 현풍천의 모습이다. 현재는 현풍천 양쪽 일부를 복개하여 도로가 확장되었으며 저멀리 뒤로 보이는 산이 비슬산 천왕봉이다.
소방훈련(현풍천, 1970년 이전)
1970년 이전의 모습으로 보여지며, 현풍농협 창고에서 주민들이 수동 펌프로 물을 뿜으며 소방 훈련을 하고 있다.
공동우물(다사 매곡리)
1960년대 당시 마을별로 공동우물이 있어 아낙네들이 수시로 물을 길러 날랐다. 우물 옆에 상의만 입고 고추를 내보인느 어린 애들의 표정이 천진난만해 보이면서도 어려웠던 그 시절을 말해주고 있다.
홀치기(천을 실로 묶는 염색기법)
'아낙네'의 일손은 근면을 상징한다. '아낙네'의 일손은 곱고 여린 것을 가릴 겨를이 없다. 1970년대 농촌 부업의 하나로 홀치기가 유행했었는데 홀치기는 당시 농가 수익증대에 큰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