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모 바가바테 바이사지아-구루 바이듀리아-프라바-라자야 타타가타야 아르하테 삼약삼붇다야 타드야타 옴 바이사지에 바이사지에 바이사지아-삼우드가테 스바하
<약사여래 진언>
현교와 밀교의 수행법에는 모두 약사 수행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교에서는 경장에서 약사경 외에도 켐보 보리살타 또한 경장에 속한 약사 수행법을 지었습니다. 밀교에 사부나 요가부 경전중에 많은 약사여래불과 관련된 약사법본이 있습니다.
그래서, 약사여래불 수행이 현교와 밀교의 공통적인 수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藥師琉璃光法流儀軌》는 시작하자마자 응당히 한편으로 염송하면서 한편으로는 관상을 하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어떤 밀교의 법본에서는 먼저 염송하고 다시 관상하라고 되어 있고 어떤 법본들은 먼저 관상하고 다시 염송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본 법본은 한편으로 염송하면서 한편 관상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의식중에서「禮敬三寶三根本,皈依一切皈依處」는 귀의부분이고,「為令眾生悉成佛,今發殊勝菩提心」은 발심부분입니다. 이어서 「본래 청정한 세계에서 화현한」부터「平等捨의 안락을 잃지 않기를 기원합니다」까지는 공양하는 구절입니다. 이어서 모든 것이 공성으로 변합니다.「공성에서 화현한 삼천세계」부터는 관상하는 부분입니다.
약사여래불을 관상할 때에는 약사칠불의 몸이 마치 일체여래의 몸과 같이 모든 좋은 상호를 갖추었다고 관상합니다. 약사여래불의 전신은 남색이고 마치 유리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리는 흰색이거나 노란색 혹은 다른 색깔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곳의 유리는 구체적인 물질이 아닙니다. 비록 경전중에서 약사여래불의 몸의 색깔이 확실히 남색이라는 근거는 없지만 그러나, 전승조사 대덕들은 대부분 약사여래불의 몸이 남색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래서, 약사여래불을 남색이라고 관하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약사여래불은 몸에 삼법의를 수하시고 화신의 모습으로 시현하십니다. 관상할때에는 맞은편에 있는 본존불과 자신을 동시에 관상해야 합니다. 자신은 약사부처님이고 맞은편 허공 연화좌 위의 약사칠불과 경전이 있고 뒤에는 열여섯분의 대보살과 시방의 호번신장과 십이야차대장이 계시다라고 관상해야 합니다. 이곳의 경전은 대반야경이고 밀교경전의 양식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경전에서는 수인이나 기타 방식으로 대표하기도 합니다. 이밖에 십육보살대중 및 범천 제석천 등 열분의 세속의 신들은 비록 경전에서는 거론하고 있지 않지만 조사스님들의 법본에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만다라성중이 있는 곳은 무량궁 또는 월량궁이라고 하는데 현교와 밀교의 설이 조금 다릅니다. 밀교에서는 월량궁이 황색이라고 말하고 어떤 경전에서는 관상을 반드시 선명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어떤 곳에서는 법성의 힘으로 해서 의념만 일으키면 된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불법승 삼보님과 만다라 성중이 강림하시기를 청하는 부분입니다. 영청을 할때에 자신과 허공에 생겨난 약사부처님의 가슴에서 광명이 나와서 정토에 계신 본존불들께서 강림하시기를 청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법보가 어떻게 강림하느냐고 의문을 갖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부처님께서 교리와 정각의 모든 법과 함께 강림하신다고 관상하면 됩니다. 강림한 후에 안좌하셔서 관정을 내리시기를 청합니다. 이어서 꽃과 향과 등과 도향과 과일과 음악. 다섯가지 묘욕 등을 공양올립니다. 이 법본에서 이부분의 공양문구는 범음으로 지송합니다. 이어서 八吉祥、七珍寶、四大洲、八小洲等을 공양합니다. 이것은 곧 만다라 공양을 올리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부처님을 목욕시켜드리고 닦아드리고 가사를 올리고 찬탄을 올립니다. 찬탄할 때에 먼저 약사여래불을 찬탄하고 그 후에 16보살과 열분의 세간 신과 12야차대장등 무량궁안에 모든 본존들과 권속들을 찬탄합니다.
찬탄을 한 후 자신과 허공에 계신 약사불 본존의 가슴에 모두 ‘훔’자가 있고 그 주위를 약사진언이 돌고 있다고 관상하면서 약사진언을 합니다. 진언을 지송한 후 허공에 있는 약사여래불께서 자신의 약사불로 섭수되어 하나가 됩니다. 이어서 길상회향문을 염송합니다.
법본의 마지막부분에서는 각종 공덕이익에 대해서 설하고 있습니다. :「승가대중은 계율을 범하는 것을 면하게 된다. 우연히 범하게 되었더라도 다시 청정함을 얻게 되고 악도에 떨어지지 않게 된다. ; 삼악도의 업장이 또한 청정함을 얻게 되고 악도에 태어나지 않게 되며 신속히 해탈을 얻어서 선도에 태어나게 되어 점차로 불과를 얻게 된다. 이 생에서 의식에 결핍됨이 없어서 재물이 풍족하게 된다.; 병마, 주술, 왕법등의 박해가 다 소멸된다. 아울러 금강수보살, 범천, 제석천, 사대천왕과 12야차대장, 그리고 70만 권속들의 외호를 받게되어 18가지 횡사를 면하게 된다. 등등...」
만약 우리가 이러한 공덕을 알고 청정한 신심이나 勝解信을 일으켜서 약사여래불 수행을 한다면 장차 큰 이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약사여래 수행법의 공덕과 이익
약사여래 수행을 하면 이익이 매우 많지만 실제적인 이익은 신심에 딸려 있습니다. 신심은 불.법.승 삼보님과 부 딴뜨라. 모 딴뜨라 등 일체 해탈도에 대한 신심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신심은 가히 청정한 신심과 수승한 신심과 취사할 줄 아는 신심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신심은 보통 공덕을 본 후에 마음속에 환희심을 느끼고 동경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심은 또한 상근기.중근기.하근기의 신심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근기의 신심은 보통의 신심이고 상근기의 신심은 무량한 흔들리지 않는 신심입니다. 티벳은 밀법을 수행하는 곳이고 밀법은 신심을 매우 중요시 여깁니다. 신심을 중요시 여기고 지혜를 덜 중요시 여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은 좋은 점도 있지만 위험성도 있습니다.
평소에 삼보님과 스승님에게 기도를 할때에 우리는 우리의 소원이 실현되기를 기대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장사가 잘 되기를 바라면서 등공양을 올리거나 다른 공양을 올리고 혹은 절에다 호법신 기도를 부탁합니다.그러나, 설사 대신통이 있다하더라도 호법신이 이러한 기도 때문에 바로 어떤 일이 생기게 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호법 역시 인과의 규칙을 지켜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호법신이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한동안 공양을 올렸는데도 효과를 보지 못한 후에 어떤 사람들은 호법신이 거짓이라고 생각해서 심지어는 기도한 스님한테 공양금을 돌려달라고 하기도합니다. 이러한 신심은 무지의 기초를 둔 신심입니다. 인과업보의 도리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인과응보는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않으면 부처님께서 마음대로 육도중생으로하여금 업력의 과보를 받지 않도록 하실 것입니다.
물론, 우리 항상 일체중생들이 고통과 고통의 인을 여의고, 일체중생들이 다 행복과 행복의 인을 갖추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실현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방석을 깔아놓고 바로 사람들에게 앉으라하는 것처럼, 금방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가 전혀 소용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추구해야 되는 표준을 세워놓고 이 표준에 대해서 신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신심이 아무 쓸모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심에도 조건이 있어야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이치와 원인을 알고 일으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진흙으로 불상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 조성한 불상이 너무 볼품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차 연습한 후에 빚언내 불상은 갈수록 훌륭하고 결국에는 표준에 도달학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을 밑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밑는 것도 알고 밑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에 부처님이 안 계시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없는 것을 우리가 있다한다면, 그것은 곧 미신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과 그 가르침이 확실히 존재하는 것을 우리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스승님께서 가지고 계신 공덕을 알고난 후에, 우리가 비로소 스승님에 대해서 청정하고, 원만한 신심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승님에 대한 신심은 스승님이 말씀하신 것을 사실대로 아는 것을 포함합니다. 과장하지 않고, 거짓되지 않아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곧 조작된 신심이 것입니다.
삼귀의 처와 약사부처님과 만다라의 성중을 수행하는 이익은 무엇인가? 옛날에, 아리지구에 뻔갈로대사의 법당이 있었습니다. 이 법당은 현재 명승고적이 되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약사부처님을 예찬하는 법본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 약사부처님의 명호를 듣기만 해도 고통에서 바로 벗어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법본중에서 약사부처님은 전부 일곱분이 계신데, 약사칠불이라고 부릅니다. 경전에서 이르기를 약사여래불 경전은 약사칠불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고, 부처님께서 직접 가피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약사칠불의 공통적인 원력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옛날에 캄바지역에 매우 부유한 한 사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승가대중의 교육수준은 높지않았습니다. 하루는, 한 무리의 승가대중이 약사법본을 수행하고 있을 때, 「약사유리광여래불께 예경합니다.」를 염송할 때, 유리는 범어로는 벤두야라고 하는데, 대중들 모두 어떻게 읽어야 하는 지를 몰라서 이곳저곳에 물으러 다녔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학문이 있다고 여겨지는 스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이 스님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그 스님이 학문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분은 정색을 하고 경전을 한 번 보고는 캄바발음으로 「뻬체야」라 하였습니다. 「뻬체야」는 연기가 난다는 뜻인데 그렇게 얼버무렸습니다. 그래서 대중들이 기쁘게 그렇게 잃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에피소드입니다. 그러나 정성을 다하여 약사기도를 하면 확실히 악도를 여위고 고통을 없애고 소원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바로 부처님께서 약사수행법을 선설하신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