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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주의 재해석론
-목 차-
1. 여는 말
2. 몸말
1) 지역별 작가중의 수용의 관점
(1) 프랑스 작가주의
(2) 미국의 작가주의
(3) 영국의 작가주의
2) 한국영화계의 작가주의 인식
(1) 한국영화감독의 두 가지 분류
(2) 서구 작가주의 이론의 수용문제
3) 한국작가주의론으로서 작가주의 재해석론
(1) 작가정신과 주제의식
(2) "작가주의 재해석론"의 적용의 예
1) 나운규의 민족영화론
2) 이규환의 비극적 민중주의론
3) 윤봉춘의 동학사상론
4) 유현목의 역중 인물론
3. 맺음말
1. 여는 말
프랑스 영화작가 트뤼포 Francois Truffaut에 의해 1954년에 제기된 '작가주의론 La Politique des Auteurs (작가주의 정책)'은 세계 영화평론계에 큰 전환점을 이룬다.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작가주의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다. 그것은 작가주의론에 대한 기능적 해석이 다양하게 드러남으로써 영화예술의 발전에 지속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었음을 반증하고 있다.
트뤼포의 작가주의에 대한 언급은 1954년 [까이에 드 시네마 Cahiers du Cinema]지 31호에 게재된 트뤼포의 "프랑스영화의 어떤 경향에 대해 Une Certaine Tendance du Cinema Francais"라는 글을 통해 최초로 소개되었다. 이론적 개념으로서 작가주의 시작은 아스트뤽 Alexander Astruc의 '카메라 만년필설 Le Camera Stylo'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작가주의 논쟁에 대해 그 뿌리를 내리게 한 것은 트뤼포를 비롯한 [까이에 드 시네마]의 영화비평을 주도하는 바쟁 Andre Bazin과 그의 추종자에 의해서 였다.
트뤼포는 전통적인 프랑스 영화가 거의 시나리오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을 불만스럽게 생각했다. 그는 영화작가정신은 기본적으로 시각적 방법에 의해 전달될 수 있다고 피력했으며 바로 그렇게 할 수 있는 특별한 감독의 출현을 기대하였다.
미국의 경우, 사리스 Andrew Sarris에 의해 적용되기 시작한 트뤼포의 사상은 영화작업의 지배적인 관점이 시나리오 작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감독에 의해 적용되어야 한다는 비평관점을 통해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사리스의 작가주의론 Auteur Theory은 작가 Auteur라는 용어가 author를 의미하듯이 영화감독을 소설가의 위치로 끌어올렸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리스는 스튜디오의 통제와 시나리오의 요구 하에 철저히 얽매인 할리우드 시스템에서도 미국감독들은 뚜렷한 개성적인 표현으로 자기 작품스타일을 남길 수 있음을 논증했다. 히치콕크 Alfred Hitchcock, 채플린 Charles Chaplin, 포드 John Ford, 혹스 Howard Hawks, 웰즈 Orson Welles 등과 같은 감독들의 분류는 그 좋은 예이다. 이러한 감독들의 영화적 표현의 기술적 능력과 스타일리스트로서 동일성, 세상에 대한 개인적 비전과 시각을 반영하는 주제성을 기준으로 영화의 특징 또는 감독의 개성을 파악하는 작가주의의 관점은 오늘날 다양한 비판을 받고 있다지만 작가주의의 판단기준은 유효하다.
최근 구조주의자들은 감독들이 자신들의 영화 속에서 사회의 메시지들을 무의식적으로 통과시키거나 피상적으로 다루는 수동적인 대행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비평한다. 그러나 작가주의 비평의 입장은 작가주의가 영화창조자의 삶과 그 예술가로서의 증진에 관련된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작품의 스타일과 구조의 기본적 구성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데에 기여한다. 그 결과, 최상의 경우 영화사적 맥락과 그 분류 안에서 영화의 의미를 증대시키는 체계적이면서 유기적인 수단으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사리스는 주장한다.
한편, 미국과 프랑스의 작가주의의 관점에서 영향을 입은 영국의 작가주의는 나름대로의 작가주의론적인 태도를 성립시키고 있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프랑스의 작가주의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상이점을 나타내고 있었다. 다시 말해, 영국의 작가주의는 그들의 영화적 상황의 차이점으로 인해 프랑스와 미국의 작가주의가 보여 주는 다소간 독단적이며 규범적인 작가론에서 벗어나 좀더 융통성 있는 작가주의론을 시도하려 하였다. 30년대 기록영화 감독인 로다 Paul Rotha나 그리어슨 John Grierson 등의 사회학적 비평관점과 40년대 중반의 [시퀀스 Sequence]지를 중심으로 대두된 라이쯔 Karel Reisz와 앤더슨 Lindsay Anderson의 비평적 견해는 사실주의와 다른 영화적 특성을 찾는 작업을 통해 영상의 시적 관점을 추구한 것 등이 좋은 예이다. 반면에 [무비 Movie]팀은 [카이에 드 시네마]의 영향을 받아 상이한 점도 많이 있지만 프랑스의 작가론과 공통점을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퍼킨스 V. I. Perkins는 감독을 영화의 유일한 창조자라기보다 영화제작의 전 과정에 걸쳐 부분을 종합적 결정체로 만드는 조직자로 봄으로써 보다 실제적이고 합리적인 감독론을 주장하였다.
이상, 작가주의의 서구적인 개념의 발단과 지역별 그 수용의 관점에 대한 약술을 통해서 한국영화의 작가주의 위상을 확인해 볼 필요성이 요구된다. 위와 같은 서구의 작가주의 개념으로 한국영화계에서 작가주의는 언제부터 언급되어 왔을까? 또한 그 언급의 내재적 의미가 세계영화계가 인정할 수 있는 작가주의의 입장에 접근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할 것이다.
우리 영화계에서 영화작가라는 용어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그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우리는 하길종의 영화평론을 통해서 70년대에 소개된 영화작가가 감독의 다른 용어로서 쓰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을 뿐이다. 결코 그의 글에서 작가주의 비평입장에서 거론되는 근거를 발견할 수는 없다 이 밖에 83년 한국영화문화연구소 주최로 열린 "한국영화의 과제와 진로"라는 세미나의 질의응답에서 언급된 '새로운 영화작가 등장'의 개념도 새로운 감독을 의미할 뿐, 아직 영화작가의 보편적 개념이 한국영화계에 인식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상에서 추론하건대, 7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영화작가라는 용어는 사용자가 정확한 개념을 인식하든 안 하든 관계없이 영화감독의 기능과 같은 맥락에서 우리에게 전달되고 수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최근 몇몇 비평가에 의해 시도된 작품분석을 통한 영화작가의 등장은 유효할지 모르나, 한국영화계의 영화작가 인식은 작가주의 주장과 거리는 멀다. 구태여 발전적으로 해석한다면, 영화작가는 작가정신을 필요, 충분조건으로 하는 진정한 영화감독과 일반감독을 구분하는 의미로 이해된다고 하겠다.
따라서, 본 논제의 전개를 위한 영화작가의 인식은 진정한 영화감독을 의미하는 한국적 개념도 또한 작가주의의 완벽한 이상을 추구하는 영화작가주의도 아닌 새로운 이해를 창출하고자 한다. 즉 '작가주의 재해석론'은 영화창조자의 삶의 바탕인 영화작가의 인생관을 재조명하여 그 인생관이 영화 작품세계를 통해서 어떻게 표출되고 역중인물의 이념이 어떤 가치관을 제시하였는가를 분석하고 판단하여 작품의 주제의식이며 동시에 영화작가정신을 확인하는 과정으로서 도입하려 한다. 그 결과, 영화작가로서 개인의 문제가 한국영화예술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부여했는가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논리의 도구로서 한국적 작가주의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2. 몸 말
진정한 작가와 진실로 작품다운 걸작을 선별하고자 하는 새로운 개념의 비평기준을 최초로 시도했던 [까이에 드 시네마] 팀의 작가론은 50년대 중반의 당시로선 영화예술의 비평작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논리였다.
우린 초창기의 영화가 문학과 연극에 종속되어 영화예술로서 대접을 받지 못한 채, 영화가 예술이냐, 아니냐하는 영화예술의 실존에 관한 본질적인 논쟁이 치열하였음을 기억하고 있다. 그 덕분에 영화예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깨우쳐 주게 되었고 그 이후 영화는 영화의 독자적인 예술형식을 추구하는 다양한 시도로 그 어느 분야의 예술보다 확고한 위치를 일구워 내게 된 것이다.
영화예술의 본질적인 논쟁이 영화예술의 독자성을 추구하는 계기로서 영화 미학적인 측면을 확립하였다면, 작가주의를 중심으로 한 작가론의 논쟁은 영화예술의 창조적 주인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과정에서 영화예술의 기능적인 여러 차원을 점검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그 결과, 영화감독을 작가로 대접하고 영화를 만드는 작가와 영화산업과의 관계에 대해서 어떤 무엇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어떤 감독이 지속적으로 만든 작품의 스타일과 구조의 기본적 구성을 이해함으로써 작가의 개성이 어떤 영화산업의 시스템 하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살펴보는 일과 잊혀진 영화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서 개인의 능력을 재발굴하는 것 등이다. 영화사적 측면에서도 체계적으로 영화의 의미를 증대하고 이해의 폭을 넓히는 도구로서 기능하는 것도 관심의 대상이 된다. 이 밖에도 작가론을 이해하고 수요하는 관점에 따라 영화의 진정한 창조적 주인을 발견하는 방식은 다양하게 이야기되고 있다.
우린 본 논제를 통해 바로 영화예술의 진정한 창조적 주인을 이해하는 방식을 발견하고자 한다. 특히 본 논제는 영화예술의 유능한 창조적 주인을 선별하는 기준을 논술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영화 속의 영화작가를 가장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을 거론하는 것이다.
우선, 지역별로 작가주의를 이해하는 관점을 파악하고 어떻게 수용했나를 점검한다. 그리고 한국영화계가 작가주의를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가를 논의한다. 그 결과, 작가주의를 수용한다면, 우리의 입장에서 우리의 작가를 설명하는 작가론은 어떤 방식이 효과적인가? 그 대안책을 제시하는 시도를 한다.
1) 지역별 작가주의 수용의 관점
(1) 프랑스 작가주의
트뤼포가 영화작가라고 지칭한 감독들은 브레송 Robert Bresson, 르노아르 Jean Renoir, 콕토 Jean Cockeau, 강스 Abel Gance 등이다. 이들이 자신의 영화를 만들 때는 주어진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 대사를 고치거나 줄거리를 새롭게 구성하였다. 다시 말하면, 주어진 작품(소설, 시나리오, 촬영대본)을 단순히 충실하게 영상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독창성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트뤼포는 이점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이것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동일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의 영화작품은 그것을 창조한 사람을 닮게 된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설혹, 주제에 제한을 받고
연기자의 선택을 마음대로 못한다고 해도 영화의 리듬창조나 공간설정을 통해서 영화는 창조자의
모든 것을 깊이 반영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트뤼포는 그 당시 프랑스 영화의 상황을 규정하고 그 방향의 전환을 직시하였지만, 부득이한 대안으로 영화작가의 창작 태도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로머 Eric Rohmer의 지적처럼 트뤼포는 '작가의 정책 La Politique des Auteurs' 을 제시하고자 했음이 틀림없다.
트뤼포가 진정한 영화작가라고 불리우는 브레송 그 자신도 시나리오 작가에서 감독으로 전향한 인물이다. 또한 많은 소설을 영화한 한 장본인이지만, 지극히 개성적인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출할 수 있었기에 영화작가라고 트뤼포는 인정하는 것이다. 트뤼포가 진정으로 우려한 것은 시나리오 작가들의 교묘한 솜씨가 횡행하는 그 당시 프랑스 영화계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영화감독들의 태도였다. 다음에 언급된 그의 말은 트뤼포의 입장을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앞에서 거론한 바 있는 '시나리오 작가의 영화'나 그 대표자인 오랑슈 Jean Aurenche와 보스
Pierre Bost가 나를 반박하리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들이 시나리오를 제시할 때는 영화는 이미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영화란 주어진 시나리오에 그림을 첨가하는 일만을
시도하는 점잖은 신사로 여겨진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니 어찌 애통한 일이 아니겠는가?
확실히 트뤼포의 '작가주의 정책'은 영화감독의 존재를 분명히 내세워야 한다는 의지에서 제시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는 분명한 영화감독의 실체를 40년대 미국영화의 B급 영화감독에서 발견하고자 했다. 그 자신이 스스로 할리우드 B급 영화를 상당부분 모방해서 만든 <피아니스트를 쏘아라 Le Pianiste>를 예로 들어 할리우드 영향을 설명했다. 또한, 고다르의 <부드러운 숨결 A Bout de Souffle(59)> 역시 미국의 필름느와르 Film Noir와 갱영화 Ganster Film의 압도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때, 프랑스의 새로운 사조인 뉴벨바그는 미국의 B급 영화의 직접적인 영향이 컸음을 부인하지 못한다.