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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나타난 바다의 이미지
김운향(金雲香) (시인. 문학박사)
1. 시와 이미지
시에서의 이미지(image)는 언어로 표현된 것이 사람의 감각에 의하여 마음속에 나타나는 그림(心象)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의 이미지를 통하여 언어로 표현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의미를 보다 구체화하고 선명하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적 상황을 그림처럼 마음속에 그리게 한다. 예컨대 ‘아침 바다’를 통하여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새 삶이라는 정서적 반응을 마음에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이미지는 과거에 지각적으로 감지된 체험을 정신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재현능력은 사람이 가지는 상상력에서 나온다. 따라서 독자가 가지는 상상력의 차이에서 시의 다양한 해석이 나오게 된다. 같은 표현의 시를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독자의 상상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저녁노을’이라는 시적 표현을 두고 어떤 이는 삶을 마지막으로 장식하는 장례예식을 나타낸다고 하는가 하면 다른 이는 자연이 그려주는 더 없는 아름다움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독자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상상력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가 우리의 시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다음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본고에서는 정지용, 서정주, 문덕수, 김명인, 이해웅, 김운향의 시에서 나타난 바다의 이미지를 간략하게 살펴보려고 한다.
2. 바다의 이미지
(1) 정지용(鄭芝溶)의 「바다 9」
바다는 뿔뿔이/ 달어날랴고 했다.// 푸른 도마뱀 떼같이/ 재재발렀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었다.// 흰 발톱에 찟긴/ 산호(珊瑚)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가까스루 몰아다 부치고/ 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시쳤다.// 이 앨 쓴 해도(海圖)에/ 손을 싯고 떼었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굴르도록// 회동그란히 바쳐 들었다!/ 지구(地球)는 연(蓮)닢인 양 옴으라들고……펴고……
-「바다 9」1)전문 -
위의 시 「바다 9」는 역동적인 바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바다의 형상이 ‘푸른 도마뱀’의 몸놀림이라는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다. 도마뱀은 다리와 꼬리가 있어서 달아나는 도마뱀의 영상은 생동감이 있다. 바다의 막연하고 추상적인 의미를 살아서 재빨리 움직이는 도마뱀으로 치환함으로써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바다의 모습을 꿈틀거리는 생명체로 각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흰 발톱에 찢긴/ 산호(珊瑚)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는 파도가 모랫벌에 남겨놓은 상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파도가 칠 때 생기는 포말을 ‘흰 발톱’이라고 하고 모래를 농락하여 생겨난 흔적을 ‘산호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라고 표현한 것은 언어를 사용하여 그려낸 선명한 그림이다. 이는 바다의 파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지지 않고는 포착하기 어려운 이미지라고 하겠다. 5연에서 화자는 상상 속에서 가까스로 바다를 붙잡아 다스린다. 그 다스림은 현실의 세계인 바다를 지도(앨쓴 해도)로 옮겨 놓는 일과 비슷하다. 시의 결구에서 ‘연닢인양 옴으라들고······펴고······’라고 표현함으로써 그 지구라는 연잎 위에 물방울이 바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사물의 크고 작음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비교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이다. 바다마저 연잎 위의 작은 물방울로 그려낸 언어의 상상력이야말로 정지용 초기 작품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자잘한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바다마저 물방울에 지나지 않는다는 큰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그의 시가 서구의 회화적이며 감각적인 모습을 모방하는 것에서 벗어나 독창적이며 동적인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으며 파도에서 지구로 확장하는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2) 서정주(徐廷柱)의 「바다」
다음의 시「바다」는 시의 화자가 가지는 절망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 시가 1939년에 『사해공론』2)에 발표된 점을 고려하면 당시 식민지 청년의 탈출구는 오직 바다였을 것 같다.
귀기우려도 있는것은 역시 바다와 나뿐./ 밀려왔다 밀려가는 무수한 물결우에 무수한 밤이 往來하나/ 길은 恒時 어데나 있고, 길은 결국 아무데도 없다.// 아 ― 반딪만한 등불 하나도 없이/ 우름에 젖은얼굴을 온전한 어둠속에 숨기어가지고‧‧‧‧‧‧너는,/ 無言의 海心에 홀로 타오르는/ 한낫 꽃같은 心臟으로 沈沒하라.// 아― 스스로히 푸르른 情熱에 넘처/ 둥그란 하눌을 이고 웅얼거리는 바다,/ 바다의깊이우에/ 네구멍 뚤린 피리를 불고‧‧‧‧‧‧청년아./ 애비를 잊어버려/ 에미를 잊어버려/ 兄弟와 親戚과 동모를 잊어버려,/ 마지막 네 게집을 잊어버려,// 아라스카로 가라 아니 아라비아로 가라/ 아니 아메리카로 가라 아니 아프리카로/ 가라 아니 沈沒하라. 沈沒하라. 沈沒하라!/ 오―어지러운 心臟의 무게 우에 풀닢처럼 흣날리는 머리칼을 달고/ 이리도 괴로운나는 어찌 끝끝내 바다에 그득해야 하는가./ 눈뜨라. 사랑하는 눈을뜨라‧‧‧‧‧‧청년아,/ 산 바다의 어느 東西南北으로도/ 밤과 피에젖은 國土가있다.// 아라스카로 가라!/ 아라비아로 가라!/ 아메리카로 가라!/아푸리카로 가라!
-「바다」 전문-
첫째와 둘째 연에서 화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바다와 나뿐이라고 하며 절대고독을 말한다. ‘길은 결국 아무데도 없다’, ‘반딧불만한 등불 하나도 없이’에서 길도 희망도 없는 현실을 심상에 각인시켜준다. 이러한 절대고독 속에서 화자는 ‘無言의 海心에 홀로 타오르는/ 한낫 꽃같은 心臟’이 되어 바다에 침몰하고자 한다. 이승하는 이러한 상황을 “철두철미한 고독에 도달하는 것, 그것은 하나의 죽음에 해당하는 행위이다.”3)라고 하여 극한의 고독으로 인한 죽음의 이미지로 인식하고 있다.
셋째와 넷째 연은 화자와 관계되는 모든 사람들을 잊어버리고 바다에 침몰하라고 한다. 스스로 고독을 만들고 나서 그 마저도 바다에 침몰하는 절대고독을 다시 한 번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화자는 자신보다도 더 고독하고 온몸이 찢겨서 상처투성이인 ‘피에 젖은 국토’를 발견한다. 이 세상에 고독과 절망만이 엄습하여 바다에 침몰하려 하다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낸 것이다. 미당은 비록 1941년 이후 친일시를 10여 편 쓰지만 그 이전에는 처절한 조국의 현실을 ‘피에 젖은 국토’라는 저항과 투쟁의 이미지를 시에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이러한 조국의 현실을 직시하며 바다로 나아가라고 외치고 있다. 이때의 바다는 고독과 절망의 자아를 침몰시키는 곳이 아니라 조국을 다시 찾는 희망의 이미지를 마음속에 심어주고 있다.
(3) 문덕수 (文德守)의 「새벽바다」
아래의 시 「새벽바다」에서 바다는 시인의 눈에는 보석 상자로 보인다. 새벽녘 바다에 떠오르는 태양을 한 폭의 그림으로 옮겨놓고 있다. 마치 미술관에서 새벽바다를 그린 그림을 감상하는 것처럼 독자의 눈에 생생한 태양이 솟는 바다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많은/ 태양이/ 쬐그만 공처럼/ 바다 끝에서 튀어 오른다/ 일제히 쏘아올린 총알이다./ 짐승처럼/ 우르르 몰려 왔다가는/ 몰려간다./ 능금처럼 익은 바다가/ 부글부글 끊는다./ 일제 사격/ 벌집처럼 총총히 뚫린 구멍 속으로/ 태양이 하나하나 박힌다./ 바다는 보석 상자다.
-「새벽바다」4)전문 -
‘태양이 쬐그만 공처럼 바다 끝에서 튀어 오른다’는 바로 새벽바다에 떠오르는 해를 시인의 화폭에 생동감 있게 담은 모습이다. 나아가 해를 ‘일제히 쏘아올린 총알’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시인이 추구하는 시적 조형미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바닷물결에 반사하는 해가 마치 우르르 몰려다니는 짐승과 같다는 표현도 동화적이다. 후반부에서도 능금처럼 붉게 익은 새벽바다가 부글부글 끓는다고 한다. 언어라는 재료로 바다에 반사되는 태양과 그 빛을 유감없이 그려 독자의 뇌리에 생생하게 박히게 한다.
시인은 새벽바다의 수많은 작은 물결에 태양이 반사하는 모습을 ‘벌집처럼 총총히 뚫린 구멍 속으로/ 태양이 하나하나 박힌다’라며 이는 누군가가 태양의 총알을 일제히 사격한 결과라고 한다. 결국 새벽바다는 수많은 태양이 물결 속에 반짝이는 보석상자라고 이미지화한다. 태양을 빛 총알이라거나 벌집속의 구슬로 보는 시인의 상상력은 대상의 이미지를 동화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심안(心眼)의 소산이라고 하겠다. 시인은 네 번째 시집인 『새벽바다』의 ‘자서’에서 자신의 시학을 “환상적 미학”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환상은 「새벽바다」에서 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시를 통하여 현실의 추한 모습을 비판적으로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에게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심어주는 것도 역시 중요한 것이리라.
(4) 김명인(金明仁)의 「바다의 아코디언」
김명인의 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바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태어난 바닷가는 늘 그를 따라 다니는 그림자였다. 아래의 시 「바다의 아코디언」도 이러한 맥락과 같이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래라면 내가 부를 차례라도/ 너조차 순서를 기다리지 않는다./ 다리 절며 혼자 부안 격포로 돌 때/ 갈매기 울음으로 친다면 수수억 톤/ 파도 소릴 긁어대던 아코디언/ 갯벌 위에 떨어져 있다./ 파도는 몇 겁쯤 건반에 얹히더라도/ 지치거나 병들거나 늙는 법이 없어서/ 소리로 파이는 시간의 헛된 주름만 수시로/ 저의 생멸(生滅)을 거듭할 뿐/ 접혔다 펼쳐지는 한순간이라면 이미/ 한 생애의 내력일 것이니/ 추억과 고집 중 어느 것으로/ 저 영원을 다 켜댈 수 있겠느냐/ 채석에 스몄다 빠져나가는 썰물이/ 오늘도 석양에 반짝거린다./ 고요해지거라 고요해지거라/ 쓰려고 작정하면 어느새 바닥 드러내는/ 삶과 같아서 뻘 밭 위/ 무수한 겹주름들/ 저물더라도 나머지의 음자리까지/ 천천히, 천천히 파도 소리가 씻어내리니,/ 지워진 자취가 비로소 아득해지는/ 어스름 속으로/ 누군가 끝없이 아코디언을 펼치고 있다.
-「바다의 아코디언」5)전문 -
「바다의 아코디언」은 바다를 아코디언인 갯벌의 주름으로 그리고 있다. ‘다리 절며 혼자 부안 격포로 돌 때/ 갈매기 울음으로 친다면 수수억 톤/ 파도 소릴 긁어대던 아코디언/ 갯벌 위에 떨어져 있다.’에서 인간은 생로병사의 굴레 속에서 다리를 절며 바닷가에 와 있지만 갈매기소리로 울어대는 바다는 갯벌에 아코디언이라는 주름악보를 만들어 영원을 노래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유한성을 바다의 영원성과 대비하는 모습은 곧바로 이어지는 ‘파도는 몇 겁쯤 건반에 얹히더라도/ 지치거나 병들거나 늙는 법이 없어서’에서 선명하게 대비된다. 인간세계의 시간은 인간과 생명체를 병들게 하지만 소리로 대변하는 파도는 영원함을 그림처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리로 파이는 시간의 헛된 주름만 수시로/ 저의 생멸을 거듭할 뿐’에서 파도는 소리로 악보인 갯벌의 주름을 영원히 만들어가지만 그 주름은 언제나 새 파도에 지워지는 헛된 것이라고 한다.
김명인은 파도소리를 갯벌의 주름으로 캔버스에 그려놓을 뿐만 아니라 늙고 병들게 하는 시간도 역시 갯벌의 주름의 나고 죽는 모습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소리와 시간이라는 불가시적인 대상을 마치 눈으로 보고 촉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갯벌위의 아코디언인 주름으로 그려내어 독자의 마음속에 선명한 그림으로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갯벌의 주름처럼 비록 지워져도 영원히 지속되는 그 무엇이 있다고 믿지만 그 믿음은 시간의 한계 속에서 다리를 절고 병들어 죽는 유한한 존재가 가지는 의식일 뿐이다. 그러나 이 시의 화자는 비록 갯벌의 주름을 연주하는 아코디언이라는 악기가 바닷가에 있음을 말하여 인간에게 영원성이라는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인 ‘지워진 자취가 비로소 아득해지는/ 어스름 속으로/ 누군가 끝없이 아코디언을 펼치고 있다.’에서 현실적으로는 파도가 연주하여 만든 악보가 지워지고 어스름이 몰려와도 누군가 끊임없이 영원의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다고 함으로써 생멸을 관조(觀照)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 이해웅(李海雄)의 「아침 바다」
다음의 시는 시인의 고향바다를 추억하며 자연이 주는 한없는 축복을 동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시인은 부산 기장군의 고리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고향의 아픔을 묘비명을 쓰는 심정으로 그의 시집 『파도 속에 묻힌 고향』에 담고 있다. 아마도 시인은 핵발전소가 인간의 욕망의 결과물이지만 핵폐기물과 방사선누출이 가져올 은빛 영혼의 타락은 무엇으로 막을 것인가를 꾸짖고 있는 것이리라.
은값 오르거든 고리 앞바다로 오라/ 동해 바다 지천으로 널린/ 저 은 퍼 가시라// 우리네 일상이 저 은빛으로/ 반짝이는 순간/ 가슴은 저 광활한/ 무상의 은총으로 채워지나니// 아침이 저와 같이 반짝이는 것은/ 눈의 영롱함이/ 혼의 영롱함으로 일떠세우기 위함이니// 아침이면 가슴 펴고/ 저 바다 앞에 서라/ 은빛이 네 마음 속속들이/ 물들일 때까지
-「아침 바다」6)전문-
시인은 무상의 은총으로 채워주는 바다를 추억하고 있다. 바다는 실로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물고기를 주고 소금을 주며 여름 한철 무더위를 식혀준다. 이러한 금전적 가치가 있는 것 이외에 ‘우리네 일상이 저 은빛으로/ 반짝이는 순간/ 가슴은 저 광활한/ 무상의 은총으로 채워지나니’라며 가슴에 한없이 채우는 정서적 충만을 일깨우고 있다. 나아가 아침바다가 반짝이는 것은 인간의 눈을 영롱하게 함으로써 혼까지 깨우기 위함이라고 한다. 현재는 혼이 죽은 세대라는 말이 함축되어 있다. 물질적인 것에 지배를 받으며 그날그날을 기계의 부속품처럼 살아가는 인간에게 아침 바다는 영롱한 혼을 넣어주려고 저렇게 반짝이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은보다 더 소중한 영혼을 깨우는 은빛의 물결이 마음을 속속들이 물들일 때까지 아침 바다를 마주하라고 한다.
시인은 은이라는 물질적 가치를 역설적으로 강조하여 은이 아닌 은빛이라는 영혼을 깨우는 바닷물결을 화폭에 그려내듯 펼치고 있다. 잔잔하게 이는 아침 바다의 물결을 마치 거대한 물고기가 은빛 비늘을 반짝이는 것으로 상상하도록 독자의 심상을 자극한다. 시인이 어릴 적부터 마음속에 담아온 고향 바다를 동시적인 색채로 화판에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6) 김운향(金雲香)의 「먼 바다」
머언 수평선에/ 하얀 부챗살로 돋는 그대/ 눈부신 태양 아래/ 숨죽인 밀어였네/ 어둠의 세월 풀고 싶어/ 바람 불어오는 절벽에 서면/ 저 영원이란 말/ 누가 새긴 흔적일까/ 파도는 부서지고/ 다시 파도는 일어설까/ 새벽 하늘에 트여오는 빛으로/ 그대 깊고 푸른 바다/ 그대 깊고 먼 바다.
-「먼 바다」7)전문 -
위의 시 「먼 바다」의 화자는 바다의 수평선에 부챗살로 돋는 아침 햇살을 바라보며 바람 부는 절벽에 서 있다. 언뜻 보기에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려는 것 같지만 그는 바람 부는 절벽에 서 있다. 바람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속성을 가지고 있고 절벽은 한 발 더 내딛는 순간 추락하는 절망의 지점이다. 이 두 극단의 바람과 절벽을 마주하며 사랑이라는 어둠속의 밀어인 어둠의 세월을 알려고 한다.
시인의 분신인 화자가 바닷가 바람 부는 절벽에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서서 사랑이라는 것의 진실을 찾으려 하지만 영원한 바다는 사랑이 한순간 비추는 햇살처럼 덧없다는 것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결국, 사랑은 영원하다고 하며 사람을 사랑에 빠뜨리지만 사랑은 영원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사랑은 하얀 부챗살로 돋아 아침 한 순간을 찬란하게 밝히는 햇살일 뿐 그 햇살은 태양이 솟아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오직 말 못하고 숨죽이는 어둠 속의 밀어가 된다는 것이다. 파도가 밀려오면 흔적이 사라지듯이 사랑은 썼다가는 곧 지워지는 운명이다. 그러나 화자는 그 사랑이 파도가 부서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것처럼 모래 위의 흔적으로나마 지워졌다가 다시 또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을 간직하고자 한다. 즉, ‘그대’라는 사랑이 새벽하늘에 돋는 빛으로라도 남아 있기를 바라며 깊고 푸른 바다에 머물기를 소망하고 있다.
시인은 사랑을 먼 바다 수평선에 돋는 부챗살이라는 찬란하지만 금방 사라지는 흔적이라는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보이지도 않고 감지할 수도 없는 것을 바다 위에서 돋아나는 아침햇살로 바꾸어 마음속의 그림으로 그려놓는 것이다. 바람의 허상과 절벽의 절망을 마주하며 서 있는 화자의 모습은 진리를 찾는 철학자의 자세로 한 폭의 그림 속에 선명하게 펼쳐져 있다.
3. 결어
시인은 시어로 시를 쓰지만 그 시 속에는 글로 표현된 영상이 담겨 있다. 우리가 시를 읽는 것은 이 영상을 찾아내는 퍼즐게임이라고 할 것이다. 오늘날 영상시대에는 시도 마음속에 선명한 영상을 그려내는 시가 독자로부터 환영받고 있다. 우리 시는 오래 전부터 이러한 심상을 그려 보이는데 소홀하지 않았음은 본고에서 고찰하였다.
멀리는 정지용의 「바다 9」와 서정주의 「바다」에서 시인들은 바다라는 대상을 실감나는 그림으로 그 이미지를 펼치고 있고, 이어서 문덕수의 「새벽바다」는 마치 동화책의 그림처럼 새벽바다의 이미지를 환상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김명인의 「바다의 아코디언」에서도 바다가 만드는 갯벌의 오선지를 주름을 지닌 아코디언으로 치환하여 영원한 노래를 들려주려 한다. 나아가 이해웅의 「아침바다」와 김운향의 「먼 바다」에서도 대상인 바다를 상징적인 언어를 통하여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처럼 이미지라는 심상은 영상물에서 뿐만 아니라 문자로 표현된 시에서도 폭넓게 나타난다. 이러한 이미지 시는 영상시대에 독자로부터 ‘보는 시’로 자리매김을 하게 될 것이다.
<끝>
1) 정지용, 『정지용 시집』, 시문학사, 1935.
2) 김해진, 한동수가 발행한 문예지로서 1935년 5월(창간), 1939년 11월(종간), 사해공론사
3) 이승하,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10대 명제』, 새미, 2004, p. 337.
5) 김명인,
6) 이해웅,
7) 김운향,
* 2013. 8. 24. 농민문학 하계세미나에서 발표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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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양한 바다의 이미지 글 올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