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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팬들이 엮어가는 여자배구 매거진 원문보기 글쓴이: 뻑아니면쓸
1. 2005년 겨울.. 천하를 삼키다..
배구가.. 긴 잠에서 깨어 새로운 도약을 위해 "용틀임" 을 하던 시기에..
고교시절 최고의 선수 였지만 소속팀의 강요로 국내대회 참가 하느라
유스대표 로써의 국제경험이 전무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왔던...
그리고 실업팀 입단 이후에는 2000년대 들어서 갑자기 불어 닥친
장신화 열풍과 얼짱 열풍에 또 한번 가려져야 했던.. 어떤 사람도..
오랜 후보 생활을 청산하고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외국인 선수가 수입되지 않았고.. 김연경 이라는 선수가 등장하지
않았던 시절... 가까스로 실업딱지를 떼었지만.. 프로간판을 달기에는
뭔가 어색했던 세미프로시절.. 지난 5년동안 내내 후보 신세였던 세터는
삼십줄을 넘긴 노장 최광희 선수와.. 아직 영글지 못한 "지속공" 지정희 선수..
그리고 단지 "클뿐" 이였던 김세영 선수를 이끌고.. 최정상에 올랐습니다..
그것은 "사건" 이였습니다.. 임유진-한송이 쌍포와 국내 최고세터 김사니의 토스가
어우러져 리그를 주도해 나갔던 도로공사를 물리친 "이변" 이였습니다..
2. 날개를 잃고 방황하다..
이 팀은 그 다음해 2005~2006 시즌에서도 플레이오프에 진출 했습니다..
도로공사의 상승세가 계속되었고.. 김연경이 가세한 흥국생명이 독주를 달린 가운데..
주포 최광희 선수가 노쇠화와 함께 부상으로 고생하면서도 이뤄낸 값진 성과 였습니다..
2006~2007 시즌은 외국인 선수제도가 도입이 되어 브라질 출신 루시아나를 영입하고
V2 를 외치며 의욕적으로 맞이한 시즌 이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2년 연속으로 플옵까지
무리한 승부를 펼쳤던 후유증이 드러나는 시즌 이기도 했습니다..
한창 기싸움이 치열했던 리그초반.. 믿었던 루시아나가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하면서..
수면아래 숨어있던 프런트와 코칭스탭의 감정싸움은 결국 수면위로 폭발하기 시작했고..
외국인 없는 가운데 치뤄내야 했던 무리한 시합일정은 결국 주전들의 혹사와 부상으로 이어졌으며..
팀의 공격수들을 하나, 둘씩 잃어가는 가운데.. 불과 2년만에 팀은 꼴찌로 추락 하였습니다..
3. 2007년 5월.. 늦봄에 생긴일 Part I
야구 라는 스포츠에 있는 많은 불문율 중에 이런것이 있습니다..
"주전이든 백업이든 포수는 절대로 트레이드 하면 안된다.."
코치와 선수들간의 작전사인과.. 그리고 투수들의 볼배합과.. 이른바 투수들의 미세한 "쿠세" 를
포수들은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죠.. 아마.. 이것을 배구 라는 스포츠에 굳이 적용한다면...
야구의 포수는.. 배구에서 "세터" 정도 될 겁니다..
그런데 이해.. 2006~2007 시즌 종료후.. 5개구단 세터들은 모두 FA 가 되었고..
물론., 이 사람도 당당히 FA 자격을 취득 하였습니다..
원래 FA 자격이란, 팀에서 오랫동안 꾸준히 활동해온 선수들에게 해주는 일종의 "보상" 이어야..
적어도 한국 정서에서는 맞을 겁니다.. 그러나 배구에서 FA 란 꼭 그런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더러는 일찌감치 원소속팀에 마음을 접고 이적시장을 노크하기도 했고..
또 누구는 팀도 선수본인도 재계약 하고 싶지만 몸값이 맞지 않아 난항에 빠지기도 했으며..
누구는 은퇴를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직 한명.. 이 사람 만큼은..
어떤 잡음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흔들리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지금껏 해왔던것 처럼.. 아침이면 배구공을 들고 체육관으로 향했을 뿐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의 팀 이탈을 어느정도 예상할 수 있었는데...
그의 소속팀에서 공공연하게 김사니 세터의 영입의사를 밝혀왔기 때문입니다..
4. 2007년 5월.. 늦봄에 생긴일 Part II
결국 그의 소속팀은.. 김사니 세터를 영입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 팀은 주전세터였던 그를 잃었고.. 또한 팀의 살림꾼 이였던
레프트 임효숙 선수를 잃었습니다.. 정말로 예상밖 이였죠..
애초에 이 팀은 원소속팀 계약기간 동안 김세영, 임효숙 선수와 FA 계약을 했었다는 사실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것은 결국 이 둘을 다음시즌의 주력선수로 낙점 했었다는 뜻 입니다..
무엇보다 가능성은 가장 높았지만 아직 배유나 영입이 확정된 것이 아니였다는점과..
라이트 박경낭, 레프트 홍미선 선수가 바로 그 다음해에 FA 가 되어
어쩌면 팀을 떠날수도 있다는 사실도 꼭 생각 했어야 됩니다..
그러나 이 팀은 그런 사실을 간과 했던지.. 아니면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을 했던거 같습니다..
사실 임효숙 선수를 보호하지 못할거도 아니였거든요.. 정상적 이였다면 보호선수 4명은
김세영,지정희,박경낭에 임효숙 선수가 되는게 맞았을 거니까..
샐러리캡을 논하더라도 여유는 충분했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어떤 생각 이였는지 이 팀은 임효숙 선수를 잡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결과론에 불과해 졌지만.. 배유나는 신인드레프트에서 잡지 못했으며...
FA가 된 박경낭, 홍미선 선수는 모두 팀을 떠났습니다..
그 결과 이 팀의 측면 공격 라인은 초토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다가오는 2008~2009 시즌에는 외국인 선수와 이제 1년차 및 신인들이 주축이 되어..
팀의 공격을 이끌어야 하는.. 정말로 참담한 수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난시즌 현대건설의 일이 남의 일이 아닌게 된거죠...
그나마 현대건설에는 한유미 선수 라도 있었습니다..
5. 2007년 5월.. 늦봄에 생긴일 Part III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 이유는 젊은 신입감독이 새로 부임 했다는 것과..
팀내 서열 1,2위 였던 최광희, 이효희 선수가 FA 계약을 하지 못했다는점 에서
추측해 볼 수 있을겁니다.. 어느 스포츠의 어떤팀이든.. 경력이 짧은 젊은 신입감독과
그런 감독보다 팀을 더 잘 알고 있는 팀내 고참 선수와의 충돌은 항상 있어왔으니까...
그것이 임효숙 선수의 기분을 상하게 했고.. 그녀의 성격을 고려 했을때에는
사석에서라도 싫은 소리 한,두마디 쯤은 했으리라 봅니다..
그게 아니라면 싫은 소리는 하지 않았지만 서열 3위에 해당하는 임효숙 선수도
신입감독 입장에서는 불편한 존재 였던 거겠죠..
어쨌든 결론적으로 팀내 서열 1,2,3위가 모조리 FA 계약 불발 및 이적으로 팀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2007~2008 시즌 종료후에는 박경낭, 홍미선 선수가 또다시 팀을 떠났습니다..
이팀은 자의든 타의든 계속적으로 팀내 프랜차이즈들을 잃고 있습니다...
물론 진실은 저편에 있습니다.. 이것은 그저 저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 이고..
선수들의 FA 계약 불발이나 이적은 순전히 우연히 벌어진 일이며..
구단과 선수간의 견해차이 였을뿐 일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2008~2009 시즌 종료후 FA가 되는 지정희 선수는 과연 이팀에 남을까요...??
6. 져니맨의 길..
나는 그렇게 믿습니다.. 물론 실력만큼 돈을 벌고.. 은퇴후 인생까지 고려한다면
FA 대박을 크게 터트리는것도 중요하겠죠.. 그러나... 기본적으로 어떤 스포츠의 어떤 선수일 지라도..
그들이 가진 최고의 꿈.. 최고의 로망은...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오랫동안 기억되는것" 일거라고
나는 그렇게 믿습니다.. 우리는 그런 선수들을 "레전드" 혹은 "프랜차이즈" 라고 부릅니다..
그와는 대척점에 있는것이.. 아마 "져니맨" 일 겁니다.. 구단의 필요에 따라 여기저기 옮겨 다녀야 하는..
단시간에 뭔가를 보여줘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구단과 팬들에게 또다시 버림받게 되는...
그야말로 고단한 인생이죠.. 한 팀의 주전세터로 팀의 우승을 이끌어냈고 본인의 전성기을 열었던
이 사람도.. 본인이 원하지 않았지만 FA 제도의 희생양이 되어.. 흥국생명으로 이적..
고단한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주전 공격수들과 손,발이 맞지 않은 1,2 라운드는 비교적 고전을 했지만..
3 라운드 부터는 줄달음질 친 끝에.. 흥국생명은 그야말로 완벽한 리그재패를 이뤘습니다..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흥국의 좌우쌍포는 어느때보다 막강함을 자랑했고..
약점으로 지목되던 센터 전민정 선수도 어느새 리그 정상급 센터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김혜진, 이보라, 전유리, 우주리 같은 신인들도 다른 어느팀의 신인들 보다 똘망똘망 했습니다..
이 모든것을 그 사람의 공으로 돌리기에는 물론 무리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애초에 흥국생명은 한시대를 넉넉하게 책임져 왔던 이영주,윤수현,진혜지 선수가
모두 은퇴를 했고.. 주전 리베로 구기란 선수가 부상으로 일찌감치 시즌 아웃 되었으며...
외국인 선수 마리는 지난 시즌의 윌킨스에 비할바가 아니였고...
좌,우 쌍포의 부상회복은 더디기만 했던 정말로 걱정되는팀 이였습니다..
이 팀에 단 하나 플러스 요인 이라면 새로 영입된 세터 이효희 선수.. 뿐 이였습니다..
7. The Setter..
사실.. 2007~2008 시즌을 앞두고 가장 주목받았던 세터는 역시 김사니, 이숙자 세터 였습니다..
그둘은 명성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혹은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어떤 한계를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세터가 자꾸만 팀에서 겉돈다는것..
리그초반 팀의 승승장구를 이끌고.. 막판 챔프결정전 승리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두사람의 1년은 KT&G 의 김사니, GS 의 이숙자가 되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김사니의 KT&G , 이숙자의 GS 를 새로 만들어 내는 작업 기간 이였을 뿐 입니다..
다만.. 흥국생명의 그녀는.. 그녀만의 흥국생명을 새로 만들어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이단 빽토스도.. 강력한 이단 스파이크도.. 그에겐 없었지만...
그저 오래전부터 그랬던거 처럼.. 그녀만의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그언젠가 KT&G에 가장 알맞는 세터가 되어 팀의 우승을 이끌고 자신의 전성기를 열었던거 처럼..
그는 이번에도 기본과 토스에 집중하면서 어느새 흥국생명에 가장 어울리는 주전세터가 되어 있었습니다..
흥국생명은 다가오는 2008~2009 시즌에서도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 입니다...
많은 팬들이 그 이유를 한송이 영입에서 찾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우승의 근거는 다릅니다..
개성이 강한 흥국생명 공격수들의 입맛에 딱 맞을 토스들이 그녀의 손끝에서 춤추듯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흥국생명의 V3 라는 값진 열매를 보다 구체적인 형태로 영글어 가게 해줄거라 믿기 때문 입니다..
내가 기억하는 80년대말~90년대 중,후반 까지의 미프로농구 NBA 에는
뛰어난 포인트 가드가 여럿 있었습니다.. 그 이름처럼 마술 같은 노룩패스를
자랑했던 매직 존슨 에서부터 거침없는 페네트레이션의 아이재이아 토마스,
현란한 크로스오버 드리볼의 팀 하더웨이, 폭발적인 3점슈터 마크 프라이스..
그리고 끈적끈적한 수비의 귀신 게리 페리튼까지....
이렇게 많은 포인트 가드가 있었지만..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포인트 가드를 꼽으라면
십중팔구는 바로 이 사람을 이야기 하게 됩니다..
"The Point Guard" 존 스탁턴(John Stockton)..
화려함 보다는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팀을 이끌었고.. 늘 기본과 패스만 생각했다고 하는
포인트 가드의 교과서.. 그렇기 때문에 "Magic" 이나 "Air" 같은 다른 그 어떤 거창한 수식어
보다도 "The Point Guard" 라는 수식어가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단지 그의 포지션에 불과한 "The Point Guard" 라는 단어를 우리들에게
이렇게 까지 묵직하게 느끼게 할 수 있었다고 하죠..
NBA의 거장 존 스탁턴이 그러 했듯이.. 이 사람에게도 "천재" 나 "공격형" 같은
거창한 수식어는 필요 없을거 같습니다.. 그냥 이렇게 부르면 되는거에요...
"The Setter" 이효희....
8. 이효희 세터는 이런 사람 입니다..
이 름 : 이 효 희
생 년 월 일 : 1980 년 9 월 9 일
신 체 사 항 : 173cm , ??kg
소 속 팀 :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포 지 션 : 세 터
학 력 : 수 원 수 일 여 중 - 한 일 전 산 여 고
경 력 : 2005 년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대회 국가대표
수 상 : 2007~2008 V리그 세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