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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강해(1) 2024. 6. 26
스스로 높아지려던 아도니야
왕상1:1-10
<열왕기상·하 개요>
사무엘상·하가 사울의 다스림과 다윗 왕가의 출발을 다루는 책이라면, 열왕기상·하는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과 그 후의 왕국의 분열 그리고 북 이스라엘의 멸망(B.C 722), 남유다의 바벨론(B.C 586)에 의한 멸망과 포로로 끌려갈 때까지의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본래 한 권의 책).
열왕기상·하의 저자는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포로 시기를 살던 무명의 유대인이었을 걸로 추측합니다.
열왕기상, 하가 쓰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솔로몬의 죽음부터 남유다의 멸망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한 역사적 이유입니다.
둘째는 첫째 이유보다 더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와 언약을 맺은 선택된 백성임을 부각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 혹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지만,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더 중요한 종교적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책을 읽을 때에 우리는 역사가가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그 책을 썼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똑같은 사실(인물)도 저자의 역사관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기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역사서는 사관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신명기 사관입니다. 신명기 사관은 모세가 기록한 신명기가 가진 사관을 의미합니다.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신명기 신학의 주제는 계명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과 저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 얼마나 큰 축복을 누리게 되는가를 기록하고 있으며, 불순종할 때는 징계가 따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열왕기 사가(또는 사가들)가 처한 삶의 자리는 포로로 끌려온 바빌론 땅이었고, 이런 그들에게는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왜 이런 지경에 빠지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사가는 재앙의 원인을 ‘불순종’에서 찾았습니다. 이것을 '죄'로 규정하고, 속히 회개하여야 모든 얽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역대 왕들의 선과 악을 가감 없이 드러내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엘리야와 엘리사 같은 선지자들의 모습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선지자의 삶 제시). 둘째는 역대기 사관입니다. 역대상·하, 에스라, 느헤미야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역대기 사가(또는 사가들)가 처한 삶의 자리는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예루살렘 땅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는 두 가지 문제, 즉 (1) 성전 재건, (2) 나태한 신앙과 이방인과의 통혼 등 같은 문제로 무너진 공동체의 종교 개혁에 대한 답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스 3, 4, 9장). 사가는 이런 그들에게 다윗과 솔로몬의 성전 건축 기사를 통하여 성전 재건에 대한 의지를 높이고, 제사(제도와 제사장)와 왕들의 긍정적인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공동체의 선을 도모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그 해답을 제시하고자 하였습니다(제사장의 삶 제시). 역대기 사가의 입장에서는 다윗의 왕조의 정통성이 속히 회복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다윗 왕조야말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참된 역사였습니다. 따라서 왕국의 분열 다음에 이어지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역사는 그의 관심 밖이었습니다. 그는 북 왕국의 역사에 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유다 왕국과 그 수도 예루살렘에 관한 역사만을 다룹니다.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 왕국의 영광을 들어 높이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불리한 사건들이나 사실들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다윗의 간통, 압살롬의 반역, 솔로몬 통치 말년의 사치와 우상숭배 등은 역대기에서 생략되었습니다. |
<나이 많아 늙은 다윗>
다윗은 30살에 왕이 되었고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했습니다. 이제 다윗의 나이도 70살이 되었습니다.
1-2절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2 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3 이스라엘 사방 영토 내에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4 이 처녀는 심히 아름다워 그가 왕을 받들어 시중들었으나 왕이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았다”고 표현은 상당히 실제적이면서도 상당히 문학적인 표현입니다. 메시지 성경에서는 “다윗 왕이 늙었다. 그도 세월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세월을 이길 장사는 없습니다.
저는 가끔 소년의 때가 그립습니다. 그러나 다시는 소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한 번 흘러간 강물은 다시 내 곁에 오지 않습니다. 내 몸이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한 번 스쳐 간 강물을 따라 그 물에 설 수가 없습니다.
인생의 세월이 흘러가는데, 한 번 흘러가면 끝입니다. 또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소중히, 보람있게,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소중히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신하들은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은 다윗을 위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지역에서는 왕이 늙으면 젊은 처녀를 구해서 그녀의 따뜻한 몸으로 온기를 전하게 하는 풍속이 있었습니다(오늘날에는 뜨거운 물을 가죽에 담아 품고 잠).
다윗의 신하들도 이 풍속을 생각하고, 다윗에게 제안하였습니다.
다윗은 이를 허락하였고, 결국 수넴 여자 ‘아비삭’을 데려옵니다. 그런데 사실, 아무리 고대 근동 시대라 할지라도 이러한 풍속은 잔인합니다. 한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또 다른 한 사람을 완전히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 처녀는 다른 사람에게 결혼할 수가 없는 몸이 되고 맙니다. 공식적으로 다윗의 아내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왕상 2장에서 아도니야가 그 수넴 여자를 아내로 구한 것이 큰 잘못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이기도 합니다.
성경 주석가인 매튜 헨리는 다윗이 이를 허락한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저도 다윗이 이를 거절하였더라면 더 좋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변의 다른 이방 나라의 왕들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도니야의 반역>
어떤 권력이든 말년에 가면 ‘레임덕’ 현상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권력 누수 현상 - 절름발이 오리라는 뜻으로, 임기 종료를 앞둔 대통령 등의 지도자 또는 그 시기에 있는 지도력의 공백 상태를 이르는 말, 더 심하면 ‘데드덕’).
다윗의 정권 말기에도 레임덕 현상이 일어나는데 대표적인 사건이 아도니야의 반역입니다.
5~6절 “그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6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라고 기록이 되어서 이상하게 생각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다윗에게는 부인이 여럿이기 때문에 부인의 이름으로 아들을 구분해 놓았습니다(삼하3:2∼5). 즉, 아도니야는 다윗이 헤브론 통치 시절에 학깃을 통해 낳은 넷째 아들입니다.
다윗의 첫째 아들 '암논'은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을 통해 낳은 아들로서, 이복누이 다말을 간음한 후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둘째 아들 '길르압'은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을 통해 낳은 아들인데, 병들어 일찍 죽었는지 이후 기록이 없습니다. 셋째 아들 '압살롬'은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를 통해 낳은 아들로서, 암논을 죽인 후 망명했다가 돌아가 반역을 일으켰고 요압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넷째 아들 ‘아도니야’는 다윗 왕의 살아있는 아들 중에 가장 큰아들인 셈입니다. 형들이 다 죽었으니 실질적으로 장남(서열 1위)입니다. 충분히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할 자격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존중하는 가운데, 왕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격과 지식을 쌓는데 충실했다면 왕위는 그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가장 컸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이 그랬듯, 그는 왕위에 속히 오르려는 ‘권력욕’을 참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문제는 늙었지만, 다윗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공식적으로 후계자를 선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도니야의 행동은 무엇인가요? 바로 쿠데타입니다.
아도니야는 쿠데타 방식을 압살롬에게서 배웠습니다.
압살롬처럼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했습니다(삼하15:1).
게다가 압살롬처럼 아도니야도 ‘용모가 준수한 자’였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압살롬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의 인기를 힘입어서 자신이 다음 왕이라는 것을 아예 공식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6절b의 그에 대한 설명이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6절b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아버지 다윗은 아도니야를 품어주고 너그럽게 대했다는 뜻입니다.
형들이 각종 사건으로 죽었으니, 다윗에게 아도니야는 살아있는 귀한 아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과잉보호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가 모범적인 착한 아들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그를 단 한 번도 꾸짖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버릇없는 아들로 길렀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 다른 해석은 아도니야는 다윗의 관심 밖에 있었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관심과 사랑은 솔로몬에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중에서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겠다’(삼하7:12)는 하나님의 약속이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 약속의 말씀을 들은 후에 다윗은 실제로 솔로몬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전에 태어난 아들들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도니야의 편에 선 사람들>
그렇다면 아도니야의 쿠데타에 동조한 사람들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7~8절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8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하지 아니하였더라.”
다윗의 군지휘관이었던 ‘요압’이 아도니야 편에 섭니다.
사실 말년에 들어와 다윗과 요압의 관계가 예전 같지는 않았습니다. 특별히 요압이 다윗의 명령을 무시하고 압살롬을 죽인 이후, 그 관계는 더욱 멀어졌습니다. 다윗은 의도적으로 요압을 자신의 주변에서 밀어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예를 들면, 요압에 대한 신뢰를 잃은 다윗은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책임자로 ‘아마사’를 세웁니다. 그는 본래 압살롬의 군대장관이었습니다(삼하17:25). 말하자면 쿠데타를 일으킨 반역군의 수장이었던 것입니다. 압살롬이 죽은 후에 다윗은 아마사를 지목하여 요압을 대신하는 지휘관으로 세웠습니다(삼하19:13).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입니다.
아마사가 제 역할을 가당하지 못하자, 이번에는 요압의 동생 아비새에게 진압을 맡깁니다. 어떻게 해서든 요압의 힘을 빼려는 다윗의 속내가 읽힙니다. 그러나 실세는 여전히 요압이었습니다. 요압은 다윗이 임명한 아마사를 칼로 찔러 죽이고 맙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용납하지 못할 일입니다.
요압도 다윗의 신뢰가 떨어진 것을 알고, 아도니야 편에 선 것으로 보입니다. 새로운 젊은 왕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지속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도니야 역시 요압이라는 군 총사령관의 힘을 업을 수 있어서 천군만마를 얻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제사장 ‘아비아달’이 아도니야의 편에 선 것은 언뜻 이해하기 힘듭니다. 압살롬의 반역 때 아비아달은 사독과 함께 다윗의 편에 서서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다윗의 왕권이 압살롬의 손에 거의 넘어간 상황에서도 그는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다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제사장 아비아달의 반역은 다윗에게는 더욱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비아달은 어쩌다가 다윗을 배신하게 되었을까요?
한 가지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비아달이 늘 사독에게 밀려 2인자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삼하8:17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아도니야가 왕권을 잡으면, 자신이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다윗을 기름 부어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제사장인 아도니야가 간과한 것입니다.
(비교 - 여호수아와 갈렙).
반면에 사독 제사장과 다윗의 친위대장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은 아도니야의 쿠데타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다윗과 함께해 온 용사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반역을 실행에 옮긴 아도니야>
결국 아도니야는 쿠데타를 실행에 옮깁니다.
9~10절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10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아도니야는 예루살렘 남쪽 근방의 ‘에느로겔’이란 곳에서 큰 잔치를 베풀고 다른 모든 왕자와 신하들을 초청합니다.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 - 다윗은 여러 왕비로부터 많은 자식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대상 3:1-9에 의하면 아들만 대략 19명 가량 되는데, 그중 아도니야는 넷째였고, 솔로몬은 열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첫째 암논과 둘째 길르압과 셋째 압살롬 모두 죽었습니다. 따라서 당시로서는 아도니야가 최연장자였으며, 솔로몬을 제외한 그의 동생은 모두 14명이었습니다(이외 많은 다윗의 첩의 아들들도 있었음). 이들 아도니야의 동생들도 아마 솔로몬 보다는 최연장자인 아도니야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아도니야는 이들도 자신의 거사 잔치에 참여시켰습니다. |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나단과 브나야와 다윗의 측근은 그 자리로 초청하지 않습니다. 물론 솔로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정적(政敵)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낸 것입니다. 그렇게 정치적인 편 가르기로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것은 인류 역사를 통해서 언제나 반복되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정치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내 편, 네 편을 갈라놓고 숫자 싸움하는 게 정치입니다.
그러나 권모술수와 칼부림의 폭력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솔로몬을 차기 왕으로 세우기로 마음먹으셨습니다. 다윗이 조금 미적거리고 있었을 뿐 하나님이 결정을 번복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아도니야의 초청에 모든 사람이 동조한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초청받은 사람들이 모두 응하여 그 자리에 오지 않았습니다. 아도니야의 분파적인 행동은 오히려 솔로몬을 차기 왕으로 세우는 일에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배우는 교훈>
오늘 우리는 아도니야의 반역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외형적 조건만 보면 그는 왕이 될 충분한 자격이 있었습니다.
① 당시 아도니야는 왕위 계승 서열 1위였습니다.
실제적인 장자로서 그는 왕위를 이어받을 자격이 있었습니다.
② 아도니야는 형 압살롬처럼 용모가 준수하여 사람들의 호감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도니야는 다윗의 헤브론 시절에 태어난 인물이기 때문에, 당시 그의 나이는 35-36세가량 되었을 것입니다(Hammond). 아직 소년이었던 솔로몬에 비해볼 때 참으로 그가 왕이 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③ 아도니야는 군대장관과 대제사장을 수하로 끌어들일 만큼 뛰어난 정치력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야심 만만한 기질, 수려한 용모, 탁월한 용모, 탁월한 정치력 등 여러 면에서 아도니야는 형 압살롬을 닮았습니다(Josephus. A.D. 1세기의 유대 역사가).
그러나 그는 결국 실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도움만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외형적인 조건만 앞세우고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안중에 없고, 다만 스스로 높아져 이스라엘의 왕위를 찬탈하고자 했습니다.
5절 “그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하지만 이처럼 교만한 아도니야는 결국 자신의 몰락을 재촉하고 맙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실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것은 넘어짐의 앞잡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23:12)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공은 사람의 도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달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도니야처럼 사람의 도움만 의지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의 은혜를 의지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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