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지역은 역사적 기록으로 1801년 전후, 또는 1815년 이전에 박해를 피해
서울, 충청도, 멀리는 경상도 등지에서 떠나온 교우들이 은이, 골배마실, 한터
사리틔, 먹뱅이, 한덕골, 손골, 고초골, 용바위, 모래실 등에서 교우촌을 형성하여 살았다.
이들 교우촌은 김대건 신부가 사제서품을 받고 체포되기 전까지 사목활동을 펼친 곳이기도 하다.
특히 고초골, 용바위, 모래실 교우촌은 오늘날 원삼성당 관할구역이다.
1896년 미리내 지역에 세 번째 방인사제인 강도영 신부가 부임하고 나서 원삼지역 세 공소가
미리내 성당에 귀속되었다가, 1927년 양지성당 관할로 분할 귀속되었다.
2003년 9월30일 양지성당에서 분가되어 초대 주임 전창훈 스테파노 신부가 부임하여
현 성전부지인 고당리 원삼공소를 임시성전으로 리모델링을 하였고, 방치되었던 고초골 공소를
정비하면서 주변 농가를 매입하여 피정의 집으로 탈바꿈시켰다.
2006년 8월 제2대 주임 홍명호 베드로 신부가 부임하여, 원삼공동체를 안정시키며
새 성전 건립을 위한 초석을 마련하였다.
2009년 9월 제3대 주임 김종훈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부임하여,
2011년 4월9일 이용훈 마티아 교구장 주교님을 모시고 새 성전을 기공하여,
2012년 2월5일 새 성전이 완공 되었다. 700여명의 신자에 불과한 시골 작은 본당에서
자체적으로 성전건축 비용마련이 어려웠으나, 신자들이 직접 메주를 만들어 판매한 수익금과
주임신부의 노력으로 여러 본당에서 도움을 받아 부채를 대부분 상환하게 되었다.
2014년 6월 제4대 주임 김정환 비오 신부가 부임하여, 모든 신자 가정을 방문하고,
신자들의 영적성숙을 위한 사목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 결과 주일미사 참례율이 50%를
돌파하였고, 청소년들이 60여명으로 늘어나 주일학교를 등록하였으며,
평년 4~5명이던 첫영성체반이 2015년 25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또한 새 성전이 봉헌될 수 있도록 마지막 준비와 함께 고초골 피정의 집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선교사를 파견 받았다.
이렇게 내외부적으로 본당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노력중인 가운데,
(2015.4.19) 이용훈 마티아 교구장 주교님을 모시고 성전봉헌식을 거행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