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산시인선 3
지독한 함성
박상선 시집
도서
출판 성산
박상선(余南) 詩人
?1955년 경남 창녕 남지 출생
?1992년 비사벌 문예상 수상으로 데뷔
?1996년 문예한국 신인상 수상
?1996년 문학세계 신인상 수상
?현 창녕문인협회 회원
?현 경남문인협회 회원
?현 한국문인협회 회원
◎ 경남 창녕군 남지읍 학계리 773번지
자택 055) 526-4472
휴대폰) 010-4550-3426
E-mail : scolpio50@hotmail.com
표지디자인/성산문화사
시집을 내면서
나는 나의 詩에게 최선을 다했다. 불혹의
나이를 몇 해 지났어도 아직 어려운 삶을
꾸려가고 있슴이라 지나온 여정이 어찌 그
리 험하고 쓸쓸하였는지, 만약 나에게 詩라
는 것이 없었다면 지금 어떡하고 있을지 궁
금하다.
살기 위하여 마주한 詩, 거대한 힘과 싸
웠던 민주화의 열정도, 급속한 산업화로 침
몰하는 고향, 내 작은 삶의 열정도 모두 지
나고 나면 이렇게 詩가 되고 마는가 ?
단신으로 살기엔 너무도 벅찬 나날들,내
가 고향으로 돌아와서 찾고자 했던 것들은
이곳에도 없었다.
詩여 ! 절망이 무엇인지 희망이 무엇인지
보여다오! 나의 詩여 너를 세상속으로 보낸
다.
박상선 시집
“지독한 함정”
??????????????????????????????????????????????????????????????????????????????????????????????????????????????????????????????????????????
차례
▧ 시집을 내면서
제1부 - 오늘이 가기 전에
겨울강에서 ?11
고향에서 ?13
오늘이 가기전에 ?15
종이비행기 ?17
가을에 올리는 글 ?19
이별 그리고 이별 ?20
무중력 속에서 ?21
아무도 영원히 사랑하지 않는다 ?23
無題 ?24
안개 속에 산다 ?25
나를 아프게 하며 다가와 ?27
목련 ?29
탱자나무꽃 ?31
道草山詠 ?33
제2부 - 그대 흐르는 강이 되어
갈밭에서 ?37
웃개나리 ?39
무선호출기 ?41
모래톱 ?43
날며 자는 새 ?45
그대 흐르는 강이 되어 ?47
비닐하우스 ?49
체포영장 ?51
꽃 ?53
화왕산 ?55
민들레 ?57
火葬 ?59
역류 ?61
나는 무겁다 ?63
제3부 - 억새밭
억새밭 1 ?67
억새밭 2 ?69
억새밭 3 ?70
억새밭 4 ?71
억새밭 5 ?73
억새밭 6 ?74
억새밭 7 ?76
제4부 - 쓸쓸한 것이 쓸쓸함에게
자물쇠 ?79
아버지 유언 ?81
눈 ?82
잔설 ?84
봄바람 ?86
그곳에선 사랑 않는다 ?88
봄날, 어디서였는지 ?89
빈바다 ?91
냉이꽃 ?93
그리운 모습들은 ?95
쓸쓸한 것이 쓸쓸함에게 ?97
안개비 ?99
제5부 - 자운영
검은 사랑 ?103
감금되는 사유를 위하여 ?104
凝視 ?106
자운영 ?107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109
바람 ?111
파리잡기 ?113
지독한 함정 ?114
밀레니엄 버그 ?116
▧ 해설
쓸쓸함과 뜨거움의 친화력 ?하현식 ?117
제1부
오늘이 가기 전에
겨울 강가에서
찬바람이 돌아가는 언저리 지나
모래사장은 잠시라도
영원으로 이어질듯 하고
거기에 다가서면
하늘로 비상하는 청둥오리
마음을 동여 맨
사슬을 풀어 버리고 나면
조용히
밀려오는 적막의 소리
겨울강가에 서서
오는 날들을 위해
건너 산들에게
흐르는 강물에게
소망처럼 스며오는 설움의 독백을 주고
오늘
불러 보지만
여기에 그들은 어디로 갔는가 ?
11
저기
긴 노 걸친 나룻배를
윙윙거리며 감싸는 겨울바람에
하얗게 바래는 마음으로 건너오는
갈대 부딪히는 소리만
귓가에 맴돌고 간다.
12
고향에서
아무리 잔잔하게
바라보려 해도
저 하늘은
저 대지는
풍요로운 옛날은 아니다.
아무리 잔잔하게
바라보려 해도
저 강은
저 마을은
예사로운 옛날은 아니다.
무지의 틈을 비집고 오는
폭풍 속의 들판.
毒으로 얼룩져
東으로 흐르는 강.
살자하여 버리고 떠나가는
너희 저 동산 아랫마을.
13
아무리 잔잔하게
바라보려 해도
이 가슴은
이 주위는
평화로운 옛날은 아니다.
저곳에서
내 선 자리로 천천히 다가오는
찐득한
그 무엇 때문에.
14
오늘이 가기 전에
여보게
사랑은 어쩌면 그런 거라네
어떤 땐 솜털 같아서
훅 불면 날아가고
어떤 땐 무지개 같아서
휘황찬란하다 사라지고
어떤 땐 심술궂은 악동 같아서
마음으로 온갖 장난하고
어떤 땐 욕정 같아서
무조건 안고 싶기만 하지.
아 ! 그러나
곁에 없는 사랑만큼
슬픈 것은 없다네.
사랑하는 이여 -
15
그렇다 한다해도
가까이 다가오소서
오늘이 가기 전에.
16
종이비행기
몹시도 우울한 날에는
분홍빛 색깔의
종이비행기를 접어보세요.
깨알같은 사랑을 쓰고서
이리 접고 저리 접어두면
회오리처럼 비상하며
무르익은 붉은 장미를
흔들리게 하는 바람은
종이비행기를 그의 곁으로
보내줄 것인데
그의 곁에서
볼 품 없이 추락한다해도
사랑이 그렇게 사라지는 것은
아닐 거예요.
몹시도 우울한 날에는
분홍빛 색깔의
종이비행기를 접어보세요.
당신보다 빈자리 많은 이들
땅 끝에 움츠리게 하지 않고
하늘높이 치솟게 하는
17
외로운 마음들에 보내는
사랑을 실어
멀리 띄워보세요.
18
가을에 올리는 글
어머니
가을이 어느새 깊어졌습니다.
차가워지는 공간엔
당신의
눈물 같은 붉은 사랑이
뚝 뚝 떨어지고
전 이곳에 고개 숙이고 있습니다.
사랑은 하늘로 가고
그리움은 흙에 묻혔습니다.
한없이 길고 긴
다가서면 짧은 날
다시 돌아올 당신을 위해
이 땅위에
저를 버티어 서있게 합니다.
19
이별 그리고 이별
아버지 가셨다.
가슴에 불 하나 지펴 놓고
북풍 맞는 길을 오시어
수국도 챙기고
장미도 끊어 두고
집 앞뒤 둘러보시더만
눈앞에서 숨을 거두시고
남은 나에게
오색찬란한 울음의 띠로
마음을 동여매고 가셨다.
바람이 부니
아들아
내 숨결인양 하여라.
하나의 이별은
하나의 만남을 주고
하나의 이별은
여러 여러 개 사랑을 세상에
담아두는 것이다.
20
무중력 속에서
그곳에 가면
둘이 끌어안고 있어야만
둘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떨어져서
손가락 하나로
떠밀어도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로 멀어진다.
중력이 작용하면
그대와 나 사이는
그리워하면
서로 다가설 수 있는데
실제 혼자일수 밖에 없는
현상으로
차라리 무중력 속에서 멀어진
이유만큼
그대를 향하여 슬쩍 밀면
그대는 거기 있어도
자신은 영원하게
그대의 곁으로 다가간다.
무중력 속은
21
이별 할 때
깨진 지구의 파편을
헤치고
나설 때 좋은 현상이다
22
아무도 영원히 사랑하지 않는다.
내 안에 있는 내가 원수다.
밀려드는 그리움
스스로 내뱉지 못하고
웃개를 떠나
먼 길을 헤매 돌다가
제자리 와서는 무너지고
나를 향하여
끓어오르는 항의를 소리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어떤 것의 한계는 반드시 오고
아파야 할 땐 아파야 한다.
무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도 영원히 사랑하지 않는다.
바람처럼 어디선가에서
그렇게 그렇게
사랑한 날이 갔다.
23
無 題
바람소리 였을까
메아리 였을까
저 들녘에서 가슴 안으로
속삭이며 들려오는
肉身을 부벼대는 소리는
어쩌면 사랑처럼
어쩌면 진한 고독처럼
파도같이 헤엄치고 있었다.
태양이 내리며
꿈틀대는 大地는
冬眠의 껍질을 벗어 던지는데
자신은 천천히
깊은 잠에 빠져간다
바람소리 였을까
메아리 였을까
저 들녘에서 가슴 안으로
나를 부르는 소리는
24
안개 속에 산다.
안개 속에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보이지 않는다.
너는 잘 사느냐 ?
하우스하며
살려고 바둥거리는데
빚지고 연체 물고 .....
그곳이 안개 속이 아니라면
견디지 못할 생각들이
너를 괴롭히겠지만
지척도 분간 할 수 없는 그 속이라면
그래 희망이라도 애써 찾아내어
내일은 내일은 하며
살수 있을터이다.
너는 나를 생각하느냐 ?
몇 년을 부등켜 안고
갈무리한 것들을 말해보려 했을 때
생기지 않는 용기를 비틀어
짜고서 .....
26
너가 나를 구박하며 떠밀어 낼 때
안개 속으로 뛰어들면서
서럽게 울어도 너는 모를 것이다.
안개속에서는
좋은것도 나쁜것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 숨어서
서로의
가슴을 끌어 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생각하지 않고
안개속에 산다.
27
나를 아프게 하며 다가 와
저기 나를 쓸쓸하게
광기 속으로
몰아넣고 말 날이
분홍의 날이 다가서고 있다.
하얀 바람을 밀치고
꿈틀대다가 요동치다가
단단한 빙벽을 뚫고서
가슴까지 뚫으려는
기세로 뜀박질하고 있다.
예년처럼 모를 듯 오면
함께 마중할 사람 없는
탄식을 그 외로움을
색색깔로 물들이고
그의 창문 앞에다
번개같이 퍼담아 놓으리라.
그녀가 미소를 뿌리며
드디어는
28
텅빈 곁으로 달려오는 그 날
그를 부둥켜안고
소리치며 울음 울리라.
설 지나고
나를 아프게 하며 오는 것이 있다.
눈부시게 묻어 나는 생동에
그리움으로 입맞추며
그를 기다리는
봄의
진주 구르는 바다에
광대처럼
춤을 추던 날들이 말이다
29
목련
이 자린
변칠않는 나의 터였다.
벌거벗은 몸뚱아리
매서운 어둠 내려
숨이 끊어지게 조여도
버티고
동네 남쪽에서
사랑이 가물거릴 때
다시 태어난다.
일어서면
목구멍 깊숙이 감추었던
불씨를 토하며
그와 같은 동행은
절대로 허락 않는다.
이 터엔
붉은 각혈로
더욱 창백한 내 사랑이
30
자리하면 그만이다.
그로 하여
나의 시신을 치우게 하고
바람으로
스러진 영혼을
거두어 묻을지라도
너를 사랑하기에
모든 걸 잊고서
하얀 면사포를 두르고
너를 향해
뛰어 들 뿐이다.
31
탱자나무꽃
가시밭에
고추 던져 버렸다.
내장 솟구친
불꽃같은 정염
곁에
아무거나 있음을
끄덕이지 않았는데
태초부터
사랑 있었다면
제 몸 감싸는
본능 두고
발가벗고 나설 걸
그랬다.
오직
나 세상에 있으니
저 아름답게 눈물나는
기억 속으로
31
하얗게 같이 가고
싶었다.
32
도초산영
도초산
남쪽에 사람들 있었다.
넓은 모래에에
기러기 날고 가더니
홍정이며 홍포라
굵은 모래 같은 삶이
흐른다.
늘상 숨가쁜 계절 없는
農夫
운명의 코뚜레 끌고
청송들 동갯들 영남들
푸른 꿈을
이부자리에 펼친다.
내 보태는 세월에
추억은 강을 따라 내리고
도사( 道沙 )를 내닫는
내일은
33
동포에서 홰치고
나물 뒤 댓잎파리
반짝이며
달빛으로 주러리 구비미
든다.
별을 내려
온 고을에 깔고
도초산에
해오( 解梧 )를 걸어놓고
살아갈 날
맬 만날 인연
사랑하여 미웁든
사람들
낙강 위를 흐르며 온다.
* 道草山 - 옛 南旨面의 鎭山
34
제2부
그대 흐르는 강이 되어
갈밭에서
갈밭에 바람이 분다
모두를 떠날 것 같은
회색 빛 갈꽃이
왜 이다지 너울거리며 섰을까
이제 누구를 위하여,
그리움 갖고 가는 갈 숲에서
죽음 닮은 한기를
독기를 씹어 삼켜야 하나
그대를 잊기엔
불혹의 나인 많은 것도 아닌데
갈망이 울부짖는 하늘로
몸을 던져
언제인가 누구의 품에서
울음의 싹으로 일어나
눈시울을 적시는 사연이 되어
마음에 방황하는
37
그리움을 끌어안고
허전한 발걸음
바람으로 뒤집으며
울 어매한테 돌아가리라
인제 가슴을 틀어쥐고
두들기는 어리석은
늦게 타오르는 것을 향하여 바람 부는
갈밭에 무릎 꿇는다
38
웃개나리 *
마음에 쓸어 담을수록
무너져 내리는 나리 있다
몸에 박힌 인연을 털어 낼 수 없는
강물 흘러드는
이곳은 어쩌면 숙명이었다
더운 심장이 날뛰며
펄떡거리는
푸른 세월은 바람과 동행하며
바다로 떠밀려 가고
널린 생이 토하며 폐기되는 오욕은
저 남해에서 드러누워
솟아오르는 꿈을 붙잡기도 하고
상류 드는 소금 배를 부수고
오늘 꾸는 꿈까지 머릿속을 뽑아 낸다
나리는 바람이나 서러운 몸으로
맞이하라고
어떤 생으로 저 강으로 나아가
보라고
39
고뇌하는 물가에 고향 찍는
새발자욱 같이 발걸음을 옮긴다
헐렁해지는 기억 속으로
모래밭을 솟구친 돛대 배 끄는 동앗줄
같은 추억
그것은 가물거리기만 할 뿐
무엇이던 넘어 갈 수 있는 생각으로만
웃개나리에 서 있다
강이 소란 없이 바다로 도망가고
물가는 개기름 번들거린다
모래밭으로
바지선 중기들 다가앉는다.
* 웃개나리 : 상포 나루의 토속어
40
무선호출기
누군가의
무선호출기가 울리고 있다.
매캐한
그리움이 거리를 헤매다가
가슴에 간직만 하라고
눈물처럼 솟구치는
문자열 “ TONE ONLY ”
그리움이 진하면
전화번호도 젖은 목소리도 없다.
추울 때는
바삭 마른 찬 공기 같은
외로움을
눈으로 볼 수가 없다.
그저
몸을 흔들어 깨우는
41
떨림으로 울다가 자기 것이 아닌 듯
기억을 꿰맞추어 볼 뿐
누군가의
간절함은 무선으로 흐르고
나의 그리움은
호출기 속으로 기어 들어가도 눌러 댈
번호도 없이
그리움에게 보채기만 할 뿐
42
모 래 톱
물을 가로막는
흘러간 기억을 불러 세우는
서말 먹고
시집가는 누이의 더딘 발걸음
삼킨 모래알 때문이랴
소화되지 않는
은하수 헤쳐 보던 밤
고운 눈시울 적시며
파란 택시에 올라앉은
하얀 손수건
바람이 일어
눈으로 굴러드는 모래 알갱이
알갱이들이 날갯짓하다 내렸는데
저 강을 흘러가지 못하고
어째 어째
43
다홍치마 속에다 덥석 받아안고
- 주저앉았음이랴
철새들을 손짓해
옛날 이야기 들려주고
- 있는 일이랴
모래톱에 걸터앉아
바람으로 손 흔들고 있으니
44
날며 자는 새
꿈을 꾸우 --- 니
쪼로롱 조롱박 달린
초가지붕
붉은 노을 속 굴뚝연기 떠올리며
공굴숲
날기 힘든 하늘을 나선다.
아리리 아픈 날개
푸덕이며
떠나는 연습
부지런 떨었던 아득한 날
초가지붕 높이만큼 날다가
고층 하늘에 들어
해뜨오면 따가워 지는 눈
짊진 보따리만큼
무거워지는 날개죽지
저곳은 손 뻗어 멀지 않은 듯
멀기만 한 여정
45
속에 숨어
부스스 털고 깨는 기억
날개 젓지 않는다면
뿌리 내릴 수 없는
자면서
꿈을 꾸면서 날개 저어 저어
날아가는구나
날며 자는 새는
그래도 부럽다.
46
그대 흐르는 강이 되어
그대 흐르는 강이 되어
물굽이 돌아가는 물버들 등뒤에 숨는
돛을 달고 흘러가고 있었네
푸른 갈밭 강비탈에 누워 놀다가
노란 배추꽃 슬픈 향기에 젖어
살며시 몸을 떨다가
무명천 펄럭인 쪽빛 하늘
눈물 한 줌 뿌려
뿌우연 그리움 덧입혀 놓고
바람처럼 거침없이
빈자리 만들어 놓고는
깊은 물 속을 흘러 이 강을 흘러
가까운 바다와 도란거리러 가네
돌아 봐요
임자 잃고 허공을 물결치는
메아리
47
고개 떨군 모습을
그대 흐르는 강이 되어
칼바람 마중하는
뜨거운 숨소리 뒤에다 남겨두고
저무는 강
사랑 코빼기 홀랑 지워 버리고
돛단배 냉큼 올라타고
바다가 되는, 허물을 벗고 있었네
그대 흐르는 강이 되어
버린 그림자 하나
살아 있는 사실 하나 만으로
나머지를 저어
바다가는 길을 나서고 있었네.
48
비 닐 하 우 스
농사가 잘 안되면
눈물이 난다
피눈물이 난다
어쩌랴
발목을 붙잡고 사는 아이들아
겨울은 춥구나
뼈대 세울 목재 외상으로 넣고
비닐 덮개 거름 종자
농자재를 간신히 들여서
추운 겨울
놈들을 일으켜 세우려
기름 쳐땟는데
외상전표에 인감도장 찍어 주시오
눈앞에 눈 부릅뜨고 들이대면
지난 삶이 눈을 부릅뜨고 달려든다
어찌 오늘 오셨는지
인감도장 늦게 찍어 미안한 날
눈이 내린다
49
마음아
눈이 내린 하얀 들판으로
달려나가 보자
흰 눈꽃이 되던지 눈사람이 되던지
질긴 목숨 빌어 보던지
아 ---
시나브로 다가오실 어둠이여
기다려요 기다려요
아이들 둥지를 날을 때 까지
젖은 눈시울 마를 때까지
50
체포영장
그때 그 시간에
그 거리를 지나치면서 눈을
마주쳐 버린 죄이리라
세월을 뛰어 넘어도
버린 것들이 안도가 아니었음을
속을 태워버린
뼈저린 후회였음을
이제는 안다. 바람까지도
함께 한 날이
함께 있기 싫어 한 날 보다
수없이 많았다.
떠난 이 돌아오지 않으리
함께 가던 길
갈라 세운 우둔을 붙잡아다가
찬 감방에 넣을란다.
생의 반이
뒤틀려 숨쉬기도 어렵던 날
51
어디 말없어도
온전했겠느냐 ? 사 랑 아 -
사랑아 거기 서있거라
체포영장 한 장 끊어서
무기력하게 풀어 헤쳐진 날들을
눈물로 고이 씻어서
동아줄 묶어
제자리 갖다 두고저 하느니
52
꽃
꽃이 되어도
그는 보질 못한다
바람이 스치며
보는 건 울음이 아니다
꽃이 되어도
그는 보질 못한다
가까워도 맘 멀어 먼 거리
뿌리를 흔드는 통증으로
몸이 떨었다
보지 않는 꽃이 되어도
어쩔 수 없이
막막한 허공을 붙들고
조용히 저물며
눈 찌르는 석양 때문일까
꽃이 되는 건
몸이
바람에 울렁이고
53
그림자 자꾸 달아나서는
뒤돌아다보았다
몸이
조각 나 흩어져서
꽃이 되는 것
바람 속에
온 몸을 찢어 놓는다.
54
화왕산
- 滿山紅花
화왕산
참꽃들이
눈을 뜨고 있었네.
세월의 쌈지 푸는
햇살
창검 든 의병들의
굵은 숨소리
달구고 있었네
낡은 색깔 뒤집어엎고
선혈 뿌린 의기
깃발에 매달고
아 ---
성벽을 보다듬고
참꽃이 되어
어느 봄날
일제히
55
외치며 일어나
우릴 부르는 소리
하얗게 오라
그리움이 타오르는
붉은 산성 속으로
56
민 들 레
바람이 아직 차갑다
동지여
우린 무얼 껴안고
목소리 높였었나 무얼 위하여
이 들에 내리는 햇살은
예전과 다름없는데
독하지 못한 마음을 치켜 뜨고
우린 무얼 바라보며
주먹 쥐고 누굴 끌어내리기로
하였었나
이 들에 부는 바람은
예전과 다름없는데
더러는 죽고 더러는 병신이 되고
우린 무얼 껴안고
목소리 높였었나 무얼 위하여
대부분 말없이 살아남은
들에 조용히
육신을 풍화시키는 바람이 불어온다
삭풍 속에 보이던 모습
와서보니 별것도 아니던데
57
동지여
우린 무얼 껴안고
씻지 못할 눈물
흘렀었나 무얼위하여
민들레처럼
58
火 葬
마침내
우리를 샅샅이 헤엄치며
다니면서도
끝닿지 못하는
그리움
틈이 벌어져
물이 흘러
건널 수 없이 넓어진
공간 사이를
인연이 스며
인연을 밀어내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서
되돌아보면
또 다른 이별이 부른다
목소리
벗어날 수 없는
59
인과라면
그리움까지 없애
잊는 것조차
탈 없이 하리라
불꽃으로 태워버려
사랑을
더욱
사랑스럽게 하리라
그
사라지고 없어지는
적멸의
길은 멀고도 멀다
60
역류
강이 바다로 가는가 보다
덜 익은 사랑이
뱃전에서
삿대를 만지작거리더니
강언저리 서성대더니
먼 산을 보더니
발길을 가로막는
굼턱을 돌아서
강이 바다로 가는가 보다
그리움까지
눈 흘기며 붙잡아 싣고서
바다로 가는가 보다
저 가면 그만이지만
공기 빠진 가슴이
언제
바다로 간 것들을 찾으려
갈 수 있어려는지
아 --- 넓을 수밖에 없는
너울바다로
맘을 갖다놓고
61
몸은 되레
강을 거슬러 오른다.
62
나는 무겁다
나는 무겁다
어쩌면
전생에 솜털 같이
가벼운 것 이였다가
어쩌면
나비였다가
꽃밭을 싸돌아다니며
모두 입맞추다가
벌받는지 모른다
나는 무겁다
생의 이 편에서
내 무게는 확실히
일어서기조차 어렵다
내가 무거운 건
내게 맞은 것이
세상에 맞지 않는다던가
내 마음속의
63
사람을 마음대로
사랑할 수 없었다던가
미워하던 것들이
옮아간
마음속에 슬픈 잔해들이
쌓였는지 모른다
나는 어쨌던 무겁다
생을 잇는
전생의 죄였어도 그렇고
내가 나의
생이 어두워
눈물을 흘릴 때도
처진 어깨만큼
나는 무겁고 무거웠다
64
제3부
억새밭
억새밭 1
억새 밭에는
어째 바람이 숨어서
쉼없이
손 흔드는지
억새 밭에는
어째 구름이 숨어서
알싸한
눈물 흐르는지
억새 밭에는
어째 목소리 숨어서
애타게
저를 부르는지
억새 밭에는
바람으로 구름으로
목소리로
제 몸을 씻고
67
아 -
산다는 것은,
이 아득한
그리움 벗겨내는
일인지
68
억새밭 2
억새밭에는
허물 벗는
계절이 가만히
숨어 있다.
억새밭에는
억센
세월이 돋보기 속에
숨어 있다.
억새밭에는
다붓하게 몸 기대고
서서
누구를 기다려야고
억새밭에는
키 커도 키 닿지 않는
하늘이 있어
닿을 수 없는
그리움처럼
막막하다.
69
억새밭 3
하늘만 푸르냐
푸르기는 매 한가지 같은 푸름으로 몸이 솟는다.
산객의 숨결 사라진 뒤
능선이 비틀거리며 산 속으로 숨는다.
계절이 가면 푸른 옷 벗어 떡갈나무에 걸어두고
높이 솟구친 꽃술 털어
바람 갈무리 풀어서 실어 보내야느냐
보내줘야 할 것은 같이 띄워 보내야느냐
70
억새밭 4
억새밭에는
작은 몸 하나 누워도
밀어내질 않는다
억새밭에는
누우면 누울수록 일어서는
하늘이 있다
억새밭에는
취하면 취할수록
몸이 산을 파고들고
억새들이 일어나
춤을 춘다
이 旅程
보이지 않을
억새밭에 들어가면
몸이
빨간 고추잠자리
몇 마리 먹고
71
능선이
산을 끌어안는다.
72
억새밭 5
火旺山엔
온통 억새밭이다
義兵들의 당당한
창칼 같은
억새들
火旺山엔
시퍼런 義憤이
산보다
높은 억새밭
背信과 不義를
한치도 용납하지
않는
억새들이 산다
지금
火旺山엔
온통 억새밭이다.
73
억새밭 6
억새밭에는
하고픈 말들이
팔랑대고
있었다.
물기 젖어
목구멍 기어드는
말
종내
전하지 못 한
소야곡들이
모여
서로를 붙들고
부벼대었다.
억새밭에는
잎살까지 세우고
갈색꽃 피워
누구든지, 가슴에다
74
던져주고 있었다.
갈색으로 부터
하얗게
하얗게
75
억새밭 7
억새밭으로 所願이
숨었다면
주체 못 할 그리움은
억새꽃이 되었다.
심장을 벤
붉은 선혈이 깊숙이
흘러
두발이 문드러지고
땅속 깊이 파고들어
누군가의 가슴속으로
갈무리되어 가는
네가 가는 길목
쓸쓸한 바람과 함께
벌떡 일어나
춤을 추는 저 능선 위
저 마음
좀 봐 좀 봐.
76
제4부
쓸쓸한 것이 쓸쓸함에게
자물쇠
그것은
어두운 호주머니 속에서
눈 뜨고 있었다.
작아서
울음 나는 것이
호주머니 속으로 부터
축축하게
배여 나오고
윗,아랫도리
여러 곳에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들
있어
꼼지작거리는데
들락날락 하는 손으로
보고싶은 얼굴 하나
갖고싶은 소망 하나
79
안된다면,
체념이라도
끄집어내질 못한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80
아버지 유언
아무 것도 믿지 말거라.
자본주의는
아무 것도 믿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오랫동안 마시던 공기를 폐하고
탄 가스를 집어넣은
이유를 너는 아느냐 ?
이십세기를 벗어 던지는
널어진 주검을 향하여 우는
가증스런 울음 뒤에는
그 쌈지가 웃고 있었다.
아무도 믿지 말거라.
그건 너가 살아 있는 동안
가장 나 같지 않는 아들에게 주는
마지막 유언임을 알거라.
81
눈
눈은 물을 먹고 자란다.
빈 가슴속으로 흐르는 물줄기들이
하늘에서 내려
구석구석이 틈 없이 보얗다.
눈은 거침없다.
원하던 원하지 않든 구애를 받지 않고
하얗게 덮어 어둠을 밝히며
소경의 작대기처럼 걸어 들어온다.
밤은 새벽으로 끝난다.
새벽은 낮으로 가다가 다시
밤으로 가는 이치
눈꽃송이로 내려앉은 물들이
땅을 적시고 땅엔 대지를 세우는
나무들이 솟고
그대와 나 사이에 없는 타인의
다리를 건너가리라.
82
눈은 물을 먹고 자란다.
말라비틀어진 기도를 빠져나간 혼들의
눈물을 먹고
눈은 좁은데 너른 데를 가리지 않고
내린다.
83
잔설
눈(雪)은 눈(目)이 있다.
더러운 것
죄덮어
태연히 뿜어대는 독연을
삼킨다.
눈(雪)에는 눈(目)이 있다
높솟은 나무들
닿을 수 없어
저 나무 밑 보던 날
저 가지 위 얼마나 높은지
아는
후회를 운다.
뺏어라
가둬라
밀실 뒹구는 저주를 위해
흐르지 않을 수 없는
개천이 되어
흐른다.
84
무어든 제자리만 있지 않는 것
눈(雪)에는 눈(目)이 있어
잊은 게 많은
의식의 동통을 위해
수의를 입혀두었다가 천천히
벗겨낸다.
눈(雪) 온 뒤 눈(目)을
하나 더
가지고 간다.
85
봄바람
그저깨던가요
이 바람 불던 날은
그저깨던가요
이 들에 푸른 눈
솟던 날은
여긴 봄바람 불어요
시집가는 누이
불그스레한 두빰에 흐르는
수줍은 미소 품은
바람이요
눈 감을 새
계절은 후다닥 지나가고
내속에도
봄바람 불어요
내속으로
그가 걸어오고 있어요
86
그저깨던가요
꽃봉오리 물들인
연분홍빛
가슴을 적셔
우리를 환장(換腸)하게
하던 날이요
87
그곳에선 사랑 않는다.
첫사랑이 지나간 뒷자리엔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뜨거운 포옹은 식어 버렸고 참새들의
조잘거림도 사라졌다.
내겐 지우고 없는 시간을 그곳에선
지울 수 없다.
다부지게 쥔 손아귀
망각으로부터 회상의 바람이 닥쳐와
다 끝난 추억을 불러 세우고
뜰에 제 몸 박는 뿌리를 뽑아낸다.
그곳에선 아무것도 되는 게 없다.
가까운 것은 허물로 자라고
먼 곳에 있는 것은 아련한 우상이 된다.
그곳에선 나는 없다.
가질 수 없는 마음을 갖고 슬퍼하기엔
너무 늦은 때
그곳에선 사랑 않는다.
88
봄날, 어디서였는지
이렇게
따뜻한 봄날에
눈물이 난다.
꽃망울
환한 산고(産苦)를
앓는 어떤 봄날에
햇살에
꽃이 피고 꽃이 지고
마음속에
봉오리 진 그리움도
피고 지고
그대 소리 없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 듣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아 -
이렇게
89
눈부신 봄날에
그대의
곁으로 가고 싶다.
90
빈 바다
빈 바다를 가는
빈배는 그 바다 보다
못났다.
빈 것은 잃을 것 없는
가라앉기 쉬운
빈배에 빈 바다를 채워도
육지는 없다.
너에게로 나섰다가
빈배로
거친 밤바다를 돌아오는
나는 천치다.
빈 가슴속으로
부표는 갈 길을 떠올리지 않는다.
호롱불 같은
별빛이 쏟아질 뿐
거센 파도는 밑바닥 속
91
등대를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어디로든지
너에게로 다시 가려 할 때
나는 비로소
침몰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92
냉이꽃
그대의
눈 속을 부끄러웁게
들면
전 거기 없었어요.
가냘픈 순정이
몸을 떠 받히고 서서
하얀 화관 쓰고
소리 없이 웃는 얼굴로
그대를
올려다보아도
춘곤증 쫓는 식탁에
올려놓고
입맛을 다시며 잡술 뿐
모두 좋은 날
가시는 걸음마다
저도 여기 있어요 하면
눈길은 그냥
93
지나치고 말더이다.
그러하실지라도
씨방마다
까칠까칠한 숨소리 잠재우고
영원히 영원히
전 여기 있을 거여요.
94
그리운 모습들은
내 몸안의 천사
봄바다를
싸돌아 다닌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가
꽃망울에 맺힌 햇살에 머문다.
겨울 벌판에선
실연으로 위로 받고 싶을 때
부등켜안을
가슴이 없다.
슬픔은
저렇게 꽃이 피려고 할 때도 오는가 ?
내 몸안의 천사
나를 빠져나와
봄바다를 헤엄쳐 다닌다.
95
그리운 모습들은
이곳 저곳
어디에서나
빛나고 있으므로
96
쓸쓸한 것이 쓸쓸함에게
내 눈에 쓸쓸한 눈물이
고일 때
쓸쓸함에게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내 머리칼이
쓸쓸하게 바람에 흩날릴 때
난 정말 쓸쓸함을
껴안고 울지 않았다
쓸쓸한 것은
밑바닥에서 부터 가슴속을
차 오르더니
자기을 버린 채
외면하려고 한 것들이
정말 배신인 것을
주위가 쓸쓸하게
비오는 날 되고 있을 때
쓸쓸함들이
97
주변을 서성일텐데
나는 내 쓸쓸한 것들 속에
갇혀 있었다
오 오 나의 이기여 !
두 눈을 뜨고도 보지를
못하는구나
쓸쓸한 것과 쓸쓸함에
어찌 경계 있으랴
98
안개비
끝이 아닐 것이다
나서야 한다
배반의 적막함이
축축한 뿌리를 내리면
꿇은 무릎은
주저앉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안개비속에서는
조금은 슬퍼해도 모른다
그리운 걸음
나서지 않는다면
나는 오도 가지 못하고
쌓인 울음만
뒤적이고 있을 것이다
안개비속에서는
볼려면 어렴풋이 보인다
99
우리는 뚜렷한 것만
줏어담다가 희미해진
공간으로
다가가 나서진 않는다
우리 모습이 그럴 진데
굵은 물방울이
앞가슴에
훈장처럼 매달린다.
100
제5부
자운영
검은 사랑
우린 그전에는 작은 등불이었지만
가누란 별빛으로 빛났었다.
어느 날
어깨 위에 내려앉는 햇살
밀쳐두고 고운 색깔마저 흩어놓고
날아다니는 허무를 쥐면 얼룩진
우수처럼 어두워지는 절망의
빛깔이 되어 검게 타 던다.
덧없이 훌쩍 사라지는
깊은 이별로 빛은 어둠이 되고
우리가 우리를 슬퍼하게 되리라.
우리가 검정 색이었다면
검은 사랑으로 울음이 된 것을
버리면서 걷다가 점 점 환하게
마무리되리라 그것이 우리의
시작이라면 좋겠다.
103
감금되는 思惟를 위하여
작은 것을 만지작거리면
작아진다.
큰 것을 이루는 것은 작은 것
보통이 그렇다.
큰 것을 잘게 쪼개
그 하나를 가지고 싶다는 것
소망의 크기 때문 아닐지
개여울로부터 시내는
강이 되고 바다로 늘 흘러
우리 앞에 있었다.
늘 바다를 쪼개는
자신을 슬퍼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대로였다.
104
이제 박제된 사유로부터
깊이 숨던 수렁으로부터
넓은 바다로 오라
머물러 개여울이 되지 않는
눈물들이여어-
105
응 시 ( 凝 視 )
절망의 끝을 볼려고 들어 갈려고도 마라.
절망의 끝에는 죽음이 싸늘한 손을 뻗고
자기를 들여다 놓는다.
절망의 몸체가 어떤 것인지 바라만 보라.
그것으로 반대편에 서있는 말을 떠올리기
쉽다. 낙선(落選)한 자유기고가의 죽음이
온라인에서 해일이 되어 전해져 왔다.
목을 맨 용두산공원에는 무정한 바닷바람
이 스쳐가며 인간의 마음속에 터를 잡지
않는다.
사람으로 하여 절망하지 마라.
그저 왔을 뿐 그저 살고 있을 뿐 인 데야.
사람으로 하여 분노하지 마라.
사람 안에 있는 선악(善惡) 그 자체가
실존(實存)인 까닭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아. 절망으로 절망하지
마라. 마음의 절망을 베어내고 춤을 한번
추어보자. 조금은 즐거워지지 않겠느냐.
사랑하는 사람들아. 사랑으로 절망하지
마라. 절망하는 사랑은 기어코 사랑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자 운 영
내 속에 없으므로
사랑 할 사람이 없다.
사랑 할 사람이
없으므로
사랑은 더욱 멀어진다.
그렇게 그렇게 남은
빈자리는
들꽃들의 자리가 된다.
꽃들이 절 부르며
자운영 얼굴 내 밀므로
다가간 입맞춤으로
눕는 것에 자리를
가리지 않은 罪
다시 누울 자리가 없으므로
107
그렇게 남은 빈자리에는
꽃들이 웃는다.
자운영이 엎드린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5월이 가까울 때
떠오르는 얼굴이 그리울 때까지
죽은 체 엎드린
그 쓸쓸함에 대하여
5월이 가까울 때
옆에 없는 목청이 울리 울 때까지
온 몸을 기어오르는
그 쓸쓸함에 대하여
꽃망울 피어오르는 장미화원에서 눈을 감고
가슴속으로 떠올려야만
5월이 있음을 그리움이 있음을 안다.
사랑은 이제
허전한 마음 곁에서 꽃피울 때를
기다리며 천천히 솟아오를 준비하다가
109
사랑은 이제
물오른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별빛으로
숨을 터 오르는데
꽃피는 장미화원에서 같이 걸을 수 없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110
바람
바람은 가엽다.
아무 어깨에 내려앉지만
머물지 않는다.
바람은 스스로 울지 않아도
거친 숨소리 곁에서
제가 우는 것처럼 운다.
바람은 가엽다.
바다에서 큰바람이 되어도
스스로 몸을
낮추지 않는다.
쓰러질 듯 하더니 쓰러지는
때로는
덧없이 나뒹구는 몸을 외면하는
바람이 숨는다.
바람은 가엽다.
기대며 쓰러지는 몸이 없어
111
발 아래로
바람이 떨어져 내린다.
파리 잡기
파리떼는
쓰러지는 것을 먹는 것
그래도
파리는 한 마리씩
잡는다.
파리는 한 마리씩
잡혀죽지만
떼를 지어 죽는 것처럼
보인다.
파리를 한꺼번에
죽이는 것은 없다.
파리는 종내 한 마리씩
잡힌다.
몸을 갉아먹는 것
무덤 속의
파리는 한 마리씩
잡는다.
113
지독한 함정
그 집 앞을 지나가는 데
부르는 손짓이 없다.
不惑, 그 시작의 절반도
넘어 선 발걸음
그는 어저깨 은밀한 誘惑으로
내게 오더니
그리움을 깨부수고 있었다.
가슴이 나를 外面할 때
生이 나를 背反할 때
나는 먼 발치에 선 구경꾼 아닌
當事者가 되고야 마는
아내였던 사람
사랑이 있을까요 라는 말
부어 오르는 白骨의 눈을 뜨고
그래 그게 없을지 모르지만
너와 나사이의 사랑은
하얀 喪服을 챙기고 있으리라고
114
제 집 앞을 지나는 데
그를 부르는 손짓도 없다.
115
밀레니엄 버그
사랑하지 마셔요
올해는 사랑하지 마셔요
저가 주물러 놓고
공포(恐怖)에 저미는 이런 미련을 두고
올해는 사랑하지 마셔요
시간(時間)은 헝클어지고 추억(追憶)은
먼저 지워질 거예요
차라리
독한 포도주(葡萄酒) 마구 마셔요
그럼 시간(時間)이 멈출지도 모르고
그때의 달콤함을
우리 함께 하셔요
올해는 사랑하지 마셔요
여러 부품 조립해 두고 우리의 신(神)이라고,
그 속에 뒈져버린
불쌍한 것을 위하여
116
<해 설>
쓸쓸함과 뜨거움의 친화력
하 현 식 (시인, 문학평론가)
1.
박상선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지역 문협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을 때이다. 나의 향토이며 그의
향토이기도한 지역의 문학탐방을 위하여 가이드를
부탁하기도 했다. 일견하여 그 육중한 외모를 통해
서 투박한 정신을 읽어내었다. 두꺼운 철판으로 주
조해낸 거대한 철의 상자 속에 용광로처럼 타고 있
는 불길을 느꼈다. 그리고 지역문학지의 제작을 위
하여 출향문인들의 원고수집이 여의치 않으면 그들
의 영구차가 향토의 선산으로 들어오면 길을 막아
버리겠다는 호언장담을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 지역
의 문화유적지를 다 안내하고 난 뒤에 그는 반드시
낙동강변으로 순례자들을 끌고 가서 강물의 유장함
을 맛보게 하는 순서도 빠뜨리지 않았다. 철교의 난
간을 부여잡고 무심코 수면 위로 시선을 던지며 감
117
상하는 방법까지를 시범했다. 철교의 난간과 흐르는
강물을 배경으로 등을 보이고 서있는 그의 뒷모습
에서 나는 그의 안으로 타오르는 열정 외에도 삶에
대한 지극히 쓸쓸한 일면을 발견하곤 했다.
그 뒤로부터 나는 내 생장지였던 향토의 북부지
역보다 남쪽에 더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유
유히 흐르는 강줄기를 바라보며 쓸쓸하면서도 뜨겁
게 살고 있는 한 사람의 향토시인 때문이었다. 그도
한때는 먼 타관을 떠돌다가 시를 위해 낙향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 아일랜드의 예이츠처럼 그
토록 고향을 그리며<이니스프리의 호도>란 명시를
남겼으나 끝내 귀향의 기회를 갖지 못했던 처지가
되어버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박상선 시인이야
말로 참으로 행복한 존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
래서 나는 그를 문단에 천거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
았다.
이제 그를 두고 시를 배제하여 생각하는 일은 그
에 대한 저주이며 살상행위가 될 지도 모른다. 그리
고 그가 보내온 소중한 첫 시집의 주옥같은 원고를
들치면서 나는 재차 쓸쓸함과 뜨거움의 삶을 느끼
118
며 이 글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당위성에 스스로
도취되어 버린다.
2.
예술은 언제나 두 개의 패러다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 하나는 예술을 위한 예술의 형태로 존재하
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삶을 위한 예술인 것이다.
전자는 이른바 예술지상주의의 기치 아래 성립되고
있으며 후자는 인생지상주의 지표를 근간으로 삼는
다. 이러한 구분은 박상선시학에서 어떤 의미로 접
근할 단서를 가지게 되고 나아가서 이 시인에게 있
어서의 시적 긍극성을 규명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글은 곧 그 사람이다’라는 명
제에 부딪히게 마련인 논리의 타당성이 예시한 양
자의 전제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러한 가정은 곧
박상선의 시적 구조의 내밀한 성정이 쓸쓸함과 뜨
거움의 반경 위에서 스스로의 인생을 토로하고 있
음을 바탕으로 접근할 때에 박상선은 어쩔 수 없이
들끓는 의식 주변에서 적막하게 서 있는 시의 건축
물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19
저기 나를 쓸쓸하게
광기 속으로
몰아넣고 말 날이
분홍의 날이 다가서고 있다.
하얀 바람을 밀치고
꿈틀대다가 요동치다가
단단한 빙벽을 뚫고서
가슴까지 뚫으려는
기세로 뜀박질하고 있다.
예년처럼 모를 듯 오면
함께 마중할 사람 없는
탄식을 그 외로움을
색색깔로 물들이고
그의 창문 앞에다
번개같이 퍼담아 놓으리라.
「나를 아프게 하며 다가와」일부
정서적인 차원은 박상선 시인에게 있어서<쓸쓸
120
함>이 <광기>와 복합적으로 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경우<광기>는 뜨거움으로 풀이될 수
있다. 피상적으로 보아서는 역설이 될 법도 하지만
이 시인에게 오면 표현상의 역설을 넘어선 진실성
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시적 화자의 <쓸쓸한 날>은
곧<광기 속으로 몰아넣고 말 날>로 접근된다. 이는
<쓸쓸함>과 뜨거움의 친화력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기대감은 2연에 오면<하얀 바람>과
<빙벽>을 배제하면서<뜀박질>하는 열망의 경계에
놓이는 것이다. 이 시인에게 있어서 그것은 예술적
열망이며 삶에 대한 열망으로 궁극적으로<미소 뿌
리는 그녀>로 구체화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스스
로를 <안개>의 공간에다 던져주고 있다.<안개>는
또 다른 의미의<쓸쓸함>과<뜨거움>의 역설적 구조
로 해석된다.
안개 속에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보이지 않는다.
너는 잘 사느냐 ?
121
하우스하며
살려고 바둥거리는데
빚지고 연체 물고 .....
그곳이 안개 속이 아니라면
견디지 못할 생각들이
너를 괴롭히겠지만
지척도 분간 할 수 없는 그 속이라면
그래 희망이라도 애써 찾아내어
내일은 내일은 하며
살수 있을터이다.
「안개 속에 살다」일부
여기에 오면<안개>는 위무의 그 무엇이 되고 있
다. 즉 <쓸쓸함=나쁜 것>과 <뜨거움=좋은 것>이
<보이지 않는=구분되지 않는> 경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적 화자는 인내하며<그 날>을 기다리
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것들 즉<안개>에
의탁하여 위안을 터득하며 현실적 자아를 지탱해
간다. 이 시편은 비교적으로 박상선의 시편에 있어
서는 환상적이기보다는 현실성을 개입시키고 있기
122
때문에 삶에 대한 의식이 더욱 또렷하게 진술되고
있기도 하다. 결국 <쓸쓸하지만> 추스르면서<안
개>를 방패로 삼고<그 날>을 열망하는 자세가 진술
되어 나타난다.
갈밭에 바람이 분다
모두를 떠날 것 같은
회색 빛 갈꽃이
왜 이다지 너울거리며 섰을까
이제 누구를 위하여,
그리움 갖고 가는 갈 숲에서
죽음 닮은 한기를
독기를 씹어 삼켜야 하나
「갈밭에서」일부
이 시인의 시편으로서는 서정이 짙은 색깔로 드
러난다. 그러면서도<죽음 닮은 한기>라든가<독기>
로서 정서적 강열성을 표출시키고 있다. 시적 화자
123
는 스스로<갈꽃>임을 자처한다. 일찍이 신경림은<
갈대>란 시에서 서민의 애환을 대변하였다. 이 시인
은<갈꽃>을 통하여 시적 화자의<쓸쓸함>의 극치를
형상화하고 있다.<안개> 속에서의<갈꽃>은 아니지
만 <독기>를 통하여 존재의 뜨거움을 피력하는 일
을 서슴치 않는다. 특히 <왜 이다지 너울거리며 섰
을까>에서 시적 화자의 <쓸쓸함>이 미학적 진경을
드러낸다. 어떤 의미에서 긴 존재의 <쓸쓸함>은 숙
명적인 것이라는 암시까지도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갈꽃>의<너울거림>은 4연에서 직시되는 바와 같이
<갈망이 울부짖는 하늘>로 구체화되기도 한다. 또는
<늦게 타오르는 껏>으로 현현되어 이 시인의 우주
관의 단면을 절실하게 토로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때의 <늦게 타오르는 것>이나 <갈망이 울부짖는 하
늘>이야말로 이 시인만이 갖는 시적 정서에 있어서
<쓸쓸함>이나 <뜨거움>을 진솔하게 투사하는 바의
중심이기도 한 것이다.
이쯤되면 박상선시학을 관통하는 정서적 반경의
바탕은 <쓸쓸함>이요 그 토대 위에서 시적 화자의
의지를 일으켜 세우는 힘은 바로 <뜨거움>인 것을
124
간파하게 한다. 이를 집짓기에 대입한다면 건축물의
터전은 <쓸쓸함>이며 조형물을 지탱하게 하는 원동
력은 <뜨거움>인 것을 규명하게 된다.
3.
자연을 통한 쓸쓸함과 뜨거움의 인식은 박상선에
게 있어서 하나의 특성으로 간파된다. 그것은 그가
속하고 있는 공간적 특성이기도 한 것이며 나아가
서 전술한 바의 향토적 관심의 일단이기도 한 것이
다. 그리고 단순한 자영교감 내지 자연친화의 경지
이기보다는 자연에 의탁한 자아발견과 성찰을 현시
함으로 시적 성취감에 보답하고 있다.
억새밭에는
작은 몸 하나 누워도
밀어내질 않는다
억새밭에는
누우면 누울수록 일어서는
하늘이 있다
125
억새밭에는
취하면 취할수록
몸이 산을 파고들고
억새들이 일어나
춤을 춘다
이 旅程
보이지 않을
억새밭에 들어가면
몸이
빨간 고추잠자리
몇 마리 먹고
능선이
산을 끌어안는다.
「억새밭 4」전문
자연의 표상으로서의 <억새밭>은 박상선 특유의
정서인<쓸쓸함>을 상쇄시키는 터전이 되고 있다. 1
연에서의 <몸 하나 밀어내지 않는> 표용성을 얻어
냄으로서 <쓸쓸함>의 소외적 경계로부터 위안을 얻
게 된다. 집단으로부터 소외당하는 존재의 심리적
126
단서를 기준으로 삼을 때 현대 문명은 무수한 고독
의 요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른바 인간성
의 상실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문명의 반대급부로서
의 자연의 따뜻하고 아늑함을 보여 주는 예가 아닐
수 없다.2연에서는 또한 <누울수록 일어서는 하는>
을 발견하는 초현실적 비젼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박상선의 또 다른 정서적 맥락이 되고 있는 <뜨거
움>의 표출에 닿아 있다. 역설적 상황설정을 통하여
그가 배가하는 열정과 미래지향적 이상을 강조하게
된다.<하늘>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 시인의 궁극적
지표이며 잡답한 세속의 가치지향에서 보다 고답적
이고 진취적 의식의 ?V현으로서의 의미에 닿아있다.
결국 공간적 배경으로서의<억새밭>은<하늘>로 환
치되는 유토피아적 의의로 접근되는 것이다 또한 3
연에서는 불가시적 대상으로서의 정신적 패턴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의식의 흐름 속에서도 무구한 환
상과 탈세속성의 순수함을 발견하는데서 시인 자신
의 순수무구한 내면의식을 대변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교감으로서의 이상세계에 도취되어 인간사의
부조리함을 척결하려는 갈망을 객관화하고 있다.
127
내 눈에 쓸쓸한 눈물이
고일 때
쓸쓸함에게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내 머리칼이
쓸쓸하게 바람에 흩날릴 때
난 정말 쓸쓸함을
껴안고 울지 않았다
쓸쓸한 것은
밑바닥에서 부터 가슴속을
차 오르더니
자기을 버린 채
외면하려고 한 것들이
정말 배신인 것을
주위가 쓸쓸하게
비오는 날 되고 있을 때
쓸쓸함들이
128
주변을 서성일텐데
나는 내 쓸쓸한 것들 속에
갇혀 있었다
오 오 나의 이기여 !
두 눈을 뜨고도 보지를
못하는구나
쓸쓸한 것과 쓸쓸함에
어찌 경계 있으랴
「쓸쓸한 것이 쓸쓸함에게」전문
이 시는 박상선의<쓸쓸함>의 미학을 보다 진솔
하고 직설적으로 토로하고 있다. 1연에서 우리는 현
실적<쓸쓸함>과 내면적<쓸쓸함>은 일종의 고적감
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시인의 단면적 외로움에
서 야기되는 삶의 형상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면적<쓸쓸함>은 정서적이며 근원적이다. 인간은
누구나<쓸쓸함>을 가슴에 안고 태어난다. 어떤 논
자는 태어남 자체에서 벌써 <쓸쓸함>의 숙명성을
발견한다고 일컫는다. 이 때의 <쓸쓸함>은 허무의
심상과 불가피하게 연결되고 있다. 인간은 언젠가는
129
지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결과론과 맺어져 있음에
서이다.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허정성은 곧 혼자서
태어나서 또 홀로 떠나게 되는 단독적 의미가 <쓸
쓸함>을 더욱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한 외면
적 또는 현실적인 것의 내면 또는 근원적인 것에
대한 접속은 더구나<쓸쓸함>의 극치를 형성하게
된다. 박상선의 쓸쓸함의 미학은 이러한 양자적 관
계로 설명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박상선은 결코
전자가 후자에게 <눈을 보내지 않았다>는 시적 정
서적 논리로서 반전의 관계로 접속함으로서 쓸쓸함
의 정서 내지 원리가 뜨거움의 지향점을 설정케 된
다. 더구나 2연에 와서 전자가 후자를<껴안고 울지
않는다>고 진술하는 가운데서 현실에 대한 냉혹성
과 시적 자아의 당당한 자세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
다.3연에서 이 시인은 전자와 후자의 관계를<외면
>과<배신>의 의미로 접근시켜서 자아의 세계에 대
한 냉혹성을 점층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보여준다.
나아가서<내 쓸쓸함 속에 갇혀 있음>을 통하여 존
재로서의 자기만의<쓸쓸함>을 진작시킨다. 시인은
쓸쓸함으로서 자기 신념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추
130
스르고 있다.
비록 현적으로 쓸쓸하다 하더라도 고독에 대한
위안을 밖에서 구하지 않는 분명한 이지적 세계관
을 내보이는 것이다. 전자가 후자와 둘이면서 동시
에 하나가 되는 쓸쓸함의 利己的 자세를 통하여 박
상선류의 쓸쓸함의 미학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박상선의 인식적 결과는 양자적 결과 즉 상대적 모
습을 취하고 있다가 궁극적으로는 정대적 현상으로
구축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저 김현승의 양식에
비견한다면 견고한 쓸쓸함이나 절대적 쓸쓸함을 취
하는 자세에 다름 아닌 것이다.
5.
이상과 같이 박상선 시학의 여러 면을 고찰해 보
았다. 첫째는 그의 정서적 구도가 <쓸쓸함>의 배면
에서 <뜨거움>의 의욕적인 정신이 항상 변증법적
관계로 용출하고 있음을 통하여 상대적 요소에서
절대적 생의 의미를 추구하고 있다는 결과에 닿아
있다. 둘째는 고독과 열정이 결코<안개>라는 매개
체를 통하여 은밀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암시적이며
131
상징적 특성으로 작용되는 것이다. 그<안개>는 어
떤 의미에서 생에 대한 대범성과 포괄성으로 해석
되는 것이다. 외로우면서도 언제나 강건한 의욕으로
삶에 대처하는 속성에 다름 아닌 것이다. 섯째는 향
토와 자연에 대한 애정에서 유별되는 무구한 의식
으로서의 위상을 취하는 점이다.
자연 속에서 생을 의탁하면서 자연이 자아의 기
조이며 요람인 정서적 의의를 구축하는데 있다. 그
래서 스스로 떠도는 자의 자리에 귀의하여 자연을
눈여겨보면서 자신을 발견하고 성찰해 삶의 외양적
모습을 시적 구조로서 내면화하게 된다. 문명이 아
무리 편리하고 능률적이다 하더라도 그것들의 배신
을 미리 경계하는 삶의 자세를 견지하는 측면인 것
이다. 넷째는 현실과 의식의 상보적 관계인 것이다.
그것은 처음 둘이었으나 하나가 되는 절대적 쓸쓸
함인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의 쓸쓸함의 미학
은 지극히 개성적인 자태로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
다.
그러나 박상선의 시적 구조에서 지적되는 교육적
측면을 간과하지 못한다. 그것은 이 시인이 지나치
132
게 무엇을 써야 할 것인가를 지양하고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측면의 고뇌를 권장하고 싶은 것이다.
시가 언어적 장치로 이룩되어져야 하며 결코 형이
상학적 사유로만 존재해선 안 된다는 점을 자각하
는 일이다. 이러한 관심은 시에 있어서의 표현상
의 결함을 보완해주며 구조적 측면까지도 바람직
하게 변화시켜 주리라 기대하는 것이다.
어쨌던 박상선에게 있어서의 쓸쓸함은 바로 뜨거
움에 대한 친화력으로 간파되거니와 이는 곧 인간
적 측면에서의 박상선 시인의 속성까지도 포괄하고
있음에 대하여 지극히 긍정적인 관점을 환기시키고
있다. 특히 각고의 노력으로 더욱 치열한 시정신을
갖추게 될 때에 신선하고 개성이 뚜렷한 창조의 세
계를 지니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험난한 시
의 길에 탄탄한 장도가 되기를 기원할 따름이다.
133
저자와의 협의에 의해 인지는 생략합니다.
박상선 시집
지독한 함정
1999년 12월 20일 인쇄
1999년 12월 24일 발행
지은이/박상선
펴낸이/윤종덕
펴낸곳/도서출판 城山
641-030 경남 창원시 중앙동 3-8번지
전화 (0551) 266-1545,267-5071
FAX (0551) 267-5071
등록번호 제41호 성산문화사
값 5,000원
잘못된 책은 바꾸어 드립니다,
●○◎
<쓸쓸함>과 <뜨거움>의 친화력
박상선 시인의 시학은 첫째, 그의 정서적 구도가
<쓸쓸함>의 배면에서<뜨거움>의 의욕적인 정신이
변증법적 관계로 용출하고 둘째, 고독과 열정이
결코 <안개>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은밀하게 작용
하고 있으묘 셋째, 향토와 자연에 대한 애정에서
유별되는 무구한 의식으로서의 위상을 취하는 점
이다. 넷째, 현실과 의식의 상보적 관계로 절대적
쓸쓸함이 지극히 개성적인 자태로 선명하게 부각
되고 있다.
아무튼 박상선에게 있어서의 쓸쓸함은 바로 뜨
거움에 대한 친화력으로 간파 되어진다.
- 문학평론가 하현식의 「해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