ㅋㅋㅋ 진도 공모전에 제출한 사진이 축제 공지 표지에 실려서 모델이 되었습니다.
미소 짓는 진도 바닷길
어제저녁 네다섯 시간을 달려 진도에 왔다. 바다가 갈라져 모세의 길을 본다는 설렘에 밤새 눈을 붙이는 둥 만 둥 바닷가로 나왔다. 새벽 5시경의 바다는 온통 깜깜했다. 저 멀리 모도 등대만이 아침을 기다리며 불을 밝히고 있었다.
몇 년 전에도 나는 진도에 왔었다. 그때는 다리가 아파서 바닷길을 걷지 못했다. 심한 요통이 다리를 절뚝거리게 했고 점점 틀어지는 체형 때문에 앞으로 걸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침 축제 기간이었지만 나는 바닷가에 앉아 구경만 했다. 축제에 참석한 사람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물이 빠져나가기도 전에 바다로 뛰어들었다. 여기저기에서 첨벙대며 조개를 잡았다고, 미역 줄기를 뜯었다고, 또 운 좋게 낙지를 잡은 사람들은 보물이라도 찾은 듯 환호성을 질렀다.
물이 더 빠지고 드디어 바닷길이 드러났다.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갔다. 알록달록하게 차려입은 관광객들의 행렬이 길게 띠처럼 이어졌다. 진도에서 모도까지 펼쳐진 행렬이 신비한 다리를 건너 유토피아로 가는 길 같았다. 나도 그 틈에 끼이고 싶은 생각이 굴뚝이었지만 그냥 뽕할머니 동상 곁에 붙어 앉았다.
할머니 처지가 나와 동병상련처럼 느껴졌다. 전해오는 이야기 속 뽕할머니는 마을 사람들과 자식들이 사나운 짐승을 피해 모도로 피신 갈 때 홀로 뒤쳐져 남게 되었다. 등 뒤에는 사나운 호랑이가 울부짖고 앞을 가로막은 바닷물은 검푸르게 넘실댔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다. 할머니만큼은 아니지만, 그날의 내 심정도 절망적이었다. 바다가 운다 해서 울돌목이라 부르는 지형의 거센 파도를 바라보며 나도 울었다. 같은 하늘이었지만 한참 울고 나자 세상이 환해졌다. 나도 뽕할머니처럼 기도하고 어떻게든 부딪혀 보자는 용기가 목울대까지 꽉 차올랐다. 언젠가는 용궁 길을 걷겠다는 마음을 품고 살았다.
다행히 그 꿈이 오늘 이루어졌다. 그새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다시 만난 뽕 할머니는 어릴 적 외할머니를 생각하게 했다. 진도는 외갓집에 들어서면 대청마루에 앉았다 맨발로 뛰어나와 나를 부둥켜안던 그분처럼 반가웠다.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다섯 시간 버스를 타고 다시 왔으니 성공이다. 두드리는 자에게 문이 열린다 했던가, 다리가 성해도 도전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 설 수 없다. 완주할 자신은 없었지만 가는 데까지 가보자며 뭍이 된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처음 밟는 바닷길 감촉이 싫지 않았다. 질척이던 뻘밭이 지나자 금방 물청소를 한 듯 물기가 반짝이는 몽돌밭이 펼쳐졌다. 그 위에 배 한 척이 전신을 드러낸 채 정박해 있었다. 때맞춰 동쪽 하늘이 불그레 해졌다. 아침 해였다.
주위가 환해지자 어느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나는 그 풍경 속의 주인공이 되었다. 주인공은 나뿐이 아니었다. 한껏 길게 누운 미역, 물길을 놓친 군소, 하늘에서 별이 떨어진 것 같은 불가사리, 숨다가 들킨 꼬막의 궁둥이가 허옇게 보였다. 그들을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걸었다. 다시 물이 들어오면 미역은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군소 꼬막, 불가사리는 안도의 힘찬 숨을 토해 낼 것이다. 신비함과 즐거움이 가득 찬 모세의 길이 그것들을 잘 품어 주었으면 참 좋겠다.
첫댓글 파도는 바위에 부딪히며 물보라를 뿌리던 진도. 작가님의 글을 읽고 고향 앞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영혜선생님 고향이 진도 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