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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대- 3- 1 함안조씨(咸安趙氏) 시조(始祖) 충장공(忠壯公) 조 정(趙 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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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서기 897년(정사생) 신라 효공왕 1년,
(卒) 조세가(趙世家)의 가승(家承)은 누대의 세대가 멀어져 고증키 어렵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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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안조씨(咸安趙氏) 시조(始祖)이신
벽상공신 대장군, 원윤을 지내신 충장공(忠壯公) 조 정(趙 鼎)선조님께서는
서기 897년<(정사생) 신라 효공왕 1년, 발해 대위해 4년, 후백제 견훤 6년>에
조세가(趙世家)가문(家門)의 삼형제 中 장자(조 정, 조 부, 조 당)로 태어나시어
고려 조(高麗 朝)에 통합삼한 벽상공신[익창공신: 翊贊功臣]
대장군(大將軍)과 원윤(元尹)의 벼슬을 지내셨으며,
자(字) 우보(禹寶), 호(號) 모당(慕唐)이며, 나라에서 내린 시호(諡)는 충장(忠壯)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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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始祖)님의 전승(傳承)의 가계(家系)를 보면,
중원 대륙 춘추,전국시대 조(趙)나라 무령왕(武靈王)의 후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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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前) 228 년, 조(趙)나라 수도 한단이 함락 되어
진(秦)나라에 영토인 중원의 산시성 및 내몽고지역 일대를 잃고
북동쪽으로 종통(宗統)을 천도 하여, 대국 (代國) 의 명맥을 유지 하다가,
'대' 나라(代國)마져 잃어 버리고
현재의 발해만 서서북의 상하 운장지역 및 내몽고 지역에 유민들은 분치를 당하였고,
위만조선 건국시 주력세력(흰옷의 호복을 착용한 기마 전술에 능한 용병으로 참전)으로
고조선의 준왕을 몰아내고, 위만조선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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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後日) 후손(後孫)들은 동 북방 및 중원으로 흩어지고,
일부는 북부여(후일- 고구려) 유민으로 복속되어 산거(散居)하며,
조세가(趙世家)의 전통(傳統)의 명맥을 이어 오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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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당(後唐)시대 이전, 신라 말에 중원의 전란(戰亂)을 피 하여,
동이(東夷)족, 본류(本流)의 대거 환국(還國)시
두 아우 '부'와 '당' 의 가솔(家率)을 데리고,
동방의 해 뜨는 나라로 청운의 큰 꿈을 안고, 동래(환국)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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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 가야 의 고지(古址)인 함안(咸安)에 세거(世居) 정착(定着)하여,
대륙(大陸)으로 웅비(雄飛)하려는 고려(高麗) 태조(太祖)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高麗)통일(統一)에 누(累)차에 걸쳐 화려(華麗)한 전공(戰功)을 세웠으며,
특히 고려 태조13 년 930년(경인년)에 고창성(지금의 안동)전투(戰鬪)시
합주(지금의 합천, 의령, 함안으로 비정)에서 참전용병을 모아 기의(起義)하여,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도와
후백제왕 견훤을 대파(大破)하고, 동경주현(東京州縣)을 항복 받아,
고려 통일(高麗統一)에 큰 공(功)을 세워
통합삼한 벽상공신(익찬공신)[統合三韓 壁上功臣(翊贊攻臣)]
대장군(大將軍), 시호(諡)는 충장(忠壯)이시며, 원윤(元尹) 을 지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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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後孫)들이 그 분을 시조(始祖)로 삼고,
함안(咸安)에 정착 세거(世居) 하여 오다가,
고려(高麗) 태조 왕건(王建)으로 부터
본관(本貫)을 함안(咸安)으로 사관(賜貫)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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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후손(後孫)들을 "함안 조씨" (咸安 趙氏)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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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始祖) 충장공(忠壯公) 조 정(趙 鼎)선조님의 배향(拜享)은
안동(安東)의 칠현사(七賢祠)와
동수(桐藪)의 충열사(忠烈祠)에서 제향(祭享)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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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보]기록을 보면
시조 정(鼎)은 자(字)를 우보, 호(號)를 모당, 시호는 충장(忠壯)이며,
후당인으로 신라 말기에 두 아우 '부'와 '당'을 데리고
절강인 장명 (혹은 장길) 과 함께 동래 하였다.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 배현경, 복지겸, 김선평,권행 등 과 교의가 두터웠고,
왕건을 도와 합천에서 기의 태조14년 (931년) 고창성(지금의 안동)에서 견훤을 대파 하고,
동경주현을 항복 받아 고려 통일에 큰공을 세워 개국 벽상공신 대장군이 되었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함안(咸安)에 세거 본관을 함안으로 하였다.
안동의 칠현사, 동수의 충열사,에 제향한다 라 기록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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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소(墓所) 실전(失傳)
* 고조부: 가승(家承) 실전(失傳)
* 증조부: 가승(家承) 실전(失傳)
* 조부(祖父) 가승(家承) 실전(失傳)
* 부친(父親) 가승(家承) 실전(失傳)
* 모친(母親) 가승(家承) 실전(失傳)
* 배위(配位) 관향 및 성씨, 묘(墓所)가 실전(失傳)
* 자녀(子女) 조 간(趙 幹) 관(官) 중랑장(中郞將)
* 아우: 부(釜), 당(당=金+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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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병산대전
후백제왕 견훤이 927년에 공산 상주 대목군 고을부 등을 점령하고
태조12년 929년 12월에 그 여세를 몰아 파죽지세로 순주를 항복시키고,
고창군(신라말까지 상주관내의 고창이라는 평범한 군(郡)으로 쳐들어와 포위하자,
태조13년 930년 1월 왕건은 고창의 병산에 진을 치고,
견훤은 고창의 석산에 주둔하여 치열한 접전- 이른바 병산대전이 벌어졌고,
우리 함안조씨 조 정(趙 鼎: 연세 36세)선조님은
고려 태조 왕건이 공산 동수에서 적에게 포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두 아우 '부'와'당'에게
시급히 가솔의 양병을 소집 정비하고, 의병을 모집케 하여,
의병(義兵) 삼천명을 이끌고 밤낮으로 달려
공산 동수에 도착하니 신숭겸과 김락은 전사한 뒤였다.
위기에 처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지역호족 김선평(金宣平),권 행(權幸), 장 길(張 吉)과 함께
태조 왕건을 도와, 견훤을 대패시키는 결정적인 공을 세웠으며,
후(後)에 조 정(趙 鼎)선조님은
태조 왕건을 호위하여 뒤따라 송악으로 올라갔다.
이로 인 하여 영안,하곡,직명,송생 등
후백제측의 30여군현이 고려에 항복 하였읍니다.
그리하여 고려 태조 천수13년 930년에 견훤이 직접 대병을 이끌고
죽령로의 요충으로 성의 직북(北)인 고창성(현:안동)을 공취 하려 하여
그 부근인 병산(현:안동읍 북쪽 10리)아래 석산에서
고려 왕건군과 대치, 교전 하다가 대패를 입고 말았는데
이 패전으로 인 하여
견훤이 의도한 죽령로 차단은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고려 태조 왕건은 이 승전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여
조 정에게는 대장군과 원윤(종4품)에 봉하고, 함안을 사관하였으며,
전공이 있는성(고창)성주 김선평(종이품)을 대광에,
권행과 장길을 대상(종4품)에 봉 하고, 군을 승격 하여 안동부라 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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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함안조씨 시조이신
충장공 통합 삼한벽상공신(익상공신) 대장군, 원윤 조 정(趙 鼎)님을 배향하던
안동 칠현사와 동수의 충렬사는 현재 훼철되였으며.
그 당시 훼철전의 소재지를 보면
1) 안동의 칠현사(또는 칠현묘)라하는데 안동읍에서 북으로 10리 떨어진
고창군(옛 안동부소관) 병산면 석산리에 있었습니다.
柱: 안동권씨 시조 태사공 권행 관련자료.
병산대첩 |
시조태사공 |
경북 안동시 북문동24 |
054)8456614 |
2) 동수(桐藪)의 충렬사는 현재 대구 광역시 동구 지묘동
(옛지명: 달성군 공산면 지묘리)에 있었습니다.
시조 조 정선조님은
합주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김선평, 권행은 안동에서 기병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이 공산 동수에서 적에게 포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義兵) 삼천명을 이끌고 밤낮으로 달려
공산 동수에 도착하니 신숭겸과 김락은 전사한 뒤였다.
위기에 처한 고려 태조왕건을 도와
견훤군을 대파하고 왕건을 호위하여 뒤따라 송악으로 올라갔다. (후략)
3) 안동의 칠현사에서 칠현(七賢)이란
시조 충장공 조 정선조님과 장길(張吉), 김선평(金宣平), 권행(權幸),
신숭겸(申崇謙), 배현경(裵玄慶), 복지겸(卜智謙),등 의형제를 결의한 이 7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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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시조이신 충장공 통합삼한 벽상공신(익상공신) 대장군, 원윤
조 정(趙 鼎)님을 배향하던 안동 칠현사와 동수의 충렬사는 현재 훼철되었으며.
그 당시 훼철전의 소재지를 보면
1) 안동의 칠현사(또는 칠현묘)라하는데 안동읍에서 북으로 10리 떨어진
고창군(옛 안동부소관) 병산면 석산리에 있었습니다.
2) 동수(桐藪)의 충렬사는 현재 대구 광역시 동구 지묘동
(옛지명: 달성군 공산면 지묘리)에 있었습니다.
시조 조 정 선조님은 합주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김선평, 권행은 안동에서 기병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이 공산 동수에서 적에게 포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義兵) 삼천명을 이끌고 밤낮으로 달려 공산 동수에 도착하니 신숭겸과 김락은 전사한 뒤였다.
위기에 처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견훤군을 대파하고 왕건을 호위하여 뒤따라 송악으로 올라갔다. (후략)
3) 안동의 칠현사에서 칠현(七賢)이란
시조 충장공 조 정선조님과 장길(張吉), 김선평(金宣平), 권행(權幸),
신숭겸(申崇謙), 배현경(裵玄慶), 복지겸(卜智謙),등 의형제를 결의한 이 7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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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조에 관한 좋은 글을 올려 주셔서 대단히 감사를 드립니다. 그 동안 역사적 고증에 따라 '선조 바로 알고 모시기'에 관하여 공식적인 심도있는 의견들이 있었는 줄 알고 있읍니다. 그런데 상기의 내용이 '함안 대종회'와 '전국연합회'에서 공식으로 확인된 내용인지 어떤지요?
우리 함안조씨의 시조에 관한 좋은 글을 올려주신데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당시 戰勝으로 임금으로부터 받은 벼슬을 지금의 계급으로 환산하면 어떤 계급에 해당되는지를 괄로 " ( ) " 로 하여 함께 표기하여 주시면 쉽게 이해가 가겠습니다.건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