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헤미야 강해(1) 2023. 7. 2
공감의 사람, 느헤미야
느헤미야1:1-5
오늘부터 ‘느헤미야’를 강해하려고 합니다.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말 그대로 예측 불가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정보가 생성되고, 상황은 급변합니다. 예측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망신을 당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새로운 흐름이 나타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게 이렇게 고전할 줄 아는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그너 그룹이라는 친러시아 용병 단체가(에브게니 프리고진) 최전선에서 싸우다가 갑자기 모스크바를 향해 돌진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루 만에 전진을 포기하고 후퇴할 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앞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어떻게 전개될까요? 푸틴은 어떻게 될까요? 그야말로 안갯속입니다.
그럼 이런 예측 불가능하고, 급변하는 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삶의 방식을 가지고, 적용해 나가야 할까요?
저는 성경에서, 위기의 순간에 ‘비상구’를 찾듯, 우리의 영적인 모델이 되는 한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느헤미야입니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또한 배우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헤쳐나가고, 또 성취하며 사는 비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함께 느헤미야 읽어가며 묵상하는 중에, 저와 여러분의 삶에 영적인 도전과 지혜가 생겨나기를 소망해 봅니다.
<바벨론에서의 포로 귀환>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되었습니다(BC 930년).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남쪽 두 지파(유다와 베냐민)만 다스리게 되었고, 북쪽은 10지파가 모여 여로보암이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북쪽 열 지파를 ‘북이스라엘’이라 부르고, 남쪽 두 지파를 ‘(남)유다’라 지칭하였습니다.
하지만 두 왕국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방 신인 바알을 섬기며 부도덕한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게, 남유다는 주전 587년에 바벨론에게 차례대로 망했습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북이스라엘이 민족적 정체성을 잃은 반면, 남왕국 유다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도 그들 문화에 물들지 않고 여호와 신앙을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그 기간이 70년입니다. 이 70년은 이스라엘이 오로지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훈련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바벨론 제국이 바사(페르시아)에게 망한 후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 일부가 주전 532년의 소위 ‘고레스 칙령’에 의해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바벨론에서의 포로 귀환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세 번에 걸쳐 단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1차 포로 귀환’ : BC 537년, 스룹바벨이 이끄는 첫 번째 귀환(49,897명 귀환). 이때 귀환한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합니다(에스라 1장~4장). 그러나 아닥사스다 왕 시절에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로 18년 동안 중단됩니다(스 4장). 이후, 다리오 왕 시절에 다시 성전 재건이 시작되어 제2성전이라 불리는 스룹바벨 성전이 완공됩니다(주전 516년, 스 5장~6장). 그 뒤에 바사 제국에는 아하수에로 왕(크세르크세스 1세)이 등극합니다. (이 왕은 그리스를 침략하고, 스파르타의 300용사와, 아테네와의 살라미스 해전을 통해 큰 패배를 한 뒤, 돌아와) 에스더를 왕비로 맞이합니다. 그 이후 하만의 계략이 있었고, 에스더의 결단으로 히브리 백성들은 큰 위기를 극복합니다(에스더서 참조). ‘2차 포로 귀환’ : BC 458년, 학사(서기관) 에스라가 이끄는 두 번째 귀환(1,754명 귀환, 에스라 7장). 이때의 바사 왕은 아닥사스다 왕인데, 앞서 등장하는 아닥사스다 왕과는 다른 인물입니다. 이때 에스라는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율법을 다시 가르치고, 1차 귀환한 유대인들이 이방인과 결혼한 문제들을 해결합니다(스 7장~10장). ‘3차 포로 귀환’ : BC 444년, 느헤미야가 이끄는 세 번째 귀환(42,360명 귀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합니다. 이미 앞서 성전은 재건되었지만, 성벽이 없었기에 항상 도적들과 맹수들의 위험이 있던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산발랏, 도비야 등의 이방 세력의 방해가 있었지만,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하고 하나님께 봉헌을 합니다. 이를 통해 예루살렘은 드디어 도시로써 최소한의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합니다(느헤미야 전체). |
<고향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
그러면 느헤미야가 이끄는 세 번째 귀환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 1~2절을 읽겠습니다. 1~2절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 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궁에 있는데/ 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 제이 십 년’이었습니다(주전 445년 11월 중순쯤). 그러니까 제2, 3차 포로 귀환 모두 아닥사스다 왕 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수산은 이란의 남서쪽에 있는 고대도시입니다. 왕들의 겨울 궁전(별장)으로 사용하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백합이 많아서 이름을 수산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고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자기의 친동생(하나니)을 만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물었다’는 것은 그냥 궁금해서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았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마치 심문하듯이 ‘꼬치꼬치 캐묻는 것’을 말합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형편이 어떤지 자세히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만큼 느헤미야는 자신의 조국의 형편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누구? 바벨론에서 태어난 포로 이민 3세대입니다. 바벨론 포로 시절에 그의 할아버지가 포로로 잡혀간 것 같습니다. 사실 느헤미야는 그동안 한 번도 예루살렘에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바사에서 태어나서 거기에서 자라난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이라는 제법 괜찮은 직위까지 올랐습니다(느1:11). 전쟁 포로의 후손치고는 나름대로 크게 성공한 셈입니다. 자신이 유대인 포로 출신이라는 사실을 굳이 드러낼 필요도 없습니다. 이제 돈을 많이 벌고 건강하게 오래 살면 그만입니다. ‘술 관원’이란 왕에게 바칠 포도주를 비롯한 각종 술의 제조과정에서부터 왕의 상에 오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총지휘하고 감독하는 사람입니다. 이 자리는 왕의 신뢰를 받는 사람이 받는 자리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왕이 독살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술 관원은 왕의 신뢰를 받는 측근 중의 측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오늘날의 비서실장이나 국정원장에 버금가는 자리). |
이렇듯 바사 제국에서 성공한 사람이었으나, 느헤미야의 관심은 조상들의 땅 예루살렘에 가 있었습니다(1,200km나 떨어져 있음). 아마도 13년 전에 에스라를 지도자로 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귀환한 이후에, 예루살렘의 형편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느헤미야의 친형제 중의 하나가 유다를 방문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그를 만나자마자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에 대해서 가장 먼저 캐물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동생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3절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이것은 느헤미야가 기대하고 있던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13년 전에 에스라의 지도하에 많은 유대인들이 돌아갔습니다. 이제 제법 시간도 흘렀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타버리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큰 능욕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들은 느헤미야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약 93년 전에 스룹바벨의 1차 귀환이 있었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은 간신히 복원하였습니다. 13년 전에는 학사 에스라가 귀환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신앙부흥 운동에 힘썼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나라의 기틀이 제법 잡혔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성벽을 복구하지 못하여, 이방 민족들의 침입과 약탈 등의 괴롭힘을 계속해서 당하고 있다니 그야말로 충격적인 일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단순히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그들이 영적으로 무기력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뜻입니다. 방해 세력을 뚫고 성벽을 재건할 힘도 용기도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큰 환란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면서도, 뿌리 깊은 패배감에 싸여 자포자기로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 민족이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 -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식민사관’을 심어, 우리 스스로를 열등한 민족으로 여기게 만들었음.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일본을 넘어설 수 없음).
<공감의 사람, 느헤미야>
이 말을 들은 느헤미야는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4~5절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느헤미야는 동생의 말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슬퍼하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을 치며 통곡하며 하나님 앞에서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면 느헤미야는 왕족도 아니고, 제사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지자도 아닙니다. 그냥 바사 제국에서 성공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사람들과는 일면식도 없고, 그들에 대한 아무런 책임도 없는 사람임에도 이런 반응을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느헤미야에게 있는 특별한 성품(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조국에 대한, 동족에 대한 ‘공감 능력’입니다.
동족의 아픔에 ‘자신의 마음이 동조’됨을 느낀 것입니다. 그들의 아픔이 곧 자신의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공감’(compassion)이라고 합니다. ‘함께 고난을 당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이 ‘공감’의 마음이 일어나자, 방치된 예루살렘 성읍과 능욕을 당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동포들을 생각하니, 도무지 견딜 수 없어서 통곡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마음은 갑자기 일어난 마음이 아니라 오랫동안 조국과 동포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있었기에 일어난 마음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느헤미야는 엄청난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바사 왕의 겨울 휴양지인 수산 궁에서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고, 누구도 부러울 것이 없는 특권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런 그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고국의 소식을 듣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며 하나님 앞에서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나라의 지도자는 물론, 영적인 지도자와 성도들이 가져야 할 첫 번째 덕목이 나옵니다.
지도자는 인격과 영성과 실력을 모두 갖추어야 하지만, 그 바탕에 어려운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이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롬12: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공감하는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 –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인간이 되셨습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사람의 모습을 입을 것 자체가 이미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자들을 놓아주시기 위한’(히2:14~15) 사랑에서였습니다. 이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우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의 삶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간이 당하는 고난을 똑같이 받으시고, 시험을 똑같이 받으시고, 인간과 똑같이 연약함을 경험하셨습니다(히4:15). 그렇기에 예수님은 전적으로 인간의 편에 서서, 인간이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민과 고통 등을 동정하며, 눈물 흘리시며 기도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는 자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대표적인 예가 눅7장에 나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성문에서 사람들이 죽은 자를 메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한 과부의 아들이 죽어 장사를 치르고자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얼마나 안되었던지 그 성의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며 뒤를 따랐습니다. 과부가 된 것도 슬픈데 아들이 죽었으니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예수님도 나인성 과부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울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 관에 손을 얹으시고 그를 살려 주셨습니다(눅7:11-17). 아들을 살려 달라는 간구가 없었음에도 불쌍히 여기셔서 고쳐주신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막6:34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그뿐이 아닙니다. 여러분, 나사로 잘 아시지요?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아버지 없이 오라버니를 믿고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오라버니가 죽었습니다. 그러니 마리아와 마르다에게는 얼마나 슬픈 일이겠습니까?
요11:32-35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우셨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면서 장차 있는 심판을 바라보고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셨습니다(눅19:41-44).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의 무관심을 질책하면서 하나의 비유를 들어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11:17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성도 간의 공감 능력이 있어, 교회 안에서도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애통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교회 안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이웃과 동족에게로 향하고, 나아가 나라를 위해서도 함께 애통해하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의 공감 능력>
특별히, 성도에게 있어서, ‘공감 능력’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발현되어야 합니다. 그들을 생각할 때, 안타까운 마음이 일어나야 합니다.
지난 6월 11일은 121년 전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복음을 가지고 들어온 헨리 아펜젤러 추도일입니다. 그는 27세에 한국 선교사로 와서 성경 번역차 어청도란 곳을 가다가 군산 앞바다에서 배가 난파되어 44세에 소천했습니다. 그의 시신조차 찾지 못해, 양화진의 비석은 시신 없는 비석입니다.
그의 선교 보고에 의하면,
1. 그는 한국에 장티푸스와 콜레라가 유행하는 것을 알고도,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2. 다섯 번의 천주교 박해로 8,000명~1만 명가량의 순교가 발생한 한국을 택함으로 순교의 위험을 감수하고 한국 땅에 왔습니다.
3. 동학혁명 10년 뒤인 1894년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너무도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문화적인 차이도 감당할만한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그는 드류 대학교를 졸업한 1%의 수재요 엘리트층으로 그 나라에서도 아낄만한 인재였습니다. 그런 그가 먼 이국땅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전하고,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헌신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순교한 것입니다.
왜 아펜젤러는 왜 한국에 굳이 왔을까요? 이러한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는 삶을 살았을까요?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우리 민족의 아픔과 동질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에게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오늘 우리를 구령의 열정이 있습니까?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슬피 울며,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까?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느헤미야’는 오늘 우리의 영적 모델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아무런 책임을 맡은 사람도 아니었지만, 동족의 아픔에 기꺼이 동참하였습니다. 동족의 아픔을 온몸에 짊어지고 슬피 울며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이는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할 마음입니다.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나라가 나한테, 해 준 것이 뭔데’, 그러지 말고, 나라와 민족의 아픔을 내 것으로 여기고 애통해하며 기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 한국교회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 국권을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가를 길러내고, 목숨을 걸고 기도했던 교회입니다.
나아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곧 ‘구령의 열정’이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오늘의 느헤미야가 되셔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함으로 인해, 이 나라와 이 민족이 구원을 얻고 더욱 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전하는 영적 이스라엘로 계속해서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