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이수길씨는 전국 방방곡곡 5일 장터의 다양한 장면의 사진을 통해 시골 장터문화를 알리고 있다. 장터사진을 통해 직업정신의 하나인 장인정신과 헝그리정신으로 투철한 직업관을 투영하고 있다. 본지는 제주지역 5일장을 찾아 촬영한 이 작가의 사진과 그가 만난 장터 사람들을 소개하는 기획을 마련한다. <편집자 주>
제주민속장터에 최고령 약초장수 장돌뱅이 양해남 할머니
30살부터 장터 장사...최고령에 건강 자신
예로부터 제주를 가리켜 돌도 많고 바람도 많고 여자도 많다고 하여 삼다도(三多島)라고 불렀다. 대한민국 최고봉 한라산을 중심으로 발달하고 있는 제주도의 5일 장터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바람도 많고 날씨변화에 대비한 장터지붕이 완벽하게 설치되어 있다. 특히 제주시 민속 5일 장터는 지역에서 농사를 지어 장날에 나와 팔 수 있도록 할머니장터를 특별하게 운영하고 있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제주시민속오일장(2일/7일)은 1000여 개의 점포가 입점하고 있으며 이곳을 찾는 사람은 공휴일에는 무려 십만 명이 왕래를 한다. 이런 최대 규모의 제주시민속장터에 88세 고령에도 불구하고 기억력도 발음도 청취력도 청명하신 58년 약초장수 장돌뱅이 할망(=할머니의 제주 토속어)가 있다. 그녀가 바로 양남해 씨. 제주도에서는 양 할머니가 5일 장터에 앉아 약초장사를 하는 최고령이라고 한다. 양 할머니의 고향은 제주시이고 19살에 결혼해 슬하에 5남 1녀를 두시고 30살부터 5일마다 장터를 돌아다니며 장돌뱅이로 살았다. 58년간 장날마다 지역을 바꿔가면서 돌아다닌 장터는 제주장터, 서귀포장터, 세화장터 등이다. 지금은 나이가 많아 다른 장터는 그만두고 제주민속 5일 장터에서만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약초는 정확하게 알고 먹지 않으면 위험하고 함부로 먹을 수 없는 것이고 도난을 당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30대부터 장사를 한 세월 속에서 알고 지낸 단골손님들이 지금도 찾아와 약초도 사고 말동무도 하고 5일 장터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사람의 정을 나누고 산다. 어떤 손님은 아기를 못 난다고 좋은 약초를 구해달라고 애원하여 좋은 약초를 구해줬는데 그것을 먹고 아들을 낳았다고 찾아와 떡도 사주고 밥도 사줬다고 한다. 그야말로 약초보다 더 효능이 좋은 인정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 대한민국의 정서이고 시골 5일 장터에는 아직도 따뜻한 인간미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반증이다. 양 할머니가 팔고 있는 약초는 모두 35가지 정도로 손님이 와서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적재적소에 즉석 처방할 정도로 약초에 효능을 빠짐없이 잘 파악하고 있다. 양 할머니는 “처방 값은 원래 1첩에 20만원인데 15만원에 해준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그래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좋은 일 한다는 생각으로 값 싸게 해준다” 고 제주도 5일 장터의 산증인답게 말씀하셨다. 양 할머니는 “내가 죽고 약초장사를 그만두면 막내아들이 이어받아 할 거다. 막내아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약초에 관심이 많았고 약초의 효능을 잘 안다. 지금은 제주시에서 셋째 아들과 살고 있는데 셋째 아들은 공무원이고 술도 안 먹고 착하게 잘 산다. 경찰 아들도 둘이 있다” 고 인터뷰하는 동안 자식들 자랑 보따리는 모두 털어 놓으셨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방방곡곡 5일 장터에 앉아 보따리 풀어놓고 앉아 평생 자식을 위해 살아오신 모정의 세월 그 자체다.
장보따리 속에는 평생 자식들뿐이고 어머니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대한민국 어머니들의 공통분모. 양 할머니는 절에도 열심히 다니시며 자식들 모두 잘 살고 건강하라고 기도를 한다. 젊었을 때는 108배를 하고도 힘이 남았고 2시간은 기도했는데 지금은 늙어서 그렇게까지는 못한다고 하신다. 양 할머니는 “사람은 일단 열심히 살다보면 좋은 일이 반드시 생긴다. 내가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욕하지 말고 싸우지 말고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고 가르침을 받았다. 그런 행동하면 모든 것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배웠다. 자식들이 동기간에 의리도 좋고 싸움도 안 하고 잘 살아주니 고맙다. 자식들 키우며 살아온 보람을 느낀다” 고 막내아들에게 참된 인생을 가르쳐주시는 듯한 따뜻한 어투로 말씀을 해주셨다. 필자는 양 할머니에게 “어머니는 저희 어머니와 동갑이세요” 라고 했더니 “니 어멍도 나하고 동갑이시냐” 고 제주 토속어로 친근감 있게 대해주셔서 5일 장터의 따뜻한 느낌은 대한민국의 정서이기도 하지만 고향에 계신 어머니 품안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참으로 그 모성애의 열정에 존경을 표해드리는 바이다.
오일장 기획은 제주도 개발공사가 후원합니다.
▲ 이수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수길 작가 △출판=장터1 모정의 세월(2012·도서출판애향), 장터2 장인정신(2013·도서출판애향), 장터3 희로애락(2014·도서출판애향) △장터 포토에세이=‘문득 삶이 그리운 날에’(2015·도서출판 티핑포인트) △사진전시=다수의 개인전 및 단체전 △수상=부산사진문화상수상(2012), 각종 전국공모전과 사진대전 다수 입상 △현재=경남정보대학교 연구교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모슬포장은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서는 장터로 역사와 전통이 그대로 살아 있고 시골풍이 살아 숨 쉬는 장터이다. 대정읍은 남제주군으로 행정구분 되어 있었으나 2006년 7월 1일부터 서귀포시로 행정구역이 조성됐다. 이 지역은 대한민국의 최남단 섬인 마라도로 들어가는 항구가 있고 옛 선인들의 전통문화와 숨결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고장이다. 또한 경사가 대체적으로 완만하고 평지로 이루어져 농경지가 발달하고 용암층을 복류하는 지하수가 용출되어 생활용수가 풍부하다. 이런 아름다운 고장에 우리의 고유한 오일장터도 면면이 살아 숨 쉬고 있고 서민들의 생필품을 공급해주고 먹을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옛날에는 지붕이 없는 땅바닥에 난전이 펼쳐지고 장사를 해 비바람이 불면 장사도 제대로 못하고 날씨와 씨름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비바람이 불어도 아무 걱정 없이 전천후로 장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붕을 씌우고 품목별로 질서정연하게 난전이 펼쳐져 있어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즐거운 마음이다. 그런 모슬포장터에 감 옷을 만들어 파는 장인이 있다. 대정읍 내에서 태어나 자라고 모슬포로 시집와 한평생을 장돌뱅이로 살아오신 문봉옥(80) 할머니가 제주도 장터이야기 특별기획 두 번째 주인공이다. 문 할머니의 모친이 감물 들이는 일을 해서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고 7살부터 감물 들이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25살부터 오일장터에서 장사를 했으니 55년 장돌뱅이 생활을 하면서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치며 키웠다. 장날마다 장보따리를 이고 들고 매고 다닌 장터는 제주장, 서귀포장, 모슬포장, 중문장, 고산장 등이다. 지금은 제주장터, 서귀포장터, 모슬포장터에서만 단골손님들을 맞이하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도 만나 물건도 팔고 대화도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간다. 금쪽 같이 키운 큰 아들이 옛날에는 많은 오일장터 일을 도와줘서 무거운 짐을 운반해주고 운전도 해주고 해서 쉽게 장사를 할 수 있었다. 아들 김두경(52) 씨는 고교 졸업 이후에 어머니의 일을 함께 하기로 마음먹고 대학합격에도 불구하고 입학을 포기하고 감옷 일을 이어가기로 한 효자다. 지금은 아들과 며느리가 어머니의 감 옷 일을 대물림 받아 이어가고 있고 문 할머니는 5일 장터에서 아들 며느리는 산방사 앞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제주국제공항과 카페리터미널에도 매장이 있으며 전국 50여 곳으로 감 옷을 납품할 정도로 규모가 방대해졌다. 남편이 40 중반에 세상을 뒤로 한 후로 아들에게 의지하며 오로지 아들만 믿고 살아온 보람이 있다고 아들 자랑으로 입에 침이 마르지 않는다. 문 할머니는 “우리 큰 아들은 길에서 돈을 주우면 우체통에 넣고 절대로 자기 호주머니에 넣지 않는 양심적이고 착한 아이였다. 옛날에 한참 자랄 때 잘 먹이지 못해 키가 크지 않고 작은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 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아들 자랑을 했다. 평생을 장터에서 장날마다 장보따리를 들고 다니면서 고생하신 보람은 자자손손 대물림을 할 수 있다는 것과 단골손님들이 변함없이 찾아주고 내가 만든 감 옷이 입기 좋고 편안하다고 말해줄 때라고 한다.
▲ 모슬포장터 55년 감옷 장인 문봉옥 할머니
전국 공모전에서 대통령상도 수상한 문 할머니는 지금도 모든 감 옷의 디자인은 본인이 직접 한다. 감 옷 전통의상으로 1대는 친정어머니가 2대는 본인이 3대는 아들이 이어가는 아름다운 장인정신은 우리 사회에 귀감이 될 만하다. 필자도 제주지역 5일 장터를 특별취재하면서 모슬포장터에서 문 할머니를 만나 인터뷰하고 잠시나마 대한민국의 장터이야기를 나눈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남은 인생도 5일 장터에서 단골손님들과 만나 이야기도 하면서 즐겁게 장사할 생각이라고 하는 문 할머니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도 많이 하고 있다. 우리말에 옷이 날개라는 말처럼 아름다운 감 옷을 입고 아름다운 마음씨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보면 어떨까. 내가 태어난 고장에서 평생을 한 가지 일에만 종사하면서 자나 깨나 자식사랑으로 살아오신 모정의 세월에 감사하고 존경스럽기만 하다.
▲ 이수길 작가
이수길 다큐멘터리 작가가 오일장터를 기록하는 이유
장터에 장보따리를 앞에 두고 앉아 계신 어머니들은 70대에서 90대까지이며 대한민국을 이끌어가고 있는 세대들의 부모세대이다. 따라서 5일 장터는 대한민국의 저력이고 문화이다. 5일 장터에는 우리의 정서인 정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과 평생을 한 가지 일에만 종사해온 장인정신과 장보따리 속에 자식만 넣고 살아오신 모정의 세월에 감사하는 효를 재발견하여 청소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장돌뱅이 생활 힘들었지만....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장사 전국노래자랑서 인기상...딸에게 2대째 대물림
▲ 서귀포장터 54년 마늘장수 장연산할머니
아름다운 경치와 이색적인 말투. 토속음식 그리고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걸을 수 있는 올레 길을 자랑하는 제주도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제주시와 서귀포시로 크게 남북으로 나뉘어져 발달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뛰어 넘어 세계 속의 청정지역 신비의 섬이다.
제주시에 초대형 야전 백화점 민속 5일장이 있다면 서귀포시에도 그에 버금가는 민속장터가 있다. 서귀포 동흥동에 자리잡은 서귀포장터는 끝자리가 4일과 9일에 장이 서고 지역주민과 제주도민은 물론 국내외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시골 맛을 물씬 풍겨주는 장터다.
서귀포장터에 들어서자 마자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는건 먹음직스런 빠알간 색깔의 떡볶이 였다. 그 맛을 보려고 길게 늘어선 줄은 남녀노소, 체면과 염치도 불구하고 일단은 먹어봐야 맛을 안다는 분위기였다. 그 옆으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순대와 어묵 그리고 호떡집에도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줄서서 기다리는 모습과 입을 크게 벌리고 맵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먹고 있는 모습들 만으로 입맛이 돌고 군침이 넘어가고 시장기가 돈다.
이처럼 맛깔나고 시골 맛 물씬 나는 서귀포장터에서 54년을 마늘장수로 살아오신 할머니가 있다. 그녀가 바로 장연산씨(86). 장 씨 할머니는 23살에 시집와 3남 3녀를 낳고 살면서 남편을 일찍 여의고 아이들과 먹고 살기 위해 장터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32살부터 시작한 장돌뱅이 생활에서 고기장사, 닭 장사, 계란장사, 양파장사, 마늘장사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 지금은 마늘장사만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큰 딸과 사위가 함께 장터의 삶을 도와주고 있다.
▲ 서귀포장터 54년 마늘장수 장연산할머니
장 씨 할머니는 연세는 있지만 언제나 미소를 지으면서 소녀 같은 모습으로 손님들을 대하며 장사를 한다.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 지역 애월읍 고내리에서 태어나 서귀포로 시집와 57년을 정착하고 살고 있다. 장 할머니는 5일마다 모슬포장터, 중문장터, 서귀포장터, 세화장터를 돌아다녔는데 이제는 세월이 흘러 몸도 늙어지고 장사도 옛날만큼 안 되고 해서 서귀포장터에서만 장사를 한다.
마늘은 면역력에도 좋고 김장할 때나 요리할 때에도 마늘은 빠지지 않는 농작물이어서 장사는 잘 된다. 그래서 이 장사 저 장사를 모두 해보다가 결국에는 마늘장사만 전문적으로 하고 있다. 큰 딸과 사위가 장사를 전적으로 도와주고 있고 2대로 장돌뱅이 장사를 대물림할 마음가짐이다.
1·4 후퇴 때 평양에서 피난 내려와 살던 남편과 만나 결혼해 고생하면서 살다가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 살 길이 막막했으나 자식들 생각하면서 이를 악물고 살았다. 세상을 살면서 고생한 일들이야 말로는 다 못 한다고 하시면서 항상 즐겁게 살려고 좋은 생각과 마음을 먹는다고 한다.
장 씨 할머니는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당신이 최고야’라는 곡목으로 노래를 불러 인기상을 받을 정도로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른다. 옛날에는 자식들과 먹고 살려고 새벽 4시면 눈을 뜨고 장터에 나와 하루 종일 장사하고 돌아가고 다음 장터로 이동하고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지금은 자식들 모두 다 잘 살고 마음도 편안하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한다.
▲ 서귀포장터 54년 마늘장수 장연산할머니
장돌뱅이 생활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허리도 아프고 관절염으로 고생할 때였다. 지금은 자식들이 도와주고 잘 해주니 고생해서 자식들 키운 보람을 느끼면서 손자들에게 용돈 나누어 주는 행복감으로 산다.
친정 엄마와 20년 장사를 같이 하고 2대째 대물림을 할 큰 딸 임춘화(63) 씨는 “우리 엄마는 평생토록 자식들만 알고 사셨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앞으로는 좀 편안하게 사셨으면 한다. 그리고 즐겁고 행복하게 남은 여생 사실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다.”고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 사위도 옆에서 “우리 장모님은 성격이 화끈하고 장사 참 잘 하신다.”고 장모님이 살아온 인생을 한마디로 대변해주었다. 장 씨 할머니는 필자에게 “사 가세요.(사 갑서), 어서 오세요.(혼자 옵서), 또 오세요(다시 옵서), 그래요(기꽈)” 등의 제주 사투리를 가르쳐 주시면서 따뜻한 마음을 전해줬다. 서귀포장터에서도 인기상에 버금가는 행복감을 오래 오래 누리시길 간절히 바래본다.
| 사람 냄새나는 장터 마음 뿌듯...게이트볼 운동으로 건강 자신 60여년 세월동안 변한것은 곡물가격, 흰머리와 주름살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가 제주도를 신혼여행, 효도관광, 친목도모, 수학여행, 올래길 걷기 등으로 한번쯤은 가보고 싶어 하는 국내여행 1순위의 섬이다.
제주도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어디를 가더라도 제주의 파란 하늘과 바다를 마주할 수 있다. 탁트인 바다와 파란 하늘이 우리의 탁한 마음까지 정화시켜주는 듯 하다. 새파란 하늘색과 새파란 바다색으로 물감을 칠해 놓은 수채화 같은 느낌의 세화장터와의 만남은 너무 행복했다.
필자가 대한민국 530개 지역의 5일 장터를 취재하고 촬영한 곳(2015년 9월 현재) 중에서는 아름다운 바다와 가장 가깝게 인접해 장이 서는 장터가 바로 제주의 세화장터다.
특히 이곳은 제주의 자랑거리의 하나인 올래길 21코스 출발지점과 인접해 있고 끝자리가 5일과 10일에 지역주민들이 모이고 관광객이 모여 시골 맛 나는 5일장이 선다. 이런 공기 좋은 세화에서 태어나 자라고 결혼해 60 평생을 세화장터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이 있다. 바로 김상선(85) 할머니.
김 씨 할머니는 21살에 결혼해 딸만 셋을 낳고 살다가 남편을 일찍 여의고 자식들을 먹이고 키우고 가르쳐야 하는 가장이었다. 25살부터 장돌뱅이 생활로 곡물 장사를 하면서 살았다. 새벽에 곡물을 싣고 나와 쌀자루에서 하나하나 팔기 좋게 큰 그릇에 부어넣는 작업을 한다.
▲ 세화장터 60년 곡물장수 김상선 할머니
김 씨 할머니는 그런 힘이 들어가는 일을 여인의 몸으로 동남장터, 표선장터, 세화장터, 성산장터, 남원장터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며 생활했다.트럭에 곡물자루를 전문으로 운반해주는 운전기사에게 1마대 당 500원씩을 주고 장날마다 장터를 돌며 무려 60년 세월을 한 가지 일에만 종사해 왔다.
그야말로 장인정신이고 강한 모성애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은 곡물종류가 많은데 옛날에는 쌀·차좁쌀·콩·보리쌀 등을 주로 팔았고 값도 옛날에는 쌀 1되에 1000원이었는데 지금은 1되에 6000원이다.
김 씨 할머니가 60년을 장터에서 변함없이 곡물장사만 하는 동안에 변한 것은 곡물 값과 김 씨 할머니의 흰머리와 자글자글한 주름살이다. 또 하나 5일 장터에서 변함없이 살아 숨 쉬는 것은 우리의 고유한 정서인 정문화다.이런 인정으로 20대에 장사할 때 찾아온 단골손님이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지팡이를 짚고 아직도 장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현대인들 생활 속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정 문화. 옆집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몇 달씩 모르고 살고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집 사람을 만나도 서로 인사도 안 하고 지나치고 모르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고유한 시골장터에서 한평생을 살고 장터의 삶을 지키고 있는 우리의 어머니들은 정서를 유지하고 살아왔고 사람 냄새 나는 맛을 살리고 있었다.
▲ 세화장터 60년 곡물장수 김상선 할머니
곡물장사로 먹고 살면서 자식들 교육에도 게을리 하지 않아 딸 셋을 모두 훌륭하게 키우고 가르쳐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 장한 어머니다. 장날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길을 나서 장터로 향하는 장보따리 속에는 오로지 자식걱정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왔다.
예전처럼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오후 3시에 파장을 하고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대한민국 최고의 행복감으로 가득하다. 김 씨 할머니는 장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장사하러 장터에 나갈 때 버스정류장까지 따라 와 치맛짜락을 붙잡고 같이 가자고 울며 졸라대는 아이들을 떼어 놓고 돌아설때가 가장 힘들었다”며 “아직도 징징 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선하다” 고 말했다
요즘은 게이트볼로 운동을 하며 건강에 신경을 쓰고 있어 아직까지는 지팡이를 잡지 않고 걸을 수 있는 행복감으로 산다. 세화장터에서는 걸을 수 있을 때까지는 장사를 하면서 오래도록 찾아오는 단골손님들과 관광객들을 위해서라도 같은 자리 같은 시간에 장터 사람들과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한다.
장날에 장사해서 돈도 벌고 사람도 만나 이야기도 하면서 즐겁고 돈 계산을 해 치매 예방에도 좋고 사람들과 인정을 나누는 맛으로 마냥 행복하다는 김 씨 할머니의 살아오신 모정의 세월에 감사를 드린다.
교사생활 4년…손댄 사업마다 실패, 단골손님 격려에 13년째 쇠망치 잡아 내가 만든 물건 사용후 잘 만들었다 할때가 가장 보람 느껴
▲ 한림장터 서울대 출신 대장장이 이승태씨
한림장터는 끝에 오는 4일과 9일 한림읍 대림리에 서는 시골장터다. 제주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 1시간 정도 이동해서 도착한 한림장터는 제주시 민속 5일 장터와 서귀포시 5일 장터와는 또 다른 시골 맛을 풍겼다.
가까이에는 한림항이 있고 규모는 제주시와 서귀포시 민속 5일 장터보다는 작지만 사람들의 북적임은 많았다. 제주 지역의 5일 장터는 바람이 많이 불고 날씨 변화가 심해 비바람에 대처한 완비는 한림장터도 예외는 아니었다.
장터에서 장사하는 상인들 중에는 90세가 넘은 고령의 할머니들도 보따리를 풀어놓고 앉아 계신다. 이를 보니 자연스레 고향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런 한림장터를 들어 서면서 장터 끝자락에서 들려오는 쇠망치 소리. 제주에서 처음 만나는 반가움에 마음이 설레였다.
중년의 아저씨가 화덕에서 쇠를 녹이고 땀을 흘리며 쇠망치로 시뻘건 쇠를 두드리고 있었다. 대장간에서 쇠망치를 든 그는 서울대 출신 이승태(54) 씨.
순간 놀라면서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인지 서울대 출신 아저씨가 쇠를 녹이고 쇠방망이를 두들기고 있는지 궁금증을 풀기 시작했다. 그는 서울대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4년 정도 교사 생활을 하던 중에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과 부산에서 사업을 하면서 3번이나 실패의 쓴 맛을 경험하고 그에게 사업가로서의 운은 없었다. 고민 끝에 마음을 비우고 고향인 제주에 내려와 부친의 대장간 일을 돕게 되었고 갑작스럽게 부친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마음을 굳혀 대장장이 인생을 시작했다.
▲ 한림장터 서울대 출신 대장장이 이승태씨
이 씨는 처음에는 주변에서 “서울대를 나와 그 정도의 일 밖에 못 하느냐”는 소리들로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지금은 친구들도 지인들도 지역민도 부러워하고 멋진 인생을 산다고 말한다.
손님들도 내가 만든 물건을 써보고 잘 만들었다고 말해 줄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행복한 마음으로 말한다. 처음에는 부친의 반대가 심했지만 하다보니 적성에도 맞고 사람 사는 냄새도 나고 . 이렇게 13년째 쇠를 녹이고 쇠망치를 두들기고 있다. 부친의 단골손님들도 옛정으로 찾고 격려와 칭찬으로 조언을 해주신다.
이 씨에 의하면 제주호미는 육지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고 돌 많은 밭에서 사용하도록 제작한다고 한다. 제주에서는 호미를 ‘골갱이’라고 하는데 대장간에서는 가장 많이 팔리고 밥벌이 되는 효자 상품이라고 행복감을 감추지 못한다.
농기구를 제작하는 과정은 힘이 안 들지만 성심껏 만들었는데 손님들이 와서 잘 못 만들어 사용하기가 불편하다고 말할 때가 가장 힘들다.
그래도 이 씨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고 제주에 내려와 부질없는 욕심을 자연스럽게 버리게 된 것 같아 마음이 가장 편하고 좋다.
지금까지 대장간 인생을 살기까지는 파란만장 했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단 한 번도 교사를 그만둔 것에 대한 후회는없다. 예나 지금이나 제주 민속 5일 장터와 한림장터에서만 일하고 나머지 장이 없는 날에는 쉬거나 취미생활을 하면서 지낸다.
이 씨의 모친 노귀레(76) 씨도 처음에는 아들이 대장장이를 한다는 것을 반대했지만 지금은 아들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고 말한다.
이 씨가 만든 농기구로 모친은 옆에서 매장을 따로 차려놓고 장사를 한다.
노 씨는 대한민국 1호 서울대 출신 대장장이이고 부친의 55년 대장장이 인생을 이어받은 효자라고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자식자랑 삼매경에 빠졌다.
▲ 한림장터 서울대 출신 대장장이 이승태씨
이 씨는 칼과 낫을 갈아주는 삯으로 받는 2000원은 불우이웃돕기의 일환으로 사랑의 열매 상자 속에 돈을 모아 정기적인 기부를 한다. 쇠방망이를 두들기고 있는 서울대 출신 아저씨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인간미를 소유한 대장장이다.
장터 사람들이 전해주는 감동은 제주의 아름다운 대자연의 풍광보다도 더 힐링이 된다. 이 씨의 훈훈한 이야기는 쌓인 체증을 속 시원하게 내려가게 하는 매실효소 같다. 진정한 직업정신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주고 나눔을 실천하는 그에게 찬사를 보낸다.
고향 떠나 30대 초반 제주 정착...장날 묘목장사 후 농장서 일해 돈 많이 벌어 즐거운 인생 살고파...쉬는날 없이 눈 뜨면 일에만 전념
5일마다 열리는 장을 오일장이라고 하는데 전통시장, 재래시장, 오일시장 등의 용어들이 일반인에게 헷갈릴 수 있다.
지역에서 끝에 오는 날짜에 따라서 정해진 날에 5일마다 장이 서고 사람이 모이는 곳을 오일 장터라고 한다. 반면에 전통시장과 재래시장은 장날이 아니어도 상시 재래식으로 장사를 하는 곳을 말한다.
5일마다 장이 서는 날짜는 끝에 오는 숫자가 1일/6일(1일/6일/11일/16일/21일/26일/31일), 2일/7일(2일/7일/12일/17일/22일/27일), 3일/8일(3일/8일/13일/18일/23일/28일), 4일/9일(4일/9일/14일/19일/24일/29일), 5일/10일(5일/10일/15일/20일/25일/30일) 등의 순서대로 한개 군에서 5일 마다 돌아가면서 장이 선다. 이렇게 장날마다 이동하면서 장터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장돌뱅이’라고 한다.
이렇게 장날마다 묘목장사로 장돌뱅이 생활을 47년간 하며 살아온 할아버지가 바로 모슬포장터 김규태(80)씨다.그의 고향은 전라남도 나주인데 30대 초반에 고향을 떠나 제주로 들어와서 정착해 살았다.
김 씨 할아버지가 제주 정착을 다짐한 것은 혼자 한라산 등반을 왔을때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반해 가족들과 이주를 결심했다. 그는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에 서서 사방을 둘러 보니 가슴이 탁 트이고 삶의 희망이 용솟음 쳤다고 한다.
그 때 그는 제주에서 인생을 뿌리내리고 살겠노라고 결심을 하고 하산 후 귀가해서는 바로 가족들과 함께 이주해 5일 장터에서 장돌뱅이 생활을 하게 됐다.
김 씨 할아버지가 제주에 들어와 정착해 살고부터는 친인척들도 대부분이 제주에 들어왔다.
지금은 공기 좋고 물 좋고 풍경 좋은 아름다운 제주에서 온가족이 함께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김 씨 할아버지는 제주에 들어오기 전에는 서산에서 마늘과 생강 장사를 하며 살았는데 제주에 와서는 묘목장사를 하며 살았다.
그가 취급하는 묘목의 종류는 50여 가지가 되는데 손님들에게 묘목 심는 방법과 가꾸는 요령 등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을 해준다.
김 씨 할아버지는 모슬포장터, 제주민속 5일 장터, 서귀포장터 등에서 장날마다 묘목 장사를 하고 나머지는 허브농장에서 일한다.
묘목은 시기가 정해져 있어 3월에서 6월말까지만 장사가 되고 나머지는 야채장사를 한다.
제주에 들어와 살면서 설 명절, 추석명절 이외에는 쉬어본 적이 없고 눈만 뜨면 일만 하고 살았다.
3일은 5일 장터에서 나머지는 농장에서 일벌레처럼 살았다. 그렇게 열심히 일만 하고 살아온 보람으로 아들은 호주 유학을 통해 허브 전문가로 키울 수 있었고 그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제주에서 땅 2만여 평을 살 수 있는 경제적인 힘을 만들어 나름대로 삶의 보람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사회에도 좋은 일을 하면서 기부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김 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한국전쟁이 발발해 못 먹고 배고픈 시절을 살아서 배부르게 먹고 싶었고 돈도 많이 벌어 즐거운 인생을 살고 싶었던 갈망이 컸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자식들에게는 배고픔의 아픈 추억을 만들어주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다.”고 지나온 세월을 회고했다.
김 씨 할아버지의 손녀 딸 김자원(18· 제주고 2년생) 양이 모슬포장터에 할아버지의 바쁜 일손을 덜어 드리려고 1일 봉사로 손을 걷어붙였다.
김 양은 난생 처음으로 장날에 나와 할아버지 일을 돕고 있었다. 처음인데 장사도 잘 하고 물건 값도 잘 알고 신나게 장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손님들이 심는 방법을 물으면 할아버지에게 여쭤보고 답변해 주면서 장사하는 손녀딸이 예쁘기 한량없다.
손녀딸은 난전 장사가 힘들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장터 장사를 그만 두셨음 하는 마음이다. 50여 년의 세월을 난전에서 살아오신 할아버지의 노고에 손녀딸이 위로해주니 장터의 분위기가 더욱 훈훈한것 같다.
왕년에 전라남도 대표 마라톤 선수로 전국대회에서 은메달까지 수상한 김 씨 할아버지에게 인생역전 금메달을 걸어 드리고 싶다.
사라진 장터에 대한 아쉬움...시골장터 상인 연령대 높아 옷·생선·야채장사 장터 지켜...인간미 넘치는 정서도
▲ 제주시민속오일장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섬 제주도 그리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수려한 대자연을 세계인이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는 지구상의 청정지역으로 선정된 곳이 바로 제주도다.
그런 제주도에도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중심으로 지역별로 5일 장터가 서고 사람이 모였던 시골장터가 다른 지역의 현상처럼 도시화와 인구의 감소 그리고 마트의 형성과 교통의 발달 등으로 인해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필자가 제주국제공항 활주로에 착륙해서 제주지역 5일 장터 특별취재를 위해 첫 발길을 돌린 곳이 제주시 애월읍 하귀장터였다.
장날에 맞춰 일정을 잡고 첫 번째 장터에 가는 길이었기에 기대감과 들뜬 마음으로 발걸음이 가벼웠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20~30분 달려 도착해 장터를 찾아봐도 보이지 않아 순간 당황해 하면서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지역주민 문 씨(54)가 다가와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그에 의하면 70년도 초반에 장터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고 주차시설로 변해 있었다.
▲ 성산장터
제주지역에서 처음 만나보는 사라진 장터의 현장을 문 씨의 안내와 설명으로 실감한 첫 사례였다. 그리고 점차 사라지고 있는 장터의 사례도 만나볼 수 있었다.
아름다움의 극치를 자랑하고 일출풍경이 뛰어난 성산 일출봉을 바라보며 지역주민들이 모이고 장이 서는 성산 5일 장터가 있다.
성산장터를 취재촬영하기 위해 인근의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해가 올라오기 전에 일어나 바닷가로 나가 수평선을 박차고 올라오며 이글거리는 강열한 아침태양을 온몸으로 맞이했다. 그리고 바로 성산장터로 발걸음을 돌려 가보니 장사 준비를 하고 있는 상인들이 띄엄띄엄 앉아 짐 보따리를 풀고 있었다.
예전에는 장사도 잘 되어 장돌뱅이 상인들이 많이 모여 들었는데 지금은 소수의 사람들이 장터를 지키고 있고 점차적으로 5일 장터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한다.
▲ 애월읍하귀장터
예전부터 형성되어 있던 장터의 형태는 있으나 사람이 모이지 않고 장사가 안 되니 상인이 모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시골로 가면 갈수록 텅 빈 장터에 몇몇 사람들이 앉아 상인들끼리 덕담을 나누며 시간 보내며 정을 나누는 모습이 시골장터의 현주소이다.
필자가 전국의 5일 장터 532곳(2015년 10월 현재)을 취재하고 촬영해 본 결과로는 사라지고 있는 장터에서 최종으로 남아 단골손님들을 기다리고 장사를 하며 장터를 지키고 있는 분들은 옷장사와 생선장사 그리고 야채장사가 일반적이다.
제주지역의 5일 장터도 다른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이번 특별취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주지역에는 10여 개의 5일 장터에서 각각 지역별로 장이 서고는 있으나 사람들의 왕래가 왕성하고 장터의 분위기가 살아 있는 장터는 필자가 소개한 제주시 민속 5일 장터, 서귀포장터, 모슬포장터, 세화장터, 한림장터, 중문장터 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밖의 장터는 소규모로 장터가 형성되고 사람이 모여 오전에만 장이 서고 일찌감치 파장이 되는 형태가 대부분 이고 시골장터일수록 평균연령이 높아 70세 전후의 분들이 장터를 지키고 있다.
제주 한림장터에서는 95세의 할머니가 앉아 야채를 팔고 있는 모습도 발견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만큼 5일 장터를 지키고 있는 연령대도 높고 애용하는 연령대도 높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육지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필자가 대한민국 전국의 장터를 직접 발 도장을 찍고 취재 촬영한 결과다.
제주지역 특별기획 이수길의 장터사람들 이야기 6회의 연재 속에서 5개 장터와 여섯 명의 장터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장터의 삶을 생생하게 들으며 넘치는 정과 강열한 모성애 그리고 헝그리 정신과 장인정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정신들이 대한민국을 만들어 온 힘의 원천이라는 것과 따뜻한 국밥 한 그릇에 인간미 넘치는 구수한 정서를 재발견할 수 있었다.
장터사람들 연재를 위해 지면을 할애해주신 제주신문과 성원해주신 애독자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하면서 제주지역 5일 장터 연재를 마무리한다. 제주지역 5일 장터에서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힘내시고 부자 되세요. 대단히 감사합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