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향 무 정
-임성효-
초겨울 어느 날 모처럼 한가한 시간이 있어 창가에 앉아 따듯한 햇볕을 즐기고 있는데 아스라이 사라졌던 어릴 적 추억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여기 글로 적어 본다.
나의 고향은 경상남도 중간쯤에 있는 산골 오지이다. 지금도 마을로 들어가는 차편이 없어 고향을 갈 때는 재도 넘고 강도 건너서 가야 하는 곳인 산골 중의 산골이다. 그야말로 옛날에는 귀신도 나온다는 무서운 길이였다.
우리 동네가 언제부터 사람이 살게 되었는지는 명확지 않지만 큰 마을과 상당히 격리되어 있고, 마을의 경관이 뛰어난 것으로 보아 선비들이 과거를 준비하기 위한 공부 장소였거나 아니면 유배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오지에 살다 보니 어릴 적에는 자동차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차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상상으로 그려 볼 뿐 실물을 볼 수가 없었다.
하기야 차보다 더 좋은 비행기는 늘 보고 살았지만..........
이러한 곳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이 학교에서 신식 공부를 한다는 것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글을 쓰거나 해독하는 이가 없었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았다. 물론 한학을 공부한 사람은 있었지만, 이러한 실태가 계속될 때에는 앞으로 개화되어 가는 세상에 적응하는데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동네 어른들은 한 날 모여서 지금부터라도 어린이들을 학교에 보내서 신식 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하였지만, 너무나 학교가 멀고, 가는 길이 험악해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마침 동네 이장되시는 분의 강력한 주장으로 아동 몇몇을 학교에 보내도록 결정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대상자는 나와 이장 집의 동갑내기 순덕이가 뽑혔고, 마을이 생긴 이래 영광스럽게도 처음으로 학교에 가보는 학생이 된 것이다.
그때 내 기억으로 입학하던 날 온 동네 사람들이 마을 어귀에 모여서 배웅을 해주었고 더러는 달걀을 삶아서 손에 쥐여 주시던 분들도 계신 것으로 기억된다.
난생처음 읍내 가보는 것도 신이 나는 일이지만 우람한 학교건물과 넓디넓은 운동장의 위세에 눌려 아버지 손을 놓지 못하였고, 특히 자동차를 본 순간 놀라서 아버지 뒤로 숨기도 하였고, 어떤 아저씨가 두 발로 서서 타고 다니는 자전거의 신기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나는 자전거를 가장 소중한 재산으로 여기고 있다.
어찌하였거나 그날부터 우리 둘이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였는데 학교에 가는 길은 초등학생이 감당하기에는 무척 험하고 멀었지만 둘이는 손잡고 걷기도 하고, 가고 오면서 장난도 치고, 따뜻한 봄날엔 흰나비와 술래놀이도하고, 오솔길 주변에 천지로 널려있는 머루, 다래, 산딸기 등 을 따먹고, 더우면 멱감고, 비가 내려 냇물이 불어나면 업어건너기도 하고, 큰 정자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몰라했고, 가을엔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꽃으로 순덕이 가슴을 치장도 하고, 푸른하늘에 핀 뭉게구름이 그리는 그림을 보며 학교에서 배운 동요를 부르면서 그 멀고먼 길도 즐겁게 왔다갔다 하였다.
일단 학교에서 돌아오면 동네 이장님께 그날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과 선생님의 말씀을 요약 보고한 다음에야 집으로 갈 수 있었으며, 집에도 마찬가지로 아버지께, 아버지가 안 계시면 큰형님께 대략적인 보고를 해야만 했을 정도로 고달프게 공부를 했고, 만약 공부를 하지않고 놀면 온 동네 사람들이 야단을 치시기 때문에 놀지도 못하고 오로지 공부만 하였다.
그런 이유로 항상 반에서 순덕이 아니면 내가 일등을 하였기로 동네사람들로 부터 칭찬이 자자한 속에서 초등학교를 마쳤다.
졸업하던날 내가 최우등상을 탔고 순덕이가 우등상을 타면서 교육감으로부터 상장과 상품을 타가지고 마을로 들어오니 온동네 잔치가 벌어졌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도 우리 집에 가면 그때 그 빛바랜 우등상장이 자랑스럽게 대청마루에 걸려있고 우리 아이들에게 자랑 하기도 한다.
이제는 중학교 진로문제인데 집안 형편상 중학교를 보낼 수 있는 처지가 아니므로 진학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의 격려와 중학교에 가면 장학금을 준다기에 부모님은 정말 어렵사리 중학교를 보내게 되었고, 그 덕택에 부잣집 순덕이도 그 멀고 지루한 학교길을 혼자서 다니지 않아도 될 수 있었다.
그 중학교는 남녀공학이기하지만 남,여반이 틀리므로 하교시간이 맞지 않아서 일찍 끝나는 사람이 교문 앞에서 기다리도록 약속이 되어 서로서로를 기다리다 보니 다른 학생들로부터 놀림감이 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부러운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중학교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항상 둘이는 우등생으로서 타의 모범이 되어 상장도 많이 받았고 글짓기는 도맡아 학교 대표로 활동하였고 장학금도 받곤 하여 주위 사람들로 부터 칭찬 속에서 중학교를 무사히 마쳤고, 중학교 진학 때와 같은 똑같은 전철을 거쳐서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순덕이와 나는 오누이처럼 다정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갑자기 하굣길의 순덕이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순덕이 부모님께서 다 성장한 딸년을 다 성장한 총각과 같이 다니게 하면 문제가 생길 것을 염려하여 순덕이를 읍내에 있는 고모 집으로 유학을 보내버렸던 것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이성 간의 감정을 느끼지 않았던 나지만 갑자기 혼자가 되어버린 지금은 모두가 허망하고 괴롭고 짜증스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순덕이에 대한 나의 애정이 아니었나 하고 웃음을 짓는다.
아무튼, 나는 괴롭지만 혼자서 다닐 수밖에 없었다.
간혹 학교에서 순덕이를 만나서 얘기는 하지만 예전 같지는 않았고 서먹서먹까지 하였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서 고3이 되고 이내 여름 방학이 되었다. 나는 방학을 무척 기다렸다.왜냐하면 방학 때만 순덕이를 동네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해 여름 한날 아름다운 지난 과거가 너무나 그리웠고, 또 나와 무려 약 10여 년을 같이 다녔던 순덕이가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시집간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서는 순덕이를 만나서 내 마음을 그대로 전하기로 작정을 하고 마을 냇가에서 모일 모시에 만나자는 간단한 편지를 써서 동생 편으로 순덕이에게 전하고는 그날을 기다렸다.
지금은 만날 때면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사서 둘이서 먹으면서 얘기를 나눌 수 있지만, 그 당시 과자는커녕 먹을 것도 제대로 없었던 시절이라서 생각 끝에 “빼때기” 즉 고구마를 쓸어 말린 것을 신문지에 좀 싸들고 일찍 냇가 정자 밑으로 나갔다. 기다린다는 것이 왜 이리 지루한지 안절부절 못하면서 해가 저물도록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생각하기를 여자에게는 남자의 진실한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면 들어주지 않을까 생각하고는 순덕이에게 내 마음을 그대로 얘기해보리라 생각했다. 해가 저물고 시간이 꽤 흘렀는 데도 오질 않는다. 그냥 돌아갈까 하는데 저쪽에서 부스럭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나는 본능에 따라 “순덕이가?”하고 물었다. “맞다 내다.” 하질 않는가. 그때의 “내다” 하는 소리만큼 반가운 소리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하여 나는 순덕이에게 그동안의 내 마음속 깊이 고여있던 말들을 솔직하게 틀어놓았다. 내가 말을 마치자 순덕이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자기도 그러한 심정이었노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약속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서울로 대학을 갈 것과 졸업 후 서로 변치 않고 결혼하자고.....
그럭저럭 시간이 다 되었고 “빼때기”도 떨어지고 헤어져야 할 때쯤 나는 순덕이에게 오늘 우리의 약속을 잊지 않기 위하여 키스를 한번 하자고 했다. 당연히 순덕이가 안된다고 했다. 그러자 나는 "거부하면 억지로 할 수 있다"고 했다. 순덕이의 거부 속에는 해도 된다는 긍정의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키스하자” “안되”를 몇 번 하다가 나는 순간적으로 순덕이를 덮쳐서 난생처음으로 이성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보았다. 그 순간의 황홀함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너무나 부드럽고, 향기롭고, 달콤했다.
순덕이 입술에 한 번 더 키스를 하고자 살며시 내 입술을 포개는 순간 누가 내 옆구리를 차길래 놀라 일어나보니 나의 작은형님이 “무슨 잠버릇이 이리 나쁘냐 하고는 뺨을 갈기지 않는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실제로 형님의 몸 위로 올라가서 형님의 입에다 키스를 하였던 것이었다.
첫댓글 성효야
^^ 이건 40년대를 거슬러 오라간다..현실은 현실..열심히 그리고 
겁고 행복하게 살면 되느니라..
먼..시츄에이션?? 연제물 가트네..ㅎ
참 ....멋진 추억을 가슴에 안고....베풀고 다독이면서
재건주택 26호 ? 난 모른다.....배재용 강봉구 현치열고재문 임성효 손보순 배명희...더..말해???? ㅋㅋㅋ
난 임성효을 친구라 부른다......내가 부르고 참 웃겼다..........ㅎㅎㅎㅎ
하나는 잊지마라!!!!!!!!!!!!!!!!!!!!!!......너 성도형한테 꼼짝 못할때 난 맞담배 했다는 걸....ㅎㅎㅎㅎ
어머님....식장 끝자락에서 만남이 너무 아픔니다........그렇게 속 석이던 다리를 절든 성효친구...
철입니더....인자는 다 이자뿌따꼬에...그래요 건강하세요.....잊지는 안을껍니더어무이..건강하이소
고맙다.철학자,비평가테러리스트
2편은 없나?ㅋ 딧따 재미있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능가하는 멋진 작품이다.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네...
그 분에 비하는것은 너무 과분하고 미천하기 짝이없다.동문 작품집에 실린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