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전으로 과거여행을 떠나다!
폼베이(pompeii)
AD79년 8월 24일 정오.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연안에 우뚝 솟아 있는 베수비오 화산이 돌연 폭발,
검은 구름이 분출되면서 화산이 분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화산은 엄청난 양의 화산재와 화산암을 뿜어내면서 인근 도시로 쏟아져내렸다.
나폴리 남동부에 자리잡고 있던 폼페이는
이 화산 폭발로 커다란 피해를 입고 소멸한 도시 중 하나다.
하늘에서 비오듯 쏟아져내리는 엄청난 양의 흙과 돌은 순식간에 폼페이를 뒤덮어버렸다.
운 좋게 도망친 사람도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늦은 사람들은
지상을 뒤덮은 고온 가스와 열구름에 질식하거나 뜨거운 열에 타 죽었다.
당시 폼페이 인구의 약 10%인 약 2,000명이 희생되었다고.......
피렌체를 출발 로마로 가는 도중의 풍경들!
로마의 대표 수종(樹種)인 우산소나무,
올리브나무, 사이프러스와 함께 3종 대표 수종이라고......
피렌체에서 로마로 가는 길목! 수채화처럼 아름다워라
피렌체를 출발 4시긴만에 고대 역사와 최첨단 문화가 공존하는 로마에 도착해서 여장을 풀었다.
로마의 숙소 Rigife Palace Hotel
언덕위에 올라가 유적지를 내려다 본 풍경
저 멀리 베수비오 화산이 보인다.
폼페이를 집어 삼켰던 베수비오 화산 풍경.
화산폭발 시 용암이 흘러 내렸던 흔적이 장엄하게 펼쳐져 있고.
정상에서 본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구
출입구
폼베이 유적지 입구
품페이 유적지 전면
지난 4월,
지인의 추천으로 서유럽 여행을 앞두고 미리 보았던
이탈리아 폼베이 유적을 배경으로 한 영화!
폼베이 유적지를 거닐며 영화를 다시 한 번 회상해 보았다.
'폼페이 최후의 날'은 AD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18시간 만에 증발된 도시가 배경이었지 않는가?
기마부대 켈트족의 마지막 생존자인 마일로는
로마군의 무차별적인 학살에 부모와 동족을 잃고
노예 생활을 하며 살아가다 검투사로 차출돼
폼베이라는 도시로 오게 된다.
거기에서 영주의 딸 카시아를 만나게 되고 미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로마 의원 코르부스의 농간에 마이로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 빠지게 되고
그러던 중 폼페이의 화산이 폭발하게 된다.
갑자기 들이닥친 재난에 아무도 살아 날 수 없어 도망을 치지만,
결국엔 갈곳 없이 그대로 화산재에 뒤덮혀 화석이 된 채 영화!
잃어버린 도시였던 이탈리아 고대도시 폼페이!
아직도 눈에 선한 폼페이 유적의 이곳 저곳.......
기원후 79년 8월 24일 1,280m의 고지를 자랑하는 베수비오
화산이 거친 몸부림을 부리더니 급기야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밀듯이 밀어 닥치는 화산재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채 묻혀 버렸으며
미처 도망치지 못했던 이들은 화산가스의 지독함에 질식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마지막 숨을 다해 남겨 놓았던
현대의 우리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최신식의 도시 폼페이!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남서쪽으로 23KM 떨어진 베수비오산 근처에 있으며
1930여년 전 베수비오 화산의 격렬한 폭발에 의해 매몰되었다.
이 폼페이는 고대도시로서 그리스 로마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다.
폼페이 유적은 16세기 말에 처음 발견되었고
도시발굴은 1,709년에 처음 시작되었단다
발굴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현재 3/4이 발굴된 상태라고......
홍등가의 방향을 알리는 건물의 외벽 표시(돌출부분)
홍등가의 방향을 알리는 도로 노면의 남성 성기 표식
돌침대-로마 귀족들의 휴양지 폼페이의 상류층 매음 유적
벽화로 남겨진 당시의 'lupanare(사창가라는 뜻)'의 남녀 성행위 프레스코 벽화
자연채광이 되는 거대한 공중 목욕탕
아름다운 모자이크와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으며
체육시설과 냉탕, 온탕까지 가능.
어찌나 넓은지.사진으로 많이 찍지는 않았는데.. 베이커리의 화덕이랑
공중화장실이랑 수도시설 그리고 신전과 광장, 화려한 모자이크와 조각 등
오래된 것들이라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멋진 건축물과
예술품들이 신기방기 투성이
당시 폼페이는 인구수가 무려 2만명에 달했고,
노예의 수만 8,000여명이었다고 하는데
얼마나 화려하게 번성했을지 살짝 남은 흔적들도로 짐작이 간다고.
대저택 현관 바닥에 새겨진 출입통제 맹견 모자이크
유물전시관(왼쪽)
2,000여년동안 화산재에 묻혀 존재 자체도 모르게 잠잠히 있었던 도시,
이토록 웅장하고 화려한데, 왠지 둘러보는 내내 기분이 묘했던 폼페이....
수도 시설
빵을 굽던 오븐(화덕)
입구를 지나면 바실리카 광장이다.
기원전 120~78년에 세워진 바실리카는 폼페이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건물로 로마 이전시대의
건축을 엿볼 수 있다. 건축 초기에는 실내시장으로 이용 되다가
후에는 사법재판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바실리카는 고대 로마인들의 집합장소로 민주주의의 산실이라고 한다.
공공회합의 장소로 여럿의 의견을 한데 모아
해결할 일들이 시행되었던 곳이고, 시장이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재판을 하기도 한 공공 장소였다고
바실리카 광장에서 저 멀리 보이는 산이
이 폼페이를 덮어버린 베수비오산이다.
수 천년동안 이곳 폼페이를 바라다 보며
자신 때문에 벌어졌던 비극의 도시 폼페이의 진실을 알고 있을
베수비오산은 아무런 말이 없다.
이 베수비오 산은 여전히 활화산이라 하니
언젠가 또다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평화로운 도시위로
용암을 내품을지도 모른다.
도시구획이 아주 반듯하게 잘 정리되어 있는 가게 터의 상가
가지런한 상가의 골목골목이 그대로 남아있다.
당시의 수도관이 도로를 따라 묻혀 있다.
잘 정리된 마차가 다니던 길..보행자 도로는 약간 높다
도로 에 하얀 조각은 형광물질로 야간에도 잘 봉이기 위한 시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