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출생
1955년 22세 결혼
20대 중반쯤 마을 농악팀 조직
1984년 고 장성천 선생과 진도북춤놀이보존회 결성
1986년 남산 국립극장 발표공연, 민속촌 공연, 춘천 민속경연대회 출전
이즈음 안팎으로 활발한 공연.
1987년 진도북놀이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고 장성천 명인 예능보유자 인정)
1988년 진도북놀이연구회 전수 시작
1990년 서울놀이마당 공연
1991년 소련(사할린) 공연, 일본(도쿄) 공연
1997년 진도북놀이(장성천류) 예능보유자로 인정
1997년 서울 살판 방문, 진도북놀이 시연
2001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공연
2001년 뇌졸중으로 병환
2003년 진도북놀이연구회 전수 재개(여름, 겨울)
2007년 현 임회민속전수관 개관
2012년 대담집 ‘장성천, 김길선의 진도북놀이’ 출간
2015년 11월 14일 아침 7시 50분경 병환으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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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말수가 적어 김길선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선생님께 직접 북놀이를 배우지 못한 게 늘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연구회에서 기록한 길선 선생님 동영상을 보면서 따라해 보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북바디와 가락은 진도북놀이판 여기 저기 녹아들어 있고,
선생님 북을 닮은 심장을 가진 이들에게 영원히 이어져내려갈 것입니다.
선생님 연보는 카톡에서 발췌했습니다.
수정 보완을 거쳐 완성하면 좋겠습니다.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들 가운데 군대이야기 빼고^^
메모해 두었던 게 있습니다.
"굿거리에서 내가 한쪽 팔을 올리는 것은 장성천 면장님께 배운 거다"
"나중에 열환이 넣어달라 해서 장면장에게 말해 보존회에 들어왔다"
"임회에서 북은 곽덕환이 가장 잘 쳤다. 당시에 군무는 여성들 밖에 없었다. 장 면장님이
여성들을 모아 군무를 지도했다. 남자들은 군무가 아니라 설북만 쳤다. 굿거리를 길게 가져가지 않았고, 삼채하고 이채를 주로 쳤다"
"당시 진도에서는 무대에서 독북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내가 대학로에 갔을 때 학생들의 요청으로 독북을 친 것이다. 장면장님이 살아계실 때다"
연구회에서 출간한 대담집에도 길선 선생님의 음성이 묻어납니다만,
전수 오신 분들께서 직접 들었던 이야기들을 기록해 두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네요.
첫댓글 대학로의 학생들이란게 2001년 서울풍물패연합이 벌인 판에 박희정이 길선샘 초청하여 공연하시라고 한겁니다.
그것이 뇌졸증으로 쓰러지기 전 우리가 본 마지막 북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