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드보이>의 이수아가 죽는 합천댐 일대 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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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천댐 아래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 세트장 기차 안에 그려진 장동건과 원빈의 대형사진 사이에서 '찰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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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만진 |
| 대구에서 합천읍으로 들어가면 시내 한복판에 육교가 나온다. 육교 지나며 바로 좌회전해서 좁은 길로 300m 가량 들어가면 황강(黃江)에 닿는데, 그 접점 너머 함벽루와 연호사가 있다.
이 누각과 절을 품은 얕은 산이 바로 대야성 터이다. 대야성이라면 김춘추의 사위 김품석이 백제 장군 윤충의 공격을 받아 부인 고타소와 함께 참살당한 성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사위와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김춘추는 하루 종일 실명 상태가 되어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김품석이 윤충에게 항복하려 할 때 부하 죽죽(竹竹)이 말한다. "항복해도 어차피 적의 손에 죽을 것인데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하지만 김품석은 항복을 했고, 죽임을 당한다. 죽죽은 남은 군사들을 모아 최후까지 항전한다. 이윽고 힘이 다해 죽음의 지경에 이르자 주위에서는 지금이라도 항복하거나 도망가야 한다고 권한다.
죽죽은 말한다. "아버지가 내 이름에 대나무 두자를 넣은 까닭이 무엇인가. 푸른 대나무처럼 지조와 의리를 지키라는 것 아닌가." 이윽고 죽죽은 장렬하게 전사한다. 후세 사람들은 죽죽을 기려 합천에 비를 세우고 그 이름을 '신라충신 죽죽비'라 불러온다. 육교에서 함벽루, 연호사로 들어가는 중간쯤 길 오른편에 서 있다.
대야성에서 합천호로 가는 길을 합천군청에서 발행한 관광안내도는 '백리벚꽃길'이라 부른다. 그러나 지금은 겨울이라 찾아가도 벚꽃이 없다. 그래서였던가, 한하운은 시(踏花歸)를 지어 이렇게 노래했다.
꽃이 피고 / 벚꽃이 지네 / 함박눈인 양 날리네 깔리네 / …… 꽃이 달빛에 졸고 / 봄 달이 꽃 속에 졸고 / 꿈결 같은데 / 별은 꽃과 더불어 / 아슬한 모하수 만리 꽃 사이로 흐르네 / …… 꽃이 지네 꽃이 지네 / 뉘 사랑의 이별인가 / 이 밤에 남 몰래 떠나가는가
길이 끝나면, 한하운의 노래 때문인가. 영화 <올드 보이>에서 이우진(유지태)의 누이 이수아(윤진서)가 뒤로 떨어져 댐 시퍼런 물길 속으로 자살하는 합천 호수가 나온다.
아니, 도로를 따라 차를 몰고 댐을 약간 두르며 올라가면 호수를 조망하는 장소가 나오는데, 식당이기도 한 관리사무소 건물 앞에서 오른쪽으로 차를 돌려세우고 몸을 내리면 코앞에 다가서는 난간이 바로 윤진서가 뒤로 떨어져 자살하는 지점이다. 윤진서는 류지태의 목에 걸려 있는 카메라를 되돌려 자기 자신을 "찰칵" 찍어 사진 한장을 남기며 말한다. "나, 기억해야 돼."
그러나 <태극기 휘날리며>의 진태(장동건)와 진석(원빈)은 "우린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야 해"라고 울부짖는다. 소크라테스가 남긴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말의 뜻을 체화한 윤진서는 비록 나이 어리지만 죽음의 길로 간다. 하지만 더 나이 들었지만 사는 것 그 자체가 오로지 중요한 진태는 울부짖으며 "우린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야 해"하고 외친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올드 보이>보다 <태극기 휘날리며>에 더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장이 합천 호수 바로 아래에 설치되어 있다. 탱크도 있고, 불타다 남은 건물도 있고, 대포, 트럭, 지프, 교회당, 상점 등 영화 촬영에 쓰였던 온갖 장치물들이 그 자리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진 찍기에 아주 안성맞춤이다. 사람들은 가족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그러나 그 어디보다도 꼭 카메라의 배경으로 낙점해야 할 자리는 기차 안으로 들어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형 진태와 살아서 돌아온 동생 진석 사이인데, 거기에서 반드시 "찰칵" 소리가 나게 한장의 사진을 남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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