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한 사례들을 쓰면서
구조기술사 백 정 수
우리 나라의 건설기술은 광복 전 후 보잘것없는 수준에서 1970년대 이후 엄청난 발전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광복 이전에는 건설공사가 적었고, 교랑, 철도, 댐, 항만 등 큰 공사는 일본기술자나 일본 정부가 기용한 선진 외국기술자에 의하여 시행되어 오다가 광복을 맞아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공사들을 기술과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목수나 보조인부가 기술자 일을 맡아 마무리 짓고 그 이후도 시행된 공사는 모두 전문지식을 가진 기술자가 아니고 목수나 작업반장을 했던 기능공과 공사에 참여했던 인부들이 상식으로 공사를 집행하므로 기술자 부재 시기를 거쳐왔으며 이로 인하여 건설공사는 전문지식이 필요치 않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과도기적 과정에는 건설 업체가 이윤 추구에만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던 시기였는데 올바른 기술자들은 공사의 본질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공사를 철저히 하므로 이윤추구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으므로 전문 기술인은 우대 받지 못하고 얼른 뚱땅해치우는 상식기술자(가칭)가 우리 건설공사에서 활기를 띠었던 것이다. 이러한 풍조가 기술자를 경시하는 경향으로 흘렀고 정부도 전문기술인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다가 1970년대 후반 우리 나라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서 건설기술이 외국에 진출할 때부터 고도의 전문기술이 필요한 것을 느껴 적극적으로 전문기술인 양성에 나선 것이다.
우리 나라의 기술진흥 정책은 필요해서 세우기는 했어도 실제 효과적인 달성을 위한 보완정책이 뒤따르지 못했다. 모든 산업분야나 건설분야가 다 같이 기술자 우대정책이 없었으므로 전문가를 양성하는 대학 과정부터 우수두뇌는 법학이나 의학으로 진출하고 2류 3류 만이 기술계를 지망하였으므로 아예 선진국을 따라 갈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발전은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는 대형공사도 많이 겪었고 해외에서 어려운 공사도 경험하였으며 국제경쟁으로부터 그 필요성을 느껴 어려운 기술과 이론에서 현저한 발전을 하게 된 것이다.
아직도 경험에서는 다소 선진국에 뒤진다 하더라도 응용능력과 기술개발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되어 두려울 것이 없게 되었다.
지금까지 고치지 못한 대충 대강이라는 의식을 바꾸고 건설기술의 선진화를 위한 자세만 바로 잡으면 우리 기술이 세계의 첨단에 설 수도 있다. 건설기술은 시민의 생명과 재산에 손실을 줄 수도 있어 한치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으므로 기술자의 자질향상을 위해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우선 건설 기술인은 학문의 깊이가 제일 중요하겠지만 시설물을 보고 느끼는 감각을 키워야 한다. 실 구조물이나 설계도를 보았을 때, 또 공사중의 가설물을 보았을 때 균형감, 안정감, 시공성을 느낄 수 있어야 능률적이고 사고 없는 공사를 할 수가 있게 된다. 감각을 키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으나 시공이나 설계를 통하여 체험하지 못한 것은 서적을 통하여 이해할 수밖에 없는데 서적 중에서도 시공사례, 실패사례, 신공법 등이 다루어진 기술잡지와 학회지 등을 자주 접해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내용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림과 설계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안전성을 위해서는 계산된 성과나 결과를 보기 전에 크기를 예측할 수 있는 감각을 가질 수 있다면 더 이상 유능한 기술자가 없겠지만 근사적인 크기를 예측 해 보려는 습관은 실수 없는 기술자를 낳을 것이다. 미리 예측해 보는 것은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는 착오가 있을 수 있고, 고성능의 컴퓨터도 사람의 입력자료에 따라 계산만 할 따름이기 때문에 감각상 의심스러우면 다시 보고 검토하는 가운데서 착오는 없어지는 것이다.
본 사례들에서는 이론적인 해석법보다 구조감각을 넓혀 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를 원리 중심으로 쓰기로 하였다.
덧붙여 공사현장의 주변상황조사나 사고현장 조사에서 감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자기 나름의 간단한 장비를 잘 사용하면 조사시간을 단축하고 시공상태를 빨리 파악하여 공사 진행이나 사고수습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내가 수 십 년간 휴대용(승용차에)으로 쓰고 있는 장비는 Steel Tape, Micrometer, Penetrometer, Flash, 망치 등도 있지만 ø8mm의 Prestress(P.S)용 강선 stick이다. P.S강선을 120cm 길이로 절단하고 한 측은 손잡이가 되게 면테이프로 여러 번 감은 지팡이이다. 이 강선 지팡이는 여러 가지로 쓸모가 많은데 중요한 용도를 열거하면 현장조사와 공사감리에게는 필수품일 수도 있다.
우선 강선은 인장강도가 165㎏/㎟이어서 마모되거나 잘 휘지 않으며 가벼워 휴대하기가 간편하다. 이 지팡이로 시험된 지반이나 콘크리트 면을 여러 번 타격하거나 관입시켜 감각을 익혀 놓으면 근사적인 판정이 가능하다.
기초지반의 지지력을 판단할 때는 강선 지팡이를 손망치로 타입하여 관입량이나 관입시의 타격음으로 N치가 얼마 정도인 지반인가를 알 수 있고, 또 1.0m 깊이 이내의 지반은 파지 않고도 알 수 있으며, 콘크리트 면을 찍어 보아 반발감과 홈 자국으로 강도가 얼마인가를 알 수 있다. 이 이외에도 옹벽조사에서는 수발공을 통하여 옹벽 두께를 잴 수 있고 뒤채임이 흙인지 율석인지를 알 수가 있으며, 옹벽배면 비탈이나 사면활동 조사에서는 산에 오르는 지팡이가 될 뿐 아니라 잡초나 가랑잎 밑에 생겨 있는 활동균열도 지면을 찔러보아 가면 찾을 수 있고 잡초를 제거해 낼 수도 있으며, 거미줄 제거나 뱀의 공격도 막을 수 있다.
특히 기초지반을 굴착해 놓고 지내력에 의심이 생길 때는 강선지팡이로 여러 곳을 찔러보아 구조물의 기초지반이 균등한지 적합한지를 판단 할 수도 있다.
또 하수구 바닥같이 물이나 오물이 채인 곳에서는 수심을 재고 손대지 않고 오물을 쉽게 제거할 수도 있으며 방수 몰탈이 들뜬 곳을 찾는데도 대단히 유용하다.
이러한 간단한 장비사용 감각을 익혀 놓는다면 시공능률을 향상시키고 공사 중 착오와 사고를 방지하는데 큰 효과를 볼 수 있어 권장하는 바이다.
또 한가지 덧붙일 것은 토목구조와 건축구조의 제도적 구별을 없애야 하는 것이다. 구조공학에서 토목과 건축이 약간 다를 뿐 똑같은 이론으로 구조계산을 한다. 구미를 비롯한 서구에서는 토목, 건축 구조공학 구분이 없다, 오로지 구조공학이다. 우리 나라 기술사 제도 초기 1963년 제1회 합격자부터 1974년 제12회 합격자까지는 토목, 건축 구분없이 건설부문-구조물분야이었는데, 이후부터 토목구조와 건축구조 기술사로 구분되었다. 지금은 시방서를 통합해가고 있지만 건축분야 구조시방서, 토목분야 구조시방서가 따로 있으며, 내용도 약간 다르게 되어있어 적용에 혼선만 일으키고 고급기술인력의 중복으로 지장만 주고 있다.
이번에 실은 사례들은 이론과 내용을 보충하고 다른 사례들을 추가하여 별도의 사례집을 쓸 예정이다.
[건설기술사례집, 2001. 대한토목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